[ 제10회 한반도평화포럼 자료집]
"대북 인권정책과 인권문제의 세계적 추세"
일시 : 2008년 8월 29일(금) 13:00-18:30
장소 : 프레스센타 19층 기자회견장
*원문은 10회 포럼자료집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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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정책의 세계적 추세와 이론적 흐름
김수암 박사(통일연구원 연구위원)
1. 서론
인권은 인간이기 때문에 당연히 부여받아야 할 양도할 수 없는 권리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인권문제가 국제관계의 영역으로 들어오게 되는 것은 20세기 중반 이후의 일이다. 국제연맹규약에는 인권에 관한 조항이 없었다. 나치에 의한 유태인 학살을 경험한 국제사회는 인권문제의 중요성을 인지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유엔헌장에 인권 조항이 포함되면서 비로소 인권이 국제관계의 영역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이후 국제사회는 인권보호를 위한 각종 협약들을 제정하고 유엔인권위원회 등 인권 보호 및 보장을 위한 인권레짐을 구축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여 오고 있다. 그렇지만 냉전 시기 이데올로기 대립으로 인해 인권문제는 국제관계의 주요 의제로 다루어지지는 못하였다. 냉전이 종식되면서 인권은 국제관계의 핵심 의제로 부상하고 있다. 또한 일국의 외교정책에 인권이 주요 의제로 점차 통합되는 추세에 있다.
국제사회의 이러한 노력의 결과 어느 국가, 어느 조직, 어느 개인도 인권문제를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인권이 보편적 가치라는 점을 부인하는 국가는 없다. 그렇지만 상위의 권위체가 없는 국가 중심의 국제관계에서 인권개념, 해석, 실천 기준 등에 대한 합의가 도출되지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구체적으로 인권이 무엇이며 국제인권규약의 실천 차원에서 다양한 논쟁들이 전개되고 있다. 특히 특정 국가에서 인권이 유린될 경우 이를 시정하고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개입하는 것이 정당한 지에 대해 논의가 제기되고 있다. 탈냉전 이후 대량학살 등 인도에 반하는 범죄에 대해서는 개입이 가능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국제사회로부터 인권유린국가라고 비판받는 국가들은 주권, 내정불간섭 원칙, 문화상대주의 원칙 등 다양한 대응 논리로 반박하고 있다. 이와 같이 인권의 보편적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논쟁이 전개되고 있는 것은 여전히 국가가 핵심지위를 점하고 있는 국제관계의 속성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북한도 예외는 아니다. 1990년대 이후 경제난으로 탈북행렬이 이어지고 이들로부터 심각한 인권실상이 알려지면서 북한인권문제는 국제사회의 관심사로 부상하고 있다. 나아가 북한인권 실태를 개선하기 위해 국제사회는 다양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국제사회의 개선 요구에 대해 북한은 세계적 차원의 인권논쟁을 토대로 자신의 특수성을 반영하여 대응논리를 구사하고 있다. 따라서 따라서 대북 인권정책은 이러한 세계적인 논쟁과 추세, 이에 대한 북한의 인식을 바탕으로 추진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먼저 국제사회에서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국제인권레짐을 형성하고 합의를 도출해나가는 과정에서 전개되고 있는 논쟁과 흐름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세계적인 논쟁에 대한 북한당국의 이해와 인식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또한 이러한 논쟁에 결합되고 있는 북한의 특수성을 분석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인식 아래 이 글에서는 인권문제를 둘러싸고 전개되고 있는 세계적인 논쟁과 흐름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세계적인 논쟁과 흐름에 대한 북한의 입장과 북한의 특수한 논리를 분석하고자 한다.
2. 국가 중심의 국제관계와 인권
2.1. 주권, 내정불간섭 원칙과 인권
어느 국가도 인권의 보편적 가치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현실 국제관계에서 인권문제를 둘러싸고 다양한 논쟁들이 전개되면서 갈등의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인권의 보편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갈등이 발생하는 요인은 국제관계의 속성에서 찾을 수 있다. 국제관계는 국민국가를 합리적 행위자로 국가이익에 따라 행동한다는 국가 중심적 현실주의 시각이 여전히 우세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세계정부 또는 세계시민사회의 구상들에 논의가 제기되고 있지만 여전히 세계는 국민국가를 기본단위로 작동되고 있다. 또한 국가들의 사회(society of nations)라는 국제주의 모델이 제시되고 있지만 국경을 초월한 인권의 보편성에 대한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가가 여전히 핵심 행위자인 현실 국제관계에서 국가가 인권 실행의 주체라는 점에서 국제관계의 핵심작동 원리인 주권의 원칙과 지속적으로 긴장관계를 형성하여 오고 있다. 인권은 보편적 가치이기 때문에 특정 국가 내에서 자행되고 있는 인권 유린에 대해 타국이나 국제기구가 관여할 수 있는 지에 대해 논쟁이 전개되어 오고 있다.
보편적 가치인 인권의 구현과 주권원칙 사이의 논쟁은 유엔 헌장에 반영되고 있다. 유엔은 헌장 제1조 3항에서 “경제적·사회적·문화적 또는 인도적 성격의 국제문제를 해결하고 또한 인종·성별·언어 또는 종교에 따른 차별 없이 모든 사람의 인권 및 기본적 자유에 대한 존중을 촉진하고 장려함에 있어 국제적 협력을 달성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와 같이 유엔헌장에는 회원국들이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조항이 명문화되어 있다. 그렇지만 유엔 헌장에는 인권문제와 관련하여 유엔이 특정국가에 대한 실효성 있는 영향력 행사를 허용하는 어떠한 언급도 없다. 반면, 유엔 헌장에는 국제관계의 작동원리인 주권과 내정불간섭 원칙이 명문화되어 있다. 유엔헌장 제1장 제2조 7항에는 “현 헌장에 포함된 어떠한 것도 근본적으로 어떤 국가의 국내적 관할권 내에 있는 문제에 대해 유엔이 개입할 수 있는 권위를 부여하지 못한다”고 주권적 소관사항은 집단개입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천명하고 있다. 유엔 헌장의 조항은 인권유린행위가 발생하더라도 국제평화와 안보에 대한 위협이 되지 않는 한 유엔이 내부 국가/사회관계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회원국들이 확신하도록 만들고 있다. 또한 유엔헌장의 내정불간섭원칙은 인권을 국제적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보편적 의무를 국내법 관할문제로 환원하는 결과를 가져왔다.1) 이와 같이 유엔헌장을 비롯하여 인권관련 국제규범에서는 인권의 보호와 실행을 개별국가에게 맡기고 있다. 자국 내의 인권문제로 국제적 압력을 받는 국가들은 주권원칙을 방패막이로 인권문제는 타국 정부와 국제기구의 개입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개입은 국제평화와 질서를 해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주장한다.
유엔 헌장과 더불어 주권의 원칙과 내정불간섭의 원칙이 현실 국제관계에서 여전히 핵심 동력으로 작용하는 또 다른 요인은 인권분야 국제협력의 바탕이 되는 도덕적 상호의존의 성격 문제이다. 경제적 상호의존에 따른 국제협력은 개별 국가 내 일상생활에 비교적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물질적 상호의존 상태에서는 각자가 협력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게 할 수 있는 어느 정도의 일방적인 힘을 가질 수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인권의 바탕이 되는 도덕적 상호의존은 타국 내 일반시민의 일상생활에 별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멀리 떨어져 사는 외국인이 당하는 인권침해는 비교적 추상적이고 비실제적이다. 따라서 인권유린 국가가 내정불간섭의 원칙을 내세우더라도 도덕적 상호의존에 따른 국제협력이 어려운 국내·국제 정치관계가 형성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2)
여전히 주권 원칙이 국제관계를 움직이는 강력한 작동원리이지만 냉전 종식 이후 인권이 더 이상 국내문제가 아니며 보편적 가치로서 국제사회에 의하여 보호되어야 하며 인권보호가 주권에 우선한다는 논의들이 제기되고 있다. 코피아난 전 유엔사무총장은 국가주권보다 개인주권이 우선한다고 강조하고 인권침해에 대해 국경을 넘어 타국에 개입할 수 있다는 입장을 피력한 바 있다. 실제로 현실 국제관계의 다양한 변화로 인하여 보편적 가치인 인권의 보호를 위해 사실상 주권이 일정 정도 제약되고 있고 제약되어야 한다는 논의들이 전개되고 있다. 이에 따라 주권은 고정불변의 절대적 원칙이고 개념인가, 현실 국제관계에서 완벽한 주권행사가 가능한가라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국제법의 주요 기능은 주권개념을 극복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조약은 국가 사이에 서로의 의무를 수락하는 국가주권을 제약하는 계약이다. 결국 국제법이나 국제인권법은 주권에 대한 제약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제약에도 불구하고 국제인권법이 성안되어 올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인가? 주권국가들은 국제인권법의 실행 메커니즘이 구속력(강제력)을 갖지 않는다고 인식하고 있었고 이러한 인식에 따라 국제인권법의 출현이 정치적으로 가능하였던 것이다. 권위주의 국가조차도 국제인권규범에 어려움 없이 서명할 수 있었다.3)
인권유린 행위의 보호막으로 주권을 활용하는 국가의 행위를 본질적으로 제약하지는 못하지만 유엔은 국제 인권 모니터링 시스템을 발달시켜 오고 있다. 1967년 경제사회이사회의 제1235절차, 1970년 경제사회이사회의 1503절차 등은 커다란 한계가 있지만 인권 유린행위에 대해 개입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제공하고 있다. 또한 가입 당사국이 수용해야 한다는 점에서 원칙적으로 취약한 제도이지만 국제인권협약에 따라 개인통보 메커니즘이 형성되어 있다. 그리고 현재 7개 주요 국제인권협약은 전문가로 구성되는 규약위원회에 당사국들로 하여금 정기적으로 이행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한 특별절차에 따라 국가별·주제별 보고관들이 임명되어 인권 유린 행위에 대해 조사 및 보고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끝으로 2006년 유엔인권위원회를 대체하여 신설된 유엔인권이사회에서 모든 국가에 대하여 공정성과 보편성이 보장되는 방법으로 인권에 대한 이행과 책임을 검토하는 보편적 정례검토 제도(Universal Periodic Review)를 도입하였다. 실제로 유엔인권이사회 제5차 회의에서 채택된 결의 5/1(Institution-building of the United Nations Human Rights Council)에 따라 금년부터 4년 주기로 모든 유엔회원국을 대상으로 보편적 정례검토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이러한 보편적 정례검토제도는 전 유엔 회원국을 대상으로 의무적으로 시행한다는 점에서 높은 단계의 모니터링 제도라고 평가할 수 있다. 현 단계에서 이러한 메커니즘은 국가가 어떻게 국제인권의무를 실행하는 지를 모니터하는데 역할이 국한되어 있다. 비록 주권 자체를 본질적으로 넘어서고 있지는 못하지만 점차 주권에 대한 제약이 외형적이라기보다는 실질적인 양상으로 변화하기 시작하고 있다.
다음으로 국제관계 성격의 변화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주권에 대해 고정된 원칙으로 인식하고 주권의 역동성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현실 국제정치에서 국경을 가로지르는 엄청난 교류의 증가로 재정, 경제, 정보, 인민에 대한 국가의 통제가 약화되고 있다. 특히 인터넷을 매개체로 한 사이버공간 등 정보통신혁명이 급격히 진행되면서 국가주권은 신성불가침의 강도가 점차 약해지고 있다. 주권을 핵심으로 하는 국가중심 시각은 세계화라는 국제현실의 변화 속에서 도전 받고 있다. 여전히 국가가 국제관계의 주연 행위자로서의 위치를 점하고 있지만 조연 역할을 하는 국제기구, NGO, 초국가기업 등 초국가적 행위자들의 역할이 증대되고 있다. 또한 정치·안보, 경제 중심의 국제관계 이슈에서 환경, 인권 등의 영역의 중요성이 증대되면서 복합적인 무대로 변화하고 있다. 이로 인해 전통 현실주의 국제정치이론에서 국가가 모든 것을 관장한다는 국가 중심 시각으로 설명되지 못하는 복합 행위자가 복합 이슈를 다루어야 하는 새로운 현상에 직면하고 있다.
특히 인권침해 국가의 행동의 자유를 제약하고자 하는 인권NGO가 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들 국제인권비정부기구들은 네트워크, 정보와 미디어를 주요 설득 수단으로 활용하여 억압적인 국가권력에 도전하는 초국가적 행위자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이와 같이 인권의 증진과 실행에 헌신하는 효과적인 초국가적 NGO의 출현으로 국가는 NGO에 의한 국제인권규범 실행 요구를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다른 국가의 개입에 대해서는 주권과 내정불간섭의 원칙으로 반박할 수 있지만 NGO의 요구에 대해 국가 사이에 적용되는 주권원칙으로 대응하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로 인해 외부세계의 책무성 요구에 대해 보호막으로 활용하던 주권의 기능이 어느 정도 제약당하기 시작하고 있다.4) 다만, 현 단계에서 초국가인권 NGO들의 인권 옹호활동은 주로 모니터링 성격을 지니고 있다. 즉 주권 자체를 제약한다기보다 인권 유린 국가의 인권관행을 변화시키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2.2. 주권과 양자간 인권외교정책
1970년대 미국을 필두로 양자관계에서 인권을 외교의제로 채택하는 인권외교정책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국가 간 양자 관계에서 인권문제에 대한 개입의 문제가 제기되었다. 그렇지만 냉전 시기에는 이념적 고려에 의해 우방국의 인권 유린에 대해서는 묵인하는 태도를 취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냉전시기 미국은 정치·군사적인 전략적 이해를 고려하여 동맹과 우호관계에 있는 권위주의 국가들의 인권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하지 않았다. 레이건 대통령 시절 외교안보보좌관을 지낸 커크패트릭(Jeane Kirkpatrick)은 가장 심각한 인권 침해는 권위주의 독재정부가 아니라 전체주의적 공산주의에 의해 자행된다고 주장한 바 있다.5) 그런데 탈냉전 이후 미국과 유럽연합 국가들은 양자 관계에서 인권문제를 인권외교 정책의 일부분으로 통합하여 오고 있다. 사회주의로부터의 위협이 소멸된 이후 서방국가들이 적극적으로 인권문제를 제기하면서 국가 간 양자관계에서 근대 국제관계의 핵심원칙인 주권의 원칙과 현실적으로 충돌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그렇지만 인권 유린에 대해 무역제재 등을 통하여 개입하는 경우에도 정치·경제적 국가이익으로 인해 유보적인 태도로 보이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여전히 정치·경제적 국가이익을 우선시하는 현상이 지배적이지만 인권이 미국과 서방인권선진국의 외교정책으로 통합되는 현상이 강화되는 추세에 있다.
인권의 보편성과 주권의 원칙·내정불간섭의 원칙은 강대국으로 부상하는 중국이 논쟁을 주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인권 논쟁에서 중국의 시각은 북한의 시각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소련 견제라는 공통의 전략적 이해가 소멸되면서 미국이 중국의 인권문제를 제기하게 되었고 중·미 양자관계에서 인권문제가 현안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미국의 인권문제 제기에 대해 중국은 확고하게 주권의 원칙에 입각하여 대응하고 있다. 인권은 본질적으로 국내관할에 속하는 사안이며, 국제법의 가장 중요한 원칙인 주권원칙에 종속될 뿐이라는 입장이다. 따라서 인권은 국가주권에 우선할 수 없다는 태도를 확고하게 견지하여 오고 있다. 또한 인권의 실천영역은 국내관할권에 속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인권에 국경이 없다’는 주장을 반박하면서 주권은 인권의 전제이며 인권은 주권에 의지하여 그 실현이 보장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권이 없다면 국제사회의 평등한 일원이 될 수 없으므로 근본적으로 인권을 향유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덩샤오핑은 “국가와 국가간의 관계는 자국의 전략적 국가이익을 고려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는 인식 아래 “국권이 인권에 비해 중요하다”고 주장하였다.6)
이와 같이 주권의 원칙에 입각하여 인권을 내정의 소관으로 규정하는 중국의 인식은 미국이 인권을 정치적으로 활용한다는 인식으로 연결되고 있다. 중국에서는 서방국가, 특히 미국이 화평연변(和平演變)의 전략목표를 실현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인권문제를 정치화하여 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이 인권은 국경이 없다는 논리, 주권에 대한 인권우선론 등을 제기하면서 자국의 인권관과 의식구조를 다른 나라에 강요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세계 패권 경쟁을 위한 새로운 전략으로 다른 나라의 내정에 간섭하는 주요 구실로 인권을 활용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이 자신의 국가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인권문제를 국제관계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세계적으로 미국의 인권관념과 인권기준으로 양자관계와 국제문제를 처리하려는 세계화를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이다.7)
중국은 미국이 중국 등 전 세계 국가들의 인권실태를 기술하는 연례각국인권보고서를 발간하는 것에 대응하여 Human Rights Record of the United States를 발표하여 오고 있다. 동 보고서에서 개인의 생명과 안전, 법집행·사법기관에 의한 인권침해, 정치적 권리 및 자유,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 인종차별, 여성 및 아동의 권리, 타국에서의 미국의 인권침해 등 7개 부문으로 대별하여 미국의 인권침해 실태를 기술하고 있다. 이를 통해 미국이 다른 국가의 인권문제를 제기하고 있지만 오히려 심각한 인권유린 국가라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즉 미국의 도덕적 부당성을 부각시키는 방향으로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8)
2.3. 인도주의적 개입과 주권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 이후 국제사회는 집단학살, 고문, 대대적 인권유린을 금지하는 인권문화를 발전시켜 왔다. 그런데 탈냉전으로 다양한 형태의 분쟁이 발생하면서 세계 도처에서 고통을 당하는 시민들이 증가하게 되었다. 대량학살은 더 이상 주권의 특권적인 소관 사안이 아니라는 인식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그 결과 탈냉전 이후 인도주의적 개입(humanitarian intervention)이 국제정치의 주요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국가중심 시각에서 볼 때 현실 국제정치에서 인권과 국가주권이 대립되는 대표적인 이슈가 인도주의적 개입 문제이다.
국가 이외에 상위의 권위체가 부재한 상황에서 인도주의 개입은 다양한 논쟁을 야기하고 있다. 인도주의 개입의 대상이 되는 인권 유린을 누가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누가 개입의 정당성에 대한 권위를 부여할 것인지가 논란의 핵심대상이 되고 있다. 현 단계에서 인도주의적 개입의 정당성은 유엔이 부여한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되어 가고 있다. 유엔 헌장에서 주권의 원칙과 내정불간섭의 원칙을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예외규정을 두고 있다. 유엔헌장 제7장에서 안전보장이사회는 평화에 대한 위협, 평화의 파괴 또는 침략행위의 존재를 결정하고, 국제평화와 안전을 유지하거나 이를 회복하기 위하여 개입을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1990년대 집단학살 및 대량학살이라는 인도에 반하는 범죄가 발생하면서 유엔헌장 제7장의 강제개입조항을 확대 해석하여 군사개입이 정당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유엔헌장 7장에 따라 인도주의적 개입이 정당화되고 있지만 평화에 대한 위협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가 핵심쟁점으로 대두되고 있다. 현실적으로 대등한 국가가 병렬해 있는 국제정치의 속성을 감안할 때 모든 국가가 수용할 수 있는 인도주의적 개입을 정의한다는 것이 수월한 문제는 아니다. 여전히 사례별로 접근하고 있고 일반적 독트린을 정립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인도주의적 사안을 규정하는 문제를 놓고 국가 간에 견해가 대립될 수 있다는 것이 인도주의적 개입에 내포된 국제정치적 함의의 본질이다.
개입 동기의 이기적 성격과 선택적 개입의 문제가 논란으로 제기되고 있다. ‘인도주의’는 인류애라는 보편적 인식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므로 인도주의적 개입은 인류애를 기준으로 사심이 없어야 한다. 그런데 국가중심 시각이 우세한 현재의 국제관계에서 국가들은 자신의 국가이익이 무엇인지에 대한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행동할 것이므로 국익이 걸려 있다고 보이는 경우에만 개입할 것이다. 이로 인해 과연 인류애, 동정심 또는 동료의식에 의해 인도주의 개입이 결정되는 지에 대해 반론이 제기되고 있다. 이로 인해 국가들이 이기적 이익 추구를 숨기는 구실로 인도주의적 동기를 내세울 수 있다. 인도주의 문제가 지정학적이고 전략적인 고려에 의해 좌우될 가능성이 있다. 또한 남용의 문제가 야기될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국가들이 인도주의 개입의 원칙들을 선택적으로 적용하기 때문에 정책의 비일관성이 초래된다.9)
유엔이 개입의 정당성을 부여한다고 하더라도 유엔을 실질적으로 주도하는 강대국의 전략적 이해에 좌우될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현실적으로 강대국들이 전략적 이익이 없는 약소국의 국내문제에 개입하는데 주저할 경우 유엔이 인도주의적 개입을 주도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결국 미국과 같은 강대국이 주도하지 않을 경우 유엔의 개입 실행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또한 인도적 문제로 유엔 안보리가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 데는 구조적으로 한계가 있다. 냉전 종식 후 안보리의 이념적 색채는 사라지고 있으나 여전히 중국과 러시아는 서방이 영향력 확대의 장으로 유엔 안보리가 이용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유고의 사태에서 보듯이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가 반대하게 되자 미국과 나토동맹은 지역적 접근방식을 선택하였다.10)
개별적 혹은 집단적 인도주의 개입 권한이 어떤 원칙에 의해 지배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합의가 부재한 상황에서 강대국들이 자신의 문화에 근거를 둔 도덕적 가치를 국제사회의 약한 구성원들에게 강제로 이식하는 명분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현실 국제관계의 권력정치적 속성으로 인해 인도주의적 개입은 강자가 인도주의라는 가면을 쓰고 약자에게 간섭하는 수단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11)
국가 중심의 국제관계에서 자국민 보호의 의무가 있는 국가가 인도주의 개입 과정에서 자국민의 희생을 감수할 것인지의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국가 중심 시각에 따를 경우 국가는 자신의 시민들의 안전에 대해 배타적으로 책임지게 되어 있다. 인도주의적 개입 시 자국민의 인적 피해가 발생할 경우 국내정치적 부담의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국가 지도자들이 공통의 인류애를 위하여 무력을 수반하는 인도주의적 개입을 실행에 옮길 때 자국 병사가 위험에 빠지는 것을 감수할 의지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개입하는 국가는 보호대상인 주민보다는 자국 병사의 보호에 우선 순위를 두는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이로 인해 인도주의적 개입과정에서 자국민의 희생이 가시화 될 때 개입활동에 제약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인도주의적 개입은 성공적인가라는 기준에서 반론이 제기되고 있다. 단기적 관점에서 성공여부는 대량학살의 종결, 전쟁지역에 묶인 민간인에 대한 인도적 구호품 전달 등을 통한 인간적 위기의 즉각적인 완화를 통해 평가할 수 있다. 장기적 관점에서 성공 여부는 개입이 분쟁해결과 작동 가능한 정치체제의 복원을 촉진함으로써 얼마나 인간적 위기의 근원적 해결을 해소하는 가에 초점을 둔다. 인도주의적 개입은 장기적인 임무를 요하는 것인데, 일시적 개입과 철수가 효과적이냐의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인도주의적 개입이 나름대로의 역할을 하고 있지만 너무 늦거나 일시적이고 피상적이어서 장기적인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12)
3. 인권의 보편성과 상대성 논쟁
3.1. 인권의 보편성과 문화상대주의
국제사회는 보편적 가치인 인권을 현실 국제정치에서 구현하기 위해 국제인권규범들을 만들어오고 있다. 유엔 세계인권선언 서문에는 모든 사람과 국가가 성취하여야 할 ‘공통기준’(common standard)으로서 세계인권선언을 선포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1993년 비엔나 선언과 행동강령에서 모든 인권은 ‘보편적’이며 불가분리이고, 상호의존적이며, 상호 연계되어 있다고 선언하고 있다. 특히 첫 문단에서 모든 인권과 기본적 자유의 보편적 본질(universal nature)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와 같이 유엔 차원에서 인권은 선택적, 상대적이 아니라 보편적이라는 데 공감대가 형성되어 가고 있다.
그렇지만 상위의 권위체가 없는 국제관계에서 인권개념, 구속력 있는 실행시스템에 대해 합의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논쟁이 전개되고 있다. 실천 차원에서 보편성과 상대성에 대한 논쟁이 끊임없이 전개되고 있다. 무엇이 인권을 상대적으로 만드는가? 무엇에 대해 상대적인가? 가장 강력한 상대성에 대한 주장은 문화라고 할 수 있다. 문화상대주의는 주권의 원칙과 결합되어 국제적으로 승인된 인권에 대한 해석과 실천기준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갈등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문화상대주의는 다양한 문화 간 합의기반 확대를 통한 인권개념의 편차를 해소하려는 필요성을 제기한다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반면, 인권침해를 정당화하는 명분으로 악용되는 부정적인 측면도 있다.
문화상대주의는 인간의 가치는 상이한 문화 시각에 따라 매우 다르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상대주의를 인권의 증진, 보호, 해석과 적용에 적용하게 될 경우 서로 다른 문화권에 속한 민족들과 개인들은 인간의 기본적 권리에 대해서도 다르게 이해한다는 주장으로 연결된다. 문화상대주의 시각에 따르면 인권은 보편적이라기보다 문화적으로 상대적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문화상대주의는 현대인권이론이 내포하고 있는 서구중심주의를 비판하고 문화와 가치의 다양성에 기반을 둔 인권의 다원주의를 주장하는 이론이다.13) 이와 같이 인권의 보편성과 문화상대주의 논쟁은 인권은 원래 서구에서 태동된 개념이라는 서구 중심적 사고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세계인권선언의 채택에도 불구하고 이슬람 근본주의를 중심으로 인권은 서구문명의 산물일 뿐이며 지나친 개인주의라는 서구 문명적 특수성을 함유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어 왔다. 다른 세계의 문명적 특수성을 배제하고 있는 서구식 인권개념은 보편적 개념이 아니라 특수한 개념이라는 반론이 제기되고 있다.
인권을 국제법적으로 성문화해가는 과정에서도 인권에 대한 상대적 시각이 반영되고 있다. 각자가 처한 정치·경제·문화적 입장에 따라 인권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첫째, 제1세대 인권은 ‘서구적’ 접근법으로 시민적·정치적 권리와 사유재산권을 강조하는 시각이다. 둘째, 제2세대 인권은 ‘사회주의적 접근법’으로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를 강조하는 시각이다. 셋째, 제3세대 인권은 ‘개발도상국의 접근법’으로 자결권과 발전권을 강조하는 시각이다. 특히 권리의 주체라는 측면에서 제2, 3세대 인권은 집단 지향적 성향을 보이는 반면, 제1세대 인권은 개인주의 성향에 기반하고 있다.
그런데 세계인권선언의 법적 구속력을 뒷받침하기 위한 국제인권규약을 입안하는 과정에서 자본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이 인권에 대한 인식의 차이를 좁히지 못하였다. 이로 인해 하나의 국제인권규약을 만들지 못한 채 각자의 시각을 반영하여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과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이라는 별도의 규약이 제정되기에 이르렀다. 인권의 보편적 가치를 국제인권규범으로 성안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시각 차이가 그대로 투영되면서 갈등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나아가 제3세대 인권은 1, 2세대 인권과 달리 인권으로 인정할 수 있는 지 여부에 대해 여전히 논쟁이 전개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국제인권규범으로 제정되고 있지는 못한 상황이다.
3.2. 아시아적 가치와 인권의 보편성
1990년대 들어 동아시아 일부 국가에서 제기되고 있는 ‘아시아적 가치’를 필두로 한 인권의 보편성에 대한 논쟁이 고조되었다. 아시아적 가치론에 입각한 보편성 비판은 고도의 경제성장에 대한 자신감에서 연유하고 있다. 또한 인권을 보는 데 있어서 서구 개인주의와는 다른 문화적 전통에 대한 자의식의 증가도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14)
싱가포르, 말레이시아를 비롯한 동아시아 권위주의국가들은 서구에서 주장하는 인권의 보편주의(universalism)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동아시아의 인권은 아시아 나름대로의 정치, 사회, 문화, 경제 문제를 포괄하는 상대주의(relativism) 입장에서 재해석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논쟁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중국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중국 역시 인권침해를 이유로 미국을 비롯한 서방진영의 비판을 받게 되자 종래에는 인권을 사회주의 이념에 따라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라고 비판하던 태도에서 벗어나 점차 중국의 고유한 전통을 내세워 반격함으로써 아시아적 가치 논쟁에 합류하게 되었다.15)
아시아적 가치론은 “질서정연하고 건강한 사회를 창출함에 있어서 아시아의 유교문화적 공동체주의가 서구의 개인주의에 비해 훨씬 우월하다”는 주장을 지칭한다. 아시아 가치론자들은 개인주의에 뿌리박은 서구사회의 퇴화현상-극단적 개인주의·이기주의, 마약·폭력·범죄의 확산 등-과 공동체와 질서를 중시하는 아시아의 질서정연하고 건강한 사회를 대비하여 접근하고 있다. 이에 따라 동아시아 국가들이 가야 할 길은 무질서와 혼란과 이기주의를 조장하는 서구의 자유민주주의 모델이 아니라 유교의 기본가치인 조화를 바탕으로 하는 동아시아 고유의 모델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16)
이상에서 보듯이 아시아 가치론자들은 개인의 자유보다 질서와 조화를 강조한다. 자율적인 개인을 주체로 하는 서구식 인권과는 달리 아시아적 가치에서는 집단 내 조화를 중시하고 있다. 인간은 개인으로 존재하지만 집단의 성원으로서 개인성과 사회성은 인간다운 삶의 불가피한 양 측면이라는 주장이다. 인권을 개인의 권리로 한정하게 되면 사회성이 훼손되고 공동체의 연대와 협력을 통해 성취되는 다른 차원의 인권을 무시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개인성과 사회성을 조화시키는 방향으로 인권 개념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개인의 자유권 확대는 사회적 무질서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고 이러한 사회적 무질서가 인권유린의 근본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인식이다. 이에 따라 아시아 가치론자들은 서구사회의 높은 범죄율과 마약문제 등이야말로 가장 심각한 인권유린이라고 규정하고 있다.17)
아시아적 가치론에 입각한 인권인식은 국가의 역할과 밀접한 연관을 갖고 정립되고 있다. 아시아적 가치론자에게 범죄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권리야말로 가장 중요한 인권의 하나이며 이러한 인권을 보호하는 것이야말로 국가와 정부의 존재이유이다. 바람직한 사회란 개인의 자유보다 질서와 안정 및 집단 내 조화를 중시하는 강력한 국가와 정부가 존재하는 사회이다. 강력한 경찰력과 군대, 사법제도 등은 기본적인 사회질서와 기강을 유지함으로써 국민들에게 안정된 삶을 제공하여 주고 범죄 등의 사회불안요소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권리를 보호해 주는 기제로 인식되고 있다.18)
또한 아시아 가치론자들은 권리 보다는 의무를 중시하는 인권 인식을 표출하고 있다. 인권개념에서는 사회적 의무 수행 여부와 상관없이 일정한 권리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동아시아의 개인적·정치적 윤리학에서는 개인의 권리보다는 ‘의무’를 중시하고 있다. 개인의 권리보다는 공동체 내에서 지켜야 되는 가치와 덕목을 최우선으로 상정하고 추구한다. 유교사상에서는 절대적인 인권, 공동체보다 우선하는 권리, 사회전체의 이익을 위해서라도 침해할 수 없는 신성불가침의 개인영역이란 없다는 것이다. ‘서구’의 권리와 그러한 권리의 행사는 전통적인 의무 중심의 가치나 실천들과 갈등을 일으키는 파괴적인 개인주의적이라고 비판하고 있다.19)
아시아적 가치에서 인권을 규정하는 인식은 단순히 논쟁 차원을 넘어 유엔 회의에서 공식적으로 표명되기도 하였다. 비엔나 국제 인권회의에 앞서 준비단계로 1993년 3월 29일부터 4월 2일 태국 방콕에서 개최된 유엔 아시아지역인권회의에서 49개 아시아 국가(북한도 참석)는 「방콕선언」(Bangkok Declaration on Human Rights)을 채택하였다. 이 선언에서 인권은 ‘본질적으로 보편적’이지만 국가와 지역적 특성, 다양한 문화적, 역사적, 종교적 배경의 맥락 속에서 고려되어야 한다고 규정함으로써 문화상대주의적 시각이 강하게 표출되고 있다. 그리고 정치적 권리 이외에도 경제, 사회, 문화적 권리 역시 존중되어야 하며, 특히 발전권은 인권의 보편적이고 핵심적인 부분이라고 천명하였다.20)
아시아 가치론자들에 의한 인권 인식은 여러 가지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아시아 가치론자들에 의한 인권의 보편성에 대한 비판은 정치적 권위주의를 합리화하려는 명분에 불과하다는 반론이다. 서구에서는 자국민을 억압하고 민주화를 지연시키며 권위주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아시아의 특수한 ‘문화전통’이라는 개념은 자국 내 시민들의 인권에 대한 반발을 호도하기 위해 내세우는 ‘선전용 구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아시아적 가치가 개인주의 대 공동체라는 구도 아래 질서와 안정을 중시하는 ‘합의 추구’(consensus seeking)를 지향한다고 하지만 ‘합의 강요’(consensus imposing)가 보다 적절하다는 반론도 제기되고 있다. 합의추구는 모든 시민이 합의에 도달하기 위해 자신의 견해를 표현할 수 있는 언론자유가 필수요소인데,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라는 것이다.21)
인권이 ‘서구중심적’이라는 비판에 대하여 인권사상과 실천의 ‘서구적’ 기원은 단순한 역사적 사실일 뿐이며, 인권이 유럽에서 최초로 출현한 것은 서구의 가치나 식견이 우월해서가 아니라 바로 그곳에서 근대국가와 자본주의가 출현했기 때문이라는 반론이다. 국제적으로 승인된 인권의 적용가능성 혹은 적용 불가능성의 여부는 기원이 어딘가라는 문제와는 무관하다는 것이다.22)
전통의 결함, 근대적인 장점을 보지 못하는 문제가 반론이 제기되고 있다. 전통적인 관습은 근대적인 조건에서도 여전히 타당하다는 가정에는 정치적 순박함이 깃들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예를 들어 사회이동이나 인구변화가 거의 없었던 농촌 사회에서 발달한 관습들이 근대적인 도시생활에 얼마나 타당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특히 문화의 유동적 본성을 간과한다는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한 나라의 문화전통은 객관적 상황의 변화에 대한 주체적 대응의 요구에 따라 그 내용과 형식이 변화할 수 있다. 모든 문화 전통은 유사성과 차별성, 계속성과 가변성의 양면성을 공유한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4. 개발(발전)과 인권
경제발전과 인권과의 상관성에 대한 다양한 논쟁들이 전개되고 있다.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사회주의권과 개발도상국들은 3세대 인권으로서 발전권이 핵심 인권이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1986년 유엔은 발전권 선언을 채택하였다. 동 선언 제1조에서 발전권은 모든 인간과 인민이 경제·사회·문화·정치적 발전에 참여·기여·향유하도록 부여받은 양도할 수 없는 권리라고 규정하고 있다.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실 홈페이지에는 발전권은 국가 자원에 대한 완전한 주권, 자결, 발전에 대한 참여, 기회의 평등을 포함한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리고 1993년 비엔나 선언과 행동강령에서는 민주주의, 발전과 인권 존중, 기본적 자유는 상호 의존적이고 상호 강화하는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이상에서 보듯이 유엔 차원에서 발전권 문제가 논의되고 있지만 여전히 발전권을 권리로 볼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동아시아 지역에서도 아시아적 가치의 연장선상에서 발전과 인권의 상관성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아시아적 가치론자들은 시민적·정치적 권리 보장 이전에 경제성장이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시아 개발독재국의 정치지도자들은 “국가의 경제성장을 위해서라면 개인의 자유와 인권은 유보될 수 있다”는 태도를 보여 왔다. 아시아적 가치론에서는 급속한 경제발전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국제적으로 승인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사회집단 전체의 권리를 위해 유보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대중은 동남아시아 정부들에 대해 ‘인권’이나 ‘민주주의’보다는 바람직한 정부(good government)를 원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여기서 바람직한 정부란 자국 국민의 의식주 문제를 해결해나가며 공동체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하는 정부를 의미한다. 이를 위해 정치지도자들의 합의구축(consensus-building)이나 신뢰에 기반을 두는 바람직한 정부를 실현해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23)
개발과 인권의 상관관계에 대한 아시아 가치론자들의 주장에 대해 다양한 비판들이 제기되고 있다. 경제발전을 위해 자유를 유보해야 한다는 아시아 가치론자들의 주장은 아시아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기보다는 문화적 권리와 인권 모두를 유린하는 보편적인 발전지상주의라는 비판이다. 자유의 흥정(the liberty trade-off)은 모든 형태의 개발독재의 버팀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인권탄압은 정치안정이나 경제발전이라는 명분 아래 권력과 정치적 이해에 기반을 둔 전략적 선택일 뿐이라고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24)
다음으로 권리를 보장하는 국가는 경제발전에 성공할 수 없는가, 부유해지고 강력해지기 위해 억압이 필요한 것인가라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먼저 시민적·정치적 권리들을 부정함으로써 치르게 될 경제적 대가도 고려해야 한다고 반박하고 있다. 발전을 위해 시민적·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를 희생하는 것은 ‘바람직한 정부’ 형태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체제가 오래 지속된 곳에서는 거의 예외 없이 부정부패의 만연, 정부의 책임성 결여, 정책 형성의 투명성 저조, 부의 집중화 및 빈부격차의 심화와 같은 부작용이 발견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같이 시민적·정치적 권리를 부정함으로써 치르게 될 경제적 대가의 문제도 발생하며, 타락이나 독단적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인권 억압적 권위주의 정부가 경제성장에 성공한 어떤 내적 이유도 발견되지 않는다. 나아가 대부분의 아시아 나라들에서 권위주의가 경제적 실패로 귀결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25)
개발과 인권에 대한 국제사회의 논의는 아시아 가치와 다른 차원에서 새롭게 전개되고 있다. 1990년대 들어 인권과 개발(development)은 상호강화(mutually reinforcing) 작용을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빈곤 퇴치와 인권의 상관성에 주목하는 논의가 활성화되고 있다. 최근 빈곤 퇴치는 경제발전 전략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인권의 개선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주장들이 전개되고 있다. 즉, 인권적 관점에서 빈곤퇴치 문제에 접근하는 인식과 논의가 확산되고 있다. 빈곤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차별, 착취, 남용과 같은 불평등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빈곤은 단순히 경제적인 차원의 저소득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보건이나 교육에 대한 접근부족, 취약성, 소외(voicelessness)와 무기력 등을 모두 포함한다. 따라서 성장 중심적(growth-centered development) 개발로 빈곤을 퇴치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빈곤을 퇴치하기 위해서는 건강, 교육, 주거, 영양 등에 대한 빈민들의 접근성이 증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빈곤퇴치를 위한 발전 계획은 소득 빈곤만이 아닌 더 넓은 의미의 능력 박탈의 문제를 다뤄야 한다는 것이다.26)
특히 인권과 개발의 조화라는 시각에서 인권을 개발과정에 통합해야 한다는 ‘권리에 기반한 접근’(rights-based approach)이 새롭게 제시되고 있다. ‘권리에 기반한 접근’은 ‘인간개발’의 관점에서 국제인권체계의 규범, 원칙, 기준, 목표를 개발과정에 통합시키는 접근 방식이다. 국제기구들이 인권 개선을 위해 중요시하는 가치는 참여 및 비차별, 국가 및 지역단위 주인의식, 책무성과 투명성, 참여 및 권능강화(empowerment) 등이다. ‘권리에 기반한 접근’에 따르면 사업의 대상을 단순한 수혜자나 참여자의 개념으로 보지 않고 권리보유자(rights-holders)로 인식한다. 개발지원에 있어서 중요한 사안은 수원국가의 책무성(accountability)을 강화하는 것이다. 단순히 인권관행을 지원프로그램에 적용시킬 필요뿐만 아니라 개발지원과정에서 정책결정과정과 정책결과 향유에 있어서 동등한 참여, 책임, 투명성의 보장을 강조한다. 즉 개발지원과정에서 빈곤층과 소외계층들의 참여와 권능강화가 핵심 요소로 설정되어야 한다.27)
5. 인권 논쟁과 북한
보편적 가치인 인권에 대한 북한의 입장은 세계적 차원의 일반적 논쟁을 바탕으로 정립되고 있지만 북한의 특수성이 결부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북한의 경우 사회주의 일반원칙과 세계적 차원의 논쟁, 특히 아시아 가치 논쟁과 일맥상통하면서도 주체사상, 우리식 사회주의, 선군정치가 결합되는 특수한 입장으로 정립되고 있다.
‘공세’에 대한 자신의 ‘대응’ 논리를 정당화하기 위해 북한도 국제정치의 핵심원리로 작동하고 있는 주권의 원칙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북한은 인권문제가 주권의 소관사항이라는 입장을 확고하게 견지하여 오고 있다. 인권의 보편성을 보장하기 위해 국경을 넘어선 개입이 허용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인권보호’라는 명분 아래 약소국가의 내정에 간섭하려는 불순한 정치적 목적에 불과하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권은 모든 국가와 민족의 ‘생명선’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주권이 없는 인권은 상상조차 할 수 없기 때문에 오히려 주권의 원칙이 강화되어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28)
세계적인 논쟁과 마찬가지로 북한도 주권의 원칙에 입각하여 논리를 전개하고 있지만 북한의 경우 체제 안보관점이 보다 강하게 투영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북한은 국제사회의 인권개선 요구에 대해 사회주의를 와해시키려는 ‘인권공세’로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북한은 제국주의 세력이 인권을 명분으로 북한체제를 전복하고 정권을 교체하려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경직된 체제 안보 관점에서 인권은 곧 국권이라는 논리로 연결시키고 있다. 자주권을 상실당하면 인권 자체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인권은 곧 국권’이라는 북한의 논리이다. 자주권의 상실 여부의 시각에서 국제사회의 인권문제 제기를 인식함으로써 체제안보의 관점에서 국권과 연결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나아가 최근 북한의 문헌에서는 선군정치의 연장선상에서 인권은 곧 국권이라는 논리를 설명하고 있다. 인권은 강력한 국력을 전제로 할 때 보장될 수 있기 때문에 강력한 총대를 기반으로 하는 선군정치가 인권을 보장하는 최상의 정치방식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즉 “선군은 인권옹호의 선결이며 믿음직한 담보”, “선군정치는 곧 인권옹호정치”라는 것이다. 선군정치 아래 수령과 우리식 사회주의를 결사 옹위할 때 인권이 보장된다는 특수논리로 발전되고 있다.29)
체제안보와 주권원칙에 따른 국권 수호의 논리로 인권개선 압력에 대응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은 인도적 개입(humanitarian intervention)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인도주의적 개입은 신성불가침인 주권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비판하고 있다. 또한 일부 국가가 노골적인 정치적·전략적 목적을 추구하기 위해 수많은 군대를 동원함으로써 시민의 인권을 보호·증진하기보다는 오히려 무고한 시민을 살해하는 등 인권을 유린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도주의적 개입은 예외 없이 유엔헌장과 국제법의 위반이며, 인권 유린 행위라고 주장하고 있다.30)
북한도 유엔의 회원국이면서 4개 국제인권협약의 가입 당사자라는 점에서 국제적으로 승인된 국제인권규범을 수용하고 있다. 그렇지만 북한은 문화상대주의 시각에 입각하여 문화·역사적 차이로 인해 모든 국가에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인권기준은 없다는 논리에 따라 ‘우리 식 인권론’을 정립하여 국제사회의 인권개선요구에 대응하고 있다. “인민이 좋아하고 그들의 요구와 리익에 부합되는것”이 북한의 실정에 부합하는 ‘우리식 인권기준’이 된다는 논리이다. 인권이 보편적 가치라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지만 ‘인권기준’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국제사회에서 보편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인권기준은 없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우리 식의 올바른 인권기준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가와 민족마다 역사, 풍습, 경제, 문화발전 수준과 생활방식 등 조건이 다른 상황에서 특정 국가와 집단의 ‘문명’과 ‘기준’이 보편적으로 통용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서방국가들이 수용하도록 강요하는 인권기준은 북한의 실정에 맞지 않는 ‘서방식’ 인권기준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북한은 서방식 인권기준을 전 세계에 전파하려는 것은 자신들의 ‘가치관’과 생활방식이 지배하는 세계를 만들어 세계를 지배하려는 목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31) 즉 문화제국주의 관점에서 인권문제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아시아적 가치 논쟁에서 개인의 권리보다 사회의 조화와 질서를 중시하고 있듯이 북한도 이러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렇지만 보다 경직된 형태의 인권개념을 갖고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공민의 권리와 의무는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집단주의 원칙에 기초한다”(제63조)는 사회주의헌법 규정에서 보듯이 극단적인 집단주의 원칙으로 강화되고 있다. 그리고 북한에서 집단주의 원칙은 사회주의 대가정론이라는 가부장적 사고와 결부된다는 점에서 아시아적 가치론, 사회주의 일반의 인식과 차별화되는 특징이 발견된다. 북한도 아시아적 가치론자와 같이 집단과 조화를 중시하지만 수령과 연결되는 독특한 인식으로 변질되고 있다.
그리고 아시아 가치론자들이 주장하듯이 북한도 집단주의적 사회가 와해될 때 실업, 빈궁, 범죄와 사회악의 희생이 되어 인권이 유린된다고 범죄와 사회악을 인권유린으로 인식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특히 중국의 미국인권기록과 마찬가지로 미국 내에서 발생하고 있는 범죄와 사회악을 인권의 범주에 넣고 미국의 인권상황을 비판하고 있다.32)
아시아적 가치론과 마찬가지로 북한은 권리보다 의무를 중시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북한당국은 개인보다 국가가 우위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시민들의 권리보다 의무를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개인의 권리보다 국가에 대한 의무가 우선하며 모든 권리는 이에 상응하는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개인의 권리보다 국가에 대한 의무를 강조하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북한은 사회주의권, 다른 개발도상국과 마찬가지로 제1세대 인권인 자유권 대신 제3세대 인권인 자결권과 발전권을 강조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33)
6. 결론
인권은 인간이라는 그 자체만으로 향유하는 양도할 수 없는 권리로서 보편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특히 냉전 종식 이후 이념적 고려가 사라지면서 인권이 국제관계의 주요 의제로 부상하고 있다. 지구 상에서 인권의 보편적 가치를 공개적으로 부정하는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세계 도처에서 인권이 유린되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대부분의 인권유린 국가들은 국제사회의 인권 개선 요구에 대해 여전히 주권의 원칙, 내정불간섭의 원칙을 보호막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런데 점차 보편적 가치인 인권의 구현을 위해 국경을 넘어 인권 유린행위에 대한 개입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는 추세에 있다. 또한 미국 등 서방국가들은 외교정책에 인권의제를 통합시키는 방향으로 인권정책을 추진해나가고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병렬적인 국민국가가 핵심행위자로서 상위의 권위체가 없는 국제관계에서 인권유린국가에 대해 효과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인권레짐을 형성하는 것이 용이하지 않다. 양자관계에서 인권을 외교정책에 통합하는 추세가 강화되고 있지만 여전히 국가들은 도덕적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 자신들의 정치·경제적 이익을 희생하는 데 주저하고 있다. 이러한 제약 요인에도 불구하고 주권의 약화 현상이 확대되고 있다. 주권은 고정불변의 개념이 아니며, 주권국가들은 국제관계 현실의 변화로 인해 주권의 행사가 제약당하고 있다. 국가 이외에 국제비정부인권기구 등 초국가적 행위자들이 인권 영역에서 중요한 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국제비정부인권기구의 활동에 대해 주권의 원칙과 문화상대주의를 적용하여 대응하기는 어렵다. 또한 모니터링 중심으로 제도가 형성되고 있지만 유엔은 회원국가의 인권이행 상황을 점검하는 제도를 만들어나가고 있다.
따라서 현실 국제관계에서 주권의 원칙과 인권의 구현을 위한 개입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로 인권문제에 접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인권의 구현을 위한 다양한 제도를 형성하여 가고 있고 어느 정도 국가주권이 약화되는 현실 국제관계의 변화를 고려할 때 국가주의 관점에서 인권문제를 바라보는 것은 현실의 적절한 평가라고 할 수 없다. 도널리가 구분하듯이 인권분야에서 약한 국제주의 모델이 적용될 수 있을 정도로 현상의 변화가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문화 상대주의 관점에서 인권의 서구 중심적 속성을 비판하는 논의가 제기되고 있다. 문화상대주의는 다양한 문화 간 합의기반 확대를 통한 인권개념의 편차를 해소하려는 필요성을 제기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그렇지만 인권침해를 호도하는 명분으로 이러한 상대성 논리가 악용되는 부정적 측면은 지양되어 나가야 할 것이다. 도덕적 상대주의는 정도의 문제라는 점에서 보편성 대 문화상대주의라는 극단적인 이분법은 지양되어야 한다. 인권의 보편성을 문화적 동질화와 동일시해서는 안될 것이다. 문화적으로 인권개념에 대해 상이한 인식을 갖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라는 점에서 인권개념, 해석, 실천방도의 편차를 좁히려는 국제사회의 노력이 확대되어야 한다.
주권의 원칙과 인권가치의 구현, 인권의 보편성 대 상대성이라는 세계적인 논쟁의 관점에서 평가할 때 북한은 이분법적 시각에서 보편성 문제에 접근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특히 주권의 원칙은 우리식 사회주의, 수령 옹위라는 극단적인 체제방어 논리, 국권 수호의 논리로 변질됨으로써 인권적 관점에서 인권보호를 위한 내적 관행을 만들어나갈 여지는 사라지고 있다. 문화상대주의 시각의 입장에서 보편성을 비판하고 있지만 인권을 유린하는 체제를 은폐하는 명분으로 악용되는 측면이 강하다. 우리식과 서방식이라는 극단적인 이분법적 시각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인권개념의 편차를 극복할 수 있는 대화의 여지 또한 사라지고 있다. 따라서 북한은 인권영역에서 점차 국제주의 모델 요소가 확대되고 있는 세계적 흐름에 역행해서는 국제사회의 정당한 일원으로 동참할 수 없다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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