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10

10 「남한 주사파의 비극과 희극 」, 한홍구



prolétariat

「남한 주사파의 비극과 희극 」, 한홍구

http://danpyunsun.egloos.com/4629637
http://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12567.html
한홍구의 글들을 찾아보고 있는데, 흥미로운 구절이 있어 일부 인용해온다.

종속이론을 지나 레닌을 건너…

주체사상은 이런 분위기 속에서 등장했다. 주체사상이 남쪽에서 일거에 유행할 수 있었던 데에는 몇 가지 더 중요한 이유를 찾을 수 있지만, 우선 쉬웠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모두가 길을 잃어버린 사회구성체 논쟁에 질린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단순명쾌하게 풀어버리는 주체사상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모든 것은 ‘위수동’(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약어)이나 ‘친지동’(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에 의해 이미 정리되어 있었다. 번잡할 대로 번잡해진 사회구성체 논쟁과는 달리 이제 ‘고민 끝, 실천 시작’이 가능할 것처럼 보였다.

서구의 신좌파에서 남미의 종속이론을 거쳐 중국의 마오이즘을 지나 마르크스를 만나고 레닌에서 스탈린으로 이어지는 볼셰비즘으로의 긴 여정 끝에 사람들은 마침내 원산지가 조선임을 주장하는 주체사상을 만난 것이다. 이제 번역의 시대는 끝이 났다. 그러나 번역의 시대가 종식되었다는 것이 곧 남쪽 운동 진영이 정말 ‘주체’적인 입장에서 자기 얘기를 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아니, 번역의 시대보다 더 어두운 ‘받아쓰기’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받아쓰기의 시대는 화려하게 개막되었다. ‘강철’이란 서명에 ‘한 노동운동가가 청년학생들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부제를 단 편지 형태의 글은 ‘강철서신’이란 이름으로 일파만파를 일으키며 널리 퍼져갔다. ‘강철서신’은 마치 무협지에서 새로운 고수가 강호를 평정하듯 새로운 신화를 낳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 글은 활동가의 품성을 강조했다. 이론만이 남아 치열한 사상투쟁을 벌이던 당시의 풍토에서 사람냄새 물씬 나는 품성에 대한 강조는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강철서신’에서 미국은 미국놈도, 미제도 아니었다. ‘노린내 나는 양키’였고, 각을 떠도 시원찮을 존재였다.

나는 이 무렵 스칼라피노, 이정식의 <한국공산주의운동사> 번역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김일성의 주요 연설문을 비롯하여 북에서 나온 각종 서적이나 문헌들을 이미 많이 접한 상태였다. 그렇기에 ‘강철서신’의 출현은 북의 주장과 동일한 주장을 펴는 집단이 남쪽의 운동 진영 내에 출현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었지만, 내용 자체는 내게는 별로 충격적이지 않았다. 북의 원전을 이미 본 입장에서 볼 때 강철의 주장은 전혀 새로울 것이 없었지만, 북의 원전을 접할 길이 없었던 일반 청년학생들의 경우는 사정이 달랐다. 강철 김영환은 사상의 불모지였던 남쪽에 주체사상을 꽃피운 자생적 주체주의자로 추앙되고 있었다. 이것은 남쪽의 운동 진영을 위해서도, 김영환 본인을 위해서도, 주체사상을 위해서도 크나큰 불행이었다.

김일성을 만난 김영환의 착각

10년여의 세월이 흐른 1999년, 김영환은 강철이 아니라 간첩이 되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거액의 공작금을 받고, 밀입북하여 김일성까지 만난 남쪽 주사파의 대부 김영환. 이전의 조직 사건에서 조작과 침소봉대라는 의혹을 받던 국정원은 이 사건의 경우 축소 수사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김영환을 공소 보류하는 파격적인 조치를 취했다. 강철 김영환은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는 반성문을 국정원에서 작성했고, <조선일보>는 주사파 대부의 반성문을 특종 보도했다.

이 무렵 김영환이 <신동아>와 한 인터뷰를 보면 기가 막히도록 비극적이며 동시에 희극적인 이야기가 나온다. 김일성을 직접 만난 김영환의 평이다. “실제로 김일성은 주체사상이라는 말은 쓰지만, 제가 만나서 얘기해본 바에 의하면 주체사상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이 없고 잘 모른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주체사상이라는 용어만 꺼냈지 실제로 김일성이 하는 얘기에는 주체사상의 내용이 녹아 있는 느낌을 주는 것은 전혀 없었어요.” 얼치기 신학생이 예수님 만나 몇 마디 대화 나누고 ‘기독교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더라’라고 얘기하는 것과 한가지이다. 앞뒤가 꽉 막힌 유생이 <논어> 달달 외고 공자님 만나 문답을 하다가 사람을 보아가며 똑같은 이치를 다르게 설명해주는 공자님보고 교과서에 나오는 것도 모른다고 비판하는 격이다.

김영환은 자신이 밑줄 그어가며 달달 외운 주체사상 해설서나 논문을 생각하며, 김일성이 주체사상에 대해 모른다고 용감하게 말한 것이다. 김영환이 공부한 주체사상은 황장엽 등이 당의정을 입힌 주체사상이다. 자주성이니, 창조성이니, 의식성이니 하는 용어들이 그런 당의정이다. 그러나 주체사상의 핵심이 되는 내용들은 항일 무장투쟁과 이북 사회주의의 건설 과정에서 나온 것이다. 어떤 약을 보고 당의정만 기억해서 노란 약, 주황색 약 등등 색깔을 이야기할 수는 있겠지만, 그런 색깔은 약의 본질과는 전혀 다르다. 황장엽 등 이론가의 역할은 약에 당의정을 입히고, 포장을 하고, 설명서를 단 것이지, 약을 만든 것이 아니다. 주체사상의 창시자로 잘못 알려진 황장엽의 역할은 당의정 입힌 정도로 수정되어야 한다.

다음 기회에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주체사상은 항일 무장투쟁과 이북의 건설 과정에서 교조주의와의 투쟁 속에서 생성된 것이다. 북에서 주체사상의 핵심 내용을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대체할 사상 체계로 너무 뻥튀기하지 않고 하나의 삶의 태도로 설명했더라면 오히려 더 설득력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김영환은 황장엽 등이 화려한 당의정을 입혀놓은 주체사상을 가장 반주체적인 태도로, 대단히 교조적으로 집어삼켰다. 그러고는 끝내 소화하지 못한 채 토해버렸다. 강철 시절의 김영환에게 북은 남의 대안이자 ‘절대선’이었다. 항일 무장투쟁의 신화와 친일파 청산, 토지개혁과 사회주의 건설! 일제의 강점과 분단으로 인해 민족주의적 요구가 강할 수밖에 없는 분단된 한반도에서 “노린내 나는 양키의 군홧발 아래” 짓밟힌 남녘에서 자란 세대에게 외세로부터 자유로운 북은 이상향처럼 보였던 것이다. 더구나 1980년대 중반이라면 남쪽이 북에 비해 경제력에서 우위를 점하기는 했지만, 그 격차가 오늘날처럼 비교할 수 없게 벌어진 상황은 아니었다. 현실정치 속에 존재하는 하나의 체제인 북을 ‘절대선’으로 본 것도 비극이지만, 김영환은 이런 잘못을 깨닫고는 반대 방향으로 뛰쳐나갔다. 그와 유사한 경험을 했지만, 그와는 달리 차분하게 북을 바라보는 연구자가 된 어느 학자가 지적한 것처럼 “그는 환상이 깨진 자리를 치열한 반성적 대안으로 채우는 것이 아니라 북한을 악으로 규정하고 반공, 반북으로 나감으로써 최대한 보상받으려” 하고 있다. 수구세력의 품에 안긴 채로…. 그가 쓴 ‘강철서신’의 히트작 ‘간첩 박헌영에게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를 읽고 자란 세대는 “간첩 김영환에게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를 고민하게 되었다.

--------------
덧글|덧글 쓰기

말코비치2010-01-02 14:58
주체사상 자체는 잘 모르겠지만, 주체사상의 '실천'을 볼 때, 주체사상과 마르크스주의, 볼셰비즘 등이 별 상관이 없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단편선2010-01-02 23:55
그런 의미에서 한홍구 선생님이 이 글만큼은 잘 썼다고 생각합니다. 마르크스는 결국 도구가 되어야되지, 신봉할 대상은 아니거든요.

프리스티2010-01-02 22:18
이렇게까지 말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전향'도 '엣지'있게 했던 일본의 몇몇 지식인을 생각해보면 한국의 현실은 참 쓸쓸한 상황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국의 전향자들은 기껏해야 '사냥개'나 '도사'가 되죠..

단편선2010-01-02 23:56
음... 전 그냥 생활인?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 정치적 비전이 없어여... ㅜㅜㅜㅜㅜ

엄정중립2010-06-22 04:32
김일성을 예수나 공자에 비유하고 있는 한홍구의 편견은 심각한 문제...

단편선2010-06-23 13:42
어떤 맥락인지 잘 모르겠네요 ^^;

성우2010-10-04 13:01
강철서신을 구글링햇더니 왜 형 블로그가 일빠로 뜬다는것이냐 ㅋㅋㅋㅋ

단편선2010-10-10 13:30
나 주사파인가봐...

ㅋㅋ2012-05-15 09:11
저두 강철서신 구글링하다가 여기온 1

가을2012-08-14 15:06
나이가 20이나 쳐먹었으면서 남의 하는 말을 그대로 홀랑 믿어버리는 작자들은
또다른 말을 들으면 그리로 완전히 가버린다.

김영환이 주체사상을 믿었지만, 진실로 주체성은 없었던거다.
김영환이나 그 빠돌이들은 주체사상이 아니다, 종속사상이고 남들의 사상인 게다.

자연과 세상과 심리에 어떻게 휘둘리고 어찌 무너지고 어찌 견뎌나가는지
스물이 넘었다면 알수 있을텐데
김영환은 차분히 이론을 공부할 사람은 아니다.
저런 작자는 지식을 대하는 태도 자체가 문제다.

강철서신의 내용을 확인해보려고 구글에서 검색하다가 이리로 흘러왔네.
한홍구의 글은 삶에 이리저리 치인 흔적이 보이네.


ㅎㅎㅎ2016-04-26 07:55
운동권은 이석기에 대해서는 재수없게 걸렸다고 하면서 잘 알지도 못하는 주체사상파들을 동경하는 경향이 너무 많다. 김영환만 보더라도 국내최대정치계파까지 점한 종북주체사상파들을 비판하기는 커녕, 간첩의 영향을 받은 RO탓인지? 김영환을 먼저 비판하는 것은 뭔가 반성해야 한다.

주체사상에 대해서 모른다면 주체사상은 일제천황제 숭모사상이래로 우리민족에게 진보의 탈을 쓰고 더불어의 거죽으로 다시 살아난 전체주의의 망령이며 세뇌와 '받아쓰기'를 통해서 맹목적이고 무식한 무조건적 진보신앙에 정치를 비롯한 모든 사회층이 오염된 것을 보지못한다는 무식을 나타낸 것이다.

이 무식에서 뭘 안다고 그 주체사상을 아직도 비호하는 주사파정치패거리들처럼 전향자들을 비난하는가! 주사파에게는 온정의 눈빛을 주고 전향자에게는 차가운 홀대를 하느냐고 물으면 뭐라는 대답이 적당할까? 간첩이 시켰다, 간첩들 하는 말이 너무 좋았다는 말만 적당하다.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