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10

[김조년의 맑고 낮은 목소리] 긴 문화진화과정으로 본 적폐청산 그리고 혁명금강일보



[김조년의 맑고 낮은 목소리] 긴 문화진화과정으로 본 적폐청산 그리고 혁명
금강일보

한남대 명예교수
 [ 2면 ] 2017.11.06 금강일보 |


김조년 한남대 명예교수

2016년 가을 깨어있는 시민이 촛불을 들어 ‘국정농단’과 ‘적폐청산’을 외치기 시작한 날이 꼭 한 해가 지났다.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한 정권이 지나가고 새로운 정권이 태어났다. 구정권은 폐족이 되다시피 몰락하는 형상이고, 새로운 정권은 마치 날개를 단 듯이 올라간다. 그러한 상황에서 자기가 어디에 서 있는가에 따라서 한 해를 맞이하는 분위기는 매우 다르다. 억울함을 호소하고 분노를 폭발시키려는 분위기가 있는가 하면 그 촛불을 귀하게 승화시켜야 한다는 축제의 흐름도 있다. 그러면서 꼭 같이 상대방을 ‘국정농단’이라거나 ‘적폐청산’이란 말로 비판하고 공격한다. 진실을 밝힌다는 말들이 끊임없이 오염된 상태로 등장한다. 아닌 것도 자꾸 기라고 하면 나중에는 긴 것으로 둔갑하고, 긴 것을 아니라고 우기고 나가면 나중에는 정말로 아닌 것으로 인식되고 박혀버리는 것이 너무도 많다. 그렇게 말들이 섞이고 사람들이 얽히다 보면 그것들의 진실이 무엇인지 알 수 없도록 놀랍게 혼돈스러워진다. 거기에서 분별능력이 작동하지 않기도 한다. 마치 짙은 안개 속에 있듯이 분명하지 않게 된다. 이러한 때일수록 밝고 맑은 정신이 필요하다.

날마다 깜짝 깜짝 놀라게 할 만한 적폐라고 하였던 것들이 드러난다. 어쩌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의심해보던 것들이 아주 치밀하고 철저하게 계획된 고급스러운 비밀정책으로 벌어졌다는 것이 놀랍고 서럽다. 식민통치와 철통같은 독재체제를 지나오면서 첩첩이 쌓인 관행과 전통들이 민주화된 시대에서도 흔연히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것에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다. 그것을 밝히고 고치는 것이 이른바 적폐청산이지만, 그 일을 통하여 문제가 드러날 수 있는 측면에서 ‘정치보복’이라는 말로 흐리는 행위는 또 따른 청산의 대상이다. 물론 이러한 일들은 어느 특정한 사람이나 집단에 속한 이들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몇몇 특정한 사람들에게 벌을 주고, 그러한 집단을 바꾸거나 갈아치운다고 사라질 일은 아니다. 우리 정신과 삶과 마음속에 마치 씨앗처럼 오래도록 뿌려져 자라고 있던 것들이라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바람으로 쓸어가고, 불로 태워버리며, 큰물로 훑어 나가게 할 일도 아니다. 이미 우리 삶에, 사회에, 역사에 씨로 뿌려진 그것들, 그것들이 상당히 자라서 뿌리를 박고, 새로운 열매를 맺어 널리 흩뿌려진 상태에서 할 일은 무엇일까? 근본부터 달라져야 할 일이기 때문에 혁명을 말한다. 무력이나, 법률 제정과 재판, 또는 행정명령이나 인사이동으로 될 일도 아니다. 그 혁명은 오래 걸려 씨갈이가 돼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가을부터 올봄까지 타올랐던 촛불은 그래서 자기수련과정이었고, 꺼질 듯 가냘픈 듯 손에 들려진 촛불에 밝혀진 얼굴들은 모두가 다 경건한 기도의 모습이었다. 자기 자신 속에 있는 적폐, 자기 맘속에서 자라는 적폐, 자기가 뿌려 자라고 있는 적폐를 작은 촛불로 밝혀 쓸어버리자는 수련장이었다. 물론 그 장소에 나갔다고 적폐의 언저리에서 놀지 않았다는 것도 아니며, 한두 번 촛불을 밝혔다고 자기 몸을 감싸고 있는 적폐를 쓸어내린 것도 아니다. 일생 동안, 역사를 통틀어 내려오는 적폐 속에 몸을 담고 있는 자신을 새로운 통 속으로 옮기는 거대한 작업이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금방 되는 것도 아니고, 자리가 달라졌다고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오랜 기간 몸에 쌓인 독기를 서서히 씻어내는 작업이요, 핏줄에 쌓인 어혈을 뽑아내는 작업이다. 오로지 거기에만 매어달리는 치료과정으로 해도 매우 어려울 일일 것인데, 무수히 많은 일들이 새로 나타나서 그것을 방해한다.

그 새로운 상황들이란 물론 항상 있었지만 새로운 물결을 타고 강력하게 달려든다는 말이다. 미국과 북한 사이에 벌이는 핵폭탄 갈등, 새로운 강력한 국가로 패권을 다투는 미국과 중국의 경쟁관계, 전쟁을 일으킬 가능한 나라로 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새로운 패자로 군림하고자 하는 일본의 욕망체계의 실현노력이 그것이다. 이것들에 대항은 강력한 정부가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어느 탁월한 식견을 가진 외교술에 능한 사람이 해결할 일도 아니다. 이렇게 속을 맑혀 맑은 힘을 새로 쌓기도 강력한 바람이 불어 닥쳐 올 때 어찌해야 할까?
--
큰 나무가 없으면 작은 나무들을 모아 묶어서 기둥으로 쓸 것이고, 큰 산이 없으면 작은 언덕에 나무들을 심어 바람막이로 삼을 일이고, 큰물이 없으면 옹달샘들을 치고 씻어서 끊임없이 샘물이 솟아나 흐르게 할 일이다. 우리는 모두 맘을 모을 때다. 적폐는 어느 특정한 사람과 집단의 일이 아니라는 것, 그 물에 아직 담겨지지 않은 이들에게도 그 씨앗은 뿌려져 때가 되면 싹이 나고 뿌리를 내려 거목으로 자랄 수 있다는 것, 깨끗한 놈이나 더러운 놈이 함께 씻어내야 할 적폐라는 것. 그렇게 하여 모두를 맑히고 새로운 기운으로 살아가게 하는 공동작업이라는 것이 인식되어야 한다. 그러니까 적폐청산은 새로운 맑은 사회분위기, 사회문화를 만드는 혁명과정이다. 그러기 위하여 내 자신 속에서 조금이라고 싹이 자라는 폐를 도려내는 작업을 철저히 하면서, 이미 암처럼 퍼진 것들을 뽑는 작업을 할 일이다. 끊임없이 철저하게 오래도록, 그러나 전체를 살리자는 간절한 맘으로 할 일이다. 반성과 규명과 용서로서 모두가 새로 탄생하는 자리로 갈 것을 공동으로 찾는 길이다. 그것이 촛불의 의미일 것이다.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