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07

[이남주] 중국에서 인권규범의 확산과 한계


[이남주] 중국에서 인권규범의 확산과 한계 (10회포럼)





[ 제10회 한반도평화포럼 자료집]



"대북 인권정책과 인권문제의 세계적 추세"

일시 : 2008년 8월 29일(금) 13:00-18:30
장소 : 프레스센타 19층 기자회견장

*원문은 10회 포럼자료집에 있습니다.





중국에서 인권규범의 확산과 한계










이남주 교수(성공회대학교 중국학과)
















1. 왜 중국의 인권이 문제인가?


중국의 인권은 현재 국제인권체제(international human rights regime)에서 가장 논쟁적인 쟁점들 중 하나이다. 개혁개방 이후 경제적으로 고도성장을 지속한 중국의 일상생활에서 시민들은 상당한 자유를 누리고 있다. 직업선택, 주거이전, 소비생활 그리고 사회생활 등에 대한 국가의 개입과 간섭은 크게 줄어들었다. 문화대혁명 시기와 비교하면 커다란 변화가 아닐 수 없다. 반면 중국에서는 정치적 신념이나 종교적 신념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들에 대한 감시, 연금, 구속에 대한 소식도 끊이지 않고 들려온다. 이처럼 대조적 현상은 중국정부와 서방국가, 국제인권NGO들이 중국 인권상황에 대한 평가를 둘러싸고 치열한 논쟁을 벌이고 있는 가장 중요한 객관적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중국은 UN 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으로서 국제사회에서 합의된 가치의 실현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위치에 있으며, 개혁개방 이후 경제성장을 기반으로 명실상부한 강대국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점도 중국 인권문제를 둘러싼 논란을 복잡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중국의 국제사회에 대한 영향력의 증가는 중국이라는 국가의 정체성이 다른 나라에게도 중요한 의미를 갖게 만들며, 국제사회가 중국정부의 인권규범에 대한 태도에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만든다. 게다가 강대국이라는 지위는 중국이 국제사회의 규칙과 규범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능력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의미하기 때문에 중국과 국제인권체제 사이의 상호작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지금까지 중국의 인권에 대해서 적지 않은 연구가 있었다. 특히 1989년 천안문 사태를 계기로 중국의 인권문제가 국제적 공론장에서 치열한 논쟁의 대상이 된 이후 국제인권체제와 중국 사이의 상호작용과 이러한 상호작용이 중국에서 인권상황의 변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에 대한 많은 연구들이 진행되었다. 대표적인 연구로는 Kent(1999)와 Foot(2000)을 들 수 있다.


중국의 인권문제에 대한 연구가 국제인권체제와 중국정부의 관계에서 출발한 이유는 분명하다. 우선 인권이라는 개념은 서구 근대문명의 산물이며 중국적 전통문화는 물론이고 서구의 전통문화로부터 연역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Donnelly, 2007. 287) 뒤늦게 근대화의 길에 들어선 중국에게 인권규범은 외부로부터 도입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중국은 근대화 과정에서 사회주의의 길을 선택하였고 사회주의 체제 하에서 인권이라는 개념을 자본주의적 계급착취를 은폐하기 위한 수단으로 간주해왔다(최지영, 2005, 76-77).1) 따라서 중국도 다른 많은 비서구문명 국가들의 경우처럼 인권규범의 형성과 발전이 외부로부터의 충격에 의해 촉발될 수밖에 없었다. 특히 1970년대부터 빠르게 영향력을 증가시켜온 국제인권체제가 이러한 변화를 촉진하는 데 중요한 계기를 제공하였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중국연구들은 국제체제와 중국정부의 사이의 상호작용에 대한 분석을 넘어서 중국 내에서 인권규범이 어떻게 확산되고 있는가에 대한 연구는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물론 이러한 한계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1990년까지 중국 인권문제는 기본적으로 국제인권체제와 중국정부 사이의 문제였고, 중국 국내에서는 인권이 중요한 의제로 등장하지 않았거나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서는 중국 내에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인권담론이 확산되고 인권을 둘러싼 복잡한 상호작용이 출현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 인권문제에 대한 연구는 이제 중국 내에서 인권규범의 내재화(internalization)라는 문제를 더욱 적극적으로 다룰 필요가 있다.


본고는 국제인권체제, 중국정부, 그리고 중국 내의 동력 등 세 가지 요소의 상호작용을 중심으로 중국 내에서 인권규범의 내재화가 어떤 단계에 도달하였으며 이러한 변화를 촉진한 요인들과 그 한계를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필자는 이미 환경운동을 사례를 중국에서 권리담론이 확산되는 미시적 변화과정을 살펴본 바 있는데(이남주, 2007), 본 연구는 다시 거시적 변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 이유는 중국에서 인권상황은 계속 변화되고 있기 때문에 이를 총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시적 영역과 거시적 영역에 대한 연구가 서로 계속 보완해갈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2장에서는 인권규범의 내재화 모델을 제시할 것이다. 이는 리세(Thomas Risse)와 시킹크(Kathlin Sikkink)의 '5단계 나선모델(spiral model)'을 출발점으로 삼고 이 모델에 대한 몇 가지 비판 등을 고려하며 본 연구의 초점을 제시할 것이다. 3장에서는 중국의 인권현황을 간단하게 정리하고 위의 나선모델에서 중국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점검할 것이다. 4장에서는 국제인권체제가 중국정부의 인권규범에 대한 태도변화에 미친 영향을 분석할 것이다. 5장에서는 중국 국내에서 인권규범의 내재화 진행과 그 한계를 설명할 것이다. 그리고 결론에서 위의 논의가 주는 이론적, 실천적 함의를 정리할 것이다.


2. 국제인권규범의 확산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 리세와 시킹크의 '5단계 나선모델'을 중심으로


리세와 시킹크는 국제인권체제의 영향 하에서 인권을 억압하는 국가가 인권규범을 존중하고 인권규범에 일치하는 행위를 하는 국가로 변화하는 과정을 5단계(five phase)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본 연구에서도 이를 기초로 중국에서 인권규범의 확산과정으로 추적할 것이다. 이는 이 모델이 국제인권규범의 확산을 체계적이며 일관성이 있게 설명하고 있다는 점만 아니라 지금까지 중국을 사례로 하는 대표적 연구들도 이 모델을 출발점을 삼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2). 이 모델의 주요 내용은 아래와 같다(Risse and Sikkink, 1999, 22-33).


첫째, 억압(repression) 단계(phase 1). 이 모델은 출발점은 내부의 반대세력이 너무 약하거나 너무 강하게 억압되고 있어 정부에 도전을 제기할 수 없는 억압적 국가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인권을 침해하는 모든 국가들이 모두 국제인권체제의 의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인권규범의 공유, 공동의 담론, 지속적인 정보교류 등으로 결속된 초국적 네트워크(transnational networks)가 개별 국가에서 인권 억압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모으는 데 성공할 때 인권억압을 국제적 의제로 만들고 다음 단계로 이행할 수 있다.


둘째, 부인(denial) 단계(phase 2). 초국적 인권네트워크가 특정 국가의 인권억압 문제를 국제적 의제로 만드는 데 성공하면, 비판의 대상이 되는 정부의 일차적 반응은 대개 부인이다. 즉 국제인권규범 의 정당성을 부인하는 것이다. 그러나 부인을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는 것 자체가 그 정부가 국제인권체제에 의해 현성된 언설체계에 들어온 것을 의미하는 것이, 따라서 부인 단계에서 사회화(socialization) 과정이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셋째, 전술적 양보(tactical concessions) 단계(phase 3). 국제사회의 압력이 강화되면 비판을 받는 국가는 정치범의 석방, 정치활동 공간 확대 등의 부분적 양보를 시도한다. 이 양보는 인권규범의 수용과 같은 인식의 전환을 동반하지 않고 주로 국제사회의 비판을 완할 목적에 의한 도구적 적응(instrumental adaptation)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이는 국내에서 인권규범의 확장을 시도하는 세력이 사회적 동원을 가속화하고 국제인권네트워크와 연결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이로써 인권규범을 위반하는 정부에 대해 위로부터(from above)의 압력과 아래로부터(from below)의 압력이 동시에 작용하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한편에서는 반대세력 내에서 인권규범의 행위의 원칙으로 수용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정부도 자신이 만든 수사의 덫에 걸리면서(self-entrapment in their own rhetoric) 더 이상 인권규범 자체를 부정할 수 없게 되면서 인권규범의 내재화가 진행되는 다음 단계로 이행할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진다.


넷째, 규범적 지위 확보(prescriptive status) 단계(phase 4). 인권규범의 정당성은 더 이상 논쟁의 대상이 되지 않고 행위의 기준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하는 단계이다. 물론 이러한 변화가 실질적인 차원에서도 인권이 잘 보장된다거나 정부가 진정한 신념에 기초해 인권규범을 내세우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국제인권조약을 비준하거나, 인권규범이 헌법 및 법률을 통해 제도화. 시민들이 인권침해에 항의할 수 있는 제도적 절차가 존재하거나, 인권규범의 보편성을 인정하는 것으로 이러한 단계로의 이행이 이루어졌다고 불 수 있다.


다섯째, 규범에 부합하는 행위(rule-consistent behavior) 단계(phase 5). 초국적 인권네트워크-국내 네트워크의 지속적 압력 속에서 인권규범의 관습적 실천이 이루어지고, 법의 지배가 실시되는 단계이다.


이 나선모델은 방법론적으로는 구성주의적 접근과 현실적으로는 1970년대 이후 영향력이 빠르게 증가한 국제인권체제를 두 개의 축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여러 케이스 연구에 의해서 뒷받침되고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국제인권규범이 개별 국가에서 내재화되는 과정에서 대한 연구의 출발점이 삼을 수 있을 것이다.3) 그러나 이 모델이 방법론적으로 결함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 중에서도 다음 두 가지의 비판이 중국의 사례를 연구하는 데 중요하게 고려될 것이다.


우선, 나선모델의 특징은 이행과정에서 물리적 요인보다는 규범적 요인을 더욱 중요하게 보고 있는 점이다(Risse and Ropp, 1999, 236). 예를 들면 인권규범의 위반으로 비판을 받는 국가가 전술적 양보의 단계에서 규범적 지위를 확보하는 단계로 이전하는 과정에서 ‘수사의 덫’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설명한다(Risse and Sikkink, 1999, 29). 이는 규범과 정체성 등의 인지적 측면을 핵심적 독립변수로 보는 구성주의적 접근의 필연적 결과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특징은 당연히 합리주의, 혹은 현실주의적 이론들로부터 계속 도전을 받고 있다.


예를 들어 와크먼(Alan M. Wachman)은 중국정부가 국내외의 현실적 요인에 합리적 계산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에 국제인권규범을 앞세운 외부의 도덕적 압력이 중국정부의 주권 우위의 원칙을 포기시키지 못했다고 주장하였다(Wachman, 2001, 275-276). 쉬바르쯔(Rolf Schwarz)는 국가행위의 변화는 합리적이고 효용극대화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전술적 양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비판을 받는 국가의 재정적, 경제적 취약성이라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전술적 양보의 가능성이 높은 국가는 그들의 재정적 수립의 상당 부분을 외부에서 획득하며 정치적 기능이 상당 정도 ‘지대(rent)’로 분류할 수 있는 외부 수입 획득에 의존하는 ‘ 대의존 국가(rentier states)’고 주장하였다(Schwarz, 2004, 208).


여기서 과연 국가의 인권규범에 대한 태도의 변화를 촉진하는 요인으로 물리적 이익이 더 중요한가 아니면 행위의 적절성을 규정하는 규범이 더욱 중요한가라는 문제가 제기된다. 그런데 개별 사례에 대한 연구에는 이를 반드시 양자택일적 문제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는 상당 부분 개별 국가의 상황에 따라서 판단될 문제이고 따라서 연구의 초점은 대상이 되고 있는 국가의 경우 어떤 요인이 더욱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는가를 규명하고, 이러한 설명이 다른 국가들에게는 어떤 함의를 갖는가를 분명하게 하는 것이다. 본 연구는 중국 내에서 인권규범의 확산이 이루어지고 있는 각 단계에서 어떤 요인이 어떤 이유로 중요하게 작용하는가를 규명하고자 하며 이 문제에 대해 어떤 선험적인 전제를 가지고 분석을 진행하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나선모델이 국가를 피동적 행위자로 간주하는 것도 방법론적 비판의 대상이 된다. 나선모델이라는 정의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이 모델이 국제인권규범의 확산을 단선적인 발전과정만으로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이 모델도 각 단계에서 역진될 가능성, 혹은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을 가능성을 인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내부의 무장한 반대세력이 있는 경우 2단계에서 3단계의 진전이 어렵다고 본다(Risse and Sikkink, 1999, 23). 그러나 이러한 이행은 중단되기보다는 연기되는 것으로 본다(Risse and Sikkink, 1999, 26)는 점에서 이행을 상대적으로 낙관하고 있다.4) 그 이유는 이 모델이 변화를 설명하는 데 국제인권체제의 역할, 특히 초국적 인권네트워크를 주요 동력으로 보며 국가는 이들의 압력에 저항하지만 결국은 끌려갈 수밖에 없는 피동적 행위자로 보는 것과 관련이 있다.


그러나 “인권규범을 위반하는 국가를 통해 인권규범을 관철시켜야 하는” 국제인권체제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 딜레마를 고려하면(Donnelly, 2007, 283)) 국가라는 요인을 더욱 적극적으로 모델에 도입할 필요가 있다. 특히 중국의 경우, 정치체제, 역사, 규모 등을 고려하면 국가의 역할을 빼놓고는 인권규범의 확산을 효과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국가의 역할을 중요한 독립변수로 삼아 중국 내에서 인권규범의 확산과 그 한계를 살펴볼 것이다.


3. 개혁개방 이후 중국 인권상황의 변화 - 강한 상대주의에서 약한 상대주의로의 전환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인권상황은 적지 않게 개선되었다. 문제는 이러한 개선의 정도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이다. 앰네스티 인터네셔널(Amnesty International) 등 국제인권NGO는 중국의 인권상황이 여전히 국제적 기준과 거리가 멀다고 비판하고 있으며 중국정부는 여러 차례 인권관련 백서를 발간하여 중국의 인권상황이 크게 발전하였으며 중국인민들의 권리가 폭넓게 보장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5) 이러한 양자의 대립에는 윤리적 기준과 현실적 기준 등이 복잡하게 얽혀있어 중국의 인권현황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어렵게 만든다. 나선모델은 중국 인권의 변화가 어떤 단계에 도달하였으며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가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제공해준다. 중국의 인권상황이 어떤 단계에 도달했는지에 대한 결론을 내리기 이전에 먼저 개혁개방 이후 중국 인권상황의 변화를 객관적으로 살펴보자.


중국의 인권상황의 변화는 먼저 국제인권체제와 중국정부의 관계의 변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관계의 변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국제인권조약 가입 상황이다. 중국은 1982년부터 UN인권언위원회의 회원국이 되었으며 그 이후 국제인권규약을 비준하기 시작하였는데 <표1>은 현재까지 중국이 서명하거나 비준한 국제인권규약의 현황을 보여준다. 중국정부의 국제인권조약 가입은 크게 두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단계는 개혁개방 이후 UN 인권위원회의 회원국으로 가입한 이후 국제인권조약에 적극적으로 가입한 시기이다. 이 시기의 가장 중요한 진전은 <고문 및 그 밖의 잔혹한, 비인간적인 또는 굴욕적인 대우나 처벌의 방지에 관한 협약>이다. 중국정부는 인권선언과 국제인권체제의 권리장전으로 분류되는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이하 사회권 규약), 1998년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이하 자유권 규약)에 가입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89년 천안문사태로 그 진전이 중단되었다. 둘째 단계는 1997년과 1998년 각각 사회권 규약과 자유권 규약에 서명한 이후의 시기에다. 사회권 규약은 2001년 비준절차가 완료되어 효력을 발휘하기 시작하였으며 자유권 규약은 아직 비준이 미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변화는 중국정부가 국제인권규범의 보편성을 수용하기 시작하였음을 의미한다.


물론 이러한 태도의 변화가 국제인권규범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정부는 UN헌장 2조에서 UN의 내정 간섭을 금지한 조항을 인권기준을 준수하라는 요구에 대해 주권 우선의 원칙을 내세울 수 있는 근거로 활용하고 있다(Kent, 1999, 38). 이러한 입장은 1989년 천안문사태 이후 인권문제를 둘러싼 마찰이 심화되면서 더욱 분명하게 제시되었다. 그러나 주권 우위의 원칙으로 국제인권규범을 부인하는 것은 점차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이다. 외부적으로는 냉전체제 붕괴 이후 국제사회에서 인권규범의 지위가 더욱 강화되었다. 그리고 중국정부의 행위도 인권문제와 관련하여 점차 그러한 주관과 국제인권규범의 엄격한 경계가 유지되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UN 인권위원회에 가입한 것, 보고절차를 의무화한는 고문방지관련 협약에 가입한 것, 그리고 중국정부가 미국 인권문제에 대한 비판을 가하기 시작한 것 등은 모두 그 원래의 의도와는 달리 개별 국가의 인권문제가 국제적 공론장의 의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중국정부가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Foot, 2000, 259).


중국 국내에서의 인권규범의 확산은 우선 법적인 측면에서 찾아볼 수 있다.6) 가장 대표적인 변화로 1979년 제정된 형법을 1997년 수정하여 개인의 신체의 자유에 대한 보장을 더욱 강화한 것이다. 개정형법에서 죄형법정주의, 형법적용평등, 죄책형(罪責刑)상응 이라는 세 가지를 형법의 원칙으로 제시한 것이 이전 형법보다 진전된 것으로 평가를 받았다(孫在雍․趙秉志, 2003). 또한 개인의 재산권 보장도 2007년 물권법이 제정되는 등 크게 강화되었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2004년 수정된 헌법에 “인권을 존중하고 보호한다”는 구절이 삽입된 것이다. 이로써 중국에서 인권규범은대외적인 수사를 넘어서 대내적으로 국민들이 인권을 국가에 대해 자신의 권리의 정당성을 옹호하는 도구로 사용할 수 있는 수준으로 발전하였다.


이러한 변화를 필자는 중국정부의 인권규범에 대한 태도가 강한 상대주의에서 약한상대주의로 전환한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강한 상대주의는 이념, 문화에 대한 토대론(fundamentalism)적 인식에 입각하여 인권에 대하여 상대주의적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전통적인 마르크스레닌주의, 이슬람 근본주의가 이에 해당되며 사실상 인권이라는 개념의 긍정성을 부정한다.



<표1> 중국의 국제인권조약 가입 현황





자료: http://www2.ohchr.org/english/bodies/ratification/index.htm(2008.7.30 검색)


약한 상대주의는 인권의 보편성을 인정하고 인권의 핵심적 원리를 수용하지만, 이를 국가체제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원리가 아니라 다른 원칙들과 경쟁하는 원리 혹은 부차적인 원리로서만 인정하는 것이다. 이 경우 인권에 대한 제약은 특정한 신념, 가치를 전제로 하는 토대주의(foundationalism)적 기준이 아니라 국가안보, 발전 등의 실용주의적 기준에 따른다(이남주. 2007, 318-322). 현재 중국 인권담론의 특징을 발전주의적(developmentalist approach) 인권관이라고 지칭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Foot, 2000, 4). 그리고 이는 단지 법적인 혹은 인식상의 변화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 내에서 인권을 둘러싼 상호작용에 새로운 동력을 제공하고 있으며 중국 인권상황을 개선하는 데 실질적인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첫째, 중국에서 계속 진행되고 있는 법․제도 개혁에서 인권이라는 원칙이 반영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최근 노동법 개정과 물권법 제정 과정에서 나타나듯이 법률제정과 법의 실행은 이제 정부의 의도에 따라 하향식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집단적, 개인적 이해관계가 반영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2003년 3월 순즈강(孫志剛) 사건이 이러한 변화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이다. 이는 순즈강이라는 청년이 유랑인 수용소에서 경찰의 구타로 사망한 사건인데, 인터넷에서 인권을 무시하는 경찰에 대한 비판이 확대되면서 사회문제로 되었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도시 유랑자 수용 및 송환규정‘의 위헌심사 청원서가 제출되는 등의 정부에 대한 압력이 강화되고, 결국 2003년 6월 중국정부는 관련법규를 폐지하였다.


둘째, 시민들에게 자신들이 이해와 요구를 정당화시킬 수 수단을 제공하였다. 즉 중국에서는 최근 집단행동이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는데 이는 사회문제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중국 시민들이 집단행동에 참여할 수 있는 논리와 수단들을 많이 개발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런데 국가와 사회 사이의 힘의 균형이 국가에 기울어져 있는 상황에서 중국에서는 이러한 집단행동은 체제저항적인 논리보다는 국가에 의해 정당화될 수 있는 논리를 동원하는 경우가 많다.7) 헌법에 인권존중이 명시된 것인 자신의 권리를 확보하기 위goto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규범적 지렛대를 제공한 것이다.


물론 중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인권상황의 변화가 국제적 기준에 미치는 못하는 현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앰네스티 인터네셔날은 2008년 중국 인권관련 보고에서는 중국의 인권문제로 다음과 같은 것을 제시하였다(http://www.amnestyusa.org/annualreport.php?id=ar&yr=2008&c=CHN)


3.1.1.1.1. 사형: 재판의 공개성 부족, 사형선고 가능한 좌목이 지나치게 많음


3.1.1.1.2. 사법체계: 고문 사례


3.1.1.1.3. 인권옹호 변호사에 대한 탄압(사찰, 연금, 정체불명인에 의한 폭행)


3.1.1.1.4. 표현의 자유: 보도 내용에 대한 통제, 기자들에 대한 체포 및 구금


3.1.1.1.5. 여성에 대한 차별(취업, 교육, 의료보험 등)과 폭력(가정폭력과 납치)


3.1.1.1.6. 종교그룹에 대한 억압: 티벳 불교, 지하 기독교, 파룬공에 대한 탄압


3.1.1.1.7. 신강, 위구르 등의 소수민족에 대한 억압; 비폭력적 문화, 종교적 활동에 대한 억압


3.1.1.1.8. 탈북자, 홍콩에서 직선제제 연기, 동성애자들에 대한 차별, 난민신청자들에 대한 부당한 대우


위의 목록들은 주로 자유권 규약 위반과 관련된 것으로 중국에서 인권의 존중을 위해 해결되어야할 문제인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 문제들이 어떻게 해결되느냐에 따라 중국의 인권상황이 나선모델에 제시하는 5단계 ‘규범에 부합하는 행위‘가 이루어지는 단계로 발전할 수 있는가의 여부가 좌우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지금까지의 변화를 보면 중국은 이미 전술적 양보 단계를 지나 인권이라는 가치가 규범적 지위를 확보하는 단계에 가가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풋(Rosemary Foot)은 이미 2000년도 중국에서 규범적 지위를 확보하는 단계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평가한 바 있다(Foot, 2000, 257). 이후 사회권 규약의 비준과 국내법의 정비 등을 고려하면 중국의 인권상황이 그보다 더 진전된 단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중국이 과연 규범적 지위 단계로의 진전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지속시키고 5단계로의 진입을 얼마나 빨리 앞당길 수 있는가라고 할 수 있다.


아래에서 중국에서 인권규범의 확산과정을 각각 국제인권체제와 중국정부 사이의 상호작용, 중국 내에서 인권규범의 내재화로 나누어 각 단계의 변화를 촉진한 요인들을 살펴볼 것이다. 이 두 단계는 각각 나선모델의 3단계와 4단계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4. 국제인권체제와 중국정부의 상호작용 - 전술적 양보 단계로의 진전


4장에서는 국제인권체제가 중국정부의 인권에 대한 태도를 어느 정도로 변화시켰으며 어떤 수단이 효과적이었는가를 설명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국제인권체제가 중국정부의 인권에 대한 태도를 변화시키는 데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과 커다란 영향을 발휘하지 못하였다는 두 개의 상반된 주장이 있다. 국제인권체제가 개별국가에 영향을 미치는 수단은 크게 물리적 제재와 도덕적 압력으로 나눌 수 있다.8)


중국은 1989년 천안문사태 직후에 서방국가로부터 물리적 제재를 받았다. 그런데 현실주의적 접근들은 이러한 제재가 중국정부의 인권에 대한 태도를 변화시키는 데 전혀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사실 천안문 직후 중국의 경제제재를 위한 국제공조는 조기에 무너졌기 때문에 별다른 분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물리적 제재와 관련하여 관심을 끈 것은 1993년 클린턴행정부가 중국의 인권문제 개선과 최혜국대우(MFN) 연장과 연계시키려는 정책이었다. 그러나 클린턴행정부는 중국의 인권상황에 커다란 진전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1994년 5월 이러한 연계정책을 포기하였다.


이에 대해 디트머(Lowell Dittmer)는 인권이라는 이상주의적(idealist) 목표에 현실주의적(realist) 수단을 사용하는 것은 성공적 결과를 얻기가 어렵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경제제제의 효과를 가로막는 요인들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들었다(Dittmer, 2001, 433-434). 우선 제재 주체들이 상당한 비용을 감수해야한다. 둘째, 제재를 받는 국가에서 인권을 억압하는 사람들보다 인권을 박탈당한 사람들에게 더욱 큰 피해를 준다. 셋째, 국제사회의 통일적 행동이 이루어져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무임승차를 한 행위자에게만 유리한 결과를 가져온다. 클린턴행정부는 내부에서 중국에서 상업적 이익을 추구하는 이익집단으로부터의 압력에 직면하였고, 외부적으로는 인권 이외의 영역(핵확산방지 등)에서 미국의 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해서는 중국의 협력을 필요로 하였기 때문에 연계정책이 일관되게 실시되는 처음부터 힘든 것이었다. 게다가 미국으로서는 중국에 대한 경제제재에서 국제공조가 이루어질 수 없는 상황에서 미국만의 제재가 중국에 대해 압력이 되지 못하고 미국의 이익만을 감소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는 중국과 같이 국제사회에 대해 상당한 협상력(bargaining power)를 가지고 있는 국가에 대해 제재와 같은 수단을 사용하여 인권문제의 개선을 이끌어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국제인권체제는 중국정부의 인권규범에 대한 태도를 변화시키는 데 큰 의미를 갖지 못하였는가. 그렇지는 않다.


이에 대해 디트머도 인권문제라는 이상주의적 목표에 대해 현실주의적 수단을 사용하는 것에는 회의적이지만 이상주의적 수단(국제여론의 동원, 보편적 규범에 대한 호소, 공공외교 등)을 사용하는 것은 긍정적으로 보았다. 다만 그는 이러한 수단이 단기적으로 효과를 발휘하기에는 너무 약하며 어떤 실질적이고 구조적인 효과를 낳기 위해서는 커다란 인내심이 필요하다로 보았다(Dittmer, 2001, 459). 반면 나선모델 등 구성주의적 접근을 하는 경우에는 규범에 대한 호소가 실질적인 효과를 발휘할 가능성에 대해 더 낙관적이다.


이러한 경우에 해당되는 것이 ‘창피주기(shaming)’이다. 중국에 대한 물리적 제재는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1994년을 전후로 종결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1990년 3월 제46차 UN 인권위원회 총회에서 미국이 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의 국가와 함께 중국정부의 인권정책을 비판하고 인권상황 개선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제출한 이후 서국국가들이 거의 매년 UN 인권위원회 총회에 중국의 인권상황을 비판하는 결의안을 제출하는 방식으로 중국정부를 압박하였다. 이러한 결의안의 제출에 대해 중국은 특정국가의 인권상황을 비판하는 결의안은 내정간섭을 금지하는 UN헌장 위반이라고 주장하며 UN 회의에 의제로서 상정될 수 없다는 “비행동동의안(No Action Motion)”을 제출하는 것으로 대응하였다. 이에 따라 매년 UN 인권위원회 총회에서는 중국 인권문제를 둘러싼 치열한 공방전이 진행되었다.


<표2> UN 인권위원회에서 중국의 비행동동의안에 대한 표결상황





자료: http://www.unhchr.ch/html/menu2/2/chr.htm(2004년 12월 1일 검색)의 매 총회의 기록을 기초로 필자가 정리.


중국에 대한 압력이 가장 강화된 시기는 1995년이다. <표2>가 보여주듯이 1995년은 중국의 비행동동의안이 부결되고 중국 인권문제에 대한 결의안이 총회에 상정된 유일한 경우였다.9) 비록 결의안은 반대 21, 찬성 20, 기권12로 부결되었지만 유엔이 인권 문제를 이유로 특정 국가의 내정간섭을 할 수 없다는 중국 정부의 일관된 주장에는 커다란 타격을 주었다.10) 그러나 1995년을 지나면서 중국의 비행동동의안은 더욱 많은 지지를 받기 시작하였고 2000년대 들어서는 중국의 인권상황을 비판하는 결의안을 상정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졌다. 이러한 전환에는 1997년부터 EU국가들이 중국 인권문제를 둘러싼 공방전에서의 공동보조를 취하는 것을 중단하고 점차 다자무대보다는 중국과의 쌍무대화를 중국 인권문제를 다루는 주요 통로로 삼시 시작한 것이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특히 1998년 2월 EU는 중국 인권문제를 비판하는 결의안 상정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 이후 EU 국가들은 쌍무적 인권대화를 중국 인권문제를 논의하는 주요 통로로 삼기 시작하였는데 베이커(Phillip Baker)는 중국에 대한 효과적인 압력수단을 포기한 결과를 초래했다고 비판하였다Baker, 2002, 62).


EU 국가들의 태도전환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상업적 이익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는 점은 공통적으로 지적된다. 예를 들면 에어버스 사업을 공동으로 추진하던 프랑스, 스페인, 독일, 그리스 등이 중국의 에어버스 구매를 고려하여 중국 인권문제에 대한 태도를 변화시켰다는 비판을 받았다(Baker, 2002, 56). 이는 중국과 같은 많은 대응수단을 가지고 있는 국가에 국제공조가 유지되기 힘들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그러나 1997년까지 창피주기 전술은 일정한 효과를 거두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와크먼은 창피주기 전술에 대해서도 회의적으로 평가하였다. 그는 중국에 대한 창피주기에 중국 지도부들이 도덕적 수치심보다는 ‘분노감’을 느끼게 만들었고, 중국정부는 인권 문제에 대해 더욱 강경한 태도를 취하도록 만들었다고 주장하였다. 그 결과 중국정부는 국내에서 중국에 대한 위협 혹은 중국적 문화가치의 쇠퇴에 대한 애국주의적 반응을 강화시키는 방식을 대응하였는데, 중국공산당 통치에 반대하는 세력이 약한 상황에서 창피주기 전술이 성공하기 어려웠다고 결론을 내렸다(Wachman, 2001, 274).


그러나 이러한 평가는 중국정부의 인권규범에 대한 태도가 1997년을 전후로 크게 변화하였다는 점을 간과하는 것이다. 1997년 5월 16일 장쩌민 국가 주석은 프랑스 시라크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발표한 공동성명에 “인권 보호와 촉진은 유엔 헌장의 정신과 원칙 그리고 인권의 보편성에 기초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었는데 중국이 외국 정상과의 공동성명에 인권문제에 대한 합의를 포함시킨 첫 번째 사례이다. 장쩌민은 또한 1997년 10월 30일 클린턴과의 정상 회담을 위해 미국을 방문하던 중 아시아소사이어티에 참석하여 한 연설에서 인권의 발전은 점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강조하면서도 “집단적인 권리와 개인적인 권리,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와 시민적․정치적 권리는 서로 나누어질 수 없는 것이다”라고 밝혔다(Foot, 2000, 213). 그리고 1997년 10월과 1998년 10월에 각각 국제 인권의 핵심적인 원칙을 담고 있는 사회권 규약과 자유권 규약에 서명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일종의 전술적 양보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는데, 중국정부가 천안문사태 이후 반대세력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국내의 아래로부터의 압력의 결과로 보기는 힘들다. 이러한 변화에 대해서는 중국정부가 자신들의 정한 프로그램에 따라 인권정책을 변화시켰다거나 국제적 압력이 효과를 발휘하였다는 두 가지의 해석이 가능하다. 이 두 가지의 요인들이 각각 어느 정도의 역할을 하였는지를 분명하게 하기는 어렵지만, 중국의 양보가 UN 인권위원회에서의 공방전이 가장 치열하게 진행되던 시기, 특히 UN 인권위원회 총회를 앞두거나 중미정상회담을 앞둔 시기에 집중되었다는 점은 중국이 국제사회의 비판을 부담으로 느끼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규범이 정부의 행위에 영향을 미친다는 나선모델의 타당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반응은 무조건적인 것이 아니라 이러한 반응을 유발하는 내재적 요인들이 있었다. 중국정부가 국제인권규범을 무시할 수 없었던 것에는 다음의 두 가지 요인이 중요하게 작용하였다. 첫째, 중국은 개혁개방정책을 시작한 이후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서 참여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 하였으며 실제로 국제사회의 참여를 통해 경제적 측면에서 많은 이득을 누리고 있었던 국가이다. 둘째, 중국은 UN 상임이사국의 일원으로 UU이 주도하여 만든 국제규범을 무시할 수 없는 국가이다. 특히 자신의 성장에 대한 외부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책임을 지는 대국’으로 자신의 이미지를 만들어가려고 하는 중국에게는 물질적 제재를 동반하지 않더라도 국제규범을 위반하는 국가로 비쳐지는 것이 매우 커다란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즉 중국은 물질적 축면과 규범적 측면 모두에서 이러한 창피주기에 부담을 느끼고 이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요인이 결여되어있거나 다른 내재적 요인들을 가지고 있지 않는 한 국제인권체제의 도덕적 압력만으로 개별국가의 태도를 변화시키는 데에는 커다란 한계가 있을 것이다.


요약하면 국제인권체제의 압력은 중국 인권상황의 전술적 양보 단계로의 이행을 촉진시켰다고 할 수 있으며, 이러한 효과는 중국정부가 국제사회에서의 국제사회의 비판을 민감하게 받아들 수 있었던 요인을 가지고 있었던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전술적 양보에서 인권의 가치가 규범적 지위를 확보하는 단계로의 이행과정에서는 그 양상이 크게 달라진다.


5. 중국 내에서 인권규범의 내재화(internalization)와 한계


나선모델에서는 전술적 양보 단계에서 국가는 인권규범의 보편성을 전제로 하는 언설체계에 빠져들게 되고, 이는 다시 초국적 인권네트워크와 국내의 반대세력이 더욱 긴밀하게 연결될 수 있게 만들어 다음 단계로의 이행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든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중국의 경우 1997년부터 전술적 양보가 본격화되었다고 한다면 현재 10년이 지난 시점까지도 국내의 반대세력이 강화되거나, 국내의 반대세력이 초국적 인권네트워크와 결합되는 현상을 나타나지 않고 있다. 즉 나선모델의 예측이 아직 실현될 조짐이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이러한 상황이 단기간 내에 변화될 가능성도 낮아 보인다.


우선 국제사회에서 중국 인권문제는 계속 의제로는 제기되기 있지만 그 압력의 정도는 크게 낮아졌다. 서구 국가들의 중국 인권문제에 대한 태도는 문제가 나타나는 경우 구두로 개입하는 정도에 머물러 있으며 중국에게 압력이 될 수 있는 어떤 실질적인 수단도 동원하지 않는다. 올해 3월 발생한 티베트사건으로부터 올림픽 개막에 이르기까지 서구 국가들의 태도가 이러한 양상을 잘 보여준다. 티베트에서 유혈충돌이 발생했을 때만 하여도 중국 인권문제에 강도 높게 개입할 것처럼 보였던 서구국가들이 어떤 실질적인 수단을 동원하지 않았고 올림픽이 개막되는 시점에서 티베트 문제는 더 이상 중국과 서구 국가들 사이의 관계에서 중요한 의제로 다루어지지 않았다.


반면 국제NGO들은 중국의 인권을 계속 문제로 삼고 있으나 물리적으로는 물론이고 도덕적으로도 중국에 커다란 타격을 주지 못하고 있다. 중국정부는 무엇보다도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기초로 억압적 국가로서의 이미지를 상쇄시킬 수 있는 많은 수단을 가지고 있다. 즉 국제NGO들의 비판이 주로 정치 및 시민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과 관련된 사항들을 문제로 삼는 반면, 중국정부는 생존권과 발전권이라는 국제인권규범의 또 다른 내용들을 자신들의 인권보호의 실적으로 내세우고 있다.


마지막으로 국제인권체제 혹은 국제인권규범이 중국 내 반대세력을 강화시키는 데 직접적인 효과가 거의 없다는 점도 분명해졌다. 1997년과 1998년 중국정부가 사회권과 자유권 규약에 서명을 하였을 때 이를 계기로 국내의 반대세력이 강화될 수 있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1998년 중국 내 반체제인사들은 클린턴의 중국 방문을 앞둔 시점에서 ‘중국민주당’ 건설을 시도한 것이 그러한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다. 그런데 중국정부는 중국민주당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주요 관련자를 체포하는 강경책으로 대응하였다. 2006년 8월 미국으로 추방된 인사들을 중심으로 중국민주당 제1차 당대회가 개최되는 등 이들의 활동은 계속되고 있으나 그 양상은 나선모델이 예측한 중국 내에서 반대세력의 강화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위의 추세들은 국제인권체제의 작용만으로 중국 내에서 인권규범을 확산시키는 것은 어렵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는 나선모델의 3단계를 지나 4, 5단계로 진입하는 과정은 이 모델이 전망하는 것보다는 더욱 복잡한 과정을 거치는 것이며, 국내적 요인 특히 국가의 역할을 주요 독립변수로 삼아 이 과정을 분석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두 가지의 문제가 제기된다, 과연 중국은 3단계를 지나 4단계로 진입할 수 있는 객관적 조건을 가지고 있는가? 그렇다면 중국이 4단계로 진입을 촉진할 수 있는 주요 동력은 어디에 있는가?


첫째 문제와 관련하여 쉬바르쯔는 나선모델에 대해 3단계의 마지막 국면에서 민주적 체제전환이 발생하여야만 4단계로 이행할 수 있다는 내용이 보완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는데(Schwarz, 2004, 206), 그의 주장에 따르면 위의 결과는 당연한 것이다. 즉 중국의 정치체제가 민주적 체제로의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중국의 인권상황에 4단계로 진입할 수 없는 것이다. 사실 나선모델에서도 이러한 측면을 완전히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나선모델도 민주적 체제로의 전환이 4,5단계로 발전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경로라고 보았으나, 그밖에 ‘통제된 자유화(controlled liberalization)’를 통해서도 4단계로 진입할 수 있다고 보았다는 점에서 4단계로의 이행 경로를 더 폭넓게 설정하는 차이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차이는 중국의 경우에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쉬바르쯔의 논리를 따르면 중국은 4단계로의 이행을 위한 조건을 결여하고 있는 것이고, 나선모델에서는 명시적으로 인정한 것은 아니지만 중국과 같은 경우도 체제의 근본적 전환이 없이도 인권상황이 개선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양자의 모델 모두 앞의 국제인권규범의 개별 국가에 대한 영향에 대한 설명에서 지적되었던 것과 비슷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쉬바르쯔의 모델은 인권상황의 변화를 지나치게 물질적 조건과 연결시키고 규범의 영향력을 무시하는 문제점이 있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중국의 경우는 전술적 양보를 넘어서는 진전이 있었으며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3단계와 4단계 사이의 체제전환이라는 문턱이 존재한다고는 볼 수 없다. 그리고 나선모델의 경우는 다른 경로가 출현할 가능성을 제시하나 이러한 가능성이 어떤 상황에서 나타날 수 있는지를 설명하지 않고 있다. 이는 이 모델이 초국적 네트워크의 적극적 역할 이외에 이러한 변화를 촉진할 수 있는 국내적 변수 등 다른 변수, 특히 국가를 고려하지 않는 데서 비롯된 문제로 보인다. 중국의 경우는 4단계로의 진전이 단순히 초국적 네크워크의 영향으로 해석하기는 어렵다. 2004년 헌법개정 등은 중국의 인권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력이 약화되던 시기에 이루어진 것이며 이는 중국 내에 인권문제를 변화시키는 독자적 동력이 존재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여기서 두 번째 문제에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 과연 중국 내에서 인권상황을 변화시키는 동력은 무엇인가?


중국 내에서 인권문제가 부상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경제적 변화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근대화이론의 정당성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근대화이론은 경제성장 및 소득수준의 증가 - 중산층의 형성 - 민주화라는 틀로 인권문제의 진전을 설명한다. 그러나 중국에서 인권을 둘러싼 상호작용은 이러한 단선적 발전을 따르지 않는다. 그보다는 경제성장을 촉진하기 위해 시도된 시장화 개혁이 중국 내에서 계층분화와 계층 사이의 갈등을 촉발시키면서 중국정부 인권문제에 대한 새로운 태도를 취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고 있다.


과거 사회주의체제에서는 개인은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국가에 완전히 종속되어 있는 대신에 국가의 개인들의 안정적 생활을 보장해주었다. 그러나 시장화 개혁은 개인들이 시장에서 자신의 생존을 위한 자원을 획득하도록 만들었으며, 따라서 이들의 경쟁에 참여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경제, 사회적 권리를 보장해주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특히 취약계층의 경우는 시장화 과정에서 권력과 유착된 세력에게 자신들의 재산권 등을 빼앗기는 등 개인권리를 심각하게 침해당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러한 조치가 시급하게 요구되었다.


또한 중국에서 중국공산당과 중국정부의 통치정당성 문제도 국내에서 인권규범의 확산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즉 중국은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를 내세우고 있으며 중국공산당은 전체 인민의 이익을 대표하는 정당이라는 이념을 내세워 집권당의 지위를 확보하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중국정부는 인민에 대한 약탈자가 아니라 인민의 권익을 보호한다는 이미지를 유지시킬 수 있는 실질적 조치를 필요로 한다. 이는 사회주의 이념이 비록 잔여적 존재로서의 전락하고 있지만 여전히 중국에서는 유의미한 역할을 하는 측면이기도 하다.


이러한 요인들이 비록 불완전하고 한계가 많지만 중국 내에서 인권규범을 확산시키는 주요 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동력이 중국의 인권상황을 4단계를 넘어서 5단계로 진입시킬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사실 인권영역에서 규범과 일치하는 행위관습이 정착되기 위해서는 정치체제가 민주적이고 개방적 방향으로 변화되어야 한다는 점은 국제인권규범의 확산과 관련한 모든 연구가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사실이다. 그러나 중국 내 인권규범은 현실주의적 접근이나 구성주의적 접근이 예측하는 것보다는 정치사회 영역에서 더욱 복잡한 상호작용을 유발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는 있다. 그리고 이러한 상호작용에 주목할 경우 인권규범은 단지 정치체제 변화의 종속변수가 아니라 정치체제의 변화를 촉진시킬 수 있는 독립변수로서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최근 확산되는 아래로부터의 집단행동들이 이러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장기적으로 보면 이러한 변화의 폭과 속도는 아래로부터의 사회적 압력과 지배연합의 대응방식에 따라서 좌우될 것이다. 다만 현재 인권상황과 관련하여 중국이 4단계로 진입한 성과를 더욱 공공하게 하고 5단계로 진입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이는가의 여부를 판단하는 지표의 하나로 자유권 규약의 비준시기와 비준방법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국 내 인권관련 연구자들은 자유권 조약의 비준이 비교적 적극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처음으로 자유권 규약의 비준과 관련한 구체적 제안을 제시한 천광중(陳光中)은 중국 국내적으로 많은 준비가 필요하기 때문에 서두를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지나치게 늦출 경우 인권의 향상과 국제사회에서의 활동에 불리한 영향을 주기 때문에 비준을 위한 준비를 적극적으로 전개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陳光中, 2002, 505). 국제인권조약과 중국 국내법 사이의 관계를 연구해온 모지홍(莫紀宏)은 2010년 중국특색의 사회주의 법률체계를 초보적으로 구축한다는 목표를 고려하면 2010년까지 이 규약의 비준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구체적인 제안을 하기도 하였다(莫紀宏, 2005, 265).


<표3> 자유권 규약의 서명에서 비준까지 10년 이상 소요된 국가






<표3>은 자유권 조약을 비준한 162개 국가들 가운데 서명에서 비준까지 10년 이상이 걸린 국가들의 목록이다. 사실 서멍에서 비준가지 10년 정도의 기간이 걸리는 것은 아주 이례적인 것은 아니다. 선진국들 중에서도 법이 매우 엄격하고 구체적이기 때문에 국제규약과 국내법의 관련 규정들을 일치시키기 위한 정비를 위해 서명에서 비준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예가 적지 않다. 그러나 <표3>은 그 기간이 10년 이상 소요되는 것은 이례적이며 그 대부분이(캄보디아와 미국을 제외한)의 경우가 자유권 규약이 발효되기 이전에 서명한 국가들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따라서 올해로 자유권 규약에 서명한 지 10년이 지나고 있는 중국이 비준을 위한 구체적인 작업을 진행시키지 않는다면 앞으로 비준을 요구하는 압력이 더욱 증가할 것이다.






자료: http://www2.ohchr.org/english/bodies/ratification/4.htm


만약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중국정부가 4-5년 내에 자유권 조약이 추진한다면 그 내용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많은 나라가 규약을 비준하고 현실에서는 인권에 대한 침해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규약의 비준 자체가 인권보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차지하는 특수한 지위와 내부적으로 권리의식의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중국정부의 자유권 규약 비준이 중국의 인권상황에 새로운 역동성을 불어넣을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중국정부의 자유권 비준에 대한 신중한 태도도 이를 단순히 형식적으로만 보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반증해주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자유권 규약과 현재 중국의 국내법과 정치체제 사이의 충돌이 있기 때문에 중국은 자유권 규약을 비준할 경우 사회권 규약보다는 더욱 많은 유보 혹은 해석성 선언이 필요할 것인데 중국정부가 그 범위를 어떻게 정할 것인가이다.11) 천광중의 경우는 자유권 규약과 중국의 국내법 사이에는 커다란 충돌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고 일부 부분적 조정을 통해서만 비준이 가능하다고 본다. 그러나 이는 자유권의 내용을 지나치게 확대해석한 결과이며 국제적 기준에 부합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반면 모지홍은 자유권과 국내법 사이의 구체적인 측면에서 적지 않은 충돌이 있다고 보고 비준 시 이를 더욱 신중하게 고려할 것을 제한하고 유보, 선언이 필요한 부분을 비교적 상세하게 정리하였다.12) 다음 <표4>는 두 사람의 비준 시 유보, 선언 및 국내법의 개정이 필요한 부분을 정리한 것이다.


이 방안에 따라 비준이 진행된다면 개인의 신체의 자유 등과 관련한 권리, 그리고 사법절차에서 개인의 변호권과 권리를 침해받을 경우의 항의 및 배상 절차 등과 관련한 영역에서는 인권보장이 강화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반면 집회 및 결사의 자유와 표현에 자유에 대해서는 국내의 관련 법규를 통한 제약이 계속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에 비준 자체가 이 영역의 권리보호에 직접적인 효과가 크지는 않을 것이다. 이 역시 현 체제 내에서도 인권보호가 증진될 수 있는 여지와 가능성이 있다는 점과 동시에 중국 내에서 국제인권규범이 관습화되기 위해서는 정치체제가 더욱 개방적 방향으로의 개혁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점을 동시에 보여주는 것이다.


<표4> 천광중과 모지홍의 자유권 규약 방안 비교





자료: 陳光中(2002; 503-523), 莫紀宏(2005; 263-336)에 기초하여 필자가 정리


6. 결론


위에서는 중국을 사례로 국제인권규범의 국내적 확산과정을 살펴보았다. 여기서는 중국도 국제인권체제와의 상호작용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국제인권규범의 보편성을 원칙적으로 수용하기 시작하였음과 중국 국내에서도 인권상황에 매우 동태적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변화를 통해 우리는 국제인권규범의 확산과 관련하여 다음 몇 가지의 함의를 찾을 수 있다.


우선 기존 모델에 대한 함의이다. 본 연구는 나선모델을 연구의 출밤점으로 삼았다. 그리고 이 모델이 예측하는 것처럼 국제인권규범이 중국정부의 인권에


대한 태도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는 두 가지 측면에서의 보완이 필요하다.


첫째, 중국에서 전술적 양보 단계로의 이행은 초국적 인권네트워크의 영향이 중요하게 작용한 것은 사실이지만 동시에 초국적 인권네트워크의 역할만으로 중국정부의 태도변화를 설명하기 힘들다. 중국정부의 태도변화는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차지하고 있는 특수한 지위와 이미 매우 높은 수준으로 진행된 경제개방 및 그로부터 획득할 수 있는 이익을 고려할 때 더욱 잘 설명될 수 있다.


둘째, 중국에서 인권의 동학은 전술적 단계를 넘어서면서부터는 5단계 모델이 예측하고 있는 것처럼 초국적 인권네트워크보다는 중국 내부의 변화요인이 더욱 중요하게 작용한다.


따라서 5단계 모델을 국내적 변수, 특히 국가가 갖는 정체성을 더욱 충분하게 고려하여야 개별 국가에서 진행되는 인권규범의 확산 메커니즘을 잘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국제인권규범의 확산에서 개벌 국가는 피동적 수용자가 아니며 이들의 대응방식에는 커다란 편차가 존재한다. 따라서 국제인권규범의 확산을 위해서는 개별 국가가 이러한 규범의 확산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조건을 더욱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이러한 조건들을 만들어내기 위한 노력도 병행할 필요가 있다.










또한 실천적인 측면에서 보면 중국의 사례는 정치체제의 개혁이 없이도 인권규범의 확산이 진행될 수 있다는 사실과 그 한계를 모두 보여준다. 즉 중국의 사례는 쉬바르쯔처럼 전술적 양보단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체제전환이 필요하다는 주장과는 달리 정치체제의 근본적 전환이 없이도 4단계로 진입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물론 4단계의 정착과 5단계로의 발전을 위해서는 정치체제의 전환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여기에는 선택의 문제가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인권보호의 초기단계부터 체제전환이 이루어진다면 그 과정이 지속적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체제전환의 가능성이 낮은 경우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제기된다. 즉 국제사회는 제한된 조건 내에서의 인권증진을 수용하며 인권증진을 장기적 과정으로 보며 대응할 것인가, 아니면 더욱 근본적인 변화를 위한 압박을 강화할 것인가라는 선택이 제기된다. 중국의 경우는 일단 전자의 경로로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이러한 진행을 변화시킬 수 있는 동력이 외부로부터 주어질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앞으로 중국 인권상황의 변화속도는 국제체제의 압력보다는 내부의 변화요인들 사이의 상호작용에 의해 좌우될 것이다. 중국은 국제인권규범의 영향력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孫在雍․趙秉志. 한상돈 역. 2003.「중국의 형법 개혁과 인권보장」.『비교형사법연구』 제5권 제2호. pp.995-1015.


이남주. 2007. 「중국 환경운동을 통해서 본 인권담론의 발전과 특징」. 『동향과전망』 총70호(2007년 여름호). pp.314-342.


최지영. 2005. 「주권과 인권: 인권담론을 통해서 본 중국 주권에 대한 인식연구」. 『中蘇硏究』. 104호(2004/2005). pp. 65-92.






陳光中 主編. 2002. 『<公民權利和政治權利國際公約>批准與實施問題硏究』. 中國法制出版社.


莫紀宏. 2005. 『國際人權公約與中國』. 世界知識出版社.






Baker, Phillip. 2002. “Human Rights, Europe and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China Quarterly Number 169(march 2002). pp.-45-63.


Dittmer, Lowell. 2001. "Chinese Human Rights and American Foreign Policy: A Realist Approach". The Review of Politics Vol. 63. No. 3(Summer 2001). pp. 421-459.


Donnelly Jack. 2007. "The relative university of Human Rights".Human Rights quarterly Vol.20 No.2. pp.281-306.


Foot, Rosemary. 2000. Rights Beyond Borders: The Global Community and the Struggle over Human Rights in China . New York, NY; Oxford University Press.


Ann Kent. 1999. China, the United Nations, and Human Lights: the Limit of Compliance. Philadelphia, PN: University of Pennsylvania Press.


Risse, Thomas and Kathryn Sikkink. 1999. "The Socialization of International Human Rights Norms into Domestic practices: Introduction". Thomas Risse, Stephen C. Ropp, and Kathryn Sikkink ed. The Power of Human Rights: International Norms and Domestic Change. New York, NY: Cambridge University Press. pp. 1-38.


O'Brien, J. Kevin and Lianjiang Li. 2006. Rightful Resistance in Rural China. New York, NY: Cambridge University Press.


Risse, Thomas and Stephen C. <
링크 #1 http://www.koreapeace.or.kr/modules/forum/forum_download.html?ff_no=296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