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08

et cetera 이명영(李命英), 金日成 列傳의 간삼봉 전투와 김인욱(金仁旭) 소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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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회고록의 간삼봉 전투 기록이 바로 그가 가짜라는 결정적 증거
김인욱 (金仁旭, 1892- ?) 소좌


이명영(李命英, 1928-2000) 교수는 김일성 열전(1974)에서 보천보 사건에 이은 간삼봉 전투에 대해 아래와 같이 언급하고 있는데, 전투상황에 대해서는 대체로 일본측 기록을 따라서 일본측이 승리한 전투인 것처럼 기술하고 있다. 1974년 당시는 북한에서도 이에 관한 특별한 주장을 내놓기 전이며, 그런 것이 있었다해도 남한에서 구해 볼 수도 없던 시절이라 다른 참고할만한 자료가 없던 때였음을 감안해야 한다. 김일성 회고록등 오늘날 나와있는 북한측 자료는 전과를 터무니 없이 부풀려 놓았기 때문에 그대로 믿을 수 없기는 마찬가지이지만, 그렇다고 당시의 일본 측 기록대로 일본군이 승리했다고 보기는 어려운 정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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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천보 사건은 1937년 6월 4일 밤에 일어났고, 간삼봉 전투는 며칠 후인 6월 30일에 벌어졌다.

이명영(李命英, 1928-2000.06.20), 金日成列傳 - 그 傳說과 神話의 眞相糾明을 위한 硏究 (新文化社, 1974)

第四章 東北抗日聯軍과 在滿韓人祖國光復會

第四節 第六師長 金日成과 普天堡事件
[pp.261~264] ... 大川 경부의 목격에 의하면 제六師 부대의 복장은 日本軍과 똑 같았다고 한다[40] 이들이 普天堡 주재소 앞에 나타났을 때 목격한 사람들도 日本軍의 국경수비대인줄 알았을 정도였다. 당시 惠山鎭 수비대 대장은 栗田대위였으며 第一九師團(羅南) 제七四연대(咸興) 소속이었다. 普天堡 사건이 나자 七四연대에서는 金仁旭 少佐를 惠山鎭 수비대장으로 파견했다. 金少佐는 日本陸士 二七기(一九一五년 五월 졸업) 尹相弼, 白洪錫, 金錫源, 南宇鉉 등등 二三명의 韓人들과 동기였던 사람이다.

長白縣 오지 산악지대로 철수해 갔던 제六師는 咸北茂山방면에 출동했다가 철수해온 崔賢 소속의 제四師 부대와 합류, 三백명 가량의 병력으로 六월 하순 長白縣 一三道溝(新乫坡 대안)로부터 또 다시 국경지대를 습격코자 움직이기 시작했다. 金仁旭 少佐의 惠山鎭 수비대는 六월 二九일에 행동을 개시, 二隊로 나누어 新乫坡 對岸으로 진출했는데 三○일 새벽에 富應洞 근처에서 쌍방 조우, 맹렬한 교전이 벌어졌다. 이 전투에서 抗日聯軍 측은 시체 五○여구를 남긴채 후퇴했으며 金少佐 부대에는 전사 五명, 중상 五명, 경상 七명이란 사상자가 생겼다.[41]
北韓에서는 이 제六師 및 제四師의 연합부대와 金仁旭 少佐부대와의 교전을 金聖柱와 金錫源少佐부대와의 교전으로 바꾸어 놓고 있다. 즉 咸興聯隊(七四연대) 소속 金錫源이 金日成부대를 토벌하기 위해 咸興을 떠날 때 그는 壯行會까지 받으며 金日成의 목을 베어오겠다고 했으나 거꾸로 전멸을 당하고 金錫源도 부상을 당했다는 것이 北韓측의 선전이다[42]. 그리고 그 金日成이 金聖柱라는 주장이다. 이 金日成은 제六師長인 것이며 金聖柱가 아닐 뿐 아니라 金錫源은 당시 같은 少佐로서 龍山연대에 속해 있었다. 咸興聯隊에 있은 것은 金仁旭 少佐였다.

北韓에서는 저들의 항일 투쟁사를 날조하기 위해 日帝측 자료를 세심히 참고했는데 그렇다면 왜 金仁旭을 金錫源으로 바꾸어 놓았는가. 당시 제六師 金日成 부대를 공격하러 간 것은 咸興聯隊에 있던 金少佐라고만 알려졌었다. 신문에도 金少佐라고만 보도되었다. 그만큼 金錫源은 알려졌었고 金仁旭은 잘 알려지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도 年老한 함경도지방 사람들에게 물으면 普天堡 사건이 나서 金日成 부대를 토벌하러 간 것은 金錫源인 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北韓에서는 日帝자료로 金仁旭이 토벌에 나갔던 것을 알면서도 민중들이 金錫源인 줄 알고 있으니 저들 주장의 신빙성을 민중의 그릇된 인식에 맞추어 높이기 위해 金仁旭을 金錫源으로 바꾸어 놓음을 서슴지 않고 있는 것이다.

[pp.263~264] 金仁旭은 咸興聯隊에 배치되기 전에 李垠의 侍從武官으로 있은 일이 있다. 비록 日帝의 장교로 있었으나 민족적 감정을 감추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一九四五년 四월에 中佐로 예편되고 말았다. 고향인 平壤에서 해방을 맞아 日帝의 고급 장교였다는 죄로 蘇聯에 끌려가 우즈베크에서 복역중이었는데 六.二五 후 소식이 없다.

[40] ㄱ. 朝日新聞 一九三七年 六月 二二日字 記事
ㄴ. 大川修一 證言 (一九七一年 二月 東京 郊外에 살고 있는 大川은 筆者와의 면담에서 당시의 상황에 관해 흥미로운 많은 證言을 해주었다.)

[41] ㄱ. 朝日新聞 一九三七年 七月 二日字 記事
ㄴ. 咸南警察部 前揭書 [ 中國共産黨の 朝鮮內 抗日人民戰線結成及び 日支事變 後方攪亂事件 (一九三八年 初)] pp.151~152

[42] 白峯著 前揭書 [民族의 太陽 金日成將軍(平壤 1968)] pp.300~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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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五節 惠山事件과 金日成의 身元

[p.274] 또 하나의 소문은 제六師長 金日成은 日本 陸士 출신이라는 것이었는데 이 말은 金日成 부대를 추격하러 갔던 惠山鎭 守備隊長 金仁旭 少佐의 입에서 나왔다. 당시 甲山郡 同仁面長이었던 金相瀅씨(八四세, 서울 城北區 거주)는 金仁旭 少佐가 『金日成은 나의 日本 陸士 선배인데 이 양반이 어쩌다가 共匪가 되었는지 모르겠다』면서 『이번에 직접 만나서 귀순시켜야 하겠다』고 하는 말을 들었던 사람이다. 金仁旭은 長白縣에서 木材業을 하고 있던 今野라는 日本人이 사용하던 꾸리 수십명을 동원하여 사방으로 제六師長 金日成과의 접선을 모색했으나 헛일이었다. 金仁旭은 제六師長 金日成을 자기의 日本 陸士 四년 선배로서 三.一운동 직후 무장 항일투쟁에 나섰다가 근 一○년 동안 소식이 끊겼던 金日成장군(본명 金光瑞)인줄 착각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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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삼봉 전투 당시의 김인욱 소좌에 대해서 증언한 김상형(金相瀅)씨가 실제로 갑산군(甲山郡) 동인면장(同仁面長)을 지냈다는 것은 바로 간삼봉 전투 당시인 1937년 8월 21일자 동아일보 기사에서 확인된다. 이명영 교수가 김일성 열전에 수록한 위 김상형씨의 증언은 정확한 것으로 믿을만하다. 동아일보의 삼수(三水) 갑산(甲山) 혜산(惠山) 소개판 기사는 바로 보천보 사건을 보도한 동아일보 양일천(梁一泉) 혜산지국장이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
위 증언대로 김인욱 소좌는 6사장 김일성이 일본 육사 선배인 줄로 알고 꾸리들을 동원하여 김일성의 소재를 알아내어 직접 만나 귀순을 종용하였다. 다만 전투의 상대방을 미리 만났다는 것이 알려지면 좋을 것이 없으므로 일부러 못 만났다고 연막을 쳤기 때문에 김상형씨는 김소좌가 김일성을 만나는데 실패한 것으로 안 것이다. 극작가 오영진은 김인욱 소좌의 사위인 처남으로부터 당시 상황에 대한 김인욱 소좌의 생생한 이야기를 전해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오영진도 김인욱 소좌가 해방후 소련으로 끌려 갔다고 하였다. [북한 김일성이 보천보 사건 당사자가 아니라는 극작가 오영진(吳泳鎭)의 증언]

김상형(金相瀅)씨가 일제시대 갑산군(甲山郡) 동인면장(同仁面長)을 지냈다는 것은 아래 자료에 나온다.

직원록 자료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데이타베이스
金相瀅 : 지방관서>함경남도>부군도(府郡島)>갑산군 同仁面長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데이타베이스 직원록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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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水甲山 惠山紹介版 ; 紹介版 刊行에 際하야(惠山支局長 梁一泉) // 誠實一貫(성실일관) 道會議員(도회의원) 金相瀅氏(김상형씨) 동아일보 1937년 08월21일 5면
氏(씨)는咸南道會議員(함남도회의원)
十六年(십륙년)이란 長久(장구)한 歲月(세월)을 前同仁面長(전동인면장)으로 在職奉仕(재직봉사)하엿고 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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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郡郡民間에 五萬圓 醵出計劃 인가되는 날이면 내여노하 道當局 態度가 注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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