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 티처 - 제25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서수진 (지은이)
한겨레출판2020-07-28
미리보기
<코리안 티처> 20cm 아크릴 자
정가
13,800원
8.8 100자평(11)리뷰(1)
284쪽
150*210mm
393g
편집장의 선택
"2020 한겨레문학상, 여성이 선택한 여성서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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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 티처> 20cm 아크릴 자
정가
13,800원
8.8 100자평(11)리뷰(1)
284쪽
150*210mm
393g
편집장의 선택
"2020 한겨레문학상, 여성이 선택한 여성서사 "
심윤경, 최진영부터 최근의 강화길, 박서련까지, 믿고 읽을 만한 작가를 독자에게 소개해온 한겨레문학상의 2020년 수상작. 여성 심사위원이 선택한 여성의 이야기, 서수진 작가를 소개한다. K-유행을 타고 성업중인 한국어학원의 현실. 구체성 있는 묘사로 '고학력 비정규직 여성들의 일하는 이야기'를 통해 이 곳에서 일하며 살아남는 것에 대해 묻는다.
베트남의 한류열풍을 타고 H대 어학원은 공격적인 영업을 통해 학생을 유치한다. 공무원 시험 등 도전하는 모든 시험마다 실패해온 선이는 이번만큼은 '코리안 티처'인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싶다. 그래서 같은 수업의 베트남 학생이 자신의 사진을 찍었다는 사실을 알게된 후에도 신고를 두고 갈등한다. 정확한 수업을 추구하지만, 딱딱한 태도 때문에 늘 강의평가가 좋지 않아 언제든 계약 해지가 될 수 있는 상황에 놓인 미주. 어학원 내 유이한 지방대 출신이지만 '운이 좋아' 늘 강의 평가 1등을 유지하며, 평가가 나쁜 강사들은 운이 나쁘다고 생각하는 '순진한' 가은. 책임강사로 일하며 다른 강사들에게 갑질을 하는 것도, 어학원에서 갑질을 당하는 것도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한희. 밀려나지 않으려는 이들의 치열함은, 그저 다음 학기가 보장되지 않는 일자리만을 위한 것이라기엔 너무 절실하다. 봄 학기, 여름 학기, 가을 학기, 겨울 학기, 겨울 단기를 거치며 만나는 이 피로한 얼굴들은 자꾸만 어떤 질문들을 던진다. 등장 인물 한 명, 한 명의 과거와 현재를 촘촘하게 엮어 만든 단단한 이야기.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아무리 곱씹어도 잘못된 선택 때문에 이 자리에 놓인 이는 없어보인다. 소설가 최진영의 심사평처럼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나'를 묻는 소설인데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라는 질문이 내려 앉는다.
- 소설 MD 김효선 (2020.08.04)
출판사 제공 북트레일러
책소개
긴 시간 동안 독자들의 사랑을 받으며 매년 그 신뢰에 보답하고자 노력해온 한겨레문학상이 스물다섯 번째 수상작 <코리안 티처>를 출간했다. 심사위원 여덟 명의 단단한 지지를 받으며 선정된 수상작은, 한국어학당에서 일어나는 네 명의 여성 시간강사의 이야기를 담은 서수진 작가의 장편소설 <코리안 티처>다.
심사를 맡은 강영숙 소설가는 이 소설이 "고학력 여성들을 포함해 많은 여성들이 우리 사회에서 무언가가 되려고 하는 것을 아직도 막고 있지는 않은지" 질문하게 하는 소설이라고 평했고, 오혜진 평론가는 추천의 말을 통해 "충분한 인적·물적 여건과 체계적인 프로그램 없이 외국 유학생들을 마구잡이로 끌어들이는 '한국어학당'이라는 '현장'"을 핍진하게 그려냈다는 점과 "결코 '미래'를 약속하지 않으면서 '고객님'들을 위한다는 명분하에 비정규직 시간강사의 시간과 노동, 감정과 에너지를 마지막 한 알까지 쥐어짜내는 무저갱의 세계, 그런 세계조차 누군가에게는 절대 놓쳐서는 안 될 마지막 '가능성'으로 여겨지게 만드는 세계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에 주목했다고 밝혔다.
목차
봄 학기 7
여름 학기 69
가을 학기 131
겨울 학기 193
겨울 단기 261
작가의 말 273
추천의 말 276
책속에서
첫문장
봄 학기가 시작하기 사흘 전 선이는 캠퍼스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P. 52 게시글에는 37개의 댓글이 달려 있었다. 대부분 베트남어로 된 댓글이었는데 그중 영어로 달린 댓글이 3개 있었다. (…) 이 여자가 정말 예쁘냐고 비꼬는 댓글과 선생님이 되기엔 너무 예쁘다는 정반대의 댓글이 나란히 있었다. 마지막 댓글은 ‘씨발, 꼴리네’라고 번역해야 할 것이다. 선이는 ‘코리안핫걸’이라는 해시태그를 클릭해 같은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을 검색해보았다. 속옷만 걸치고 가슴을 드러낸 여자들의 사진이 쏟아졌다. 숨이 턱 하고 막히는 것 같았다. 말도 안 돼. 선이는 자신이 꽌에게 가르쳐주고 싶었던 단어, ‘부당하다’와 ‘모욕적이다’를 떠올렸다. 꽌 씨, 이건 부당해요. 이건 정말 모욕적이에요. 내게 이런 이름을 붙이지 마세요. 그리고 미주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렸다.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될 것 같아요.’ 접기
P. 91 미주는 대자보를 붙이고 나서 여전히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선배들과 동기의 눈을 한 명씩 맞추면서, 공개 사과 대자보가 옆에 붙기 전에는 자신의 대자보를 뗄 생각이 없다고 분명히 말했다. 옳다고 믿는 것을 위해 싸울 것. 포기하지 말 것. 그런 것들이 풍물패 활동을 하면서 배운 거라고 말했다. 풍물패에서 어떤 신념을 배우기에는 미주가 활동했던 기간이 너무 짧았다는 걸 지적하는 사람은 없었다. 접기
P. 104 한희는 지나치게 열심히 했다. 가장 일찍 출근하고 가장 늦게 퇴근했다. 타 대학 출신이라는 핸디캡을 노동시간으로 메꾸려는 것처럼 보였다. 미주는 한희가 외부에서 왔건, 내부에서 뽑혔건 상관하지 않았다. 한희가 얼마나 일을 열심히 하는지는 더더욱 신경 쓰지 않았다. 한희는 책임이었고, 미주는 평강사였다. 각자의 자리에서 할 일을 하면 그만이었다. 접기
P. 120~121 “다른 강사분들도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교육도 서비스입니다. 학생들이 돈을 내고, 여러분은 그 돈으로 일자리가 보장된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학생이 갑이고 여러분이 을입니다. 학생이 없으면 여러분은 여기서 일할 수도 없어요.”
미주는 안에서 치밀어 오르는 온갖 말을 간신히 삼켰다. 당신은 틀렸어. 우리는 정이야. 학생이 갑이고, 당신이 을이고, 바로 옆에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책임 강사들이 병이고, 나와 같은 평강사들은 정이야. 그러니까 당신이 강평으로 우리를 자르겠다고 위협하면서도 죄책감을 가지지 않는 거고, 여기 있는 강사들은 위협당하면 위협당하는 대로 당신 비위에 맞춰 멍청한 이야기만 하고 있는 거야. 나 역시 마찬가지고. 접기
P. 157~158 “그날 밤 침대에 누웠는데 갑자기 삐 하는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왜, 드라마를 보면 병원에서 사람이 죽을 때 기계에서 나는 소리 있잖아요. 그리고 모든 게 멈춘 거예요. 며칠을 누워만 있었어요. 면접 오라는 데도 못 가고. 병원에서는 우울증이래요. 우울하지는 않았는데.”
P. 158~159 “학교에서 잘린 게 스트레스가 컸나 봐요. 이해해요. 저도 그럴 것 같아요.”
“아뇨, 제 말은 왜 잘린지 모르겠다는 거예요. 뽑힐 때는 이유가 분명했거든요. 베트남 학생들이 들어와서 강사가 더 필요했던 거. 그런데 잘릴 때는 이유를 모르겠더라고요. 나는 정말 열심히 했는데. 학생들도 정말 좋아했는데. 왜 강의평가가 나빴던... 더보기
P. 221 이제 한희에게는 미래시제가 필요했다. 온전한 미래가 필요했다. 의지에도, 추측에도 기대지 않는 하나의 완전한 사실로 존재하는 미래가 필요해졌다.
P. 242~243 “월급을 못 드리면 그분들은 당장 생계가 어려워져요.”
원장은 한희와 제이콥이 그분들의 월급을 빼앗아간다는 듯이 말했다. 차가운 복도에서 한희와 제이콥은 원장의 삶이 얼마나 고된지 들어야 했고, 그들 셋을 합친 것보다 더 삶이 고된 이들에 대해 들어야 했다. 청소부는 집세가 밀렸고, 학원버스 운전기사는 자식들 학원을 모두 ... 더보기
P. 257 “H대 계약 끝나가잖아. 재계약이 어려울 것 같다고 네가 그랬잖아.”
“그러면.”
한희는 잠시 말을 멈추고 숨을 골랐다.
“재계약 안 되면 나 소송할 거야. 그래서 복직할 거고, 정규직으로 채용될 거야.”
“이기기 힘들 거라고 변호사가 그랬던 거 기억 안 나?”
“아니, 이기기 힘들 거라고 안 ... 더보기
P. 207 그러나 한희는 정말 시간이 없었고, 정말 힘이 들었다. E대에서는 수업을 하면서 박사과정을 들었다. 수업을 한 후 버스에서 김밥을 먹으면서 수업을 들으러 갔다. 왜 그렇게 열심히 일을 하냐고 물었던 사람들은 한희가 박사과정을 시작하자 박사까지 해서 뭘 하려는 거냐고 물었다. 그때도 한희는 자아실현 같은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댔지만... 더보기
추천글
고학력 여성들을 포함해 많은 여성들이 우리 사회에서 무언가가 되려고 하는 것을 아직도 막고 있지는 않은지, 이 소설을 통해 질문하게 된다.
- 강영숙 (소설가)
우리들의 일과 사랑은 어째서 이다지도 고단하고 불안하고 억울하며 처절하기까지 한 것일까.
- 서영인 (문학평론가)
《코리안 티처》는 구체성과 실감이 좋은 이야기를 만드는 데 얼마나 크게 기여하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소설이다.
- 편혜영 (소설가)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나’를 묻는 소설인데,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라는 질문이 내려앉는다.
- 최진영 (소설가)
개인 사이의 문제와 공동체 사회의 권력 관계를 능숙하게 넘나드는 점이 특히 흥미롭게 다가온다.
- 김유진 (소설가)
우리가 외면해선 안 될 이 나라의 진짜 모습을 가르쳐준다는 의미에서, K-자부심에 취해 있을지 모를 우리에게 때마침 찾아온 반가운 ‘코리안 티처’다.
- 신샛별 (문학평론가)
이 소설을 짧게 요약하라면 이렇게 말하겠다. 일하는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 장은정 (문학평론가)
만약 당신이 이 책을 다 읽었다면, 이제 우리는 모든 것이 잿더미로 변한 폐허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그게 필요하다.
- 오혜진
이 책을 추천한 다른 분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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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서수진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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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2020년 현재 호주에서 살고 있다.
수상 : 2020년 한겨레문학상
최근작 : <코리안 티처>
서수진(지은이)의 말
‘살아남는 것’에 대해 쓰고 싶었다.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것, 벼랑 끝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고군분투하는 것, 버텨내는 것, 끝내 살아남는 것.
소설을 쓰는 도중에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터졌다. 한국어학당의 규모가 크게 줄었고, 수많은 강사가 일자리를 잃었다. 나 역시 호주에서 수업이 모두 취소되거나 무기한 연장되면서 실직 상태가 되었다. 벼랑 끝에서 소설을 쓰는 기분이었다.
이 소설은 살아남았다. 이 소설이 살아남았다는 것이, 지금 이 순간에도 삶을 간신히 버텨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가닿아 위로를 주었으면 좋겠다.
출판사 제공 책소개
강영숙 김유진 서영인 신샛별 오혜진 장은정 최진영 편혜영
전원 여성 심사위원이 뽑은 새로운 여성 서사
*
한국어학당에서 일어나는 여성 시간강사 네 명의 이야기
긴 시간 동안 독자들의 사랑을 받으며 매년 그 신뢰에 보답하고자 노력해온 한겨레문학상이 스물다섯 번째 수상작 《코리안 티처》를 출간했다.
심윤경의 《나의 아름다운 정원》, 윤고은의 《무중력 증후군》, 최진영의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정아은의 《모던 하트》, 강화길의 《다른 사람》, 박서련의 《체공녀 강주룡》 등 한국소설을 이끌어가는 많은 작가를 배출해온 한겨레문학상은 비록 수상작을 내지 못했지만 처음으로 전원 여성 심사위원을 위촉했던 제24회 한겨레문학상에 이어, 이번 제25회 한겨레문학상에서도 심사위원 전원을 여성 작가로 위촉해 시대의 흐름을 읽어낸 작품을 선정하고자 노력했다.
심사위원 여덟 명의 단단한 지지를 받으며 선정된 수상작은, 한국어학당에서 일어나는 네 명의 여성 시간강사의 이야기를 담은 서수진 작가의 장편소설 《코리안 티처》다. 심사를 맡은 강영숙 소설가는 이 소설이 “고학력 여성들을 포함해 많은 여성들이 우리 사회에서 무언가가 되려고 하는 것을 아직도 막고 있지는 않은지” 질문하게 하는 소설이라고 평했고, 오혜진 평론가는 추천의 말을 통해 “충분한 인적·물적 여건과 체계적인 프로그램 없이 외국 유학생들을 마구잡이로 끌어들이는 ‘한국어학당’이라는 ‘현장’”을 핍진하게 그려냈다는 점과 “결코 ‘미래’를 약속하지 않으면서 ‘고객님’들을 위한다는 명분하에 비정규직 시간강사의 시간과 노동, 감정과 에너지를 마지막 한 알까지 쥐어짜내는 무저갱의 세계, 그런 세계조차 누군가에게는 절대 놓쳐서는 안 될 마지막 ‘가능성’으로 여겨지게 만드는 세계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에 주목했다고 밝혔다. 현재 호주에 거주 중인 작가는 코로나19로 인해 시상식 불참을 알려왔다. 한겨레문학상 수상자 중 재해로 인해 시상식에 참여하지 못한 건 서수진 작가가 최초다. 이번 제25회 한겨레문학상은 수상 소식 고지에서부터 신문사 인터뷰, 책 홍보 등 모든 것이 다 랜선으로 진행되고 있다.
“우리에게는 미래시제가 필요하다. 온전한 미래가”
《코리안 티처》는 한국어학당에서 일하는 네 명의 한국어 선생님 선이, 미주, 가은, 한희의 이야기다. 5부로 구성된 소설은 학기마다 한 명의 주인공이 화자가 되어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1부 봄 학기는 ‘선이’의 이야기다. 석사를 마치고 7급 공무원을 준비하던 선이는 한국어 강사 국가고시로 방향을 틀어 만점에 가까운 점수로 합격한다. 원서를 쓰는 곳마다 번번이 떨어지던 선이는 H대 어학당에 겨우 합격해 베트남 특별반을 맡게 된다. 하지만, 얼마 뒤 자신이 맡은 반 학생인 꽌의 인스타그램에서 #KoreanHotGirl 이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자신의 사진이 버젓이 올라온 것을 보고는 놀라 책임 강사 한희에게로 향한다.
선이는 숨을 고르고 바로 수업에 돌입했다. 학생들에게 형용사를 가르쳐야 했다. ‘좋다’와 ‘나쁘다’를 가르치고, ‘많다’와 ‘적다’를 가르치고, ‘행복하다’와 ‘슬프다’를 가르쳐야 했다. 언젠가는 ‘정당하다’와 ‘부당하다’를, ‘감격스럽다’와 ‘모욕적이다’를 가르칠 수 있을 것이다. 선이는 학생들이 그런 단어를 배울 때 ‘부당하다’보다 ‘정당하다’가, ‘모욕적이다’보다 ‘감격스럽다’가 더 한국 생활에 유용한 단어라고 느끼기를 바랐다. _본문 중에서
2부 여름 학기는 ‘미주’의 이야기다. 미주는 H대 어학당 8년 차의 베테랑 강사다.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수업을 할 만큼 관습에 얽매이길 싫어하지만, 결코 학생들을 봐주는 법이 없기에 강의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한다. 이번 학기에서 2급을 맡게 된 미주는 세 번이나 유급을 한 벨라루스 국적의 학생 니카를 만나게 된다. 그를 꼭 3급으로 보내야겠다는 열의와 다르게 작은 오해가 그들의 관계를 망치게 되고, 미주는 결국 니카에게 고소를 당하고야 만다.
순간 목뒤가 서늘했다. 니카가 아직도 자신을 노려보는 것 같았다. 미주는 순간 니카를 향한 증오가 타오르는 것을 느꼈다. 니카가 도대체 왜 자신을 미워하는지 알 수 없었다. 미주는 니카의 유창한 한국어를 듣고 감탄했던 것을, 니카의 필기에 잘못 쓴 것이 없는지 살피고, 과제를 가장 먼저 챙겼던 것을 떠올렸다. 그 모든 순간을 돌이켜 니카를 방임하고, 잘못된 필기를 비웃고, 과제물을 집어 던지고 싶었다. 니카가 그랬듯이. 미주는 주먹을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도록 꽉 움켜쥐었다. 니카에게 잠시 품었던 선의의 마음, 기대감 같은 것이 주먹 안에 있어서 그것을 완전히 으깨버리려는 듯이. _본문 중에서
3부 가을 학기는 ‘가은’의 이야기다. 가은은 H대 어학당 2년 차의 신입 강사다. H대 어학당에서 단 두 명뿐인 지방대 출신이지만, 강의평가에서는 늘 1등을 하고, 학생에게 공개 고백을 받기도 하는 등 인기가 높다. 그런 가은에게 어느 날 ‘I saw your video’라는 문자 하나가 전달된다. 완벽하게만 보이던 가은에겐 무슨 비밀이 있었던 걸까?
가은은 강사실을 둘러보았다. 몇몇 강사가 눈이 마주치자 웃어 보였다. 왜 웃는 걸까? 동영상을 보았기 때문에? 몇몇 강사가 가은의 눈을 피했다. 왜 눈을 피하는 걸까? 알아버렸기 때문에?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걸까? _본문 중에서
4부 겨울 학기는 ‘한희’의 이야기다. 한희는 2년 전에 책임 강사로 H대 어학당에 들어왔고, 겨울 학기 이후 재계약을 앞두고 있다. “왜 그렇게까지 일을 하세요, 남편이 있는데”라는 소리까지 들으며 열심히 일했다. 이번에 계약 연장을 하면 무기계약직이 되었다. 모든 게 순조롭게 흘러갔다. 임신을 했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그리고 이야기는 다시 선이의 이야기로, 한국어학당 강사 모두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한희는 되갚아주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다만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점심도 못 먹고 일하는 사람도 있는데, 시간이 없다느니 힘들다느니 하는 건 다 핑계라고. 그러나 한희는 정말 시간이 없었고, 정말 힘이 들었다. E대에서는 수업을 하면서 박사과정을 들었다. 수업을 한 후 버스에서 김밥을 먹으면서 수업을 들으러 갔다. 왜 그렇게 열심히 일을 하냐고 물었던 사람들은 한희가 박사과정을 시작하자 박사까지 해서 뭘 하려는 거냐고 물었다. 그때도 한희는 자아실현 같은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댔지만, 여기서 살아남으려면 박사학위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H대 어학당만 봐도 50대 한국어 강사는 없었다. 박사학위와 책임 강사 경력으로 교수가 되어야 했다. 그게 아니면 아웃이다. _본문 중에서
고학력 비정규직 여성들의 일하는 이야기
《코리안 티처》에는 고학력 비정규직 여성 네 명의 이야기다. 하지만, 그냥 비정규직 여성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며, 결국에는 일하는 여성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소설 속 네 인물은 일을 하는 우리들의 여러 마음을 보여준다. 원장의 연설을 들으며 ‘까라면 까야지’라고 생각하며 어떻게든 오래 다니겠다고 결심하는 ‘선이’의 간절함도, ‘꼭 그렇게까지 해야겠니?’라는 동료들의 시선에도 매번 한국어학당의 관습에 맞서는 ‘미주’의 정의로움도, ‘착하다’는 말을 칭찬으로 받아들이고 모든 것을 ‘운’으로 돌리지만 그래서 타인의 불행 또한 ‘운이 없어서’라고 생각해버리는 ‘가은’의 순진함도, 한국어의 미래시제를 의심하며 갑질을 당하는 것에도 갑질을 하는 것에도 익숙한 ‘한희’의 치열함도 일터에서 일을 하는 우리 안에 모두 존재한다. ‘우리는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나’를 살펴보며 《코리안 티처》를 읽어나가던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너무도 열심히 살았던 네 명의 인물들이 저마다의 위기에 봉착하는 걸 지켜보면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라는 고민 앞에 서고 만다. “일의 존엄이 없는 곳에 사람의 존엄도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자는 서영인 평론가의 말은 그래서 더 아프게 다가온다. 그 어느 때보다 일하는 사람의 존엄에 대한 논의가 성숙한 지금이기에, 제25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인 《코리안 티처》가 바꾸어나갈 한국소설, 그리고 한국사회의 모습이 더욱 기대된다. 접기
8.8
구매자 (5)
전체 (11)
여성 작가가 썼고, 전원 여성 심사위원이 뽑았고, 주인공들도 모두 여자인 '여성 서사'의 소설을 기다려왔다고... 우리 모두 말하지 않았었나요? 제가 먼저 읽겠습니다.
day sleeper 2020-08-04 공감 (23) 댓글 (0)
Thanks to
한국어어학당에서 일어나는 비정규직 한국어 여강사 4명의 이야기이다. 작가의 실제 경험에서 우러나와서 그런지 인물의 묘사나 설명이 상세하게 그려져 가독성이 높다. 위태로운 4명의 각자 다른 사연과 배경을 가졌지만 한 곳을 향한다. 그것은 아직도 많이 바뀌어야 할 여성의 간절함의 이야기이다.
초판1쇄 2020-07-31 공감 (18) 댓글 (0)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은 언제나 만족스러웠다! 이번에도 기대중입니다
박치즈 2020-08-05 공감 (9) 댓글 (0)
(고학력) (비정규직) 여성들의 일하는 이야기. 일터에서 맞닥뜨릴 수 있는 다양한 상황들이 리얼하게 그려져 있다. 군더더기 없는 서술로 단숨에 읽힌다.
dudb 2020-08-05 공감 (9) 댓글 (0)
잘봤습니다
웬즈데이 2020-08-08 공감 (5) 댓글 (0)
마이리뷰
단순한 생존 목적이 아닌 일을 위하여
서수진 작가의 [코리안 티처]를 읽었다. 제25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이다. 마지막 저자의 말에서 이 소설을 쓰는 도중에 코로나 사태가 터져 한국어학당의 수많은 강사가 일자리를 잃게 되었고, 저자 역시 실직 상태가 되면서 벼랑 끝에서 소설을 쓰는 기분이었다고 말한다. 다행히 이 소설은 살아남았고, 이 어려운 순간에도 삶을 간신이 버텨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가닿아 위로를 주기를 바란다고 말한다(273).
이 소설은 명문 H 대 한국어학당에서 강사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네 명의 여성 선이, 미주, 가은, 한희의 이야기이다. 추천사에서 어느 작가가 언급했듯이 네 명의 주인공들이 이래서 옳고 저래서 잘못되었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상황을 묘사하며 서로의 관계를 언급한 부분이 더욱 공감되었다. 큰 대학에서 마치 장사를 하듯이 비자를 줄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학생들과 강사들의 갑을 관계를 조종하며 운영되는 모습은 그냥 소설 속에만 비춰진 상상속의 무대가 아니라 급속도의 경제발전으로 위상이 높아진 우리나라의 숨겨진 부패한 민낯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한 느낌이 들었다.
한국어학당의 이야기를 읽다보니 나도 외국어를 공부할 때 만났던 어학원 선생님들이 생각났다. 실비아, 마우리지오, 타마라. 6개월쯤 어학원을 다니자 어학원 선생님들이 하는 말을 대부분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학원 수업이 끝나고 밖으로 나오면 전쟁터였다. 예를 들어서, 어학원에서 배우기를 슈퍼에 가서 물건을 사고 봉투가 필요하면, ‘una busta, per favore’ 라고 말하면 된다고 배웠다. 그런데 며칠 후에 슈퍼에 갔더니 점원이 내게 먼저 물었다. ‘un sacchetto?’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싶어 멍하니 있었더니 내게 봉투를 내밀었다. 뭐야 내가 배운 말을 그게 아닌데. 또 다른 날 다른 점원은 ‘una borsa?’라고 물었다. 또 바보같이 서 있었더니 그 사람도 봉투를 내밀었다. 세상에 봉투를 사람마다 다른 단어로 사용하다니. 나중에 알고보니 각 나라의 언어마다 특징적으로 발달된 부분이 달랐다.
이 소설에서 언급된 이유를 말하기 위해서 사용되는 접미사가 무려 14개나 되었다. ‘-아/어서, -(으)니까, -더니, -(으)므로, -길래, -느라고, -(으)니, -(으)니만큼, -기 때문에, -는 바람에, -는 통에, -(으)ㄴ/는 탓에, -아/어 가지고, -아/어(172)’ 자세히 보니 모국어를 쓰는 우리들은 이런 말을 별 생각없이 자연스럽게 사용해왔다. 그런데 만일 외국인이 우리나라 말을 배우면서 14가지나 되는 이유를 말할 때 쓰는 문법을 외워야 한다면 정말 미칠 것 같을 것이다. 그리고 그 문법을 일상 대화에서 자연스럽게 사용한다는 것은 정말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한국어에는 왜 이유 문법이 많을까? 가은도 생각해본 적이 있었다. 한국 사람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이유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고 가은은 생각했다. 왜? 도대체 왜? 왜 그렇게 된 거야? 이유가 뭐야? 이유가 있을 거 아냐? 결과가 있으니 원인이 있는 게 당연하잖아? 끊임없이 묻고 대답하다 보니 이렇게 많은 이유 표현이 생겨난 거 아닐까. 결과 표현은 ‘-(으) ㄴ 결과’, ‘-(으)ㄴ 끝에’, ‘-(으)ㄴ 나머지’ 정도로 적은 걸 보면 정작 결과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결과는 하늘에 맡기겠다는 건가. 이미 벌어진 일에는 순응하면서도, 그 일의 이유는 끝까지 파고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언어.(173)”
“외국인 화자는 한국어 발음에서 거센소리와 된소리를 구별하기 어려워한다고 배웠다. ‘ㄱ,ㄷ,ㅂ,ㅈ’이 초성에 있는 경우 외국인 화자에게 ‘ㅋ,ㅌ,ㅍ,ㅊ’으로 들린다고 한다. 그래서 외국인들이 ‘감사합니다’를 ‘캄사합니다’라고 말하고, ‘김치’를 ‘킴치’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들의 귀에는 한국인이 ‘김치’를 말할 때 ‘킴치’라고 발음하는 것으로, ‘감사합니다’를 말할 때 ‘캄사합니다’라고 발음하는 것으로 들린다. 그래서 한국인이 ‘배트’를 말하면 외국인의 귀에는 ‘페트’라고 들리고 ‘조커’를 말하면 ‘초커’라고 들리는 것이다. 된소리를 구별하는 것은 더욱 어려워서 외국인 화자로서는 몇 년이 지나도 구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굴’과 ‘꿀’을 구별할 수 없고, ‘담’과 ‘땀’ 역시 똑같은 단어로 들린다. 세계에 존재하는 3000여 개의 언어 중에서 ‘ㅅ’과 ‘ㅆ’을 구별하는 것은 한국어와 아프리카계의 언어 하나뿐이라고 하니, ‘사다’와 ‘싸다’를 다른 뜻으로 말하는 건 엄청나게 특이한 일인 것이다.(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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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코루 2020-07-31 공감(8) 댓글(0)
25회 한겨레문학상에 서수진 <코리안 티처>
등록 :2020-05-27
외국인 가르치는 한국어학당 강사 4인의 이야기
“구체적이고 생생한 공간 구현…몰입도 높아”
서수진(사진)의 장편소설 <코리안 티처>가 3천만원 고료 제25회 한겨레문학상 당선작으로 뽑혔다. 소설가 강영숙·김유진·최진영·편혜영, 문학평론가 서영인·신샛별·오혜진·장은정 등 심사위원들은 지난 22일 오후 서울 마포구 신수동 한겨레출판 회의실에서 심사를 통해 이렇게 결정했다. 3월31일 공모를 마감한 제25회 한겨레문학상에는 모두 256편이 응모했다.
제25회 한겨레문학상 당선작 <코리안 티처>는 한 대학 한국어학당을 배경으로 그곳에서 외국인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여성 강사 네 사람의 이야기를 그린 소설이다. 심사위원들은 심사평에서 “한국어학당이라는 공간을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구현하면서, 그와 관계된 인물들이 풍부하게 등장하는 점이 장점으로 꼽혔다. 각 인물이 처한 서로 다른 상황과 그에 따른 내면이 가독성 높은 문장으로 드러나 있어 인물에 대한 감정이입이 용이하고 몰입도도 높았다”고 수상 사유를 들었다.
당선자 서수진은 이화여대 국문학과와 명지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으며, 2006년 이화여대 재학생을 대상으로 한 제1회 이화글빛문학상에 경장편 <꽃이 떨어지면>으로 당선했고 서울문화재단 웹진 <비유>와 문예지 <문학3> 등에 단편을 발표한 바 있다. 현재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그는 <한겨레>와 한 전자우편 인터뷰에서 “당선 축하 전화를 받고 엉엉 울 정도로 감격스러웠다”며 “이곳에서 접한 한국 이민자들의 삶에 대해 쓰고 싶고, 내 소설로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고 말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사진 서수진 제공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946646.html#csidxb56d17aab74025bbbba71cb08f13b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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