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관심 없다는 학생들 철원 접경지 오면 눈 반짝거려”
등록 :2022-03-07
강성만 기자
[짬] 국경선평화학교 정지석 대표
정지석 국경선평화학교 대표가 지난 28일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강성만 선임기자
“작년 12월 건축 모금을 시작했는데 벌써 300명 가까이 동참해 3억원 이상 모였어요. 국경선평화학교 ‘코리아피스컴’(www.borderpeaceschool.or.kr) 학교 건물이 문을 여는 내년 5월에는 기부자를 모두 초청해 비무장지대 철책을 따라 손을 잡고 노래도 부를 겁니다.”
정지석(62) 목사는 2013년 3월 접경지인 강원도 철원에 국경선평화학교를 열었다. 남북한 평화통일을 위해 생을 걸고 일할 ‘피스메이커’(평화운동가)를 키우고 싶어서였다. 그동안 20명 이상 평화운동가를 배출했고 3만명 가까운 청소년에게 평화통일 현장 교육을 했다.
한신대 신학대학원을 나온 정 목사는 30대 중반에 평화학 공부를 시작해 만 43살이던 2003년에 영국 선덜랜드 대학에서 ‘함석헌과 퀘이커 평화사상 비교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8년에는 아일랜드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북아일랜드 평화협상 연구로 석사 학위를 땄다.
내년 설립 10년인 국경선평화학교의 새로운 출발을 위해 민통선 근처 부지에 학교 건물을 짓고 있는 정 목사를 지난 28일 철원읍 한 카페에서 만났다.
왜 건축비 20억원을 들여 학교 건물을 짓는지 먼저 물었다. 국경선평화학교는 그동안 민간인통제구역에 있는 디엠제트 (DMZ)평화문화센터 등을 강원도로부터 빌려 활용해왔다. “학교는 3년 과정 평화운동가 교육 외에도 매년 3천명씩 청소년 대상으로 1박2일 평화통일 체험 교육을 했어요. 그런데 여기가 접경지대라 숙소나 식당 등 인프라가 부족해요.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이유가 가장 커요.” 이런 말도 했다. “요즘 아이들이 통일에 관심이 없다고 하잖아요. 하지만 분단 현실을 생생히 느낄 수 있는 접경지대에 오면 눈이 반짝반짝해요. ‘왜 저기는 못 가느냐’고 질문을 쏟아내죠. 아이들이 여기 와서 평화통일의 필요성을 깨닫고 갑니다. 그동안 어른들이 제대로 통일 교육을 하지 않고 아이들 탓만 했죠.”
청소년 50명이 묵을 수 있는 숙소 12실과 교실 3실, 도서실, 미디어 창작실 등으로 이뤄진 학교는 민통선에서 약 1km 떨어진 옛 식품공장 부지 600여평에 들어설 예정이다.
누가 기부 의사를 밝혔을까?
- “부친이 북 정권에 의해 순교당했으면서도 미국 노퍽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가르치며 북한 주민 돕기 운동을 해온 고 김동수 교수와
- 풀무원 농장 설립자인 고 원경선 선생 후손들과
- 한완상 전 통일부총리 등입니다.”
그는 “이라크전 참전 미군의 한국계 어머니로 현재 평화운동가로 활동하는 분도 이라크전에서 싸운 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진단을 받은 아들이 준 용돈 100만원을 건축 기금으로 보내왔다”고 전했다. “지난해 우리 학교를 1년 다닌 분입니다. 아들 목숨값인데 가치 있는 일에 써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시더군요.”
정 대표가 내년 준공 예정인 학교 부지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강성만 선임기자학교의 평화운동가 양성 과정은 3년이다. 지금껏 3년을 다 마친 수강생은 4명이고 1년 이상 수료자는 23명이란다. 지금은 10명이 등록해 줌으로 공부하고 있다. “우리 학교의 핵심 목표는 평화에 대한 신념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평화사상과 이론 공부를 하고 또 강원 고성에서 인천 강화까지 500km 접경지 전 구간을 3년 동안 도보로 횡단합니다. 독일과 베트남의 과거 분단 현장도 찾고요.”
그는 “접경지 철원에 학교를 세운 것은 남북 대립을 극복하고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분단 현장에서 몸과 감각으로 느끼며 우리 상황에 맞는 평화학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며 학교 커리큘럼 중 하나인 ‘디엠제트 평화학’을 소개했다. “디엠제트 형성과 변모를 다루고 디엠제트에 인접한 남북 마을의 정확한 실상을 연구하는 과목이죠. 디엠제트 지정학과 주민들 삶의 경험에 대한 학습은 언젠가 남북한 사람들이 섞여 살 때 소중하게 쓰일 겁니다. 석사 과정 때 북아일랜드에 가 보니 개신교와 가톨릭교도들이 적대적으로 대립하면서도 한 마을에 같이 살더군요. 남과 북이 지금이라도 디엠제트 인근 마을 몇 곳을 정해 주민들이 오가게 하고 학교 한두 곳에서도 같은 실험을 하면 좋겠어요.”
수료생 활동을 묻자 그는 “현직 환경운동가도 있고 지역협동조합 활동을 하다 캐나다로 평화학 유학을 떠난 이도 있다”고 했다. 현재 학교 사무국장으로 청소년 평화통일 교육에 힘쓰고 있는 전영숙 국장도 수료생이다.
10년째 철원서 평화운동가 교육
청소년 3만명 평화체험 교육도
내년 5월 준공 목표로 교사 신축
민통선 1km 근처 600평 부지에
“평화체험 학생들 숙소 용도 등
건축, 민의 평화운동으로 접근”
학교 교육이 한반도 평화의 길에서 의미 있는 성과로 연결된 사례도 있다. 아르헨티나 변호사 출신인 토마스 오헤아 퀸타나 유엔 북한 인권특별보고관은 지난해 10월 유엔총회에 제출한 20쪽 분량 북한 인권보고서에 ‘북한 내 종교가 남북 평화에 기여할 수 있는가’에 대한 국경선평화학교 쪽 의견을 1쪽 분량 담았다. 퀸타나 보고관은 지난달 중순 방한 기간에도 국경선평화학교를 찾아 대북전단 등에 대한 의견을 구했다. “재작년 학교 수업의 하나로 북한에 매우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던 퀸타나 보고관의 시각 교정을 위해 수강생들이 편지를 쓰기 시작했어요. 답이 없어 서울 유엔 인권사무소를 찾아 편지를 접수하자 바로 퀸타나 쪽에서 만나자고 하더군요. 그렇게 작년 5월 처음 퀸타나와 90분 이상 영상 대화를 했어요. 그때 우리가 접경지대 현실을 이야기했는데 퀸타나가 ‘잘 몰랐다’고 하더군요. 그 두 달 뒤 퀸타나가 우리에게 ‘북한 내 종교와 남북 평화의 관련성’에 대한 의견을 구했어요.”
지난달 19일 퀸타나를 만났을 때는 포르노 배우와 북한 지도자 부부를 합성한 대북전단 영상을 보여주며 이런 비도덕적 방식으로 북 정권을 규탄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단다. “퀸타나가 그 전단을 처음 봤다고 하더군요. 우리와 접촉한 뒤로 퀸타나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대북전단을 살포하는) 표현의 자유도 제삼자에게 피해를 주고 안보에 위해가 될 때는 제한할 수 있다는 쪽으로 선회했죠.”
1991년 목사 안수를 받고 노동자 대상 목회도 했던 그는 어떻게 평화에 생을 걸게 되었을까? “평신도로 기독교계 민주화와 통일 운동을 이끈 고 오재식 박사 영향이 큽니다. 오 선생이 크리스천 아카데미 사회교육원장을 하던 94년부터 3년 동안 제가 그분 아래서 부장으로 통일 교육을 담당했어요. 그때 오 선생이 ‘왜 통일하려고 하는지 아느냐? 바로 평화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 평화 담론이나 토론이 너무 부족하다’고 하더군요. 제가 평화학 공부를 결심한 가장 큰 배경이죠.”
국경선평화학교를 북쪽에도 열어 남북 학생들이 서로 오가게 하고 싶다는 정 목사는 10년 안에 남과 북 청소년이 국경선평화학교에서 만날 것으로 확신했다. “남한에 어떤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남북 평화에 대한 민의 깨어난 각성으로 남북 관계를 과거로 되돌리기는 힘들 겁니다. 이번 학교 건축도 민이 이끄는 평화운동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그는 학교 개교 2년 전인 2011년부터 의사인 아내와 함께 철원에서 살고 있다. 두 딸도 철원에서 중·고교를 나왔다. 신도가 10여 명인 작은 교회도 개척해 목회를 하고 있다. 철원 주민들의 학교에 대한 반응을 궁금해하자 그는 “주민이나 공무원 모두 좋아한다”고 했다. “처음엔 사상적 의심도 받았죠. 국경선이라는 말을 두고 철원 주민인 한 퇴역군인이 한반도와 부속 도서가 대한민국 영토라는 헌법 3조 위반이라고 관청에 민원에 넣기도 했어요. 진보 쪽에서는 국경선이라는 표현이 남북 관계를 고착화한다고 좋지 않게 봤어요. 하지만 저는 이런 생각으로는 남과 북이 평화로 갈 수 없다고 생각해요. 이미 남과 북이 유엔에 동시 가입했잖아요. 평화는 현실에서 시작합니다.”
지난 9년 학교 운영의 가장 큰 어려움을 묻자 그는 “공무원들의 무관심”이라고 답했다. “철원군에서는 지역 특성상 평화를 주제로 지역을 발전시키고 싶어합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 학교는 철원군의 평화 콘텐츠이죠. 하지만 공무원들은 정해진 틀에서만 움직이고 더 나아가려고 하지 않아요. 다른 공무원들은 몰라도 통일부나 접경지 지자체 공무원은 반드시 우리 학교에서 평화학 공부를 하면 좋겠어요.”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연재짬
정 대표가 내년 준공 예정인 학교 부지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강성만 선임기자학교의 평화운동가 양성 과정은 3년이다. 지금껏 3년을 다 마친 수강생은 4명이고 1년 이상 수료자는 23명이란다. 지금은 10명이 등록해 줌으로 공부하고 있다. “우리 학교의 핵심 목표는 평화에 대한 신념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평화사상과 이론 공부를 하고 또 강원 고성에서 인천 강화까지 500km 접경지 전 구간을 3년 동안 도보로 횡단합니다. 독일과 베트남의 과거 분단 현장도 찾고요.”
그는 “접경지 철원에 학교를 세운 것은 남북 대립을 극복하고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분단 현장에서 몸과 감각으로 느끼며 우리 상황에 맞는 평화학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며 학교 커리큘럼 중 하나인 ‘디엠제트 평화학’을 소개했다. “디엠제트 형성과 변모를 다루고 디엠제트에 인접한 남북 마을의 정확한 실상을 연구하는 과목이죠. 디엠제트 지정학과 주민들 삶의 경험에 대한 학습은 언젠가 남북한 사람들이 섞여 살 때 소중하게 쓰일 겁니다. 석사 과정 때 북아일랜드에 가 보니 개신교와 가톨릭교도들이 적대적으로 대립하면서도 한 마을에 같이 살더군요. 남과 북이 지금이라도 디엠제트 인근 마을 몇 곳을 정해 주민들이 오가게 하고 학교 한두 곳에서도 같은 실험을 하면 좋겠어요.”
수료생 활동을 묻자 그는 “현직 환경운동가도 있고 지역협동조합 활동을 하다 캐나다로 평화학 유학을 떠난 이도 있다”고 했다. 현재 학교 사무국장으로 청소년 평화통일 교육에 힘쓰고 있는 전영숙 국장도 수료생이다.
10년째 철원서 평화운동가 교육
청소년 3만명 평화체험 교육도
내년 5월 준공 목표로 교사 신축
민통선 1km 근처 600평 부지에
“평화체험 학생들 숙소 용도 등
건축, 민의 평화운동으로 접근”
학교 교육이 한반도 평화의 길에서 의미 있는 성과로 연결된 사례도 있다. 아르헨티나 변호사 출신인 토마스 오헤아 퀸타나 유엔 북한 인권특별보고관은 지난해 10월 유엔총회에 제출한 20쪽 분량 북한 인권보고서에 ‘북한 내 종교가 남북 평화에 기여할 수 있는가’에 대한 국경선평화학교 쪽 의견을 1쪽 분량 담았다. 퀸타나 보고관은 지난달 중순 방한 기간에도 국경선평화학교를 찾아 대북전단 등에 대한 의견을 구했다. “재작년 학교 수업의 하나로 북한에 매우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던 퀸타나 보고관의 시각 교정을 위해 수강생들이 편지를 쓰기 시작했어요. 답이 없어 서울 유엔 인권사무소를 찾아 편지를 접수하자 바로 퀸타나 쪽에서 만나자고 하더군요. 그렇게 작년 5월 처음 퀸타나와 90분 이상 영상 대화를 했어요. 그때 우리가 접경지대 현실을 이야기했는데 퀸타나가 ‘잘 몰랐다’고 하더군요. 그 두 달 뒤 퀸타나가 우리에게 ‘북한 내 종교와 남북 평화의 관련성’에 대한 의견을 구했어요.”
지난달 19일 퀸타나를 만났을 때는 포르노 배우와 북한 지도자 부부를 합성한 대북전단 영상을 보여주며 이런 비도덕적 방식으로 북 정권을 규탄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단다. “퀸타나가 그 전단을 처음 봤다고 하더군요. 우리와 접촉한 뒤로 퀸타나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대북전단을 살포하는) 표현의 자유도 제삼자에게 피해를 주고 안보에 위해가 될 때는 제한할 수 있다는 쪽으로 선회했죠.”
1991년 목사 안수를 받고 노동자 대상 목회도 했던 그는 어떻게 평화에 생을 걸게 되었을까? “평신도로 기독교계 민주화와 통일 운동을 이끈 고 오재식 박사 영향이 큽니다. 오 선생이 크리스천 아카데미 사회교육원장을 하던 94년부터 3년 동안 제가 그분 아래서 부장으로 통일 교육을 담당했어요. 그때 오 선생이 ‘왜 통일하려고 하는지 아느냐? 바로 평화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 평화 담론이나 토론이 너무 부족하다’고 하더군요. 제가 평화학 공부를 결심한 가장 큰 배경이죠.”
국경선평화학교를 북쪽에도 열어 남북 학생들이 서로 오가게 하고 싶다는 정 목사는 10년 안에 남과 북 청소년이 국경선평화학교에서 만날 것으로 확신했다. “남한에 어떤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남북 평화에 대한 민의 깨어난 각성으로 남북 관계를 과거로 되돌리기는 힘들 겁니다. 이번 학교 건축도 민이 이끄는 평화운동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그는 학교 개교 2년 전인 2011년부터 의사인 아내와 함께 철원에서 살고 있다. 두 딸도 철원에서 중·고교를 나왔다. 신도가 10여 명인 작은 교회도 개척해 목회를 하고 있다. 철원 주민들의 학교에 대한 반응을 궁금해하자 그는 “주민이나 공무원 모두 좋아한다”고 했다. “처음엔 사상적 의심도 받았죠. 국경선이라는 말을 두고 철원 주민인 한 퇴역군인이 한반도와 부속 도서가 대한민국 영토라는 헌법 3조 위반이라고 관청에 민원에 넣기도 했어요. 진보 쪽에서는 국경선이라는 표현이 남북 관계를 고착화한다고 좋지 않게 봤어요. 하지만 저는 이런 생각으로는 남과 북이 평화로 갈 수 없다고 생각해요. 이미 남과 북이 유엔에 동시 가입했잖아요. 평화는 현실에서 시작합니다.”
지난 9년 학교 운영의 가장 큰 어려움을 묻자 그는 “공무원들의 무관심”이라고 답했다. “철원군에서는 지역 특성상 평화를 주제로 지역을 발전시키고 싶어합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 학교는 철원군의 평화 콘텐츠이죠. 하지만 공무원들은 정해진 틀에서만 움직이고 더 나아가려고 하지 않아요. 다른 공무원들은 몰라도 통일부나 접경지 지자체 공무원은 반드시 우리 학교에서 평화학 공부를 하면 좋겠어요.”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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