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19

마광수 시대를 성찰하다 | 장석주.송희복 엮음 | 알라딘

마광수 시대를 성찰하다 | 장석주.송희복 엮음 | 알라딘


마광수 시대를 성찰하다 
장석주,송희복 (엮은이)글과마음2019-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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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100자평(0)리뷰(4)

204쪽
152*223mm (A5신)
390

책소개
한 시대의 사회적인 파문을 일으킨 작가 마광수에 관한 책이다. 그의 2주기를 즈음하여 장석주와 송희복 등의 비평가들이 마광수의 문학적인 성과 및 시대사적인 의미와 의의를 분석하고 평가하려고 하였다. 그의 문학적인 자취를 다양하고도 다면적인 각도에서 이해하고, 인식하고, 체계화하려고 했다. 이 책이 무엇보다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그의 문학이 한 시대의 쟁점으로서 오늘날에 어떻게 투사되고, 또 투영되고 있는지를 규명하고자 하는 데 있다.


목차


독자를 위하여 ● 4

제1부 인간론 및 유고집

야(野)한 인간, 마광수_장석주 ● 10
1. 또 다시 부르는 그 이름 | 2. 마광수와의 가상 인터뷰 | 3. 거칠 것 없는 자유의 삶

가버린 작가, 남은 유고집_송희복 ● 34
마광수 1주기에 부쳐
1. 프롤로그 : 오래된 일을 회상하다 | 2. 좋았던 시절에서, 선택한 죽음까지
3. 유고집 『추억마저 지우랴』를 읽다 | 4. 나르시시즘 인간상의 창조와 유산
5. 에필로그 : 자유를 진리로 인도하라


제2부 쾌락과 수난의 이중주

쾌락주의자 마광수 시의 몇 가지 흐름_이승하 ● 60
1. 프롤로그 : 시의 쾌락적 미학 | 2. 욕구가 충족되지 않는 자의 불만
3. 그의 시에 나타난 쾌락주의의 양상 | 4. 몸 사랑을 하지 못한 자의 죽음
5. 에필로그 : 육체성에의 한계

순교자에서 작가로, 외설에서 작품으로_최수웅 ● 93
마광수론
1. 그를 둘러싼 논쟁들 | 2. 사라를 이해하기 위하여 | 3. 리에와 사라 사이의 거리
4. 시대와의 불화, 혹은 낙오 | 5. 휘뚜루마뚜루 블랙리스트

2017 마광수 소설 다시 읽기_주지영 ● 107
1. 마광수라는 이름의 기표 | 2. 쓰기와 읽기의 공리 : 창작 욕망과 독자 공감의 함수관계 3. 배설로서의 창작과 관점으로서의 비평 사이의 길항
4. 마광수에게 빚진 것, 2017 이후의 성 담론

우리는 제2의 마광수의 죽음을 용인할 것인가_주지홍 ● 118
법학자의 관점에서 본 마광수를 위한 변호
1. 학창 시절, 마광수 교수님과의 만남 | 2. 「즐거운 사라」에 대한 처벌 옹호론 및 근거 | 3. 「즐거운 사라」에 대한 처벌 불가론 및 근거 | 4. 비판, 또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견해


제3부 시학・수필・비평

마광수의 시학에 대하여_고봉준 ● 130
‘상징’ 개념을 중심으로
1. ‘상징적 시각’의 문제 | 2. ‘상징시학’의 이론적 배경 | 3. ‘표현’으로서의 문학
4. ‘상징’으로 읽는 윤동주 | 5. 나가며 : 시어와 상징

이유 있는 급진성과 불온성_김효숙 ● 152
‘야(野)한 여자’ 심미론
1. 뚜껑 덮인 이중 사회를 열다 | 2. 견고한 부권제를 건드리다
3. 역사 전환기의 한국적 증상 | 4. 유일한 ‘몸’과 유일한 상상력

비평가 혹은 육체주의 사상가_송희복 ● 179
1. 인연과 관계성에 대해 | 2. 비평가 마광수의 발견 | 3. 몸이 머리를 지배하다
4. 되찾기의 과정에 지다
접기


책속에서


첫문장
2017년 9월 5일 오후 1시 51분, 마광수(1951~2017) 교수가 자택인 서울시 용산구 동부이촌동의 한 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8인의 저자들이 각각의 주제 의식을 지니고 다방면의 시각에서 마광수 문학의 전모를 조명하였다. 장석주는 마광수와 함께 법정의 수난을 겪었던 비평가이다. 그 당시의 사정과 문제의 핵심을 잘 알고 있다. 송희복은 두 편의 글을 통해 마광수의 비평가와 사상가로서의 면모를 잘 드러내고 있다. 이승하는 시인과 시학자로서 시인 마광수의 평가를 치우침 없이 평가했으며, 김효숙은 마광수의 산문 정신을 문화적인 맥락과 연결시키고 있으며, 그 밖의 논자들은 자신의 시각에 따라 마광수의 글과 삶을 다각도로 해석하고 있다. 접기
《마광수는 어쨌거나 저 세상으로 갔다. 스스로 선택한 죽음이다. 그의 죽음 역시 나르시시즘적인 성격이 부여되는 그런 죽음이다. 그는 《즐거운 사라》 사건 이후에 비탄, 무기력, 분노, 배신감, 우울증 등에 빠졌다. 스스로 고백한 바 있었거니와, 자기 검열로 인해 글도 잘 써지지 않았다고 했다. 그의 증상을 프로이트적인 이론에 따라서 이해해 본다면, 외부적인 힘에 의한 패배감의 형태를 취한 나르시시즘적인 환자의 실망감과 비슷하다. 크리스토퍼 라쉬는 나르시시스트가 젊음이 지나가면 자신을 지탱해줄 것이 아무 것도 없음을 알게 되며, 다만 자식들 속에서 대신 살아간다는 생각이 신체의 허약과 고독보다 더 괴로운 노령의 주된 슬픔, 즉 유기감(supersession)을 완화시켜준다고 했다.》 (송희복의 글에서) 접기
P. 17 나는 당신의 자살을 사회적 타살이라고 규정했다. 사회적 타살이란 말은 앙토냉 아르토라는 프랑스 작가가 빈센트 반 고흐의 죽음을 두고 한 말이다. 고흐는 자살했지만 사실은 사회적 타살이란 것이다. 고흐의 자살이나 21세기에 행해진 당신의 자살은 다를 바가 없다고 본다. - 새봄처럼
P. 4 [첫문장] 엮은이 우리는 이 책의 제목을 마광수 시대를 성찰하다로 정했다.
이 제목의 문장은 뜻 겹침의 의미로 사용되어 있다.
하나는 과거형이요, 또 하나는 현재형이다.
전자의 경우는 과거의 마광수가 자신의 시대를 성찰하였다.
라는 뜻이 될 것이요,
후자의 경우는 지금의 우리가 마광수가 살던 시대를 성찰하고 있다
라는 뜻이 된다고 하겠다.
독자 여러분이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도 상관이 없다. 접기 - 둥이맘
한국 사회는 도덕적 엄숙주의에 빠져 있다.

그런 사회에서 내가 주창한 사랑은 관능적 욕망 자체이며 인간의 행복은 성욕 충족에서 온다.
라는 문학관과 자유주의 성 담론은 큰 파문을 일으켰다.


˝ 문학은 상상력의 모험이자 금지된 것에 대한 도전이라고 믿었던 내가 순진했던 것일까?˝ 접기 - 둥이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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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 문화일보 2019년 9월 5일자
매일경제
- 매일경제 2019년 9월 4일자



저자 및 역자소개
장석주 (엮은이)



집필 노동자. 출판사를 경영하고, 글쓰기를 가르쳤다. 평생 읽고 쓰는 보람으로 책을 쓰며 살아왔다. 지금까지 시집 여럿과 『이상과 모던뽀이들』, 『글쓰기는 스타일이다』, 『은유의 힘』, 『어느 날 니체가 내 삶을 흔들었다』, 『에밀 시오랑을 읽는 오후』, 『노자의 마음공부』 등을 냈다. 지금은 파주에서 고양이 ‘당주’와 ‘헤세’, 그리고 아내와 산다.

최근작 : <교양의 쓸모>,<노자의 마음 공부>,<글쓰기는 스타일이다> … 총 200종 (모두보기)

송희복 (엮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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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대학교 국어국문과 및 같은 학교의 대학원을 졸업했다. 최종 학위는 문학박사. 199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 진주교육대학교 교수를 24년 동안 역임했다. 연구서로 문학박사 논문을 심화, 확대한 『해방기 문학비평 연구』(문학과지성사, 1993)와 『한국문학사론의 연구』(문예출판사, 1995) 외 다수가 있다. 문학평론, 영화평론, 시사평론은 말할 것도 없고, 시 창작, 소설 창작 등에 걸쳐 다방면의 글쓰기를 시도해 왔고, 정년이 지난 지금도 전업 작가로서 열정적인 저술 활동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간행한 저서의 총량은... 더보기

최근작 : <자유와 인권의 문학사>,<문학 속의 신라정신 연구>,<자작나무숲으로 가다> … 총 56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장석주와 송희복 엮음의 『마광수 시대를 성찰하다』는 마광수의 문학적인 가치 평가를 그의 사후에 개관적이고 엄정하게 시도한 처음의 기획이라고 본다. 그가 죽음을 선택한 2017년은 마광수의 그 사건이 발생한지 4반세기가 지났다. 당시에 시대적인 희생양이 된 당사자가 죽음을 스스로 선택한 일이 벌어졌다. 그때 못지않은 사회적인 충격파를 이번에도 던졌다. 많은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안타깝게 생각했다. 우리 사회가 4반세기의 세월을 거치면서 표현의 자유에 대한 생각도 점점 깊어져갔다.

====
평점
분포


10.0


그 누구도 아닌 마광수

설리가 죽었다. 명백한 자살이었다. 주변인들은 그녀가 오랫동안 우울증을 앓았다고 했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았기에 벌어진 일이다. 그녀는 그저 자신을 표출하고, 소신껏 소리를 내었을 뿐. 그것이 누군가를 비난할 수 있는 기준이 된다면, 세상은 한층 탁하고 음울해질 것이다. 타계 소식이 들려옴과 동시에 악플을 실은 배는 전복되었고, 언제나 그렇듯 추모의 물결이 위를 덮었다. 씁쓸한 반복이다. 무거운 마음으로 기사를 읽어 내리다 문득 기시감이 들었다. 다름 아닌 故마광수 선생이 타계했을 2년 전, 당시와 무척 닮아있었기 때문이다.






《마광수 시대를 성찰하다》는 장석주, 송희복 외 6인의 교수와 평론가들이 모여 집필한 마광수에 관한 책이다. 인간 마광수에 관한 이야기부터 작가로서의 마광수, 작품들에 관한 비평까지 그를 둘러싼 거의 모든 이야기가 담겨 있다. 기본적으로 마광수를 다시 보자는 취지에서 집필되었지만, 그를 향한 비판도 서슴지 않아(즉, 막연한 찬사에 형태를 띠지 않아) 더욱 투명하게 책에 집중할 수 있었다.




단순히 그의 삶이 이러했다, 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작품들과 문학적 세계관을 분명히 짚고 간다. 이것이 이 책이 그를 투사나 비운의 천재가 아니라, 한 명의 문인으로서 바라보고 있음을 방증한다. 누군가 내게 마광수를 알고 싶다고 한다면, 그의 책을 추천하는 게 먼저일 것이다. 다만, 방대한 저서의 양의 반감을 느끼는 이가 있더라면, 이 책 또한 충분히 대안점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지금이라도 마광수를 조명하는 것은 큰 의의가 있다. 그는 항상 선구자적인 견해를 제시했다. 예컨대, 유튜브만 들어가도 일반인들이 나와 성(性)을 토론하고, 거리에는 성인용품점이 떳떳이 즐비하며, 국내에서 자체적인 합법 포르노가 제작되기도 했다(물론, 아직 갈 길이 멀다). AV배우들이 영상에 나와 성과 관련된 고민을 얘기하는 것은 젊은이들을 열광시킨 지 오래다. 식의 시대가 끝나고, 성의 시대가 올 것이라는 그의 말 그대로다.




그렇다고, 그의 견해가 모두 옳았다는 건 아니다. 그가 한국사회를 비판하며 강조한 것은 다원주의의 부재였다. 나는 나고, 너는 너다. 외설 시비로 끌려간 법정에서, 10년 후면 코미디 될 것이라던 그의 주장은, 20여 년이 흐른 지금조차 받아들여지지 못한 것 같다. 2019년 설리를 향한 악플들은 1992년 《즐거운 사라》로 마광수가 잡혀간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27년이라는 간극을 따라오지 못하는 이들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다. 한평생 투쟁에 이바지한 마광수의 노고를 아는 까닭에, 이 사실이 더욱 안타깝게 다가왔다.




나도 한 때 마광수에 관한 책을 쓰려고 한 적이 있다. 평전의 형식을 갖춘 산문집이었다. 그를 알게 된 후 내 삶의 많은 부분들이 확실히 달라졌다. 책을 쓰고자 한 것도, 그를 조금이라도 더 알리고자 한 것이었고, 감사를 표하고자 한 나름의 다짐이었다. 내 또래들에게(현재 20대 초반들에게) 마광수는 논란의 중심도, 변태 작가도 아닌 그저 ‘모르는 사람’이다. 그럴 만하다. 당장 나조차도, 작고 소식을 접하기 전까지 그를 알지 못했으니까.




이후, 장르를 불문하고 그의 책을 읽었다. 중고서점에 갈 때면 절판된 그의 책을 찾았고, 시간을 들여 그와 관련된 기사와 인터뷰를 찾아보았다. 마광수에 관해 얘기하려면 그를 아는 것이 먼저였기 때문이다. 마광수가 타계한 지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손에는 그의 책이 들려있고, 인터넷에 접속할 때면 이따금 ‘마광수’ 석자를 검색해본다. 그를 알리겠다는 마음 역시 변함없다. 다만, 그것이 책은 아닐 것이다. 이미 훌륭한 모습으로 출간되었고, 무엇보다 내 마음을 그대로 옮겨놓은 경구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더 이상 그를 순교자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우선 작품을 읽고,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하여, 왜곡도 찬양도 아닌 공정한 평가를 진행해야 한다. 오직 그것만이 마광수에게 ‘작가’의 지위를 되돌려주는 방법이고, 그의 글들이 외설이란 족쇄에서 벗어나 ‘작품’으로 복귀할 수 있는 길이다.(106p)




- <순교자에서 작가로, 외설에서 작품으로> 최승웅(단국대 교수)

필자로서 비겁한 선택이지만, 최승웅 교수의 생각을 빌려 얘기해야겠다. 당장은 그럴 수 없겠지만, 나 역시 마광수가 그 누구도 아닌 마광수이길 바란다. 외설 작가도, 시대를 앞서간 천재도 아닌 마광수. 그저 작가이자, 평론가였으며, 교수였던 마광수. 수식어 없이 한 사람을 바라볼 때, 비로소 설리와 마광수는 자신을 되찾을 것이고, 그것이 이 불필요한 반복의 굴레를 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도일 것이다.
- 접기
최경석 2019-10-28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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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광수 시대를 성찰하다

마광수 작가의 2주기를 기념해 그의 죽음 이후에 쓰여진 글들을 묶은 책이다. 시, 소설, 에세이를 비롯해 마광수의 사상까지 고찰한 다양한 글은 그의 작품세계는 물론 변하는 시대를 역행하며 고릿적 도덕의 잣대를 들이댄 사회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성에 대해 노골적으로 이야기한 외국 작가들의 책이 서점에서 버젓이 팔리고 있던 그때, 왜 마광수의 책만 문제가 됐던 것일까. 문학계는 그 일에 왜 그렇게 싸늘한 반응을 보이며 냉혹하게 굴었을까. 자신만은 그와 다르다고 외치며 필사적으로 뭉쳤던 이들의 자기기만.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은 누구였을까.



장석주 시인의 말대로 '한 사회가 예술가에 대한 냉대와 몰이해로 공모'한다면 그 대상이 된 사람을 제거하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다. 이에 희생된 사람이 비단 마광수 작가만이겠는가. 솔직함을 죄로 만드는 세상에서 그는 참 외롭고 괴로웠을 것이다. 이제는 그곳에서 평안하시길 빈다.







나는 당신의 자살을 사회적 타살이라고 규정했다. 사회적 타살이란 말은 앙토냉 아르토라는 프랑스 작가가 빈센트 반 고흐의 죽음을 두고 한 말이다. 고흐는 자살했지만 사실은 사회적 타살이란 것이다. 고흐의 자살이나 21세기에 행해진 당신의 자살은 다를 바가 없다고 본다.
- P17


- 접기
새봄처럼 2019-10-02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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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성찰한다는 것


책을 읽는 다는 건 어떤 것일까?

사실 학창시설 이후

책과는 담을 쌓고 살다가

육아를 시작하면서.

아이로 인해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그 당시도

나를 알아가기 위한 책이기보다

그냥.. 육아를 하다보니

아이에게 도움을 주고자 하는

마음으로 책을 보았기 때문에

책이 주는 귀한 지혜를 발견하지 못했다..



토론을 하고 책을 깊이 읽기 시작하며

이제는 내 생각을 말할 수 있고 이야기 할 수 있게 된 것이

나이가 들어 성숙해진 것이 아니라.

알지 못했던 것들을 알아가며 조금씩 채워갔기 때문에 조금은

나아진 것 아닐까?



[마광수 시대를 성찰하다]는 또 한번 나로 하여금

주체성을 가진다는 것과

깊게 사고하기 위해

책을 왜 읽어야 하는지를

알게 했다.



8인의 저자들이 각각의 주제로 여러각도에서 마광수의 문학을 해석해주고

특히 마광수와 함께 법정수난을 거쳤던 장석주 평론가의

가상 인터뷰를 통해 마광수는 어디에 있는지.

왜 자살을 했는지. 천재인지? 야한여자가 어떤 여자이며 손톱이야기를 자주 언급하는것에 대해. 즐거운 사라를 쓴 이유. 구속을 당한 이유, 안경환이 쓰레기라 서솔을 평가절하한 것에 대한 반론,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지, 불행한 사람이었는지를 ..

나머지 7인의 이야기

또한 그를 분석해 보는 것이었다.









잘 알지 못했던 마광수를

알아가지만

사실 어려워서 어떻게 표현해야 될지도 잘 모른다.

그렇지만 읽었다는 것에 우선 만족하기로 한다.

부담스러운 부분도 있고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책이란 것이 꼭 이해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그저 읽고 내가 느꼈던 것,

그것만으로 만족하고 읽고 싶을 때 다시 읽으면 되지 않을까?

생각하며 부담을 내려놓고 읽어본다.



그가 사회적으로 알려지거나 교수가 아니었다면

자살하지 않았다면..

그를 규명해주려 하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그의 죽음은 잊혀졌으리라..







사회적 타살이라고도 한다.



사회를 탓하기 전에 우리 개개인들의 태도를 점검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사실 이 책을 보며 지금 벌어지고 있는 00 뉴스가 자꾸 떠올랐다.



같은 말도 내가 하면 당연한 것이고, 남이 하면 잘못된 것 이라고

자기잣대의 기준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데

익은벼 찾기가 얼마나 힘든지....



나 또한 익은 벼는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것만이 정답이라는 착각을 하지 않기 위해

말을 아끼자.

내 그릇에 신중함을 담자.







@geulgwamaeum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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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빈아주매 2019-09-15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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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광수 시대를 성찰하다] 작가 마광수를 만나다



이렇게 깊은 책을 제가 감히 서평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습니다.

음.. 이 글을 쓰면서도 저는 독후감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도서를 접하고 읽고 그리고 쓰게끔 도와준 글과 마음 출판사에 진심으로 감사를 보냅니다. 저에게는 또하나의 도전이기도 한 책입니다. 이번주 저의 모든 패턴을 잠시 멈추고 이 책을 집중하며 읽고 또 속을 드러내어 글을 써봅니다. 부디 남은 유가족분들께도 혹 그를 아끼는 분들께 누가 되지 않길 바라며 이 책을 읽고 표현의 자유라는 글쓰기에 대한 제 속에서 잠시 날뛰는 자유로움을 담아 봅니다.





사실 제가 기억하는 마광수 교수는요,



어린시절 뉴스에 야한소설을 써서 감옥에 구치되는 이상한 교수로 기억에 남아있었습니다. 다만 즐거운 사라,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등의 소설 제목은 기억했지만 역시나 이 책들은 제 어린시절 편견속에 갇혀 그냥 야한 소설로만 기억되었습니다.



저는 아무개들 못지않게 제가 가진 이 시선이 편견인줄 조차 의식하고 살지 않았고 마광수라는 교수는 뉴스나 간혹 인터넷 상 떠올라오는 이름정도로 치부하고 살았습니다. 편견에 갇힌 사람의 세상 속에서 그의 이름은 그렇게 아무 의미가 없는 존재였습니다.





" 마광수 시대를 성찰하다" 를 만나다




그러다 우연찮게 접한 이 책을 말입니다.

색상부터 자극적입니다.

와우~~~ 심플... 짙은 주황색에 보색에 준하는 파란색의 글자색은

아... 뭐라고 해야 하는거죠?

자신감? 아님 .. 뭐지?

요즘 같은 시대에 .... 불꽃같은 서정시에서도 보여준 뚝심, 옳은 느낌...

그와 사뭇 다른 듯 같은 강렬함. 그렇다고 과하지도 않은 채도의 주황과 파란색의 조합의 표지부터 저를 싱숭생숭하게 만듭니다.



"내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는냐~~ " 하는 오래된 노래 가사가 머리를 스쳐가고 표지부터 저를 미궁에 빠트리는 .

제목도 어렵습니다.

우리가 마광수를 성찰하겠다는 건지 마광수 시대를 성찰해 보겠다는 건지.

아... 문해력이 없는 걸까요?

표지만 붙들고 이렇게 고민하긴 또 오랜만입니다.





책을 펼치다


얼마나 째려 봤는지 모릅니다.

저의 책읽기는 주로 출퇴근 시간대... 만원지하철에서 읽은 생각을 하니 아직 '마광수'라는 세 글자는 왠지 저를 야한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만들거 같아 공공장소에서 읽어도 되는건가? 라는 편견을 또 싹 틔우게 합니다.

아직 나는 멀었나 봅니다.

그리고 집에서 한장 두장 읽어가며 빠지기 시작합니다.



잠깐만!! 이 책은요~

​1992년 가을 즐거운 사라를 음란물로 규정하고 유포혐의를 받은 마광수 교수는 학기중 긴급체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후 문단과 학계에서 왕따가 되었고 문학적비판이 이어졌습니다. 이후 2017년 자택에서 죽음을 택한 그의 이야기를 접하게 됩니다.



이 책은요 즐거운 사라가 출판된지 27년이 된 대한민국에서 표현의 자유에 대한 생각과 함께 그의 사후 2년간 걸쳐 쓴 마광수 교수에 관한 글들을 모아 한권의 책으로 묶어낸 것입니다.



어떻하죠?


꺄아~ 글을 읽을때 마다 소리를 질렀습니다.

내가 아는 세상은 무엇이였나 싶어서요.

껍질을 하나 더 깨고 어른이 되는 기분이였습니다.

마치 성이라는 것, 섹스, 섹시, 야함 ,등 등 어찌보면 금기하던 외설적인 부분들에 대하여 나는 막연하게 비밀스럽고 누구와도 공유하면 안된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알고보니 마광수 교수는 이렇게 외치고 있었던 거였습니다.




한국 사회는 도덕적 엄숙주의에 빠져 있다.

그런 사회에서 내가 주창한 사랑은 관능적 욕망 자체이며 인간의 행복은 성욕 충족에서 온다. 라는 문학관과 자유주의 성 담론은 큰 파문을 일으켰다.



" 문학은 상상력의 모험이자 금지된 것에 대한 도전이라고 믿었던 내가 순진했던 것일까?"


야한인간, 마광수_ 장석주



그러게요... 교수님 우리는 어디까지 믿고 어디까지 숨기고 어디까지 도전해야 하는 걸까요? 어쩌면 그는 순진한,표현에서의 자유로움을 외치는 피터팬이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기들이 똥,빵구, 찌찌, 잠지 하고 아무렇지 않게 내뱉듯 그도 그렇게 표현한 것은 아니였나 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갑니다.




















참된 에로티시즘은 '사정'이 아니라 발기에 있다.

권태에 빠지지 않으려고 나는 오르가슴의 순간을 거부한다.

왜냐하면 사정 후엔 반드시 권태가 오고,

곧이어 오르가슴의 황홀경이 순식간에 사라지기 때문이다.



야한인간, 마광수 - 장석주











성담론,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내다


시대가 발전하기 위해 모든 곳에서 이렇게 흐름을 뛰어넘게 하는 한 순간이 필요하구나! 양지뿐 아니라 우리가 음지마저두요. 모든 분야, 모든 장르에서 선구자가 있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지식의 편중, 가치의 무게, 개인의 선호도를 더나 '성장, 성숙'의 흐름를 위해 마광수라는 한 작가는 역시 선구자였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의 글의 주제는 일반적이지 않았음은 분명합니다. 마광수라는 렌즈를 통해 풀어낸 세상에 던져진 그의 글은 적어도 타협하지 않은 그의 길이였으며 표현의 자유를 갈망하는 사람의 글이였습니다. 때론 그게 다 일때도 있습니다.

혹은 작은 항변으로 그 당시 그렇게 치욕적으로 그를 끌어 내릴 필요는 없었다고 이야기 하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즐거운 사라가 처음 나온 게 1990년대 초. 1988년 올림픽을 치른 뒤 고도소비사회로 넘어가며 우리 사회의 억압된 다양한 욕망이 분출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 일부에서 <빨간 마후라>,<O양의 섹스비디오>를 비밀스럽게 공유하고 마르기 드 사드의 규방철학이나 소돔120일, 조르주 바따이유의 O의 이야기, 에리카 종의 날으는 것이 두려우, 아나이스 닌의 책들이 시중 서점에 나와 버젓이 진열되고 팔리고 있었다. 그 동안 성의식도 바뀌고 예전보다 훨씬 더 성적 자유를 누리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여전히 한국 사회의 한쪽에는 수구적 봉건윤리와 도덕 만능주의자들이 완고하게 버티면서 자유와 다윈주의의 촉매제인 섹스를 억누르고, 그 때문에 우리 사회의 창조적 역량이 억압되고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인지하지 못한다.



​근엄한 척하면서도 뒤로는 호박씨를 가는 사회의 위선적 행태에 시비를 걸어본 건이다 성에 대한 알레르기 현상을 깨부수고 싶었다.


야한인간 마광수- 장석주






그가 지금 글을 쓴다면?







만나서 이빨만 까기는 싫어

점잖은 척 뜸들이며 썰풀기는 더욱 싫어

러브 이즈 터치

러브 이즈 필링

가자, 장미여관으로!






가자, 장미여관으로 - 1985년작



이 책에서 고르고 선별한 것일텐데도 그의 시들은 불편합니다.

밴드 장미여관은 혹 그의 시에서 영감은 받은건가? 하는 생각도 들고 내가 알던 정보와 대단하다고만 생각했던 두 작가에 대해 다른 시선도 가지게 합니다.



그의 소설 일부 발췌 된 부분들도 역시나 많이 불편합니다.



한편 생각해보니 몇년전 아이들에게 성교육을 위해 봤던 아동용 도서를 보고도 깜짝놀라 덮었던 제가 기억납니다.


한편 생각해보니 요즘같은 전자도서등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흔한 19금 연애소설에서도 볼 수 있는 수위의 글들인데 왜 그의 이름에 붙은 오명은 그의 글을 읽는데 이렇게 큰 장애가 되는 걸까요? 세월이 흘러도 붙어버린 오명은 떼어내기가 힘들구나 사람의 머릿속에 한번 들어간 생각을 바꾸는게 참 어려운 일임을 다시금 느낍니다.



어쩌면 작가의 지위와 위상을 알기에 가졌던 기대때문에 질타할 지식인이 필요했던 것은 아닐까라는 궁색한 변명도 생각도 하여 봅니다.




비평가 마광수, 매력있다, 매력있어!


사실 이책에서 소개된 마광수 교수의 시나 소설보다 비평가 마광수가 저는 제일 마음에 듭니다. 그의 색다른 시각이 빛을 발하는 곳은 비평가 혹은 교수일때의 그 인듯 합니다.




요즈음 비평가들에게는 심금을 울리는 문학적 감동이란 우스운 것이고,

어떤 기발한 문체, 신기한 사건의 전개,

이상심리적인 주공의 변태가 더 재미있고 가치가 있다.

그럴듯하게 수식해 놓은 평론에는 도무지 맞지 않는

번드레한 문체가 이제는 우수한 평론 문체가 되어 버렸다.

평론은 실로 이제까지 가졌던 문장정신의 예언자로서의 고매한 영역을 떠나 언어적 유희로서의 상완의 지경에 이르고 만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평론 자체로서만 끝나면 그래도 괜찮겠는데,

그러한 평론들은 스스로의 궤변을 계속 고집해 나가려고 하기 때문에

그 폐는 이만저만 큰 것이 아니다.

창작가들은 자연히 종당에서는 평론가의 눈치를 살피게 되기 마련이며

그러한 터무니없는 문학적 가치 기준 위에서 글을 쓰게 된다.

그릇된 평론이 문학 자체와 독자들에게 주는 해는

보통 생각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크다.




마광수 문학론집



와우.. 이 글을 1974년 그의 나이 24세에 쓴 글이라고 합니다. 평폐론이라 하여 문학평론의 폐단과 폐해를 논증한 글로 비평에 대한 비평이란 점에서 메타성을 띤 비평이라고 합니다. ( 마광수 시대를 성찰하다 _ 제3부 시학,수필, 비평)



정말 그의 비평이 빛을 발하는 부분은 도스토옙스키의 소설들이 지나친 잔소리와 기독교적 설교로 가득 차 있어서 읽기에 재미가 없다고 본다는 글인데요.





앗 도스토옙스키 쏘리합니다...

문득 죄와벌이 재미없다고 생각했던 저에게는 큰 희망의 글이 아닐수 없어 이 글을 읽는 순간 속이 뚫리는 기분은 뭘까요? ^^





도스토옙스키의 소설들은 내게 재미가 전혀 없을 뿐 아니라, 그의 작가정신에 의심을 품게가지 만들었다. 내가 알고 있는 , 또 내가 확신하고 있는 작가정신이란 기성도덕에 의한 창조적 반항이고 기성 지배 이데올로기에 대한 반골적 도전 ...... 문학의 진정한 가치는 창조적 반항에 있고 금지된 것에 대한 도전에 있다.


마광수의 유쾌한 소설읽기 중에서



내친김에 이 글에 소개된 삼국지(연의)에 대한 비판글도 비평가 마광수 매력을 더 느끼게 해주므로 소개해봅니다.




삼국지는 민중 중심의 역사 소설이 아니라 기득권 귀족계급과 권력자 중심의 역사소설이다. 사실 삼국시대의 와중에서 중국의 민중들은 이를 부득부득갈며 통치자를 저주했다. 끊임없이 계속되는 병역과 부역에 시달리고 집단 살상에 녹아났기 때문일 것이다 삼국지보다는 수호전이 차라리 민중의 아픔과 반항정신을 담고 있고 수호전보다는 금병매가 인간의 적나라한 본성을 숨김없이 그려내고 있다.


마광수의 유쾌한 소설 읽기 중에서


나의 편견을 부끄러워하자.


잠시 ' 마광수'라는 인간에 대한 사명을 생각해 봅니다. 그는 그의 인생에 주어진 사명에 대해 그리고 완성도에 대해 만족했을까요?



그의 작품조차 읽어본적 없는 내가 그의 사명 혹은 저서를 논하는것은 말도 안되는 일입니다. 하지만 왠지 그는 자기의 용량을 다 채워 하늘로 떠오른 헬륨 풍선을 생각나게 합니다.



저 멀리 하늘 위로 날아가는 풍선을 보며 우리는 잡을 수 없는걸 알면서도 손을 뻗어 잡아볼려하고 아쉬워 합니다.



시대를 앞서갔다는 표현으로 위로할 것이 아니라 날아간 공을 바라보며 아쉬워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나의 편견을 부끄러워하고 바로잡고 수정해야 할 것은 고쳐나가야 겠다는 의지를 가져봅니다.



그리하여 저는 즐거운 사라,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라는 내가 읽지도 않고 맞지도 않은 주제의 책을 읽을려고 애쓰기보다는 그가 문학적으로 이뤄낸 비평가로의 그의 글과 예술가로의 그의 그림들을 거부감없이 만나는 방법으로 찾아가볼려고 합니다.



아.. 마무리가 멋지게 써보고 싶지만 제가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

한 사람을 오해하지 않고 이해해 가기 위한 당연한 일을 책 속에 담아엮어 주신 글과 마음 출판사와 장석주, 송희복 엮은이 두 분께도 감사의 인사 전하며 끝!!!


엮은이 우리는 이 책의 제목을 마광수 시대를 성찰하다로 정했다.
이 제목의 문장은 뜻 겹침의 의미로 사용되어 있다.
하나는 과거형이요, 또 하나는 현재형이다.
전자의 경우는 과거의 마광수가 자신의 시대를 성찰하였다.
라는 뜻이 될 것이요,
후자의 경우는 지금의 우리가 마광수가 살던 시대를 성찰하고 있다
라는 뜻이 된다고 하겠다.
독자 여러분이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도 상관이 없다.


- P4



한국 사회는 도덕적 엄숙주의에 빠져 있다.

그런 사회에서 내가 주창한 사랑은 관능적 욕망 자체이며 인간의 행복은 성욕 충족에서 온다.
라는 문학관과 자유주의 성 담론은 큰 파문을 일으켰다.


" 문학은 상상력의 모험이자 금지된 것에 대한 도전이라고 믿었던 내가 순진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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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이맘 2019-10-31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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