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10

[경향과의 만남]‘변산공동체’ 윤구병씨 “공동체마을, 한 세대 걸리죠” - 경향신문



[경향과의 만남]‘변산공동체’ 윤구병씨 “공동체마을, 한 세대 걸리죠” - 경향신문

입력 : 2007.11.05 17:32:56인쇄글자 작게글자 크게


유난히 감나무가 많은 변산에는 늦가을 감을 깎아 곶감을 만드는 것 또한 일이다. 윤구병씨는 \"일손이 줄어들면서 관리하기 쉽다는 이유로 감나무밭만 늘고 있다\"며 점점 사람 구경하기 힘든 농촌 현식을 안타까워했다. <변산|박재찬기자>


10여년 전 대학교수직을 때려치우고 농사를 짓겠다며 전북 변산으로 내려간 그를 두고 다들 미쳤다고 했다. 3년도 안돼 그만둘 거라 했다. 그러나 여전히 그는 농사를 짓고 있다. 손마디는 굵어지고 얼굴과 손은 시커멓게 탔지만, 오히려 요즘 그는 더욱 정력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시골 사는 늙은 농사꾼”이라는 자기소개가 전혀 어색하지 않은 윤구병씨(64). 그는 최근 ‘모래알의 우화’(보리)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25년전 출간돼 1만여부 팔렸던 철학우화에 윤씨가 손수 그린 그림을 보태 재출간한 것이다. “첫 출간 당시에는 판화가 이철수씨가 그림을 맡았죠. 그러나 글과 그림이 조금씩 어긋나는 부분이 있었어요. 10여년전 아는 출판사 사장이 직접 그림을 그려보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어요. 틈틈이 드로잉을 해뒀는데 출판사쪽에서 원했던 그림과는 달라서 원고를 묵혀두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대학에 계속 있었다면 내년이 정년퇴임인데, 다 내려놓고 쉬면서 지인들에게 선물할 게 없을까 찾다가 그림 원고를 발견했습니다. 처음에는 100여권만 만들어서 돌릴 생각이었는데, 출판사에서 요즘 젊은이들과 어른들을 일깨울 만한 내용이 있으니 출판하자고 해서 그리 됐습니다.”

책은 모래알을 통해 소통과 관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소통과 상생은 그가 줄곧 관심을 두는 주제이기도 하다. 요즘 그가 벌이는 일들을 살펴보면 이를 눈치챌 수 있다. 최근 서울나들이가 부쩍 잦아진 이유는 바로 남북 어린이가 함께 볼 수 있는 초등학생용 국어사전을 만들기 위해서다.


“통일이 자꾸 늦춰지다보면 서로 말이 달라 의사소통이 늦어질 수 있으니까 하는 일입니다. 남북의 어린이들이 정서적으로 교류하는 데 필요한 단어 3만여개를 추렸습니다. 의성어와 의태어가 모두 포함돼 있고 남녘말에는 전혀 없는 단어도 기본 표제어로 올렸습니다. 초등학생들이 보는 사전이니까 세밀화로 그린 그림도 5000장 정도 넣을 계획이고요. 올해말, 늦어도 내년초를 목표로 요즘 마지막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발의했으니 책임을 져야 한다고들 해서 주중에는 서울에서 시간을 보내고 주말에는 변산에 있습니다.”


이밖에도 그는 유아용 도감을 비롯해 크고 작은 여러 건의 출판기획에 관여하고 있다. 특히 그는 ‘잘 나가는’ 어린이책 작가이며 출판기획자이기도 하다. “‘어린이마을’을 기획할 때부터 그림책에 관심을 가졌는데, 생각해보면 이런 관심은 1978년 이오덕 선생님과 인연을 맺으면서부터 커진 것 같아요. 이오덕 선생님의 ‘일하는 아이들’ ‘이 아이들을 어찌할 것인가’를 보고 우리 아이들의 현실을 깨달으면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지식이 실천으로 연결되지 않는 것, 실천과 이론의 괴리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실천을 지배하는 것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입니다. 그래서 건강한 감수성을 길러줘야 하고요. 이것이 바로 그 사람의 인격, 실천력으로 나타납니다. 아이들 그림책 만들기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20여년 전 펴냈던 ‘어린이마을’ ‘개똥이그림책’ ‘달팽이과학동화’ 등이 여전히 건강한 그림책이라 불리는 것은 창피한 일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좋은 책이란 무엇일까. “권정생 선생님은 읽고 좀 불편한 느낌을 주는 책이 좋은 책이라 하셨는데 저는 정말 정성들여 만든 책이 좋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주는 책을 비판없이 그대로 수용합니다. 이 때문에 정말 신중하게 골라서 책을 줘야 하는데, 그러려면 아이들에 대한 깊은 이해와 사랑이 뒷받침돼야 합니다. 아이들은 사람의 아이기 이전에 자연의 아이입니다. 자연과 만나는 징검다리의 역할을 하면서 더 넓은 세계, 더 많은 생물들과 어우러질 수 있도록 돕는 책이 좋은 책이라고 할 수 있지요.”



서해 바다가 보이는 전북 부안군 변산면 운산리에 자리한 변산공동체는 이같은 윤씨의 교육철학과 생태관을 펼치기 위해 세워진 곳이다. 변산공동체는 생산공동체이면서 대안교육을 함께 실시하는 교육공동체이기도 하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이 땅에 뿌리박고 살고, 삶을 지속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교육이며 더불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 그가 생각하는 교육의 목표다. 산살림과 들살림, 갯살림(그는 그간 여러 권의 책을 통해 산살림, 들살림, 갯살림이야말로 인류의 기초살림이라고 말해오곤 했다)이 가능한 변산은 말하자면, 최적의 입지조건을 갖춘 셈이었다.


기자는 지난 주말, 윤씨와 각별한 인연을 맺고 있는 보리출판사 직원들의 가을 울력에 동행해 그의 안내로 변산공동체 구석구석을 돌아보았다. 너른 들판 귀퉁이에 자리한 공동체 학교는 초·중등 과정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시골살이에 필요한 나무 다루기, 효소 만들기, 천연염색과 바느질·농사 등의 살림교육, 국어·영어·수학·철학·인문학·예술 등 일반 교과목을 가르친다. 이 과정을 거쳐 사회로 나간 아이들이 이제 서너 명이니 학교가 자리를 잡으려면 아직 멀었지만 그는 젊은 시절 한 장학재단의 도움으로 학업을 마친 고마움을 되새기며, 내년에 이곳에서 장학사업을 펼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내년부터 전국 각지에서 어려운 가정의 아이들을 학년마다 다섯 명씩 뽑아서 무상교육을 할 계획입니다. 초등과정의 경우도 작년부터는 공동체 내부에서 교육을 맡고 있습니다. 여태까지는 공동체 식구들이 농사를 지으면서 틈틈이 수업준비를 하곤 했는데, 좀더 교육을 전담할 교사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뜻있는 분들을 모시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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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10여년의 역사를 거쳐온 공동체를 그는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적극적으로 식구를 늘리지 않아서 아직은 20여가구 50여명입니다. 한 공동체가 안착하려면 적어도 30년 이상, 한 세대가 걸린다고 봅니다. 공동체가 계속되려면 그 안에 과거와 현재, 미래가 있어야 하죠. 젊은 남녀가 같이 들어와서 아이를 낳고 그 안에서 교육을 받고, 그 아이가 다시 바깥을 경험해보고 다시 공동체로 돌아오기까지 걸리는 기간이죠. 지금 공동체의 꼬마들이 20대가 되고 결혼할 때까지 두고 봐야겠지요. 현재 시골에는 과거만 있고 미래는 없습니다. 마을공동체가 파괴된다는 것은 큰 재난입니다. 이건 도시사람들의 음식 공급지가 없어진다는 뜻이기도 하죠. 마을공동체를 재건하고, 그 안에서 뿌리내려서 살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밥상공동체를 강조하는 그는 윤봉길 의사의 ‘농민독본’의 한 구절을 빌려 농촌을 ‘인류의 생명창고’, 농민을 ‘인류의 생명창고를 지키는 이들’이라고 표현했다.



“시골사람들이 왜 너그러운지 아십니까. 시골사람의 유일한 재산은 바로 유기물입니다. 유기물은 천년만년 보존이 안됩니다. 그 해에 나눠야 합니다. 씨앗도 2년 묵으면 싹이 안 터요. 그러니까 노동이 계속될 수밖에 없어요. 유기물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물리적 공간이 필요한데, 도시에서 생산하는 무기물은 그런 공간이 요구되지 않고 무한 축적이 가능하거든요. 그래서 도시인들의 탐욕이 커지는 것이죠. 시골살림은 농민뿐 아니라 해, 바람, 하늘이 함께하는 겁니다. 씨 뿌려놓고 노력을 그만큼 안들이고도 하늘이 일을 해줍니다. 바람의 몫, 해의 몫, 흙의 몫, 물의 몫이 있다고 생각하니까 나누자는 의식이 있지만 도시 사람들은 그런 게 없습니다. 생명체는 생명체와의 관계 속에서 살아야 제대로 살 수 있습니다. 인간만이 생명체는 아니거든요. 인간만이 희망이라는 말은 틀린 것입니다. 몸으로 겪고 나면 알 수 있지만, 도시 사람들은 그런 고민을 하지 않아요. 인간관계 속에서만 살아남으면 되니까요. 스스로 함정에 빠져서 미래가 없죠.”


농촌공동체의 부활, 도시와 농촌의 상생을 꿈꾸는 그는 최근 ‘문턱 없는 밥집’이라는 유기농식당을 열기도 했다. 지난 5월 서울 서교동에 문을 연 식당은 윤씨와 변산공동체, 그의 뜻을 후원·지지하는 보리출판사가 함께 운영한다.



“어려운 이들을 위한 자율식당입니다. 식사 후에는 음식물 쓰레기를 남기지 않도록 하고 있습니다. 불편한 노약자들이 유기농식을 할 수 있도록 같이 나누자는 취지에서 만들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소위 ‘웰빙’이라는 것을 정작 건강을 해치기 쉬운 상황에 있는 분들은 접하기 어려웠지요. 변산공동체에서 유기농으로 생산한 식재료를 이곳에 공급하고 있습니다. 사실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가장 어렵지요. 힘들게 지었어도 수요는 한정돼 있고 비싸다 보니 잘 안 팔려서 유기농쌀이 남아돕니다. 밥집에서 싼 값에 유기농산물을 소비하면 해결이 됩니다. 음식물쓰레기를 줄이면 한해 15조원이 절약된다고 하는데, 그 절약된 돈으로 유기농식을 하면 됩니다. 안그래도 적게 태어나는 아이들을 건강하게 길러내기 위해서는 먹거리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현장에서 변산공동체를 지휘하던 윤씨가 서울나들이를 자주 하며 새로운 일들을 기획하고 혹은 벌여놓은 일을 마무리하는 데 여념이 없는 것은 어쩌면 귀밑머리가 세는 나이가 됐음을 실감한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는 내년에는 모든 일을 접어두고 세계의 공동체를 찾아 떠날 것이라 했다. “더 큰 고생이겠지만 공동체의 젊은 식구들에게 일을 맡겨놓고 저는 구름처럼, 바람처럼 떠날 생각입니다.”


정말로 조용히 떠날 요량인지 그는 아무리 물어도 구체적인 일정과 행선지를 가르쳐 주지 않았다. 아침나절 동안 기자에게 공동체학교와 솔밭 너머 지름박골에 있는 감나무밭을 안내하던 그는 점심 때가 되자 반주로 막걸리 한 사발을 비웠다. 그리고는 다가올 겨울에 땔감으로 쓸 장작도 패야 하고 염료로 쓰이는 쪽씨를 받아야 한다면서 총총걸음으로 사라졌다.


▲윤구병은 누구?


1943년 전남 함평에서 9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구병’이가 됐다. 위로 여섯 아들을 잃은 아버지는 남은 자식들을 농사꾼으로 만들겠다고 결심하고 학교를 보내지 않았다. 열두살이 되어서야 사촌형의 설득으로 학교에 다녔고 고교시절에는 잠시 출가를 꿈꾸기도 했다. 서울대에서 철학을 공부하고는 한국 브리태니커사에 들어갔다. 고 한창기 사장은 그가 지금도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다. ‘뿌리깊은 나무’ 초대 편집장까지 거쳤지만 조용한 문화변혁을 꿈꾸는 한사장과는 갈 길이 다르다는 생각에 회사를 그만두고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충북대에서 철학을 가르치면서 틈틈이 어린이 그림책을 만들었다. 인세는 사회변혁을 꿈꾸는 젊은이들의 활동자금이 되기도 했다. 나이 쉰이 넘어서 농사꾼이 되겠다고 결심하고 1995년 전북 부안에 변산공동체를 세웠다. 변산에서의 농사 경험을 바탕으로 ‘도토리 사계절 그림책’과 ‘잡초는 없다’ 등을 펴냈다.



〈변산|윤민용기자〉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711051732561#csidx0162c7a740e6e54b5ffadd65da2e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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