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7-01

일민족은 신화일 뿐 환상 버려야 임지현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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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민족은 신화일 뿐 환상 버려야
 최성희 기자 승인 2008.03.22 02:42 댓글 0기사공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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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답습하는 주변부 저항 민족주의
우리나라의 민족주의의 개념은 언제부터 발생하게 되었을까. 백의민족이라는 이름아래 단일민족이라고 무수히 외쳐왔던 한국 사회에서 민족주의의 역사적 정당성은 어디서부터 존재하는 것일까. 그리고 앞으로 민족주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임지현 한양대 사학과 교수와 이메일 대담을 하였다.

▲ 민족주의에 대한 개념과 문제점에 대해 말해달라.

민족주의는 기본적으로 어느 민족에 속하는가를 기준으로 생각하고 실천하는 이데올로기이다. 이러한 민족주의의 문제점은 여러 가지 차원으로 접근할 수 있다.
첫째, 철학적 혹은 인식론적 차원의 문제가 있다. 사람은 누구나 다양한 정체성을 갖고 있다.
근대의 다른 이데올로기와 마찬가지로 민족주의는 다른 무엇보다 먼저 ‘한국인’으로 규정하고 그 외의 다른 규정은 부차적인 것으로 규정한다.
그러나 군복무자 가산점의 문제에서 보듯이 아마도 여성이라는 정체성이 한민족이라는 정체성보다 더 앞서있지 않을까 한다. 무엇이 옳고 그르냐의 문제를 떠나 항상 한민족의 일원이라는 점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내세운다는 점에서 민족주의는 본질주의적 사고방식의 하나이며, 그 점에서 폭력적이다.
둘째, 식민지 경험을 겪은 주변부에서는 흔히 민족주의가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이데올로기로 간주되는 경향이 있다. 제국과 식민지의 정치적 대결구도라는 맥락에서 이러한 지적은 타당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문제는 주변부의 민족주의가 제국을 이기기 위해서 제국이 강요하는 강력한 국민국가 체제를 지향해야 한다는 점이다. 결국 제국을 모방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주변부 민족주의는 강력한 반제 정치성에도 불구하고 결국 서구 제국주의의 발전을 모델로 삼는 서구중심주의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셋째, 제국의 발전모델을 지향하는 한 일정한 여건만 주어지면 주변부의 민족주의는 제국주의의 행동패턴을 그대로 따라할 위험성이 있다. 자본주의가 일정하게 발전한 이후의 남한 사회에서 제3세계 지역에 대한 오리엔탈리즘적 시선을 발견한다거나 외국인 노동자나 못사는 나라에서 온 결혼이민자들에 대한 많은 한국인들의 태도에서 인종주의를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다. 제국에 저항하는 정치 이데올로기로서의 ‘저항 민족주의’에 대한 신화는 이제 벗겨야 한다.

▲ 열린 민족주의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자기 민족에 속하지 않는 사람은 타자화되는 경향이 강하다. 이점에서 궁극적으로 열린 민족주의는 불가능하다. 모든 민족주의는 폐쇄적이고 닫힌 것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가령 나치의 홀로코스트는 히틀러를 비롯한 소수의 사악한 세력이 반유대주의를 부추긴 결과가 아니다. ‘민족공동체’에 속한 독일인 ‘민족동지’들이 자기 민족에 속하지 않는 타자에 대한 밑으로부터의 반유대주의가 국가적 기획과 맞물리면서 폭력의 양태로 발현한 것이다. 다수의 독일인들이 동조했다는 점에서, 나치즘의 민족주의도 일종의 민중적 민족주의라 할 수 있다.
▲ 『민족주의는 반역이다』라는 책을 보면 ‘민족을 신화로서 이해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이해하자, 억압과 배제를 벗어버리고 이해하자’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신화’등으로 민족의 견고함, 우수성을 부추기고 민족주의를 우상시 시키는 현상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더불어 우리가 혈통ㆍ문화 공통성을 강조하게 된 까닭은 무엇인가.

단군 할아버지 이래 5천년의 유구한 역사와 단일 혈통을 강조하는 경향은 아마도 식민지 시기에 결정적으로 나타난 것이 아닌가 한다.
독자적인 정치권력을 지니지 못한 식민지 상태였기 때문에 제국에 저항하는 정치적 기제를 신화적인 차원에서 얻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많은 역사 연구들은 선사시기에 이미 서로 다른 문화와 서로 다른 다양한 혈통의 집단들이 한반도로 흘러 들어왔고 이들이 일정한 역사과정을 거치면서 하나의 역사적 집단으로 묶이게 되었다는 사실들을 밝히고 있다. 단일한 혈통은 처음부터 신화를 뜻한다. 생물학적 상식으로 보더라도, 5천년 동안 같은 혈족 내의 족내혼으로 한민족이 구성되었다면 그것은 세상에 부끄러워야 할 일이지, 결코 자랑스러워 할 일이 아니다.
한 민족 혹은 역사 공동체 내의 문화라는 것도 결코 단일할 수 없다. 문화는 계급이나 신분에 따라 다르기도 하고 지역이나 세대에 따라 다르며 또 남성과 여성의 문화도 다르다. 오늘날 청담동의 문화와 강원도 산골 마을의 문화가 같은 민족문화를 공유한다고 생각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한국에도 뉴욕의 여피족(yuppies)들과 공유하는 문화가 있고 또 남미의 농민들과 유사한 문화가 있다. 민족문화라는 신화의 틀을 한꺼풀 벗겨놓고 보면 다양한 문화가 존재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상식이다.

▲ 그렇다면 민족주의의 역사적 정당성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민족주의가 항상 좋은 것이 아니듯이 항상 나쁜 것은 아니다. 가령 제국의 지배에 저항하여 피억압민족의 해방을 지향하는 저항 민족주의는 그 나름의 역사적 정당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도 제국 대 식민지라는 맥락에 놓일 때 정당성을 갖는 것이지, 식민지 시기라고 해서 항상 정당성을 갖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식민지 시기 조선의 민족운동 여성 지도자들은 전쟁에 식민지 주민들을 가능한 한 많이 동원하기 위한 일제의 다산장려정책에 대항해서 산아제한을 주장했다. 그런데 이들의 주장을 보면 교육을 많이 받고 외모가 준수하고 머리가 좋은 자신들과 같은 엘리트 여성들은 아이를 많이 낳고 교육 수준도 낮으며 외모도 보잘 것 없고 머리가 좋지도 않은 가난하고 무지한 아녀자들은 아이를 가능하면 낳지 말아 조선 민족의 종자를 개량하자는 주장을 펼쳤다. 이들의 주장은 제국 대 식민지라는 맥락에서는 충분히 저항적이지만, 식민지 조선 내부의 계급적 혹은 사회적 맥락에서는 억압적이고 엘리트적인 것이다.
이처럼 같은 저항 민족주의라고 해도 어느 포지션에서 볼 것인가 어느 맥락에 위치하는가에 따라 평가는 다양해질 수 있다. 민족주의를 추상적 차원에서 좋다 나쁘다는 판단을 유보하고 역사적 구체적 맥락에서 평가해야 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이다.

▲ 민족주의가 앞으로도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앞으로 사라지지 않고 존재한다면 나아가야 할 방향은 어디인가.

민족주의를 가능케 했던 역사적 조건들은 지구화와 더불어 점차 약화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자본 주도의 지구화에 대한 저항담론으로서의 민족주의가 강화되는 경향도 있지만, 자본주도의 위로부터의 지구화에 대한 저항담론은 아래로부터의 지구화를 지향하는 트랜스내셔널리즘이 되리라 생각한다.
지금 한반도 주민들의 건강과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중국의 황사 문제만 하더라도 그것을 중국의 국가주권 혹은 인민주권의 문제로 간주한다면 해결의 길이 보이지 않는다. 중국이 자기 주권이 미치는 자기 국가의 경계 내에서 나무를 남벌하고 사막화를 촉진시키고 환경오염의 결과인 황사가 이미 중국 내에만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한반도는 물론 멀리는 제트 기류를 타고 미국의 덴버시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또 체르노빌의 원자력 참사가 발전소가 있던 우크라이나 뿐만 아니라 벨로루스와 폴란드 등 인접국가는 물론 스칸디나비아와 독일 등을 포함한 전유럽에 영향을 미친 예를 놓고 보더라도 오늘날 지구촌에 사는 우리들의 삶은 국민국가의 경계를 넘어 긴밀하게 얽혀 있다. 끊임없이 국경을 넘는 이주 노동자 문제 등은 더 이상 말할 것도 없다. 이처럼 우리네 삶의 현실이 국가의 경계를 넘어 해결책을 모색하는 트랜스내셔널의 시각을 요청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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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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