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7-09

알라딘: 언어의 감옥에서 - 어느 재일조선인의 초상 서경식

알라딘: 언어의 감옥에서

언어의 감옥에서 - 어느 재일조선인의 초상 
서경식 (지은이),권혁태 (옮긴이)돌베개2011-03-28



언어의 감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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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472쪽152*223mm (A5신)661gISBN : 9788971994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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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재일조선지식인 서경식이 <난민과 국민 사이>를 묶어낸 지 5년 만에 두 번째 평론집을 내놓았다. 저자는 전작을 통해 식민주의와 제국주의, 민족주의와 국민주의, 일본 우경화 문제 등을 본격적으로 다룬 바 있다. 이 책은 전작의 문제의식들을 계승하는 한편, 언어 내셔널리즘 문제와 '계속되는 식민주의'의 청산을 막는 위험으로서의 일본 리버럴 세력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보여준다.

이번에 소개되는 글들은 2006년부터 2년간 저자가 한국에 머물던 기간에 쓴 시론과 시평을 중심으로, 주제에 따라서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의 글들을 포함한다. 모국체험 전후 10여 년간 저자의 정치적.역사적.철학적 사유와 성찰의 궤적을 정리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1부는 식민주의와 언어 내셔널리즘에 대한 글이다. 저자가 2006년 봄부터 2년간 성공회대 연구교수로 국내에 머물 당시 모어(일본어)와 모국어(조선어)의 어긋남에서 비롯된 강렬한 체험을 계기로 쓴 글들이다. 2부는 선(線)이라는 주제로, 제국주의가 그어버린 국경선으로 인해 고통받는 팔레스타인 문제를 다룬 평론, 저자의 가족사를 중심으로 분단(분단선)의 아픔을 겪고 있는 재일조선인에 대한 에세이 등이 실렸다.

3부는 일본 지식인의 사상적 퇴락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저자는 3부에서 일본의 우파와는 다른 의미에서 일본 리버럴 세력의 위험성을 지적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4부에는 저자의 인터뷰와 대담 한 편씩을 묶었다. 조선 민족의 통일을 위한 협의체 조직, 한국의 이중국적 허용 등 저자 나름의 통일에 대한 흥미로운 구상을 엿볼 수 있다.
목차
1부 식민주의와 언어
모어라는 폭력
모어와 모국어의 상극
서울에서 『유희』를 읽다
단절의 세기의 언어경험

2부 인간을 끌어당기고 가르는 경계선
도쿄와 서울에서 프리모 레비를 읽다
『태양 속의 남자들』이 던지는 물음 ― ‘우리들’은 누구인가?
도덕성을 둘러싼 투쟁
인간을 가르는 경계선
어느 재일조선인의 초상

3부 화해라는 이름의 폭력
네 번째 호기
‘일본인으로서의 책임’을 둘러싸고
‘일본인으로서의 책임’을 다시 생각한다
당신은 어느 자리에 앉아 있는가 ― 하나자키 고헤이에 대한 항변
화해라는 이름의 폭력

4부 또 다른 만남
인터뷰: 새로운 통일의 꿈
대담: 국민주의와 리버럴 세력 ― 일본을 바로 알기 위해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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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서경식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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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일본 교토에서 재일조선인 2세로 태어나 1974년 와세다대학 문학부 프랑스문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도쿄케이자이대학 현대법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6년부터 2년간 성공회대학에서 연구교수로 머물며 한국의 다양한 지식인, 예술가들과 교류했다. 1995년 『소년의 눈물』로 일본 에세이스트클럽상을 받았고 2000년 『프리모 레비로의 여행』으로 마르코폴로상을 받았다. 2012년에는 민주주의 실현과 소수자 인권 신장에 기여한 공로로 제6회 후광김대중학술상을 받았다. 저자는 1970년대 ‘재일조선인 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알려진 조작 사건으로 구속되었던 형들(리쓰메이칸 대학 교수인 서승과 인권운동가인 서준식)의 석방과 한국 민주화를 위해 활동한 경력이 있다. 이때의 경험은 이후의 사색과 문필 활동, 강연으로 연결되었다.
한국에는 1991년 출간된 『나의 서양 미술 순례』로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그 밖에 『청춘의 사신』, 『디아스포라 기행』, 『난민과 국민 사이』,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 『시대를 건너는 법』, 『고뇌의 원근법』, 『언어의 감옥에서』, 『나의 서양음악 순례』, 『역사의 증인 재일조선인』, 『나의 조선미술 순례』, 『시의 힘』, 『내 서재 속 고전』, 『다시, 일본을 생각한다』, 『나의 이탈리아 인문 기행』, 『책임에 대하여』(공저) 등의 책이 소개되어 있다. 접기
수상 : 1995년 일본 에세이스트클럽상, 1995년 마르코폴로상
최근작 : <책임에 대하여>,<나의 영국 인문 기행>,<나의 서양음악 순례 2 (큰글자도서)> … 총 47종 (모두보기)
권혁태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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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대전에서 태어났다. 고려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히토쓰바시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야마구치대학 교수를 거쳐 현재 성공회대학교 일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릿쿄대학 초빙 연구원, 규슈대학 대학원 초빙 교수를 지냈고, 계간 『황해문화』의 편집위원이다.

「재일조선인과 한국 사회」, 「1960년대 단카이 세대의 반란과 미디어로서의 만화」 등의 논문과 『일본의 불안을 읽는다』, 『아시아의 시민사회』(공저), 『동아시아 인권의 새로운 탐색』(공저), 『반일과 동아시아』(공저), 『한·중·일 3국의 8·15 기억... 더보기
최근작 : <두 번째 전후>,<주권의 야만>,<일본 전후의 붕괴> … 총 15종 (모두보기)
Editor Blog2011년 4월 2주_ 한발 앞서 만나는 인문교양 신간 l 2011-04-05
알라딘 인문, 역사, 사회, 과학 분야에서는 '한발 앞서 만나는 인문교양 신간'이란 이벤트를 상시 진행합니다. 매주 담당 MD가 10권 이내의 책을 소개하는 공간이자 예리한 관찰과 정확한 판단으로 누구보다 먼저 좋은 책을 알아보시는 독자께 조금이나마 혜택을 드리고자 마련한 자리입니다. 매주 월요일 새로운 책으로 페이지가 바뀌고 도서별 구매자 선착순 50분께...

출판사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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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파시즘과 싸운 여성들>,<열하일기 첫걸음>,<나의 작은 화판>등 총 593종
대표분야 : 역사 4위 (브랜드 지수 629,772점), 음악이야기 4위 (브랜드 지수 21,599점), 한국사회비평/칼럼 9위 (브랜드 지수 50,201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계속되는 식민주의’와 싸워 온 서경식의 두 번째 평론집
전후 최대의 시련을 겪고 있는 일본, 우리는 그들을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나?

『디아스포라 기행』, 『소년의 눈물』로 잘 알려진 재일조선지식인 서경식이 『난민과 국민 사이』를 묶어낸 지 5년 만에 두 번째 평론집을 내놓았다. 저자는 전작을 통해 식민주의와 제국주의, 민족주의와 국민주의, 일본 우경화 문제 등을 본격적으로 다룬 바 있다. 이 책은 전작의 문제의식들을 계승하는 한편, 언어 내셔널리즘 문제와 ‘계속되는 식민주의’의 청산을 막는 위험으로서의 일본 리버럴 세력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대지진 참사로 우리 사회가 일본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아진 시점에서 출간된 이 책은, 우리가 일본 사회를 얼마나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를 점검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현재 경험하고 있는 물리적 위기 못지않게, 일본 사회가 수십 년간 지식인 사회의 사상적 퇴락(頹落)이 심각할 정도로 진행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은 전후 최대의 시련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큰 고비를 맞고 있는 일본 사회가 “계속되는 식민주의”를 극복하고 다시금 우리 사회와 화해할 수 있는지 가늠할 수 있는 성찰의 기회를 줄 것이다.
이번에 소개되는 글들은 2006년부터 2년간 저자가 한국에 머물던 기간에 쓴 시론과 시평을 중심으로, 주제에 따라서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의 글들을 포함한다. 모국체험 전후 10여 년간 저자의 정치적·역사적·철학적 사유와 성찰의 궤적을 정리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1부는 ‘식민주의’와 ‘언어 내셔널리즘’에 대한 글이다. 저자가 2006년 봄부터 2년간 성공회대 연구교수로 국내에 머물 당시 모어(일본어)와 모국어(조선어)의 어긋남에서 비롯된 강렬한 체험을 계기로 쓴 글들이다. 윤동주의 「서시」 번역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 종주국의 언어를 모어로 하여 글을 쓸 수밖에 없었던 유대 지식인들의 흔적을 더듬어간 평론들도 함께 실렸다.
2부는 선(線)이라는 주제로, 제국주의가 그어버린 국경선으로 인해 고통받는 팔레스타인 문제를 다룬 평론, 저자의 가족사를 중심으로 분단(분단선)의 아픔을 겪고 있는 재일조선인에 대한 에세이 등이 실렸다. 다른 각도에서 1부의 내용을 보완하는 평론들이다.
3부는 일본 지식인의 사상적 퇴락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저자는 일본의 우파와는 다른 의미에서 일본 리버럴 세력의 위험성을 지적하고 있다. 식민지 지배의 책임론이 불거질 때마다 양비론으로 일관했던 일본 지성계와 리버럴 세력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일본 사회에서 진행되었던 일본 사상계에 관한 비판적인 조감도를 제공한다.
4부는 저자의 인터뷰와 대담 한 편씩을 묶었다. 인터뷰는 2008년 저자가 서울 체류 당시 최현덕(부산대 인문학연구소 HK교수)과 ‘새로운 통일의 꿈’이라는 주제로 이뤄진 것이다. 조선 민족의 통일을 위한 협의체 조직, 한국의 이중국적 허용 등 저자 나름의 통일에 대한 흥미로운 구상을 엿볼 수 있다. 대담은 저자와 이 책의 역자 권혁태 간에 이뤄졌다. 3부 주제를 좀더 자유롭게 풀어낸 것으로 볼 수 있다. 국민주의와 일본 리버럴 세력에 대한 독자들의 올바른 이해를 돕기 위해 실렸다.


왜 언어의 감옥인가 ― 모어에 담긴 폭력성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중요한 주제 중 하나가 언어 내셔널리즘이다. 저자는 2년간의 모국체험을 통해 실감했던 모어에 담긴 폭력성을 치열하게 사유한다.
국내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아온 『소년의 눈물』은 1995년 일본에서 에세이스트 클럽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수상 이유가 “뛰어난 일본어 표현”이라는 데 심경 복잡했던 저자는 수상 인사말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구식민지 종주국인 일본에서 태어난 나는 원래 모어여야 할 언어(조선어)를 박탈당하고 과거 종주국의 언어를 모어로 해서 자라났습니다. 나는 모든 것을 일본어로 생각하며 모든 것을 일본어로 표현합니다. 그렇다면 나는 일본어라는 ‘언어의 벽’에 갇힌 수인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본문 61쪽)

모어란 태생적으로 부모로부터 주어지는 언어다. 누구도 자신의 의사로 선택할 수는 없다. 저자는 바로 여기에 근원적이면서도 피할 수 없는 “모어의 폭력성”이 도사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만약 어떤 이유에서든 자신의 모어를 부정하게 된다면 결국 그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결과가 된다. 모어란 곧 자신의 감정과 사고를 표현하는 언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모어를 아무런 고민 없이 쓸 수도 없다. 첼란이나 저자 본인과 같은 디아스포라의 모어 속에는 곧 자신들의 민족을 억압했던 침략국의 관점이 반영되어 있다. 곧 모어 속에 들어 있는 제국주의의 시선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모어가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의해 힘으로 덧씌워진 ‘덫’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는 저자의 고백은 실존의 문제와 연결된다.
저자는 이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언어 내셔널리즘이 만들어낸 ‘모어=국어’라는 공식을 깰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같은 맥락에서 저자는 유대계 루마니아 시인 파울 첼란의 경우를 소개한다. 첼란은 어머니로부터 독일어를 모어로 물려받았다. 부모를 나치 수용소에서 잃은 뒤에도 독일어로 시를 쓰던 첼란은 “자신의 부모를 죽인 자들의 언어로 쓰는가?”라는 비난을 받는다. 그때 첼란은 “오직 모어로만 자신의 진실을 말할 수 있다. 만일 외국어로 쓴다면 시인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셈”이라고 답한다. 저자는, 첼란에게 독일어는 언제나 어떤 단일국가의 국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을 것이라고 본다. 첼란에게 모어공동체는 같은 국어를 쓰는 국민공동체가 아니라 다언어·다문화의 영역 안에서 언어를 같이하는 사람들의 정신적 유대를 의미했으리란 것이다.
결국 저자는 자신의 모어에 담긴 다수자의 시선과 시각을 치열하게 인식해야 함을 강조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것은 이미 다문화 사회로 진입한 한국 사회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언어란 것이 나와 너를 가르는 기준이 아닌, 또 다른 공동체의 조건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모어와 모국어의 어긋남으로 인해 스스로를 부정당하는 역설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화해라는 이름의 폭력 ― 일본 우파보다 위험한 일본의 리버럴

저자는 이 책에서 일본 리버럴 세력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이해부족을 크게 우려한다. 이 책의 3부와 4부의 대담은 리버럴 세력의 정체를 밝히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특히 박유하 현상을 둘러싼 일본 리버럴 세력의 담론을 비판한 글은 매우 예리하며 음미해볼 가치가 있다.
1990년대에 들어와서 일본 사회는 처음으로 ‘증언의 시대’를 맞이했다. 일본 국민의 다수가 가해의 역사와 대면하고 대화를 통해 과거를 극복함으로써 피해자들과 함께 새로운 세기를 열어갈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사회 전반의 우경화와 함께 역사 문제에서도 교과서에서 위안부 관련 기술이 대폭 줄어드는 등 일본 사회는 ‘반동의 시대’로 돌입했다. 저자는 이 같은 상황에서 일본 식민지 지배 피해자들은 우파나 역사수정주의자로부터의 폭력뿐만 아니라, 중간파 다수자로부터 ‘화해라는 이름의 폭력’에 노출되었다고 주장한다. 특히 박유하 현상은 1990년대 이후, 일본의 리버럴 세력의 사상적 퇴락현상이 어느 수준에까지 이르렀는지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2007년 일본에 소개된 박유하의 『화해를 위해서』는 교과서, 위안부, 야스쿠니, 독도라는 네 개의 논점을 둘러싼 한일 간 인식의 어긋남을 다루고 있는 책이다. 일본의 대표적 리버럴 매체인 아사히신문사 주최한 오사라기 지로 논단상을 받는 등 리버럴 세력으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그러나 저자가 보기에 박유하의 모든 레토릭은 “궁극적으로 한일 간 불화의 원인이 ‘일본’이 아니라 ‘한국’의 불신에 있다는 박유하식의 가짜 ‘화해론’으로 수렴”한다. 예컨대 저자는 다음과 같은 문제의 주장들을 인용하고 있다.

화해 성립의 열쇠는 결국, 피해자 쪽이 쥐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떤 의미에서는 가해자 쪽이 용서를 구했는지 여부는 더 이상 문제가 아니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 큰 틀에서는 한국이 사죄를 받아들일 만큼의 노력을 일본은 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본문 344쪽, 박유하의 『화해를 위해서』 재인용)

‘피해자’로서의 내셔널리즘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자기비판은 필요하지 않을까? ‘용서’는 피해자 자신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원한과 분노로부터 자유로워져 상처를 받기 전의 평화로운 상태로 돌아가기 위해서. (본문 348쪽)

저자는 『화해를 위해서』에 일본 리버럴 세력이 환호했던 이유를 박유하의 언설이 일본의 리버럴에 숨겨져 있는 욕구에 딱 들어맞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그들(일본 리버럴)은 일반적으로 우파의 노골적인 국가주의에는 반대한다. 그리고 자신들은 비합리적이고 광신적인 우파와 구별되는 이성적인 민주주의자라고 자임한다. 그러나 동시에 근대사의 전 과정을 통해 홋카이도, 오키나와, 타이완, 조선, 만주국으로 식민지 지배를 확대하면서 획득했던 일본 국민의 국민적 특권이 위협받는 것에 불안을 느낀다. (본문 351쪽, 박유하의 『화해를 위해서』 재인용)

저자가 보기에 일본 리버럴파의 다수는 이성적인 민주주의자를 자임하는 명예 감정과 구종주국 국민으로서의 국민적 특권 모두를 잃고 싶어하지 않는다. 결국 저자의 지적처럼 박유하의 언설은 일본 리버럴 세력에게 굉장히 매력적인 상품가치가 있었던 셈이다. ‘절도’ 있는 ‘양심적 지식인’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망 때문에 억눌려온 일본 리버럴 지식인의 본심을 박유가 “자국 비판”인 듯한 레토릭을 구사해 대변해준 것이다.


‘죄’와 ‘책임’이라는 문제를 생각하다

저자는 이 책에서 한 개인이 자신이 속한 집단의 과오에 대해 일정한 책임이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프랑스 아비뇽의 한 베트남 음식점에서 있었던 일화는 매우 상징적이다. 프랑스를 여행하던 중 우연히 베트남 음식점에 들어간 저자는 그곳에서 젊은 날의 호치민과 닮은 주인 남자를 만났다. 베트남전쟁에서 한국군의 잔인한 용병으로서 역할을 아는 저자는 음식점 주인으로부터 “자포네?”(일본이세요?)라는 질문을 받게 되면 어떻게 말해야 할지 아주 곤혹스러워한다. “코레안”이라고 사실을 밝힌다면 주인 남자는 어떻게 반응할까? 저자는 주인 남자가 물이라도 끼얹으면 기꺼이 맞을 생각이었다.
사실 저자의 말처럼 그는 베트남전쟁과는 하등 상관도 없다고 할 수 있다. 전쟁에 나간 것도 아니고, 베트남 파병 결정을 한 한국 정권을 지지한 적도 없다. 오히려 저자의 두 형은 1971년 ‘모국 유학’ 중 정치범으로 투옥되어 고초를 겪어야 했다. 그러나 저자는 “한국 정부가 발행하는 여권을 갖고 여행하기 때문”에 ‘한국인으로서의 책임’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저자는 한나 아렌트의 ‘죄’와 ‘책임’에 대한 정의를 인용하여 이것을 설명한다.

한나 아렌트에 따르면, ‘죄’는 개인에 귀속되는 것이지 집단에 귀속되는 것은 아니다. ‘집단의 책임’에는 두 개의 조건이 있다. 즉, 자신이 행하지 않은 일에 대해 책임이 있는 것으로 간주되는 것이고, 자신의 자발적 행동으로는 해소할 수 없는 집단에 성원으로 속해 있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책임은 언제나 정치적이다. 오직 “망명자이거나 국가 없는 사람들”만이 이런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다. (본문 250쪽)

결국 저자의 결론은 개인으로서는 한국 베트남 파병의 ‘죄’를 짓지 않았지만 ‘한국인’으로서 정치적 의미에서 ‘집단의 책임’은 져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으로부터 부여 받은 ‘여권’이 아무리 사소한 혜택일지라도 말이다.
이것은 일본 사회도 마찬가지다. 전후에 태어난 일본인들은 일본국의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에 대해 ‘죄’는 없지만 일본인으로서 ‘집단의 책임’은 면할 수 없다. 예컨대 저자는 일제 강제동원으로 악명 높았던 가지마 건설을 예로 든다. 저자는 가지마 건설이 국가와 공모해 저지른 과거의 범죄를 가지고 그와 관련되지 않은 사람에게 그 ‘죄’를 물을 수는 없다고 본다. 그러나 주주, 사원, 하청, 고객 등의 형태로 가지마 건설의 기득권을 자기 몫으로 취하는 수익자들에게는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지마 건설이 지금 저지르고 있는 범죄(피해자의 보상요구를 거부하는 것)를 용인한다면, 그 행위는 이제 ‘책임’의 영역을 넘어서 한없이 ‘죄’에 가까운 것이다.


소수자의 눈으로 시대를 고발해온 진정한 지식인
우리 사회는 그의 책을 어떻게 읽어왔나?

젊은 시절 저자는 “나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말하고 있으니, 내 발언 따위는 곧 쓸모없어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이런 글쓰기는 접고 소설을 쓰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이제 만 60세를 맞은 저자의 눈에 비친 일본 사회는 더욱더 “황폐해져” 있다.

나는 글쓰기를 통해 ‘계속되는 식민주의’에 대한 저항을 지속해왔다고 생각하지만, 지금 눈앞에 펼쳐지는 일본 사회의 모습은 황폐해질 대로 황폐해져 있다. 우파의 야비한 욕설이 울려 퍼지고 리버럴 세력은 공허한 양비론을 중얼거리며 방관한다. 결과적으로 이런 무참한 사회를 젊은 세대에게 남겨주게 되었다. (「저자의 말」 중에서)

일본 사회는 침략의 역사를 반성할 수 있는 몇 번의 기회를 놓친 채, 수십 년간 부정과 회피로 식민지 지배 책임을 도외시해왔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는 저자의 이런 비판에서 자유로울까?
1990년대 초 『나의 서양미술 순례』가 처음 소개된 뒤, 저자의 저술들은 2000년대 초반부터 꾸준히 독자들로부터 애독되어 왔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서경식의 책을 통해 소비했던 것은 “피차별과 피식민지의 역사”가 증발된 ‘세계인’으로서의 이미지는 아니었을까? 역자 권혁태의 다음과 같은 분석은 날카롭다.

그가 『디아스포라 기행』을 한국에서 출간했을 때,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그가 내세운 ‘디아스포라’라는 말에 담겨 있는 사유와 고민을 읽지 않고 그저 ‘디아스포라’라는 말이 주는 해방감에만 주목한 흔적이 있다. 한국의 내셔널리즘적인 문화에 지긋지긋해 있던 (……) 사람들에게 ‘디아스포라’라는 말은 (……) 새로운 주체로서의 ‘세계인’과 같은 이미지였던 듯하다. (「역자의 말」 중에서)

저자는 전작들을 통해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냉전체제에 희생된 채 오늘에 이르는 재일조선인의 역사를 성찰하지 않고 ‘진정한 조국’(국경이나 혈통·문화에 의해 특정한 집단에게 배타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차별과 지배를 함께 극복해낸 자들의 자유로운 공동체)이란 불가능함을 말해왔다. 그리고 자신의 주장을 펼치기 위해 저술활동은 물론, 대학강의와 대중강연, 대담, NGO 참여 등으로 폭넓게 이어오고 있다. 이 책 역시 “계속되는 식민주의”와 겨루는 힘겨운 싸움의 하나이다.
역사적 책임과 소명을 잃고 안락한 삶에 안주하려는 다수자들이 지식사회를 장악해버린 시대에, 소수자로서의 정체성을 놓지 않고 자기 신념을 끈기 있게 밀고 나가고 있는 인물이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그 행운을 누릴 자격이 충분한지는 고민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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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1989년 히로히토 사망 직후 쓴 글( 3부 「네 번째 호기―쇼와의 끝과 ‘조선’」)에서 와다 하루키의 말을 인용하며 “(일본인 스스로) 침략과 수탈의 역사를 부정하고 조선반도 사람들과 새로운 관계를 창조해나갈” 네 번째 호기가 왔다고 주장했다. 앞의 세 번의 호기란 ‘일본 패전 때’와 ‘한일조약 체결 때’, 김대중 납치 사건이 일어났던 1973년을 말한다. 저자는 세 번째 호기(김대중 납치 사건)에서 “일본인과 한국 민주화운동 세력 사이에 연대의 싹이 생겨 일본인에게 조선인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하루키의 말을 인용했다. 그리고 천황 히로히토의 죽음, 곧 쇼와의 막이 내리는 시점을 네 번째 호기라고 지적했다. 일본 사회가 구시대와 선을 긋고, 식민 지배에 대한 사죄와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준다면 “조선을 비롯한 아시아 여러 민족과 진정한 우정을 쌓는” 호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의 목소리는 침략전쟁의 주역 천황을 변명하고 미화하는 일본 언론의 외침 앞에 그대로 묻히고 말았다.
그리고 20여 년이 지난 지금 일본은 대지진과 쓰나미, 원자력발전소 폭발로 전후 최대의 시련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큰 희생을 치르고 있다. 일본 대지진 참사 직후 한국 사회의 반응은 몇 가지 중요한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국내 시민 단체들을 중심으로 일본 지진 피해자들에 대한 활발한 성금 모금 활동과 기부 공연이 행해졌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수요집회는 지진 피해자들에 대한 추모 형식으로 진행됐다. 과거사 청산 문제에 지지부진했던 일본에 비난을 잠시 멈추고, 이웃나라의 자연재해에 함께 가슴 아파하며 작은 도움이라도 주고자 하는 현재 한국 사회의 인도적인 움직임에 대해 앞으로 일본 사회는 어떤 응답을 보내올 것인가? 이번 사건이 한일 양국의 화해를 위해 20년 만에 다시 찾아온 ‘다섯 번째 호기’일 수 있을까?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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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즐거운 휴무. Veterans Day. 1차대전의 종전을 기념하는 11월의 휴일이자 연말에서 연시로 이어지는 휴가시즌의 맛보기 같은 날이다. 참고로 5월에 기념하는 Memorial Day는 남북전쟁의 종식을 기념하는 날이라고 한다 (난 이걸 2차대전의 Victory in Europe을 기념하는 날로 오늘까지 알고 잇었다). 오전에 운동을 하고 사... 더보기
transient-guest 2019-11-13 공감 (1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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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이렇게 끊임없이 문제제기와 문제의식을 갖고 살 수 있을까? 일전의 박유하 사건은 우연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fairness와 상호존중을 가장한 글쓰는 협잡꾼 같은 박유하나 그 수준에서 편함을 추구하는 지식인들이 많을 수도 있겠다
transient-guest 2019-11-13 공감 (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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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 동안 읽은 책들을 대강 세어보니, 외국어, 학습서, 실용서는 제외하고 139권 정도 되네요. 그 중에서 가장 마음에 남는 책들을 골라서 정리해보았습니다. 순서는 가나다순입니다. 내 인생이다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에 종사하다가 인생 후반에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일에 눈을 떠서 과감히 전직을 하신 분들의 이야기가 담긴 책입니다. 올해 최고로 hot한... 더보기
키치 2012-01-01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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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이렇게 끊임없이 문제제기와 문제의식을 갖고 살 수 있을까? 일전의 박유하 사건은 우연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fairness와 상호존중을 가장한 글쓰는 협잡꾼 같은 박유하나 그 수준에서 편함을 추구하는 지식인들이 많을 수도 있겠다  구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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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기차게, 지치지 않고, 같은 소리만 반복..  구매
madwife 2011-07-13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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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형제의 치열한 사고의 세계는 따라잡기 어렵다. 그래서 더욱 매혹적인  구매
소금연못 2011-04-26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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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식 교수 책 중 어렵게 읽히는 책으로 꼽을만한데, 그만큼 찬찬히 음미해야 할 대목이 많은 책.  구매
초록민들레 2016-04-05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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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가는 노예의 초상

지난 며칠간, 어느 재일 지식인이 한 평생 갇혀있던 언어의 ‘감옥’안에서 나는 독서라는 ‘해방’감을 한껏 맛보았다. 누군가의 처절한 감옥이 감옥안을 투시하는 사람에게는 극도의 자유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 책이 가진 관전효과일까. 나처럼 책이라는 감옥에 스스로 갇히는 사람들에겐 커다란 행운일 것이다. 읽는 내내 내가 감당한 쾌감은 절대 반론할 수 없는 논리의 짜릿함이었고 나는 이처럼 치밀한 논리를 펼칠 수 있는 사람이 눈물날만큼 위대해보였다. 책을 덮고 서서히 차오르던 건 켜켜이 쌓여진 이성으로 허물어지던 감동이었다. 이 정도의 사유가 보장만 된다면 기꺼이 어떠한 감옥에라도 갇히고 싶을 정도였다.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얼마나 생각했으면, 얼마나 고민했으면 이런 결론이 나올까 싶어 짐짓 숙연해지기까지 했다. 내가 끄덕인 건 결론의 내용뿐만 아니라 그것을 이루는 단계의 완벽함이었다. 매순간 논리의 파편들은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구조와 본질을 띤 미세한 칼날의 흔적과 같았다. 이 책은 반론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낱낱이 증명하는 무혈투쟁, 비폭력의 사설집이다. 한국과 일본의 경계에서 난민으로 살아가야 했던 고독한 학자의 평론, 아름다운 저항문학이다.

서경식.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건 한국에 제일 먼저 소개된『나의 서양미술 순례』(2002, 창비) 였던 듯하다. 서슬퍼런 군사정권하에서 서승, 서준식이라는 두 양심수 형제를 둔 지식인 동생. 어렴풋하게 기억나는 건 불행했던 가족사를 지니고 살아가는 (예술가로서) 작가 정도로 생각했다. 미술작품으로 이루어진 에세이였고 주로 절망의 기호들을 내면으로 승화하는 내용으로 기억한다. 이 책을 덮고 나서 제일먼저 『나의 서양미술 순례』를 다시 찾아보았다. 에필로그에 이런 글이 있다.

“지나간 20년의 세월에 배운 것이 있다고 한다면 희망이라는 것의 공허함일지도 모르겠는데, 뒤집어 생각하면 그것은 도리어 쉽게 절망하는 것의 어리석음이라 할 수도 있다. 그 희망과 절망의 틈바구니에서 역사 앞에서 자신에게 부과된 책무를 이행할 뿐이다.”

지난 20년은 형들이 체포되어 출옥하기까지의 기간을 말한다. 이 책에는 그의 가족사가 사실위주의 객관적인 신문기사처럼 서술되어 있지만 내 기억으로 형님들의 억울한 투옥과 이어지는 부모님의 사망은 거의 서교수의 사유가 시작되는 뼛속 상처의 시원이었던 것으로 느꼈었다. 알려졌듯이 그의 형님들은 아직 생존해 계시고 평화, 인권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들 형제보다 인생을 많이 살진 않았지만 서교수 입장에서 본다면 차라리 가족이 아닌 내가 긴 세월 감옥에서 옥살이를 하는 편이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철없는 생각도 해본다. 이 번 책의 제목엔 ‘감옥’이라는 단어가 그의 인생을 표상하는 듯 세월의 무게가 예사롭지 않았다. 자연 나는 형님들이 실제 머물렀던 서울의 '감옥'도 중첩되어 퍼뜩 (서교수 입장에서)미켈란젤로의 조각상, 노예시리즈를 떠올렸다. 서교수가 <빈사의 노예 L’Esclave Mourant>(1513~15) 같은 작품을 보고 형님들을 연상했다면 나는 같은 이미지에서 서교수의 초상을 발견하게 된다. 돌 안에 갇혀있는 듯이 보이는 죽어가는 노예가 꼭 아직도 식민지에서 해방되지 못한 재일조선인으로 보였달까. 사실 직접적인 이미지는 '죽어간다'보다 '잠들어 있다'에 가깝지만  잠든 채로 그 상황을 유지할수 밖에 없어 어떠한 외부적 조건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게 느껴진다는 점이 노예를 지배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노예라 칭하기에 더없이 아름다운 형상이다. 공교롭게도 미켈란젤로는 ‘나의 조각은 돌 속에 이미 들어있는 형상을 해방시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돌로 노예를 조각하는 미켈란젤로는 해방감을 느꼈겠지만 그 해방감으로 탄생한 노예는 어떨까. 노예가 처절하고 고통받을수록 절대 노예를 벗어나지 못할수록 관람자는 예술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터이다. 잔인한 현실이다. 돌 속에서조차 돌로서 돌만큼 해방되지 못한 서교수의 상처가 미안하게도 아름다워 보였던건 해방되고자 하는 염원의 에너지 때문이었을까. 돌을 벗어나고자 몸부림치던 그 염원이 지독히도 숭고해 그것은 흡사 영혼의 그림자처럼 다가온다. 어쩌면 필사의 몸부림이 자신이 표현하는 가장 매혹적인 자태가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하필, 이 책의 부제는 ‘어느 재일조선인의 초상’이다. 꼭 평면적인 초상畵의 영혼이 가두어 두기엔 너무 생생하고 절절하여 스스로 입체적인 인물상으로 주형된 느낌이다. 그러니 사람이 비춰진 초상(肖像)이 아니라 사람을 초월한 초상(超像)이다. 하지만 우린 이미 오래전에 재일조선인이라는 개념을 초상(初喪)치른 것이라면?  아마도 우리가 초상(初喪)을 치루었기에 그의 초상(肖像)은 초상(超像)으로 더욱 완벽해진 것이리라. 우리는 이제라도 그의 초상을 가만히 앉아서 고정된 자세로 관조할 것이 아니라 일어서서 한 바퀴 돌아 구석구석 관찰해야 하지 않을까. 그를 옥죄고 한평생 가두어버린 쇠사슬의 차가움을 온도로 체험하고 그 표면의 단단함을 직접 어루만져 보아야 하는 건 아닐까.


               
<빈사의 노예 , 1513-15>                                 <반항하는 노예, 1513>


그런데 내게는 ‘재일조선인’이라는 신분이 생소했다. 아니 서경식 교수와 같은 분을 언급할 때 거의 쓰지 않는 단어에 가까웠다. 어렸을 땐 재일 ‘동포’라는 단어를 자주 접했고 성인이 되고 나서는 재일, 재미 ‘교포’라는 단어에 더 익숙해진 듯하다. 언어라는 게 세월에 따라 시대상을 반영하기 마련인데 ‘동포’는 70년대에 그리운 식민지 시대 형제 자매를 연상케 하고 ‘교포’는 어쩐지 80년대 이민간 이웃을 떠올리게 한다. 이 책을 읽고 비로소 생각해보았는데 요즘은 방송에서도 ‘교포’라는 민족적 뉘앙스보다는 ‘해외파’라는 선진국 꼬리표를 더 선호하는 것 같다.(아이돌 그룹이 생기면서 더 심해졌다) 교포 2세니 3세니 하는 세대구분이 우리에게 큰 의미가 없어진 것이다. 그러다보니 같은 신분이지만 ‘교포’라고 하면 타국에서 고생하며 자수성가해 고향을 그리워하는 사람같고 ‘해외파’라 부르고 나면 어쩐지 유학이나 오랜 외국생활로 사고가 세련된 이미지를 부여받는다. 그런데 여기에 나이와 세대의 개념이 추가되면 교포는 우리가 자주 듣는 유명연예인과 몰래 결혼한 그 재미, 재일 ‘교포’로서 성공한 사업가나 국제 변호사 정도의 재력가를 연상하게 된다. 즉, ‘교포’는 더 이상 젊은 세대가 아닌 것이다. 정리하면 ‘동포’는 할아버지 세대, ‘교포’는 아버지 세대, 그리고 자식은 ‘해외파’로 이어지는 기분이다. ‘재일조선인’ 이라는 신분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시대와 사회적 변화에 따라 우리는 우리가 좋을 대로 우리 편한 대로 그들을 언어의 감옥에 가두어 둔 것은 아닐까. 그러니 서교수가 고수, 주장하는 재일조선인의 ‘조선’은 지금의 나로선 너무 먼 시대이자 많이도 당황스런 언어이다. 솔직히 일제시대로 돌아간 느낌, 썩 유쾌한 감정은 아니다. 독일가서 독일인과 대화할 때 굳이 나치시대를 화제로 삼아 그들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 대화의 매너가 아니듯 알고는 있지만 부러 꺼내어 우리가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사실을 서로가 주입할 필요가 없는, 그런데 오랜만에 만난 교포한분이 줄곧 ‘조선’의 이야기만 들려주는 기분이랄까. 서교수는 이렇듯 한국땅에 살고 있는 나같은 한국인과 일본땅에 살고 있는 자신같은 한국인과의 물리적, 심리적 거리감을 회피하지 말고 신랄하게 바로볼 것을 끈질기에 호소한다. 바로 서교수는 아직 재일조선인 2세로서 자신이 태어난 1951년에 별수 없이 재일조선인이 되어버린 그 자리에서 꼼짝없이 머물러 계신 분이다. 세월은 60년이 흘렀고 식민지라는 치욕과 불행도 추억이나 망각의 선로를 향한 것으로 보였지만 그것은 우리의 착시, 착각에 불과했다고 강조한다. 뒤돌아보지 않고 너무 많이 달려왔기에 그와의 거리는 꼭 세월과 비례했지만 재일조선인이라는 섬에 고립된 그는 몇 십년 째 외치고 있었다. 누가 들어주지 않거나 듣고서 고개를 돌렸다 해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말한다. 그나마 글재라도 있는 자신이 죽는 날까지 말하고 써야한다고. 그것이 재일조선인으로서 자신이 해야할 가장 의미있는 일이라고. ‘희망과 절망의 틈바구니’, 자신이 걸어온 역사 앞에서 '자신에게 부과된 책무'를 묵묵히 이행할뿐이라고.


한 점 부끄럼 없는 언어

이 책은 서교수가 일본에서 나고 자라 ‘모어’와 ‘모국어’가 일치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감당해야 했던 언어로부터의 ‘폭력’과 그로인해 갇혀있던 언어의 ‘감옥’에 대해 제일먼저 말하고 있다.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를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을 사랑해야지’라고 번역하는 일본의 해석에 숨은 식민주의적 권력관계를 예로 들며 독자로 하여금 민족감정을 자극한다. 윤동주 시인의 저항정신을 높이 사는 것이 아니라 인류 보편적인 실존과 사랑을 주장하며 그들이 교과서에까지 <서시> 전문을 싣는 의도를 알고 있느냐 질문한다. 서시를 번역된 시로 읽으며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아가자는 것을 재일조선인의 자의식으로 여길만큼 윤동주를 읽었다는 서교수는 최초번역이 훗날 (일본의 입맛에 맞게)다르게 번역된 사실에 고통스러워 했다. 감쪽같이 묻혀지는 진실을 확인한 그에게 시 한구절의 의도된 오역은 식민지 종주국으로서의 계속되는 만행이었다. 그것은 ‘일본어를 모어로 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할 수 밖에 없는 재일조선인의 아픔을 상징하는 단서이며 곧 ‘모어의 폭력’이라 말한다. 모어로부터 생기는 의심과 위화감이 곧 감옥인 것이다.

한때 나는 우리가 일본의 식민지가 아니라 미국이나 영국의 식민지였다면 지금처럼 영어에 목숨을 걸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생각한 적이 있다.(물론, 우리 언어를 고수하려는 불굴의 정신으로 영어가 기대만큼 지배어가 되지는 않았겠지만) 내 아버진 중학교시절 배운 일본어 덕에 훗날 일본인을 상대로 하는 직업에 종사하셨다. 부모님 모두 부산에서 오래 사셨는데 어린 시절엔 일상 대화속에 태반이 일본단어(벤또, 코프, 오까네, 라이방등등)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사용한 단어가 사투리가 아니라 일본어를 남도식으로 발음한 단어였다는 것을 최근에 알게 된 단어도(예를 들면 오봉-쟁반) 있다. 지금도 건축이나 인테리어, 영화나 광고, 출판 편집 현장에는 작업용어로 영어가 변형된 일본단어가 습관처럼 쓰이고 있고 무의식적인 식민지 잔재는 거의 내 세대까지 이어져 온 것 같다. 만약 이 모든 단어들이 오리지날 영어였다면 하는 (비굴한)생각, 나만 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재일교포보다는 재미교포가 더 부러웠고 (외국어를 습득한 교포로서)일본어에 대한 경쟁력을 그다지 높이 평가하지 않아왔다. 만약 미국의 식민지가 되어 서교수 가족이 재미조선인이 되었다면 어땠을까. 부질없지만 세계어를 모어로 두었기에 모어가 일본어인 아픔에는 미치지 못하지 않았을까. 이런 단순 도식적인 발상에 머물렀던 나는 그가 예로든 세 명의 유대계 지식인의 불행앞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모어인 독일어로 시를 썼던 파울 첼란 , 아우슈비츠에 수용되었던 장 아메리와 프리모 레비는 모두 언어의 균열을 극복하지 못하고 궁극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대표적 언어감옥 수감자였다. 모어가 어떤 나라의 언어이건 자신의 모어가 자신들을 지배한 옛 침략자의 언어였고 원래 모어였어야 할 언어를 태어나기 전부터 박탈당했다는 의식은 특히나 글이 자신의 대리인인 작가들에게 뼛속 응어리와도 같은 치명적인 폭력이었다. 모어를 완벽하고도 아름답게 구사할 줄 안다는 재능이 자신에게 형벌이 되는 사람들이다. 서교수는 ‘모어의 권리’가 ‘모국어의 권리’와 양립하는 새로운 다언어, 다문화 공동체와 같은 창의적인 언어개방 형태를 이상적으로 제시했는데 나같이 국어 내셔널리즘(국어사용=국민)에 익숙한 독자에겐 일종의 충격에 가까웠다. 올바른 국어사용을 국민교육의 절대가치 정도로 교육받아온 모국어 경력을 떠올리면 상당히 자유로운 발상이었다. 서교수가 제시하지 않았으면 생각해보지도 못했을 문제였다, 고 해야 맞다. 서교수에게 자신의 의식을 형성한 일본어가 가장 의식적인 벽이 되었던 지난 세월동안 우리가 한 것은 당신들도 한국인이라면 한국어를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는 본국에 살고 있는 한국인으로서 국민 자격검증 같은 일종의 무언의 폭압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그동안 단일 민족, 단일 언어, 같은 이념이라는 국민적 감옥에 오랜 세월 갇혀 있었던 것은 우리가 아닐까.

또 하나 외양적으로 보면 재일조선인은 분단이라는 한국의 특수상황과는 멀리 떨어져있어 우리가 느끼는 안보, 평화의 실질적 부담감에서 자유로와 보인다. 전쟁에 대한 두려움도 덜할 것 같다. 그런데 재일조선인의 뇌리에 내면화된 분단이란 국토의 분할이라는 형식적인 문제가 아니었다. 파고 들어가 보면 그들의 자기해방에는 반드시 본국의 통일과 민주화라는 과제가 하나의 몸뚱아리처럼 결속되어 있다. 재일조선인은 이미 ‘재일’이라는 외국인 신분과 ‘조선’이라는 전쟁이전 국적이라는 두 가지 불이익을 타고난 존재이다. 서교수의 형님들은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사건’ 주모자로 몰려 20여년 간 옥살이를 했다. 언뜻보면 서교수 가족이 어쩌다가 특별한 사건에 연루된 예외적 상황으로 보이지만 당시 재일조선인은 옥살이만 하지 않았을 뿐 대부분 일본의 동화압력에 따른 일본국적을 포기하고 한국의 군사정권에는 불복종한 이중의 저항자들이었다. 서교수 가족의 불행은 1965년 한일수교 후 한국정부가 재일조선인을 한국 국민화 작업에 착수하기 시작한 후에 일어났다. 서교수는 이때 ‘조선적’과 ‘한국적’중 하나를 택해야 했고 한국을 오가기 위해서는 ‘한국적’을 얻어야 왕래가 가능했다. 한국전쟁 이전에 일본으로 이주한 서교수 가족에게는 북한에 가족을 둔 지인들도 있었고 다행히 북한으로 귀환한 사람도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이 더 많았을 것이다. 당시 ‘조선적’이라 함은 조선의 북 또는 남에 대한 국가적 귀속이 아니라 조선민족 전체에 대한 민족적 귀속을 의미했다. 그런데 1965년 한일조약을 계기로 재일조선인은 강제로 분단을 맞은 것이고 ‘한국적’으로 편입하지 못한 나머지 ‘조선족’은 사실상의 난민으로 방치된 것이다. 일본에서 태어나 ‘나는 조선의 스트라이커’라고 말했던 정대세 선수의 부모님도 당시 ‘조선족’에서 ‘한국적’으로 바꾼 경우이며 그래서 정대세 선수의 국적은 ‘대한민국’일 수 있었던 것이다. 서교수의 작은 아버지는 (식민지 시대)일본국적 소유자였지만 해방 후 다시 일본으로 역귀환하려 했을 때 입국을 거부당하고 수용소로 이송된 후 한국으로 강제송환 당했다. 연합군은 일본의 공산화를 우려해 조선인의 이동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작은 아버지는 전쟁 후 목숨을 걸고 일본에 밀입국에 오랜 세월 불법체류자인, 무국적자로 살다가 결국 자살했다.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사회에 살면서 실은 조국의 분단상황으로 인한 실질적 피해는 더욱 극명하게 미치는 경우였다. 전쟁과 분리되어 있었던 이들에게 국적 선택은 강요된 억압이자 이차적인 민족 분열이었다. 그러니까 일본사회에선 (귀화하지 않으면)재일한국인이라 멸시 당하고 한국사회로부터는 (국민 자격검증에 의해)무언의 차별을 당하고 (원래 하나의 조선이었던)북한과는 생이별을 하게 된 경우인 것이다. 오늘날 땅따먹기처럼 시행된 한국의 군사분계선이 내게 가지는 의미는 오로지 전쟁발발의 최후 평화선 정도로 밖에 생각하지 못했다. 분단이 가져온 재일사회의 파장은 실은 분단에 놓인 한국사회가 감당하는 표면적 고통보다 더 오래된 암울한 상처였다.

그가 자신들의 환부를 예로 들어 논리를 완성해 나가는 모습은 시종일관 엄숙하고 차분하다. 코리안 디아스포라로서의 언어경험을 섬세하게 서술해 나가는 어떤 증언의 현장에 동참한 느낌이랄까. 증인이라는 무거운 짐을 진 덕택에 수용소에서 살아남았지만 증언에 귀 기울이지 않는 단절의 세상에 절망하며 자살을 선택한 프리모 레비의 고통은 어쩐지 서교수가 감당하는 언어 감옥살이의 심정을 대변하는 것 같아 먹먹한 기분이 든다. 강제 수용자 생존자로서 증언하는 것이 힘들었던 것이 아니라 인간은 증언을 들어주고 증언으로부터 교훈을 얻는 것이 불가능한 존재일지 모른다는 그의 증언이 뼈아프게 들리는 것은 바로 서교수의 자기 生의 증언이 재일조선인의 지겹고도 진부한 피해의식이라 여길지 모르는 한국청취자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어로 소설과 에세이를 쓰고 싶다는 그가, 그것이 모국어를 습득하는 자신의 목표이자 소원이라는 그가 자랑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이미 한국어로 문학작품을 집필하지 않아도 모국어인 한국어를 모어가 한국어인 우리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이 아닐지.


감옥에서 탈출한 진실

언어가 ‘의식’의 감옥이었다면 식민지는 ‘신분’의 감옥이었다. 언어의 감옥에서 심리적 분열증이 발생했다면 식민지의 감옥에서는 물리적 희생이 파생된 것이었다. 서교수는 한일간 식민지 잔재를 청산하기 위한 양국간의 화해도 연출된 폭력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화해를 하려면 먼저 가해자와 피해자가 마주보아야 하는데 일본은 ‘이해하지 않으려는’ 다수자를 변호하면서 소수자에게만 ‘이해를 받기 위해’ 노력하라고 요구한다는 것이다. 아시아 국가들의 사죄와 보상을 오랜 세월 묵살해온 일본은 늘상 ‘도의적’ 책임은 있지만 ‘법적’인 책임은 없으므로 자신들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논리이다. 침략전쟁이라는 의미를 불문율로 부치고 공동체를 위한 자기희생이라는 자기만족적 미학에 빠져 강렬한 자기애를 실현하고 있는 일본지식인, 리버럴파를 자국의 국가범죄와 공범관계를 맺은 이기적 주체라 비난한다. 논리적 질문에는 ‘답하기 어렵다’는 답으로 구체적인 답을 회피하고 책임소재 문제에는 불가피했던 당시 정황을 물고 늘어지며 미국과 책임을 나누려는 비겁한 태도를 보이거나 혹은 미국등의 열강에 책임을 지우려는 파렴치한 모습으로 일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끈덕지게 사과를 요구하는 피해자측을 오히려 화해를 방해하는 평화반대주의자로 몰아 세운다. 서교수가 보기에 문제는 일본이 아니라 한국의 불신에 있다는 박유하의 가짜 화해론이야말로 일본 리버럴파가 대환영하는 화해 컨텐츠라는 것이다. 서교수는 언뜻 보기에는 문제가 없어 보이는 일본 학자들의 논리를 샅샅이 해체하고 분석하여 문장단위로 깔끔하게 반박하는 논조를 펼치셨다. 적확한 근거와 심리적 배경, 의미있는 자료들을 바탕으로 매 순간 일본의 허점과 정곡을 찔렀다. 서교수의 냉철하고도 예리한 비판은 이 책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들이고 당장이라도 좇아가 배우고 싶은 마음이 생길 정도였다. 그중에 숙연해지기까지 했던 사유의 결정은 베트남 국민에 대한 죄책감을 말하는 부분이었다. 서교수는 베트남전에 용병으로 참전했던 한국군의 잔인성을 잊지 않았다. 우리에겐 늘 희생의 대명사로 각인된 베트남 파병(한국)군인이었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서교수는 베트남에 파병된 한국군과 같은 세대로서 자신이 베트남 파병에 어떤 관여도 하지 않았고 당시는 물론 지금까지 한국에 살지도 않았지만 한국적을 가진 재일조선인 2세로서 베트남 국민에게 책임이 있다는 점을 재차 부연했다. 베트남 국민에게 사죄해야 한다는 생각같은 건 한번도 해보지 않은 나였기에 멍한 기분마저 들었다. 하지만 서교수는 (베트남에 사죄하지 않는) 한국정부가 발행한 여권으로 한국민이 행하는 권리를 누릴 수 있는 한국적 보유자이므로 죄의 여부와 상관없이 책임은 존재한다는 논리였다. 서교수가 책임을 느끼는 건 아마도 ‘사죄하지 않는 나라’에 대한 상처에서 기인한 본연의 자기반성이었을 터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전후 일본인들은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에 대한 죄는 없지만 일본인으로서 집단적 책임은 면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존경스러웠다. 그리고 한국인으로서 그러한 책임을 한번도 느껴보지도 가져보지도 못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서교수의 통찰은 한국민이 하지도 않는 부분에까지 뻗어 있었다. 어찌보면 ‘사죄하지 않는 심리’가 ‘사죄 안 받아도 상관없는’ 심리와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에 결국 우리는 일본 리버럴파와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을 한다. 타국에는 우리의 잘못을 사죄하지 않으면서 일본에는 끝까지 사죄를 요구할 자격이 있는지 반문하게 된다.

서교수는 말한다. 일본 리버럴파는 1990년대 이후 이어진 증언의 시대를 묵살하였고 1989년 히로히토 천황의 죽음이후 자신들의 책임을 인정하고 국가적 사죄와 보상을 통해 한국과 창조적인 관계를 마련할 수 있는 기회를 매번 유보, 실기하여 사상적으로 퇴폐에 이르렀다고. 일본의 지식인들은 식민지 극복보다는 보다 글로벌한 동아시아의 새로운 체제를 위해 평화가 가장 중요하다는 논리로 과거를 봉인한 채 화해만을 기념하려 든다고. 서교수는 이러한 국민주의적 내셔널리즘에 빠진 그들이 국가로부터 은혜를 받아 온갖 혜택을 누리면서 정작 국민이나 민족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는 국가와 민족을 뛰어넘으라고 발언하는 것과 같다며 이 역시 이념주입의 폭력이라 주장한다. 마치 사죄만을 요구하는 상대를 과거에 묶여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는 옹졸한 국민으로 치부하며 지금부터라도 잘 지내보자 하는 것과 같다고. 그런데 가만 보니 나도 그렇게 생각해왔던 것 같아 고개를 들 수가 없다. 지나간 일은 전세대의 일이고 우리 세대는 더 중요한 세계화를 향해야 한다는 논리는 일본 리버럴파가 아닌 한국의 보수, 진보 모두에 해당되는 암묵적 합의 아니었을까. 리버럴파에 부합하여 일본에서 열렬히 환영받았다는 박유하는 바로 화해없는 화해극의 시나리오와 주연, 연출까지 맡은 한국의 젊은 세대를 표상하는 것으로 느껴진다. 사죄도 없었으니 용서 안해도 된다는 심리는 서로가 편한 구석이 있다. 서교수가 염려한 것은 궁극에 서로 아무일도 없었던 것으로 여기자는 국익우선주의는 아닐까 싶다. 서교수는 ‘역사적인 유래가 저항의 소중한 무기’라고 말한다. 식민지와 세계전쟁이라는 역사가 낳은 재일조선인은 특별히 반항적이라서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식민주의와 분단을 극복하는 것 자체가 저항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었다. 이 책의 마지막장에 실린 서교수와의 대담내용은 다소 이상적으로 느껴져 크게 와닿지는 않았다. 통일이 분단과 식민주의를 극복하는 길이라는 결론과 통일의 방법, 형태의 시나리오는 어쩌면 남일처럼 생각되는 너무나 먼 비현실의 이상에 가까웠다. 하지만 ‘식민주의와 냉전체제를 거치면서 분단이 양산한 디아스포라’라는 존재들을 모두 다 포함한 온전한 통일이 가능만 하다면 그리고 그 실현주체가 한국민이라고 한다면 분명 인류 역사적인 사건임은 틀림없다. ‘인류역사가 나아가는 과정의 한 단계’로서 다원주의를 채용하여 다중국적, 참정권을 인정하는 나라. 동아시아를 향해 한반도를 개방하는 해방의 통일. 이루어질 것 같지는 않지만 이 책을 집필한 서교수의 입장에서는 가장 완성된 결론이라는 것에 이견은 없다.

3.11 일본 지진후 나는 과거 역사적 감정보다는 자발적으로 인류애적인 온정을 발휘하는 네티즌과 그에 호들갑을 떨며 기부액수를 이슈화하는 방송 언론이 탐탁치 않았다. 한창 기부가 유행처럼 번져갈 때 행여 (불행에 빠진)일본에 대한 비난을 했다간 몰매라도 맞을 기세였다. 우리가 분명 인류애를 발휘해 일본의 고통을 모른척 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우리 스스로도 만족할만한 발전이었지만 과열된 여론과 인류애 호소에의 무조건식 확산은 또 언제든 반대의 이슈만 있으면 마찬가지의 비난여론으로 뒤집힐 성질의 것이라는 생각이 많아서였다. 연이어 보도된 독도문제만 보아도 여론은 지금의 우호적 현상에 '찬물' 을 끼얹는 분위기라 일관했다. 내 생각에 일본은 원래부터 '찬물'이었다. 문제는 찬물의 온도를 때에 따라 다르게 느끼는 우리네 변덕 아니었을까. 일본은 한국의 기부라는 뜨거운 주관앞에서도 줄곧 찬물다운 객관을 잃지 않았다는 점에서 언제나 배울만한(?) 나라인 것은 분명하다. 엊그제 기사를 보니 계속되는 여진과 원전사태가 아직 끝나지도 않은 상태에서 일본은 벌써 피해지역의 발전계획을 내놓고 있다고 한다. 이것이 일본이다. 복구, 재생, 부흥으로 이어지는 이들의 미래발전계획이 당연히 일본 자국의 몫이듯이 독도를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도 자신들의 책임이라 여길 터이다 . 일본에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그들은 매사에 매순간 상대에게 습관적으로 실례했고 미안하다 노래를 한다. 병적으로 남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악으로 여기며 어릴 때부터 피해주지 않는 인간형을 학습하게 된다. 나는 이것이 전국의 나무 잘라 종이 만드는 회사가 자연환경은 보호해야 한다는 광고를 몇 십년 반복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 생각한다. 아시아 지역의 민족에게 그 누구보다도 큰 피해를 준 일본이 일상에서는 절대 피해주지 않는 국민으로 살아가는 것은 대략 이해가 가는 생존전략이라는 생각이다. 일본에 가면 매번 뜻밖에도 친절하고 이렇게도 매너좋은 사람들, 우리보다 조용조용하고 길가에는 담배꽁초 하나 보이지 않는 이토록 깨끗한 나라가, 모르는 사람에게도 밥 먹듯이 사과하는 이 나라의 국민이 과연? 하는 의구심을 품게 된다. 지난 시절 일본을 드나들며 나는 (한국사람만 아니라면)배려하는 일본, 깨끗한 일본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도 해본 적이 있다. (지진만 아니라면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지만) 사는 건 자유고 선택은 개인의 문제이다.  하지만 주거환경으로서 일본을 선택하려 했던 한국인인 내가 잠시 잊고 있었던 사실이 있다. 그들은 자신들과 우리 사이에 있었던 일을 모른다는 것, 아니 알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신들이 무엇을 했으며 그것은 어떤 의미이며 그로 인해 우리는 어떤 피해를 당했는지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 우리가 모르는척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은 앞으로는 모르는 일로 하고 싶기에 자신들의 다음 세대엔 가르쳐 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사실과 다르게 가르쳐 주고 있기까지 하다. 이 책은 그들이 왜 우리를 모른 척 하는지, 왜 모르는 것으로 하고 싶은지, 왜 모르는 것이 더 좋은 것인지 소상히 알려준다. 그런 것들이 일본을 택하는데 상관이 없었던(상관하고 싶지 않았던) 내 자신을 가만히 원점으로 돌려 놓는다.

이번 독서로 '논리적 사유'가 얼마나 아름다운 능력인지 알게 되었다. 어떤 주장을 내세우고 그것에 대한 반론에 논리적으로 근거를 제시하고 상대측을 설득하고자 하는 것은 상대와의 싸움이기도 하지만 결국 자신과 더 치열한 싸움은 아닐까. 상대 논리의 헛점을 공격하고 비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빈틈없는 자기논리의 정당화, 완성화를 통해 폭력이 아닌 평화를 소원하는 방법이 아닐까. 자기주장을 힘이 아닌 논리로 전파하는 건 꼭 일본이 우리에게 행사한 폭력의 역사에 보란듯이 항거하는 윤리적인 방식일 것이다. 그리고 일본이라는 가해자를 최대한 배려하는 일본지식인으로서의 최선일 것이다. 서교수는 자신의 주장이 관철되지 않거나 간과되어도 평화적인 토론과 설득의 기본정신만은 잃지 않고 끊임없이 자기성찰을 멈추지 않을 듯하다. 시 한줄, 기사 한 단락, 논문 한 구절도 폭력을 용인하지 않은 그의 '이성'과 오독과 반론을 용기있게 제시하는 그의 '감성'이 새삼 뭉클해진다. 한 가지 잊지말고 새겨야 할 것은 그 모든 이성과 감성은 어느 재일조선인의 감옥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는 것이다. 일본인도 아니고 한국인도 아니고 왔다 갔다 다만 모두이거나 또는 아무도 아닌 경계의 섬에 갇혀있던 시간의 깨달음이라는 것이다. 이제 차디찬 쇠사슬의 감옥을 뚫고 출옥한 진실앞에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열쇠는 우리 몫이다. 기존의 감옥에 갇힐 것인지 새로운 문을 열고 세상을 볼 것인지 그것은 우리의 선택인 듯하다. 다시금 두 손에 쥔 열쇠가 뜨겁다. 그가 차가운 쇳덩어리만 건네준 것은 아닌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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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사람 2011-04-29 공감(18) 댓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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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의 윤리와 디아스포라의 꿈 새창으로 보기
“‘재일조선인들이 이렇게 어렵게, 곤란하게 사는지 몰랐다’ ‘관심이 모자랐다, 반성한다’ 이런 성실한 얘기를 많이 듣습니다. 그런데 제가 진짜 말하고 싶은 것은 그런 게 아니거든요. 우리가 얼마나 억울한 상태에 있는지, 얼마나 일본인들한테 멸시받으며 살았는지 그런 게 아니에요.”

_ 박권일 ‧ 서경식, 「디아스포라로 살아가는 건 나의 숙명」, 󰡔말󰡕 240호, 2006. 6, 49면.



2006년 6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서경식은 자신이 쓰고 있는 재일조선인 문제나, 국가주의 ‧ 민족주의 비판과 같은 내용들이 한국의 독자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궁금하다며 위와 같이 말했다. 이 말은 우리가 ‘서경식’이라는 텍스트를 읽을 때 쉽게 만나게 되는 의외(意外)의 지점이 무엇인지를 말해준다. 2011년 봄에 출간된 서경식의 새 책 󰡔언어의 감옥에서󰡕는 다시 한 번 내 이야기를 꼼꼼히 들어보라고, 그리하여 이 “성실한 오독”에 내재된 (무)의식과 피하지 말고 맞서보라고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다.





  이 책에서 새삼 알게 되는 놀라운 점은 식민 지배에 대한 증언과 청산, 해방과 동시에 ‘과거형’이 되었어야 할 식민지배라는 역사적 사실이, 실은 해방 이후에도 얼마든지 지속되었었다는 사실이다. 이 책에서 꼼꼼히 적고 있는 것과 같이, 1890년 10월 30일에 발포되어 조선인을 ‘충량한 신민’으로 정의했던 식민지배의 명제인 ‘교육에 관한 칙어’가 공식적으로 폐기된 것은 해방이 되고 나서도 3년이나 지나서인 1948년 6월 19일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일본군 위안부였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증언한 사람이 나타난 것은 그보다 훨씬 오랜 후인 1991년의 일이다. 이는 우리가 흔히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자마자 그 이전과는 판이한 세계가 펼쳐지거나, 그렇지는 않더라도 엄청난 변화와 갱신의 역동적인 움직임이 쏟아졌으리라는 우리의 상식적인 믿음과는 배치되는 것이다. 어쩌면 이는 그간 ‘해방’을 낭만적으로 사유함으로써 식민주의에서 어서 벗어나고자 하는 피식민자의 욕망을 충족시켜 왔던 일례로 읽힐 수도 있다.



  이 ‘유예’된 청산과 증언의 시간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무엇일까. 해방 이후 ‘즉각적으로’ 행해졌어야 할, 식민주의를 직시하고 그것에 균열을 내려는 작업들이 일어났던 것이 불과 얼마 전의 일이라는 것이라는 점은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하는가. 법적인 식민지배는 끝났지만, 해방 이후에도 ‘식민주의’는 엄연히 지속되었다고, 여기 그 시간을 온몸으로 살아온 ‘산 증인’이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것을 보여주는 것이 재일조선인의 삶이며, 이 책은 무엇보다 ‘재일조선인’의 육체에 각인된 명백한 ‘식민주의’에 대한 고발이다.



  그러나 저자에게 ‘재일조선인’은 언제나 놓을 수 없는 키워드이지만, 그는 이 존재가 딜레마적이라는 것을 안다. 한국에도 익히 잘 알려진 이양지라는 작가의 (무)의식을 통해 그가 밝히려 하는 것은, 우선 재일조선인 스스로 ‘재일조선인’이 아포리아의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고 감당해야 하는 고통과 그 윤리이다. 그것은 ‘재일조선인’ 자신이 스스로 소수자로서의 삶을 연민하고, 타자에게 동정을 호소하는 것과는 다르다. 그렇다고 자신의 존재를 통째로 부정하고, “완전한 일본인”이나 “완전한 한국인”이 되는 것만도 능사는 아니다. 저자는 이 아포리아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만이 “재일조선인의 숙명”이라는 점을 아프게 묘사하고 있다. 그가 이양지를 “여동생”으로 묘사함으로써 ‘가부장적 비유’라는 비난을 받게 될 것마저 감수하면서도 이와 같은 발언을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이양지는 그녀의 작품 󰡔유희󰡕에서 모국 ‘조선’의 소음에 동화되지 못하고 계속 거리감을 느끼면서도 끝내 조선에 붙들리듯이 매여 있는 재일조선인 상을 그렸다. 그러나 서경식이 보기에 이때 이양지는 “한국 사회의 시끄러운 소음과 목소리라는 표상”을 통해 ‘가난한 서민은 시끄럽다’는 일종의 계급적 스테레오 타입을 무비판적으로 되풀이함으로써 민족적으로는 연대하지만, 계급적으로는 연대하지 않는 재일조선인의 상을 그린 것이다. 이를 통해 저자는 이양지가 재일조선인 상에 투영된 자기상을 나르시시즘적으로 극복하는 것을 경계한다.



  1부의 끝과 2부의 첫머리로 이어지는 프리모 레비와 장 아메리, 파울 첼란에 대한 글들은 한반도와 일본 열도로부터 가장 멀리 있는 텍스트를 다룬 글이지만, ‘지금-여기’의 식민주의에 대해 가장 치열한 사유를 보여준 이 책의 ‘절정’이다. 그리고 동시에 ‘디아스포라의 언어’라는 관점으로 이들이 겪은 고통을 이해하려는 가장 새롭고도 성실한 시도이다. ‘모어 공동체’가 파괴되지 않았기에 아우슈비츠 이후에도 돌아갈 곳이 있었던 프리모 레비, ‘모어 공동체’를 적에게 빼앗기고, ‘적’의 언어와 문화만이 남겨진 장 아메리, ‘모어 공동체’ 자체가 이미 다언어 ‧ 다문화가 혼재하는 곳이었던 첼란에게 겹쳐지는 ‘디아스포라’의 삶과 그 운명에 대해 논한 이 글들은 ‘일본적(日本籍)’과 ‘한국적(韓國籍)’, 그리고 사실상 난민과 같은 ‘조선적(朝鮮籍)’이라는 허구적 선택지에 의해 ‘절멸’되는 재일조선인의 삶과 적절하게 유비된다.



  ‘월경(越境)의 상상력’이 학계의 대안이자 유행이 되면서, ‘호모 사케르’라든지, ‘난민’이라든지 하는 말이 흔하게 되었지만, 한편으로 이 말들은 저자의 서술대로 마치 집시나 유목민(nomad) 혹은 코스모폴리탄 지향의 미래적 존재들로 낭만화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호모 사케르가 특정한 존재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제국주의와 자본주의가 공모하여 초래하는 인류 공동의 존재 상태를 칭하는 데 반해, ‘난민’이 실재하는 존재라는 점은 잘 고려되지 않는 것 같다. “현대 세계는 ‘국민’만을 정회원으로 하는 회원제 클럽 같은 곳”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난민’은 명백히 제국과 자본이 초래하는 폭력과 소외의 산물이며, 바로 그것을 존재 그 자체로 증언하는 ‘희생양’이자 ‘산 증인’이 바로 ‘재일조선인’으로 대표되는 디아스포라의 삶이다.



  그래서 서경식은 ‘국민을 그만두거나, ‘국민’으로서 국가를 바꾸는 권리이자 의무를 행사하는 것’이 가능한 답안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국민’을 그만두는 것은 ‘국민’이 되는 것보다 더 어렵다. 그리고 ‘탈국민주의’를 상상하는 것과, ‘국민’으로서 타자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은 다른 문제다. 그것은 윤리의 문제다. 와다 하루키, 우에노 지즈코, 하나자키 고헤이, 박유하 등에 대한 비판은 이를 세심하게 의식하며 행해진, ‘일본’이라는 국가에 귀속된 존재로서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국가’와 동일시하는 내셔널리즘을 비판해온 ‘시민 리버럴’ 세력의 논리에 대한 비판이다. 이들은 일본 극우파가 아니라 소위 ‘양심적 지식인’이라고 불리는 이들인데, 이들에 대해 저자가 비판의 칼날을 들이대는 이유는 자명하다. 이들의 논리가 ‘식민주의’에 대한 제국 일본의 책임 문제를 논할 때면, “내셔널리즘 비판과 전후 책임 회피의 뒤집어진 결합”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한국 독자의 입장에서 볼 때, 박유하 현상은 특히 문제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박유하는 한일 간의 ‘화해’를 가로막는 것은, 일본의 불충분한 사죄 때문이라기보다는 한국의 내셔널리즘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서경식이 보기에 이는 일본 출판계에서 상품성을 획득함은 물론, 국가주의와 공모하는 일본 시민 리버럴리스트들에게 자기긍정을 확인시키는 역할을 자임하는 것으로, 피식민자에게 내면화된 명백한 식민주의적 현상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더 문제가 되는 것은 박유하가 화해의 주체로 상정하는 ‘우리’로부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재일조선인이 완전히 빠져 있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박유하의 이러한 주장을 가장 합리적이고 성숙한 것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일본 지식인들의 인식체계 이면에는, ‘국가주의’와 ‘국민주의’를 똑같이 ‘내셔널리즘’이라고 칭함으로써 양자의 공모 지점을 흐려버리는 반지성적 욕망이 개입되어 있음을 예리하게 지적한다. 그리고는 ‘‘국가’로부터 자유로운 ‘리버럴리즘’이 있을 수 있는가’라는 일본 시민 리버럴리스트들이 의도적으로 방기하고 있는 질문을 드러냄으로써 그들이 주장하는 논리의 기만성을 에누리 없이 드러낸다.



  이 책이 나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교수신문󰡕 4월 18일자(「서경식 교수의 ‘일본 리버럴’ 비판, 이의 있다」)에 박유하의 반론이 실렸다. 서경식의 책에 대한 리뷰의 형식에 매여 있는 이 지면에서 박유하의 반론을 언급하는 일이 적당치 않을 수 있지만, ‘충실한 서평’으로서 ‘연루된’ 텍스트를 읽는 정도로 박유하의 글을 언급해두고자 한다. 이 글에서 박유하는 서경식이 지적한 ‘화해의 논리’에 대한 재반박은 하지 않은 채, 그녀의 책이 ‘한국측에 일본의 상황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차원에서 쓰여졌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이를테면, 그녀는 일본측이 법적 책임은 지지 않았지만, 대신 ‘도의적 책임’을 지기 위해 ‘아시아여성 국민기금’이라는 만들어 위안부 피해자의 절반 정도가 보상금을 받았다는 사실을 한국측이 모르고 있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이 기금의 의도에 개재된 ‘정치성’에 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으며, 서경식의 주장은 그 의도를 식민주의적이라며 비판하는 측에서 제기된 것이라는 점이 그녀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서경식이 앞서 제기한 것과 같이, 이 기금의 정치적 의도, 그리고 법적/도의적 책임이라는 구도를 사유하는 방식에 대한 문제 제기야말로 박유하가 답해야 할 문제일 텐데 이 글에서는 그것을 찾아보기 어렵다. 또한 그녀는 곧 ‘일본 우파’를 비판하는 책을 쓸 예정이라며 ‘균형적 시각’을 강조했는데, 이 역시 서경식이 지적한 ‘일본 우파를 비판함으로써 실은 그를 배척하면서도 그와 공모하는 일본 시민 리버럴 세력의 요구에 부응한다’라는 지적에 대한 답변은 아니다. 게다가 서경식은 그녀의 한국어판 책과는 달리 일본어판에는 “일본의 지식인이 자신에 대해 물어오던 만큼의 자기비판과 책임의식은 지금껏 한국은 가진 적이 없었다.”라는 문장이 첨가된 것을 들어, 그녀의 책이 일본의 자기긍정 욕망에 영합할 의도가 있었음을 지적한 바 있는데, 박유하의 반박문에는 이 문제에 대한 언급 자체가 없다.



  서경식의 논리는 자명하다. “그는 국가주의의 폭력을 혐오하면서도, 디아스포라에게 그런 국가의 보호가 또 얼마나 절실한지도 뼈저리게 알고 있다.” (󰡔말󰡕 240호, 53면) 요컨대 그는 내셔널리즘 비판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내셔널리즘 비판의 관념론적 기만성을 비판하고 있다. “자신의 머릿속에서 ‘국가’나 ‘국민’에 대한 귀속의식을 부정했다고 해서 ‘국민’을 그만둘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에노 치즈코의 논의에서 보듯, 역사성을 고려하지 않은 내셔널리즘 비판은 언제든지 역사를 사상시키려는 ‘극우적’ 주장과 만날 수 있다. 이 지점에 대해 충분히 민감하게 사유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의 논리는 국가와 국민으로부터의 혜택은 누리면서, 국가주의와 국민주의를 비판하는 것으로 현 체제의 안정을 오히려 공고화하는 담론으로 기능한다는 점에서 기만적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다카하시 데쓰야는 말한다. “나는 일본 내셔널리즘을 비판하면서 그러나 동시에 일본인으로서의 책임을 지는 것을 긍정하고 싶다. (...) 내가 여기에서 ‘일본이라는 정치공동체’라고 하는 것은 공적 ‧ 정치적 존재, 따라서 우리들 자신의 정치적 행위를 통해 바꿀 수 있는 존재라는 측면을 강조하고 싶기 때문이다.”



  물론 의문은 남는다. 저자는 한나 아렌트의 ‘죄’와 ‘책임’ 개념을 들어, ‘죄’는 전쟁 당사자들에게 해당하는 것이라 해도, 당대의 무사유(thoughtlessness)한 일상적 개인들, 그리고 후속 세대인 ‘일본인’들 역시 ‘책임’으로부터는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이 개념틀은 유보적 혹은 제한적으로 적용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의문이 든다. 이같은 ‘죄-개인 / 책임-집단’이라는 도식에서 ‘죄’는 ‘법적 개념’으로서만 상정된다. 그러나 ‘개인/집단, 도의적 책임/법적 책임...’ 이러한 이분법적 틀로 한일 간의 청산과 반성의 방식을 고정화시켜 설명해도 되는 것일까. 이 틀은 ‘전범’과, 그와 구분되는 말단 식민관료, 일상인, 당대의 식민지배에 가시적이고 실질적인 ‘저항’을 했던 개인, 또는 후속 세대 간의 관계를 규정할 수 있는 한 가지 틀은 되지만, 어쩌면 지나치게 도식적이고 관념적일 수도 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전범은 ‘죗값’을 치르고, 나머지는 ‘책임’을 지라고 할 때, 두 가지 문제가 생긴다. ‘죗값’을 치른다는 것은 구체적인 것이지만, ‘책임’을 지라는 것은 추상적인 언설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고, 그렇다면 다시 책임의 소재와 내용 등이 사상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물론 저자는 여기서 ‘책임’이란, “정부로 하여금 피해자에 대한 사죄와 보상을 하도록 요구해야 할 정치적 책임”이라고 말하고 있긴 하다. 그러나 이 “정치적 책임”을 지는 주체는 또다시 개인과 집단의 분할을 요구할 것이다. 그는 범국민적 청원운동 같은 것을 상정한 것일까.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면 다른 어떤 방식이 가능한가.) 서경식은 이 책에서 법적 책임을 우위, 도덕적 책임을 하위로 고정시키는 위계를 주장한 적이 없다. 오히려 “범죄의 책임을 묻고 보상을 하기 위해서는 ‘법’의 상위 개념으로서 ‘도의’를 문제 삼아야 한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이 같은 ‘도의’에 근거해 새로운 법을 세움으로써 ‘도의적 책임론’은 새로운 ‘법적 책임’으로 이어진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때 ‘책임’이 언제나 ‘죄’와 ‘구별’되는 한정적, 분리적 수사로 기능하게 된다는 지적 또한 피하기 어렵다.



  또 한 가지는 이러한 도식이 ‘전범’들을 제외한 그 ‘나머지’들을 동질화하게 된다는 점이다. 당대 일상적 개인으로서 전쟁에 참여한 사람과, 전쟁에 맞서 실질적인 저항을 한 사람들, 또는 당시에 아예 태어나지도 않은 사람들이 ‘국민’으로서 져야 할 어떤 것 등을 모두 포괄하기에 ‘책임’이란 빈약한 개념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즉 ‘책임’이란, 식민지배와 무관하지 않음, 즉 ‘연루됨’이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정당한 개념이지만, ‘죄’처럼 ‘수행성’을 갖지는 못하는 개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죄’와 같은 오직 ‘법적’인 행위만이 가시적이고 실질적인 것이라는 뉘앙스를 주는 이 이분법적 개념틀보다 더 적절한 개념을 계발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서경식의 미덕이자 윤리는 ‘타협하지 않는 것’에 있다. 그는 사과의 윤리에 대해 사고하지 않는 어떤 자유주의적, 포스트모던적 견해와도 타협하지 않는다. 최근 한일 간의 관계를 “서로”나 “공생”과 같은 연성화된 수사들로 갈음하려는 ‘가짜 화해’를 그는 경계한다. 과연 그러한 ‘상호책임’의 수사들을 말하는 주체는 누구인가, 그는 어떤 욕망과 사유의 메커니즘을 통해 그렇게 말할 수 있는가를 사유함으로써 그것이 진정한 화해가 아닌 기만과 폭력이라는 것을 밝히는 것. 그래서 이런 ‘화해’란, ‘부족’하거나 ‘불완전한’ 화해라서 나쁜 것이 아니라, 바로 그런 것이야말로 ‘식민주의’의 진화태로서 행해지는 ‘폭력’이라는 점을 그는 강조한다.



  4부에 실린 최현덕과의 대담은 ‘디아스포라의 눈으로 통일’을 보기 위해 행해진 것으로, 서경식의 ‘꿈’을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장면이 포함되어 있다. 그는 이 대담에서 ‘단순한 민족통합이 아니라, 언어적, 혈통적으로 다원주의를 채용하는 동아시아에서 가장 해방된 열린 나라’에 대한 구상을 보여준다. 이에 대해 서문에서 그는 “지나치게 자유로웠”다고 술회하며, 대담자 역시 ‘유토피아’ 같은 이야기라고 말하지만, 우리는 그의 꿈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가 꿈꾸는 그 ‘섞임’과 ‘열림’의 사회란, 실은 그 ‘섞임’ 속에서 강고한 위계질서를 내포하는 미국식 다원주의를 모델로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같은 ‘용광로의 정치학’을 경계하는 한, “동아시아의 아지트”를 꿈꿀 수 있는 자격이 ‘조선’에게는 있다는 그의 말은 정당하다.





  프리모 레비와 서경식의 닮은 점은, 둘 다 역사적 질곡의 산 증인, 즉 ‘디아스포라’의 존재로서 떠맡은 ‘증언’이라는 임무 그 자체에만 있지 않다. 프리모 레비가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행위가 과거 나치의 폭력을 재생산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는 점을 말해야 했던 것처럼(그리고 절망해야 했던 것처럼), 서경식 역시 지금의 한국이 베트남, 그리고 이주 노동자들에게 과거 제국 일본이 행했던 식민주의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음을 또한 절망하면서 말하고 있는 존재라는 점에서 그 둘은 같다. 그들이 ‘모국을 향해’ 증언하다가 절망했음에 유의하자.



  그의 책을 소개할 때 “재일조선인의 초상”이라든지 “디아스포라의 눈으로 본”이라는 부제가 지니는 ‘상품성’이 시효를 다하는 날을 상상해본다. 가장 위험한 것은 이같은 서경식의 관점을 ‘디아스포라의 관점’으로 분리해서 사고하고 소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디아스포라의 아이덴티티를 지녔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지만, 그가 내놓는 국가주의와 국민주의, 그리고 식민주의에 대한 해석과 비판은 비단 ‘재일조선인’이라는 한 ‘소수자’의 입장을 설명하는 데에만 유효한 방식이 아니라, 바로 우리 모두가 도전하고 있는 그 폭력적인 전장의 최전선에서 제출되는 의견으로 읽혀야 할 것이다. 우리는 그를 프리모 레비처럼 죽게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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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터 2011-05-14 공감(14)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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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 속에서 건져낸 정연한 논리의 향연. 새창으로 보기



1.


  '언어의 감옥에서' 라는 책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 제가 느꼈던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껏 제가 고민해오고, 또 여전히 고민하고 있는 언어의 한계에 대한 것이었지요. 우리는 어느 순간에서부터인가 아무렇지도 않게 언어를 구사합니다. 게다가 우리의 생각은 머릿속에서 언어로 구현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 언어라는 것이 있기 전에 우리는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요? 생각을 구현한다는 말이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요. 컴퓨터를 예로 들자면, 일반적으로 컴퓨터를 사용하려면 운영체제가 있어야 합니다. 그 옛날 구체제 DOS가 그랬고, 지금은 윈도우즈, 리눅스 등 수많은 운영체제가 있지요, 그리고 그 중 하나가 있어야 기계덩어리에 불과한 컴퓨터를 제대로 이용할 수 있게 되는 거지요. 게임을 한다던가, 이렇게 글을 쓴다던가 말입니다. 이 언어라는 것이 일종의 운영체제가 아닐까, 저는 그렇게 비유를 하고 싶습니다. 사실 이런 비유는 선후 관계를 따지자면 약간 잘못되었지만, 언어(인간)가 있고 운영체제(컴퓨터)가 있으니깐, 그러나 적당한 비유가 없으니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저만 이런 생각을 한 것은 아니겠지요. 그래서 수많은 철학자, 논리학자, 언어학자들까지 이런 문제에 매달리고 나름대로의 답을 내리고 있습니다. 저번 러셀의 책에서 언급했던 비트겐슈타인부터, 물론 비트겐슈타인의 경우에는 약간 다른 점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만, 최근 몇 십 년을 바라본다면 역시나 노암 촘스키에 이르기까지 말이죠. 그러고 보면 촘스키는 가장 언어의 근본에 다가간 사람이 아닐까, 그렇게 짐작되고 있는 사람들 중 하나입니다. 변형생성문법을 제창하고 우리의 언어가 실재로 '존재' 한다는 것을 보인 사람이라는데 의의를 둡니다. 그는 일단 플라톤의 문제에 주목합니다. 플라톤의 문제는 '우리가 정보가 이렇게 적은데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이 아는 데까지 어떻게 이를 수 있을까.' 라는 내용입니다. 어린 아이는 어른에게서 가나다, 혹은 알파벳만 배우고 단어들 익히고 그렇게 적은 내용만 배우는데도 전혀 듣지도 못한 문장을 어법에 맞게 사용하게 자라나지요. 촘스키는 이렇게 되는 이유가 생물학적으로 우리에게 LAD : Language Acquisition Device가 있기 때문이며 유전과 관계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일종의 언어에 대한 보편적 그리고 선험적 지식이 담겨있는 기관입니다.

그런데 최근의 연구가 이 오랜 가설을 뒤집었다고 합니다. 관련된 뉴스가 하나뿐이라 내용의 신빙성이 어느 정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 연구에 의하면 네덜란드의 어느 심리언어학 연구소에서 4개 어족, 301개의 언어 문법 발달을 추적 관찰한 결과, 각 언어의 발달은 개별적인 문화의 진화에 따른다고 밝혀졌다고 합니다. 이는 동일한 규칙에 따라 기능하는 내재적 언어능력 때문에 언어의 공통점이 있다고 주장하는 촘스키의 주장과는 상반되지요. 지금부터 말씀드릴 책, '언어의 감옥에서' 를 조명하는데 있어 저는 바로 저 '문화에 의해서 언어가 발달' 된다는 말에 집중합니다. 저자 서경식 교수는 재일조선인 2세입니다. 그는 책의 첫 부분에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는 유대인 파울 첼란의 말을 빌려 이렇게 절규합니다. '자신의 진실은 오직 자신의 모어로밖에 말할 수 없다.' 여기서 말하는 모어는 저자가 책에 직접 주를 달았듯, 모국어와는 다른 개념이고 그의 말을 빌려 설명하자면 '무자각인 채로 자신 에 생겨버리는 언어' 며 '일단 몸에 익히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몸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언어입니다. 재일조선인 2세로 사는 삶은 저의 빈곤한 상상력으로도 충분히 고달프리라 집작됩니다. 주변의 차별, 멸시로부터 벗어나기가 쉽지 않으며 자신의 삶의 환경이 일본이기에 어쩔 수 없이 일본어를 쓰게 되고 결국엔 일본어가 모어가 되어버립니다. 그러니깐 위의 연구결과를 약간 빌려오자면 서경식 교수 개인의 언어 발달은 그 주변의 일본적 문화에 어쩔 수 없이 영향을 받게 되었다,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지요. 그리고 그렇게 발달된 모어에서 벗어날 수 없어서 이윽고 자신의 생각마저도, 앞서 이야기한 운영체제마저도 일본어가 되어버리게 되고, 결국엔 그 일본어라는 감옥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됩니다. 이 책의 제목 '언어의 감옥에서' 에는 이런 의미가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논해봅니다.


2.


  윤동주는 연세대, 정확히 말하면 그 전신인 연희전문학교를 다녔었다죠. 그래서 연세대에는 그를 기리기 위해서 시비를 세웠습니다.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저도 예전에 연세대에 잠시 적을 두던 때가 있었습니다. 고백하건대 연세대에 윤동주의 서시를 새긴 시비가 있다는 이야기는 제가 연세대서 떠난 뒤에 들은 터라서 그의 시비는 못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서시는 참 좋아했습니다. 책은 이 서시를 왜곡하는 일본의 번역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논란이 되는 문장은 하나,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입니다. 이를 일본의 번역가는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사랑해야지’로 오역합니다. 사실 얼핏 보기엔 아무렇지도 않아 보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말 그 일본의 번역가 말대로, 살아있기 때문에 죽을 수 있는 것이며 그렇기에 살아있다는 말로 대체를 해도 상관이 없어 보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냉소적 어투로 그런 세세한 것까지 뭐 하러 신경을 쓰냐. 그런 조그만 것에 신경을 쓰지 마라, 그래도 그들은 그나마 양심적 지식인들이다. 최소한 서시를 읽지 않느냐. 지금 일본 우경화 세력이 날뛰는데 그런 것을 경계하는 게 훨씬 옳지 않냐. 이렇게 주장을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고 보면 이 말도 얼핏 맞는 듯 합니다. 최근에 있었던 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원전 사고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독도는 자기네 땅이다, 라는 발언을 멈추지 않습니다. 일본의 우경화세력은 정말 끔찍할 정도며, 그들을 경계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겠고, 어쩌면 일본 내 그나마 양심적인 사람들을 우리 쪽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선결 과제가 아닐까, 그런 생각마저 듭니다. 그런데 이 책의 내용의 대부분은 이런 생각을 경계하는데 바쳐져 있습니다. 도리어 우리에게 ‘모든 일본인들이 다 나쁜 것은 아니야’ 이런 생각을 심어주는 그런 소위 말하는 양심적 지식인들, 책에서는 리버럴 세력으로 소개됩니다만, 그런 자들을 더욱 더 경계해야한다고 밝힙니다. 어느 책에서 이런 이야기가 적혀있었던가요, 사람이 공포나 두려움을 느끼게 되는 것은 잘 아는 것에 대한 것이 아니라고. 미지의 것, 내용을 잘 파악하지 못한 것들이 우리에게 정말 두려움을 안겨준다고. 똑같은 맥락에서, 일본의 우경화세력은 일종의 양지의 ‘칼’입니다. 보이는 칼은 피하거나 막을 수 있습니다. 혹은 좀 더 적극적으로 나가서 제압할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이런 리버럴 세력의 퇴락은 음지의 ‘무기’입니다. 이게 칼인지조차 모릅니다. 언제 어디서 우리 몸을 찌를지도 모릅니다.


3.


  적어도 저와 비슷하거나 나이 어린 또래에게서 일본 문화란 제법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즐겨보는 사람도 많을 것이고, 저 개인적으로도 일본 노래를 듣기도 하고 만화를 보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일본이라는 데가 영 나쁜 데만은 아니구나, 그런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여행도 쉽게 다녀올 수 있고, 먹을거리도 맛이 좋고, 괜히 오차즈케나 스시를 먹으며 웰빙의 기분을 맛 볼 수도 있습니다. 우리와 같은 젊은 세대에게는 사실 일본의 강점기의 기억이 흐려져만 갑니다. 어쩌면 몇 몇 젊은이들은 이런 생각마저도 가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과거? 과거는 과거에 묻어야지! 우리가 발전하려면 무조건 배타적으로 일본인들을 미워해서는 안돼, 라고. 아닐 것 같지만 제가 본 소위 외국물을 먹고 외국에서 공부를 해 본 아이들마저 '아, 일본인이라고 하니깐 괜히 부정적 인식이었는데 같이 공부해보니깐 괜찮더라. 모든 일본인들이 다 그런 거 아냐.’ 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정말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과거를 과거에 묻는다는 말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 라는 겁니다. 이 책, ‘언어의 감옥에서’ 는 그들 일본인의 속 심정을 정확히 꿰뚫어 설명합니다. 일본인들의 다수를 차지하는 그나마 ‘양심적’ 이라는 지식인들도 그들의 치부에 논의가 이르면 다 ‘그때는 전쟁 중이라서 명령에 따른 것이다.’, ‘우리는 침략당한 나라에서는 침략자일 뿐인 병사들을 끌어안은 후 그 후에 책임을 져야 한다.’ 이런 식으로 끝없는 말꼬리잡기만 할 뿐 실제로 어떠한 행동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들이 말하는 책임은 진실로 그들 자신들을 위로하는 그런 수사법에 지나지 않습니다. 정말 그들이 책임을 질 마음이 있었다면, 위안부문제가 부결되지는 않았겠지요, 재일조선인들이 그들의 땅에서 시름시름 앓아가는 것을 두고 보고만 있지는 않았겠지요. 그들 자신들은 끊임없이 ‘사과를 했다, 도대체 얼마나 더 사과를 하라는 말이냐’ 라고 그들이 침략한 국가에 말을 하지만 백 번 사과를 한 들 어쩌겠습니까, 그들의 사과(라고 주장하는 것)에 담긴 허구성을 이 책은 치밀한 논리로 낱낱이 파헤칩니다.


어쩌면 이렇게 서경식 교수가 그들의 논리를 파헤칠 수 있는 이유는 그가 일본인들의 말을 모어로 삼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같은 말을 쓰는 집단은 싫으나 좋으나 일종의 의식을 공유한다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언어는 여러 사람들에 의해서 쓰여 오면서 오랜 세월 갈고 닦인 것이기에 그것엔 어쩔 수 없이 그 집단의 문화가 녹여져있게 됩니다. 한 집단이 다른 집단을 이해하려고 할 때 가장 먼저 시작하는 게 무엇이겠습니까? 단순히 생각해봐도 ‘말이 안 통하는데’ 당연히 상대의 말을 배우겠지요. 다짜고짜 그들의 문물을 퍼부어가며 이거 봐라, 이건 어떠냐, 이렇게 하지는 않지요. 우리는 그런 것들을, 무분별한 문물의 주입들을 일종의 침략이라고도 볼 수 있으며, 어떻게 보면 또다른 형태의 제국주의라도 봐도 무방하겠습니다. 그러고 보면 그런 사례를 세계사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아즈텍 문명을 멸망시켰던 스페인 군대가 그들의 말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려고 노력이나 했겠습니까. 이런 이유에서 한 집단의 말을 익히는 것은 그 집단의 이해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칩니다. 또한 그 말을 선천적으로 익힌 상태, 그러니깐 모어로 삼는 사람일수록 더욱더 그 집단의 문화의 영향을 진하게 받을 것도 자명합니다. 서경식 교수는 이런 점에서 일본어의 그 조그만 뉘앙스조차 예민하게 감지해내며 거기에 더하여 재일조선인이라는 그가 처해있는 힘겨운 상황 때문에 리버럴 세력의 사상의 허구를 조목조목 비판할 수 있는 것이지요.


4.


  책에서 큰 흐름을 차지하는 이야기 중 하나가 세 유대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파울 첼란, 프리모 레비, 장 아메리가 바로 그들입니다. 프리모 레비에 대해선 얼핏 들은 기억이 있지만 파울 첼란과 장 아메리는 이 책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입니다. 세 명 모두 유대인이라는 공통점 외에 나치에게서 박해를 받았다는 점이 동일합니다. 또한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것도 큰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여기서는 파울 첼란에 초점을 맞춰서 나아가보겠습니다. 앞서서 파울 첼란의 말을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거기에 이 말을 하나 더 보태겠습니다. 첼란은 그가 문학상을 탈 때 소감을 이렇게 밝혔지요. ‘갖가지 손실 중에서 언어만이 다른 이에게 가 닿을 수 있는 것으로, 상실되지 않은 것으로 남았다.’ 라고. 이 말은 도대체 무슨 의미로 자리를 잡고 있는 걸까요? 이 책에서 저자는 ‘이는 국어 이데올로기에 대한 저항’ 이라고 단언합니다. 비록 유대인이었지만 모어로 독일어를 쓰는 입장에서, 독일에게 박해를 받았다고 그 언어를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독일어가 꼭 독일인이 쓰는 것이 아니다, 독일어를 모어로 가진 독일인이 아닌 사람이 존재할 수 있다는 뜻이지요. 이는 저자의 상황과 일치합니다. 비록 조선인이지만(저자가 본인을 남과 북이 통일된 나라로서의 조선인으로 언급하기에) 어쩔 수 없이 모어로 일본어를 쓰고 있다는 점이지요. 그리고 첼란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저자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비록 자신이 어쩔 수 없이 일본어를 모어로 쓰고 있지만, 일본어 자체에 대해서 나쁜 감정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물론 모어를 선택할 수 있다면 당연히 조선어를 선택하겠지만 이미 일본어가 자신의 틀이 되어버렸고 그래서 비록 감옥 같은 언어이지만 떼어낼 수는 없다. 자신이 비판하고 싶은 대상은 일본어를 쓰기 때문에 자신을 일본인으로 규정지어버리는 국가다, 라고 말이지요. 물론 이런 성찰을 이끌어내기까지 스스로를 얼마나 몰아붙였을는지 짐작조차 가지 않습니다. 다른 조선인이었던 시인 김시종은 일본어에 결코 숙달되지 않으려 노력하고 뼈를 깎는 노력으로 모국어를 습득하려고 합니다. 그런 과정이 저자에게 물론 있었으리라 짐작됩니다. 하지만 저자는 그것을 첼란의 사례를 받아들이며 극복해내는 중이라 생각됩니다. (근원적인 극복은 일본이 과거에 대해서 엄밀한 책임을 지지 않는 한 불가능하겠지만) 비록 첼란은 자살로 생을 마감했지만 서경식 교수는 자신의 모어로 일본과 대결하고 있지요. 앞서 쓴 자신을 ‘일본인으로 규정지어버리는’ 이라는 말에 보충 설명이 필요할 듯싶습니다. 이는 단순히 어디 여행을 갔을 때 ‘당신 일본인이에요?’ 라고 묻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일본어가 모어라는 이야기는 그들의 정체성을 일본어로 된 저작과 일본어를 쓰는 친구들을 보면서 형성을 할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이고 다시금 말하면 일본의 시각이 어쩔 수 없이 정체성 형성과정에 섞여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말이며, 실제로는 재일조선인들은 일본인이 아닌데 어느덧 일본인처럼 사고를 가지도록 주입 당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는 폭력이지요. 즉, 식민지의 경험이 여전히 그들 재일조선인들에게는 바로 곁에 남아있다는 뜻입니다.

프리모 레비는 ‘이것이 인간인가’ 라는 글을 아우슈비츠에서 해방되자마자 바로 쓰게 되었습니다. 마치 그 글들이 자신의 몸속에서 축적되고 축적되다가 결국 분출되듯이 말이죠. 평소에 아무런 일이 없이 평화로울 때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의심을 가지는 사람은 없으리라 봅니다. 그러나 사람이 극한 상황에 빠졌을 때, 그리고 그 심연 속에서 주위를 둘러보아도 자신을 구원해 줄 사람이 하나도 없을 때, 그리고 적어도 그 사람이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나를 구해 줄 사람은 나뿐이다, 라는 강한 정신을 가졌을 때, 그 힘을 얻을 수 있는 곳은 바로 자신의 정체성입니다. 프리모 레비의 경우엔 이탈리아인으로서의 정체성, 여기서 더 나아가 휴머니즘을 가진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이 바로 그 지옥 같은 아우슈비츠를 이겨내게 만든 근원이었을 겁니다. 거기에 희박하던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재발견하게 됩니다. 상대가 있을 때 사람은 뭉치게 됩니다. 프리모 레비와 같이 자신이 유대인이었나, 싶을 정도로 근원을 모르던 사람들도 유대인을 박해하는 나치 정권 앞에서 자신들을 재발견하게 되는 겁니다. 말하자면 박해가 있어서 거기에 대응하는 집단이 생겨난 거지요. 여기까지는 장 아메리도 비슷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둘 사이에 차이가 생겨났으니 그것은 모어공동체로부터의 추방이었지요. 프리모 레비는 이탈리아인으로서의 정체성이 그를 미치지 않게 만들었지만 장 아메리의 경우에는 상황이 나빠서 그가 가졌던 독일 문화가 그를 내부로부터 찌르는 칼이 된 형세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잔혹한 언어경험은 이들만 겪은 게 아닙니다. 우리나라가 식민 지배를 당할 때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런 경험을 겪었었지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이 아포리아Aporia, 내 정체성으로서의 조선인이라는 것과 내 모어로서의 일본어를 합치시켜 나갈 수 있을까, 를 극복해나가는 과정에서 이 책의 저자는 다문화 공동체에 눈을 뜨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5.


  이 책은 정말 논리적으로 치밀하며 저자의 문체는 정갈합니다. 마치 베틀에서 씨줄과 날줄을 촘촘히 짜내어 이윽고 아름다운 옷감을 만드는 작업을 보는 듯 합니다. 특히 그가 이 책에서 리버럴 세력의 잘못된 부분을 조목조목 근거를 들어 논파하는 부분은 백미라고 하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하지만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한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다문화 공동체에 대한 부분입니다. 책 뒤의 대담에서 서경식 교수는 우리나라는 앞으로 다원주의를 채용하는 그런 공동체로 나아가야 된다고 언급을 합니다. 그러니깐 이왕 문이 열린 김에 가장 열린 나라로 나아가지는 말이지요. 사실 이 부분은 예민한 부분이기도 하고, 제가 이렇게 언급하는 것이 디아스포라에 대한 일종의 또 다른 폭력이 되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하여 많이 주저했지만, 감히 말하건대 이는 너무나 디아스포라적인 시각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디아스포라는 디아스포라이기에 볼 수 있는 것들이 있지요. 재일조선인은 재일조선인이기에 그들의 상황을 도리어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고, 다른 사람과 나를 동일 선상에서 동등하게 볼 수 있습니다. 이는 거칠게 말하자면 소속감이 없다, 라는 말과 일맥상통합니다. 하지만 한 국가에 속한 사람은 그렇게 속해있기에 또 볼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의 말대로 정말로 열린 국가를 지향하게 된다면, 우리의 역사는 늘어나는 걸까요? 우리의 문화는 어디까지로 규정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과연 미국이 그랬듯 용광로처럼 인종을 다 녹여서 포용할 수 있을까요? 여기서 인문학자 호미 바바의 말을 잠깐 빌려오겠습니다. 문화는 아무리 서로 융합되더라도 이윽고 절대로 융합이 되지 않는 핵이 남는다고 하였습니다. 물론 호미 바바는 식민지배를 한 국가와 식민지배를 당한 국가 사이의 문화에 대해서 연구를 한 사람이지만, 적어도 저렇게 절대로 융합이 되지 않는 핵이 존재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바에 적용시켜도 무방하리라 봅니다. 그렇다면, 그동안 단일민족이었고, 단일민족이라는 점에 대해서 일종의 자부심마저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 국민이 과연 다른 문화와 인종을 다 녹여낼 수 있을까요? 저는 그것에 대해서 회의적입니다. 우리의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단일 민족이라는 것이 큰 역할을 한 만큼 (통일을 왜 해야 되는가, 라는 질문에 첫 번째 답변이 우리는 한민족이니깐요, 라는 말이 많습니다.) 문화의 핵도 클 것이고, 이는 도리어 열린 나라라고 찾아온 다른 민족을 우리의 문화나 역사에 다 녹이는 우를 범하게 되는 위험이 있습니다. 이 뿐만이 아니라 다른 현실적 문제도 산재하겠지요. 국력이 약화될 수도 있겠고, 다른 나라가 우리를 본받아 순순히 문을 열어 지구공동체로 나아갈 리가 없을 테니 말입니다.

그렇기에 저자도 그것을 알고 공상적인 이야기이다, 라고 언급했습니다만 적어도 이 부분은 저자가 생각한 대로 나아가는 것이 과연 옳은 방향일까, 라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는 것을 밝혀두고 싶습니다. 물론 저도 인간으로서 범인류적인 공동체가 형성되어 국가 간의 소외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면 훨씬 좋은 방향으로의 진보라는데 동의합니다만 아마 그런 일은.. 화성에서 침공해오지 않는 한 생기지 않으리라고 봅니다.


5.


  몇 번이고 몇 몇 구절을 반복해서 읽으면서 이 감옥에서 내가 어떻게 열쇠를 건네줄 수는 없을까, 그런 고민을 했었습니다. 열쇠는 아마도 일본의 진정한 사과, 그리고 그들이 그들의 책임을 거부하지 않는 진지한 자세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사실 이런 것들은 저 개인이 어떻게 해낼 수 있는 차원의 것은 아닐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런 일들은 외부의 힘에 의해서 일어나서도 안 되며 일본 내부에서의 성찰로부터 비롯되어야 된다고 믿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까지나 한쪽은 사과를 요구하고, 다른 쪽은 언제까지 사과를 해야 되는 거냐고 화를 내는 일이 반복될 것입니다. 물론 일본 내부의 자성이 과연 제대로 이루어질까, 하는 점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많습니다. 그리고 결코 그들로서도 쉬운 일이 아닐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일본의 리버럴 세력이 자신들은 양심적 지식인이라고 자처하면서도 사상적으로 퇴락에 빠져버린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지요. 그리고 그들을 돕는 것은 일본은 충분히 사과를 했다, 그러니 우리도 쇄신이 필요하다고 옹호하는 우리나라의 몇 몇 지식인들입니다. 하지만 그 지식인들이 무슨 자격으로 사과가 끝났다 운운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는 사상적 퇴락의 독이 우리나라의 지식인들을 중독 시킨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사과를 받을 권리가 있고, 사과를 했으니, 이제 사과를 그만 받아도 된다, 라는 말은 옳지 않습니다. 우리는 사과를 받을 권리는 있지만, 여기서 받을 권리라는 것은 정말 그 사과가 가서 닿아야 할 사람들에게 전해지지 않는 한 끊임없이 요구를 할 권리라는 말과 동일한 의미이기 때문이지요. 하나만 예로 들자면 아직도 위안부 문제가 있습니다. 이는 여전히 미해결 상태로 남았습니다.

하지만 정녕 희망이 없는 것일까요. 최근에 본 뉴스에 일본의 도서 반환이 연내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이는 그동안 오래 지속해 온 외교의 결실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보다 일본의 다수 계층에서도 자신들의 수탈을 잠정적으로 인정하는 자세를 어느 정도 갖추게 된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만약 그러하다면 이는 저자와 다른 재일조선인들이 이런 글로서 일본에 힘들게 싸움을 해온 성과라고도 생각이 듭니다. 아직 이것으로는 부족하지만 그래도 이만큼이나 인식의 변화를 이루게 된 것은 앞으로는 조금 더 발전할 가능성이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게 만듭니다. 그러면 언젠가 이 책의 저자인 서경식 교수도 더 이상 코리안 디아스포라로 살지 않아도 좋을 날이 올 것입니다. 서경식 교수뿐만이 아니라 다른 수많은 재일조선인 모두가.
 

p. s. 글을 쓰다가 Go라는 일본 영화가 문득 떠올랐습니다.. 재일조선인을 다룬 영화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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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연 2011-05-01 공감(7) 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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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감옥에서] : 내셔널리즘과 식민지주의의 폭력, 그리고 재일조선인의 숙명 새창으로 보기
몇 년 전, 테사 모리스-스즈키의 <북한행 엑서더스>를 읽고 재일조선인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때 이후로 계속해서 재일조선인 관련 서적들을 읽으면서 나름의 연구를 해 나간 것은, 그들의 디아스포라적 입장에 크게 공감했기 때문이다. 재일조선인 1세들이 어떻게 해서 일본으로 건너가고 정착하게 되었고, 현재 그 후손들은 일본 내에서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하나하나 알아갈수록 내가 그 동안 너무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읽게 된 서경식 선생의 <디아스포라 기행>은 내게 일종의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재일조선인 '코리안 디아스포라'로, 유학생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20년 가까이 옥고를 치른 서승, 서준식 선생의 동생으로, 결코 평탄치 못한 삶을 살아온 그의 글은 의외로 담담했다. 무지 자체가 일종의 폭력이라는 것을 그 책을 읽으며 느끼게 되었다. 그 후 서경식 선생의 다른 책들을 하나씩 구입해 나갔고, 지금은 대부분의 책들을 갖고 있다. 얼마 전 돌베개에서 번역 출간된 <언어의 감옥에서(원제 植民地主義の暴力-「言語の檻」から)> 역시 읽게 되었다.

이 책은 서경식 선생의 두 번째 평론집이다. 한국에서 출간한 첫 번째 평론집인 <난민과 국민 사이>에서 그는 한국의 독자들에게 '재일조선인'이라는 존재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키고 디아스포라의 관점에서 국민주의를 비판했다. 그리고 이 책 역시 기본적으로는 <난민과 국민 사이>의 의도를 계승하고 있지만, 추가되고 심화된 내용들이 있다. 1부에서는 2006년부터 2년간 한국에 머물 당시 모어(일본어)와 모국어(조선어)의 어긋남에서 비롯된 저자의 강렬한 체험을 윤동주의 <서시>, 재일작가 이양지의 단편 <유희(由熙)>, 파울 첼란과 프리모 레비 등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문학을 전공한 나로써는 이 책에서 가장 관심을 두었던 부분이다. 재일조선인으로써 일본어를 모어로 하여 일본 사회에서 사는 재일조선인은 자신의 아이덴티티마저 일본어로 형성할 수밖에 없고, 이는 곧 식민지의 민중이 지적 자원을 가지고 싶어도 종주국의 지적 제도를 통해 이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지(知)의 식민주의적 지배구조로 연결된다. 또한 나 역시 느꼈던 이양지 작품들의 몇몇 부자연스러웠던 점들을 저자가 지적하고 비판하는 부분들이, 약간 혹독하다는 느낌도 들었지만 어떤 면에서는 참 명쾌하고 의문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발버둥치며 괴롭게 살아갔던, 이양지의 짧은 삶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다. 

2부에서는 또 다른 각도에서 1부의 내용을 보완하고 있다. 2차대전 당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강제 수용되었다가 극적으로 생환해 잔혹한 정치폭력의 시대를 증언한 작가 프리모 레비의 이야기는 저자의 다른 책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를 통해 접한 적이 있다. 형들이 간첩으로 몰려 한국에서 옥중생활을 하고 있을 때, 저자는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를 읽고 커다란 격려를 받았다고 한다. '살아 돌아와 증언한다'라는 의지의 역할이 잘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987년, 프리모 레비는 자살했다. 그는 '증언의 불가능성'이라는 아포리아를 자살로써 우리에게 제시한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진행 중인 '기억의 투쟁' 역시, 아직 출구를 찾지 못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또한 재일조선인 1세였던 아버지의 삶을 통해 식민지 지배와 민족분단의 역사에 대해 생각하며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을 던지기도 한다.

3부에 수록된 글들은 일본의 리버럴 지식인의 사상적 퇴락(頹落)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리버럴 세력의 사고와 행동의 문제점을 잘 이해하는 것은 식민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며, 많은 사람들이 일본 우파에 대한 비판의식을 가지고 있지만 정작 일본의 리버럴 세력에 대한 인식은 부정확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지난 20년 동안 일본 사회는 우경화의 길을 걸어왔다. 리버럴 세력이 힘을 모았다면 식민주의 극복을 통해 올바른 역사의식을 공유하고 화해와 평화로 나아갈 수 있는 호기였으나, 리버럴 세력의 다수는 시종 양비론에 서서 방관자적이고 냉소적인 태도로 일관했고, 그 결과 우파가 득세하게 되었다. 우파와 싸워야 할 국면이었음에도 리버럴 세력의 다수는 오히려 '국민주의'로 퇴락해간 것이다. 국민주의는 사람들을 '국민'과 '비국민'으로 가르고 그 사이에 존재하는 부당한 차별에는 무관심하다. 또한 일본 지식인들의 온정주의적 레토릭과 자기중심적 욕망, 그리고 다수자와 소수자 사이의 단절에 대해서도 비판하고 있다. 이는 자신들이 국민으로써 가지고 있는 기득권을 내놓지 않으려는 자기중심적인 면에서 비롯된다. 또한 박유하의 책 <화해를 위해서>를 통해 저자는 식민지 문제와 '화해라는 이름의 폭력'을 이야기한다. 화해라는 미명하에 피해자들에게 타협이나 굴복을 요구하는 것은 진실을 은폐함으로써 책임의 소재를 모호하게 만들고, 장기적으로 보면 문제의 해결을 멀어지게 만들며 가해자가 진상규명, 책임 승인, 사죄, 보상을 하지 않는데 어떻게 피해자가 원한과 분노에서 해방될 수 있는지 그는 반문한다. 

4부는 재일조선인의 입장에서 바라본 통일에 대한 인터뷰와 이 책의 내용에 대한 대담으로 이루어져 있다. 남과 북이 단순히 민족통합을 하는 것이 아니라 혈통주의를 타파하고 내부적으로 디아스포라를 많이 포용해야 하며, 이중국적이 허용된다면 일본에 있는 재일조선인들은 조선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일본에서의 참정권도 인정받을 수 있게 된다고 그는 말한다. 사실 상당히 희박한 국가관을 갖고 있는, 그래서 자신을 반쯤 디아스포라로 규정하고 있는 나로서는 이러한 순혈주의와 국민주의의 타파가 참 반가운 느낌이다. 어느 나라 사람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인가가 중요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또한 저자는 한국에서 재일조선인 문제를 일본의 차별 문제로만 보는 경향을 지적하며, 재일조선인을 포함한 해외동포들이 돌아오고 안 돌아오고는 개인의 선택에 맡겨야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해외동포들이 돌아올 수 있는 환경과 제도를 만들었어야 한다고 말한다. 역시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재외동포들이 대부분 귀국하지 않는 이유는, 돌아오더라도 국적 정비, 호적, 생활, 직업 등의 기반이 불확실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조선족(재중동포)들이 한국에 들어와도 대부분 저임금 비숙련 노동에 종사하게 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며, 서경식 선생의 치밀한 논리의 구사와 글의 날카로움, 명료함에 압도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 그와 대담을 가졌던 일본의 지식인들은 진땀 꽤나 흘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하지만 '내가 가혹한 것이 아니라, 재일조선인이-모든 조선 민족이- 처해있는 상황이 가혹한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참으로 그러하다. 재일조선인으로서의 숙명은 언제나 일종의 멍에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것도 자신이 선택한 것이 아닌, 식민지 지배라는 외부의 요인에 의해 그러한 상황에 놓인 것이므로 더욱 그렇다. 또한 이 책의 표지에는 일본어와 한국어의 글자들이 뒤섞인 문양이 새겨져 있는데, 그것이 그가 느낀 모어와 모국어의 괴리를 단적으로 나타내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에도 서경식 선생의 사유와 성찰을 통해, 나 역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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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고쿠도 2011-05-13 공감(7) 댓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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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조선인의 옥중증언(獄中證言) - ‘국민주의’에 대한 저항적 글쓰기 새창으로 보기
재일조선인의 옥중증언(獄中證言)

‘국민주의’에 대한 저항적 글쓰기

 
경계는 감옥이다. 근대의 ‘국민국가’라는 기획에 포섭되지 못한 변방의 존재들은 그 경계에 갇힌 수인으로서 살아왔다. 세계는 국민-국어 공동체인 국민국가로 조각났고 그 단절의 기획 속에 수많은 경계인이 양산되었다. 지구는 ‘국민’만을 정회원으로 하는 회원제 클럽이 되었고 인간은 오로지 국민으로서 허용될 뿐이다. 인간으로서의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은 오로지 국민의 이름으로만 하사되었다. 어느 국가에도 귀속되지 않는 무국적자들은 국가와 언어라는 이중의 감옥에 갇혀 폭력적 현실을 견뎌왔다.

여기, 한 수인이 고백을 한다. 나, 언어의 감옥에 갇혀있노라고. 그리고 증언을 한다. 감옥 안에서 그가 보고, 듣고, 말한 것을. 그 고백록이자 증언록인 재일조선인 서경식 교수의 『언어의 감옥에서-어느 재일조선인의 초상』이 지난 3월 번역·출간되었다.

서경식은 1951년 일본 교토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일본에서 일본어로 강단에 서는 ‘한국인’이다. 그의 고향도, 그가 꿈을 꾸는 언어도 모두 일본의 것이지만 그를 한국인이라 규정하는 것은 그의 ‘국적’이 한국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국적(한국)-모국어(한국어)/영주국(일본)-모어(일본어)의 단절적 존재인 그는 스스로를 재일조선인이라 칭한다.



재일조선인은 누구인가



나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재일조선인을 만나본 적이 없다. 아마 대부분의 독자들이 그러할 것이기에 서경식은 재일조선인의 ‘정체’와 ‘역사’에 대한 친절한 설명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재일조선인은 한반도(조선반도)에 혈통적 뿌리를 둔 일본 거주민들을 일컫는 말이다. 일제 식민지 시대에 수백만의 조선인이 자의와 타의로 일본에 건너갔고, 해방 이후에도 수십만이 일본에 잔류했다. 해방 전, 황민이라는 이름의 일본국 국민이었던 이들은 해방 후 국적을 자동으로 박탈당했고 동시에 국민으로서의 모든 권리 역시 박탈당했다. 그러나 이들은 해방된 국가의 주권자의 지위 또한 얻지 못했다. 조국이 곧 분단되었기 때문이다. 일본은 재일조선인의 국적 문제를 협의할 대표성 있는 단일 정부가 없다는 이유로 ‘조선적’이라는 실질적 무국적자 집단을 방치했고 심지어 탄압하였다. 재일조선인들은 ‘국민’으로서의 권리도, ‘외국인’으로서의 지위도 부여받지 못한 회색인으로 갖은 멸시를 견디며 살아갔다.

1965년 한국에서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킨 한일협정이 체결되면서 국적문제가 공식적으로 논의되었다. 그러나 이는 반쪽짜리 협정에 불과했다. 재일조선인에게 주어진 권리는 ‘남한’ 국적을 선택하면 일본 영주권이 주어진다는 냉전적 폭력이었다. 또 재일조선인들은 대한민국의 군사정권을 인정이라는 하나의 타협과, 식민지 지배를 사과하고 반성하기는커녕 군사정권과 공모해 재일조선인의 인간적인 권리를 거부하려는 일본정부와의 이중의 타협에 직면해야 했다. 그러나 그 타협을 거부하기에 재일조선인들이 처한 현실은 너무나 열악했다. 영주권이 없다는 것은 삶의 터전이 ‘불법’이라는 이름하에 언제든 빼앗길 수 있다는 의미였고, 국적이 없다는 것은 ‘여권’이 없다는 뜻이므로 국가 간 왕래가 불가능하다는 뜻이었다. 타협의 갈림길에서 당시 많은 청년운동 세력들이 분열되기도 했고 서경식 역시 착잡한 마음으로 영주권 신청 기한 막바지에 신청했다고 한다.



윤동주 ‘서시’에서 발견한 언어의 감옥



이러한 연유로 그는 모국/모국어가 한국/한국어인 한국인이 되었다. 그러나 그의 모어는 일본어이다. 심지어 그의 일본어는 ‘뛰어난 일본어 표현’으로 일본 에세이스트 클럽상을 받을 정도이다. 근대 국민국가 울타리의 세 꼭짓점을 이루는 국적-모국어과 모어 사이의 단절은 그에게 하나의 거대한 벽이다. 그를 둘러싼 단절의 벽은 그에게 거대한 감옥이 된다. 『소년의 눈물』에서 ‘뛰어난 일본어 표현’으로 상을 수상한 그는 수상 인사말을 통해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구식민지 종주국인 일본에서 태어난 나는 원래는 모어여야 할 언어(조선어)를 이미 박탈당하고 과거 종주국의 언어를 모어로 해서 자라났습니다. 나는 모든 것을 일본어로 생각하며 모든 것을 일본어로 표현합니다. 그렇다면 나는 일본어라는 ‘언어의 벽’에 갇힌 수인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감옥에 갇혀 있는 나는 어떻게 해서라도 좀더 넓은 곳으로 나가고 싶었고 이전에 갈기갈기 찢어진 동포들에게 내 마음을 전하고 싶어 번민의 나날을 보내왔습니다.

그가 느낀 언어의 벽은 이를테면 일어로 번역된 윤동주의 ‘서시’이다. 일제 강점기 저항적 문학의 상징이자 민족시인으로 불리는 윤동주의 서시 중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가 이부키 고가 번역한 윤동주 시집에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을 사랑해야지’라고 번역돼있다. 직역해도 아무런 어려움이 없는 문장이 굳이 의역이 돼있다. 20년 넘게 중쇄를 거듭하는 이 시집에 실린 서시의 ‘의역’에 대해 조선 문학 연구자인 오무라는 다음과 같은 비판을 제기했다.

윤동주가 서시를 쓴 1941년 11월 20일은 일본 군국주의 때문에 많은 조선인들과 그들의 민족 문화 모두가 ‘죽어가던’ 시대였다.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라고 부르짖는 윤동주는 이 모든 것을 죽음으로 내모는 자들에 대해 격렬한 증오심을 가지고 있을터이다. 이를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을 사랑해야지’라고 해버리면 죽어가는 것들도, 죽음으로 내모는 자도 모두 사랑하는 것이 되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이부키 고는 이 비판에 대해 ‘모든 죽어가는 것들’은 ‘모든 살아 있는 것들’과 이어동의(異語同意)라며 윤동주는 군국주의에 대한 증오심 따위가 아니라 실존 응시의 사랑 고백을 말하고 있다고 반론한다. 즉, 오무라 편에서는 윤동주 작품에서의 ‘저항’의 정신을 강조하고 이부키 편에서는 의도적으로 ‘저항’의 정신을 폄하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서경식은 윤동주의 시를 접할 때에도 일본 및 일본인이 받아들여야 할 고발이 아닌 일반적인 ‘실존 응시의 사랑 고백’으로 읽기를 선호하는 식민주의적 권력행사를 발견한다.

문제는 한국과 일본의 대부분의 독자가 이 같은 어긋남을 알아차리는 것조차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일본의 독자에는 수많은 재일조선인 독자들도 포함된다. 따라서 서경식은 이들이 번역문을 비교해보는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이들은 일본어 번역에 가해진 일본인 주류의 심리를 반영하는 편향에 노출되며, 식민지 민중의 자손으로서의 자신의 정체성마저 아이러니컬하게 종주국의 지(知)의 식민주의적 지배구조에 의해 결정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 역시 ‘모국어로서의 조선어’와 ‘모어로서의 일본어’의 분열이라는 아포리아에 맞닥뜨린 수인의 처지임을 토로한다.



‘국민주의’라는 계속되는 식민주의



우리가 서경식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하는 것은 그가 단지 스스로가 감옥에 갇힌 수인이라 고백하는데 있지 않다. 감옥에 갇혀 있는 그는 누구보다도 자신을 가두고 있는 감옥 밖의 힘들에 대하여 날카로운 시선을 던진다. 그리고 그는 그가 보고 듣고 깨달은 것을 ‘증언’한다. 그의 증언은 요컨대 계속되는 식민주의에 대한 저항이다. 그는 ‘우파의 야비한 욕설이 울려 퍼지고 리버럴 세력은 공허한 양비론을 중얼거리며 방관’하는 이 때에 ‘이런 무참한 사회를 젊은 세대에게 남겨주게 되어 황량한 현실을 살아가야만 하는 젊은 세대에 대한 책임감에서 무거운 마음을 북돋아’ 증언하고 또 증언한다.

굳이 그의 증언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일본의 식민주의가 계속되고 있음을 똑똑히 보고 있다. 얼마 전, 일본은 대지진으로 국가적 재난에 처하고 한국은 그런 일본을 위문하며 성금과 구호물자를 보내던 시기에 독도를 일본영토라 기술한 교과서 검정을 강행했다. 독도 문제는 일본의 계속되는 식민주의가 집약적으로 표출된 사례라 할 수 있다. 일본의 반성은 자신들이 패배한 ‘전쟁’에 국한된 것이며, 그 이전의 식민지배는 당시의 관점에서는 불가피한 것이었고, 그 방법 역시 제국주의 시대인 당시엔 불법적이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청일전쟁부터 시작돼 을사조약에 이르기까지 진행된 내정간섭과 점진적인 식민지화 과정은 ‘도의적’으로는 잘못되었을지 몰라도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으며 그 과정에서 진행된 독도 편입 행위 역시 합법적 행위였다는 것이다. 여전히 조선의 식민 지배를 긍정하고 그 식민주의의 유산을 계승하려는 시류가 일제 패망 60년도 더 지난 지금에도 강고히 흐르고 있다.

서경식은 이렇게 일본에서 계속되는 식민주의를 ‘국민주의’라 부른다. 그는 ‘국민주의’를 배타적 내셔널리즘인 ‘국가주의’와 구별하여 소위 선진국(구식민지 종주국)의 다수자가 무자각 상태로 가지는 ‘자국민 중심주의’라 규정한다. 국민주의자들은 자신을 내셔널리즘에 반대하는 보편주의자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지만,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많은 권리가 국민국가의 ‘국민’이라는 조건으로 보증되는 일종의 특권이라는 사실과 그 특권의 어두운 역사에 눈 감는다. 사회적·경제적 풍요를 ‘국민’의 자격으로 누리면서도 그 국민이 속한 국가의 정치적·역사적 책임은 ‘시민’이라는 탈 뒤에 숨어 회피한다는 것이다. 그 탈 뒤의 비겁한 공간은 새역모와 야스쿠니에서 매우 가깝다. 90년대 중반부터 가속화되고 있는 일본 사회의 우경화는 일부 극우 인사에 의해 이뤄진 것이 아니라 일본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국민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서경식은 진단하고 있다.



화해라는 이름의 폭력



『언어의 감옥에서』는 번역서이다. 즉, 이 책은 원래 일본어 공동체에 헌정된 책이었다. 실제로 독서 내내 이 책은 한국인보다는 일본인들이 읽어야 하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3부 ‘화해라는 이름의 폭력’을 읽으며 한국어 공동체에서 이 책이 소개된 이유와 의의를 백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서경식 ‘계속되는 식민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선 일본을 제대로 알아야 하며, 일본을 제대로 알기 위해선 일본의 리버럴 세력의 사고와 행동의 문제점을 잘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가 한국 체류 중 한국 사람들이 일본 우파에 대해선 경계하고 비판의식을 갖고 있지만 일본의 리버럴 세력에 대한 인식은 부정확한 데다 오해에서 비롯된 호의를 품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일본 사회의 소수자임과 동시에 식민지 지배의 산증인인 재일조선인으로서 서경식은 이러한 이해 부족이 안타까운 일일 뿐만 아니라 ‘위험한’ 일이라고 말한다.

3부 ‘화해라는 이름의 폭력’은 이러한 위기감의 발로에서 실린 글들이다. 요컨대 ‘일본의 리버럴 지식인의 사상적 퇴락’에 대한 증언인 것이다. 그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일본의 박유하 열풍을 꼽는다. 한국에서는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한 『화해를 위해서』가 일본 학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리버럴 계열의 신문인 아사히신문사의 오사라기 지로 논단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박유하는 『화해를 위해서』에서 “일본의 지식인이 자신에 대해 물어왔던 만큼의 자기비판과 책임의식은 지금껏 한국은 가진 적이 없었다”며 한일 간 갈등의 책임을 한국에게 돌린다. 여기서 ‘일본의 지식인’은 누구이며 ‘한국’은 무얼 지칭하는가. 일제 군국주의를 옹호하는 이들은 ‘일본의 지식인’이 아니며, 이라크 파병을 반대하고 베트남전을 반성하는 한국 지식인은 ‘한국’이 아니란 말인가? 또 박유하는 “‘용서’는 피해자 자신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라며 한국인들이 ‘피해자’로서의 내셔널리즘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자기비판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래야만 ‘상처를 받기 전의 평화로운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며. 용서는 당연히 진상규명, 책임 승인, 사죄, 보상이 이루어질 때 가능하다는 통념조차도 배격하는 이러한 주장은 같은 논리로 따르자면 일본이 ‘북조선 때리기’를 열렬히 하는 일본인 납치 사건 역시 마찬가지의 논리를 댈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인들은 북한의 책임 있는 행동 이전에 우선 그들을 용서해야 한다. 일본인 스스로의 상처받지 않은 평화로운 마음을 위해.

이렇게 어설픈 주장에 일본의 리버럴 지식인들은 왜 열광하는가? 서경식은 일본 리버럴 학계의 기이한 박유하 열풍에서 그들에게 숨겨진 욕구를 읽어낸다. 그들은 우파의 노골적인 국가주의에 반대하며 이성적인 민주주의자라고 자임한다. 그러나 동시에 식민지배를 통해 획득한 일본 국민의 특권이 위협받는 것에 불안함을 느낀다. 따라서 한일 간 화해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자신들의 책임은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이들의 모순적 태도로 인해 화해의 책임이 ‘한국’에 있다는 박유하식 화해론이 열광적으로 환영받는 것이다. 이렇게 극우 세력뿐 아니라 일본의 좌파인 리버럴 세력들마저도 ‘화해라는 이름의 폭력’으로 책임의 공을 피해자들에게 돌리고 있다. 서경식은 박유하 현상을 바라보며 1990년대 이후 일본의 리버럴 세력의 사상적 퇴락을 선언한다.



쁘레모 레비와 서경식



전작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에서 서경식은 아우슈비츠의 생존자이자 현대 증언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인 프리모 레비의 삶과 자신의 삶을 겹쳐놓은 바 있다. 『언어의 감옥에서』에서도 많은 지면을 프리모 레비에 대한 이야기에 할애하고 있는데 이는 아무래도 그에게서 증언자로서의 자신의 운명을 읽고 있기 때문일 게다. 프리모 레비는 그의 유작 『익사된 자와 구조된 자』의 결론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젊은이와 대화하기가 점점 곤란해지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의무인 동시에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시대착오라고 여겨질지 모른다는 위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을지 모른다는 위험이다. 우리는 그들에게 이야기해야만 한다. 개인적인 경험의 범위를 넘어서 우리는 총체적으로 어떤 근본적이고 예측할 수 없었던 사건의 증인인 것이다. (중략) 이것은 한 번 일어난 사건이기 때문에 다시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이것이 우리가 말하고 싶은 핵심이다.

서경식은 느낄 것이다. 점점 더 일본인들과 대화하기가 힘들어진다는 것을. 학계에선 그의 주장이 내셔널리즘의 굴레에 갇힌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는 비판을 듣고, 젊은 일본인들은 아예 식민주의 같은 문제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그는 이야기를 멈추지 않는다. 재일조선인으로서의 그의 삶 자체가 총체적으로 어떤 근본적이고 예측할 수 없었던 사건의 증언이기 때문이다.

증언은 무엇보다 사태의 재발을 막는 데 있다. 주변국이 일본의 일거수일투족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그들이 일으킨 적 있었던 사건을 다시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더군다나 또다른 군국주의 패전국인 독일과 달리 일본은 사죄와 반성조차 하지 않는 나라이기에 그 위험성은 뜬소리로 들리지 않는다. 일본은 일본의 프리모 레비인 서경식의 증언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자신들이 저지른 만행에 아직도 신음하고 있는 구식민지 민중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일그러진 초상을 바로잡고 일본사회의 비인간화를 막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나 이는 미번역 『언어의 감옥에서』를 비롯한 서경식의 일본어 저술과 그 독자들에게 주어진 몫이다. 번역된 『언어의 감옥에서』의 독자인 나에게는 다른 몫이 있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피지배 민족의 후손으로서 그의 통렬한 비판에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보단 세계 곳곳에서 제국주의적 확장에 편승하고 있는 국가의 구성원으로서 느끼는 불편함이 더 컸다. 과연 대한민국은 베트남에게 응당한 사죄와 보상을 했던가. 물론 일본과 달리 김대중 대통령이 공식적인 사과를 하였지만, 많은 국민들은 마음속으로 경제발전을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정당화하고 있진 않은지, 라이따이한과 같은 전쟁 피해자들에 대한 책임 있는 보상이 이루어졌는지를 돌아보게 됐다. 또 현재도 진행 중인 아프간·이라크 파병은 어떠하며 외국인 노동자 정책은 어떠한가. 마치 아우슈비츠의 악몽을 간직한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에서 분리장벽의 악몽을 만들어내고 있듯이, 일본 제국주의의 피해자인 우리가 오늘날 한국민 중심주의를 표방하고 있진 않은지 진지한 성찰이 필요한 때인 것 같다. 서경식이 프리모 레비의 ‘피해자 속의 내재된 가해성에 대한 성찰’에 주목하듯 말이다.

거시적인 측면뿐 아니라 미시적인 개인적·일상적 측면에서도 『언어의 감옥에서』는 나에게 많은 고민거리를 던져주었다. 이를테면 이런 질문이다. “전공 상 아이들을 외국에서 낳고 기를 가능성이 큰 데, 아이들의 모어는 무엇으로 해야 할 것인가? 국민으로 기를 것인가 외국인으로 기를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국가, 민족, 언어와 같이 개인의 정체성을 구현하는 요소들에 대한 성찰이 필수적인 듯하다. 서경식의 『언어의 감옥에서』가 아니었다면 국적-모국어-모어가 일치된 울타리 안의 나에게서 울타리 밖의 자녀가 태어날 수 있다는 깨달음을 한참 뒤에 얻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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