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난 2022년 3월 여성독립운동가 박자혜 지사의 삶과 투쟁을 기억하는 모임을 계기로, 여성독립운동가를 기리는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2년간 매월 여성독립운동가를 발굴·선양했지만, 이번 달엔 조금은 다른 이야기를 해야겠습니다. 바로 ‘반(反)’ 이 달의 독립운동가 이승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윤석열 정부의 국가보훈부가 이승만 전 대통령을 2024년 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습니다. 국가보훈부의 월별 독립운동가 선정 사업은 30년이 넘도록 지속됐지만, 이번 선정은 일제강점기 조국독립을 위해 스러져간 독립투사들을 모욕하는 행위입니다. 이승만의 문제 행각을 열거하면 한도 끝도 없지만, 대표적인 몇 가지들을 되짚어보려고 합니다.
첫째, 이승만에 대해 단재 신채호 선생은 “미국에 위임통치를 청원한 이승만은 이완용이나 송병준보다 더 큰 역적이오. 이완용은 있는 나라를 팔아먹었지만, 이승만은 아직 나라를 찾기도 전에 팔아먹으려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승만은 3·1운동 일주일 전인 2월 25일 “한국을 일정기간 동안 국제연맹의 위임통치 아래 두어달라”는 위임통치청원서를 작성하여 3월 3일 윌슨 미국 대통령에게 제출합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이승만은 4월에는 “조선은 미국의 제도 및 동일한 정신 밑에 기독교적 독립국을 건설한다”는 선언서를 발표했습니다. ‘위임통치안'은 ‘독립'을 선언한 임시정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망언이었습니다. 따라서 신채호, 김창숙, 장건상, 박용만, 신숙 등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은 이승만의 위임통치청원을 ‘매국·매족의 청원’이며 이승만을 ‘국민의 명예를 오욕(汚辱)’하는 ‘역적’, ‘비부’(鄙夫 : 마음씨가 더럽고 못난 사내)라고 성토하였습니다.
둘째, 국가보훈부는 독립운동가로서의 공적을 평가했다며, 이승만이 상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대통령을 역임하였다고 했지만, 이승만은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탄핵’된 대통령입니다. 임시대통령 이승만 탄핵서에는 이승만이 “원양일우에 편재하여 대업진행에 하등 성의를 다하지 않았다(멀리 떨어진 큰 바다 한쪽 구석-태평양 하와이에 있으면서 독립운동에 어떠한 성의도 다하지 않았다)”, “정부의 행정과 재정을 방해하고”, “허무한 사실을 제조 간포해서 정부의 위신을 손상시켰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심지어 이승만은 미주에서 재미동포의 인구세와 정부후원금, 공채표 발매금 등을 전부 받아 자의로 사용하고 재정보고조차 제출하지 않아 독립운동을 방해했습니다.
셋째, 이승만은 반민특위를 해체하고 친일 반민족행위자들을 구원했습니다. 제헌국회는 반민특위가 구성돼 반민족행위자를 조사하고 처벌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이승만은 반민특위 관계자에 대한 직접적인 암살음모와 테러 등을 자행했고 급기야 1949년 6월 반민특위 습격, 국회프락치 사건, 김구 암살 등 일련의 반공정국 속에서 반민특위를 고립, 와해시켰습니다. 이승만으로 인해 해방 이후 가장 먼저 해결했어야 할 과제였던 친일파 청산은 좌절되고 말았습니다.
독립운동에 해를 끼치고 친일파를 구원했던 이승만의 악행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한국전쟁 이후 더욱 극단으로 치닫습니다.
우선, 이승만은 한국전쟁 발발 직후 서울시민들에게 안심하라는 거짓 방송을 내보낸 뒤 무책임하게 도망갔습니다. 국민을 버리고 도망간 것만으로도 이미 대통령의 자격이 없지만, 여기에 더해 이승만은 아무 대책 없이 한강 인도교까지 폭파해 버립니다. 그는 서울이 수복된 후, 발이 묶여 피난조차 갈 수 없었던 서울시민들을 부역행위를 색출한다면서 탄압하는 파렴치하고도 적반하장 격의 작태를 드러냈습니다.
둘째, 이승만이 만들어낸 ‘반공주의’는 한국 사회의 분열을 일으키고, 민주주의를 제약하는 거대한 숙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승만은 반공질서를 법제화하기 위해 일제의 치안유지법을 능가하는 국가보안법(1948년 12월)을 제정했습니다. 국가보안법은 사실상 헌법 위의 법으로서 정치적 반대파를 숙청하고, 민간인들을 학살하는 명분이 됐습니다. 이승만은 집권 내내 반공주의를 앞세워 재판 등 적법절차 없이 ‘보도연맹사건’, ‘제주 4.3사건’, ‘거창 양민학살사건’, ‘대전 산내학살사건’ 등 비무장 상태의 국민 수십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 전국 방방곡곡을 킬링 필드(Killing Fields)로 물들인 한국 국가폭력의 원조입니다.
셋째, 이승만은 상상을 초월하는 악랄한 독재 정치 행각을 보였습니다. 이승만은 국회에서 대통령으로 재선될 가능성이 희박해지자, 전쟁 중인 국군과 정치 깡패를 동원하여 발췌개헌을 단행했습니다. 이후 1954년 자신의 영구집권을 위해 사사오입 개헌으로 3선 제한을 철폐하고, 1960년 3월 15일에는 대규모 부정 선거를 기획·실시했습니다. 이로 인해 4·19 혁명이 일어났고, 그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하와이로 달아납니다. 이승만은 사실상 국민으로부터 두 번 탄핵 당한 대통령입니다.
이승만으로 인해 친일파가 득세하고, 역사 정의가 무너지고, 수십만 명의 국민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우리 헌법 전문에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우리 헌법이 명령하고 있는 ‘독립’, ‘민주’, ‘평화적 통일’, ‘민족의 단결’, ‘폐습과 불의 타파’ 등 모든 가치의 반대편에 이승만이 존재합니다. 따라서 이승만에 대한 기념행위는 바로 헌법 무시, 헌법 부정행위입니다.
윤석열 정부는 국가정체성을 운운하며 ‘홍범도 장군 지우기’로 한바탕 홍역을 치르고도 아무런 반성 없이 또다시 ‘이승만 띄우기’로 집권야욕을 실현하기 위해 국민의 눈을 가리고 있습니다. 하루빨리 이승만 독립운동가 선정을 철회하고, 이번 반역사·반민주적 행태에 대해 처절히 반성하기를 바랍니다.

박진수
국민을 때려 죽여야 영웅이 되는나라인가..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