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13

홍성화의 [청대 중국의 경기변동과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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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찬근님의 서평
‘동양적 전제주의’(Oriental Despotism)라는 말이 있다. 동양은 무소불위의 지도자와 약탈적 관료집단에 수탈당하며 영원히 야만 상태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는, 꽤나 고약한 이야기다. 전형적인 오리엔탈리즘이지만, 누군가는 최근 중국을 보며 이 말이 완전히 틀리지 않는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아닌 게 아니라 시진핑의 종신집권, 전 인민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디지털 독재, 신장웨이우얼자치구의 강제수용소를 떠올리면 중국만큼 ‘전제적인’ 나라가 또 없어 보인다. 애초에 동양적 전제주의를 개념화한 카를 비트포겔이 탁월한 중국학자였다는 사실을 떠올린다면, 전제주의는 그냥 중국의 변함없는 특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이야 그렇다 쳐도, 과거 중국에서 과연 ‘전제’(專制)란 게 가능했을까? 어쩌면 전근대 중국의 전제주의란 중앙의 황제가 모든 일이 자기 뜻대로 이뤄진다는 ‘기분’을 느끼게끔 나머지가 알아서, 요령껏 처신하는 연극은 아니었을까? 홍성화의 <청대 중국의 경기변동과 시장>은 이런 관점에서 중국의 전제주의에 대한 재해석을 시도한다. 청나라 시대 사회경제사 연구자인 지은이는 화폐에 주목한다. 화폐야말로 제국의 지배력이 얼마나 널리, 깊숙이 미쳤는지 가늠하는 척도기 때문이다.
진시황 이래 천하통일은 곧 도량형의 통일이었다는 통념이 무색하게도, 청은 제국을 아우르는 단일한 화폐를 마련하는 데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고액권인 은은 액수가 기입된 화폐가 아닌, 덩어리 형태로 유통됐다. 농민이 사용하던 동전 역시 국가가 발행한 제전(制錢)만큼이나 민간이 찍어낸 사주전(私鑄錢)이 널리 쓰였다. 발행 주체도, 단위도, 순도도 천차만별이라 상하이 인근의 작은 마을인 주가각진(朱家角鎭)에서만 은은 세 종류, 동전은 네 종류 넘게 쓰였다. 셀 수 없이 많은 화폐가 유통되는 상황에서, 믿을 건 오로지 소재가치뿐이었다.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몰아낸다는 그레셤의 법칙이 청에서는 통하려야 통할 수 없었던 이유다.
청에는 별다른 경제적 중심도 존재하지 않았다. 명나라 말기까지 부동의 ‘경제수도’이던 강남 지방은 정체한 반면, 낙후한 서쪽과 북쪽 지방은 성장했다. 이러한 ‘균형발전’은 각 지역의 자급자족을 촉진해, 외려 전국 시장의 통합력을 크게 떨어뜨렸다. 심지어 농민마저 상인에게 휘둘리지 않고 면포를 비롯한 생필품을 ‘알아서’ 생산했다. 지은이가 적절하게 표현했듯, 청대 중국은 하나의 커다란 호수라기보다 작은 격벽이 세밀하게 쳐진 논들의 집합이었다. 도시와 농촌, 관료와 신사(紳士), 상인과 농민 모두 저마다의 방식으로 상업화 흐름에 올라탔다. 부가 특정 지역과 계층에 집중된 일본이나 유럽과는 달랐다.
지은이는 청대 중국이 보여준 자율성과 분권성이 전제국가였음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전제국가였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이야기한다. 전제국가는 사회적 동의 없이 정책을 밀어붙이지만, 바로 그 이유로 이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여러 구성원의 협조를 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잘 쳐줘야 근대까지의 이야기일 뿐, 현대의 중화인민공화국은 대중을 직접적으로 동원하는 ‘뜨거운 전제국가’로 변모했다는 게 지은이의 분석이다. 하지만 전제국가의 자율성이라는 중국사의 역설적인 ‘장기 지속’이 그리 쉽게 끊어졌을지, 한편으론 자못 의심스럽기도 하다. 이제는 고전이 된 판타지소설(이영도의 <드래곤 라자>)의 한 구절을 빌리자면, 중국은 단수가 아니니까.
‘전제’란 일종의 ‘연극’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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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제’란 일종의 ‘연극’은 아니었을까
화폐의 흐름으로 재해석한 중국의 전제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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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대 중국의 경기변동과 시장 - 전제국가의 협치와 경제성장  | 知의 회랑 32
홍성화 (지은이)성균관대학교출판부2022-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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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시장과 유통’을 중심으로 청대 중국의 경제사를 다시 파악해본다. 기존 연구들처럼 직선적이고 단계적인 경제발전모델로써 경제현상을 해석하기보다 ‘호황’과 ‘불황’이라는 파동적 경기순환으로서 동아시아 근세의 경제사를 재구성해본다. 무엇보다 화폐현상이 지닌 다양한 측면을 사회구조 속에서 함께 고찰한다는 문제의식이 돋보인다.

화폐ㆍ시장ㆍ도량형 등의 차원에서 국가 개입보다 민간 자율을 중시했던 청조(淸朝)의 현실적 경제정책이 초래한, 다양한 경제현상들의 실정을 확인해볼 수 있다. 나아가 청대 중국의 경제성장을 같은 시기 유럽이나 에도시대 일본의 상황과 비교사적 관점에서 재고찰함으로써 일국사적 시선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했다. 청대 중국사회를 훨씬 더 다양하게 이해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하는 연구서다.


목차


책머리에
표 목록ㆍ그림 목록

|서론|

<제1부 화폐 유통과 농민소득의 변화>

|제1장| 명말청초부터 청대 후기까지 화폐 유통량
명말 은 유입과 동전 주조량 추계|청대 전중기 은 유입 추계|청대 전중기 동전 주조량 추계
|제2장| 경기변동과 농민소득의 변화
근세 강남 농민의 소비구조 변화|근세 강남 농민의 수입구조 변화

<제2부 청대 시장구조와 경기변동>

|제1장| 전국시장과 지역경제
전국시장의 형성과 강남지역|전국시장망과 지역경제의 형성|지역시장의 자립과 지역경제
|제2장| 건륭연간의 화폐와 물가
건륭 후기 은전비가와 물가|건가성세와 경기변동
|제3장| 도광불황의 구조
명조의 유산: 거대한 지역차|18세기 강남지역: 스미스적 성장|18세기 장강 중상류지역: 맬서스적 함정|19세기 초 강남지역: 맬서스적 함정

<제3부 청대 시장구조와 프로토공업화>

|제1장| 동아시아 속의 청대 농촌시장
16-18세기 중국의 시장구조|거울로서 에도시대 시장구조|서로 다른 농촌 수공업|소결: 서로 다른 경제성장
|제2장| 강남 농촌시장의 세계
들어가며|강남지역 시진의 공간구성|강남시진의 인구와 주민구성|강남시진의 화폐와 도량형 관행|농민경제: 경제의 여러 층위들
|제3장| 농촌 수공업 선대제 생산문제

|결론|

참고문헌ㆍ찾아보기
총서 ‘知의회랑’을 기획하며
접기


책속에서


P. 7 ㆍ국가는 과연 시장의 어디까지 개입하고 어디까지 방임할 것인가. 이는 문제를 바라보는 인식의 차이일 뿐, 어떤 지역과 국가에 구속된 영속적 속성이라 단정 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개입의 정도는 중국사에서 각 시대마다 달랐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이 책은 현대와 다른 경제질서들이 과연 어떤 사회질서의 산물이었으며, 그것이 이 책이 주목하려는 청대의 경제발전에 과연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를 나름대로 소상히 밝혀보려 노력한 결과이다. ―본문 ‘책머리에’ 중에서 접기
P. 59 ㆍ이처럼 중국 화폐의 세계는 다양한 플레이어가 참여하는 세계로서, 각각의 플레이어들은 독자적 가치를 갖는 각각의 주인공들이었다. 그들이 만들어낸 화폐 또한 각각의 퀄리티를 갖는 각각의 주인공들이었다. 각각의 플레이어들이 독자적이었기 때문에 다른 플레이어와의 연결은 심히 미약해서 서로간의 환산은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비유하건대 중... 더보기
P. 111~112 ㆍ청조의 동전 발행은 어떤 의미에서는 오늘날로 보자면 일종의 ‘양적 완화(quantitative easing)’에 해당되었고, 이는 명대 중기부터 지속된 만성적인 동전부족이라는 사태에 대한 청조의 기민하고 신속한 대처였다. 1684년 천계령이 해제됨으로써 다시 은 유입이 재개되었지만, 동전이 부족한 상황 속에서는 이러한 은 유입이 가져온 막대한 유효수요를 내수로 전환할 수 있는 매개가 부족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것을 해결한 것이 청조의 동전 발행이었다. 즉 순치연간 이후 시장에 안정적인 ‘유동성’이 공급됨으로써 상품생산이 활발해질 수 있었다. 이렇게 발행된 동전과 더불어 민간에서 발행한 사주전의 유통으로 해외무역을 통해서 얻어진 재화가 비로소 지역시장에 투하되어 농촌지역까지 상품경제가 활발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른바 ‘건가성세(乾嘉盛世)’의 경제적 기원은 은 유입이라기보다 주조차익을 노린 청조의 적극적인 동전 주조정책에 있었다. 당시 전체적인 GDP가 증대하기는 했지만 매우 완만했기에, 인플레이션의 발생은 어디까지나 화폐 유통량의 증가 때문이었다. 반면 인플레이션은 소득의 양극화를 가져와 자산을 소유한 계층은 많은 이익을 볼 수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계층은 커다란 타격을 받게 되었다. 즉 대대적인 ‘동전발행(quantitative easing)’이 가져온 인플레이션 그리고 이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양극화의 심화. 이것이 바로 ‘건가성세’의 경제사적 의미였다.
―본문 ‘제1부 제1장 명말청초부터 청대 후기까지 화폐 유통량’ 중에서 접기
P. 238 ㆍ청대 통화체제의 연구자들은 청조의 화폐정책과 통화시스템에 대해서 낮은 평가를 내리는 경우가 많다. 또한 그 때문에 아편무역을 통한 은 유출을 제대로 막지 못했다고 서술하는 경우를 자주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통화의 발행주체를 국가로 한정하고 통화의 규제를 독점하고 있는 현대적 시점에서 볼 때, 은량의 규격에 대한 규제를 방임하고 심지어 자신들이 발행한 제전의 통일도 이루어내지 못한 청조의 모습은 일견 이해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은 유출이 있기 전까지 부족한 동전을 메꾸기 위해 동전을 대량으로 주조해 시장을 안정시키고자 했던 청조의 노력이 오히려 훗날의 화를 불러 일으켰다고 하더라도, 그 시기까지의 노력은 당대의 시점에서 평가해주는 것이 좀 더 온당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본문 ‘제2부 제2장 건륭연간의 화폐와 물가’ 중에서 접기
P. 273~274 ㆍ다시 말하자면, 18세기 중국의 경제성장은 대량 이주를 허용함으로써 상대적으로 과잉된 인구를 인구집중 지역 외부로 배출하면서 팽창하는 방식이었다. 18세기에도 이전 시기와 마찬가지로 확대된 해외무역을 통해 대량의 은이 계속 유입되었다. 은의 풍요로운 유입은 호경기를 화폐적으로 뒷받침했고, 그 결과로 확대된 고용기회는 인구증가를 가능하게 했다. 그리고 호경기에 따르는 기호품의 다양화, 증가된 욕망은 자원의 보고인 ‘내부 변경’을 활성화시켜 많은 인구를 흡수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내부 변경의 개발이 어느 정도 완료되자 위기는 다시 변경에서부터 시작되어 중심인 강남지역으로 몰려왔고, 청조로서도 이를 만회할 방법을 찾지 못한 채, 1841년 아편전쟁을 맞이하고 말았다. 요컨대 18세기의 경제성장이 19세기에 이르러 위기의 원인이 되어버린 것이다. 19세기 들어 맬서스적 함정에 빠져버린 중국은 결국 스미스적 성장에서 이탈했으며, 18세기도 아닌 19세기에 도리어 ‘근대적 경제성장’과 멀어지게 되었다고 결론지을 수 있을 것이다.
―본문 ‘제2부 제3장 도광불황의 구조’ 중에서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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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홍성화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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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학교 사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일본 도쿄대학에서 청대 중국의 사회경제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중국 톈진의 난카이대학과 미국 일리노이대학에서 수학했으며, 베이징 소재 중국사회과학원 사회사연구실 방문학자를 지냈다. 
현재 부산대학교 역사교육과에서 중국사를 가르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중국은 어떻게 서양을 읽어왔는가』, 『당음비사』(공역) 등이 있으며, 『전쟁과 교류의 역사: 타이완과 중국 동남부』, 『청사고 기초 연구』, 『동아시아의 근대, 장기지속으로 읽는다』 등의 책을 함께 썼다.

최근작 : <청대 중국의 경기변동과 시장>,<동아시아의 근대 장기지속으로 읽는다>,<전쟁과 교류의 역사> … 총 6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청대 중국의 경제는
사실 이렇게 성장했다”
경기변동과 시장을 중심으로 재구성한
동아시아 근세의 사회경제사

단계적 발전모델에선 간과되었지만
전제정 아래서도 협치로 작동하던
청대 경제사회의 입체적 실상들에 대하여

이 책은 ‘시장과 유통’을 중심으로 청대 중국의 경제사를 다시 파악해보려는 시도다. 기존 연구들처럼 직선적이고 단계적인 경제발전모델로써 경제현상을 해석하기보다 ‘호황’과 ‘불황’이라는 파동적 경기순환으로서 동아시아 근세의 경제사를 재구성해본다. 무엇보다 화폐현상이 지닌 다양한 측면을 사회구조 속에서 함께 고찰한다는 문제의식이 돋보인다. 화폐ㆍ시장ㆍ도량형 등의 차원에서 국가 개입보다 민간 자율을 중시했던 청조(淸朝)의 현실적 경제정책이 초래한, 다양한 경제현상들의 실정을 확인해볼 수 있다. 나아가 청대 중국의 경제성장을 같은 시기 유럽이나 에도시대 일본의 상황과 비교사적 관점에서 재고찰함으로써 일국사적 시선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했다. 청대 중국사회를 훨씬 더 다양하게 이해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하는 연구서다.
물가ㆍ환율ㆍ금리 등 경기변동의 지표가 인간의 삶 한가운데로 들어온 이때, 역사 재고의 흥미로운 시야를 제공하는 성균관대학교출판부 학술기획총서 ‘知의회랑’의 서른두 번째 책이다.

이 책의 문제의식과 시야
시장과 유통, 협치와 다양한 중심

기존의 청대 경제사 연구는 주로 지역사나 농업사 중심으로, 고립된 지역의 생산관계에 초점을 맞춘 것들이었다. 화폐와 시장 및 사회구조 그리고 국가적 통합 부분을 염두에 둔 접근은 전무하다시피 했다. 하지만 페르낭 브로델도 주저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에서 16~18세기 세계사를 서술하면서 ‘시장구조’에 주목하고, 이를 ‘교환의 세계’가 성립하는 데 중요한 지표로 간주하고 있듯이, 중국의 해당 시대 역시 시장과 유통의 시각에서 거시적ㆍ종합적으로 고찰해야 할 필요성은 충분하다. 저자는 이러한 관점에서 접근할 때, 생산력이 지속적ㆍ단계적으로 상승한다는 직선적 역사관의 맹점을 대신해 각 시기마다의 경제사적 특징이 훨씬 더 선명하게 제시될 수 있다고 본다.
특히 이 책에서 저자가 주목하는, 청대 경제사회의 가장 큰 특징은 중앙의 전제국가와 (민간의) 자율적 사회 사이에서 모색된 협치(governance), 즉 양자 간 균형[中]이다. ‘현실과 당위’ 사이에서 교묘한 균형을 찾아나가야 했던 청조 경제정책의 한 입장이 여기서 비롯된다. 청대 중국사회는 징세ㆍ치안ㆍ재판ㆍ국방 등의 중요 사안에선 황제와 고위관료들이 그 권한을 위력적으로 행사한 것이 맞지만, 그 밖의 경제와 관련된 여러 가지 업무들에선 사실상 책임주체가 모호했고 권한이 분산되어 있었다.
예컨대 이 책에서 주목하고 있는 화폐 발행 차원에서도 지방관이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은 한정적이었기 때문에, 국가가 정해놓은 화폐를 일방적으로 강요하기란 불가능했다. 자연스럽게 민간에서 만든 화폐(사주전)가 어느 정도 용인되었고, 시장에서는 청조가 발행한 화폐, 이전 왕조가 발행한 화폐, 민간에서 만든 사주전 등 다양한 화폐가 병존하게 된다. 근대적 시선으론 이런 상황에서 경제가 안정적/정상적으로 굴러갔을까도 싶겠지만, 역사가 증거하듯이 세상은 작동했다. 더구나 화폐와 도량형을 둘러싼 상업상의 분규에서도 청조는 근본적 해결책을 제시하기보다 이러한 문제가 심각한 사회질서의 동요로 이어지지만 않게 하되, 나머지는 민간 자율에 맡기는 방식을 취했다. 그렇게 청대 경제사회에서는 시장이 세분화되어갈수록 민간 영역은 더 커졌고, 반대로 중앙권력의 개입은 점점 더 축소되었다.

화폐 유통과 경기변동
그리고 농민소득과의 상관관계

이 책에서 가장 먼저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는 대목은 충실한 사료적 접근을 통해 화폐 유통량/공급량의 변화와 경기변동(Business Cycle, 호황과 불황)의 상관관계를 가시화하고, 그 의미를 해독해내는 지점이다. 사전에 이를 시대별로 개요화해본다면, 청대 중국은 ① 불황기(1640년대~1680년대 후반: 순치ㆍ강희연간), ② 회복기(1680년대 후반~18세기 중엽: 강희ㆍ옹정ㆍ건륭연간), ③ 호황기(18세기 후반: 건륭ㆍ가경연간), ④ 침체기(19세기 초기: 가경연간)를 거쳐, 다시 ⑤ 19세기 초 도광연간의 불황으로 접어든다. 저자는 제1부 제1장에서 명말청초 이후 은 유입량과 동전 주조액에 대해 검토하면서 청대 경기변동의 근본 요인을 화폐 유통량의 변화에서 짚어낸다. 이를 보면, 국제무역을 통해 유입되는 은의 양이나 동전의 주조/유통량 및 유통속도의 변화가 각 시기의 경제상황과 일정한 경향성을 띠며 대응하는 모습을 읽어낼 수 있다.
화폐 유통 및 경기변동과 각 계층별 소득의 변화를 읽어낸 결과도 자연스럽게 이와 연동된다. 저자는 제1부 제2장에서 청대 강남지역 농민들의 소득수준 변화에 대해 살핀다(당시 경제적으로 선진지역이었던 강남 농민들의 소득수준에 관한 연구는 청대 농업경제 발전의 주요 지표로서 많은 주목을 받아왔다). 앞서 제1장에서 정리되었듯 청대에는 화폐량이 크게 늘어났고, 이는 당연히 농가경영에도 영향을 미쳤다. 전체적으로 강남지역에서는 명말부터 임금이 상승하기 시작했으며, 청초에 이미 이를 당연시하는 풍조가 정착되었다. 이번에도 저자는 청대의 이러한 수익 상승을 통화량 확대로부터 해석해낸다. 통화량 상승이 농촌시장의 확대를 가져오고, 이러한 상황에서 청대 농민들이 농촌 수공업을 통해 수익을 다각화해가는 모습을 설명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시 19세기 초에 통화량이 축소되면서 이러한 기본적인 수익구조에 커다란 변화가 생겨나기 시작했고, 그 결과 농민들의 수익 역시 축소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제1부에선 통화량, 물가, 소득/소비수준 등 경기변동의 지표들이 퍼즐 맞춰지듯 재정리되면서 그 상호관계의 메커니즘이 드러난다.

청대의 시장구조
경기변동과 시장의 상관관계

제2부는 청대의 시장구조를 다룬다. 제2부 제1장에서는 명대 중기 이래로 진행된 강남지역의 눈부신 성장과 그 이후를 살핀다. 강남은 국내적으로 가장 중요한 수공업품인 면직물과 견직물에 대해 전국시장의 중심부로서 여타 지역들을 주변부로 거느리고 있었다. 즉 여기서 발생하는 경제적 이익을 독점함으로써 중국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후 주변 지역들의 자립과 해외무역의 중심 이동은 곧바로 이 지역의 독점적 지위 상실, 나아가 그 결과인 경기불황으로 이어진다. 저자는 다양한 사료적 접근을 통해, 청대 중후기 중국시장의 발전이 갖는 특징을 지역시장의 자립화와 강남지역의 독점적 지위 상실로 분석해낸다. 즉 명말청초의 강남 중심형 모델은 청 중기 이후가 되면서 지역시장 자립형 모델로 점차 변화해간다.
제2부 제2장에서는 [경기 상승/호황기(상기 ②~③ 지점)를 고찰하는 시도로서] 건륭연간의 물가와 화폐사용에 대해서 살펴본다. 이때는 쌀가격의 꾸준한 상승에도 불구하고 굶주리는 사람이 없었고, 그것이 정상 가격으로 여겨지는―물가변동의 폭만큼 실질소득도 어느 정도 상승하던―시기였다. 여기에 1684년 천계령(遷界令, 반청운동세력을 제압하기 위해 내려졌던 해안봉쇄령)이 해제됨으로써 다시 은 유입은 재개되고, 제전과 사주전의 유통으로 해외 무역과 원격지 무역에서 얻어진 막대한 양의 부가 비로소 소민(小民)들의 부로 전환되어 농촌지역까지 활황의 모습을 띠게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후 활황의 그림자로서 인플레이션이 뚜렷해지면서 소득 양극화가 초래되기 시작했다. 자산소유 계층은 많은 이익을 볼 수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계층에는 타격이 불가피했다. 즉 대대적 동전 발행이 가져온 인플레이션 그리고 이어지는 양극화의 심화, 저자는 바로 이러한 분위기를 ‘건가성세(乾嘉盛世)’의 경제사적 의미로 읽어낸다.
제2부 제3장에서는 [건가성세에 이어지는, 경기 하강/불황기(상기 ④~⑤ 지점)를 고찰하는 시도로서] 이른바 ‘도광불황(道光蕭條)’의 구조를 살핀다. 전체적으로 청대 건륭연간에는 은의 유입과 동전 주조가 매우 활발했지만, 도광연간에는 동전 주조도 정체되고, 더욱이 은 유출이 가속화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존의 지역시장은 강남지역을 중심으로 밀접히 연동되었지만, 각각의 시장에서 면방직업을 도입함으로써 수공업에 관한 한 강남지역의 우위는 점차 상실되어간다. 지역 간 교역이 둔화되자, 원격지 교역에 의거한 이익도 크게 줄어든다. 이익의 감소는 여타 상품에 대한 구매력 감소로 이어지고, 결국 이는 물가하락 현상으로 나타난다. 여기에 디플레이션을 더욱 부채질한 것이 화폐 유통속도의 저하였다. 즉 경기불황과 동전의 화폐 유통속도의 저하라는 두 측면의 중첩이 도광연간 불황의 원인인 셈이다. 이렇게 저자는 도광불황은 단순히 은 유출이라는 국제적 요인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들며, 청대 중국의 시장구조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분석해낸다.

동아시아 시장구조의
비교사적 분석

제3부 제1장에서는 동아시아 속의 청대 농촌시장과 그 비교대상으로서 일본 에도시대의 시장을 다룬다. 중국과 일본 모두 16세기 중후반 전 세계적 범위의 은 경제체제로 편입되면서 도시와 시장체계가 새로 형성된다. 16세기와 17세기 이후 양국 모두 소농경제가 안정되면서 여러 수준의 농촌시장이 발달하고, 도시ㆍ중간지대ㆍ농촌시장이라는 세 패턴의 시장구조를 갖추었다는 점을 서로 공유한다. 하지만 중국은 도시부도 발달하긴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현저한 발전을 구가한 쪽은 중간지대와 농촌시장이었다. 다시 말해 규모와 차원이 다른 각각의 시장경제권들이 수많은 동심원을 그리며 내부에서 끊임없이 확대되어가는 과정에 있었다. 중국 근세 강남지역 시장들도 행정 중심 지역인 현성에서 시작되어 점차 그 주변부 지역으로 확산되어간다. 반대로 에도시대 시장구조의 발전은 말단의 농촌 정기시[六斎市]가 축소되어 자이고마치(在鄕町/在方町)가 발전하는 수렴형 쪽이었다. 이는 대도시 상품경제가 주변부인 자이고마치까지 확장되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를 두고 근세 중국의 시장은 ‘분산적(decentralization)’, 근세 일본의 경우는 ‘수렴적(convergence)’이었다고 정리해낸다(동시대 유럽의 시장구조 역시 수렴적이다). 그리고 이러한 차이는 무엇보다 국가권력의 개입 정도에서 비롯된다는 입장이다. 명청시대 중국에선 국가권력이 시장에 개입하거나 이를 장악하려는 시도가 별로 없었던 반면, 근세 일본은 오다 노부나가 때부터 여러 방법을 동원해 상인층을 장악하려 했고, 때문에 조카마치(城下町)에 조닌(町人)이 집중되어 거주하는 일이 나타난다. 이를 통해 상업거래는 특정 장소에서 집중적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제3부 제2장에서는 지역경제의 구체적 사례로서 상해 교외의 작은 시진(市鎭)인 주가각진(朱家角鎭, 소주(蘇州)와도 가까운 강남 델타지역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으면서, 전통적으로 미곡뿐만 아니라 면화와 면제품 등의 교역도 성행했던 곳이다)을 소재로 중국 농촌시장의 구조를 분석한다. 저자는 『주리소지(珠里小志)』는 물론, 청대 강남지역의 지방지나 문집, 일기, 농서 그리고 민국시기에 이루어진 농촌조사 등 다양한 사료를 토대로, 거래ㆍ매개수단ㆍ타 지역과의 네트워크 등의 관점에서 주가각진이란 공간을 하나의 경제단위로 파악하고, 그 경제생활의 구체적 실상을 재구성해낸다.
무엇보다 여기서 저자가 읽어낸 건 이곳―청대 ‘지역’―의 경제활동의 중층성이다. 즉 주각각진의 농민경제는 상품경제, 물물교환, 자급자족 등 여러 층위가 결합한 형태였다. 더구나 여기선 다양한 종류의 화폐와 도량형이 통용되었기 때문에, 주민들은 늘 어떤 교환수단을 사용할 것인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했다. 또 높은 소작료로 농민들에겐 화폐가 늘 부족했으며, 주가각진 자체의 물자 유통량 역시 크지 않아 근본적으로 진 내부에 통일적인 거래/유통 네트워크가 형성되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화폐 유통과 프로토공업화

청대 중국의 화폐는 지역체류 경향이 강해 중앙으로는 잘 집중되지 않았다. 결국 자본으로 전화되기보다 주로 사용가치를 표시하는 기능에 머물렀고, 획득하여 축적하기보다 재화를 구입하는 데 사용되기 쉬웠다. 상당수 농민들이 수공업을 통해 획득한 화폐를 생계보전이나 소비를 확대하는 데 사용하게 된 이유다. 지역에서 농촌 수공업을 통해 생활이 향상되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화폐가 한곳으로 집적되지 않고 농민들에게 균질적으로 산포되는 경향이 강했던 것이다. 이처럼 상당한 정도로 국가권력의 개입이 억제되거나 거의 방임인 상황 아래서 농민층이 능동적으로 상품생산에 참여함으로써 나타난 경제형태가 바로 면방직업 농촌 수공업이다. 저자는 이에 대해 제3부 제3장에서 프로토공업화(proto-industrialization, 원시/조기공업화)의 차원으로 접근해본다.
그러나 면방직업을 통한 수입 확대로 생계유지까지는 가능했지만, 생계수준 이상으로까지 수입을 확대하기는 어려웠다는 게 저자의 정리다. 앞서 정리했듯 지역사회 내부의 재화가 한곳으로 통합되기 어려웠다는 판단에서다. 즉 면방직업 농촌 수공업은 소농경제의 발전과 프로토공업화 자체에는 긍정적 영향을 미쳤으나, 이를 자본집적적 경제로 발전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스미스적 성장(아담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언급한, 분업과 시장영역 확대로 인한 경제성장)’이 ‘근대적 성장’으로는 연결되지 못한 것이다. 저자는 시장권과 고립된 비독립적인 소수의 농가를 상품생산으로 편입시키고, 경영의 독립성을 제고시키는 조건을 형성했던 것이 이 지역의 농촌 면방직업에서 선대제(先貸制) 생산의 역할이었다고 결론 내린다.

오리엔탈리즘 너머

저자는 16세기 이후 중국과 서구가 전 세계적인 은 교역에 편입되었다는 점, 아메리카나 일본 은을 바탕으로 국내 상품경제가 발전했다는 점에서는 동일한 처지였지만, 실제로 중국과 서구의 경제질서 자체는 매우 이질적이었다고 본다.
중국은 화폐ㆍ시장ㆍ도량형 등 모든 차원에서 국가의 개입보다 민간의 자발적 질서가 중시되는 사회였고, 따라서 집중화된 상품경제보다 분산적인 상품경제가 발달했다. 화폐에 수반되는 경제적 부 역시 도시에 집중되기보다는 농촌 시진에 편재하는 경향이 강했다. 서유럽과 마찬가지로 면방직업이 발전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농촌 시진을 중심으로 한 것이었으며, 도시 중심의 공장제 수공업으로는 발전하지 않았다. 대신 유럽 등과 달리 상업발달이 특정 지역(예컨대 도시부), 특정 계층(예컨대 신사층)에 집중되지 않았다. 도시/농촌, 신사/상인/농민층 모두가 다양한 방법으로 각각 상업화를 진전시켰고, 그 결과 이들 사이에 일종의 균형상태가 만들어졌다. 저자는 상업화가 상당히 진전된 청조사회에서 사회적ㆍ경제적으로 이렇다 할 근본적 변화가 일어나지 않은 이유를 이 지점으로부터 짚어낸다. 물론 여기서 중국과 서구가 서로 다른 경제질서로 발전한 것은 우열의 문제라기보다 상품경제의 전개방향이 서로 달랐다는 데서 기인하는 것이다.
세계경제 차원에서 중국의 근세를 재설정하되, 오리엔탈리즘의 시각을 경계/극복하며 달려온 저자의 한 시도는 이렇게 일단락된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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