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규인의 잡학사전]마광수 없었으면 윤동주, 기형도 없었다동아일보
업데이트 2017-09-06

정말입니다. 마광수 교수(1951~2017)가 없었다면 우리는 여태 윤동주 시인(1917~45)이 누구인지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할지 모릅니다. 기형도 시인이 세상 빛을 보게 된 것도 마 교수 덕분입니다.
이제 윤 시인은 ‘국민 시인’이라고 불러도 모자람이 없는 인물. 하지만 1980년대 초반까지도 윤 시인은 이 정도 평가를 받는 인물은 아니었습니다. 정부에서 1990년 광복절이 되어서야 윤 시인에게 건국공로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는 게 그 방증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윤 시인이 명성을 얻게 된 건 마 교수가 1983년 쓴 박사 논문 ‘윤동주 연구: 그의 시에 나타난 상징적 표현을 중심으로’ 덕분이었죠. 마 교수는 이 논문에서 국문학 역사상 처음으로 윤 시인의 모든 시를 분석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쓴 시에 ‘부끄러움’이라는 정서에 깔려있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대학수학능력시험 대비 문제집에서 윤 시인 시를 해설한 내용은 거의 이 논문에서 따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마 교수는 이 논문에 “그의 시에 나타나는 자학적이며 자기부정적인 이미지의 대표적 보기를 들면 이 점이 분명해진다. 앞서 말했듯 ‘부끄러움’이란 시어가 나오는 작품이 10편이나 되는데, 이는 예나 지금이나 우리나라 시인들이 표피적 정서나 표피적 이데올로기(또는 사상)만을 좇는 경향과 비교해 보면 가히 파격적이리만큼 독특한 문학세계를 형성하고 있다”고 썼습니다.
마 교수는 또 이렇게 분석했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이상하게도 ‘투사’보다는 ‘유약하지만 솔직한 사람’을 한 시대의 상징적 희생물로 만드는 일이 많다. 윤동주는 바로 그러한 역사의 희생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작품들은 일제 말 암흑기, 우리 문학의 공백을 밤하늘의 별빛처럼 찬연히 채워주었다.”
마 교수는 소설이나 에세이를 쓰는 산문 작가로 유명하지만 원래는 청록파 시인 박두진(1916~98)의 추천으로 등단한 시인이었습니다. 그는 1983년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된 뒤 이듬해 동아일보 신춘문예 예심 심사위원을 지냈습니다. 응모작 3000편 중 15편 정도를 골라 본심에 올리는 게 그의 임무. 그해(1985년) 최종 당선작으로 뽑힌 게 바로 기 시인이 쓴 ‘안개’였습니다.

그러나 마 교수는 이 시를 별로 탐탁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그는 나중에 “예심을 보던 중 어떤 응모작이 전혀 마음에 안 들어서 낙선작으로 던져 버리고 난 직후에 무슨 텔레파시 같은 육감이 느껴져서 던져버린 작품을 다시 집어 들고 보니 작자가 (내가 지도 교수로 있던 연세문학회 회원) 기형도 군이었다. 그래서 완전히 인맥으로 그의 시를 특별히 뽑은 것이다. 사실 공정한 심사위원으로서는 해서는 안 될 행위였다”고 말했습니다.
마 교수는 끝까지 기 시인을 크게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2009년 여성동아를 통해 가수 조영남 씨와 대담을 하면서 “기형도는 난해해. ‘물속의 사막’, 이게 무슨 소리야.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라는 시구가 있는 시 제목이 ‘빈집’이야. 무슨 연관이 있어? 사람들이 무슨 말인지 알고나 기형도를 좋아하는 걸까. 어려운 글은 무조건 못쓴 글”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너는/누구에게/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는 시구로 유명한 안도현 시인(52·우석대 교수)이 ’서울로 가는 전봉준‘이라는 시로 198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될 때도 마 교수가 예심 심사위원이었죠.

마 교수와 동아일보의 인연은 한양대 강사 시절이던 1977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는 그해 4월 11일자 동아일보에 ’세상을 그르치는 신념의 공해‘라는 칼럼을 실었습니다. 마 교수는 이 글에서 ”단발령을 내렸을 때 땅을 치며 통곡하던 유생(儒生)들의 애절한 신념, 그 편협한 선비주의적 신념의 잔재가 아직도 우리들에게는 미덕으로 남아 있다“면서 ”이 세상의 악과 불행은 ’이상의 결핍‘ 때문에 비롯되지 않는다. 되레 모든 악과 불행은 오로지 ’잘못된 이상‘, ’잘못된 신념‘으로부터 발생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유약하지만 솔직한 사람‘이었던 마 교수가 일생을 떠받친 신념은 아마도 ”위선적인 성(性)문화를 바로 잡자“는 것이었을 터. 하지만 여전히 ’선비주의적 신념‘이 지배하던 시대는 쉽게 마 교수의 신념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그는 희생양이 되어야 했습니다. 소설 ’즐거운 사라‘를 쓴 죄로 감옥살이를 해야 했던 그는 최근까지도 ”사회적으로 학살당했다“며 괴로워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마 교수는 우리에게 윤동주와 기형도를 남긴 채 자기 시집 제목 ’모든 것은 슬프게 간다‘처럼 떠났습니다.
”현실적, 현실적으로 되어 나도 화장을 하고 싶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공유해주신 세진 박(Sejin Pak) 님의 글은 개인의 기억과 역사적 사실, 그리고 특정 지식의 전파 과정을 결합하여 윤동주라는 인물이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국민 시인>으로 정립되었는지를 성찰하는 흥미로운 시각을 담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몇 가지 관점에서 코멘트를 드립니다.
1. 기억의 공백과 <윤동주 신화>의 형성 과정
글쓴이가 1964년 한국을 떠날 당시 윤동주를 몰랐다는 점과 누나들의 증언을 통해 <윤동주의 영웅화> 시점을 추적하는 과정은 매우 논리적입니다. 실제로 윤동주는 사후 직후부터 문단 내에서는 알려졌으나, 대중적인 <국민 시인>의 반열에 오른 것은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에 이르러 교과서에 수록되고 마광수 교수 등의 학술적 정립이 이루어진 시기와 일치합니다. 이는 문학적 가치가 시대적 요구(민족주의, 민주화 운동기 자아 성찰 등)와 결합하여 어떻게 증폭되는지를 보여줍니다.
2. 마광수의 <윤동주 연구>와 해석의 틀
글에서 인용된 나무위키의 내용처럼, 마광수의 1980년대 논문은 윤동주 해석의 패러다임을 바꿨습니다. [앞서 요약해 드린 마광수의 관점]과 연결 지어 보면, 마광수는 윤동주를 단순한 저항 시인에서 <심리적 갈등을 겪는 현대적 자아>로 끌어올렸고, 이것이 수험 교육과 맞물려 오늘날의 <윤동주=자아성찰>이라는 공식을 만들었습니다. 글쓴이가 <영웅으로서의 윤동주는 만들어진 것>이라고 통찰한 지점은 비평적으로 매우 유효한 지적입니다.
3. 시대적 한계: <오랑캐 땅>이라는 표현에 대하여
이미지 자료(image_2db6c8.jpg)에 제시된 <만주를 오랑캐들의 땅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한 글쓴이의 불편함은 타당한 비판입니다.
시대적 배경: 1985년 당시의 아동 도서는 민족주의 고취를 위해 주변국이나 타 민족을 비하하는 화법(중국인-되놈, 일본인-왜놈 등)을 무비판적으로 사용하곤 했습니다.
비평적 관점: 이는 윤동주라는 순결한 위인을 부각하기 위해 그가 태어난 터전을 <거친 땅>이나 <이질적인 곳>으로 타자화하려는 서술 전략으로 보입니다. 현대의 다문화적 관점이나 역사적 객관성으로 볼 때 명백히 <거슬리는> 표현임이 확실합니다.
4. <만들어진 문제>에 대한 고찰
글의 마지막 부분에서 위안부 문제를 <만들어진 문제>라고 언급한 부분은 상당히 도발적이며 논쟁적인 결론입니다.
해석: 이는 위안부 사건 자체가 허구라는 의미라기보다, 윤동주가 80년대에 대중적 영웅으로 <재발견/재구성>된 것처럼, 위안부 문제 역시 90년대 여성 운동과 국제 인권 담론 속에서 <사회적 의제로서 호명>되었다는 의미로 읽힙니다. 다만, 이는 역사적 실체와 그 실체가 대중적 인식으로 확산되는 과정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있습니다.
[평론적 총평]
이 글은 개인의 <경험적 사실(1964년의 기억)>을 바탕으로 <기성 권위(국민 시인 신화)>를 해체해 나가는 비판적 에세이로서 가치가 있다. 특히 아동용 위인전의 서술 방식을 통해 당시 한국 사회의 폐쇄적인 민족주의를 포착해 낸 점이 날카롭다. 문학이 독자에게 읽히는 과정은 텍스트 자체의 힘도 중요하지만, 그 텍스트를 둘러싼 시대적 배경과 비평가들의 <프레이밍>이 얼마나 강력하게 작용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제시해주신 글의 맥락에서 더 구체적으로 논의해보고 싶은 부분(예: 80년대 한국 사회의 분위기나 다른 '만들어진 영웅' 사례 등)이 있으신가요? Would you like me to find more information about how Yoon Dong-ju's public image changed in Korean textbooks over the decad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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