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7-11

허진 27 June 인국공 사태와 '공정'의 감각 ㅡ부제 : '꼰대'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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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
27 June at 05:03  · Shared with Public
<인국공 사태와 '공정'의 감각>
ㅡ부제 : '꼰대'들에게

1. 나는 누구를 '꼰대'라고 칭하거나, '-충' 등의 혐오적 언어를 쓰는 걸 극히 피하고 싶은 사람이다. '기레기(기자)', '먹사(목사)', '괴수(교수)' 같은 표현도 거의 안 쓴다. 대신 그냥 면전이 아닌 곳에서, 편하고 믿을 만한 사람이랑 있을 때, 직설적으로 속엣말을 한다. 그런데 예외적으로 이런 표현을 쓰는 건 '꼰대'들이 자기가 '꼰대'인 걸 좀 알라고 하는 충격요법에 가깝다.

2. 인천국제공항공사 청원경찰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일에 대해 갑론을박이 있고, 그것은 매우 건전하고 당연한 일이다. 찬성도, 반대도 할 수 있고, 그 의견들은 고려될 필요가 있으며, 그 중에 우리 사회가 더 나아지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의견을 채택하면 된다.

3. 그런데 이 와중에 제일 보기 불편한 의견이 공시생들이나 임용고시 장수생들, 기간제 교사들이 인국공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반대하는 의견을 내놓는 걸 비판하는 분들이다.
그 분들은 '비정규직이 정규직 되면 어때서?', '너희는 공시 혹은 임용고시 장수하는데, 남들 잘 되니까 배 아픈 거 아니냐?',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결국 사회에 이롭고, 너희들(공시생, 임고생)에게도 이득이 된다'와 같은 논리를 내세워, 준엄하게 공시생과 임고생, 기간제 교사를 꾸짖거나, 가르침을 시전하신다. 심지어 '저러니까 비정규직을 전전하지'라며, 혀를 끌끌 차는 인간들도 있다.

4. 내 의견이지만, 외람되게도 이 분들은 요즘 젊은 세대들이 원하고, 추구하는 '공정'의 감각에 대해 무지한 것 같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물론 의미있는 아젠다고, 많은 영역에서 이루어지길 나도 바란다.
그런데 그걸 왜 위에서 꽂아 내려주어야 하는가?
그리고 왜 인국공'만' 혹은 인국공 '먼저'인가?
그걸 왜 젊은 세대가 아니라, 대통령 혹은 정부가 결정하는가?
이 점이 내가 생각하기에 젊은 세대가 느끼는 분노의 포인트인 것이다.
그리고 이 점에서 젊은 세대들, 임고생 및 공시생들은 결코 보수적이지 않으며, 도리어 당신들 '꼰대'들보다 과정과 절차의 공정함을 더 예민하게 생각하고 있다. 위에서 찍은 특정한 회사'만' 혜택을 보는 게 공정하지 않다고 여기니까, 그들은 '억울'한 것이고, 화가 나는 것이다. 비록 그들이 자신의 생각을 언어화할 능력이 다소 부족하다 해도, 그들의 감수성은 그걸 느낀다(고 나는 생각한다). 자기의 언어로 표현 못하고, 그저 욕설이나 비아냥을 할지라도, 그 욕설과 비아냥의 이면에는 그런 과정과 절차의 공정함에 대한 감수성이 있다고 나는 분명히 느낀다.

5. '공정'은 이 시대에 매우 폭발력 있고, 지금보다 훨씬 더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하는 가치다.
조국 때문에 왜 그렇게 젊은 세대가 분노했을까?
그 밑바탕에는 '아비 잘둔 딸은 의전도 거저 가고, 장학금도 땡겨 받는다'는 불공정함에 대한 거부와 분노가 있었다.
나이스그룹 아드님의 황제 군 생활에 왜 국민청원이 이어졌을까? 다 똑같이 생활하는 걸로 알았던 군대에서조차, 부모 끝발이 통하니까 화가 나서다.
윤미향 때문에 왜 사람들이 짜증이 났을까? 시민단체 활동가와 당사자의 관계가 공정하지 않고, 활동가가 영전하는 동안, 당사자는 보호받아야 할 대상, '불쌍한 할머니', 자기의 생활을 남에게 의탁하는 노인네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물론 회계의 부정확함 문제도 있다.)

6. 인국공 사태는 대의는 옳다고 해도, 그 대의를 추진하는 방식이 민주적이거나, 공정하지 않아 보여서 젊은 세대가 저항을 하는 것이다.
비유를 하자면, 선생님이 시험 성적을 무시하고, A+ 나온 학생이 아니라, B+ 받은 학생에게 A+ 받은 학생과 비슷한 액수의 장학금을 준다고 할 때, B+받은 학생은 좋을 수 있어도(혹은 B+ 받은 학생도 자기 의사 및 노력과 무관하게 위에서 내려주는 장학금을 안 달가와할 수도 있다. 그게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자기가 이익을 봐도 별로 안 감사하고, 그런 결정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 다른 학생들은 그런 선생님의 결정이 '엿장수 마음대로라 싫다',  '지금까지의 내 노력이 권력자의 일순간의 결정에 의해 무화되어 버린다', '그럼 애초에 비정규직을 만들지 말든가. 왜 다 당신들 마음대로인가'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학생들은 비록 시험을 잘 본 소수의 학생만 등록금의 일부를 감면해주는 제도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도, 그 룰을 지키며, 그 안에서 자기 나름의 노력을 하고 있었는데, 그 룰을 누군가 바꾸어 소수의 학생은 혜택을 입고, 나머지는 그대로인 현실이 기분이 안 좋을 수도 있다. 이런 학생들에게 'B+ 받은 학생이 혜택을 보는 게 뭐가 문제인가. A+이나 C+ 받은 네가 손해본 건 없지 않은가'라는 말이 통할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장학금 제도 자체를 정비하여, 그 제도가 모든 사람에게 공정하게 시행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이 B+ 받은 학생만 챙기는 것을 학생들은 불공정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B+받은 학생이 장학금 받는 현실에 대해, '나는 열심히 공부해서 A+ 받았는데, 왜 쟤랑 똑같은 대우를 받지?', '나는 C+인데 왜 B+까지만 장학금을 주지?' 이런 개인적 이해관계 때문에 기분이 안 좋을 사람도 물론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대의'를 위해, 그런 개인적 감정은 무시되어도 좋을까? 당신들 '꼰대' 세대들은 언제나 '대의'가 너무나도 그렇게 중요한가 보다. '민주화'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대의, 어떤 면에서는 별로 공정하지 않은데, 겉보기에는 비정규직도 공평하게 정규직 만들어주는 공정함 같은 그런 대의가.
젊은 세대들이 단순히 사돈이 땅을 사니 배가 아픈 것뿐일까? 당신들이 낳아서 기른 세대가 그런 정도인 사람들만 있을까? 그들도 당신들이 그러하듯, 사고를 하고, 자기 나름의 공정과 상식, 정의와 보편에 대한 감수성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은 안 드는가? 아니면 일부러 모르는 체 하는 것은 아닌가?
비판을 하는 사람을 다 그렇게 개인적 이해 관계 때문이라고 치부하기 전에, 그들이 불공정함을 느끼는 지점이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나는 여긴다. 한 마디로 룰이라는 게, 어느 특정 지역, 회사, 직업 등에서만 통하고, 다른 곳에서는 작용 안하면 그걸 '특혜'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룰을 대통령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주는 식으로 적용할 때, 그건 '월권', '비민주적'이라고도 보이는 것이다.
비정규직을 정규직 시켜주는 선심을 써주는 사람이 아니라, 비정규직이든 정규직이든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고, 비정규직이라도 정규직한테 할 말 하고 사는 사회를 원하는 사람도 있다. 문재인은 그런 소망을 가진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는 걸 무시한 채, 그저 매우 협소한 한 개의 사업장을 '상징적으로' 정규직화하는 손쉬운 방법을 택한 것이다(물론 이 '상징'의 의미를 결코 작다고 할 수는 없다. 추후 확대의 여지가 있으므로.). 그러니 이 아우성이 나오는 거다. 그럼 우리는? 우리는 왜 정규직 안 시켜주는데? 누구를 정규직시키고 말고를 왜 자기 인생이 거기 결부돼 있지도 않은 사람들이 정하는데? 알바나 비정규직 전전하다 정규직 되보겠다고, 노량진에서 컵밥 먹으며, 갖은 고생하는 사람은 뭐지? 바본가?
이들을 심성 고약한 사람 취급하는 너희 '꼰대'들이 나는 가끔 인간적으로 이해되는 면도 있지만(586 세대는 그들이 기성세대가 된 후에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았고, '사제'로 교류했던 세대이기도 하니까), 한편으로는 같이 말하기 싫을 때도 있다. 자기들이 아는 것만 '정의'라고, 같이 잘 살자는데 왜 그걸 이해 못하느냐고 훈계하거나, 도덕적이고 선량해 보이는 언사를 하시는 건 당신들 자유이나, 그런 말들이 나는 별로 반갑지 않다.

7. 나는 당신들이 늙었다고 생각한다.
당신들이 인플루언서(?), 지식인(?) 역할 하시는 게 때로 유용할 때도 있지만, 더러 낡은 항목도 있어 보인다. 가끔 그런 면이 더 많이 보인다.
당신들 때문에 젊은 내가, 오늘 읽을 책도 다 못 읽었는데, 이 더운 여름에 잠도 못 자고 이런 글을 쓴다. 이것도 애정(측은지심)이 있으니까 쓰는 건데, 좀 짜증도 난다.
나도 늙으면 그렇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는 조금 서글프다. 그래서 약간 미안하다.
젊은 세대들 이기적이라고 나무라시기 전에, 본인들의 낡디 낡은, 늘어난 메리야스 목덜미 같은, 팬티 고무줄 같은 생각부터 좀 조이시길 바란다. 🐯 여름 밤이 덥다.

Comments
탁지혜
이 글 퍼가도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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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신영
그니까요 권력을 가졌을때 무슨 선심쓰듯 부동산 정책이나 다른것도 무슨 협박하나요?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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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
혹시 포퓰리즘성 정책이 아닌지도 지켜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그렇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그렇게 비정규직 정규직화에 관심 많으신 분이 도로공사 톨게이트 요금수납원들께는 왜 그렇게 아무 관심도 안 보였는지 의문입니다. 이렇게 선택적으로 작용하는 정의는 인생이 운에 의해 결정되는 느낌을 주기도 하고, 공정해 보이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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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도영
역시 허진님. 명쾌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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