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y Sohn 19 hrs ·[무엇을 애도해야 하는가]
1.
박원순 시장의 성폭력 가해 고발이 있었다. 박원순 시장에게 이 소식이 전달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무고였다면 그는 억울함을 소명할 수도 있었고, 무고가 아니었다면 사실을 인정하고 책임을 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다음 날, 그는 죽음을 선택했다. 결국 법적으로 이 고발의 진위 여부는 파악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남겨진 것은 여러분이 보시는 이 혼란이다.
2.
'우리'들의 요구는 이렇다. 범죄 여부를 법적으로 파악할 수도 없고, 개인이 책임질 수도 없게 되었으니, 그렇다면 법 외의 공적 시스템이 이 문제를 책임지고 파악해서 마무리 지어야 한다. 현재로서는 그 책임을 질 수 있는 단위는 서울시 아닌가. 시장 박원순이 도덕적으로 훌륭한가 아닌가를 밝히기 위해서가 아니다. 피해 호소자를 비롯하여 서울시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서, 제대로 조사해서 대책 마련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제대로 공론화되지 못한 서울시 내부의 성/폭력 문제는 비단 이번뿐이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면 포괄적인 조사를 할 수도 있을 터다.
3.
그렇게 진위가 밝혀진 다음에야 우리는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전에도, 나는 그의 ‘죽음’이 이미 ‘책임 회피’라고 생각한다. 가해를 했던 하지 않았던, 그가 죽어버림으로써 한국 사회는 더 큰 혼란에 빠져들었다. 어렵게 구축해가고 있는 성폭력 예방 시스템은 또 다시 부당한 공격을 당하게 되었다. 어떻게든 조금씩 앞으로 가고 있는 발걸음의 뒷덜미를 잡은 책임은 어쨌거나 고 박원순 시장이 가지고 있었던 상징성과, 그가 누리고 있었던 상징자본에 물을 수 있고, 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4.
박원순이 순수하지 않아서 그의 죽음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누구도 100프로를 기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파시즘적 순혈주의와 지금 박시장의 죽음을 애도하지 않겠다고 “정치적으로 선언”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나 역시 박원순 시장의 어떤 부분을 존경했다. 그가 서울시장이 된 다음 날 눈을 뜨고 “박원순이 시장인 서울 하늘 아래 산다”고 입 밖으로 내서 말해보기도 했던 지지자였다. 그 날만은 달콤했던 아침이었다. 그 때도 박원순이 100프로 진보적으로 위대할 것이라 생각해서 즐거웠던 것이 아니었다. 이후 개발주의적인 서울시정에 대해 비판했을 때도, 언제나 100프로 비난하고 100프로 지지했던 적은 없다.
우리는 “정치적”이고 “윤리적”인 이유에서 “공적”으로 질문한다. 당신은 왜 죽었는가? 이 무책임을 누가 어떻게 책임질 수 있는가? 다시 한번, 상징적 개인은 떠났으므로, 서울시라는 시스템이 책임져야 한다.
5.
알 수 없는 고통을 느끼는 나는 이 고통을 어떻게 해결하고 넘어갈까. 무언가에 대한 상실 때문이라면, 내가 상실한 것은 무엇일까. 정치인 박원순이기도 하고, 인간 박원순이기도 하고, 박원순이라는 이름이 상징하던 그 가치들이기도 하고, 혹은 그가 짓밟아버린 한국 반성폭력 운동이 만들어 온 프로토콜이기도 하다. 그랬을 때 내 생각에 “박원순과 함께 박원순을 넘어선다”는 것은 그의 공/과를 나누어서 공의 가치는 이어가고 과는 반성하는 방식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의 공이 어떻게 그의 과를 밟고 서서 이룩된 것인가를 처절하게 사유하는 일이어야 할 것 같다. 이 ‘영웅’의 공적자아와 사적자아 사이의 괴리는 어디로부터 기인했을까. 아니 그 공적자아와 사적자아는 과연 서로 분리되어 있었던 것일까.
6.
상실은 고통스럽다. 애도란 남겨진 사람이 그 고통을 이겨내는 과정이다. 프로이트에게 애도는 상실한 대상에 대한 리비도를 회수하여 “예전의 건강한 나”를 회복하는 것이다. 그래서 프로이트의 애도는 보수적이고 또 ‘치료적’이다. 데리다의 애도는 다르다. 데리다는 “상실한 대상을 온전히 기억하고 내 안으로 융합하고자 하는” 애도다. 그래서 데리다의 상실은 ‘이전의 나’로 안전하게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완전히 바꿔내는, 다른 존재로 변태하는 파괴의 과정이기도 하다. 그건 전혀 안전하지 않다. 나에게 데리다의 애도는 그야말로 전 존재를 건 도약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 도약에서 우리는 쉽게 추락하고, 다치고, 부서지고, 때로는 절멸에 이를 수도 있다. 그걸 기꺼이 감수해서 다른 존재로 향하는 것. 그래서 데리다의 애도는 비현실적이지만 윤리적이고, 그래서 정치적이라고 생각했다. 박원순의 죽음을 치열하게 애도해서 내가 다다르고자 하는 곳은 ‘이전의 그 자리’가 아니라 ‘다른 자리’다. 그리고 그 다른 자리는 박원순을 비롯한 지금 “화가 나고 슬픈 자들의 운동” 이후의 운동이다. 박원순 개인의 상실보다 박원순이라는 개인이 상징하던 가치의 상실을 애도하고, ‘그 가치 이후의 가치’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가 “정치적이고 윤리적으로 그의 죽음에 대한 애도를 잠시 유보”하기로 “공적”으로 선언하는 것이다. (나는 이 글에서 ‘공적’이란 말을 세 번째 반복하고 있다. “똥오줌”은 당신들이나 가리시라. 타인의 정치적이고 공적인 행위를 ‘찡얼거림’으로 치부하시기 전에.)
7.
페미니스트는 기존의 가치에 기꺼이 불충하고, 세상을 짜는 새로운 가치에 기꺼이 충실하는 기예를 선보여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박미선 선생님의 논문에서 그렇게 배웠다.) 무엇에 불충하고 무엇에 충실할 것인가.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해야 할 때 아닌가.
—— 이후 덧붙인 내용::
박원순 시장이 측근과 대책회의를 했다는 것은 7월 10일자 ‘한겨레’ 보도 <인권 강조해 오다 ‘도덕성 치명타’... 수습 힘들다 판단한 듯>의 내용이다. 오늘 자로 나온 ‘UPI뉴스’에 따르면 내부 회의는 없었고 고발 내용이 청와대로 보고된 뒤 피소 사실이 박원순 시장에게 전달되었고, 박시장 홀로 이후 행동을 결정했다고 추정된다고 한다. 사실을 확인할 수 없으므로 일단 내부 대책 회의가 있었다고 쓴 도입부 내용은 수정했다.
1.4K강길모, Nara Jang and 1.4K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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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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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ha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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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두현
고맙습니다. 이 글 덕분에 혼란한 마음이 조금 정리되었어요. 공유해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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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ungryul Y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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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h
Eunsook Lee
김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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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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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혜경
한 가지만 팩트 정정. 측근과 대책회의를 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합니다.
Jay Sohn
노혜경 선생님 강의 중이라, 강의 후에 확인하고 수정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노혜경
손희정 네, 늘 깨달음을 주는 글 저도 고마워요.
황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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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won Hong
전 지금은 삭제된 그 짧은 멘션도 좋았는데.
Tae Wan Kim
박시장의 죽음이 화피라고 단정 지으시는군요. 그렇게 생각하면 간단하고 편하죠. 잘 생각해보세요. 그 생각에 빈 틈은 없는지. 그리고 그것이 불러 올 파장도.. 가볍게 가지 말고 불편하더라고 진실을 파려는 노력을 좀 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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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h
Michael Mina Jo repli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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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h
심혜진
공유합니다. 두 분이 뜨거운 글을 올려 주셔서 저 같은 독자는 이 사건(혼란)을 여러 시각으로 볼 수 있으니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제 복잡한 생각을 들여다보는 데 도움이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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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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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do Hyemin
손희정 선생님의 글을 기다렸어요. 공유합니다.
Bongkyun Seo
프로이드가 어쩌니 데리다가 저쩌니 이런 말 안 하고 글 쓸 수는 없나요?
동원박 repli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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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h
MooAa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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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n-Joo Park
좀 배웠다는 페미들은 여자들이 무조건 피해자여야 합니다.저도 철학을 전공했지만 데리다나 푸코는 좀 있어보이지만..요즘 페미들 때문에 이분들 고생이 좀 많지요.. 고인의 공에 대해 이야기 하는 페미들을 본 적이 없습니다. 확인안된 가해는 일단 단정합니다. 권인숙의 책은 읽었는데 김지은은 아직 안 봤어라고 하면 닥치라고 합니다. 그게 요즘 페밉니다. 시대가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죽을 때 자신의 죄를 덮는것만 생각할까요.. 죽음을 정말 가볍게 평가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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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n-Joo Park repli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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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h
Chanuk Seo
서울시가 주관하는 조사보다는, 서울시가 수용하는 외부기관(예컨대 특조위)의 조사가 이루어지면 좋겠습니다. 내부 조사(감사)의 한계란 분명히 있으니까요.
Sue S. Chang
아 선생님..... ㅠㅠ 소중한 글 정말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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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선
소중한 글, 감사합니다.
박미선선생님의 논문, 이라고 하신부분...읽어보고싶어요. 어떤논문인지 알 수 있을까요?
이보아
저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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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h
Heejung Park
소중한 글 감사합니다.
허수영
아직 법적으로 다툴수 있습니다. 박시장 유족들이 박시장을 가해자로 특정한 사람들을 사자명예훼손으로 고소하면 됩니다. 그럼 성추행이 있었는지 여부를 검찰이 수사할 수도 있고 법원이 판단할수도 있습니다.
전하늘
글 잘 읽었습니다. 이런 글을 써주셔서 감사해요
공유할게요
Nu-ri Park
소중한 글 감사합니다. 정말 잘 읽었습니다. 저도 공유할게요!
김재정
공유합니다. 감사합니다.
Daeil Jung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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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h
조수연
덕분에 좋은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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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h
양하은
용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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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h
박내현
샘이 있어서 너무 감사한 일이에요. 언어가 필요한 시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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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h
이맹용
좋은 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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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h
Sunyoung Hwang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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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h
강영식
성추행 고소건이니 '성추행'이라는 단어를 사용함이 맥락에 맞고요, 이런 논의는 장례식 후에 해도 충분하거늘 무엇이 그리 성급들 하신지. ㅠ
Ashoka Jieun Kim
1번, 박원순 시장이 성추행고소건에 대해 측근과 대책회의를 했다는 내용이 팩트인가요? 어떤 뉴스에 나온건지 알수 있을까요? 전 처음보는 얘기라서요. 뉴스 url이 있다면 링크 부탁드립니다.
Misook Cho
Ashoka Jieun Kim 댁이 찾아보세요
박연숙
Misook Cho 그 누구도 찾지 못할겁니다. 설마 찾아도 믿는 사람은 믿고, 믿지 못하는 사람은 못 믿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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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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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삼
기자들이 없는말을 지어냈는지 알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이런 기사가 있습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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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I.CO.KR
박 시장 극단적 선택 왜?…서울시 직원들 “사실 아니라고 믿고 싶다”박 시장 극단적 선택 왜?…서울시 직원들 “사실 아니라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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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h
Ashoka Jieun Kim
오승삼 링크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굉장히 중요한 부분인것 같은데 다른언론에서는 다뤄지지 않는게 이상하네요. 한겨례에 문의해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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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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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Sunjeong
측근과 대책 회의 !!! 정말 했나요? 확실 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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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h
오승삼 repli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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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h
주서영
서울시의 시스템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꼭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데리다의 애도에
모두가 함께였으면
좋겠습니다
고인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우리는 결국 하나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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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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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은
좋은 글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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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h
한지아
숨통 트이는 글 잘 읽었어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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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h
김유석
글 잘 읽었습니다. 고인이 닫아버리고 간 법적 진상 규명이 서울시나 제 3의 기구를 통해서라도 이뤄지길 간절히 바랍니다. 한편 뒤늦게 알고보니, 서울시는 4월에 이미 성 관련 비위시 공직자를 즉각 퇴출시키는 '원 스트라이크 제도'를 실시하겠다고 했네요. 그런데도 정작 이 원칙을 지키고 시행해야 하는 시장 본인이 고소 당했고, 서울시도 아예 몰랐거나 아무런 조치를 안 취했으니 말문이 막히네요...
http://www.hani.co.kr/arti/area/capital/941943.html?fbclid=IwAR2qeRFCwrT4E5gKTqTuLoRQLYYCYiZCA5_7GSpoSeLBDdGIS1-Jb5aySY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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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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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hael Mina Jo
아픔을 꾹꾹 눌러 피해자를 애도하며 쓰신글 잘 읽었습니다. 제 마음 역시 이 글에 잘 표현돼 있어서 너무 위로가 됩니다. 공유할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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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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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yoon Yoo
동의합니다. 좋은 글로 위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공유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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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h
Yeon Hak Kang
감사히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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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h
Hea Hyeuk Jung
싸가지없고예의없는글일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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