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22

조선의 잡지 | 진경환 | 알라딘

조선의 잡지 | 진경환 | 알라딘


조선의 잡지 - 18~19세기 서울 양반의 취향 
진경환 (지은이)소소의책2018-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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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396쪽


책소개
그 시절 서울 양반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엄격한 신분제 사회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18~19세기는 정치뿐 아니라 사회?문화적으로 다양한 변화를 겪은 시기였다. 당시의 지배층이었던 양반, 특히 조선의 중심지였던 서울 지역의 양반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생생하게 써내려간 유득공의 <경도잡지>는 조선 후기의 풍속을 한눈에 보여주는 중요한 문헌이다.

이 책은 <경도잡지>에 기록된 원전 텍스트를 통해 양반들의 삶과 그에 관련된 것들의 유래, 취향 등을 짚어보고 그동안 잘못 전해진 오류들을 바로잡아준다. 권위와 격식, 체면을 앞세웠던 양반들이 점차 실용과 효용, 유행을 따르는 모습을 보면서 변화하는 시대를 읽어가는 역사 읽기의 재미를 맛볼 수 있다.


목차


◉서문

제1장 의관 갖추어 행차할 제

1.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갖가지 쓰개│각자 취향에 따라│당초무늬 당혜, 구름무늬 운혜│‘두루 막힌’ 두루마기│모선 들고 장도 차고│장옷과 곁눈질

2. 견마 잡혀 말을 타고
말도 말도 많고 많군│견마잡이 거덜 났네│나귀는 아무나 타나│명마보다 백락

3. 장가들고 시집가네
혼인 축하│신랑은 백마를 타고│신부는 팔인교 타고

4. 물렀거라, 양반님 나가신다
꼴 보기 싫어 피맛골│산자관원이면 어때│삷우, 삷우!

5. 어사화 입에 물고 신나게 놀아보세
용문에 오르다│게 두 마리, 열매 달린 연꽃│삼현육각 울리며 삼일유가│가난한 아버지는 잔치 대신 시 한 수│고약하고도 지독하네, 그놈의 신고식

제2장 폼에 살고 폼에 죽고

6. 위엄 있고 탈 없는 집
대문은 높이고 처마엔 노송취병│화문석 깔고 은낭에 기대어│강태공 써서 동티를 막고

7. 서재에 사는 네 친구
문방을 들여다보니│족제비 꼬리털이 최고│종이–눈꽃, 대나무, 매미 날개│설도와 시전지│종이값에 소설은 짧아지고 길어지고│검은 벼루, 붉은 벼루│수필 같은 청자연적

8. 꽃 키우고 나무 심고
하나뿐인 이불은 매화에게│나무 중 기이한 건 소철이라네│온실만 있으면 문제없지│매화를 사랑하려 백발에 도달함이라│웬만한 집이라면 국화 화분 몇 개쯤은│여유가 없으면 상상 속의 정원이라도

9. 여덟 칸짜리 비둘기 집
이름이 수십 가지│유행은 정말 빠르기도 해│비노 혹은 축부

제3장 먹는 낙이 으뜸일세
10. 술 한 잔, 고기 안주
도화주며 두견주는 다 어디로 갔나│벙거짓골 바비큐 파티│탕평책과 탕평채│복사꽃 떠내려오면 행주 앞강에 그물 치고

11. 차 한 잔, 담배 한 모금
언제부터 차를 마셨을까│작설차와 녹차│백두산의 전나무 싹도 차로 달여서│담배 쓰나미–입 있는 사람은 누구나│맞담배질, 안 돼!│담뱃가게와 대중소설

12. 과일 사랑, 호박 반찬
맛있는 봉산배, 칠절 홍시, 귀신 쫓는 복숭아│황금빛 진상품들│독점과 입도선매│옛날엔 없던 것, 호박

13. 안성맞춤 놋그릇
놋점과 모춤│놋그릇 수난사│놋그릇 예찬

14. 시장엔 온갖 먹거리에 사기꾼과 이야기꾼
동부의 채소, 칠패의 물고기│부자 사기단, 그리고 소설 낭독자│남산 아래 술, 북촌의 떡│약포와 봉사

제4장 멋들어지게 한판 놀아야지

15. 꽃놀이는 여기서
멋지기 때문에 놀러왔지│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버드나무와 연잎주│탕춘대에 올라 술 한 잔, 시 한 수│다 같이 돌자, 도성 한 바퀴

16. 연주하고 춤추고 연극하고
내취와 세악수│느린 곡조는 싫어│춤, 혼자서는 안 추지│의녀와 기녀│산희와 야희

17. 글 읽고 지어서 읊조리고
학동의 교과서│초본당시 ‘마상당음’│접과 운

18. 멋진 글씨, 뜻 깊은 그림
‘순박한 서풍’ 촉체와 큰 글씨 액체│버드나무 끝을 갈라│귀신 잡는 종규│누워서 유람하고 ‘부귀옥당’ 두르고

19. 투전판 타짜들
노름과 노름꾼│투전 세상 좋을시고│타짜의 출현

◉주
접기


책속에서


첫문장
조선시대의 양반들은 어떤 차림새였을까?『경도잡지』京都雜志에서 이 절의 제목이 남자가 정식으로 갖추어 입는 의관衣冠을 의미하는 '건복巾服'으로 되어 있찌만 실제 내용은 쓰래, 신발, 옷, 모선, 손칼 등을 두루 다르고 있으며, 마지막으로 부녀자의 차림새도 간략히 설명하고 있다.



견마잡이는 거덜(巨達)이라고도 했는데, 사람이 탄 말이나 당나귀를 끄는 마부를 일컫는다. 견마는 원칙적으로 문무관에게만 허용되었지만, 후대에는 민간에서도 유행하여 양반이라면 최소한 과하마(果下馬)라도 타야 체면이 섰는데, 그때에도 반드시 견마를 잡혔다. 과하마는 우리나라 토종인 조랑말의 일종으로, 그것을 타고서 과실나무 아래를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작다는 뜻이다. 결국 아무리 보잘것없는 말을 타더라도 반드시 견마잡이를 붙여야만 체면이 섰다는 것이다. 먼 길을 갈 때에는 마방(馬房)에서 말을 빌려 타야 했는데, 그때도 견마잡이는 반드시 따라왔다. 그런데 견마잡이는 말만 잘 몰았던 것이 아니고, 지리도 잘 알고 있어 대단히 편리했다.
그런데 경도잡지에서 특히 문제 삼고 있는 것은 견마잡이의 위치와 숫자이다. 조정에서 임금을 알현하는 등의 의례에서 당상(堂上)의 교의(交椅)에 앉을 수 있는 고위 관직의 당상관들은 견마잡이 둘을 둘 수 있었다. 말 오른쪽과 왼쪽에 한 사람씩 세워두고 가야 권위가 선다는 말이겠는데, 지나친 허세가 아닐 수 없다. 예나 지금이나 이렇게 거들먹거리는 고위 관리는 참으로 꼴불견이다. _‘제1장 의관 갖추어 행차할 제’에서 접기
비둘기는 성품이 사치스럽다. 그래서 “비둘기를 기르는 집에서는 비둘기 집을 만들고 아로새기는 장식으로 지극하게 꾸민다”. 실제로 비둘기가 그렇다기보다는 비둘기를 기르는 사람들이 사치스럽다고 해야 옳다. 비둘기 집(?閣)을 장(藏)이라 하는데, 심지어는 여덟 칸짜리인 것도 있다. 그것을 용대장(龍隊藏)이라 한다. “서울의 호사가들은 새장 기둥 위에 산 모양을 새겨 넣고 수초 그림을 그리고는 동(銅)으로 된 철사로 망을 만들어서 한 조롱의 값이 많게는 수천 전(錢)에 이르렀다.” 거기에 비둘기, 특히 진귀한 비둘기를 채우려면 돈이 만만치 않게 들었을 것이다. “작은 몸집에 순백색으로 이마에는 검은 화점(花點) 하나가 있는 점모(點毛)가 제일 비싸서 한 쌍에 백 문(文)을 넘기도 하였다”고 하니, 보통의 재력으로는 애당초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서울 양반들은 누가 더 비싼 비둘기를 많이 사들이냐를 놓고 경쟁했다. 앞에서 말한 여덟 칸 용대장에 “여덟 종의 상품 비둘기를 모아서 각각의 방에 들여놓는 것을 다투어 좋아했다”. _‘제2장 폼에 살고 폼에 죽고’에서 접기
배오개시장은 동대문 안쪽으로, 현재 광장시장의 뿌리가 된 곳이다. 이현(梨峴)은 종로구 인의동에 있었던 고개를 말한다. 창경궁 동남쪽에 있던 이현은 원래 숲이 울창해서 짐승과 도깨비가 나온다고 하여 도깨비고개라고도 했고, 고개가 험해 대낮에도 100여 명이 모여야 넘어갔다고 하여 백고개 혹은 백재 또는 백채라고도 불렀으며, 고개 입구에 배나무가 많아서 배고개, 배오개라고 불렀다. 길을 넓히면서 고개를 없애버렸고, 지금의 예지동과 인의동에서 종로 5?·6가에 이르는 거리를 아울렀다.
‘배오개시장은 동북 지역에서 서울로 향하는 상품들이 일차로 모이는 시장이었다. 그러므로 함경도 지역에서 운반된 북어가 팔렸으며, 다른 한편에서는 서울 근교에서 상업적으로 재배된 채소들이 주로 팔렸다.’
동부채칠패어(東部菜七牌魚)는 배오개의 대표 상품인 채소와 칠패의 대표 상품인 생선을 강조해서 부른 말이다. 물론 이외에도 “가로상에 다양한 잡시(雜市)와 땔감 시장이 있었고, 도심 곳곳에 독자적인 점포를 설치하여 영업하는 점포 상업도 번성하였다. 이에 따라 서울의 상업은 시전 중심에서 점차 난전시장인 이현시장과 칠패시장, 그리고 점포 상업으로 다양화되어갔다”. _‘제3장 먹는 낙이 으뜸일세’에서 접기
경도잡지는 18세기 후반 서울의 기녀, 곧 경기(京妓)에 대해 설명하면서 내의원 혜민서의 의녀(醫女)와 공조 상의원의 침선비(針線婢)를 지방, 곧 관동과 삼남에서 뽑혀 서울 관아에 속한 기녀라 하고 있다. 지방에서 뽑아 올렸다고 해서 선상기(選上妓)라 한다. 잔치가 있을 때는 그녀들을 불러 노래를 시키며 춤을 추게 했다.
그런데 의녀와 침선비가 왜 기녀인가? “임진왜란 이후 (궁중의) 행사가 대폭 축소되었다. 왕이 궁궐 밖으로 행행(幸行)하는 수가 현저히 줄어들었던 것은 물론이고, 왕실의 연희 역시 드물었다. 중국 사신을 접대하는 일 역시 현저히 줄어들었고, 여진과 일본에서는 거의 사신을 보내오지 않았다. 게다가 성리학이 점차 사회화되자, 기녀를 국가의 행사에 동원하는 일을 부도덕한 일로 보는 시각이 압도적이었기에 국가와 왕실에서 기녀의 수요는 점점 줄어들게 되었다.” 그 줄어든 만큼을 의녀와 침선비로 대체했고, 국가와 왕실에서 벗어나게 된 기녀는 시정(市井)으로 활발히 진출하여 기방이 출현하게 된 것이다. _‘제4장 멋들어지게 한판 놀아야지’에서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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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진경환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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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한국고전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전통문화대학교 명예교수로 있다. 지은 책으로 『세시기 번역과 주석의 제 문제』(민속원, 2022), 『조선의 잡지: 18~19세기 서울 양반의 취향』(소소의책, 2018), 『집 잃은 개를 찾아서: 리링, 다산, 오규 소라이, 난화이진과 함께 떠나는 진경환의 논어 여행(1ㆍ2)』(소명출판, 2015), 『이야기의 세계 1』(보고사, 2004), 『고전의 타작 : 소설과 문학사의 몇 국면(월인, 2000)이 있고, 공저로 『전통, 근대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권력』(인물과사상사, 2010), 『전통문화교육의 이론적 기초』(한국교육과정평가원, 2009), 『우리 고전문학을 찾아서』(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2003), 『고전문학이야기주머니』(녹두, 1994)가 있다. 옮기고 주해한 책으로는 『조선의 세시를 기록하다: 완역 동국세시기』(민속원, 2023), 『백성의 말 하려 하니 목이 메고 눈물 난다: 주해 조선후기 현실비판가사』(문예원, 2023), 『서울의 풍속과 세시를 담다: 완역 경도잡지』(민속원, 2021), 『예로부터 이른 말이 농업이 근본이라: 주해 농가월령가』(민속원, 2021), 『서울ㆍ세시ㆍ한시』(보고사, 2003), 『백마강 한시로 읊다: 부여회고한시선』(민속원, 2011), 『누가 꿈이며 꿈이 아니냐』(휴머니스트, 2015), 『사씨남정기』(두산동아, 2007)가 있다. 공역으로 은사이신 석헌石軒 정규복丁奎福 선생님과 한문본 노존老尊A본 등을 역주한 『구운몽』(한국고전문학전집 27,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96)이 있다. 접기

최근작 : <세시풍속도감>,<백성의 말 하려 하니 목이 메고 눈물 난다>,<세시기 번역과 주석의 제 문제> … 총 20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그 시절 서울 양반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조선 최초의 세시풍속지인 유득공의 <경도잡지>를 새롭게 해석,
우리가 잘못 알고 있거나 제대로 알지 못했던 실상을 낱낱이 파헤친다

엄격한 신분제 사회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18~19세기는 정치뿐 아니라 사회․문화적으로 다양한 변화를 겪은 시기였다. 당시의 지배층이었던 양반, 특히 조선의 중심지였던 서울 지역의 양반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생생하게 써내려간 유득공의 <경도잡지>는 조선 후기의 풍속을 한눈에 보여주는 중요한 문헌이다. 이 책은 <경도잡지>에 기록된 원전 텍스트를 통해 양반들의 삶과 그에 관련된 것들의 유래, 취향 등을 짚어보고 그동안 잘못 전해진 오류들을 바로잡아준다. 권위와 격식, 체면을 앞세웠던 양반들이 점차 실용과 효용, 유행을 따르는 모습을 보면서 변화하는 시대를 읽어가는 역사 읽기의 재미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조선 후기 양반의 사소한 일상과 사회 풍조를 들여다보는 생활사!
원문 텍스트를 바탕으로 새롭게 번역․구성한 대중교양서
“격식과 체면은 차리되 변화하는 세태와 유행에 뒤떨어지고 싶진 않으이!”

조선시대 최초의 세시풍속지인 유득공(柳得恭, 1748~1807)의 <경도잡지(京都雜志)>는 18~19세기 서울 지역의 풍속과 양반의 생활상을 저술한 책이다. 제1권 「풍속」 편, 제2권 「세시」 편으로 구성된 <경도잡지>는 각각 19개 항목으로 나뉘어져 있다. 대표적인 실학자 중 한 명인 유득공은 그 자신이 서울 출신인데다 양반층의 일상생활을 가까이서 접하거나 경험했던 만큼 <경도잡지>에서 당시의 풍속과 세시를 있는 그대로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 책 제목에 ‘잡지(雜志)’를 붙인 것만 봐도 짐작할 수 있듯이, <경도잡지>는 특정한 기준에 맞춰 항목을 구분하지 않고 군더더기 없이 짧게 핵심만 서술되어 있다. 그럼에도 이후에 나온 김매순(金邁淳, 1776~1840)의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 홍석모(洪錫謨, 1781~1857)의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와 함께 우리나라 3대 세시풍속기 중 하나로 손꼽힐 만큼 민속사적 측면에서 중요한 저작이다.
이 <경도잡지>에는 서문이나 발문이 없다. 유득공이 <경도잡지>를 왜 서술했는지 직접 밝히지 않은 만큼 집필 동기와 그 내용을 미루어 짐작할 수밖에 없다. 17세기 중엽 이후 조선에는 변화와 개혁을 주장하는 새로운 사상 조류가 생겨났는데, 바로 실학사상이다. 유득공 역시 홍대용, 박지원, 이덕무, 박제가 등과 더불어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실학자(북학파)로 손꼽히는 인물이었다. 이들은 이전의 관념론적 성리학에서 벗어나 나라 밖의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고 실용성과 효용성을 우선시하며 산업의 활성화를 도모했다. 그런 관점에서, 즉 당시의 사회 변화를 정확히 읽을 수 있는 생활사 자료가 바로 <경도잡지>다. 그런 만큼 제대로 된 평가가 이루어져야 하고 원전 텍스트를 새롭게 해석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경도잡지> 「풍속」 편의 19개 항목을 토대로 한 이 책은 원전의 의미에 조금이나마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조선의 잡지’라는 제목을 붙였다. 또한 현대의 독자들이 좀 더 편안하게 읽을 수 있도록 <경도잡지>에 나온 항목의 순서를 따르지 않고 19개 항목을 4개 장에 나누어 정리했으며, 각 항목의 시작 부분에 해당 원문을 번역하여 실었다.
이 책의 저자인 진경환은 그동안 전통문화를 공부하고 강독했으며 조선시대 생활사를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접할 수 있는 대중교양서로 서술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오랫동안 사로잡혀 있었다. 그러던 중에 <경도잡지> 「풍속」 편을 접하게 되었는데, 기존에 출간되거나 인터넷으로 서비스되고 있는 내용들 중 많은 부분에서 심각한 오류들을 발견했다. 이에 <경도잡지> 내용 번역의 오류 문제들을 글로 지적했지만 별달리 수정․보완되지 않은데다 고전 텍스트의 번역과 주석의 방식에서 한 번쯤 생각해볼 수 있는 새로운 예시를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에서 이 책을 집필하게 되었다고 한다.
사실 이 책의 원전인 <경도잡지>는 핵심만 짧게 서술되어 있기 때문에 관점에 따라 단어 하나도 여러 논란과 주장을 낳을 수 있다. 번역은 제각각, 해석은 동서남북인 부분도 있다. 그런 만큼 당시 양반들의 의식주부터 취미와 놀이, 유흥과 공부, 그리고 의례까지 잘못 전해진 부분이 적지 않다. 오늘날 우리가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조선시대 양반의 모습은 어떠한가? 머리에 상투 틀어 갓 쓰고, 아랫사람들에게 호통치고, 서책만 끼고 앉아 멋이라곤 찾아볼 길 없고, 가난하여 끼니를 때우지 못해도 남에게 절대 굽실거리지 않고 꼿꼿하기가 이를 데 없는…… TV 사극이나 영화 등에 등장하는 양반의 모습이 전형이라고 여기고 있지는 않은가? 그렇다면 이 책을 통해 왠지 낯설고 어색해 보이지만 친근한 듯하고, 여전히 격식에 얽매이면서도 이전보다는 개인적인 욕망이 강해져가는 새로운 양반의 모습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천원권 지폐 속 퇴계의 복건 차림은 근거가 없고,
<천자문>은 한자 학습용 교재가 아니다?
그동안 잘못 알려진 오류들과, 고전 텍스트에 관한 다양한 주장들

이 책은 조선시대 양반의 차림새, 그중에서도 남성 양반의 쓰개부터 살펴본다. 복건, 방관, 정자관, 동파관 등 그 종류도 다양한데 제각각 때와 장소에 따라 구분하여 썼다고 한다. 그중 검은 헝겊으로 위는 둥글고 삐죽하게 만들고, 뒤에는 넓고 긴 자락을 늘어지게 대며, 양옆에는 끈이 있어서 뒤로 돌려 매개 한 쓰개인 복건은 크게 두 가지 관점이 대립하고 있다. 우선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한가로이 노닐 때 복건을 착용한 것으로 보이는데, 퇴계 이황은 복건을 중들이 쓰는 두건과 같아서 선비나 학인이 쓰기에 적절치 않다고 했다. 그런데 오늘날 천원권 지폐에는 복건 차림을 한 이황의 초상이 들어 있다. 이는 사상․문화사적으로 깊이 따져보아야 할 문제라고 이 책의 저자는 말한다. 한편 정약용은 복건이 중국 진나라 때부터 사부의 복장이 되었고 주자에 이르러 예복이 되었으며 송대에 이르러 유학자들 사이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고 언급했다.
복건의 제작 방법을 당파와 관련하여 설명한 연구도 흥미로운데 이황이 복건을 중의 모자라 하고 대신 정자관을 쓴 이후로, 남인들은 이황의 선례에 따라 200년 가까이 복건을 착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초상화를 보면, 남인인 허목이 복건과 심의를 착용한 것이 발견되고 있어 일률적으로 단정해 말하기는 어렵다. 이외에도 복건이 조선시대에 주자학이 전래되면서 유학자들이 유가의 법복으로 숭상하여 착용했지만, 그 모습이 매우 괴상하여 일반화되지는 못했고 소수의 유학자들에 의해서만 조선 말기까지 이어졌다는 주장도 있다. 이처럼 쓰개 하나에도 다양한 관점과 주장이 상존하며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잘못도 있다.
흔히들 <천자문>을 한자 학습용 교재로 여기는데, 이는 아주 잘못된 생각이다. 네 자 두 구를 한 문장으로 모두 125개 문장인 <천자문>은 원래 산문으로 지어졌지만, 이후에 다시 운을 넣어 사언고시 형식으로 편찬되었다. 또한 <천자문>은 동아시아 고전의 주요 테마인 문․사․철을 모두 담고 있다.
오랫동안 전통적인 한자 교재로 활용되어온 <동몽선습>과 <격몽요결>이 인간의 기본 덕목인 오륜을 중심으로 철학적 내용이 집약되어 있고, <훈몽자회>가 초학자에게 한자를 가르치고 익히는 데에만 초점을 맞추었다면, <천자문>은 문장 구성이 시적이고 역사, 천문, 지리, 인성 등 거의 모든 분야를 망라하고 있다. 따라서 학동들이나 초학자들에게 다양한 교양 지식과 표현법을 익히게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학동들이 읽기에는 내용이 조금 어렵다는 비판도 있다. 그럼에도 <천자문>은 오랫동안 기초 학습 교재와 입문서로 활용되어왔다.

양반들의 사치 풍조와 명품 선호, 그리고 마니아의 등장
“이 정도는 가져야 그럴듯해 보이고, 남들과 조금이라도 다른 걸 갖고 싶네!”

남들보다 더 고급스러운 것, 더 값비싸 보이는 것, 더 특별한 것을 갖고 싶다는 사람의 욕망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18~19세기 서울 양반들도 마찬가지였다. 의식주에 소용되는 것들부터 주로 여성들이 지닌 노리개나 패물, 말, 집, 혼례, 담배, 문방사우, 꽃과 나무 등 명품을 선호하고 유행을 좇다 보니 양반 사회의 사치 풍조가 절정에 다다랐다. 그러한 세태를 비판하거나 일침을 가하는 목소리도 함께 터져 나왔다. 이는 곧 신분제 사회가 무너지고 개인의 행복을 더 중시하는 근대사회로 나아가는 전조이기도 했다.
칼은 사치스러운 패물이었다. 여성이 정절을 지키는 데 사용한 것으로 잘 알려진 은장도 역시 노리개 중 하나였다. 장도의 칼자루와 칼집을 만드는 데 쓰인 재료로는 은뿐 아니라 옥, 코뿔소의 뿔, 바다거북의 등딱지, 검은 물소 뿔 등 국내에서 생산되지 않는 희귀한 상품들이었다. 견마잡이들도 덩달아 허세를 부려 더 좋은 고삐를 가지려 했다. 질 좋은 매끈한 가죽으로 만들어 번쩍번쩍 광을 내고 거들먹거리고 다녔는데 ‘거덜 났다’는 말이 여기서 생겨났다. 견마잡이 주제에 우쭐하고 다니니, 그나마 알량한 재산이나 살림 같은 것이 여지없이 허물어지거나 없어진다는 뜻이다.
혼례 때 신랑이 백마를 타고, 과거 급제자가 삼일유가를 치르는 것 또한 축하하는 의미를 뛰어넘어 당시의 허례허식 풍조가 얼마나 만연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어디 그뿐인가. 가문을 드러내기 위해 대문을 크고 높게 만들고 처마를 노송취병으로 치장하는가 하면, 서울의 호사가들은 여덟 칸짜리 비둘기 집(용대장)을 만들어놓고 누가 더 많이 희귀하고 값비싼 비둘기를 사들이냐를 놓고 경쟁했다. 체면 때문에 품위 없이 쌈지 따위를 갖고 다닐 수 생각한 양반들은 쇠로 만든 담배합에 은으로 매화나 대나무를 장식하고, 자줏빛 나는 사슴 가죽으로 끈을 달아 담뱃대와 함께 말꽁무니에 달고 다니면서 멋을 부렸다. 담뱃대를 걸어놓는 연관대, 담뱃대를 청소하는 찔개와 꼬질대, 담배를 빤 후 침이나 가래를 뱉는 그릇인 타구나 재떨이 등도 명품을 추구하는 양상이 심화되었다.
사는 곳이 어디냐에 따라 먹고 마시는 풍속도 달랐다. 북촌에는 부귀한 집이 많아서 음식 사치가 대단했는데, 갖은 편이라고 하는 떡 만드는 솜씨가 발달했다. 반면 남산 밑에는 구차한 샌님과 형편이 넉넉지 않은 무반들이 사는 곳이라서 손쉽게 얼근하여 불쾌한 것을 잊자는 데서 술 빚는 솜씨가 좋았다는 것이다.
양반들의 명품 선호와 함께 특정한 것에 매달려 즐기는 마니아들도 등장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웰빙 붐을 타고 크게 성행한 화훼 재배와 정원 경영이었다. 같은 꽃이라도 특이한 품종과 양태에 관심을 가졌으며 남들과 다른 것을 갖고 싶어 했다. 마니아들이 애호한 것들 중 하나인 비둘기 역시 그 색깔이며 생김새, 그리고 습성에 따라 가격도 천차만별이었다. 작은 몸집에 순백색으로 이마에는 검은 화점 하나가 있는 점모가 제일 비쌌는데 한 쌍에 백 문(1,000전)이 넘기도 했다고 한다. 또한 조선 후기의 문인인 이옥은 스스로 담배를 몹시 사랑하고 또 즐긴다며 자신에게 담배벽이 있다고 했다. 이렇듯 조선 후기에는 꽃이나 나무, 애완동물, 담배, 악기 같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칼, 과일, 그림, 수집품, 표구 등에 깊은 관심을 가진 마니아층도 있었다.
조선 후기, 특히 18~19세기는 권위적이고 형식이 지배하던 시대에서 개인의 취향과 행복이 더 중시되는 시대로 넘어가는 시점이었다. 왕조시대의 종말과 양반의 몰락이라는 거대한 시대적 흐름은 언뜻 사소해 보이지만 너무 가까워서 쉽게 느껴지지 않는 일상적인 변화와 함께 서서히 격랑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접기



북플 bookple



2018년 7,8월 읽은 책들~



예전에는 읽은 책들을 한달에 한번씩 올렸는데 이제는 두달에 한번씩 올리게 된다.

적게 읽었거나

아니면

게을러서...^^;;;

한달에 많이 읽으면 올리는데...

사실 시리즈 책들이나 박스세트 책들은 읽는데 좀 더 오래 걸리는 것 같다.

근데 한달에 한번씩 올리는 것보다

두달에 한번씩 올리는 게 편하고 좋은 것 같다.

지금은...



사실 책을 안 읽으면 계속 안 읽게 되고,

읽기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는 중독성이 있는 것 같다.





이번 7,8월은 책들을 많이 읽은 것 같다.

속도를 좀 줄여야 할 것 같은데...

다 읽고 나면 읽을 책들이 없어서 또 구매하고 싶은 책들을 찾아보게 된다.

조금만 줄여볼까...

잘 될지 모르겠다.^^;;;











8월 마지막 날입니다.

8월은 너무 길었던 것 같습니다.

8월 마지막 오늘 마무리 잘 하시고,

항상 건강하세요~!!!!!!**




















어린 왕자 팝업북































조선의 잡지




































































































































































































































































































































































































































































































































































































후애(厚愛) 2018-08-31 공감 (50) 댓글 (0)





한양 양반 일상 따라가기

늘 상 손에서 놓지 않고 있는 것이 책이다. 다양한 방면의 책을 읽는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중심에는 역사책이 다수를 차지한다. 그 중에서도 조선의 후기 문화사에 관심이 많다. 조선 후기 문화사라고는 하지만 그 범위를 좁혀 살펴보면 새롭게 사회적 흐름을 형성했던 북학파에 있다. 홍대용, 박지원, 박제가, 유득공, 이덕무, 등의 활동을 살펴보면서 시대적 이해의 폭을 넓혀가는 중이다.



이들이 중심적으로 활동했던 조선 후기, 18~19세기는 내ㆍ외적으로 변화에 직면했던 시대다. 엄격한 신분제 사회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시기에 한양을 중심으로 한 양반들의 생활모습을 살피는 것 역시 흥미로운 것 중에 하나다. 단편적인 키워드 몇 개로 고정된 시각을 통해 바라봤을지도 모를, 어쩌면 제도와 관습 속에 갇혀 살았지만 그 안에서 자유롭고자 했을 그들 일상의 다양한 모습은 역사를 이해하는 한 구성요소가 된다.



그 시대적 흐름의 선두에 서 있었던 유득공(柳得恭, 1748~1807)은 조선의 중심지였던 서울 지역의 양반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생생하게 기록한‘경도잡지京都雜志’를 남겼다. 경도잡지는 풍속과 세시 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 19개 항목으로 나누어 서울 지역의 풍속과 양반의 생활상을 담고 있다. 조선 후기의 풍속을 한눈에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 받는다.



진경환의 이 책 ‘조선의 잡지’는 유득공의 '경도잡지'를 근간으로 양반들의 삶과 그에 관련된 것들의 유래, 취향 등을 살펴보며 그동안 어쩌면 우리가 잘못 알고 있었을지도 모를 것들에 대해 돌아볼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의관 갖추어 행차할 제’, ‘폼에 살고 폼에 죽고’, ‘먹는 낙이 으뜸일세’, ‘멋들어지게 한판 놀아야지’라는 테마로 분류된 이야기는 의식주와 일상생활 전반에 걸쳐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양반들의 일상을 따라간다. 남성 양반의 쓰개부터 장가들고 시집가는 풍습에 이어 양반들의 서재를 살피고 꽃 키우고 새를 기르는 일, 술과 담배 등 먹거리와 꽃놀이 다니며 연주하고 춤추는 일상에 투전판 타짜들 이야기까지 담겨있다.



역사는 단절이 아니다. 기록으로 남겨져 내려오는 것뿐만 아니라 일상의 모습 속에 생활 풍습으로도 이어진다. 이들의 모습을 살피며 현대를 사는 이들의 일상과 겹쳐지는 부분에 흥미를 갖는다. 물건의 수집, 꽃놀이와 단풍놀이에 독서회, 음악활동 등 갖가지 취미 활동에 이르기까지 조선 후기 양반들의 모습과 겹쳐지는 모습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특히, 주목했던 모습 중 하나는 서울의 명소에 철따라 피는 꽃을 감상하는 나들이의 모습을 보면서 현대인들 속에서 꽃 찾아 전국을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모습과 유사함에 주목하였다.



조선 후기는 현대인들과 가장 가까운 역사이기에 우리에게 남겨진 흔적은 여전히 많다. 그들이 남겨준 유 무형의 유산이 우리들 일상을 보다 풍요롭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다. 무엇을 어떻게 누리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의 질은 달라질 것이다. 일상의 여백에 한번쯤 돌아봐도 좋을 그때를 만났다.
무진無盡 2018-08-29 공감 (8) 댓글 (0)





『조선의 잡지』라는 대단히 흥미로운 책을 만나 읽게 되었다. 이 책은 조선시대 세시풍속을 엿볼 수 있는 유득공의 『경도잡지』, 「풍속」편을 풀어놓은 책이다. 조선시대에도 잡지가 있었다니 신기한 마음으로 책을 들게 된다. 어쩌면, 『경도잡지』에 실린 내용들은 당시에는 별 가치 없이 느껴질 내용들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지방 양반들에게는 한양 양반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살피고, 유행을 따라갈 좋은 기회가 되겠지만 말이다. 오늘 우리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자료가 된다. 조선시대의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너무나도 소중한 자료이니 말이다.



이런 소중한 자료인 『경도잡지』의 「풍속 편」을 저자는 하나하나 친절하게 풀어 설명해 주고 있다. 때론 지금까지 발표된 『경도잡지』에 대한 해설의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기도 하고. 때론 『경도잡지』의 내용을 통해, 조선시대에 대한 오늘 우리의 잘못된 시각을 교정하기도 한다. 예를 든다면, 오늘날 천원 권 지폐에 그려진 퇴계 이황이 쓰고 있는 복건에 대한 오류를 지적하기도 한다. 평소 퇴계는 말하길, 복건은 점잖은 선비의 차림으로 적절치 않다고 말했단다. 그런데, 정작 우리의 천원 권 지폐에 그려진 퇴계는 복건을 쓰고 있다. 갓, 방건, 탕건, 복건 등 무엇을 쓰는지는 개인의 취향임을 저자는 여러 근거를 통해 말한다. 그렇다면, 퇴계는 자신의 취향에 따라 어쩌면 평생 복건을 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복건을 쓴 퇴계의 모습이 우리 모두의 인식이 되어버린 현실이라니. 이렇게 『조선의 잡지』라는 책은 흥미로운 지적과 함께 시작한다.



이렇게 시작된 책은 당시 조선사회의 내밀한 부분을 엿보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당시에도 다양한 덕후가 있었음을 만나게 된다. 화훼 덕후, 비둘기 덕후, 담배 덕후, 춤 덕후, 벼루 덕후 등 다양한 덕후, 덕질이 마치 유행처럼 일어났음을 보여준다. 이를 책에서는 ‘벽’이라 표현하는데, 이런 ‘벽’을 통해, 다양한 사회상을 엿볼뿐더러, 양반들의 유행하는 문화에 대해서도 알아갈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된다.



아울러, 당시 세시풍속에 대해 설명하다보니, 오늘날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어휘의 어원을 알게 되는 지적 재미도 있다. 예를 들면, 거덜 난다, 동무, 곤두박질 등의 유래를 알려주는 당시 세시풍속들을 만나게도 된다.



‘거덜 난다’는 말은 흥미롭게도 양반들의 허례의식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양반들은 나귀 타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처음엔 말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나귀를 탔지만, 나귀는 말에 비해 빠르지 않아 유유자적하는 양반들의 이미지에도 부합되었다고 한다. 뭐, 나귀를 타고 유유자적하며 그 위에서 시 한 수 읊는 것을 뭐라 할 의도는 전혀 없다. 양반의 낭만으로 좋게 보면 되니까. 그런데, 양반 체면에 고삐를 직접 잡을 수 없어, 고삐를 대신 잡아주는 견마 잡이들이 등장하게 되었다는 대목에선 양반들의 모습을 고깝게 볼 수밖에 없다.



아무튼 이렇게 견마 잡이라는 직업이 생기게 되는데, 이들 견마 잡이들이 잡는 고삐가 바로 ‘거덜’이라고 한다. 양반들은 한 사람뿐 아니라 두 사람의 견마 잡이들을 세우며, 자신의 위세를 드러내곤 했다는데. 문제는 이 견마 잡이들 역시 자신을 드러내는 데 열중했다는 것. 그게 바로 자신들이 잡는 ‘거덜’을 남들보다 더 화려하게 가꾸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보니 없는 살림에 쪽박 차지 않으면 다행인 상황으로 내몰리게 되는 것. 이런 풍조를 꼬집으면서 시작된 말이 ‘거덜 난다.’는 말이란다. 어쩌면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세대 역시 쓸데없는 ‘거덜’에 열을 내며 치장하는 모습 역시 많을 게다. 정말 그러다 거덜 난다.



이처럼 책은 조선의 양반들의 풍속을 보여주는 내용을 통해, 양반 뿐 아니라, 일반 백성들의 삶 역시 어떠했는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조선의 잡지』라는 이 책을 통해, 조선시대 사회상을 엿보는 시간이 재미났다. 과거의 시대상을 알아간다는 재미도 있을뿐더러, 어쩌면 사람 사는 모습이 예나 지금이나 비슷함을 알게 되는 것 역시 흥미로웠다. 또한 막연히 상상하던 당시의 풍속을 제대로 알게 되는 기쁨도 있다. 「18-19세기 서울 양반의 취향」이란 부제를 갖고 있는 본서 『조선의 잡지』는 조선 시대의 풍속이 궁금하거나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 좋은 자료가 되리라 싶다.
중동이 2018-08-28 공감 (8) 댓글 (0)



'조선의 잡지' -진경환 저, 소소의책 "18~19세기 서울 양반의 취향" 조선후기, 내ㆍ외적으로 변화에 직면했던 시대를 살며 제도와 관습 속에 갇혀 살았을지도 모를 당시 사회의 주도층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 볼 기회다. 이 책은 유득공(1749~?)의 '경도잡지'를 근간으로 양반들의 삶과 그에 관련된 것들의 유래, 취향 등을 살펴보며 그동안 어쩌면 ... 더보기
무진無盡 2018-08-18 공감 (4) 댓글 (0)



새로 들어온 사람을 신귀新鬼라 하여, 여러가지로 욕보인다. 방 가운데서 서까래만 한 긴 나무를 신귀에게 들게 하는데, 이것을 경홀 警忽이라 한다. 들지 못하면 신귀는 선생 앞에 무릎을 내놓으며 선생이 주먹으로 그를 때리고, 윗사람으로부터 아랫사람으로 내려간다. 또 신귀에게 물고기 잡는 놀이를 시키는데, 신귀는 연못에 들어가 사모紗帽로 물을 퍼내서 의복이 모... 더보기
깐도리 2018-08-11 공감 (8) 댓글 (0)



견마잡이는 거덜(巨達)이라고도 했는데, 사람이 탄 말이나 당나귀를 끄는 마부를 일컫는다. 견마는 원칙적으로 문무관에게만 허용되었지만, 후대에는 민간에서도 유행하여 양반이라면 최소한 과하마(果下馬)라도 타야 체면이 섰는데, 그때에도 반드시 견마를 잡혔다. 과하마는 우리나라 토종인 조랑말의 일종으로, 그것을 타고서 과실나무 아래를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작... 더보기
후애(厚愛) 2018-08-09 공감 (3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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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를 좋아해서 이 책을 구매했는데 만족~!!!!!
좋은 공부가 되는 것 같아서 좋았고, 그림들이 있어서 보는 재미가 쏠쏠~
후애(厚愛) 2018-08-09 공감 (19)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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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어, 전문용어, 옛날말이 꽤 많이 나와서 가볍게 읽기는 힘이 들고, 구글링 하며 천천히 읽게되네요.
흥미롭게 쓰여있지는 못한듯 합니다.
ggil 2018-09-21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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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서울 양반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견마잡이는 거덜(巨達)이라고도 했는데, 사람이 탄 말이나 당나귀를 끄는 마부를 일컫는다.

견마는 원칙적으로 문무관에게만 허용되었지만, 후대에는 민간에서도 유행하여 양반이라면 최소한 과하마(果下馬)라도 타야 체면이 섰는데, 그때에도 반드시 견마를 잡혔다.

과하마는 우리나라 토종인 조랑말의 일종으로, 그것을 타고서 과실나무 아래를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작다는 뜻이다.

결국 아무리 보잘것없는 말을 타더라도 반드시 견마잡이를 붙여야만 체면이 섰다는 것이다.

먼 길을 갈 때에는 마방(馬房)에서 말을 빌려 타야 했는데, 그때도 견마잡이는 반드시 따라왔다.

그런데 견마잡이는 말만 잘 몰았던 것이 아니고, 지리도 잘 알고 있어 대단히 편리했다.
그런데 『경도잡지』에서 특히 문제 삼고 있는 것은 견마잡이의 위치와 숫자이다.

조정에서 임금을 알현하는 등의 의례에서 당상(堂上)의 교의(交椅)에 앉을 수 있는 고위 관직의 당상관들은 견마잡이 둘을 둘 수 있었다.

말 오른쪽과 왼쪽에 한 사람씩 세워두고 가야 권위가 선다는 말이겠는데, 지나친 허세가 아닐 수 없다.

예나 지금이나 이렇게 거들먹거리는 고위 관리는 참으로 꼴불견이다.









비둘기는 성품이 사치스럽다.

그래서 “비둘기를 기르는 집에서는 비둘기 집을 만들고 아로새기는 장식으로 지극하게 꾸민다”.

실제로 비둘기가 그렇다기보다는 비둘기를 기르는 사람들이 사치스럽다고 해야 옳다.

비둘기 집(?閣)을 장(藏)이라 하는데, 심지어는 여덟 칸짜리인 것도 있다.

그것을 용대장(龍隊藏)이라 한다.

“서울의 호사가들은 새장 기둥 위에 산 모양을 새겨 넣고 수초 그림을 그리고는 동(銅)으로 된 철사로 망을 만들어서 한 조롱의 값이 많게는 수천 전(錢)에 이르렀다.”

거기에 비둘기, 특히 진귀한 비둘기를 채우려면 돈이 만만치 않게 들었을 것이다.

“작은 몸집에 순백색으로 이마에는 검은 화점(花點) 하나가 있는 점모(點毛)가 제일 비싸서 한 쌍에 백 문(文)을 넘기도 하였다”고 하니, 보통의 재력으로는 애당초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서울 양반들은 누가 더 비싼 비둘기를 많이 사들이냐를 놓고 경쟁했다.

앞에서 말한 여덟 칸 용대장에 “여덟 종의 상품 비둘기를 모아서 각각의 방에 들여놓는 것을 다투어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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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8-08-09 공감(3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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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잡지





조선후기 생활사를 잘 그려낸 유득공의 ‘경도잡지’를 바탕으로 한 <조선의 잡지> 경도잡지가 조선시대 최초의 세시풍속지라고 하는데, 이 전에 이런 책이 안 나왔다는 것이 저는 재미있게 느껴지더라고요. 예전에 조선시대 여성의 복식 변천사에 대한 글을 흥미롭게 읽은 적이 있었는데, 만약 이런 것에 주목한 책들이 나왔었다면, 더욱 심도 있게 살펴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슬쩍 들기도 하네요. 그만큼 이 책에서 살펴볼 수 있는 조선시대의 일상의 모습이 풍성했기 때문이죠.



‘의관 갖추어 행차할 제’, ‘폼에 살고 폼에 죽고’, ‘먹는 낙이 으뜸일세’, ‘멋들어지게 한판 놀아야지’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예전에 궁에 들어갈 때 입는 공복을 보면, 서로의 계급을 알아볼 수 있었다면서, 그 때나 지금이나 중요한 것이 눈치라고 하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는데요. 역시나 공복에 패용하는 관, 띠, 홀, 패옥을 통해 판단할 수 있는 방법을 살펴볼 수 있더군요. 그리고 도포와 장옷처럼 천이 많이 드는 옷들에 제한을 걸자며, 이를 통해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자 하는 마음이 엿보이더군요. 물론 먹거리에서 복어에도 이와 비슷한 비판이 쏟아지기는 했지만, 정말 치명적인 그 맛을 저 역시 사랑하기 때문에, 복어를 사랑한 조선시대 사람들의 마음이 이해하면서, 문득 도포와 장옷을 입고 싶어했던 그 맘도 미루어 짐작하기도 했네요. 물론 복어의 독을 해독하는 민간처방을 보면서, 이 것을 감수하고 먹을 정도의 맛은 아니지 않나 나름 의아해하기도 하고요.



붓글씨에 사용하는 붓 중에 최고로 치는 것은 바로 족제비 꼬리털로 만든 붓이라고 하는데요. 이는 중국에서 인정받아 ‘천하의 보배’라는 호칭을 얻기도 했다고 해요. 그러다 보니 가짜가 많이 유통되었다고 하니, 조선시대의 명품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겠어요. 또한 투전판에 대한 이야기는 지금과 너무나 닮아 있어서 놀랍기도 했네요. 노름꾼들에게 돈을 꿔주는 ‘분전노’, 저당을 잡고 사전을 제공해주는 ‘설주’, 거기다 ‘타짜’까지 말이죠. 이렇게 조선시대의 풍경을 제대로 살펴볼 수 있는 책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러한 세태를 걱정하는 지식인들의 글, 더 좋은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들의 글까지 더해져서, 읽을 거리가 더욱 풍성했던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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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2018-07-30 공감(1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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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잡지



새로 들어온 사람을 신귀新鬼라 하여, 여러가지로 욕보인다. 방 가운데서 서까래만 한 긴 나무를 신귀에게 들게 하는데, 이것을 경홀 警忽이라 한다. 들지 못하면 신귀는 선생 앞에 무릎을 내놓으며 선생이 주먹으로 그를 때리고, 윗사람으로부터 아랫사람으로 내려간다. 또 신귀에게 물고기 잡는 놀이를 시키는데, 신귀는 연못에 들어가 사모紗帽로 물을 퍼내서 의복이 모두 더러워진자. 또 거미잡는 놀이를 하게도 하는데, 신귀에게 손으로 부엌 벽을 문지르게 하여 두 손이 옻칠을 하듯 검어지면 또 손을 씻게 하는데, 그 물이 아주 더러워져도 마시게 하니 토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p91)


이 책은 조선시대 양만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 유득공이 남긴 책 '경도잡지'를 통해 조선시대 양반들은 어떤 삶을 살았으며, 무엇을 좋아하고 유희는 어떤 걸 추구하였는지 알 수 있다. 조선시대 18세기 후반~19세기 초반 양반들의 삶을 깊이 들여다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왕이 아닌 그들의 일상적인 삶들, 그들은 양반으로 어떤 삶을 누리고, 양반과 노비의 비교되는 삶도 함께 얻을 수 있다. 300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우리 삶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역사의 흐름이 바뀌었고, 시대는 달라졌지만 양반들의 삶은 지금 우리의 삶으로 과학 기술에 따라서, 문화 생활의 변화에 따라서 새로운 형태로 바뀌게 되었다.


무관과 문신의 삶의 방식, 문신은 나귀를 탈 수 있지만, 무관은 나귀를 탈 수 없었다. 그들의 신분적인 차이나 차별을 엿본다면 , 조선 중기는 문신의 나라였음을 재확인 할 수 있다. 양반들이 나귀를 타는 이유는 그들의 정체성과 연결된다. 나귀는 안전하고, 체통을 지킬 수 있으며, 말을 타는 무신과 자신의 신분을 차별화 하고 분리시키고 있다. 지금의 시선으로 본다면 그들의 삶이 때로는 이질적이면서, 때로는 무능력한 존재가 자꾸만 비춰질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생각의 차이일 뿐 함께 하면서 그들은 그들의 방식 때로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서울시 종로에는 피맛골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귀천의 차이가 엄연히 좀재하였다. 그건 피맛골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같은 양반 신분이라고, 자신보다 높은 위치에 있다면 굽신거려야 했다. 조선의 법도에 따르지 않는다면, 그들을 응징하는 것이 당연한 그때의 순리였다. 지금처럼 수평적이고 민주적인 삶과 너무나 다른 조선시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조선시대와 지금의 공통점은 출세이다. 우리는 누군가 서울대에 입학하거나, 어떤 유명한 해외 대학교에 입학할 때 그것을 현수막을 이용해 내걸었다. 물론 그것은 대학교 뿐 아니라 사법시험, 회계사 , 행정고시, 외무고시와 같은 시험을 합격해도 마찬가지다. 조선시대에도 이와 같은 일이 있다. 양반들에게 있어서 필수적인 숙원은 과거 급제이다. 과거 급제를 하면 그 집안의 경사였으며, 한 고을에 축제가 있었다. 그들이 과 공부를 하면서 커닝을 하고, 꼼수를 부렸던 이유는 바로 이러한 요소들이 이어저 내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는다면 시대가 달라졌다 하더라도 사람들의 생활방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자신을 내세우고 싶어하며, 때로는 소소한 사치를 통해 일상의 즐거움을 누리고 있었다. 때로는 그 시대에 맞는 양반들의 문화 생활이 있으며, 왕에게 진상품을 올리기 위한 양반들의 행동을 엿볼 수 있다. 그들의 관혼상제 뿐 아니라 그들의 세세한 생활양식을 함께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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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도리 2018-08-11 공감(8)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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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잡지



『조선의 잡지』라는 대단히 흥미로운 책을 만나 읽게 되었다. 이 책은 조선시대 세시풍속을 엿볼 수 있는 유득공의 『경도잡지』, 「풍속」편을 풀어놓은 책이다. 조선시대에도 잡지가 있었다니 신기한 마음으로 책을 들게 된다. 어쩌면, 『경도잡지』에 실린 내용들은 당시에는 별 가치 없이 느껴질 내용들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지방 양반들에게는 한양 양반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살피고, 유행을 따라갈 좋은 기회가 되겠지만 말이다. 오늘 우리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자료가 된다. 조선시대의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너무나도 소중한 자료이니 말이다.



이런 소중한 자료인 『경도잡지』의 「풍속 편」을 저자는 하나하나 친절하게 풀어 설명해 주고 있다. 때론 지금까지 발표된 『경도잡지』에 대한 해설의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기도 하고. 때론 『경도잡지』의 내용을 통해, 조선시대에 대한 오늘 우리의 잘못된 시각을 교정하기도 한다. 예를 든다면, 오늘날 천원 권 지폐에 그려진 퇴계 이황이 쓰고 있는 복건에 대한 오류를 지적하기도 한다. 평소 퇴계는 말하길, 복건은 점잖은 선비의 차림으로 적절치 않다고 말했단다. 그런데, 정작 우리의 천원 권 지폐에 그려진 퇴계는 복건을 쓰고 있다. 갓, 방건, 탕건, 복건 등 무엇을 쓰는지는 개인의 취향임을 저자는 여러 근거를 통해 말한다. 그렇다면, 퇴계는 자신의 취향에 따라 어쩌면 평생 복건을 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복건을 쓴 퇴계의 모습이 우리 모두의 인식이 되어버린 현실이라니. 이렇게 『조선의 잡지』라는 책은 흥미로운 지적과 함께 시작한다.



이렇게 시작된 책은 당시 조선사회의 내밀한 부분을 엿보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당시에도 다양한 덕후가 있었음을 만나게 된다. 화훼 덕후, 비둘기 덕후, 담배 덕후, 춤 덕후, 벼루 덕후 등 다양한 덕후, 덕질이 마치 유행처럼 일어났음을 보여준다. 이를 책에서는 ‘벽’이라 표현하는데, 이런 ‘벽’을 통해, 다양한 사회상을 엿볼뿐더러, 양반들의 유행하는 문화에 대해서도 알아갈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된다.



아울러, 당시 세시풍속에 대해 설명하다보니, 오늘날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어휘의 어원을 알게 되는 지적 재미도 있다. 예를 들면, 거덜 난다, 동무, 곤두박질 등의 유래를 알려주는 당시 세시풍속들을 만나게도 된다.



‘거덜 난다’는 말은 흥미롭게도 양반들의 허례의식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양반들은 나귀 타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처음엔 말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나귀를 탔지만, 나귀는 말에 비해 빠르지 않아 유유자적하는 양반들의 이미지에도 부합되었다고 한다. 뭐, 나귀를 타고 유유자적하며 그 위에서 시 한 수 읊는 것을 뭐라 할 의도는 전혀 없다. 양반의 낭만으로 좋게 보면 되니까. 그런데, 양반 체면에 고삐를 직접 잡을 수 없어, 고삐를 대신 잡아주는 견마 잡이들이 등장하게 되었다는 대목에선 양반들의 모습을 고깝게 볼 수밖에 없다.



아무튼 이렇게 견마 잡이라는 직업이 생기게 되는데, 이들 견마 잡이들이 잡는 고삐가 바로 ‘거덜’이라고 한다. 양반들은 한 사람뿐 아니라 두 사람의 견마 잡이들을 세우며, 자신의 위세를 드러내곤 했다는데. 문제는 이 견마 잡이들 역시 자신을 드러내는 데 열중했다는 것. 그게 바로 자신들이 잡는 ‘거덜’을 남들보다 더 화려하게 가꾸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보니 없는 살림에 쪽박 차지 않으면 다행인 상황으로 내몰리게 되는 것. 이런 풍조를 꼬집으면서 시작된 말이 ‘거덜 난다.’는 말이란다. 어쩌면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세대 역시 쓸데없는 ‘거덜’에 열을 내며 치장하는 모습 역시 많을 게다. 정말 그러다 거덜 난다.



이처럼 책은 조선의 양반들의 풍속을 보여주는 내용을 통해, 양반 뿐 아니라, 일반 백성들의 삶 역시 어떠했는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조선의 잡지』라는 이 책을 통해, 조선시대 사회상을 엿보는 시간이 재미났다. 과거의 시대상을 알아간다는 재미도 있을뿐더러, 어쩌면 사람 사는 모습이 예나 지금이나 비슷함을 알게 되는 것 역시 흥미로웠다. 또한 막연히 상상하던 당시의 풍속을 제대로 알게 되는 기쁨도 있다. 「18-19세기 서울 양반의 취향」이란 부제를 갖고 있는 본서 『조선의 잡지』는 조선 시대의 풍속이 궁금하거나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 좋은 자료가 되리라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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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이 2018-08-28 공감(8)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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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 양반 일상 따라가기



한양 양반 일상 따라가기

늘 상 손에서 놓지 않고 있는 것이 책이다. 다양한 방면의 책을 읽는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중심에는 역사책이 다수를 차지한다. 그 중에서도 조선의 후기 문화사에 관심이 많다. 조선 후기 문화사라고는 하지만 그 범위를 좁혀 살펴보면 새롭게 사회적 흐름을 형성했던 북학파에 있다. 홍대용, 박지원, 박제가, 유득공, 이덕무, 등의 활동을 살펴보면서 시대적 이해의 폭을 넓혀가는 중이다.



이들이 중심적으로 활동했던 조선 후기, 18~19세기는 내ㆍ외적으로 변화에 직면했던 시대다. 엄격한 신분제 사회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시기에 한양을 중심으로 한 양반들의 생활모습을 살피는 것 역시 흥미로운 것 중에 하나다. 단편적인 키워드 몇 개로 고정된 시각을 통해 바라봤을지도 모를, 어쩌면 제도와 관습 속에 갇혀 살았지만 그 안에서 자유롭고자 했을 그들 일상의 다양한 모습은 역사를 이해하는 한 구성요소가 된다.



그 시대적 흐름의 선두에 서 있었던 유득공(柳得恭, 1748~1807)은 조선의 중심지였던 서울 지역의 양반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생생하게 기록한‘경도잡지京都雜志’를 남겼다. 경도잡지는 풍속과 세시 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 19개 항목으로 나누어 서울 지역의 풍속과 양반의 생활상을 담고 있다. 조선 후기의 풍속을 한눈에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 받는다.



진경환의 이 책 ‘조선의 잡지’는 유득공의 '경도잡지'를 근간으로 양반들의 삶과 그에 관련된 것들의 유래, 취향 등을 살펴보며 그동안 어쩌면 우리가 잘못 알고 있었을지도 모를 것들에 대해 돌아볼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의관 갖추어 행차할 제’, ‘폼에 살고 폼에 죽고’, ‘먹는 낙이 으뜸일세’, ‘멋들어지게 한판 놀아야지’라는 테마로 분류된 이야기는 의식주와 일상생활 전반에 걸쳐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양반들의 일상을 따라간다. 남성 양반의 쓰개부터 장가들고 시집가는 풍습에 이어 양반들의 서재를 살피고 꽃 키우고 새를 기르는 일, 술과 담배 등 먹거리와 꽃놀이 다니며 연주하고 춤추는 일상에 투전판 타짜들 이야기까지 담겨있다.



역사는 단절이 아니다. 기록으로 남겨져 내려오는 것뿐만 아니라 일상의 모습 속에 생활 풍습으로도 이어진다. 이들의 모습을 살피며 현대를 사는 이들의 일상과 겹쳐지는 부분에 흥미를 갖는다. 물건의 수집, 꽃놀이와 단풍놀이에 독서회, 음악활동 등 갖가지 취미 활동에 이르기까지 조선 후기 양반들의 모습과 겹쳐지는 모습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특히, 주목했던 모습 중 하나는 서울의 명소에 철따라 피는 꽃을 감상하는 나들이의 모습을 보면서 현대인들 속에서 꽃 찾아 전국을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모습과 유사함에 주목하였다.



조선 후기는 현대인들과 가장 가까운 역사이기에 우리에게 남겨진 흔적은 여전히 많다. 그들이 남겨준 유 무형의 유산이 우리들 일상을 보다 풍요롭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다. 무엇을 어떻게 누리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의 질은 달라질 것이다. 일상의 여백에 한번쯤 돌아봐도 좋을 그때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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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無盡 2018-08-29 공감(8)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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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잡지














​조선 최초의 세시풍속지 <경도잡지>를 뼈대로 18-19세기 서울 양반의 의식주 및 놀이와 유흥 등 기타 여러 생활의 취향을 알려주는 책이다. 사실 잡지라는 제목에 깜빡 속아 현대의 잡지처럼 감각적이고 간략한 내용과 편집으로 중무장해 있을 줄로만 알았는데 생각보다 전문적(?)인 느낌이라 시작할 때는 조금 놀랐다. 특히 경도잡지가 매 글의 시작에 번역되어 있다는데서 정신이 혼미. 처음엔 외계어인 줄. 1장인 의복 그중에서도 1차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초반부가 특히 재미가 없음을 다음 독자를 위해 미리 밝힌다. 사극을 보면서 의복만으로도 시대구분을 할 수 있는 정도의 시청자이자 독자라면 관심도 가고 흥미로울 수 있겠지만 내 경우 의복의 외양도 낯선데 의복 각각의 단어도 너무 많고 한자어고 그래서 서른 페이지 정도는 읽느라 고생을 했다. 그러나 의복 부분은 짧고! 2차 "견마 잡혀 말을 타고" 부터 점점 재미있어지다가 제2장으로 넘어가 먹고 노는 이야기로 흘러가면 완전 흥미진진 해지니까 초반 의복에 지지 마시라 당부드린다. 의복을 건너뛴 채 읽다가 다시 앞장으로 돌아와도 좋을 것 같고. 나는 워낙 순서대로 읽는 걸 좋아해서 다 읽고 넘어가리라 고집을 피웠는데 덕분에 초반 흥미를 많이 깎아먹었다. 전공자도 아니고 이 책은 소설이 아니니까 요령껏 읽도록 하자.

각 장마다 재미있던 이야기만 추려서!

제1장. 의관 갖추어 행차할 제

장옷 : 부녀자들이 외출할 때 얼굴을 가리기 위해 사용한 쓰개 등을 이르는 말. 유교에 대한 편견으로 이 옷이 조선 여성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피부를 가리기 위해 강제로 착용되어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은 그 시대 여성들의 유행이었다고 한다. 양성지 같은 관료가 장옷 금지 상소도 올리고 그랬는데 가체와 함께 장옷 유행은 막을 수가 없었다니 매우 놀람. 하물며 가체는 매우 여러번 금지됨;;

견마잡이 거덜났네 : 사람을 태운 말 앞이나 옆에서 말을 잡아끄는 사람, 조선후기에는 지위가 낮은 이들도 견마잡이를 둘쯤은 달고 다녔다고 한다. 박제가의 글을 보니 하도 견마잡이를 붙여다니니 전쟁터에서도 견마잡이가 말을 안끌면 위급한 상황에서도 말이 뛰질 않았다고 한다. 과장이 아닐까 의심이 들긴 하지만 어찌됐든 황당.

혼인과 결혼 : 혼인에는 신랑이 장가 들고 신부는 시집간다는 뜻이 모두 포함되어 있는데 결혼에는 신랑이 장가간다는 뜻만 포함되어 있단다. 혼인은 좀체 쓰지 않는 단어인데 뜻이 의외다.

신고식 : 왕따는 없었는지 모르지만 신고식은 장난이 아니었다. 사헌부 신고식 기록에 두들겨 패는 건 기본이고 손으로 부엌 벽을 문지르게 한 후 그 손을 씻은 물을 마시게 했는데 토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고 한다. 율곡 이이가 제발 좀 없애자고 역시나 상소를 올렸으나 후에 정약용의 말에 따르자면 "당하는 자는 영광으로 여기고, 보는 자는 부러워해서" 없어지지가 않았단다. 대단해;;;


















제2장. 폼에 살고 폼에 죽고




왕의 의장대를 설명하는 사진인데 의장대는 별무관심 기록화에 왕이 없는 것에 더 깜놀해버렸다. 저 빈말 위에 정조가 앉아계신다고 상상하면 되는건가? 이정명 작가 <바람의 화원>에서 어진 얘기 하며 관련한 얘기나 있었나 없었나 기억이 가물가물. 대충 읽진 않았는데 왜 이렇게 기억을 못할까.















종이값이 비싸지면 장수가 줄고 종이값이 안정되면 장수가 늘었던 조선소설들. 홍길동전과 춘향전이 완판본과 경판본이 따로 돌았다는게 재미나다. 현대의 독자들처럼 그 시절의 독자들도 완판본 보고 싶어 애가 탔겠지? '잡채판서' 라고 손가락질 당한 이충은 다양하게 심은 채소로 광해군에게 맛있는 반찬을 바쳐서 품계를 올렸다는데 궁금해 찾아보니 그 시절 더덕정승(실록에는 김치정승)도 있었다고 한다. 더덕 넣은 떡이 맛나서 정승자리까지 올랐다는데 기가 막히다. 정조시대에는 목만중이라는 시인이 "온 나라가 꽃에 미쳐 날뛴다"고 지적질을 했다는데 꽃가게는 없는데 꽃에 종사하는 사람은 많았다니 이거 뭐지?? 지금은 닭둘기로 공포의 대상이 되는 비둘기를 키우는 것도 잠깐 유행했단다. 상상이 안가지만;; 너무 싫지만;; 토종 비둘기는 좀 예쁜가?? 음란한 새라는 이유로 유행에서 밀린 모양인데 음란의 이유가 비둘기 부부가 혀를 빨아서라고(책 표현 그대로). 이거 뭐야 넘 웃겨 ㅋㅋㅋ 황당하지만 비둘기의 음란성을 고발한 글도 많았다. 제2장 폼에 살고 폼에 죽고는 깨알웃음을 주는 이야기들이 많아서 술술 읽힌다.




제3장. 먹는 낙이 으뜸일세




먹는 낙 중엔 담배얘기가 제일 재미나다. 1610년을 전후하여 들어온 담배가 거의 20년 상간으로 해서 남녀노소 지위에 관계없이 전국민적으로 퍼져나갔다. 이수광의 글에 따르면 입있는 사람이라면 즐기지 않는 자가 없았다 하고 너댓살 먹은 아이들까지도 우유같이 달다며 여러 대를 연달아 피웠다는 기록이 있다. 너무 대단한 인기라 무서울 정도. 소설 바람의 화원에도 나왔던 쌍검대무가 이 책에도 등장하는데 담뱃대의 사회적 의미를 설명하는 자료로 쓰인다. 오른편에 서있는 아이와 기생, 대돗자리 위에 앉아있는 양반에게 담뱃대가 보이는데 신분에 따라 담뱃대의 길이가 달랐다고 한다.


















그리고 담배의 인기에 힘입어 담뱃가게가 많이 생겨났는데 사장님들이 홍보와 호객의 일환으로 이야기꾼을 들였다고 한다. 담배 피고 몽롱한 중에 이야기를 듣다가 영웅이 뜻을 이루지 못하는 대목에서 상심한 손님이 담배써는 칼로 이야기꾼을 찔러 죽인 사건까지 있었다고 하니 이거야말로 호러라 여름밤이 오싹해졌다. 뒤로 넘어가면 놋그릇 살인사건도 등장하고 (놋그릇 훔쳤다고 쳐죽이는 사건이 비일비재) 조선 후기 무서운 일이 많았더라.




제4장. 멋들어지게 한판 놀아야지




도박과 멋이 무슨 상관인가 싶지만 타자까지 등장했던 18세기 도박판. 노름꾼들이 나름 순진하여 노름수를 받으려고 신령님께 백일기도도 드리고 까치집의 굵은 나뭇가지가 운을 준다고 해서 까치집도 많이 해체하고 다녔단다. 까치집이 아예 없는 마을은 도박촌으로 의심받기도 했다는데 암행어사가 출두해서 까치집이 있나 없나 둘러보고 다녔을까 책 읽으며 별 상상을 다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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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디캔디 2018-08-07 공감(4)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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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잡지



서문에서 밝힌 책의 기획년도는 2003년이라고 하니 꽤 지난 시간에 흐르고 나서야 출간이 되었군요. 저자는「경도잡지」의 「풍속」편을 거듭 읽으면서 출간을 할수 있었다고 하네요. 「풍속」편의 19개 항목을 4장으로 재정리하였다고 하니 이 책을 통해 18~19세기 서울 양반의 취향을 잘 알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복건에 대한 여러 명사들의 생각과 사례들을 기술하고 있어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애용했던것은 아니고 망자에게 쓰운 쓰개이기도 하였다고 하니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고 중국에서 기원한 사모는 상복으로도 사용되기도 하였다고 하네요. 조선시대 드라마를 볼때 조상들의 머리에 있던 갓을 별의미없이 보기만 했는데 갓의 변모로 시대를 파악할수 있다는 사실을 기록과 함께 그림으로 나타내주고 있어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여자의 신으로 알려져 있는 당혜와 운혜는 군왕을 호위ㆍ경비하는 친위병들도 사용하였다고 하니 그동안 나름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들에 대해 관심이 적지는 않았다고 자부하고 있는데 조상들의 의복에 관련된 사항이나 생활양식에는 소홀하지 않았나 생각이 드는데 이 책을 통해 많이 배우고 익힐 수 있지 않나 싶네요.



모선은 방한도구이자 얼굴을 가리는 가리개 역활도 하였다고 하니 선조들의 지혜가 아닌가 싶고 견마잡이라는 용어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으며 백마를 타고 신부집으로 초행을 하는 신랑, 팔인교를 타고 시잡을 가는 신부 그리고 정약용이 없애자고 주장한 관행을 통해 당시의 사회상을 엿볼수 있는 기회도 되었습니다. 허례허식은 지금도 큰 사회적 문제이지만 과거에도 적잖이 문제가 되었던것은 인간의 사치스러운 속성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시대가 변해도 인간의 사고는 크게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역사속에서 쉽게 확인할수 있는 사실이니까요



과거시험이 인생최대의 목표였던 시대상과 합격자가 발표된 후 행해지던 행사을 보니 개인이 꿈꿀 수 있는 이상형의 출세길임을 짐작하게 되었고 신고식이라는 나쁜 악습이 과거에도 있었음을 김준근의「신은 실네 짓는 모양」이라는 그림으로 알려주고 있고 다른 유형의 신참을 괴롭히는 유형들도 소개되어 있는것을 보니 시대와 장소를 떠나 이러한 악습은 쉽게 라지지 않을것임을 짐작할수 있었습니다.



사대부는 집을 치장하기 위해 대문과 지붕 장식중 하나인 노송취병을 하였고 문방사우에 관해서도 많은것을 알려주고 있네요. 이 시대와 지금을 비교해보니 길어야 3세기밖에 되지 않는 지금과는 확연히 차이나는 문화와 사상 그리고 사회상을 보니 많은것들이 짧은 시간에 변화하였음을 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18세기 화훼 재배와 정원 경영이 크게 유행하였다하니 지금도 큰 부자짓 정원에는 아름드리 나무와 정원등이 잘 꾸며져 있다는 점을 상기해볼때 심신수양과 마음의 안정을 갈구하던 사람의 마음 씀씀이는 변치 않는 것인가보네요. 물론 과시용으로 꾸며 놓은집도 있겠지만 결국은 인간은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감상하고 싶었던 마음이 표현된 사회적 현상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느시대 누구나 생존이 필수불가결 중에 하나인 먹을거리에 대해서도 기술해주고 있습니다. 여러책에서 술 담그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니 우리조상들도 나름 애주가였나 봅니다. 지금 우리가 즐겨 먹는 소주가 1965년 양곡관리법이 시행된 이후이고 이전까지 막걸리를 주로 마셨다고 하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차(茶)는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전반에 이르서서야 하나의 문화로 정착하였다고 하니 유래가 7세기 신라때임을 감안해본다면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사실과 함께 담배가 일본을 통해 17세기 초엽에 들어왔다고 하니 차의 역사와 비교해볼때 그리 길지 않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되었습니다. 생각보다 담배가 우리민족과 함께 한 시간은 얼마되지 않지만 담배에 얽힌 우리네 이야기는 그림과 글로 남겨져 우리역사의 한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네요.



조상들의 놀이문화로 꽃놀이와 춤등이 있다고 하며 옛기록으로 알려주고 있기도 하네요.



이 外에도 다양하게 우리네 조상들의 삶의 방식과 생활양식등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선조들의 삶의 방식으로 우리의 과거를 이해할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책 말미에는 주석이 있어 본문 내용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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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무야 2018-07-23 공감(4)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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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잡지 - 진경환



잡지를 많이 사본 사람들은 안다. 표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잡지 표지모델로 이름 없는 사람, 이도 저도 아닌 사람, 눈길을 끌지 못하는 사람을 쓰는 일은 거의 없다. 기획상 일부러 이름 없는 범인을 쓰는 경우는 왕왕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기획이 특별한 경우다. 표지모델은 당대의 가장 핫한 인물들을 내세우기 마련이다. 잡지의 표지가 모델만 신경쓰는 건 아니다. 가장 흥미로울 기사를 가장 눈에 띄게 배치하고 소비자 혹은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을 만한 주제(키워드)를 곳곳에 넣어 어떻게든 이 잡지를 구입하지 않고서는 혹은 들춰보지 않고서는 못 배기게 만든다. 그것이 바로 잡지!



잡지 중의 잡지라고 할만한, 그야말로 진짜 잡지가 나타났다. 그래서 서론이 길었다. 내가 요 근래 봤던 여러 책 중에 이 책은 단연코 가장 대단한 표지를 가진 책이다. 썰을 푸는 모양새가 단연 압권이다. 어떻게 이런 잡지를 읽어보지 않을 수가 있을까? 18~19세기 서울 양반의 취향을 오목조목 정리하여 구성지게 실은 이 책 [조선의 잡지]는 표지부터 완벽하게 독자를 사로잡는다. 특히나 나를 깔깔거리게 만든 건 뒷표지였는데, 몇 번을 봐도 재밌다.


조선 후기 생활사에 대해서 내가 아는 거라곤 사극에서 곁가지로 본 게 전부다. 이덕무나 연암 같은 조선 후기 지식인들에 매료되어 그들에 대한 혹은 그들이 쓴 서적을 읽어보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사상이나 이론, 글쓰기 같은 지식 분야에 대한 것을 알게 될 따름이지 그들의 생활이 어떠했다는 것까지는 자세히 알 수가 없었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했던가. 조선 후기 생활사에 대한 소감을 저런 방식으로 이야기하자면, 조선 후기란 멀리서 보면 신비롭고 가까이서 보면 그냥 똑같이 사람 사는 세상이다.


저자 진경환 교수는 조선 최초의 세시풍속지인 [경도잡지]를 뼈대 삼아 조선의 생활상을 낱낱이 취재하여 [조선의 잡지]라는 제목의 책으로 펴냈다. 18~19세기는 근대로 들어서는 큰 변화의 시대였다. 시대가 급변했다는 의미는 사람과 그 생활상이 급변했다는 뜻이다. 조선의 수도를 주름잡았던 양반님네들의 생활상, 당시 변화의 맥을 짚어보는 것은 꽤 유쾌하고 재미있다. 왜냐하면 그 변화의 맥이라는 게 무슨 고려에서 조선으로 국호가 바뀌고 왕의 씨가 바뀌는 엄청 거대한 스케일이 아니라 애완동물로 비둘기를 기르거나, 밥상에 호박이 반찬으로 올라오기 시작했다거나 하는 소소한 일들이기 때문이다.



[조선의 잡지]는 조선시대의 원전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빚은 오류들을 바로잡고 크게는 의식주, 조금 더 세밀하게는 무엇을 언제 어떻게 입고 먹고 마시며 혼인하고 살림하고 놀고 즐기고 키우고 장사하고 노름하였는지 담아냈다. 책의 목차만 봐도 웃음이 나는 게, 당시의 생활상을 얼마나 나노단위로 들여다보았는지 노름하던 내용까지 실었다. 이렇게 당돌하고 웃기는 역사서를 봤나. 책을 읽으며 조선 후기에는 있었지만 지금은 없어진 것들의 흔적을 여러 번 접하며 번번이 큰 아쉬움을 느꼈다. 특히 아쉬웠던 부분은 조선 산지마다 다양했던 전통술이다. 서울은 삼해주, 경기에는 문배주 등등 지역마다 저토록 많은 술이 있었는데 지금은 다 마셔볼 수 없다니 아쉬움이 크다.



대부분의 책이 비슷하게, 읽으면서 여러 가지를 배우게 된다. 이 책은 특히 더 그러한데 우리가 일상 속에서 자주 사용하는 단어들의 개념을 바로 잡아주어 아주 고맙다. 결혼이냐, 혼인이냐. 이 부분에서 혼과 인이라는 글자를 설명하여 결혼보다는 혼인이라는 단어가 남녀의 결합에 적합하다고 설명해주는 내용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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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D 2018-08-02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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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잡지



조선 시대 생활상을 그려 보고 싶었다던 저자의 열망이 이 책을 태어나게 했다. 처음 대하는 순간, 조선 양반들의 삶을 하나하나 들여다 볼 수 있겠다, 는 기대감으로 앞서게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조선 최초의 세시풍속지인 유득공의 <경도잡지> 중에서도 <풍속>편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서 그 당시 살았던 양반들의 삶을 하나씩 살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 18~19세기 서울 양반의 취향, 이라는 부제를 달고서 의,식,주로 나누어 잘 설명하고 있는데, 우리가 보아오던 양반 이미지에다 여태까지 몰랐었던 부분들까지도 세세히 살펴 볼 수 있게 해 준다. 무엇보다도 설명과 그림들을 풍부하게 배치하고 있어서 독자의 이해를 톡톡히 돕는 역할을 하는 동시에 그림 감상까지도 겸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풍속화 뿐 아니라 그림 자료를 무척 즐기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반가운 구성일 뿐만 아니라 눈도 아주 배부르다.




의, 식, 주 구성 순서에는 의관, 집, 서재, 술과 안주, 차, 놀이와 취미 같은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 양반들의 거동, 먹고 마시던 음식, 철마다 놀러 다니던 장소들, 행사 등을 다채롭게 소개한다. 이 중에는 너무 자세하고 전문적이기까지 한, 예를 들면, 타고 다니던 말의 종류와 쓰임새 라든지, 기르던 애완 비둘기의 종류, 다양한식물의 종류와 생김새, 둘러싸고 있는 성곽의 종류와 길이 등 아주 쉽지 않은 부분까지도 깊이있게 설명되어 있어서 가볍게 읽지 않게 한다.




역시 양반은 양반인지라 체면과 과시욕구에 기반을 둔 행동거지들이 특별히 눈에 띄었고, 이것이 사치와 허영으로 번지면서 폐단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이런 것들 중에서 오늘날에까지 이어져 내려온 좋지 않은 풍습 하나를 기억해 본다면, 과거 시험을 거쳐 등용문에 힘겹게 오른 신참 관리들을 맞이하는 신고식이 아주 혹독했었던 점이 있다. 대학 신입생, 직장 신참자 환영식이랍시고 꼴불견적인 행동들을 보여주던 요즘의 작태들이 조선 후기로 거슬러 올라가서도 그 당시 양반 사회에서 별별 추잡스런 행동으로 이미 드러나 있었다. 환영을 하는 것인지 골탕을 먹이려는 것인지 구분할 수 없게 하는 일련의 행동들은 요즘의 행동들과 겹쳐 보이게도 한다.




반면에 생각지도 못했던 다양한 취미 활동들이 있었다. 시와 글, 그림들만 즐기지 않고 소나무, 국화, 매화 같은 식물을 들여 놓은 정원 가꾸기라든지, 외국에서 들여와 기르기 힘든 종들까지도 지극히 돌보며 그윽한 눈매로 감상하며, 심지어는 온실까지도 존재했었다는 이야기는 신선했다. 그런데 비둘기 키우기도 취미 생활에 들어갔었다니 그 때에도 배설물로 인해 골치 좀 아팠을 게다.




요즘은 승용차로 움직이지만 양반네들은 말이나 나귀를 타고 다녔다는 것은 다 알고 있다. 그 말을 앞에서 잡아 주는 마부가 딸려 있었는데 이들이 바로 견마잡이이고, 양반 체면도 살려주는 역할도 했지만 지리도 잘 알고 있었다 한다. 오늘날로 치면 살아있는 네비게이션 이나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생각하니 참 재미있는 부분이기도 했다. 이런 방식으로 자세한 생활상을 둘러 볼 수 있게 하므로 좀 더 풍부한 조선을 느끼게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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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제이 2018-07-22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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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셀러브리티들은 어떤 것을 욕망했을까



유득공은 조선 후기 북학파 계열의 실학자로, 경도잡지는 그가 기록한 조선의 세시풍속 책이다. 상권에는 의복·음식·주택·시화 등 풍속을 19항으로 나누어 기술하고, 하권에서는 서울 지방의 세시를 19항으로 분류하여 기록했다. 저자는 현재 한국 전통문화대학교 교양기초학부 교수로 재직하면서 경도잡지를 강독하며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많이 보게 되어 이 책을 기획했다고 했다. 2003년부터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으나 그동안 빛을 보지 못하다가 그중 풍속 편을 중심으로 엮어 <조선의 잡지>라는 이름으로 출간했다.




잡지라고 했을 때 떠올리는 모습은 가판대에 진열된 종이책이었다. <조선의 잡지>라는 제목 때문에 책을 선택한 사람도 적지 않을 듯하다. 만화에서 나올법한 '조선 월간지'를 기대했다면 실망했을 수도 있지만, 조선시대 음악과 춤, 음식, 의복의 유행을 알려준다는 의미로는 일맥상통한 부분이 있다. 한국사에 18~19세기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사적으로 급격한 변화를 겪은 때였다. 신분제가 변화하고 개인의 행복이 중요하게 생각되면서 변화하는 세상을 제대로 누릴 수 있는 계층은 아무래도 여유가 있었던 양반들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18~19세기 서울 양반의 취향’이라는 부제는 그 시절에 유행을 선도했던 '셀러브리티'들의 일상일 수도 있는 것이다.

유득공이 핵심만 기술한 내용을 저자는 자신이 수집한 자료를 덧붙이고 이야깃거리를 보충해 내용을 풍부하게 만들었다. 눈여겨볼 특징은 <경도잡지>의 원전 내용을 그대로 읽어볼 수 있다는 점이다. 학교에서 학생들과 역사 토론하듯 원전 글을 함께 읽고 새로운 사실을 찾고 싶은 저자의 소망이 담겼다고 생각한다. 천 원짜리 지폐에 등장하는 퇴계 이황이 쓴 복건은 역사적 고증과는 다르다는 의견처럼 사람들에게 흔히 알려진 것과 다른 내용을 바로잡고 싶은 마음도 함께 담았다고 했다. 그러나 알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을 읽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운 책이었다. 수년 동안 수집한 풍부한 도감과 관련 자료를 보는 쏠쏠한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가독력을 떨어뜨리는 한자 병기가 익숙하지 않았지만, 뜻을 전달하기 위해 불가피한 일이라 생각했다.

책을 읽고 알게 된 바로잡고 싶었던 부분 중에 일상적으로 쓰면서도 알지 못했던 결혼과 혼인의 차이는 조금 충격이었다. '혼인'에는 신랑은 장가들고, 신부는 시집 간다는 의미가 들어있지만, 결혼에는 그저 신랑이 장가 간다는 표현만 들어있다고 한다. 왜 혼인이라는 말보다 결혼이라는 말이 널리 쓰이게 되었는지는 나와있지 않아 알 수 없으나 이제부터라도 구별해 쓰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릴 때 할아버지 앞에서 회초리를 맞아 가며 배웠던 천자문은 문장 구성이 시적일 뿐만 아니라 다양한 기법을 구사하고 있어 단순한 한자 학습을 위한 교재 정도가 아니라는 점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신참자를 골탕 먹이는 신고식의 유래는 상당히 오래되었다. 고려 말, 실력으로 정당하게 합격하지 않고 소위 '빽'으로 합격한 귀족 자제들의 버르장머리를 잡는 데서 시작되었는데, 지금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신고식의 시작은 좋았으나 요즘에는 새내기 대학생들이 신고식을 치르다 죽음에 이르렀다는 뉴스를 심심찮게 보게 된다. 좋은 의도로 시작된 것이 현대에는 그 뜻이 오용되고 있는 점이 아쉽다.

남들보다 더 고급스럽고 특별한 것을 갖고자 하는 욕망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다. 다만 그 모습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을 꺼려 해 소박한 척 꾸미려 단순하고 초라해 보이지만 실은 값비싼 물건들을 선호했다고 한다. 겉으로 보이는 것을 중하게 여겼던 풍조는 어제오늘 일이 아닌 모양이다. 시대만 달라졌을 뿐 그대로라는 사실이 흥미롭다. 허세의 뿌리는 생각보다 깊었다. 말을 끄는 견마 잡이들도 덩달아 허세를 부렸다. 더 좋은 고삐를 가지려 한 나머지 매끈한 가죽으로 고삐를 만들어 거들먹거렸는데 ‘거덜 났다’라는 말이 여기서 생겨났다고 한다. 늘 쓰고 있는 말이었는데 어원을 알게 되니 더욱 재미있었다.

근대화의 바람을 타고 등장한 개인화 현상은 각종 마니아를 양상 했다고 한다. 화훼 재배와 정원 경영은 지금도 골수 마니아가 있는 편이라 이해했는데, 비둘기를 위해 여덟 칸짜리 '용대장'을 지었다는 얘기는 정말 놀라웠다. 먹을 수 있는 달걀 하나 낳지 못하는 비둘기에 대한 비판으로 유행은 금세 사그라들었지만, 지금 거리에서 쓰레기를 주워 먹는 비둘기의 삶을 보니 인생무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시대에 태어나는지는 동물도 예외가 없는 모양이다.

책은 이처럼 조선 후기 양반들의 취향을 엿보며 사람 사는 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것이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별반 다를 것 없는 세상에서도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 있고, 사라진 것이 있다. 그것은 좋고 나쁨, 옳고 그름에 따라 취하고 버려진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 누리는 모든 것에는 욕망이 깃들어 있다. 개인이 가질 수 있는 욕망의 끝은 어디까지일까? 나날이 격차가 심해지고 있는 보이지 않는 계층 간의 갈등과 각자가 누리는 삶의 격차는 옛날과는 많이 다를 것이다. 그래도 예전에는 양반들이 누리는 호사를 곁눈질이라도 하며 꿈꿔 보기라도 했을 텐데, 이제는 갈수록 상상조차 하지 못할 일이라 생각하니 책을 다 읽은 뒤에도 뒷맛은 왠지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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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네모 2018-07-23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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