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4-10

제국의 후예 - 고창 김씨가와 한국 자본주의의 식민지 기원 1876~1945


제국의 후예 - 고창 김씨가와 한국 자본주의의 식민지 기원 1876~1945

카터 에커트(저자) | 주익종(역자) | 푸른역사 | 2008-02-19 |

원제 Offspring of Empire: The Koch'ang Kims and the colonial origins of Korean capitalism, 1876~1945 (1991년)





정가 28,000원
판매가 25,200원 (10%, 2,800원 할인) | 무이자 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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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시기를 제외시키고, 조선 후기로부터 자본주의의 기원을 찾으려는 시도는 타당한 것인가? 전적으로 한국사의 내부에서 발전 요인을 찾으려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는가?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쓰여진 카터 에커트 하버드대 교수의 문제작.

지은이는 일제하 전라북도 고창 출신 김성수,김연수 일가와 경성방직의 성장에서 한국자본주의의 기원을 찾는다. 즉 중소 직포업체로 출발한 경성방직이 일본 제국주의의 지원과 협력으로 만주와 중국 본토에서까지 사업을 펼치는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눈부신 발전과정에서, 현대 한국 자본주의의 원형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골자다.

에커트는 한국에서 근대화의 기동력이 외부에서, 곧 일본제국주의에서 왔다고 주장한다. 이 점에서 그는 광의의 식민지근대화론의 계열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일제하의 한국인 자본을 일본 제국이 낳고 길러주고 그를 따르는 존재로서 그렸고, 이런 의미에서 한국은 ‘제국의 후예’라 지은이는 칭하고 있다.





1부 한국 자본주의의 발흥
1. 상인과 지주 : 1876~1919년의 자본축적
2. 산업자본가 : 이행과 출현, 1919~1945


2부 성장의 유형
3. 자본가계급과 국가 : 금융면의 연계망
4. 자본가계급과 국가 : 경영의 동업자
5. 식민본국과 변방 사이에서 : 원료와 기술의 획득
6. 신민본국과 변방 사이에서 : 시장을 찾아서

3부 자본가계급의 사회
7. ‘무사히’ : 노동계급에 대한 자본가의 시각과 취급
8. 민족보다는 게급 : 내선일체와 한국인 자본가

결론 : 식민지의 유산
부록1 역대 통감부,총독부 고위 관료
부록2 김성수, <대의에 죽을 때 - 황민됨의 책무는 크다>
주석
역주
참고문헌
역자 후기
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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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조선은 기계와 부품에서만 일본 기술에 의존했던 것이 아니다. 일본의 전문 지식과 숙련에도 의존했다. 올바른 작동법이나 고장 시의 수리법을 모른다면, 나고야에서 최신 설비를 도입하더라도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그러한 전문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서는 방직부문에서의 일정 수준의 기술 연마와 훈련이 필요했는데, 조선에는 공업교육 훈련을 제공할 시설이 없었다.-p223 중에서

실제로 식민지 공업화의 유산은 토착 자본가계급을 창출한 것 이상이었다. 식민지 지배는 미래를 발전을 위한 사회적 기반만이 아니라 성공적인 -적어도 급속한 공업화를 촉진한다는 좁은 의미에서 성공적인-자본주의 성장을 위한 역사적 기반을 갖춘 모델을 물려주었다.-p374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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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카터 에커트 (Carter J.Ecke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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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한국 近代化, 기적의 과정>,<제국의 후예> … 총 3종 (모두보기)
소개 :
하버드와 로렌스 대학에서 서양고대사와 중세사를 전공했으며 1970년대 초 한국에 평화봉사단원으로 근무하면서 동아시아와 한국에 깊은 관심을 가짐. 워싱턴 대학교(시애틀)에서 일본사와 한국사 박사학위 취득. 1985년부터 하버드대학에서 한국의 현대사를 강의. 1994년부터 현재까지 하버드 대학 한국학연구소(Korea Institute) 소장직을 맡고 있다. 우드로 윌슨 센터(워싱턴 D.C.)의 연구원을 역임하였고 한미관계의 발전을 위해 여러 위원회에서 자문역할을 담당해 오고 있으며 이화여자대학교로부터 명예교수로 위촉된 바 있다.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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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 주익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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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고도성장 시대를 열다>,<대한민국 기업사 1>,<대군의 척후> … 총 7종 (모두보기)
소개 :
1960년생으로 서울에서 성장했으며 서울대 경제학과에서 학부와 대학원을 마쳤다(한국경제사 전공, 경제학박사. 대학 시간강사, 하버드대 방문학자, 민간기업(서울신용평가정보)을 거쳐 문체부 소속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학예연구실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한국 산업화의 기원으로서 일제하 평양 메리야스공업과 경성방직 등 한국인 기업을 연구했으며, 최근에는 1960~70년대 경제개발사의 구체적 스토리를 발굴하는 데 관심을 갖고 있다. 주요 저서 《대군의 척후 ? 일제하의 경성방직과 김성수, 김연수》, 푸른역사, 2008. 《대한민국을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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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터 에커트의 한 마디
일제 강점기 중의 자본주의적 변혁 이야기가 이 책의 핵심이 된다. 나아가 이 책은 강점기 이전과 특히 해방 후 한국 자본주의의 역사에 관한 더 크고 긴 논의에 함축적 의미를 부여한다. 이 이야기에는 토지 재산에서 공업적 재산으로의 전환의 개시, 강력한 발전국가의 출현, 초기 부르주아지와 노동계급의 등장, 1930년대와 1940년대의 전쟁과 전시동원이 초래한 사회경제 변화 등의 다른 많은 관련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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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김씨가의 경성방직(주)은 ‘제국의 후예’였다!
- 외부에서 온 한국 근대화의 기동력

식민지시기를 제외시키고, 조선 후기로부터 자본주의의 기원을 찾으려는 시도는 타당한 것인가? 전적으로 한국사의 내부에서 발전 요인을 찾으려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는가? 역사적 실제는 이러한 주장을 충분히 뒷받침하고 있는가? 이러한 문제의식을 시작으로 카터 에커트(Eckert, 하버드대 교수)의 문제작《제국의 후예Offspring of Empire》가 출간되었다.

《제국의 후예》는 일제하 전라북도 고창 출신 김성수?김연수 일가와 경성방직의 성장에서 한국자본주의의 기원을 구한다. 즉 중소 직포업체로 출발한 경성방직이 일본 제국주의의 지원과 협력으로 만주와 중국 본토에서까지 사업을 펼치는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눈부신 발전과정에서, 현대 한국 자본주의의 원형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골자다.
저자 에커트는 에드워드 와그너―제임스 팔레로 이어지는 미국 내 한국학 연구 패밀리의 적자嫡子다. 하버드대에서 한국사를 가르친 와그너 교수는 조선시대사 연구에 정통한 해외 한국학 연구 1세대로서 많은 한국사 연구자를 길러냈다. 그 제자인 팔레 교수 역시 노비제나 실학사상 연구 등의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냈을 뿐 아니라 에커트를 비롯해 현재 미국에서 활동 중인 많은 한국사 연구자를 배출했다. 팔레 교수의 지도를 받아 워싱턴 주립대에서 경성방직과 고창 김씨가 연구로 1986년 박사학위를 받은 에커트는 1985년부터 현재까지 하버드대 한국사 담당 교수 및 한국학연구소 소장으로서 한국학을 발전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으며 역시 많은 제자를 길러냈다.
한국을 연구하는 외국인 학자 중 그가 남다른 것은 그가 한국의 언어, 문화, 역사에 능통하다는 점이다. 1969년 평화봉사단원으로 한국에 와서 1977년까지 8년간 머무르면서 공부한 것이다. 그 연구의 탁월한 힘은 상당 부분 여기서 비롯된다.

일본제국주의와 한국인의 상호작용에 주목

한국 근현대사에 관해 완전히 새로운 연구시각을 제시한 이 책은 출간 당시 국내외 학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저자가 경성방직을 연구한 1980년대 전반은 한국의 학계에서 자본주의맹아론을 계승한 내재적 발전론이 맹위를 떨치던 때였다. 주지하다시피, 조선 후기 이미 자본주의의 싹이 자랐고 1876년의 강제적인 개항 후에도 한국이 자주적 근대화에 힘쓰고 있었으므로, 외부(일본 제국주의)의 침략과 방해가 없었더라면 한국이 자생적으로 근대화를 달성했으리라는 것이 내재적 발전론이다. 일본의 침략과 식민지 지배로 한국은 억압과 수탈, 착취를 당해 발전이 지체되었고, 그후 한국은 왜곡된 정치경제?사회?구조의 폐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과 사고가 학계를 지배하고 있던 때에 저자는 이를 뒤집었다. 내재적 발전론처럼 일본이 침략하지 않았더라면 어떤 일이 일어날 수도 있었을까를 상상하지 말고, 일본의 침략으로 실제로 일어난 일을 살펴보자고 한 것이다. 그리고 그 표본을 경성방직으로 삼았다. 경성방직을 필두로 한 한국인 기업이 발전할 수 있었고 거기에 한국자본주의의 기원이 있음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많이 누그러졌으나 민족주의 감정이 강해 일본 식민지 지배에 분노 일변도의 태도를 취한 1980년대 그의 주장은 매우 파격적이었다.
에커트는 한국에서 근대화의 기동력이 외부에서, 곧 일본제국주의에서 왔다고 주장한다. 그는 한국의 역사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은 일본에 의한 근대화라는 것을 상기시킨다. 이 점에서 그는 광의의 식민지근대화론의 계열에 속한다.
또 그는 일본이 한국인 기업의 발전을 억누르지 않고 그 개발과 발전에 협력하는 정책을 취했다고 보았다. 총독부가 한국인 자산가를 식민통치의 하위 파트너로 삼아 우대했고, 식민지 최대의 산업금융기관인 식산은행이 한국인 기업을 대출에서 차별하지 않았으며, 일본인 기업은 거래관계에 있는 한국인 기업에게 판로나 결제조건, 기술훈련 등에서 각종 편의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경성방직의 사사社史에는 경성방직이 일본의 억압과 방해에도 자력으로 자본을 조달하고 기술을 습득하며 판로를 개척해 살아남았다고 서술되어 있다. 이는 우리나라의 1세대 경제사학자인 고 조기준 교수의 민족자본긍정론이다. 반면, 에커트는 경성방직이 주식자본을 조달하지 못해서 총독부에게서 10년간 보조금을 받고 식산은행의 금융지원을 받았으며, 직기를 공급해 준 일본의 도요타직기로부터 기술지원을 받고 원료 공급처인 이토추상사에게서 유리한 거래조건을 적용 받았으며 판매도 의존했고, 총독부의 경찰력에 힘입어 직공들을 꼼짝달싹 못하게 장악할 수 있었다고 한다. 경성방직은 일본제국주의(총독부 당국과 일본인 거래기업)를 경영의 동업자요 후견인으로 두었기에 살아남고 성장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나아가 그는 1930년대 이후 일본이 대륙침략에 나섰을 때 경성방직을 비롯한 한국인 기업이 이를 사업확장 기회로 환영하고, 김성수, 김연수 형제를 비롯한 한국인 유력자들이 일본의 침략전쟁에 협력했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였다.
저자는 일제하의 한국인 자본을 일본 제국이 낳고 길러주고 그를 따르는 존재로서 그렸고, 이런 의미에서 그를 ‘제국의 후예’라 불렀다.

‘자생적 근대화론’에 대한 정면 도전

에커트의 이 연구로 사사류의 민족자본긍정론이 허구임이 여지없이 폭로되었다. 경성방직이라는 대표적인 한국인 기업은 일본제국주의에 실로 깊이 밀착되어 있었고 긴밀히 상호작용했다. 그러나 에커트는 예속자본론과 달리 바로 이러한 일제하의 한국인 자본에서 현대 한국의 성공적인 자본주의의 기원을 찾는다. 그는 일제하 경성방직의 눈부신 성장과 현대 한국의 역동적인 자본주의경제를 연결짓는다. 그는 식민지 개발체제와 박정희정부의 개발체제가 유사하고 식민지 유산이 그 매개항이라고 주장했다. 박정희정부 하의 경제개발을 보면 그것을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데자뷰)을 갖게 된다고 하였다.
이처럼 그는 좀더 긴 역사적 시야에서 한국의 근대화에 접근한다. 영미권의 경제발전론자들은 한국이 1960년대 초에 ‘어느 날 갑자기’ 공업화를 시작한 것으로 보는 시각과는 대조적이다. 또 한국의 국사학자들은 한국이 식민 지배와 전쟁으로 초토화된 폐허 위에서 ‘아무 것도 없이’ 공업화를 시작했다고 본다. 반면, 저자는 한국 근현대사를 시장경제화와 공업화?도시화가 진행되는 하나의 ‘장기지속’의 역사로 파악한다. 현대 한국의 공업화는 1876년의 개항, 특히 1910년의 식민지화 이래 지속되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현대 한국의 역동적인 자본주의의 역사적 기원을 탐구하며 경성방직의 성장사를 제국의 후예로서 보여준 것은 이 책의 최대의 특징이요 장점이다. 이를 위해 종래 다른 연구자들이 접근하지 못했던 회사의 회계장부와 개인 서신 등 희귀 자료를 새로 발굴한 것도 공적이다. 아울러 단순히 하나의 기업, 기업가에 관한 사례연구에 머물지 않고 당대의 시대상황 전체를 담아낸 저자의 필력 또한 감탄할만하다. 이 책은 한 기업의 사례연구지만, 전체 시대상이 잘 녹아 들어 있다. 여기서 저자는 뛰어난 서술 능력을 보여준다. 연구란 여러 가지 재료들을 조리해 맛있고 먹기 좋은 요리를 만들어내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을진대, 그는 많은 일화들을 들고 여러 가지 수사들을 적절하게 사용하여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풀어간다.

식민지기 한국인 자본가계급에 대한 최초의 본격 연구서

그렇지만 이 책은 그간 많은 면에서 오해와 오독을 낳았다. 첫째로, 저자가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긍정하거나 미화했다는 논평이다. 그는 실제로 일어난 일을 기술했을 뿐 그것이 바람직했다거나 좋았다는 선악善惡, 호오好惡의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식민지기 역사의 밝은 면, 양陽의 측면을 언급하고 있을 뿐이며, 그 이면에 식민지지배의 어두운 모습, 음陰의 측면이 있음을 책의 서문에서 분명히 밝혔다. 이민족의 지배에 따르는 민족 억압과 민족간 갈등, 민족 내부의 분열과 갈등이 당대는 물론이고 후대에도 크나큰 대가를 치르게 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도덕주의 포폄(褒貶)의 역사학에서 벗어나지 못한 국내의 많은 한국사 연구자들은 그의 견해를 식민지 지배 미화론으로 매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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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현대 한국의 고도성장, 경제성장이 일본의 식민지 지배 덕분이냐는 가시돋친 반론도 있다. 저자는 일제의 식민지 지배 해방후의 한국 사회에 미친 영향, 남긴 자취에 주목할 뿐이지, 일제의 식민지 지배가 해방후의 한국사회를 결정지었다거나 고도성장을 낳았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한국에 자본주의시장경제가 자리잡은 계기가 1876년의 개항 이후의 역사에 있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저자는 이 점을 주장하는 것이지, 한국 자본주의의 성공, 고도성장의 비결이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있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다.
한편 경성방직이 일제에 의존하고 협력한 사실만 골라서 읽는 것도 대표적인 오독 사례다. 국사학계에서는 경성방직은 예속자본이며, 그 기업가는 친일파이고, 그것은 민족사에서 아무런 의의를 갖지 못한다는 주장이 횡행한다. 일제와 협력했으니 매판이고 더 이상 볼 게 없다는 생각인데, 이는 남이 하는 이야기의 일부만 듣고 나머지에 관해서는 귀를 막는 것과 마찬가지다.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이 번역본 출간이 이러한 오해와 오독을 막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적었다.

이 책은 출판된 지 20년이 다 되어가건만 낡았다는 느낌이나 식상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만큼 이 책이 독특한 시각과 확고한 실증적 근거, 탄탄한 논리구성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가히 한국사 분야에서 고전의 반열에 들 만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 책이 돋보이는 게 다른 한편으로는 그동안 거대담론(grand theory)이라는 면에서 한국근현대사 연구가 지체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해서 씁쓸하다. 수많은 개별 연구의 축적에도 불구하고 한국근현대사 총론은 지지부진하여 전통적 수탈론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는 전통적 수탈론에 도전한 다양한 식민지근대화론 계열의 논의를 극복하려는 노력 없이 그저 무시해 온 결과다. 한국의 역사학계는 출간된 지 20년이 다 되어 가는 지금도 아직 이 책을 ‘극복’하지 못하였다.
물론 이 책에도 한계와 문제점이 있다. 독특한 시각이 한계점이기도 하다. 한국 자본주의의 ‘제국의 후예’의 측면만 부각되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경성방직의 일본제국주의에 대한 의존성만 부각되어 있다. 경성방직이 총독부 당국이나 일본인 기업과 교류하고 협력하며 때로는 지원받은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이 지원, 의존의 측면이 지나치게 부각되어 있다. 특히 일본인 기업과의 교류는 보통의 거래와 다를 바가 없는데 저자는 이를 지원, 의존으로까지 부각시켰으며, 그 서술 논조도 대단히 비판적이며 냉소적이기까지 하다. 저자도 이번 한국어판 서문에서 자신이 경성방직과 김성수 일가 등 한국인 기업, 기업가에 지나치게 고압적이었음을 시인하였다. 

저자는 국내 학자들의 민족적 의무감으로부터 자유로운 외국 학자이다. 창의성을 중시하는 그들의 학문적 풍토의 영향도 있겠지만, 저자는 객관적 입장에서, 실증적 자료들을 통해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 무엇인지를 밝히려 하였다. 한국 역사학계는 에커트를 비롯한 이들 외국 학자들의 ‘한국 자본주의의 식민지적 기원’에 관한 논의에 제대로 된 비판을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한국인 기업이 자신의 경영과제를 하나씩 풀어가면서 성장하는 과정을 재구성하는 작업은 이 책과 동시 출간된《대군의 척후》의 몫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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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 2편




역사의 우울한 반복 angra ㅣ 2013-08-04 ㅣ 공감(1) ㅣ 댓글 (0)


1970년대를 거치면서 급격한 공업화를 성공적으로 이끌고 세계경제안애서 살아남은 한국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이 박정희의 지도력과 (권력의 비호를 받은)소수재벌들의 성공적인 성장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여기에 좌파적 시각은 임금노동자들을 양산하고 지원하기 위한 농업의 희생과 임노동자들의 핍박 그리고 인권의 희생을 통해서 가능했다고 지적한다. 어느쪽이 진실에 가까울지는 각자가 서 있는 입장에 따라서 판이하게 갈릴수 있는 부분이다.




<제국의 후예>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분명 1970년대의 급부상하는 한국이 아니다. 하지만 이런 경제성장의 원동력, 즉 자본주의적 가능성이 이미 식민지 시절 잉태되었으며, 학습을 통해서 그 모체를 형성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과연 이러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이를 알기 위해서 민족적 기업이라고 알려진 경방이라는 기업을 통해서, 이 기업이 식민지 시절 어떻게 생성되고 번영하여 살아남았는지를 추적한다. 지금은 삼성이나 현대 같은 거대 재벌이 존재함으로써 그 이름이 극히 작아지기는 했지만 분명 아직도 그 역사적 의의가 줄어들지는 않았다.

경방의 시작은 전라도의 지주집안으로부터 시작된다. 그 기원이 되는 전라도 만석꾼이 어떻게 일제시대 토지 수탈을 피해서 부유해지고 공업화 과정에 참여하게 되었는지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우리가 일제시대가 시작되면서 대부분의 많은 농민들이 토지를 수탈 당한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제 토지수탈의 많은 부분이 왕족이나 공유지등이었으며, 지주들의 토지는 별반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 게다가 일본으로 양곡수출이 이어지면서 김씨 집안은 부를 축적할 수 있는 기회를 잡는다. 지주로서 그들은 마름을 통한 소작통 압박을 강하게 유도한다. 억압적 착취를 통해서 더 많은 소출과 이를 일본 수출로 이어지면서 부를 축적하고, 실제 김씨 집안은 지속적으로 농지를 확장한다(책에서는 이런 착취에 대해서 아무런 감정없이 객관적으로 서술되고 있지만, 이런 착취가 얼마나 악랄한 것인지는 근대사를 통해서 잘 알려진 부분이다). 덕분에 이 집안은 공업화가 시작되었을 때 투자할 수 있는 자금이 충분히 축적된 것이다.

1920년대가 되면서 식민지 총독부는 정책방향을 튼다. 이는 1919년의 3·1운동 영향이 크다. 이 즈음에 일본에서 유학하고 한국에서 경방에 투자를 하고 있던 김씨 집안의 두 형제는 기회를 잡는다. 식민지 총독부가 한국 기업들에 대한 지원을 시작할 때 이들도 그 혜택을 받은 것이다. 실제 경방이 생산한 면사는 질이 별로 좋지 않았으며, 투자자금을 확보하는데도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던 시절이었다. 총독부의 금전적 지원과 함께 식민지 은행들에서 대출이 발생한다. 그리고 경방이 발전을 거듭할수록 일본은행들은 더 좋은 조건으로 대출을 해주고 상호출자도 한다. 이는 은행만이 아니다. 경방이 필요로 하는 원자재와 기게들 수입에 있어서도 일본 업체들이 경방을 지원하고 좋은 조건으로 경방을 비호했다는 기록들이 많이 존재한다. 이는 단순히 조선 기업으로써 순수 민족적 기업으로써는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조건들이다.

위에서 볼 수 있는것처럼 일제 식민지 정부는 식민지 경영에 있어서 한국기업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았으며, 어떤 경우는 오히려 특혜를 주면서 밀접한 관계를 유지 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특히, 내선일체를 주장하면서 극동아전쟁을 향해서 나아가고 있을때 이들은 자신들의 부족한 부분을 메우기 위해서 조선의 많은 부분을 이용하고자 했기 때문에 이런 현상은 극화되었을 것이다. 게다가 친일적인 인물들이 많이 포진해 있던 상황에서 이런 경제적 기업들을 이용하기는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경방도 민족주의 기업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상 그들이 일제 식민지 시절에 살아남아서 그리고 1930년대 넘어서 해방전까지 번영을 구가한데는 그만큼 식민지 정부와 관료들 그리고 주변 인물들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제공하는 시스템을 잘 알고 있었고 거기에 편승해서 자신들의 이익을 도모했을 것이다.

1930년대가 되면서 경방이 고도 성장을 구가할 수 있었던 것은 일본의 만주탈취와 중국 침략으로 인한 시장의 확장이었다. 경방은 처음부터 일본 제품과 경쟁하기 보다는 그 틈새 시장을 찾길 원했고, 초창기 어려웠던 시기를 넘기면서 만주에서 그 해답을 찾았다. 결국 일본 제품의 뛰어난 품질과 경영노하우와 경쟁하기 보다는 해외로 눈을 돌려 좀 더 수월한 판로를 찾았고 때마침 일본의 전장 확장으로 인한 상승세를 유지할 수 있었다.

게다가 민족기업으로서 이미지를 가지고 있던 경방은 자신의 임노장자 착취에 대해서 소작농에 대한 착취와 같은 억압적 노동을 강요했다. 노동쟁의는 철저하게 탄압 받았고, 임금은 최저 상태를 유지했으며, 노동자들은 계약기간동안 공장안에서 12시간의 긴 노동시간을 견뎌야만 했다. 경방은 노동쟁의가 발생했을 때조차 노동자들에 대해 협상 의지를 보이지 않고 일본 경찰들에게 의지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태도로 일관했다.

박정희 시절의 경제개혁 혹은 경제발전 시초는 한일관계 정상화다. 당장 급박한 자금과 자원을 지원받기 위한 이런 시도는 다음과 같은 상황을 잘 설명해 준다. 박정희는 메이지 유신에 깊이 매료되어 있었으며, 살아남은 기업들은 과거의 시스템에 익숙하고 또 이를 복원하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한일관계가 복원이 되고 물밑으로 흐르던 이들의 관계가 좀 더 적극적으로 표면적으로 들어나면서 이들은 예전의 시스템속에서 다시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복원의 한가운데 경방이 참여한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들은 예전에 우의를 유지하던 기업과 인맥을 다시 되찾았고 손쉽게 안정적인 발전을 구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정권의 정당성을 획득하고 유지하기 위해서 시작한 경제발전은 일제시대 민족적 항쟁을 무마하기 위해서 총독부가 취했던 정책과 유사한 길을 걷게 된다. 부품과 자금, 주원료는 외부에서 조달하고 조립과 완성품 수출로 통한 성장을 유지하는 방향은 이미 경험했던 세계를 다시금 재현하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게다가 지원주체가 조금은 바뀌었지만 정부와 은행의 전폭적 지원 그리고 노동자의 희생을 통한 강요된 경제를 통해서 이익의 극대화한 기업. 이런 설명이 어느정도 타당성을 가질수 있는게 저자가 의뢰한 연구에서 들어나듯이 재벌의 절반 이상이 창업자들이 일본식민지 시절의 기업운영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단순한 경험이 이런 재벌을 형성하고 급격한 경제발전을 일으킬 수 있다고 이야기할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극히 다르지 않은 경로를 다시금 걷는 과정은 헐씬 수월했고 똑같은 문제들을 무시하고 그만큼 쉬운 길을 갔을 것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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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자본의 뿌리깊은 악덕 스머프 ㅣ 2008-06-20 ㅣ 공감(24) ㅣ 댓글 (0)
우리나라에서 돈 좀 있는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부자를 왜 죄인 취급하냐? 돈 많은 게 무슨 죄냐?" 촛불로 곤욕을 치른 대통령도 그런 말씀을 하셨기에 그렇게 궁금해들 한다면 답을 줘야 한다는 사명감이 생겼다. 다행히 그걸 일러주는 좋은 책이 있었다. 카터 에커트의 [제국의 후예]다. 고대와 동아일보를 세운 김성수, 김연수의 경방 역사를 꼼꼼이 살펴 한국자본주의의 식민지 기원을 밝힌 책이다. 역사학계에선 오랫동안 논란이 되었던 책인데 얼마 전에 번역이 되었다. 이걸 보면 한국의 자본가가 왜 국민들에게 욕을 먹는지, 왜 그들은 툭하면 권력과 결탁하고 왜 그 아들들은 군대를 기피하며, 왜 파업이 일어나면 경찰이 나서는지 등등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왜 대한상의가 최근에 "우리 민족이 자주독립국가 수립능력을 가졌는지 의문"이라면서 교과서 개정을 주장했는지 잘 알 수 있다. 그게 다 뿌리가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은 양쪽에서 욕을 먹는다. 한국의 내재적 발전을 주장한 민족주의 사학계는, 일제 지배하에서 한국에 자본주의가 발전했다는 주장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럼 이영훈을 비롯한 재인식론자들은 환영하느냐? 그렇지 않을 것이 저자는 한국의 자본주의가 일제 군국주의와 결탁하여 발전함으로써 반민족성, 정경유착, 반민주성, 노동탄압을 처음부터 제 것으로 갖고 있다고 분석하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 카터 씨의 주장이 매우 정치한 논리와 꼼꼼한 자료분석을 통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즉, 이를 반박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한국 현대사 교과서의 상당 부분은 여전히 양쪽의 입장이 지배적이다.

일제 시대에 자본주의적 발전이 있었는가? 물론 있었다. 노동조합도 있었고 파업도 있었고 중화학 공장도 여럿 있었고 항만과 철도 같은 기간시설도 다 그때 기초가 놓였다. 성수대교는 무너져도 한강철교는 무너지지 않는다고, 그래서 한국놈들은 안 된다고 나이드신 분들이 하는 말을 듣기도 했으니까. (식민지 36년의 그림자는 생각보다 훨씬 짙고 길다!) 삼성, 현대, 두산, 경방, 한국은행... 다 식민지 때 탄생해서 발전했다.

그래서 일제의 지배가 긍정적인 면이 있다고? 일본 덕분에 우리나라에 자본주의가 발전하고 근대화의 싹이 텄으니 불행 중 다행 아니냐고? 아니, 불행 중 불행이다. 왜? 자본주의의 발전이 외세 -그것도 가장 군사적이고 독재적인 일본제국주의에 의해 이루어짐으로써 한국의 자본은 태생부터 뒤틀린 모습을 갖게 되었으니까. 그런 자본 때문에 한국민은 부와 노동에 대해서 왜곡된 시선을 갖게 되고, 권력과 시민권에 대해 끔찍한 오해를 하게 되었으니까. 그런 시선과 오해 때문에 경제규모는 세계 10위권임에도 삶의 질은 7~80위권에 머물고 자살률은 세계 1,2위를 다투는 이상한 나라가 되었으니까. 아이들에게 "공부하다 죽은 사람 없다"고 외치며 새벽까지 학원에 가두면서도 다 너희를 위한 거라고 뻐기기까지 하는 어른들의 나라가 되었으니까.

자, 이제 카터가 분석한 내용 중 한국 자본가의 성격을 보여주는 대목들을 직접 읽기로 하자.

"한국인 기업가 표본을 분석해보니 기업가를 낳은 건 주로 대지주였다. 빈민 대중 출신 기업가는 거의 없고, 공업 엘리트는 공업화 이전의 엘리트 집단에서 충원되었다."
"초기 존속기간에 정부의 정례적인 지원이 없었더라면 경방은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경방의 초대사장은 일본 귀족 작위를 받은 박영효엿고 그의 존재는 "허가 및 운영의 어려움을 타개하는 데 크게 도움을 주었다." "경방과 식산은행의 관계는 인적 기업적 이해관계로 확장되었고, 이 관계를 통해 경방은 민간기업이면서도 금융구조를 통해 국가에 긴밀하고 복잡하게 연계된 준 공기업이 되었다." -정경유착, 특혜금융의 원조

"전쟁은 경방에게 막대한 수익을 가져다 주었다. 1938-45년 사이 경방은 그 이전 19년간의 영업에서는 전례가 없던 호경기를 누렸다."

"...민수용 생산을 위한 면화의 공급원으로서 중국에 의존했기 때문에 1945년까지 경방은 중국 대륙에서 일본군국주의가 승리해야 큰 이익을 거둘 수 있었고, 전체 제국체제와의 연대는 강화되었다."

"제품 판매를 위해 경방은 만주와 중국에서 일제에 적극 협력하게 되었고, 일본 제국이 지속될수록 경방이 얻을 이익 역시 훨씬 더 커졌다." -초기의 어려움을 민족감정에 호소한 물산장려운동으로 극복한 경방은 이후 일제와 협력하여 사업을 키운다. 민족주의는 자본가의 이익을 위한 수사에 불과하다.

"19세기 영국의 정치개혁 투쟁은 기본적으로 자본가의 경제적 이익을 위한 것이었지만 자본가가 대중투쟁에서 핵심역할을 함으로써 사회진보를 선도하는 집단이라는 명성을 구축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인 자본가는 부분적으론 식민지 정치경제구조의 속성 때문에, 다른 일부는 근시안적인 자기 이익 때문에 식민지기 동안 노동계급에게 물질적 양보를 거의 하지 않았다. 그 결과 한국인 자본가와 노동자는 적나라한 대결 양상을 보였다. 파업은 빈번하고 격렬했으며 한국인 자본가는 현상 유지를 위해 일본 경찰의 지원과 개입에 크게 의존하였다.
식민지 조선의 자본가는 조선 사회에서 결코 이데올로기적 지도자의 자리를 차지할 수 없었다. ..민주주의는 한국인 자본가의 발전요인이 아니었다. 유럽에서는 귀족과 공업기업가 간의 격렬한 계급투쟁 과정에서 공업가가 민주주의자로 변신했지만 조선에서는 그런 일이 없었다... 또 한 원인은 한국 자본주의가 19년~45년 사이 성장의 첫 파도를 탈 수 있었던 것은 본질적으로 민간 관료기구를 통해 작동한 군사독재체제의 후원 덕분이었다. .. 자본가의 정치활동이 있었다면 그건 관료기구와의 공적, 사적 교류에 불과한 것으로서 기성 독재정치구조에 편입된 중요한 구성요소였다.

식민지기 한국인 자본가의 발전은 민주주의와 아무 상관이 없었음에도 자본가계급은 민족주의에 입각해 자연스레 대중에 대한 지도력을 형성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한국인 기업이 식민지 정치경제구조에 의존한 것 같은 여러가지 이유 때문에 민족주의 원칙에 대한 한국인 자본가의 충성심은 사실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한국의 부자들이 욕을 먹는 이유는 물론 너무나 많다. 이 책은 그 많은 이유들의 근원을 파헤쳐 보여준다. 식민지기 한국의 자본가들이 독립을 원할 이유가 있었을까? 그 후예들이 출산원정을 하고 이중국적을 당연시하는 게 우연일까? 두려운 건, 이들의 파렴치함을 비난하고 잘못을 시정해야 할 국민들이 이제는 이들처럼 되지 못한 걸 부끄러워하며 너도나도 그들을 답습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잘못이다. 반민족적이라 잘못이 아니라 그런 행태가 그들을 먹여살린 사람들을 배신하고 착취하고 괴롭히는 것이기에, 타인의 삶을 짓밟고 목숨을 뺏은 대가로 얻은 이익이기에 잘못이다. 이제는 사람을 살리는 자본을 키울 때다. 가난한 이들의 목숨을 뺏고 자신의 배를 불린 자본은 욕을 먹어도 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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