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8-05

* 탐루 (探淚) 평화통일 운동가 김낙중의 삶, 김선주 2005

탐루 (探淚) -김선주 : 네이버 블로그

탐루 (探淚) -김선주
 historywiz ・ 2019. 8. 20.




탐루  저자김선주
출판 한울 2005.05.15.

평화통일 운동가 김낙중의 삶, 사랑, 가족

친구가 '김낙중을 아냐'고 물어보기에 궁금해서 찾아 읽게 된 책! 김낙중의 삶은 한반도, 그리고 냉전의 비극을 담아낸 역사 그 자체다... 그분(그리고 가족!!!)께서 겪으신 고초는 이루 말할 수 없으며, 불과 2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대한민국(남한)이 그랬다는 것이 충격적이다.

이 변혁(사실 변혁이라고조차 부를 수 있을지 모를)에서 이승만 정부의 붕괴에 청년학도들의 순결한 피가 거룩한 제물이 되었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승만의 하야를 죽음 앞에서 그가 굴복한 것이라고 보기라는, 차라리 미국의 강경한 압력과 국민의 요구 앞에서의 굴복이라고, 아니 미국인을 상전으로 아는 그에게는 차라리 상전의 명령 앞에서의 굴복에 불과했다고 하는 것이 정확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어떠한 역대 무자비한 독재자치고 백 명이나 이백 명의 희생 때문에 무릎을 꿇는 독재자는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학생 데모에 대한 군부의 동정(同情)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가지나 사병들의 동정이지 군 상층부의 압력 때문에 그가 굴복한 것은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동기는 참으로 주체적인 역량을 집중하고 초보적 민주주의적 자유의 보장을 위하여 투쟁해야 되는 것은 이제부터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160-161쪽, 5. 제2차 간첩단 사건

아버지가 대전교도소 생활에서 가장 답답하고 불편했던 것은 세상 소식을 알 수 없다는 점이었다. 지금이야 많이 달라졌지만 그대는 TV는 물론이고 시사정보가 실려있는 신문이나 잡지도 일절 접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시국사범들은 일반 재소자들이 무심코 버리는 운동화 속의 신문지 조각이라도 주워 읽으려고 애를 쓰곤 했다. 그러나 그것도 교도관에게 걸리면 출처를 조사한다는 명목으로 구타와 고문이 자행되며 한바탕 난리가 났다. 시국사범들은 일체 바깥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알아서도, 알려 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 그곳의 법이고 진리였던 셈이다. 하지만 시국사범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바깥세상 소식을 들으려 애썼다. 세상의 모순에 관심을 가졌다는 것이 그들의 죄명이었고 역사의 변화나 사회의 정세가 자신의 운명과 직결되어 있다 보니 결코 세상 소식에 무심할 수만은 없었기 때문이다.

298쪽, 8. 봄을 기다리며

삼 남매가 어느 정도 커서도 마찬가지였다. 우리에게는 통금시간이 없었고, 어디서 외박을 하더라도 우리의 말을 무조건 믿어주었다. 어떤 종교를 선택하는지, 어던 서클에 가입하는지에 대해서도 최대한 우리의 의견을 존중해 주었다. 이성을 사귀는 데에도 규제가 없었고, 결혼할 사람에 대해서도 학벌, 국적, 지역, 경제력 도는 외모에 대해서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라거나 "이런 사람이 배우자로는 적격이다"라는 부모로서 가질 만한 욕심을 내비친 적이 없다.

323쪽, 8. 봄을 기다리며

"정말 미국에 가서 아빠를 만났단 말이야. 기차를 타고 가서 조그만 구멍이 뚫려있는 유리창 너머로 파란 옷을 입은 아버지를 만나고 왔다니까"라며 자랑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말이 참말임을 좀 입증해 달라는 듯 어머니를 불렀다. 그 후 그 일이 어떻게 수습이 되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단지 그날 어머니는 참 많이 울었다. 그리고 나와 오빠 역시 내내 우울했다.

326쪽, 8. 봄을 기다리며

아버지는 이미 <사회과학원론>에서 사회주의 체제가 가지는 문제점들을 구체적으로 지적한 바 있었다. 그리고 모든 사회가 필연적으로 봉건 사회에서 자본주의 사회로, 다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주의 사회, 결국엔 공산주의 사회로 이행 발전한다는 '사회발전단계설'을 신앙적으로 수용하는 태도에 대해서 비판적인 입장이었다. 또한 북측을 결코 무비판적으로 지지하지도 않았다. 아버지는 안보적 위협이 상존하는 상황에서는 강력한 집단주의가 불가피하다고 이해했다. 그리고 한반도의 긴장을 지속시키려는 미국의 군수산업에 강력히 반대했다. 그러나 미국에 대한 무조건적 반대나 북한에 대한 무비판적 지지에는 동조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사회과학원론>을 통해서, '민족'이라는 공동체가 최대한 많은 구성원들이 자기의 삶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인민적 자치의 원칙'에 따라 운영되어야만 한다고 강조한 바가 있었다. 또한 배타적 민족주의에도 동의하지 않았다.


378-379쪽, 9. 다시 등불을 밝히다



"민주화란 한 국가의 정치적 의사 결정에 국민 개개인의 의사를 투입해서 이루어지는 정치를 말하는 것이고, '민족자주화'란 민족의 운명이 민족 구성원들 자신의 집단적 의사에 의해 결정되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민족이 식민지나 종속국가의 상태에 있을 경우에는 비록 외형상 민주국가의 선거제도나 의회 제도를 갖추었다고 치더라도 자신들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상태이다. 따라서 그런 민주화는 '인민적 자치의 원칙'을 실현한 상태가 아닌 것이다. 그리고 어떤 민족 국가가 비록 외세의 지배에서 벗어나 자주성을 갖고 있다고 할지라도, 국민 개개인의 정치적 의사를 국가 의사 결정에 투입하는 제도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면, 그 역시 '인민적 장치의 원칙'이 실현된 상태가 아니다."


379-380쪽, 9. 다시 등불을 밝히다



그러나 모순투성이 세상은 성큼 변하는 법이 없다. 자신은 소중한 '무엇'을 과감히 단념했는데 당장 손에 쥐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가 구속되거나 제적되었다고 세상이 하루아침에 달라지지는 않는다. 그가 불구자가 되었다고 부정선거가 사라진 것도 아니다. 그가 온몸에 기름을 뿌리고 분신을 한 다음 날에도 잔인할 정도로 무심하고 평범한 일상은 시작되었다. 그가 일자리를 잃어 당장 먹고사는 문제마저 고민하게 되었다고 노동운동이 급격하게 발전하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청춘을 민주주의의 제물로 삼았다고 알아주는 사람도 없으며, 억울한 고문과 죽음을 당했다고 천지가 개벽하지도 않았다. 하물며 더러는 사회적인 비난과 비판을 받기도 한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무모한 선택이라고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몽상가'라고 치부되기도 한다. '자기 앞가림도 못하면서 오지랖이 넓은' 사람으로 비하하는 사람들도 있다. 더구나 자신의 선택으로 사랑하는 가족까지 고통을 받으며, 고통받는 가족들도 그를 원망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

그러나 세상에는 누적되었을 때 그 진가가 발휘되는 것이 있다. 당장에는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어 보이지만, 어느 순간 변화를 가능하게 하고 진가를 보여주는 것. 아무 의미 없는 몸짓 같지만 그 몸짓이 모이고 모여 커다란 의미가 되는 것. 조금씩 조금씩 쌓인 그것은 절대로 움직인지 않을 것 같았던 무게의 추를 어느 순간에 덜컥 움직인다. 그렇게 무게 중심을 바꾸어놓는 것이다. 자신이 누릴 수 있었던 크고 작은 '소유'를 버린 사람들은 그 진가를 알고 있었던 것이리라. 그리고 확신했던 것이리라.


552-553쪽, 13. 희망을 만드는 사람들


김낙중. 그는 단순한 이상주의자가 아니고, 세상을 냉철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누구보다도 미래지향적이지만 과거에 얽매여 고초를 겪었던 그야말로 우리가 본받아야 하지 않을까?



#김낙중 #평화통일 #김선주 #남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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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루: 평화통일 운동가 김낙중의 삶, 사랑, 가족> 요약 및 평론

1. 책의 개요 및 서지적 배경

<탐루(貪淚)>는 평화통일운동가 김낙중(1931~2020)의 막내딸 김선주가 아버지의 구술과 기록, 그리고 가족들이 견뎌온 세월의 흔적을 엮어 출간한 평전이자 가족 수기이다. 제목인 '탐루(貪淚)'는 <눈물을 탐하다> 또는 <탐욕스러운 눈물>이라는 뜻으로, 한국 현대사의 거친 분단 파도 속에서 한 가족이 흘려야 했던 수많은 눈물과, 그 눈물마저도 삶의 양식으로 삼아 살아내야 했던 비극적인 서사를 상징한다.

1955년 평화통일안을 품고 목숨을 걸고 월북했던 청년 김낙중은 이후 평생을 '간첩'이라는 주홍글씨와 함께 감옥을 드나들어야 했다. 이 책은 한 위대한 통일운동가의 신념 찬 투쟁사라는 거시적 담론에 가려져 있던, '아버지 김낙중'과 '그를 둘러싼 가족들의 일상적 고통과 사랑'이라는 미시적 차원을 조명한다.

2. 주요 내용 요약

아버지의 신념과 거듭된 부재

김낙중은 1955년 월북 사건 이후 남한으로 돌아와 끊임없는 감시와 투옥을 경험했다. 1973년 고려대학교 노동문제연구소 사건, 1992년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 등 한국 현대사의 굵직한 공안 사건마다 그는 표적이 되었다. 딸 김선주를 비롯한 자녀들에게 아버지는 늘 '감옥에 계신 분'이거나 '사형 구형을 받은 비극의 주인공'이었다.

간첩의 가족이라는 주홍글씨와 연좌제

책은 독재 정권 시절 연좌제와 사회적 낙인이 한 가족의 삶을 어떻게 파괴했는지 생생하게 증언한다. 학교와 사회에서 '간첩의 자식'이라는 멸시와 감시를 견뎌야 했던 자녀들의 상처, 그리고 남편의 부재 속에 쌕쌕이 장사와 잡일을 마다하지 않으며 생계를 책임졌던 어머니 김남기의 고단한 삶이 딸의 담담하면서도 애절한 문체로 기록되어 있다.

가족 안에서의 사랑과 화해

거듭된 투옥과 사형 구형이라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가족을 지탱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깊은 사랑'이었다. 김낙중은 옥중에서도 자녀들에게 끊임없이 편지를 쓰며 사상가이기 이전에 따뜻한 아버지로서 존재하고자 했다. 딸 김선주는 어릴 적 아버지를 향했던 원망과 거리를 점차 이해와 연민으로 바꾸어가며, 아버지의 삶이 지닌 역사적 진정성을 받아들이는 화해의 과정을 그려낸다.

3. 평론: 거대 담론에 숨겨진 인간성과 가족의 재발견

신화화된 운동가를 '인간'으로 환원하다

기존의 통일운동 관련 기록들이 김낙중의 사상적 정당성이나 정권의 사법살인 폭력을 비판하는 데 집중했다면, <탐루>는 그를 완벽한 영웅이 아닌 갈등하고 미안해하는 한 인간이자 아버지로 환원시킨다. 국가 폭력이 가해질 때 그 피해는 운동가 개인에게만 수렴되지 않고 그 가족 전체의 삶으로 확장된다는 점을 이 책은 입체적으로 입증한다.

딸의 시선이 주는 사료적·문학적 무게

저자 김선주는 아버지의 신념을 무조건적으로 찬양하지 않는다. 어릴 적 느꼈던 아버지를 향한 서운함, 평범한 가정을 주지 못한 원망, 사회적 냉대 속에서 느꼈던 공포를 솔직하게 고백한다. 이러한 '딸의 시선'은 자칫 관념적으로 흐를 수 있는 통일운동사를 극도로 현실적이고 생생한 민중의 삶의 기록으로 끌어내리는 역할을 한다.

'눈물(淚)'이 가진 평화의 메시지

책의 핵심 모티프인 '눈물'은 무력과 이념이 지배하는 냉전 체제에 대한 가장 강력한 인문학적 저항이다. 남북한 양쪽 체제 모두로부터 배척당하면서도 오직 '생명과 평화'를 부르짖었던 김낙중의 외길은, 그 자신과 가족이 흘린 눈물을 통해 완성된다. 분단 체제가 한 개인의 일상을 어떻게 침해했는지, 그리고 그 균열을 메운 것이 결국 가족 간의 사랑이었다는 점은 깊은 울림을 준다.

4. 결론

<탐루>는 한국 현대사의 비극이 한 가정의 거실과 안방에 어떻게 침투했는지를 보여주는 서글픈 증언록이다. 평화통일이라는 거창한 구호 뒤에 숨겨진 한 가족의 피눈물 나는 생존기이자, 그 모든 고난을 사랑으로 견뎌낸 숭고한 가족사이다. 김낙중이라는 한 지식인의 삶을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사상집뿐만 아니라, 가족의 눈물로 기록된 이 책 <탐루>를 반드시 함께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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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주, <탐루: 평화통일 운동가 김낙중의 삶, 사랑, 가족> — 1,000단어 요약·평론

김선주의 <탐루(探淚)>는 2005년 한울에서 출간된 약 600쪽의 책이다. 부제는 <평화통일 운동가 김낙중의 삶, 사랑, 가족>이다. 출판사는 이 책을 김낙중과 아내 김남기의 삶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딸이 쓴 부모의 이야기이자, 한 가족을 통해 바라본 “분단 반세기의 이야기”라고 소개한다.

이 책은 앞서 살펴본 김낙중·김남기의 <굽이치는 임진강>과 매우 밀접하다. <굽이치는 임진강>이 1964년경까지의 삶을 부부 자신이 기록한 <1부>라면, <탐루>는 그 이후 수십 년의 삶을 딸 김선주가 이어 쓴 사실상의 <2부>이다. 실제로 김낙중·김남기는 <굽이치는 임진강> 후기에서 언젠가 2부를 쓰고 싶다는 뜻을 남겼고, 딸 김선주가 부모에게서 일기와 편지 등의 자료를 넘겨받아 약 5년 동안 작업했다.

따라서 두 책의 가장 큰 차이는 명확하다.

<굽이치는 임진강>이 “김낙중은 왜 그런 사람이 되었는가”를 보여준다면,
<탐루>는 “그런 김낙중과 함께 산 사람들의 삶은 어떠했는가”를 묻는다.

이 차이 때문에 나는 <탐루>가 오히려 김낙중을 이해하는 데 더 중요한 책일 수도 있다고 본다.


1. 제목 <탐루> — ‘눈물을 찾는다’

탐루(探淚)는 문자 그대로 <눈물을 찾는다>는 뜻이다.

이 말은 젊은 김낙중의 기이할 정도로 강렬한 행동에서 나온다. 한국전쟁 뒤 그는 머리를 깎고 흰 한복을 입은 채 부산 거리에 등불을 들고 나가 “눈물을 가진 사람이 없느냐”고 외쳤다. 같은 민족이 다시 서로 죽여서는 안 되며 평화통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후 자신의 통일방안을 이승만 대통령에게 제출하고, 다른 한 부를 북한에 전달하려고 1955년 임진강을 건넜다.

따라서 ‘눈물’은 김낙중에게 단순한 감상이 아니다.

타인의 고통을 자기 고통처럼 느낄 수 있는 능력, 즉 <분단과 전쟁을 넘어서는 인간적 연민>을 의미한다.

그런데 김선주의 책에서는 이 제목이 한 단계 더 복잡해진다.

아버지는 민족의 눈물을 찾았지만,

<그 아버지 때문에 가족이 흘린 눈물은 누가 보았는가?>

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생기기 때문이다.

바로 이 긴장이 <탐루> 전체를 관통한다.


2. 김낙중의 영웅담이 아니라 가족사

책의 목차도 이를 잘 보여준다.

<구도>, <굽이치는 임진강>으로 김낙중의 초기 생애를 다룬 다음 곧바로 <동녘골 소녀>가 등장한다. 이후 <여울>, <제2차 간첩단 사건>, <함께 가는 길>, <제3차 간첩단 사건>, <봄을 기다리며>, <다시 등불을 밝히다>, <눈물의 일기>, <제4차 간첩단 사건>, <폭풍의 한가운데>, <희망을 만드는 사람들>, <아름다운 산행>으로 이어진다.

즉 책의 구조 자체가

김낙중의 사상
→ 김남기와의 만남과 결혼
→ 투옥
→ 가족생활
→ 또다시 투옥
→ 가족의 고통
→ 석방과 재기

를 반복한다.

이렇게 보면 김낙중의 생애에서 “간첩사건”은 몇몇 특별한 사건이 아니었다.

가족의 일상 자체를 주기적으로 파괴하는 사건이었다.

김낙중은 1950년대 이후 여러 차례 간첩 혐의로 구속되었고 총 18년가량 옥살이를 했다. <탐루>에서 중요한 것은 각각의 사건의 법률적 진위만이 아니다. 국가보안 사건이 한 가족에게 어떤 사회적·심리적 후유증을 남겼는가이다.


3. 진정한 두 번째 주인공은 아내 김남기다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은 어쩌면 김낙중이 아니라 <김남기>이다.

김선주 자신도 어머니 이야기를 굳이 넣은 이유를 설명하면서, 어머니가 지킨 것은 단순히 가정만이 아니라 아버지의 평화통일에 대한 신념이 지속될 수 있는 기반이었다고 말한다.

이것은 상당히 중요한 관점이다.

정치운동가의 전기는 대개 감옥에 간 사람을 중심으로 쓰인다.

그러나 감옥 밖에서는 누군가가

아이를 키우고,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고,
면회를 가고,
편지를 보내고,
주변의 시선을 견디고,
출소한 남편을 다시 받아들이고,

또다시 체포될 가능성을 안고 살아야 했다.

김낙중에게 감옥은 자신의 정치적·도덕적 선택의 결과일 수 있었다.

그러나 김남기와 자녀들은 그 선택을 직접 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래서 <탐루>는 평화운동의 <숨겨진 비용>을 보여준다.


4. 딸에게 아버지는 처음부터 영웅이 아니었다

이 책의 가장 좋은 점이 여기에 있다.

김선주는 처음부터 아버지를 존경하여 책을 쓴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아버지와 가장 많이 충돌했던 자녀였다고 스스로 말한다. 그는 가족이 아버지를 위해 뛰어다녔던 것도 처음부터 아버지의 정치적 신념을 이해했기 때문이라기보다 <그 사람이 자신의 아버지였기 때문>이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특히 “간첩의 딸”이라는 사회적 낙인은 아이에게 매우 무거운 것이었다. 김선주는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가까운 친구들에게 조심스럽게 아버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고 회고한다.

이 부분은 <탐루>를 단순한 통일운동가 전기에서 구별시키는 핵심이다.

딸에게 아버지는

<민족의 평화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 위대한 사람>

인 동시에

<왜 가족이 이런 고통을 겪도록 했는가?>

라고 묻고 싶어지는 사람이었다.

이 양가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그래서 책의 신뢰도가 오히려 높아진다.


5. “아버지의 신념에 모두 동의하지 않는다”

출간 당시 김선주는 매우 중요한 말을 했다.

아버지의 신념에 자신이 전부 동의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책을 쓰면서 아버지가 수십 년 동안 한눈팔지 않고 같은 생각을 붙들고 살아왔다는 <진정성>만큼은 인정하게 되었고, 마침내 “이제야 아버지를 존경한다”고 말했다.

이것은 자녀가 부모를 이해하게 되는 과정으로도 상당히 감동적이다.

“아버지가 옳았다”와

“나는 아버지를 존경한다”는

서로 다른 명제다.

김선주는 첫 번째까지 갈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나는 아버지의 모든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가 자신의 믿음을 얼마나 진지하게 살았는지는 이제 이해한다>

는 데 도달했다.

이것이 <탐루>의 가장 성숙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6. 1992년 사건 — 이 책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

김낙중을 평가할 때 1992년 사건을 피해갈 수 없다.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오랫동안 그를 평화통일운동가이자 국가보안체제의 희생자로 보았다. 반대로 당시 수사기관은 장기간 북한의 지령을 받은 고정간첩으로 묘사했고 검찰은 사형을 구형했다. 출판사 책소개 자체가 이처럼 완전히 상반되는 김낙중 평가를 책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탐루>는 당연히 가족의 시각에서 쓰인 책이다.

따라서 이것을 김낙중 사건의 <중립적인 역사학 연구서>라고 읽으면 곤란하다.

김선주의 목적은 사건 관련 모든 자료를 양쪽에서 검토하여 법적 진실을 확정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아버지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었는가?>

를 딸의 자리에서 찾아가는 것이다.

이 구별은 중요하다.

<탐루>는 김낙중 사건을 연구하기 위한 중요한 1차적 가족 증언이지만, 사건의 사실관계를 확정하는 최종 판정문은 아니다.


7. 오히려 중요한 문제 — 신념을 위해 가족을 희생시켜도 되는가?

이 책을 읽으면서 피할 수 없는 질문이 있다.

<김낙중의 삶은 존경할 만한가?>

나는 단순히 “그렇다”고 답하면 이 책의 절반밖에 읽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낙중 자신에게는 놀라운 도덕적 일관성이 있었다.

한반도에서 다시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20대부터 노년까지 거의 한 번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동시에 그의 선택 때문에 아내와 아이들은 엄청난 고통을 겪었다.

여기서 정치적 성인(聖人)의 오래된 문제가 등장한다.

<인류를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 가족에게 고통을 주어도 되는가?>

간디에게도 있었고, 수많은 혁명가·종교인·사회운동가의 가족에게도 있었던 문제다.

김낙중에게도 정확히 같은 문제가 있다.

그래서 <탐루>의 부제가 매우 정확하다.

<삶, 사랑, 가족>이다.

“평화통일운동가 김낙중”만으로는 김낙중이라는 인간을 설명할 수 없다는 뜻이다.


8. <굽이치는 임진강>보다 한 단계 더 깊은 책

두 책을 비교하면 이렇게 볼 수 있다.

<굽이치는 임진강><탐루>
김낙중·김남기가 씀딸 김선주가 씀
당사자의 자기서사자녀의 거리 있는 시선
김낙중은 왜 평화주의자가 되었나그의 평화주의 때문에 가족은 어떻게 살았나
전쟁·분단·임진강감옥·결혼·자녀·사회적 낙인
신념의 형성신념의 대가
주로 김낙중김낙중 + 김남기 + 자녀

따라서 김낙중을 역사적 인물로 이해하려면 두 권을 함께 읽어야 한다.

첫 번째 책만 읽으면 지나치게 영웅적일 수 있다.

두 번째 책까지 읽으면 <영웅 뒤의 가족>이 보인다.


9. 이 책의 가장 큰 강점과 한계

가장 큰 강점은 <분단사를 가족사로 바꾸어 놓았다는 것>이다.

분단은 휴전선이나 남북정상회담 같은 거대한 정치문제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한 아이가 학교에서 아버지 이야기를 감추는 것, 아내가 감옥에 있는 남편을 기다리는 것, 가족이 “간첩 가족”이라는 시선을 의식하면서 살아가는 것 속에도 분단이 있다.

이 점에서 <탐루>는 정치사보다 <생활사·감정사>에 가까운 중요한 기록이다.

반면 한계도 분명하다.

딸이 쓴 가족사이기 때문에 아버지에 대한 애정과 변호가 강하다. 특히 김낙중의 북한과의 관계나 국가보안법 사건을 객관적으로 재구성하려면 판결문, 수사기록, 이후의 진상조사 자료 등을 별도로 검토해야 한다. 따라서 이 책만으로 “김낙중 사건의 진실”을 모두 판단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것은 이 책의 실패라기보다 장르의 한계다.

김선주가 하려는 것은 역사가의 판결이 아니다.

<아버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종합평가

<탐루>를 읽고 나면 김낙중에 대한 질문 자체가 달라진다.

처음에는

<김낙중은 간첩인가, 평화통일운동가인가?>

라는 질문으로 시작하기 쉽다.

그러나 책을 따라가다 보면 더 복잡한 질문으로 바뀐다.

<한 인간이 평생 하나의 신념을 지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 신념을 위해 가족에게 고통을 감수하게 하는 것은 정당한가?>

<국가가 한 사람에게 붙인 정치적 낙인은 그의 자녀에게까지 이어져도 되는가?>

<그리고 자녀는 부모가 죽을 때까지 부모의 정치적 선택을 이해해야 할 의무가 있는가?>

<탐루>가 좋은 책인 것은 이런 질문에 간단한 답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김선주가 도달한 결론이 인상적이다.

그녀는 아버지의 모든 사상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나 수십 년에 걸친 자료와 부모의 일기, 편지, 가족의 기억을 다시 읽으면서 한 가지는 인정하게 된다.

<아버지는 자신이 믿는 것을 실제로 살아낸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간첩 아버지’를 부끄러워하거나 원망했던 딸이 마침내 아버지를 <존경할 수 있는 거리>에 도달한다.

나는 바로 이것이 <탐루>의 가장 중요한 성취라고 생각한다.

<굽이치는 임진강>이 <한 청년이 왜 임진강을 건넜는가>를 설명하는 책이라면, <탐루>는 <그 청년이 임진강을 건넌 뒤 그의 아내와 아이들은 수십 년 동안 어떤 강을 건너야 했는가>를 보여주는 책이다.

그래서 김낙중 개인의 평화사상보다 <분단이 한 가족의 내부에 남긴 상처와 사랑>에 관심이 있다면, 오히려 <탐루>가 더 풍부하고 인간적인 기록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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