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8-04

* 민족통일을 위한 설계 - 김낙중 1988

[알라딘]민족통일을 위한 설계
민족통일을 위한 설계 - 통일 독립 청년 고려공동체 수립안
김낙중 (지은이) | 고려서원 | 1988-09-15






김낙중 <민족통일을 위한 설계> 요약 및 평론

1. 책의 개요 및 시대적 배경

<민족통일을 위한 설계: 통일 독립 청년 고려공동체 수립안>(1988, 형성사)은 평화통일운동가 김낙중이 1987년 6월 항쟁 이후 격동하는 정치적 정세 속에서 구상하여 집대성한 체계적인 통일 이론서이다. 1980년대 후반은 노태우 정부의 7·7 선언과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 그리고 재야 및 학생운동권의 통일 논의가 폭발하던 시기였다.

김낙중은 청년 시절인 1950년대부터 간직해 온 평화통일 소신을 바탕으로, 냉전 해체기라는 시대적 전환점에 맞춰 현실적이고 실천 가능한 단계적 통일 방안을 제시하였다. 이 책은 남북의 체제 대립을 극복하고 하나의 공존 체제를 이루기 위한 구체적인 제도적·정치적 설계를 담고 있다.

2. 주요 내용 요약
점진적·단계적 통일 로드맵

김낙중은 흡수통일이나 급진적 연방제 모두 남북 간의 군사적 충돌이나 사회적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가 제안한 핵심은 단계적 통일론이다.

1단계: 남북 간 군축과 미군 철수를 바탕으로 한 상호 신뢰 구축 및 평화협정 체결.


2단계: 남북의 서로 다른 사회·경제 체제를 인정하는 연합/연방 형태의 중간 단계 형성.


3단계: 완전한 단일 중립국가 수립.

<통일 독립 청년 고려공동체> 구상

책의 핵심 제안인 '고려공동체'는 과도기적 연합 체제를 의미한다. 남북이 당장 서로의 체제를 부정하거나 강요하지 않으면서, 과도기적 통합 기구인 '남북공동의회' 및 '정치협의회'를 구성하여 단계적으로 국가적 기능을 통합해 나가는 모델이다. 여기서 '청년'과 '독립'이라는 수식어는 강대국의 외세 간섭에서 벗어난 주체적 중립국가이자,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폐해를 극복한 새로운 차원의 공동체를 지향함을 뜻한다.

영세중립화와 군축

김낙중은 한반도 통일의 필수 조건으로 한반도 영세중립화를 제시했다. 강대국 사이의 지리적 요충지에 위치한 한반도가 특정 외세의 영향권에 들지 않고 국제적 중립을 선언함으로써 동북아 평화의 거점이 되어야 한다는 취지다. 이를 위해 단계적인 남북 군축과 한미상호방위조약 폐기,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했다.

3. 평론: 관념적 평화론을 넘어선 제도적 통일론의 정수

이상주의와 현실적 제도의 결합

이 책은 김낙중의 이전 회고록이나 사상적 수기들과 비교할 때 가장 정책적이고 제도적인 성격이 강한 노작이다. 그가 젊은 시절 주장했던 '절대적 평화론'이 1950년대에는 무모한 단신 월북이라는 행위로 표출되었다면, 1988년의 이 저술에서는 정밀한 정치적 논리와 공존의 방정식으로 체화되었다. 남북이 당장 체제를 통합할 수 없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과도기적 연합 형태인 '공동체'를 매개로 설정한 점은 매우 유연하고 현실적인 통찰이었다.

시대적 선구성과 한계

김낙중이 제시한 단계적 통일론과 연합체 구상은 훗날 노태우 정부의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1989년)이나 김대중 정부의 '남북연합' 구상 등 관변 및 민간의 통일 논의에 직간접적으로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여전히 강대국 중심의 냉전적 국제 질서와 남북 한반도 위정자들의 기득권 정치를 지나치게 당위적인 평화론으로 설득할 수 있다고 믿은 점은 한계로 지적된다. 군축과 주한미군 철수라는 전제 조건은 당시 남한의 보수 기득권층에게 '주사파/좌경'이라는 공세를 받는 빌미가 되었으며, 실제로 그는 1992년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으로 또다시 구속되는 비극을 맞이하게 된다.

'영세중립론'의 현대적 의의

김낙중의 고려공동체 수립안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영세중립화 구상이다. 미·중 패권 갈등이 심화되는 21세기 동북아 정세 속에서, 한반도가 어느 한쪽의 군사적 동맹 기지로 유입되는 것을 막고 거점적 중립 지대를 형성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전략적 시사점을 던진다.

4. 결론

<민족통일을 위한 설계>는 1950년대 한국전쟁의 참화 속에서 싹튼 한 지식인의 평화 열망이 30여 년의 수난을 거쳐 어떻게 성숙한 정치적 대안으로 완성되었는가를 보여주는 증거이다. 분단의 벽이 여전히 견고한 오늘날에도, 이 책에 담긴 '체제 공존', '단계적 통합', '영세중립화'의 가치는 한반도의 평화를 다루는 논의에서 결코 빠뜨릴 수 없는 사상적 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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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낙중, <민족통일을 위한 설계: 통일독립청년 고려공동체 수립안>(1988) — 1,000단어 요약·평론

김낙중의 <민족통일을 위한 설계>는 1988년 고려서당에서 출간된 284쪽 분량의 통일론이다. 서명에는 <통일독립청년 고려공동체 수립안>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이 책의 특이한 점은 1980년대에 새로 만들어진 통일방안이 아니라, 기본 발상이 <한국전쟁 직후인 1954~55년 20대의 김낙중이 만들었던 구상>에서 시작되었다는 데 있다. 그는 당시 약 30개 조항의 기본조약과 8개 부속협정으로 구성된 수립안을 작성했고, 이것을 남북 양쪽에 전달하려고 했다.

따라서 이 책은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가진다.

하나는 <구체적인 통일제도 설계안>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전쟁을 직접 겪은 한 청년이 “남북 어느 쪽의 승리도 아닌 제3의 길”을 찾아보려 했던 사상적 기록이다.
 
1. 출발점은 “누가 이길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다시 전쟁하지 않을 것인가”

김낙중 통일론의 출발점을 이해하려면 한국전쟁 경험을 먼저 보아야 한다.

1950년 전쟁이 일어났을 때 그는 청년기에 접어들어 있었다. 인민군의 의용군 동원을 피하면서 전쟁 부상자와 사망자들을 가까이에서 보았고, 같은 또래 청년들이 계속 죽어나가는 광경에 충격을 받았다. 그는 훗날 사회학을 공부하게 된 이유도 “사회란 무엇이기에 사람들에게 서로 죽으라고 하는가”라는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서였다고 회고했다.

그에게 당시 남북한의 공식 통일론은 모두 만족스럽지 않았다.

남한의 이승만 정부는 <북진통일>을 주장했고, 북한 역시 자기 체제를 중심으로 한 통일을 추구했다.

김낙중에게 이것은 결국

<남쪽이 북쪽을 없애느냐>
또는
<북쪽이 남쪽을 없애느냐>

라는 두 가지 선택일 뿐이었다.

그는 이 전제 자체를 거부했다.

<남과 북이 일단 서로 존재할 권리를 인정한 상태에서, 양쪽 바깥에 새로운 공동공간을 만들 수 없을까?>

여기에서 <통일독립청년 고려공동체>라는 매우 독특한 아이디어가 나온다.
 
2. 가장 핵심적인 발상 — 남북한을 당장 없애지 않는다

김낙중의 구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남북한 정부의 즉각적인 해체를 요구하지 않는 것>이다.

이는 당시로서는 상당히 파격적이었다.

남북 양쪽의 정권이 서로 상대방을 불법적인 존재라고 주장하는 상황에서 김낙중은 현실적으로 두 체제가 이미 존재하고 있음을 인정한다.

그 다음 단계로

<남한 + 북한 + 새로운 공동체>

라는 일종의 삼중구조를 만든다.

그가 구상한 새로운 조직이 바로

<통일독립청년 고려공동체>

였다.

공개되어 있는 수립안 해설에 따르면, 남북은 각자의 통치권을 우선 유지한다. 그리고 비무장지대에 남북 어느 한 정부에도 종속되지 않는 <초국가적 청년공동체>를 만든다. 이후 남북이 점차적으로 권한과 주권을 이 공동체에 넘겨줌으로써 최종적인 통일국가를 만든다는 구상이었다.

따라서 김낙중의 통일은

<흡수통일>도 아니고
<혁명통일>도 아니며
<즉각적인 단일정부 수립>도 아니다.

<점진적인 주권통합>이다.

이 점에서 상당히 현대적인 발상이다.
 
3. 왜 ‘청년’인가

이 구상에서 가장 독특하면서 동시에 가장 이상주의적인 부분은 <청년>이다.

김낙중은 구체적으로 청년을

<1950년 6월 25일 현재 만 20세 미만인 사람과 그 이후 출생자>

로 규정했다고 전해진다.

왜 이런 기준을 세웠을까?

논리는 분명하다.

분단과 전쟁을 직접 만들어낸 세대에게 통일을 맡기지 말고, 그 갈등에 대한 정치적 책임이 없는 새로운 세대에게 통일을 맡기자는 것이다.

즉,

<기성세대 = 분단의 주체>
<청년세대 = 통일의 주체>

라는 세대론이다.

오늘날 보면 지나친 단순화이다.

청년이라고 이념적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운 것도 아니며, 나이가 젊다고 남북 간의 적대감에서 자동적으로 벗어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지 불과 몇 년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에 이런 발상을 했다는 것은 상당히 흥미롭다.

김낙중에게 통일은 단순한 영토 결합이 아니라

<분단을 만들어낸 정치세대에서 벗어나는 세대교체>

이기도 했다.
 
4. DMZ를 ‘전쟁의 경계’에서 ‘통일의 실험장’으로

두 번째 독창적인 부분은 공간이다.

김낙중은 비무장지대와 판문점 부근 약 1,000㎢ 지역을 청년공동체의 기반으로 삼으려 했다.

이 발상은 매우 상징적이다.

DMZ는 원래

<남과 북을 가장 철저하게 갈라놓는 공간>

이다.

그런데 김낙중은 바로 그곳을

<남과 북이 처음으로 함께 살아보는 공간>

으로 뒤집으려고 한다.



전쟁의 산물 → 평화의 실험장
경계선 → 공동공간
군사지역 → 통일공동체

로 전환시키려는 것이다.

이 아이디어는 이후 수십 년 동안 계속 제기된 <DMZ 평화지대>, <남북공동특구>, <평화생태공원> 등의 발상과 놀랄 정도로 닮아 있다.

물론 김낙중의 아이디어가 후대 정책의 직접적인 원천이었다고 말할 근거는 없다.

그러나 문제를 바라보는 방식 자체는 상당히 앞서 있었다고 평가할 만하다.
 
5. 통일은 사건이 아니라 과정이다

김낙중 수립안의 또 다른 특징은 <시간>이다.

그는 공동체가 점차 남북의 주권을 넘겨받아 약 <15년 안에 통일>하는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변화다.

당시 통일 담론은 흔히

<어느 날 통일정부가 수립된다>

는 식으로 생각했다.

김낙중은 반대로 통일을 <과정>으로 본다.

즉,
남북의 현존 체제를 인정하고
중간 공동체를 만들고
함께 생활하고 운영하는 경험을 축적하고
점진적으로 권한을 이전하고
최종적으로 통일국가에 도달한다.

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대한민국 정부가 1989년에 내놓은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 그리고 이를 발전시킨 현재의 <민족공동체통일방안>도 화해·협력 → 중간단계 → 통일국가라는 점진적인 접근법을 택한다. 통일부 역시 현재 공식 방안의 핵심을 “화해협력을 통해 신뢰를 쌓고 평화를 정착시킨 뒤 통일을 추구하는 점진적·단계적 방식”이라고 설명한다.

물론 두 방안이 동일하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1950년대 김낙중의 <단계적 공동체 통일>이라는 사고가 당시의 북진통일론과 비교하면 얼마나 이례적이었는지는 분명하다.
 
6. ‘고려’라는 이름도 중요하다

김낙중은 왜 ‘대한공동체’도 ‘조선공동체’도 아닌 <고려공동체>라고 했을까?

이 명칭 자체가 남북 어느 쪽도 선택하지 않겠다는 의도를 보여준다.

남한의 ‘대한민국’이나 북한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가운데 하나를 통일국가의 이름으로 채택하면 처음부터 어느 한쪽이 승자가 된다.

‘고려’는 그 이전의 공동 역사에서 가져온 이름이다.

따라서 <고려>라는 명칭은

<남한도 북한도 아닌 제3의 공동 민족정체성>

을 만드는 장치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는 김낙중 통일론 전체의 논리와 일관된다.

<누가 누구에게 흡수되는가>가 아니라

<남과 북이 함께 제3의 것을 만드는가>

가 핵심이다.
 
7. 이 통일론의 가장 큰 장점

내가 보기에 이 책에서 오늘날까지 살아남는 통찰은 세 가지다.

첫째, <상대방 체제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는 평화통일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1950년대에는 이것 자체가 거의 이단적인 생각이었다.

둘째, <통일 이전에 공동생활의 경험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법적으로 한 나라를 만든다고 서로 다른 사회가 갑자기 하나가 되는 것은 아니다.

김낙중은 공동지역에서 실제로 함께 생활하고 일하며 제도를 만들어보는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셋째, <통일의 주체가 국가권력만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남북 정부가 통일을 독점하면 결국 체제경쟁이 되므로, 민간사회와 새로운 세대가 독립된 통일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것은 지금도 충분히 토론할 가치가 있는 문제다.
 
8.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매우 심각한 문제가 있다

반대로 김낙중의 설계에는 큰 약점이 있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남북 정부가 왜 자기 주권을 청년공동체에 넘겨줄 것인가?>

이다.

이 질문에 대한 현실적 답이 부족하다.

국가는 가장 강력하게 자기 주권을 지키는 조직이다.

특히 1950년대 남북한처럼 전쟁을 막 끝내고 체제생존을 최우선으로 하는 국가가 젊은이들이 만든 초국가적 공동체에 영토와 통치권을 점차 넘겨준다는 것은 정치적으로 거의 상상하기 어렵다.

두 번째 문제는 <청년의 이상화>이다.

청년을 기성세대의 정치적 죄에서 자유로운 존재로 보는 것은 도덕적으로 매력적이지만 사회학적으로 지나치게 낙관적이다.

청년도 교육·가족·국가·이념의 영향을 받는다.

세 번째로 주변 강대국 문제가 상대적으로 약하다.

한반도의 분단은 남북한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미국, 중국, 소련, 일본이 얽혀 있었다.

남북의 청년들이 합의한다고 해서 국제정치가 자동적으로 따라오는 것은 아니다.

바로 이 점에서 김낙중은 <평화사상가>로서는 독창적이지만 <국제정치 현실주의자>로서는 약하다.
9. 그래도 ‘돈키호테의 공상’으로 버리기는 어렵다

김낙중의 친구 남재희가 그를 ‘돈키호테’에 비유한 것은 상당히 정확하다. 당시 그의 행동과 구상은 현실 정치의 관점에서는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실제로 남한에서는 정신이상자로 취급되었고, 그의 방안을 북한에 직접 설명해보겠다며 1955년 임진강을 건너가자 북한에서도 남한 간첩으로 의심받았다.

그럼에도 이 책을 ‘청년의 공상’으로만 치부하기 어려운 이유가 있다.

그가 제기한 핵심 질문들은 이후 한국 통일론이 수십 년 동안 고민하게 된 문제와 놀랍도록 비슷하기 때문이다.

<상호체제 인정>
<단계적 통일>
<남북 공동체>
<DMZ의 평화적 이용>
<민간과 새로운 세대의 참여>
<흡수통일이 아닌 공동체 형성>

이 모두가 이후 통일논의의 중요한 주제가 되었다.

즉 구체적인 제도설계는 비현실적이었지만 <문제를 설정하는 방식>은 상당히 선구적이었다.
종합평가

<민족통일을 위한 설계>를 오늘 읽으면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김낙중이 통일을 <승리>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국 현대사의 통일담론 상당 부분에는 승패의 논리가 있었다.

<우리가 이겨서 저쪽을 없애야 한다.>

김낙중은 그 질문을 바꾸었다.

<서로 없애지 않고 함께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는가?>

그래서 그의 통일안의 핵심은 사실 <통일독립청년>보다 <공동체>라는 단어에 있다고 생각한다.

국가를 먼저 하나로 만들고 국민을 통합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만들고, 그 공동체가 점차 국가를 만들어간다.>

는 사고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국가 중심의 통일론과 상당히 다른 접근이다.

그러나 동시에 가장 큰 약점도 정확히 여기에 있다. 공동체가 국가권력을 넘어설 수 있다고 너무 쉽게 믿는다. 국가·군대·이념·국제질서의 힘에 대한 현실적인 분석이 충분하지 않다.

따라서 김낙중의 설계를 그대로 오늘의 정책으로 사용할 수는 없다.

하지만 <굽이치는 임진강>과 <탐루>를 함께 읽은 뒤 이 책을 읽으면 김낙중이라는 사람이 훨씬 선명해진다.

<굽이치는 임진강>은 “왜 그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가”를 보여주고,

<민족통일을 위한 설계>는 “그 생각을 어떤 제도로 만들려고 했는가”를 보여주며,

<탐루>는 “그 생각을 평생 붙잡고 산 결과 자신과 가족은 어떤 대가를 치렀는가”를 보여준다.

이 세 권을 합쳐 놓으면 김낙중은 단순한 ‘통일운동가’가 아니다.

<한국전쟁의 참혹함에서 출발하여, 남도 북도 아닌 제3의 공동공간을 평생 상상했던 급진적 평화주의자>라고 평가하는 것이 가장 정확해 보인다.

그리고 그 구상은 현실적으로는 지나치게 이상주의적이었지만, <상대를 제거하지 않는 통일>이라는 원칙만큼은 한국 현대사의 통일사상 가운데 상당히 일찍 등장한 중요한 문제제기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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