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좌파의 길 - 식인 자본주의에 반대한다 | 서해문집 사회과학 시리즈
낸시 프레이저 (지은이),장석준 (옮긴이)
서해문집2023-04-10
원제 : Cannibal Capitalism: How our System is Devouring Democracy, Care, and the Planet and What We Can Do About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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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파일 형식 : ePub(9.56 MB)
TTS 여부 : 지원
종이책 페이지수 : 336쪽, 약 21.3만자, 약 5.1만 단어
가능 기기 : 크레마 그랑데, 크레마 사운드, 크레마 카르타, PC, 아이폰, 아이패드, 안드로이드 폰/탭, 크레마 샤인
ISBN : 97911929880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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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의 선택
"낸시 프레이저가 말하는 식인 자본주의"
낸시 프레이저는 책을 이렇게 연다. "이 책을 읽는 이들에게 굳이 지금이 혼란기라고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독자들은 난마처럼 서로 얽힌 미래의 위협과 현재의 참사에 이미 익숙해져 있으며, 실은 이로 인해 이미 요동치고 있다." 사회의 모든 영역이 서로 발 묶여 붕괴되는 듯 보이는 현재에 굳이 낸시 프레이저의 책을 집어 든 이유는 지금 이 결과적 사태에 대한 원인을 정확하고도 새로운 언어로 듣고 싶어서일 것이다.
지금의 혼돈을 총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그는 확장된 자본주의관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이 책에서 그는 자본주의를 (경제 시스템에 한정 짓지 않고) 사회의 한 유형으로 인식하며 자본주의가 먹어치우는 것들을 살핀다. 자본주의는 자본주의가 기능하도록 하는 조건적 토대조차 집어삼키는데, 이런 특성을 바탕으로 낸시 프레이저는 현재의 자본주의를 '식인 자본주의'라 명명한다. 식인 자본주의의 비정상적 파괴 본능, 자본주의가 도살하는 체제와 환경 등을 살피며 책은 우리가 실질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대안까지 나아간다.
동시대 가장 독창적인 사상가라 불리는 낸시 프레이저의 이론답게 도발적인 워딩과 새로운 관점으로 가득하다. 힘 있는 문장들은 암울한 시대의 복잡한 진실을 명료하게 풀어 놓는다. 현 시대의 연쇄적 위기는 그의 포괄적이고 총체적인 접근으로만 이해되는 부분이 있다. 여성학자 정희진이 "우리는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가에 대한 '답'을 원한다면 이 책을 권한다."며 추천했다.
- 인문 MD 김경영 (2023.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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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동시대 가장 독창적인 사회철학자, 낸시 프레이저의 역작! 암울한 우리 시대의 ‘가장 우아한 자본주의론’이라 평가받는 이 책은 한 마르크스주의 노학자가 생애 말년에 뜨거운 마음으로 써 내려간, ‘좌파의 길’에 대한 절절한 모색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저자는 오늘날 교착 상태에 빠진 정치 위기와 숱한 사회운동의 혼돈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통적인 고전 마르크스주의 자본주의관에서 벗어나, 자본주의를 새롭게 해석하는 ‘확장된 자본주의관’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그리고 이를 ‘식인 자본주의’라 명명하면서, 그에 맞서는 이론적․정치적 기획을 한 권의 완성체로 묶어 선보인다.
목차
감사의 글
서문 _ ‘식인’이라는 은유
1장 걸신들린 짐승: ‘자본주의’의 재인식
- 왜 우리의 자본주의관을 확장해야 하는가
다시, 자본주의란 무엇인가
마르크스의 ‘감춰진 장소’ 이면의 또 다른 장소들
하나, 상품 생산에서 사회적 재생산으로
둘, 경제에서 생태로
셋, 경제적인 것에서 정치적인 것으로
넷, 착취에서 수탈로
자본주의는 ‘경제’ 그 이상이다
경계투쟁, 새로운 비판이론을 위하여
제 살 깎아먹기의 위기
2장 수탈 탐식가: 착취와 수탈의 새로운 얽힘
- 왜 자본주의는 구조적으로 제국주의적-인종주의적인가
교환, 착취, 수탈
축적으로서 수탈: 경제적 논의
예속으로서 수탈: 정치적 논의
인종화된 축적의 역사적 체제들
자본주의는 여전히 필연적으로 인종주의적인가?
3장 돌봄 폭식가: 생산과 재생산, 젠더화된 위기
- 왜 사회적 재생산이 자본주의 위기의 중심 무대인가
생활세계에 무임승차하기
자본주의 돌봄 폭식증의 역사적 발작
식민화와 가정주부화
포드주의와 가족임금
맞벌이 가구, ‘진보적 신자유주의’의 탄생
또 다른 자본주의인가, 새로운 사회주의 페미니즘인가?
4장 꿀꺽 삼켜진 자연: 수탈․돌봄․정치와 얽혀 있는 생태 위기
- 왜 생태정치는 환경을 넘어 자본주의에 맞서야 하는가
자본주의의 생태적 모순: 수도꼭지와 하수구로 전락한 자연
서로 얽힌 모순들
‘자연’을 말하는 세 가지 방식
사회생태적 축적의 역사적 체제들
동물의 근력
석탄왕
자동차 시대
새로운 인클로저, 금융화된 자연, 그리고 ‘녹색자본주의’
시공간 속에서 자연을 통해 제 살 깎아먹기
서로 얽힌 투쟁들
환경을 넘어서는 반자본주의적 생태정치를 향해
5장 도살당하는 민주주의: 정치와 경제의 분할
- 왜 정치 위기는 자본에게 붉은 살코기인가
자본주의 ‘그 자체’의 정치적 모순
국가, 공공재, 공적 권력
자본주의 역사 속의 정치 위기들
글로벌 금융, 부채, 그리고 이중의 고통
정치적 교착 상태, 비상한 역사의 갈림길
6장 진정한 대안의 이름으로: ‘사회주의’의 재발명
- 21세기에 사회주의는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그래서 다시, 자본주의란 정확히 무엇인가
자본주의에서 도대체 무엇이 잘못됐는가
21세기를 위한 새로운 사회주의
에필로그 _ 팬데믹, 식인 자본주의의 광란의 파티
옮긴이 후기
주
접기
책속에서
P. 20 현 위기를 발생시킨 책임은 ‘식인 자본주의’ 시스템에 있다. 현재의 위기는 다양한 폭식증의 발작이 한데 모인 예외적 유형의 위기다. 수십 년에 걸친 금융화로 인해 지금 우리가 직면한 위기는, ‘단지’ 극단적인 불평등이나 저임금 불안정 노동의 위기만이 아니다. ‘단지’ 돌봄이나 사회적 재생산의 위기만도 아니고, 이민과 인종화된 폭력의 위기만도 아니다. 또한 뜨거워진 지구가 치명적 전염병을 토해내는 ‘단순한’ 생태적 위기만도 아니고, 무너져가는 인프라와 군사주의 증대, 독재자의 만연을 특징으로 하는 ‘오로지’ 정치적인 위기만도 아니다. 아니, 이 위기는 ‘더 나쁜 무엇’이다. 이 모든 재난이 한데 모여 서로를 악화시키며 우리를 집어삼키겠다고 위협하는, 사회 질서 전체의 전반적 위기다. 이 책은 이렇게 거대하게 서로 얽혀 있는 기능 장애와 지배의 지도를 그린다. 접기
P. 104 그리하여 현 체제에서 우리는 착취와 수탈의 새로운 얽힘, 그리고 정치적 주체화의 새로운 논리와 만난다. 종속적 피수탈 예속민과 자유로운 피착취 노동자를 확연히 가르던 과거의 분할 대신에 연속체가 등장한다. 한쪽 끝에서는 무방비 상태의 피수탈 주체의 무리가 증가하는 반면에, 다른 쪽 끝에서는 착취‘만’ 당하는 주체인 보호받는 시민-노동자 계층이 감소한다. 그리고 그 중간에는 새로운 등장인물, 즉 수탈과 착취를 동시에 당하는 시민-노동자가 자리한다. 형식적으로는 자유롭지만 너무도 취약한 상태인 이 새 등장인물은 더 이상 주변부 주민이나 인종적 소수집단에 한정되지 않는 표준적 존재가 된다. 접기
P. 141~142 이 두 투쟁 쌍의 충돌에서 충격적인 결과가 나타났다. ‘다양성’, 능력주의, ‘해방’을 칭송하면서 동시에 사회보호를 해체하고 사회적 재생산을 다시 외부화하는 진보적 신자유주의가 그것이었다. (…) 이 과정에 해방운동들이 동참했다. 반인종주의, 다문화주의, LGBTQ 해방, 환경주의를 비롯한 모든 운동이 친시장적인 신자유주의 조류들을 세상에 낳아 퍼뜨렸다. 그러나 자본주의에서 오랫동안 지속된 젠더와 사회적 재생산의 얽힘을 감안하면, 가장 치명적인 것은 페미니즘의 궤적이었다. (…) 여성은 모든 영역에서 남성과 평등하며, 재능을 실현할 기회를 균등하게 보장받아야 하고, 그런 영역 중에는 생산 영역도, 아니 생산 영역이야말로 포함되어야 한다고 전제된다. 반면에 재생산은 후진적인 잔여 영역이자, 해방으로 나아가는 길에서 어떻게든 치워야 할 진보의 장애물로 나타난다. 접기
P. 142 금융화된 자본주의는 공적 지원을 축소하고 여성을 유급 일자리로 충원할 뿐만 아니라 실질임금을 낮췄고, 이로써 가족을 지탱하려면 각 가정마다 유급 노동에 보내는 시간을 늘리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이는 돌봄 활동을 타인에게 맡기려는 필사적인 쟁탈전을 부채질했다. 이 돌봄 간극을 해소하기 위해 현 체제는 가난한 나라에서 부유한 나라로 이주 노동자를 수입했다. (…)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이주민이 자신의 가족․공동체 책무를 다른 이에게, 더 가난한 돌봄 제공자에게 떠넘겨야 하며, 그러면 이 돌봄 제공자 역시 같은 선택을 해야 하고, 이는 꼬리에 꼬리를 물어 결국 유례없는 전 지구적 ‘돌봄 사슬’이 등장하게 된다. 접기
P. 143~144 미국에서 최근 전개된 두 양상이 상황의 심각성을 잘 보여준다. 첫째는 난자 동결의 인기가 급증하는 현상이다. 난자 동결은 보통 1만 달러가 소요되는 값비싼 시술이지만, 이제는 고학력․고임금 여성 피고용자의 부가급여로서 IT 기업들에 의해 무료로 제공된다. 이 노동자들을 유치해 계속 고용하고 싶어 하는 애플, 페이스북 같은 회사들은 실제로 다음과 같이 말하며 출산을 연기할 강력한 유인책을 제공한다. “기다렸다가 40대, 50대, 아니 60대에 아이를 가지세요. 여러분의 강력한 에너지, 생산적 시기를 회사에 바치세요.”
두 번째 현상 역시 이와 마찬가지로 생산과 재생산 간 모순의 징후를 드러낸다. 모유를 짜내는 값비싼 첨단 유축기의 확산이 그것이다. (…) ‘모유 수유’는 더 이상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일이 아니라, 기계를 사용해 모유를 짜서 보관해놓았다가 나중에 육아도우미를 시켜 젖병으로 먹이는 일이 되었다. 심각한 시간 빈곤 상황에서 더블컵에 완전 자동인 유축기는 가장 바람직한 해법으로 여겨지는데, 예를 들면 이 기구 덕분에 고속도로에서 차를 운전하면서도 양쪽 가슴에서 모유를 짤 수 있다. 접기
P. 154 한마디로, 도처에 생태정치가 등장했다. 기후변화는 더 이상 환경운동만의 고립된 배타적 소유물이 아니며, 이제는 모든 정치적 주체가 입장을 표명해야 하는 긴급한 사안인 것만 같다. 경쟁하는 숱한 의제들에 포함된 이 주제는 이와 한 쌍을 이루는 대의가 무엇인지에 따라 다양하게 굴절된다. 그 결과는 표면적인 합의 이면의 떠들썩한 의견 불일치다. 한편에서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지구 온난화를 지구 위 뭇 생명에 대한 위협으로 바라본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들은 이러한 각성 과정을 추동하는 사회 세력들의 공통 시각을 공유하지는 않으며, 지구 온난화를 중단시키기 위해 필요한 사회 변화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과학의 측면에서는 (어느 정도) 의견이 같지만, 정치의 측면에서는 (상당한 정도로) 다른 것이다. 접기
P. 166~167 자본주의 사회는 생산을 조직하는 임무를 ‘자본’에, 아니 더 정확히 말해 자본 축적에 헌신하는 이들에게 맡긴다. 원자재를 추출하고, 에너지를 발생시키며, 토지 사용을 결정하고, 식량 시스템을 운영하며, 자연에서 신약 후보 물질을 찾아내고, 폐기물을 처리하는 등의 독점적 권한이 자본주의 시스템에 의해 자본가 계급에게 부여된다. 사실상 공기, 물, 흙, 광물, 식물군과 동물군, 숲, 대양, 대기, 기후 등 지구 위 뭇 생명의 기본 조건 일체를 마음대로 통제할 권한이 양도되는 것이다. (…) 물론 정부가 사후에 피해를 줄이기 위해 개입할 때도 있지만, 항상 뒤늦게 만회하는 식으로 소유주의 특권을 침해하지 않으며 대응한다. 정부는 늘 온실가스 배출자보다 한 발자국 뒤에 있기 때문에 환경 규제는 대기업의 회피 수단에 의해 쉽게 무력화된다. (…) 이렇듯 지구 온난화를 야기한 것은 인류 전체가 아니라 바로 이들 자본가들이며, 이는 우연이나 단순한 탐욕의 결과가 아니다. 접기
P. 242~243 금융화된 자본주의는 전반적으로 ‘정부 없는 거버넌스’의 시대, 달리 말해 ‘동의’라는 체면치레조차 내팽개친 지배의 시대다. 이 체제에서는 전 세계에 걸쳐 사회적 상호작용의 막대한 부분을 다스리는 강압적 규칙의 알짜를 만드는 것이 국가가 아니다. 대신 유럽연합, 세계무역기구, NAFTA, TRIPS 같은 초국적 거버넌스 구조가 이를 대체한다. 누구에게도 책임지지 않으며, 압도적으로 자본의 이익을 위해 활동하는 이 기구들은 ‘자유무역’과 ‘지적재산권’ 같은 신자유주의적 관념들을 ‘헌법으로 제정’하고, 이를 글로벌 체제로 고정시킨다. 이로써 장래에 있을지 모르는 민주적 노동․환경 입법을 미연에 방지하고 있다. 결국 이 체제는 다양한 수단을 통해 사적 (대기업) 권력이 공적 권력을 포로로 만들도록 도우며, 또한 국내에서 공적 권력을 식민화하고 사기업의 작동 방식을 본떠 공적 권력의 작동 방식을 짠다. 접기
P. 252~253 그리고 이것이 바로 주류 진보 저항 세력이 실패한 대목이다. ‘저항 세력’의 지배적 흐름은 장막 뒤 권력의 가면을 벗기기는커녕 오랫동안 이 권력과 얽혀 있었다. 페미니즘, 반인종주의, LGBTQ+ 권리 운동, 환경주의 같은 대중적 사회운동의 ‘자유주의-능력주의’적 흐름이 그 사례였다. 이들은 자유주의의 헤게모니 아래에서 활동하며 오랫동안 진보적-신자유주의적 블록의 하위 파트너 노릇을 했는데, 이 블록에는 글로벌 자본의 ‘미래지향적’ 부문(IT, 금융, 미디어, 연예)도 가담하고 있었다. 결국 진보파 역시, (비록 방식은 달랐지만) 간판스타 구실을 했다. 신자유주의의 약탈적 정치경제를 해방의 매혹적 분위기로 화장해주면서 말이다. 접기
P. 253 더 나아가 페미니즘이나 반인종주의 등을 신자유주의와 결부시킴으로써, 마침내 댐이 무너졌을 때 인민대중이 신자유주의뿐만 아니라 페미니즘이나 반인종주의 등까지 거부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이것이 (적어도 지금까지는) 반동적 우익 포퓰리즘이 이 상황의 주된 수혜자가 된 이유다. 또한 이것이 현재 우리가 정치적 교착 상태에 빠진 이유이기도 하다. 권력은 떼돈을 벌어들여 장막 뒤에서 웃음을 그치지 않는데도, 우리는 반동파와 진보파가 각기 양쪽에서 간판스타 노릇을 하며 경쟁하는 싸움에, 사람들의 주의를 딴 데로 돌리기 위해 짜고 치는 그 싸움에만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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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낸시 프레이저 (Nancy Fraser)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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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정치철학자, 사회이론가. 뉴욕 뉴스쿨의 철학․정치사회이론 담당 교수로 있다. 독일 비판이론의 영향을 크게 받은 프레이저는 위르겐 하버마스의 공론장 이론을 계급과 젠더의 시각에서 비판적으로 재구성하는 작업을 펼쳤다. 국제적으로 그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된 첫 번째 계기는 신자유주의가 확고한 지배 이념으로 자리 잡은 1990년대에 착수한 ‘정의’론 작업이었다. 그는 ‘분배’에만 초점을 맞추는 존 롤스식 정의론의 한계를 인정하면서, 1970년대 이후 급속히 발전한 여성운동, 흑인운동, 성소수자운동 등이 제기하는 또 다른 정의관, 즉 문화적 정체성의 ‘인정’을 중심에 둔 정의관을 적극 수용해 이 둘의 공존과 상호작용을 중심에 두는 새로운 정의론을 제시했다. 이러한 그의 정의론은 악셀 호네트와 벌인 논쟁의 기록 《분배냐, 인정이냐?》에 잘 나타나 있다.
이후 프레이저의 정치사회이론은 부단히 진화했다. 그는 정의의 또 다른 축으로서, 분배와 인정의 측면에서 불의를 시정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치적 ‘대표’의 측면에서 만인의 동등한 참여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삼차원적 정의론을 발전시켰다. 또한 지구화 시대에 정치가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국민국가의 경계를 넘어서는 초국적인 공론장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구화 시대의 정의》는 그의 이러한 정의론 작업을 결산한 저작이다.
경제 위기와 극우 포퓰리즘의 창궐, 기후 급변 등으로 어지러웠던 2010년대에 프레이저는 이제까지의 이론적 토대 위에서 다른 어떤 사회이론가보다 더 맹렬히 현실에 개입하면서, 신자유주의 이후의 대안을 찾는 많은 이들에게 용기와 영감을 주었다. 그는 정체성 정치만 강조하며 분배 요구를 등한시한 사회운동들을 비판했고, 최근 극우 포퓰리즘이 상당수 대중에게 대안으로 선택받는 근본 원인이 여기에 있음을 통렬히 지적했다. 특히 페미니즘의 대중적 확산에도 불구하고 힐러리 클린턴에 대한 ‘비판적 지지’ 식의 낡은 틀에 갇혀 있는 여성운동을 향해 자기 성찰과 노선 전환을 촉구했다. 그 결실이 《전진하는 페미니즘》 《99% 페미니즘 선언》(공저) 같은 저작들이다.
또한 그는 무엇보다도 사회운동과 좌파정치 전반이 환골탈태해야 함을 역설했다. 2020년 미국 대선 직전에 펴낸 팸플릿 《낡은 것은 가고 새것은 아직 오지 않은》에서 그는, ‘진보적 신자유주의’는 극우 포퓰리즘이 발호하도록 만든 원흉이기에 결코 대안이 될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즉, 극우 포퓰리즘에 맞설 수 있는 것은 오직 노동계급과 중간계급의 동맹에 바탕을 둔 ‘진보적 포퓰리즘’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노동운동, 여성운동, 생태운동, 흑인운동 등이 굳건한 동맹을 발전시켜야 할 근거를 ‘자본주의’라는 토대 자체에서 찾아내려 한다. 다만, 이 ‘자본주의’는 더 이상 고전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이야기하던 그 ‘자본주의’와 같지 않다. 자본-임금노동 관계만으로 환원되지 않는, 더 복잡한 제도적 실체인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책 《좌파의 길: 식인 자본주의에 반대한다》에서 드디어 프레이저의 새로운 자본주의관은 그 전모를 드러낸다. 접기
최근작 : <좌파의 길>,<낡은 것은 가고 새것은 아직 오지 않은>,<99% 페미니즘 선언> … 총 127종 (모두보기)
장석준 (옮긴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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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연구공동체 산현재 기획위원. 전 정의정책연구소 소장. 저서『세계 진보정당운동사』, 『사회주의』, 『신자유주의의 탄생』등. 역서『길드 사회주의』, 『G. D. H. 콜의 산업민주주의』, 『좌파의 길』등.
최근작 : <문화과학 120호 - 2024.겨울>,<서울리뷰오브북스 13호>,<2023 초등 4학년 필독 세트 - 전5권> … 총 57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동시대 가장 독창적인 사회철학자
낸시 프레이저의 뜨거운 제안—
암울한 우리 시대의 가장 우아한 자본주의론이자,
고전의 반열에 오를 단 하나의 명저
★
정희진 추천!
“흐느끼며 일상을 견디는 이들에게 당도한 희망의 목소리.
우리는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가에 대한 ‘답’을 원한다면 이 책을 권한다”
동시대 가장 독창적인 사회철학자, 낸시 프레이저의 역작! 암울한 우리 시대의 ‘가장 우아한 자본주의론’이라 평가받는 이 책은 한 마르크스주의 노학자가 생애 말년에 뜨거운 마음으로 써 내려간, ‘좌파의 길’에 대한 절절한 모색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저자는 오늘날 교착 상태에 빠진 정치 위기와 숱한 사회운동의 혼돈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통적인 고전 마르크스주의 자본주의관에서 벗어나, 자본주의를 새롭게 해석하는 ‘확장된 자본주의관’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그리고 이를 ‘식인 자본주의’라 명명하면서, 그에 맞서는 이론적․정치적 기획을 한 권의 완성체로 묶어 선보인다.
기존의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는 자본주의를 하나의 ‘경제’ 시스템으로 인식하면서 생산 영역 이면에 감춰진 ‘(노동)착취’에 주목했다면, 이 책은 자본주의를 (‘경제’를 넘어서는) ‘사회’의 한 유형, 즉 삶의 모든 영역을 지배하는 ‘제도화된 사회 질서’로 인식하면서 착취 이면의 ‘또 다른 감춰진 장소들’에 주목한다. 착취를 가능케 하는 네 가지 배경조건, 즉 전 지구적인 제국주의적-인종적 수탈, 돌봄 등 ‘사회적 재생산’의 위기, 지구 환경과 자연에 대한 수탈, 정치의 기능 장애로 인한 민주주의의 위기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는 모든 것을 먹어 치우는 ‘자본’의 파괴적인 속성이 근본 원인이며, 이러한 자본의 탐식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서는 확장된 자본주의관으로 무장한 광범위한 (새로운) 사회주의 운동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신자유주의 이후 수많은 정치․사회운동과 비판이론들이 위기에 처해 있는 오늘날, 이 책의 주장과 대안은 독자에게 매우 깊은 영감과 각성을 준다. 페미니즘, 성소수자운동, 환경/생태운동, 노동운동 등 수많은 운동들이 각개약진하면서도 혼돈스럽게 뒤얽혀 있고, 또 한편으로는 ‘진보적 신자유주의’와 페미니즘의 기묘한 동거라거나 극우 포퓰리즘의 만개 같은 전 지구적 현상들이 결국 하나의 근원(‘식인 자본주의’ 자체의 모순)으로 수렴하고 있음을 깨닫고는 충격을 받게 되기도 한다. 이 넘쳐나는 ‘정체성 정치’의 시대에, 이러한 ‘포괄적인 접근’이야말로 어쩌면 가장 절박하고 시급한 과제일지 모른다.
“나를 포함, 흐느끼며 일상을 견디는 이들에게 희망의 목소리가 당도했다. 한계 없는 자본주의의 위장이 터지기 직전인 당대, 이 책은 기존의 거대 담론에서 벗어나 포괄적 접근을 시도한다. 우리는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가에 대한 ‘답’을 원한다면 이 책을 권한다. 인간이라는 시한폭탄을 품고 붕괴가 임박한 지구를 알고 싶다면, 인문학 용어가 정확히 번역된 책을 찾는다면 이 책을 권한다. 적실한 자본주의 입문서를 구한다면 이 책을 권한다.”
-정희진 (여성학 박사, 오디오 매거진 《정희진의 공부》 편집장)
“낸시 프레이저는 최고의 마르크스주의와 페미니스트 전통에 입각한 전설적인 급진 철학자이지만 흑인, 생태, 이민자, 성적 자유 운동에 대한 그의 진정한 포용과 심오한 이해는 그녀를 당대 지식계에서 독보적인 인물로 만든다! 이 책은 암울한 우리 시대에 고전의 반열에 오를 단 하나의 보배다.”
-코넬 웨스트Cornel West (《Race Matters》 저자)
“21세기에 걸맞은 마르크스주의 자본주의론에 대한 자신의 수많은 선구적인 공헌을 훌륭하게 종합한 아름다운 글!”
-볼프강 슈트렉Wolfgang Streeck (《How Will Capitalism End?》 저자)
“이 책은 자신이 번성하는 바로 그 땅, 노동력, 자연 세계를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는 괴물을 소환한다. 저자는 특유의 명확하고 독창적인 산문을 통해 자본주의의 역사적인 변천, 서로 얽힌 역학을 풀어냄으로써 겉보기에 이질적인 위기와 사회적 폭력 사이의 상호관계를 드러낸다. 그를 통해 우리는 반인종주의적, 생태사회적 재생산 비평의 강력한 잠재력을 보게 된다. 그리고 왜 지구와 인류의 미래가 작업장과 거리, 숲과 바다를 가로지르는 반자본주의 투쟁을 구축하는 사회주의 좌파에 달려 있는지를 알게 된다.”
-슈 퍼거슨Sue Ferguson (《Women and Work》 저자)
“저자는 우리 시대의 가장 우아한 자본주의 이론을 내놓았고, 이제 우리는 그 체제를 심판하기를 희망할 것이다. 협소한 경제적 의미에서의 자본주의가 아니라, 완전한 잡식성이라는 의미에서의 자본주의, 주변 모두를 집어삼키는 짓을 멈출 수 없는 체제이자 사람과 자연의 생명을 파괴하는 체제 말이다. 이것이야말로 위기의 시대를 구할 마르크스주의 이론이다.”
-안드레아스 말름Andreas Malm (《How to Blow Up a Pipeline》 저자)
최고의 마르크스주의와 페미니스트 전통에 입각한 전설적인 급진 철학자,
낸시 프레이저는 누구인가
저자인 낸시 프레이저(Nancy Fraser, 1947~ )의 이름이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는 신자유주의가 확고한 지배 이념으로 자리 잡은 1990년대에 착수한 ‘정의’론 작업이었다. 그는 ‘분배’에만 초점을 맞추는 존 롤스식 정의론의 한계를 인정하면서, 여성운동․흑인운동․성소수자운동 등이 제기하는 또 다른 정의관, 즉 문화적 정체성의 ‘인정’을 중심에 둔 정의관을 적극 수용해 이 둘의 공존과 상호작용을 중심에 두는 새로운 정의론을 제시했다(이러한 그의 정의론은 악셀 호네트와 벌인 논쟁의 기록 《분배냐, 인정이냐?》에 잘 나타나 있다).
이후 프레이저의 정치사회이론은 부단히 진화했다. 그는 정의의 또 다른 축으로서, 분배와 인정의 측면에서 불의를 시정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치적 ‘대표’의 측면에서 만인의 동등한 참여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삼차원적 정의론을 발전시켰다. 또한 지구화 시대에 정치가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국민국가의 경계를 넘어서는 초국적인 공론장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지구화 시대의 정의》).
경제 위기와 극우 포퓰리즘의 창궐, 기후 급변 등으로 어지러웠던 2010년대에 프레이저는 이제까지의 이론적 토대 위에서 다른 어떤 사회이론가보다 더 맹렬히 현실에 개입하며, 신자유주의 이후의 대안을 찾는 많은 이들에게 용기와 영감을 주었다. 그는 정체성 정치만 강조하며 분배 요구를 등한시한 사회운동들을 비판했고, 최근 극우 포퓰리즘이 상당수 대중에게 대안으로 선택받는 근본 원인이 여기에 있음을 통렬히 지적했다. 특히 페미니즘의 대중적 확산에도 불구하고 ‘진보적 신자유주의’라는 낡은 틀에 갇혀 있는 여성운동을 향해 자기 성찰과 노선 전환을 촉구했다(《전진하는 페미니즘》 《99% 페미니즘 선언(공저)》).
또한 프레이저는 무엇보다도 사회운동과 좌파정치 전반이 환골탈태해야 함을 역설했다. 그는 극우 포퓰리즘이 발호하도록 만든 원흉인 ‘진보적 신자유주의’에 맞설 수 있는 것은 오직 노동계급과 중간계급의 동맹에 바탕을 둔 ‘진보적 포퓰리즘’뿐이라고 주장했다(《낡은 것은 가고 새것은 아직 오지 않은》). 그리고 이를 위해 노동운동, 여성운동, 생태운동, 흑인운동 등이 굳건한 동맹을 발전시켜야 할 근거를 ‘자본주의’라는 토대 자체에서 찾아낸다. 다만, 이 ‘자본주의’는 더 이상 고전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이야기하던 그 ‘자본주의’와 같지 않다. 자본-노동 관계만으로 환원되지 않는, 더 복잡한 제도적 실체인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책 《좌파의 길: 식인 자본주의에 반대한다》에서 드디어 그의 새로운 자본주의관은 그 전모를 드러낸다.
우리의 시스템은 어떻게 민주주의, 돌봄, 지구를 먹어 치우는가
우리는 이에 맞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우리는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가. 노동은 불안정하고, 부채는 무겁게 어깨를 짓누르며, 생계는 위협받고 있다. 공공 서비스는 퇴보하고, 인프라는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며, 생명을 위협하는 팬데믹과 극단적인 기후위기까지 엄습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해법을 상상하거나 실행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정치의 위기’가 이 모두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이 책은 이 모든 끔찍한 사태의 근원에 관한 심층 탐사다. 그 원인을 진단하고, 범인을 지목한다. 저자는 ‘식인’이라는 은유를 통해, 우리 시대를 이 지경에까지 몰아넣은 이 사회 시스템에 이름을 붙인다. 자기 존재의 토대조차 걸신들린 듯이 집어삼키는, 이른바 ‘식인 자본주의(Cannibal capitalism)’다.
제1장 “걸신들린 짐승: ‘자본주의’의 재인식”에서는, 왜 우리의 자본주의관을 확장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 구체적인 윤곽은 무엇인지를 개괄한다. 이를 위해 마르크스가 말한 ‘(생산 이면의) 감춰진 장소’ 이면의 또 다른 네 가지 감춰진 장소들로 우리를 안내한다. 즉 상품 생산에서 ‘사회적 재생산’으로, 경제에서 ‘생태’로, 경제적인 것에서 ‘정치적인 것’으로, 착취에서 ‘수탈’로 우리의 인식을 이동시키며, 그 구조적 분할을 살핀다. 그리고 자본주의 경제는 이러한 ‘비-경제적(으로 보이는)’ 배경조건에 구조적으로 의존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나아가 이러한 확장된 자본주의관을 바탕으로, 전 지구적으로 연대하는 새로운 정치적 가능성(‘경계투쟁’)의 윤곽을 그려 보인다.
제2장부터 제5장까지는 그 네 가지 ‘감춰진 장소’들을 하나하나 자세히 살펴본다. 각 장소/영역마다 고유한 ‘자본주의’에 대한 구조적 분석과 역사적 성찰(16~18세기 중상주의적 자본주의부터 19세기 자유주의-식민주의적 자본주의, 20세기 중반의 국가-관리 독점 자본주의, 우리 시대의 금융화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 이르기까지), 정치적 이론화를 한데 합침으로써, ‘자본주의’가 수탈․재생산․생태․정치의 각 영역에서 어떻게 ‘제 살 깎아먹는 짓’을 벌이는지를 낱낱이 짚어낸다. 즉, 모든 것을 먹어 치우는 자본의 파괴적인 속성이 기후위기와 인종적 불평등, 돌봄의 평가절하(젠더 지배), 정치위기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위기들을 촉발했는지를 온전히 드러내 보인다.
제2장 “수탈 탐식가: 착취와 수탈의 새로운 얽힘”에서는, 마음껏 먹어 치울 수 있는 집단을 찾아 헤매는 탐식가에게 먹이를 대주는, 자본주의의 수탈/착취 분할을 다룬다. 이른바 인종적-제국주의적 역학이다. 수탈과 착취를 동시에 당하는 시민-노동자는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나. 왜 자본주의는 구조적으로 제국주의적-인종주의적일 수밖에 없는가. 반인종주의를 위한 인종 교차적 동맹은 어떻게 가능한가.
제3장 “돌봄 폭식가: 생산과 재생산, 젠더화된 위기”에서는, 자본주의 시스템에 돌봄 폭식가의 낙인을 찍는, 자본주의의 재생산/생산 분할을 다룬다. 이른바 젠더화된 역학이다. 식민화—가정주부화—가족임금을 거쳐 오늘날 신자유주의의 새로운 규범인 ‘맞벌이 가구’에 이르기까지, 자본주의의 역사적 체제들에서 ‘돌봄’은 어떻게 취급되고 처리되었나. 부유한 가족에서 가난한 가족으로, 전 지구적 ‘돌봄 사슬’은 어떻게 연결되는가. ‘시장화’와 ‘사회보호’의 길항 속에서 어떻게 해방운동이 ‘진보적 신자유주의’에 포섭되었나. 왜 사회적 재생산이 자본주의 위기의 중심 무대일 수밖에 없으며, 새로운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제4장 “꿀꺽 삼켜진 자연: 수탈․돌봄․정치와 얽혀 있는 생태 위기”에서는, 우리의 집인 지구를 자본이 꿀꺽 삼키게 만드는, 자본주의의 자연/인류 대립을 다룬다. 이른바 생태-포식 역학이다. 자연은 어떻게 자본의 수도꼭지이자 하수구로 전락하게 되었나. 생태 위기는 어떻게 수탈, 돌봄, 정치(국가/공적권력)와 얽혀 있는가. 왜 생태정치는 환경을 넘어 자본주의 자체에 맞서야 하는가.
제5장 “도살당하는 민주주의: 정치와 경제의 분할”에서는, 공적 권력을 먹어 치우고 민주주의를 도살하려는 충동을 내장한, 자본주의의 경제/정치 분할을 다룬다. 자본은 어떻게 국가, 공공재, 정치를 무력화하는가. 왜 자본주의는 근본적으로 반민주주의적일 수밖에 없는가. 국경을 넘나드는 글로벌 금융의 지배 아래 정치적 교착 상태에 빠져버린 오늘날, 우리는 이 비상한 역사의 갈림길에서 어떤 정치적 선택을 해야 하는가.
제6장 “진정한 대안의 이름으로: ‘사회주의’의 재발명”에서는, 자본주의에서 도대체 무엇이 잘못됐으며 이에 맞서는 진정한 대안은 무엇인지를 탐색한다. 자본주의를 ‘식인종’으로 새롭게 바라보면 어떤 실천적 차이가 나타나는가. 이 관점은 사회주의에 관한 우리의 이해를 어떻게 바꾸는가. 그렇다면 21세기에 걸맞은 새로운 사회주의는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마지막으로 에필로그 “팬데믹, 식인 자본주의의 광란의 파티”에서는, ‘식인 자본주의’의 모순이 극단적으로 집약되고 응축된 ‘광란의 파티’로서 팬데믹 사태를 다룬다. 수탈․재생산․생태․정치의 서로 얽히고 중첩된 위기들이 어떻게 코로나19와 그 타격을 만들어냈는지, 그 참혹한 비극의 진실이 수면 위로 드러난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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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원제는 ‘Cannibal Capitalism’-낸시 프레이저는 현재의 자본주의를 ‘식인’(제 살 깎아먹기)라 정의하고 수탈과 착취의 자본주의가 인종, 젠더(돌봄과 재생산), 생태 위기에서 민주주의 위기까지 어떻게 폭식하고 있는지 조목조목 밝힌다. 그 혜안에 감탄. 이 남다른 시각에 답이 있을지도.

잠자냥 2023-02-12 공감 (45)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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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시점의 자본주의의 위기를 진단하고 잘 분석한 책. 자본주의를 경제의 논리로만 해석해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문제는 왜 왔고(역사)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대안도 제시하였다(미래). 경제, 사회, 문화, 정치로 다각도로 바라보고 분석하였다는 점이 좋았다.

거리의화가 2023-03-12 공감 (19)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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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훌륭한 번역이다.
이 번역으로 읽고 이해가 안 된다면 번역 탓이 아니라 독자의 이해력이 부족한 것이다.
번역자의 노고에 경의를 표한다!

BaumNamu 2023-08-07 공감 (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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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렴풋ᆢ알고있지만 확실하게 집어 말하지못했던ᆢ
모든것들의 원인~!!배후~~!!
새 시대의 계급, 권력 ᆢᆢ 자본주의ᆢ
우리의삶을 주변부부터 먹어치우는 자학적이기까지한
식인 자본주의~!!
단연 최고의책으로ᆢ우리모두의 전환이 필요하다

jeonare 2023-03-19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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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후 글을 몇번 읽어보셨을까?? 부족한 문해력 탓인지 번역의 난해함 탓인지~답답해서 원서를 읽어볼까? 치기도 부려보지만 부족한 문해력을 탓하며 오늘도 한챕터씩 도전히고 있습니다

moon0491 2023-03-21 공감 (3)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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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의 내적모순 규명, 그리고 새로운 질서의 상상

※ 이 리뷰에는 책의 내용이 일부분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만, 리뷰어의 판단이 개입되어
저자의 의도에 대한 비(非)의도적 오독이 있을 수 있음을 고려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책은 하나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것이다. 왜 자본주의는 무수한 내적 모순을 지니고 있다고 지적하면서도 그 근본적인 모순을 시정하지 못하느냐는 것이다. 더구나 세계의 제도적 질서를 이 문제 많은 자본주의에게 헤게모니를 쥐어주기까지 하고 그 어떠한 대응이나 탈취를 위한 기획이나 행동조차 하지 못하는가 하는 물음이다. 즉 궁극적 해결을 위한 접근 경로를 알지 못하거나, 잘못 짚는 이유에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것이다.
이 말은 ‘자본주의’에 대한 정의를 소위 고전적 경제논리에 입각한 이해에 전념하다보니 그 실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까닭에 있다는 것이며, 그것은 다음과 같은 ‘낸시 프레이저’의 확장된 자본주의 정의에서 드러난다. 전통적이고 오늘에까지 일반적이고 통념적으로 이해하는 “사적소유, 시장교환, 임금노동, 그리고 이윤을 위한 생산에 바탕을 둔 경제 시스템”이라는 단일 특성으로 바라보는 한 결코 자본주의를 제대로 인식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다시 정의되어야 하는데, “이윤 주도 경제가 그 작동에 필요한 ‘경제 외적 기둥’들을 포식하도록 북돋는 사회(societal)질서”, 즉 ‘제도화된 사회 질서’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경제’라는 단일 특성이 아니며, 경제에서 분리되어 드러나지 않지만 실질적으로 자본주의 경제 작동의 근간인 ‘비-경제’(경제외적)기둥 - 생태자연, 돌봄 등 재생산, 법을 비롯한 국가 권력, 수탈 영역 - 을 포함하는 은폐된 요소들을 배제하고서는 자본주의의 어떠한 측면에 대해서도 문제해결에 접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경제 시스템’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질서’라는 것이다. 각 요소들이 난마(亂麻)처럼 얽혀 있는 전체를 보지 못하고 하나의 요소에 제아무리 처방전을 내봐야 고쳐지지 않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귀결이다.
자본주의는 많은 환상을 실재라고 승인하는 조금은 기이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자유로운 노동 시장’같은 말은 법률차원의 자유와 시공간적 자유라는 노동자의 자유의지를 부각시키며, 자본가에 종속적이고, 시공간적 구속을 받는 임금노동자임을 지워버린다. 또한 자본의 목적인 자기축적, 즉 자기자본의 확장이라는 고유충동을 부정한다. 때문에 발생한 잉여의 사회적 할당이 시장에 맡겨져 노동자 등 사회적 복리와는 무관하게 아주 자의적으로 배분되어 불평등을 내재적으로 보유하는 도착적 특성이 마치 없는 듯 행동한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균형(조화)이라는 시장에 대한 환상, 자유노동이라는 환상...,게다가 자본가가 축적하는 잉여는 노동 생산의 이윤만이 아니라 비경제 요소를 무상 또는 해당가치에 훨씬 모자라는 저가로 사용하여 얻는 거의 수탈에 가까운 공짜 이익까지 더해져 사실 자본가의 축적은 더 큰 규모로 이뤄진다.
바로 이것이다. ‘낸시 프레이저’는 자본이 무임승차하면서 한 푼의 비용도 지불하지 않으면서 자기 축적에 전념함으로써 야기되는 전방위적인 사회적 폐해의 요소들을 규명하고, 그것들이 어떻게 얽혀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의 전경이 아닌 배경으로 밀쳐지고 분리되어 눈앞에서 치워진 것들을 찾아내는 것이며, 이를 통해 새로운 질서를 상상해 내는 것이다. 내적 모순으로 인류를 신음하게 하는 헤게모니를 쥔 자본을 시정할 수 있는 대항 질서(대항 헤게모니 연대)를 사유해 보는 것이다.
■ 비경제 요소란 무엇인가?
비경제 요소란 무엇인가? 자본을 경제라는 범주에 특정함으로써 경제 이외의 것들과는 무관한 듯 설명하며 배제한 것, 그러나 자본이 자기 확장을 위해 필수적인 토대로 하여야 하는 것 말이다. 자기 축적을 위한 근본적 요소임에도 아무런 책임이나 부담을 하지 않으려는 요소들. 낸시 프레이저는 이것을 ‘사회적 재생산, 생태 자연, 공적권력과 정치, 그리고 착취와 수탈’, 크게 네 가지로 분류 정리하고 있다.
노동이 생산을 위해 지속적으로 투입되려면 노동은 생산에 참여할 수 있는 조건을 위해 무수한 요인들을 필요로 한다. 정서적 신체적 돌봄, 가사, 육아, 학교, 다음세대를 낳고 사회화하는 일, 공동체 구축, 사회적 협력을 뒷받침하는 가치 지평의 가르침 등등 사회적 유대와 공동인식 유지를 위해 기여하는 일군의 활동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사회적 재생산이라는 비경제 요소의 하나이다.
이들 사회적 재생산을 위한 노동은 자본의 생산 세계에서 분리되어 개별적인 사적 가정의 영역으로 유폐되고, 임금 노동에서 배제되거나 터무니없이 낮은 저임금이라는 중차대한 진실을 가려버린다. 생산노동과 재생산 노동은 분리되어 재생산은 젠더화되고 여성의 차지가 되어왔다, 그런데 금융자본주의 시대인 오늘은 이것들마저 상품화하여 여성을 대거 저임금 서비스 일자리에 충원한다. 이것은 추가적인 문제를 낳고 그것과 다시금 얽히는데, 착취와 수탈의 요소라는 노동의 이중성으로 이어진다. 가난한 여성이 일하는 여성 대신에 저가의 임금으로 돌봄 노동을 수행하며 가난한 여성의 가정은 돌봄의 사각지대화 되어 서발턴을 고착화시킨다. 자본은 사회적 재생산을 공짜로 먹어치우며, 이 비용을 사회에 전가한다. 자본 축적, 즉 잉여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이것에 비용을 치루지 않음으로써 사회적 불균형과 불화라는 자본주의 위기, 내적 모순을 드러낸다.
생태자연이라는 비경제 요소는 자본의 가장 파렴치한 뻔뻔함의 하나일 것이다. 자연은 스스로 무한히 회복할 수 있다는 터무니없는 전제 하에 마치 비용이 제로인 듯 처리된다. 자본주의는 자연의 영역과 경제의 영역을 분할하여 자연은 무상 이용의 원천으로 삼는다. 이것은 자본주의의 위선인데, 경제는 가치 발생의 창조적 인간 행동의 장(場)이지만, 쉽고 무한히 보충할 수 있는 자연은 가치 없는 영역이라 분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또한 기만이자 왜곡인데, 생태 자연은 자본 생산의 필수 토대이기 때문이다. 만일 이것이 없다면 자본의 생산, 자본주의는 한 걸음도 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공짜로 이용하고 그 부담은 하지 않으려 한다. 결국 이 또한 사회에 전가되고, 자본의 내적 모순이라 일컫는 오리무중의 모호한 지대로 자취를 감춘다.
공적 권력과 정치라는 비경제 요소는 자본의 이중적 태도를 보여주는, 그 경계를 오르내리는 자가당착(自家撞着)적 특성을 지닌다. 자본은 자기 멋대로 하기 위해 규제를 폐지하고, 조세의 감면과 탈세를 추구한다. 즉 탈정치를 주장하지만, 자기 확장, 자본축적에 장애가 되는 것을 파괴하고 제거하기 위해서 공적권력과 정치를 요구한다. 이를테면 재산권을 보장하고, 계약 내용의 실행과 분쟁을 심판하고, 노동자 저항을 진압하며, 질서를 보장하고, 이견을 관리하는 국가권력은 시장 교환이라는 자본주의를 떠받치는 가장 원초적인 토대이다. 그러나 작은 정부를 요구하며 작금의 신자유주의를 표방하는 자본주의는 자본의 움직임에 대한 방임을 지향한다.
이미 모순을 포함하고 있지 않은가? 자본주의는 경제와 정치를 분할하여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으로 분리함으로써, 이미 영역간, 그 경계의 자의적 융통성으로 인해 불의와 부패성이라는 위기를 태생적으로 안고 있음을 보여준다. 자본은 이러한 정치적 비용, 공공재의 비용에 대한 어떠한 책임과 부담을 지니려 하지 않는다. 이 역시 공짜이고 무임승차다. 자본주의는 자본축적을 용이하게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시스템으로 진화해왔다. 이것이 사회질서에 엄청난 불평등과 불화의 문제인 것은 그 내적구조의 태생성이 지닌 반(反)민주주의적 속성 때문이다. 지금 한국 사회에 벌어지는 행태, 공공기관 및 그 자산의 민간 매각. 건보료를 비롯한 국민연금 등의 인상이라는 공적 부담의 회피, 대기업 조세감면, 금리의 폭발적인 인상 등은 민주주의 정치의 조건을 파괴한다.
금리 인상이 자본의 파렴치한 무한축적의 동기와 무슨 상관이 있는 건가라고 묻는 이가 있다면 그 어리석음을 무엇에 견줘야 할 것인지 모르겠다. 자본이 사회와 자연의 부를 빨아들이는 일은 부채가 한다. 자본은 즉각적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금융자본을 통해 대중을 훈육한다. 금리 인상은 부채상환에 압박을 받는 사적 개인의 몫이다. 중산층과 저소득층의 경계에 선 많은 이들을 빈곤계층의 나락으로 떨어뜨림으로써 자본은 자기 축적을 확보한다. 여기에 정치권력은 막대한 떡고물을 받기위해 국가권력을 동원하여 자본을 지원한다.
이러한 실태를 여기에 모두 열거하는 것은 지면의 낭비가 될 듯하여 자제토록 한다. 자본은 외형적으로 정치와 분리되어 있지만 내적으로는 긴밀하게 얽혀있다. 분리함으로써 자본은 이 비경제 요소인 국가권력, 공공재의 이용을 위한 아무런 비용도 부담하지 않으며,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는다. 이로부터 민주주의는 파괴되고 사회질서는 그 윤리적 뿌리부터 썩어 들어간다. 이 질서의 혼란이 야기한 복구비용은 오로지 국민이라는 대중의 몫이 된다. 그것은 시간의 고통, 재정적 고통, 삶의 견딤이라는 정서적, 육체적 고통, 민주주의의 정치적 지향성이라 사회 윤리적 비용의 부담이다.

네 번째 요소인 착취와 수탈은 역사적, 지역적 시간에 따라 형태적 형상이 변화되어 온 비경제 요소이다. ‘착취’란 국가가 정해 놓은 법아래 노동으로부터 발생하는 생산 잉여분을 통한 자본 축적을 말하는 것이며, ‘수탈’이란 법이 보호하지 않는 영역의 노동, 즉 가계의 생계가 불가능 할 정도의 임금 또는 무상으로 빼앗는 잉여를 통한 자본축적을 의미한다. 이러한 구분은 역사적으로 그 경계를 변경하며 인종주의와 주변부 지역(예로서 식민지 또는 이에 준하는 포스트 식민국가 등 제3 국가 등)으로부터의 강탈에서부터 현재의 플랫폼노동이나 이 밖의 임시직 노동을 비롯한 새로운 인클로저(물의 상품화를 위한 토지 수용, 식물의 소유권화, 터미네이터 씨앗 등)로 인한 박탈로부터 챙기는 공짜 잉여를 표면에 드러나게 해준다.
이들에게는 사회안정 보험의 수혜도 받지 못하고, 착취 노동자로부터도 경멸받으며, 동료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저 빼앗기며 아무 발언권도 지니지 못한다. 때문에 수탈 대상 계층과 지역민은 제도화된 사회질서의 변경에 그 어떠한 요구도 하지 못한다. 택배노동자, 퀵(음식) 배달 노동자, 경비 노동자 등 긱(geek)노동 에 가해지는 끊임없는 폭행과 불이익의 수용이 지속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비경제 요소들은 결코 그 요소 자체의 문제로 인해 야기되는 불의가 아니다. 이들은 상호 엮여있는데, 이것들에 대한 자체적 요인만으로 문제 해결을 해보았자 미봉책이거나 시늉에 불과한 꼴이 되고 결국 해결되지 않은 채로 지속적으로 곪아가기만 한다. 페미니스트들의 운동을 예로 들어보자. 남성중심 사회를 그 어떤 중심도 아닌 기회 평등과 공정을 외치며 여성의 일자리 진출을 하나의 전형적 모델로 등장시켰다. 소위 ‘맞벌이 가족’이라는 해방 지향 운동으로 보이지만 시장주의자들이 환호하고 나선 것은 자본주의의 모순을 덮는데 아주 유용한 프로파간다였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은 시장 자본주의와 공모하며, 사회적 재생산을 둘러싼 투쟁을 후퇴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이것은 특권을 지닌 여성이 가난한 여성에게 돌봄을 떠넘기면서 가능하게 된 것이고, 유례없는 ‘돌봄 사슬’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자본은 공짜 재생산 비용의 비난을 회피하고, 마치 존재하는 문제가 아닌 듯 책임에서 멀리 떨어질 수 있게 해주었다. 페미니즘을 비난하자는 것이 아니라, 단일 요소의 문제로 접근하면 다른 파생적 문제를 낳는 비경제 요소의 상호 엮임의 문제를 말하려는 것이다.
결국 페미니즘은 ‘착취와 수탈’의 영역과 협력해야 하며, 정치라는 공적 영역의 경계에 대해, 또한 생태자연의 영역과 연대해야 근본적 문제 해결에 접근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것은 남성과의 연대 문제가 아니라 비경제 요소 상호간의 연대의 문제인 것이다. 문제를 만들어내는 세력과 잠자리를 함께하며 문제를 푼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지금까지 좌파라고 하는 집단의 행동도 또한 신자유주의의 놀음에 동참하며 사회적 안전망을 외치는 불가능한 접근으로 자본주의의 축적을 돕는 결과를 초래했다.
신자유주의의 약탈적 정치경제에 해방이라는 매혹적 분위기로 화장해주는 역할을 해 온 것이 페미니즘임을 인식해야 한다. 이것은 사회질서에 커다란 균열이 발생하여 인민대중이 일어날 때 페미니즘과 현재의 좌파, 인종주의는 거부되는 형국을 불러 올 수 있으며, 이는 곧 사회 분열의 다름 아니다. 이렇게 분열된 대중은 결코 반동적 우익 포퓰리즘이 지향하는 추악한 자본 축적의 동기를 저지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며, 비뚤어지고 왜곡된 사회 정의를 바로 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의 그럴듯한 해결은 새로운 왜곡의 시작을 알려 줄 뿐이다. 이의 역사적 실상을 설명하는 것은 그만두겠다. 낸시 프레이저의 목소리(이 책『cannibal capitalism』)를 참조하시라는 조언으로 갈음하여야겠다.
바로 지금 한국사회의 현실이 이를 입증하고 있지 않은가? 극우화된 현재의 권력은 자본의 충실한 충복들이다. 대부분의 언론은 자본축적의 동기로 가득한 대기업의 출자 기업들이다. 이들에게는 자기 확장을 방해하는 요소와 세력은 살해하여야 하는 대상 일뿐이다. 조중동을 비롯한 자본가의 미디어 매체들이 바보같은 이 정권을 기를 쓰고 지원사격하고, 이에 반대하는 세력을 음해로 일관하는 것은 바로 이 자본주의의 당위적 현상이 노골적으로 행사되는 것을 입증하는 것일 뿐이다. 사실 자본주의는 뻔뻔하지 않았던 적이 없으며, 이를 합리화하는 논리와 구조를 만들어 왔을 뿐이다.
이들이 제일 먼저 들고 나온 이슈가 무엇인가? 대기업 조세 감면과 공기업 매각, 공적 부담 장치들의 파괴 아니었던가? 그리고는 주변부의 부를 빨아들이기 위한 금리인상과 각종 공공요금의 무한 증가를 통한 자본 확장의 지원 아니었던가? 그리고는 여성가족부, 국가인권위원회의 해체 등 반민주주의, 반여성주의, 반생태주의, 반노동주의의 기치를 내걸며, 이에 저항하는 인간은 누구라도 때려잡겠다고 을러대고 있지 않는가? 이 모두는 자본주의라는 ‘제도화된 사회 질서’가 지닌 뿌리깊은 내적 모순으로 발생하는 것이며, 그것의 핵심은 비경제 요소를 외면하고 소외시켜 은폐하는 것이다.
■ 맺는 말
책은 18~19세기의 중상주의-자본주의, 19세기~20세기 초의 식민주의-자본주의, 20세기 경제공황과 세계대전 이후의 국가주의-자본주의, 그리고 21세기 오늘날의 글로벌 금융 자본주의의 역사 속에서 이러한 비경제 요소와 경제와의 경계를 어떻게 이전 은폐하며 봉합하여 지속될 수 있었는지를 규명하고 있다. 착취와 계급갈등을 가리기 위해 스위트 홈을 창안하여 남성 중심의 생산 경제와 여성 중심의 가정이라는 비경제로 분리하여 새로운 경계를 만들고, 이에 여성주의가 대두되자 이에 기생하여 맞벌이 가족을 이상화하며 경계를 이동시키고, 급기야 부채를 통한 착취와 수탈의 지대를 만들어 주변부의 부까지 빨아들이는 자본의 민낯을 드러내기에 이르렀다.
자본주의 내재적 모순은 이처럼 경제와 비경제의 경계를 변경하며 은폐해온 역사라 할 수 있다. 오늘 우리들이 사는 세계는 화폐가 곧 권력의 표상이 된 세상이다. 때문에 돈을 받지 못하거나 적은 돈을 받는다는 것은 중요한 진실을 은폐하는 역할을 한다. 가치 없음의 이 상징은 곧 법의 보호에서 배제되며, 제도질서에서 제외되고, 결코 그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을 뿐 아니라 발언권이 없다. 낸시 프레이저는 이러한 모순의 본성을 4D로 설명하고 있다. ‘분할(division)+의존(dependency)+책임회피(disavowal)=불안정화(destabilization)’, 경제와 정치를 분리하고, 자연과 경제를 분리하며, 경제와 수탈을 분할하며, 재생산과 생산을 분리하며 자본은 분리된 것에 등을 돌리고 그에 대한 어떠한 보상도, 책임도 지지 않는다. 이 회피된 것들, 돌봄, 생태계, 수탈대상의 노동, 정의로운 정치에 기생하고 이를 이용하면서도 비용부담도, 그 어떤 책임도 회피하면서 오직 파괴하고 사회와 인간을 고통의 신음으로 몰아넣는다.
책은 이렇게 자본주의 시스템이 은폐한 내적 결함을 감춰둔 장소들에 예리한 빛줄기를 드리워 노출시킴으로써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들을 우리들의 눈앞에 펼쳐 보여준다. 자본주의가 단지 경제 시스템이 아니라 ‘제도화된 사회질서’라면, 새로운 질서를 우리들은 어떻게 만들어 내야 할 것인가? 사실 이 모든 것들을 단 번에 치유할 체제란 불가능 할 것이다. 전통적인 사회주의는 계급주의를 청산하고 사회적 잉여에 대한 분배의 공정성을 확보하면 된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자본주의는 경제, 즉 생산과 시장 교환시스템만이 아니라고 했다. 무임승차하고 돈 한 푼 내지 않는 비경제의 토대에 선 질서 체계이다. ‘젠더와 성, 인종적(확대하여 지역화되고 부채화된 노동),민족적 억압, 정치적 지배에 대한 불균형’까지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사회질서를 창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분리된 경계를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 비경제 영역의 우선순위는 어떻게 두어야 할 것인지, 효율성과 성장을 내세우는 자본의 요구를 압도하는 사회적 가치를 어떻게 기획해 낼 것인지 등 지금까지 자본의 배경에 머물렀던 것을 전경으로 세우기 위한 제도 설계에 대해 숙고해야 한다.
이러한 전제 조건들이 지속 가능성이 보장되는 것이어야 하며, 민주적 과정을 통한 결정이 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저자는 지금까지 경제에 중심을 둔 사회주의와는 다른 새로운 의미의 사회주의를 상상한다. 새로운 제도 질서로서의 사회 창안을. 아마 이 책은 오늘의 한국사회의 현실 속에서 어떻게 이 위기를 해결 할 수 있을 것인지를, 보다 민주적이고 보다 생태적이며, 보다 평등한 성과 이질성의 극복을 위해 분투하는 이들에게 위안과 격려와 영감의 메시지가 될 것이다. 21세기 자본주의의 교과서를 읽는다면 나는 단연코 낸시 프레이저의 이 책을 추천할 것이다.
Cannibal Capitalism: 식인(카니발)이라는 표현을 은유라 설명했지만 사실은 의미 자체 그대로 사용되었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저자는 자본주의를 “‘먹이 떼를 향해 달려드는 포식자 무리’를 제도화 한 것으로서 사회를 바라보게” 한다. 중심메뉴는 바로 ‘우리’ 인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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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아 2023-03-01 공감(19)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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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시스템은 어떻게 민주주의, 공동체의 돌봄 체계, 그리고 지구를 잡아 먹었으며,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전통적인 자본주의 특징을 재조명하고, 현재에 맞는 21세기 자본주의의 속성과 그 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자본주의 시스템의 뒷면을 탄탄한 논리와 근거, 사례를 들어서 설명하고 있는 훌륭한 책이다. <좌파의 길…>로 시작되는 한국어 번역본의 제목은 개인적으로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원래의 책 제목은 <Cannibal Capitalism: How Our System is Devouring Democracy, Care, and the Planetand What We Can Do About It 식인 자본주의: 우리의 시스템은 어떻게 민주주의, 돌봄, 그리고 지구를 잡아먹고 있으며,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이다. 책을 읽은 나로서는 저자의 기본 논지가 ’자본주의‘는 단순한 진영의 논리만이 아니고, 영어 제목에 표기된 것처럼 ‘우리 시스템(Our System)의 문제’라는 점을 알리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자본주의 특징은 1) 공적 영역이자 농산물 생산의 기반이 되었던 토지 거래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파생된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 2) 법률적 지위가 자유롭고, 생계수단과 생산 수단의 확보로부터 자유로운 ‘노동의 거래’를 탄생시킨 ‘자유로운 노동시장’, 3) 자본가의 자유로운 ‘자기자본의 확장’, 4) 상품생산에 쓰일 ‘토지, 노동, 자본’ 등 투입요소 할당과 사회적 에너지의 집단적 적립 현상인 ‘잉여 자본’을 어떻게 투자할 지를 결정하는 ‘시장의 역할’ 로 상징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관점에서의 자본주의는 21세기 자본주의가 몰고 온 국가간의 문제와 사회 구성원 계층간의 문제, 젠더(Gender) 문제, 지구 환경 문제를 온전하게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이 저자의 일관된 주장이다. 그 한가지 사례가 현대 자본주의 사회가 ‘잉여 자본’을 어떻게 사용하는 지는 절대적으로 중요한 문제로서 우리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지만 자본주의 자체는 그에 대한 해답을 노골적으로 회피하고 있다.
어떤 삶을 살기를 원하는가, 가정생활.여가.기타 활동들과 ‘생산적 일’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 나아가 인간과 자연은 어떤 관계를 맺길 원하는가, 미래 세대에게 무엇을 남길 것인가 등의 물음에 대해 자본주의 먹이사슬의 최고 정점에 있는 자본자와 공룡같은 거대한 다국적 기업들은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원래부터 자본주의 제도 자체는 근본적으로 이런 문제를 책임지지 않는다. 원천적으로 사회적 부와 인간 복리의 질적 기준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메커니즘이다.
이에 따라 ‘자본’의 원래 창조주인 인간을 오히려 자본의 ‘종복(노예)’으로 전락시킨다. 우리는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고 해서 ‘경제적으로 노예’가 아니라고 감히 단언할 수 없다. 웬만한 사람들은 온갖 대출금과 신용카드 결제대금을 상환하기 위해 경제적으로 어딘가에 묶여있다. 주인이 명확하게 보일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자본의 추악한 비밀은 시장적 관점에 따른 주장과는 다르게 ‘상품의 교환으로 상징되는 등가물의 교환’을 통해서가 아니라, 노동자의 ‘노동시간 중 일부를 보상하지 않음’으로써 확대된다는 사실이다. 즉, 임금노동이라는 순화된 강압 이면에 보이지 않는 적나라한 폭력과 수탈(노골적인 도둑질)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선거 때마다 불거지는 논쟁하나가 최저임금인데, 이걸 단돈 1천원 올리기가 쉽지 않다. 3천원 이상 하는 별다방 커피는 스스럼없이 사드시는 분들이 자기를 대신하여 노동을 하는 사람들의 임금을 올려주는데에는 사회적 합의나 협상을 해야할 정도로 인색하다. 건물주는 시장 상황이 나쁘다고 임대료를 깍아주지 않는다. 물론…드문드문 착한 건물주도 있긴 하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극소수일 뿐이다. 다들 왜 그럴까?
기존의 이론으로는 현대 자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모순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한국 사회도 자본주의 체제라고 하지만, 난데없이 불거진 남녀간의 젠더갈등, 저출산 문제, 환경문제와 해결책을 자본주의는 스스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자본주의를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만 전체적인 관점에서 올바르게 바라볼 수 있고, 그에 따른 합당한 해결책이나 문제해결을 위한 실마리를 도출할 수 있다.
인식의 전환에서 저자가 강조하고 있는 한가지 핵심적인 것은 단순한 ’생산‘의 관점에서 자본주의를 바라볼 것이 아니라, 인간 존재와 사회적 유대를 생산하고 지탱하는 상호작용, 필수재 공급, 돌봄 제공의 형태들을 의미하는 ’사회적 재생산‘으로 나아가는 전환이다.
위와 더불어 현대 사회에서 ‘제 1권력’이라고 하는 ’화폐‘에서 ’생태‘로, ‘경제적’인 것에서 부의 축적을 뒷바침하고 있는 법과 제도를 형성하는 ’정치적인 것‘으로, 노동력의 ’착취‘ 개념에서 지구가 제공하고 있는 자원을 거의 공짜로 사용하고 있는 ‘수탈’의 개념으로 인식의 전환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자본주의 경제‘ 체제가 아닌, ’제도화된 사회질서‘로서의 자본주의를 전체적인 하나의 사회 시스템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저자는 이러한 관점의 전환에서 발생하는 이해당사자 상호간의 갈등과 충돌을 ‘경계투쟁’이라는 용어로 정의한다. 마르크스가 주장했던 ‘상품 생산과 잉여 가치’에 대한 분배권을 놓고 다루었던 ’계급투쟁‘을 확장한 개념이자, 기존 이론의 한계를 탈피하고자 한다.
경계투쟁의 기본 개념은 정치 vs 경제, 자연 vs 인간, 중심부 vs 주변부, 경제적 vs 비-경제적 영역에서 일어나는 이해관계(집단)의 다양한 충돌을 의미한다. 현대의 자본주의는 단순히 ‘경제’를 넘어 비-경제적 영역까지 거리낌없이 착취와 수탈을 자행하고 있다.
그 결과 오늘날의 21세기 자본주의는 기존의 ‘중상적 자본주의’, ‘자유주의-식민주의적 자본주의‘, ’국가-관리 독점 자본주의‘, ’지구화하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등 역사적으로 등장한 다양한 형태의 ‘자본주의’를 밑바탕에서 지탱하고 있던 사회의 본질적 부분이면서 역사적으로 자본주의 경제와 화합하며 서로를 구성해 오는 동안 나름의 발자취를 남긴 ‘각 영역별 공생관계’ 마저 무너뜨리는 ‘제 살을 깎아먹는 괴물’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식인 자본주의’ 관점으로 현재의 자본주의를 바라 볼 경우에 새롭게 파악할 수 있는 자본주의의 주요 속성과 역학을 저자는 아래 5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첫째, ‘자본주의의 수탈과 착취 분할’을 다룬 인종적.제국주의적 역학. 둘째, 자본주의 시스템에 돌봄 폭식가의 낙인을 찍는 ‘자본주의의 재생산과 생산 분할’을 다룬 젠더화된 역학. 셋째,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를 자본이 꿀꺽 삼키는 ‘자본주의의 자연과 인류의 대립’인 생태-포식의 역학. 넷째, 경제와 정치 분할에 내장된 속성으로 ‘공적 권력을 먹어치우고 민주주의를 도살’하려는 충동의 자본주의와 마지막 다섯째, 자본주의를 식인종으로 바라보게 되면, 이를 극복하기 위한 실천적 차이는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는 지와 더불어 2020년에 발생한 코로나 팬데믹에 관한 이해 역시 어떻게 변화되는 지를 탄탄한 이론과 반박하기 어려운 논리를 바탕으로 ‘21세기 자본주의’ 문제를 입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현재의 한국 사회 속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각종 어려운 문제점도 자연적으로 연상하면서 질문을 해 보게 된다.
‘한국인은 외국과 달리 스타트업 창업보다는 왜 그렇게 부동산 취득에 집착하는가?‘ 부동산을 재산축적의 손쉬운 수단으로 드라이브를 걸었던 세력은 일반 서민층일까? 아니면, 드러나지 않는 어떤 자본세력일까. 정치권은 왜 난데없이 남녀간의 젠더 갈등을 집권을 위한 선거이슈로 들고 나왔을까? 그렇게 함으로서 정치권력이 얻는 진정한 이익은 무엇일까. 그리고…선진국 및 거대 다국적 기업이 최근에 시동을 걸기 시작한 RE100, 탄소 제로 정책 등 지구 온난화 해결책은 그들이 진정으로 지구의 생태계를 걱정해서 하는 주장이고 정책들인가? 아니면 망가진 환경을 이용하여 그 동안 자본주의 제도를 활용하여 천문학적인 부를 축적한 집단이나 국가가 ’지구 생태복원‘ 이라는 또 다른 아젠다로 자기들을 추격하는 일반 중산층이나 ’선진국‘이라는 단어를 아직 붙이지 못하는 경제개발중인 국가의 진입장벽을 또 다시 차단하려는 ’21세기의 보이지 않는, 교묘한 장벽‘인가?
‘식인 자본주의’라는 단어가 어렵다면 아주 쉬운 생생한 사례가 우리 주변에 있다. 상권이 조금 잘된다 싶으면, 건물주들이 임대료를 상승시킨다. 임대료를 내지 못해 그 지역 상가 운영자들은 폐업을 한다. 여러 가게가 순차적으로 문을 닫아 결국 상권이 완전히 죽어버린다. 건물 임대가 나가지 않으니 이번에는 건물주들이 힘들어진다. 이런 결과의 원인을 제공한 사람은 바로 건물주 자신이다.
또한, 지하수를 개발하여 플라스틱 병에 생수를 담아서 파는 기업들은 지구촌 최대의 골칫거리로 부상하고 있는 플라스틱 생수병을 스스로 회수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지구가 주는 지하의 수자원을 개발하여 팔 수 있는 권리는 있어도, 자기들이 만들어서 온 세상에 뿌려대는 일회용 플라스틱 생수병을 회수할 의무는 애초부터 없었다고 당연하게 생각한다. 각종 음식을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에 담아서 팔아 이윤을 획득하는 수 많은 각종 식품회사와 그 회사를 이끌고 있는 사장님, 혹은 회장님도 마찬가지 입장이다. 저자인 낸시 프레이저는 자본주의 체재하에 벌어지는 이런 일련의 행위를 (자원의) ‘수탈’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 대목에서 ‘건물주, 생수회사 사장님, 대기업 식품회사 회장님을 비롯하여 이를 유발하는 사회적 조직 시스템’ 이라는 단어를 ‘자본주의’로 변환시켜보면 된다. ‘자본주의 사회’ 시스템을 스스로 몰락시키는 주인공은 다른 것이 아닌 ‘자본주의 자체’이다. 저자는 인간이 형성하고 있는 공동체를 비롯하여 사회 각 분야에서 도대체 이런 현상들이 왜 벌어지는 지를 설명하고자 한다.
책은 한 페이지를 넘기기가 녹녹치 않다. 무척 집중해서 들어야 조금이라도 이해가 되는 고급 강연을 접하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그렇지만 생각을 하면서 페이지를 넘기면, 그 다음 페이지에서 현대 자본주의에서 살고 있는 내 자신이 ‘보다 나은 사회 혹은 국가는 어떠한 모습을 갖춘 곳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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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bby 2023-02-21 공감(7)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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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여 쪽에 21세기 세상에 대한 답이 담겨 있다니!




이런 책을 만나다니! 마치 다섯 갈래로 나뉜 낯선 지역에서 뭔가 해야 하는데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던 순간이 떠올랐다. 썩 두껍지 않은 책에 21세기, 아니 그 전 300여 년 동안 인류가 탐욕과 무지와 공포, 그리고 이제는 책임을 느끼지만 그 어느 것도 해결할 수 없기에 그냥 하루하루 먹고 마시며 살아왔던 모든 소심함이 담겨 있다. 그러나 이제 그 소심한 하루하루도 더 이상 지속되기 힘들 것이다. 우리 세대까지는 지속할지 모르지만 그 아래 세대에서는 불가능하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이 책에 정답이 있다. 누군가는 그것이 해답이 아니라고 여길 것이다. 갈데까지 가보자며 말이다. 그러나 갈데까지 가고 나면 돌아올 다리는 이미 끊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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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궤변 2023-02-05 공감(6)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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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의 길 - 낸시 프레이저

책을 포함해서 무엇이든 충동구매를 거의 하지 않는 편인데 이 책은 인터넷 서점에서 제목을 보는 순간 '어머! 이건 꼭 사야 해!'라는 반응이 튀어나와 정신 차려보니 집에 도착한 책이다.
국문 제목이 원제보다 더 거창한 느낌인데, 원제는 'Cannibal Capitalism', 즉 '자기 자신을 잡아먹는 자본주의'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책은 우리가 자본주의를 바라보는 시각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주장으로 시작한다.
저자가 말하는 자본주의란 단순한 경제체제가 아닌 '사회'의 한 유형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경제'라는 측면에 국한해서 자본주의를 이해하면 자본주의 때문에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여러 문제들을 제대로 진단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는 필연적으로 자본의 축적을 최우선으로 움직이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인종과 젠더, 환경, 정치 등 4가지 분야에서 각기 착취와 수탈이 일어난다.
여기에서 발생한 착취와 수탈이 곧 자본의 축적을 가져오는 과정인데 특이하게도 자본은 이 4가지의 재생산, 즉 지속가능함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
따라서 이 4가지 분야에서 쌓인 모순들이 다양한 사회운동의 형태로 나타나게 되는데, 저자는 이러한 개별적인 인식이 문제 해결의 근본적인 해답이 아니기 때문에 자본주의를 통합적인 사회 체제로 보는 시각을 제시하고, 이러한 문제들이 다 자본주의 그 자체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라는 논지를 펼치고 있다.
사실 자본주의의 목적이 잉여를 남겨 자본 그 자체를 증식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수탈과 착취는 기본적인 현상이고 여기에 인종과 젠더에 따른 불평등이 관찰된다는 것이 그리 색다른 시각은 아니다.
하지만 저자는 이 부분 외에 자본주의가 노동력의 재생산 과정조차도 갉아먹는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실질소득의 감소, 노동시간의 증가는 당연한 말이지만 노동자가 아이를 낳아 키울 생각을 가로막는 요인이 된다.
당장에 매일 출산율 최저를 갱신하는 우리나라의 현실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세종시의 출산율이 다른 곳보다 높은 이유는 다름 아닌 안정적인 직장과 급여 덕분인 것이다.
저자가 굳이 '수탈'과 '착취'라는 단어를 구분해서 쓰는 이유도 이와 관련이 있다.
즉 착취는 잉여 이익을 착취 당하는 대신 노동력 등 투입되는 자원의 재생산 비용은 지급받는 계층에서 발생한다면, 수탈은 그마저도 보장되지 않는 계층(아동 노동, 노예 노동, 강제 노역 등)에게서 발생하는 현상, 즉 지속가능성이 담보되지 않는 현상으로 정의하고 있다.
따라서 젊은 세대의 급여 수준이 자신의 후속 세대를 키울 정도가 되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는 젊은 세대를 '착취'하는 것이 아니라 '수탈'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경우든 자본가는 절감액을 이윤의 형태로 전유하며,
그 부산물과 함께 살아가야 할(또한 그 때문에 죽어가야 할)
이들에게 환경 비용을 전가한다.
여기에는 미래 인간 세대도 포함된다.
(pg 164)
자연환경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자본주의는 자본의 축적을 위한 원자료를 공급하는 자연을 마치 무한히 존재하는 것처럼 수탈한다.
그리고 환경에 대한 책임은 나무나 몇 그루 심으면 해결되는 것으로 생각한다. (이마저도 하면 다행이다.)
저자의 비유를 그대로 옮기자면 자본에게 자연이란 원료를 공급해 주는 상수도이자 폐기물을 품어주는 하수도이다.
그러면서도 상하수도 비용은 거의 지불하지 않는 셈이기 때문에 이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다음 세대의 인류가 받게 마련인 것이다.
'자기 확장'하도록 조작된, 화폐화된 추상인 자본은 끝없는 축적을 명한다.
그 결과 이윤극대화에 골몰하는 소유주가 '자연의 선물'을 최대한 싸게 징발하는 게
칭찬받을 일이 되고, 그러면서도 사용한 만큼 보충하거나
해를 끼친 만큼 수선할 의무는 모조리 면제받게 된다.
피해는 이윤의 동전 반대 면이다.
(pg 163)
마지막 키워드인 정치 역시 자본의 힘 앞에 무릎 꿇은 지 오래다.
착취와 수탈을 위해서는 안정적인 법률 제도와 장치들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막대하게 커져 국경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자본은 오히려 공적 권력에 불안정성을 가져온다.
대한민국 국민 그 누구도 이재용이 청문회에 끌려 나와 어리바리도 떨고 징역도 살았으니 국가 권력이 자본을 잘 감시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기업들의 '자유로운' 경제 활동을 위한 국제기구들(각국 정부가 아닌)이 게임의 규칙을 만들고 있다.
이 체제에서는 전 세계에 걸쳐 사회적 상호작용의 막대한 부분을 다스리는
강압적 규칙의 알짜를 만드는 것이 국가가 아니다.
대신 유럽연합, 세계무역기구, NAFTA, TRIPS 같은
초국적 거버넌스 구조가 이를 대체한다.
누구에게도 책임지지 않으며, 압도적으로 자본의 이익을 위해 활동하는 이 기구들은
'자유무역'과 '지적재산권' 같은 신자유주의적 관념들을 '헌법으로 제정'하고,
이를 글로벌 체제로 고정시킨다.
이로써 장래에 있을지 모르는 민주적 노동, 환경 입법을 미연에 방지하고 있다.
(pg 243)
이처럼 자본은 자신의 축적에 반드시 필요한 것들을 탐욕적으로 흡수하면서도 그 재생산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기 때문에 '자기 스스로를 갉아먹는' 체제라는 것이 책의 핵심이며, 아래의 문장으로 잘 요약해두고 있다.
자본은 이러한 사회-재생산 활동에 크게 의존함에도 여기에 어떠한 (화폐화된)가치도
부여하지 않으며, 무상으로 무한히 사용할 수 있는 것처럼 취급한다.
게다가 이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은 거의 혹은 전혀 하지 않는다.
따라서 자본을 무한히 축적하려는 끝없는 충동에 따르도록 방치하면,
자본이 의존하는 바로 그 사회적 재생산 과정이 불안정해질 위험에 빠지게 마련이다.
(pg 225)
그래서 결론은 무엇인가?
저자는 당연히 문제의 근원이 자본주의 그 자체에 있기 때문에 자본주의를 해체해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그 자체로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그 이후의 사회를 상상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저자의 답은 '사회주의'이다.
그것도 자본주의에 대한 인식과 마찬가지로 '확장된 개념의 사회주의'여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이 책의 핵심은 자기 파괴적인 성격을 지닌 자본주의에 대한 분석이기 때문에 대안 부분은 언급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사회주의자는 이 뒤집힌 것을 바로 돌려놓아야 한다.
즉 사람들의 양육, 자연의 보호, 민주적 자치를 사회의 최우선으로 놓고,
이것들이 효율성과 성장을 압도하게 해야 한다.
요컨대 사회주의는 자본이 책임을 회피하며 배경 취급하는 사항들을
똑바로 전경으로 끄집어내야 한다.
(pg 280)
책은 총 6장으로 1장에서 자본주의의 확장된 시각을 제시한 뒤 2, 3, 4, 5장에서 자본주의가 수탈과 착취의 대상으로 삼는 인종, 젠더, 환경, 정치에 관한 현상들을 설명하고 6장에서 논지를 종합하는 굉장히 논리 정연한 목차로 구성되어 있다.
참고문헌을 제외하면 약 300페이지 초반으로 그리 두꺼운 책은 아니지만 문장이 그리 잘 읽히는 느낌이 아니라서 읽는데 시간은 꽤 오래 걸린 느낌이다.
(문장은 번역의 문제라기보다는 저자가 다소 현학적으로 썼다는 느낌이 강했다.)
임계치에 도달한 대중이 집단행동을 통해 기성 질서를 변혁할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한다고 결의할 때에만 객관적 곤경은 주체를 통해 발설된다.
그때에야, 오로지 그때에야, 우리는 결단을 요구하는 비상한 역사적 갈림길이라는
좀 더 거대한 의미에서 위기를 말할 수 있게 된다.
(pg 246)
나름 마르크스 자본론도 공부를 좀 했었기 때문에 이를 확장한 저자의 시각이 아주 낯설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자본이 사회의 여러 부분에서 수혜를 얻으며 성장하는데 사실상 노동자의 임금과 어떻게든 피하고 줄이려 애를 쓰는 세금 외에는 무임승차를 하고 있다는 시각이 현실을 바라보는 눈을 더 날카롭게 다듬어주는 느낌이 들었다.
현실 자본주의에 뭔가 잘못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한번 읽어볼 것을 권하고 싶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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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Ssun 2023-03-03 공감(5)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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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사회주의‘도 돌아왔다!

어쨌든, '사회주의'도 돌아왔다!
- [좌파의 길], 낸시 프레이저, 2022.
1.
아직도 '자본주의', '사회주의', '신자유주의' 얘기냐, 묻는 옛 친구들은 "시대가 변했으니 생각도 변해야 한다"는 말하나 마나인 당연한 진리를 이야기하고 있다기 보다는,
오히려 "먹고 살아남기가 얼마나 힘든데"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를 변혁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햇빛에 푸른 등을 반짝이며 날뛰던 산 고등어 시절에 잠시 빠졌던 '거대담론'들이 이제는 삶에 유효하지 않다는 말은,
'자본주의'라는 현 사회체제가 성공하여 역사의 종말을 증명해서였다기 보다는,
세상이라는 뜨거운 석쇠 위에 올라 등이 까맣게 탄 죽은 고등어가 되지 않으려 각자도생 쟁투하는 우리들 삶에선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말이었다.
그러던 중 21세기에,
'자본주의'가 돌아왔다.
2.
"... 현 위기를 발생시킨 책임은 '식인 자본주의(Cannibal Capitalism)' 시스템에 있다... 이 모든 재난이 한데 모여 서로를 악화시키며 우리를 집어삼키겠다고 위협하는, 사회질서 전체의 전반적 위기다... 자본주의 시스템의 모순 역시 '경제' 위기만이 아니라 '돌봄(사회적 재생산)', '생태계(환경)', '정치(공적 권력)'의 위기를 함께 불러들이는 경향이 있으며,... 이 시스템을 구성하는 접합부위마다 벌어지는 '경계투쟁(boundary struggles)'을 불러 일으킨다... 생산과 재생산의 관계, 사적 권력과 공적 권력의 관계, 인간 사회와 비인간 자연의 관계를 처음부터 다시 구축해야 한다... '최선의 희망'은... 오직 '더 커다란 대안을 사고'해야만, 우리 모두를 잡아먹으려는 '식인 자본주의'의 끝없는 식욕을 제압하기 위해 싸울 기회를 확보할 수 있다."
- [좌파의 길], <서문 - '식인'이라는 은유>, 낸시 프레이저, 2022.
미국의 정치철학자 낸시 프레이저(Nancy Fraser : 1947~)는 마르크스 이론을 기반으로 존 롤스의 미국식 '정의론'의 '분배' 이론에 각 주체들의 '인정' 이론을 접합한 '사회주의자'다. 여성운동가로서 좌파적 페미니스트에 자본주의 체제의 인종주의와 제국주의에 반대하며 유럽식 사회민주주의 특징으로서 강력한 '정치'의 역할도 강조한다.
국내에서 올해 [좌파의 길]이라는 제목으로 진보정치 이론가 장석준 선생이 번역하여 출간된 낸시 프레이저의 최근 저서는 그녀가 2022년 발표한 책, [식인 자본주의(Cannibal Capitalism)]가 원제다.
코로나 팬데믹과 극심해진 불평등 자본주의 극단에서 프레이저 사상의 잠정적 총결산과도 같다.
21세기 금융자본주의가 성장할 수록 환경파괴와 기후위기는 심화되고 독점자본이라는 사적 권력을 향한 기업들의 경쟁이 생산하는 재화들이 '공공재(커먼즈:commons)'가 되면서 이 '공공재'를 공유하는 다수대중의 권력이 [어셈블리](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에서 주장하듯 더욱 확장되고 강화되는 현재, '럭셔리 공산주의 선언'(아론 바스타니)을 비롯하여 미국에서조차 '사회주의 선언'(바스카 선카라)도 이미 나왔다.
낸시 프레이저의 '사회주의' 또한 같은 객관적 세계체제를 배경으로 하니, 생산수단으로부터는 배제되어 있지만 공공재를 소유하게 된 집단적 다수대중의 민주주의를 확대하는 사회주의적 '실천'을 강조하는 결론은 다들 대동소이하다.
낸시 프레이저의 책에서 중요한 개념은 '식인 자본주의'와 '수탈', '4D'와 '경계투쟁', 그리고 '생태 사회주의' 정도 되겠다.
1) '식인'이라는 은유
프레이저가 자본주의 사회체제 전반을 은유하는 '식인(cannibalism)'은 사람만이 아니라 주변의 모든 것들을, 나아가 체제로서 스스로 "제 살 깎아먹는"(같은책, <1>) 자본주의의 본원적 특징이다. 서양 신화에 나오는 "자기 꼬리를 먹는 뱀 '우로보로스(Ouroboros)'"다.
"따라서 요점은, 자본주의 사회의 '시장화된 측면'과 '비시장화된 측면'이 '공존'한다는 것이다. 이는 예외적인 현상이나 우연적인 경험이 아니라 자본주의 DNA에 각인된 특징이다. 사실 '공존'은 이 둘의 관계를 포착하기에는 너무 약한 단어다... 이러한 측면을가장 훌륭하게 표현하는 말은 '제 살 깎아먹기(cannibalization)'다."
- [좌파의 길], <1. 걸신들린 짐승 : '자본주의'의 재인식>, 낸시 프레이저, 2022.
자본주의는 '정치'적으로는 자기자본 증식과 잉여가치 창출의 목적을 위해 자본의 사적 권력으로 '정치'의 공적 권력을 이용하거나 무력화시켰다.
'경제'적으로는 생산수단의 소유를 둘러싼 '계급투쟁'의 '경제' 영역 뿐만 아니라, 임금노동의 재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가정과 여성의 '사회적 재생산' 및 '돌봄' 노동처럼 노동의 가치가 지불되지 않는 '비-경제' 영역까지 착취하며, 저발전 남반구의 유색인종들과 자연환경 일체를 아주 공짜로 착취한다.
이 '착취'는 마르크스주의의 정통이념을 넘어 '수탈'로 정의된다.
2) '착취'에서 '수탈'로? 아니 원래 '수탈'로부터
"자본이 임금을 대가로 '노동력'을 구매하는 계약관계 대신, '수탈'은 인간역량과 자연자원을 징발하여 자본확장 회로에 징용함으로써 작동한다... 인종화된 타자에 대한 '수탈'은 노동자 '착취'의 필수배경을 이룬다... '수탈'... 마르크스가 체계적으로 이론화하지 못한 또 다른 사회적 분할을 드러낸다. 자본이 임금노동을 통해 착취하는 (이중으로) 자유로운 노동자와, 자본이 다른 수단을 통해 '제 살 깎아먹기' 대상으로 삼는 부자유한 또는 종속적인 주체 사이의 사회적 분할이 그것이다... '수탈'과 '착취'의 구별은 '경제'적이면서 동시에 '정치'적이다."
- [좌파의 길], <2. 수탈 탐식가 : 착취와 수탈의 새로운 얽힘>, 낸시 프레이저, 2022.
낸시 프레이저는 사회주의자이자 마르크스주의자인데, 그녀의 "확장된 자본주의론"은 마르크스의 '정통 교리'에 기반하고 있지는 않다. 즉, 마르크스의 [자본론]처럼 '착취'라는 '경제'적 개념으로 자본의 축적(본원적 축적 또는 원시축적)을 근원적으로 분석하고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비-인간 자연'과 '제국주의'적이든 아니든 패권에 의해 무력해진 '인종들', 그리고 '사회적 재생산'을 맡고 있음에도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돌봄 노동과 여성들에 대한 전방위적 '수탈'로부터 정의한다.
장석준 선생의 <옮긴이 후기>에 의하면 로자 룩셈부르크의 '자본축적론'의 이론적 계보를 잇는 낸시 프레이저의 '수탈' 이론은 "확장된 자본주의관"의 핵심이다.
일본의 마르크스주의자 사이토 고헤이의 연구에 의하면 마르크스가 인간 사회의 '착취'를 발견한 1867년의 [자본론] 1권 이후 자본주의의 자연 '수탈'에 천착하여 그 뒤로 이어질 자본 연구를 초고 상태로 남길 수 밖에 없었을 수도 있다.
지구를 파괴하는 자본주의는 결국 무자비한 '자연 수탈'을 그 존재의 근원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확장된 관점의 자본주의는 임노동 '착취'의 기본 모순을 넘어 자연(환경), 인종과 여성(사회적 재생산), 정치(공적 권력)에 대한 '수탈'을 통해 "제 살 깎아먹기"(같은책, <1장>)를 시전하며, 위 영역들을 '분할'한 '식인 자본주의'가 그은 각종 '경계'에서 이뤄지는 '경계투쟁(boundary struggles)'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반자본주의' 연대 블록으로 결합된다.
3) '4D' 현상
이 "확대인식된 자본주의 사회"(같은책, <4>)의 모순은 이른바 '4D' 현상으로 압축되는데, '분할(Division)' + '의존(Dependency)' + '책임회피(Disavowal)'의 '3D'가 합쳐져 또 하나의 'D'인 '불안정성(Destabilization)'으로 현상한다는 주장이다.
'경제'와 '비-경제'를, '인간'과 '비인간 자연'을, '경제'와 '정치'를 '분할'하고, 소외된 주체(유색인종, 여성) 및 자연을 무상 또는 저렴하게 수탈하면서 '의존'하며, 잉여가치 창출 외에 이 모든 것에 대한 '책임회피'를 일삼는 자본주의는 결국 '불안정'을 그 본질로 하고 있다는 의미겠다.
4) '경계투쟁' = '반자본주의'
"자본주의 사회는 역사적으로 여러차례 자신을 재발명했다. 특히 다양한 모순들(정치적, 경제적, 생태적, 사회재생산적)이 수렴하는 전반적 위기 국면에는, 자본주의를 구성하는 제도적 '분할'이 이뤄지는 장소에서 '경계투쟁'이 분출했다. 그 장소란, 경제와 정치가 만나고, 사회와 자연이 만나며, 수탈이 착취와 만나고, 생산과 재생산이 만나는 곳이다."
- [좌파의 길], <3. 돌봄 폭식가 : 생산과 재생산, 젠더화된 위기>, 낸시 프레이저, 2022.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선언]에서 공산주의자의 임무는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모든 투쟁과 연대하며 미래의 운동을 대표한다는 '반자본주의' 결론의 현대화다.
생산의 사회화를 위한 조직된 노동자들의 '계급투쟁'을 넘어 여성운동과 반인종주의운동, 생태주의 운동과 결합하는 대대적인 '반자본주의 연대 블록'의 형성과 근본적인 자본주의 체제변혁운동이 21세기 사회주의라는 것이다.
5) '확장'된 '생태 사회주의'
이제 "확장된 자본주의관은 사회주의에 관해서도 확장된 인식이 필요함"(같은책, <6>)을 말해주는데, '자본주의'와 함께 "돌아온" '사회주의'는 단지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체제 붕괴의 징후적 배경과 함께 다시 떠오르는 '반자본주의'적이면서 '자본 이후'를 그려내는 실천적 현실이다.
'자연보호' 수준의 '생태주의'는 '반자본주의'로 방향을 잡고, 이제는 자본가들에 의해 수탈당하지 않는 자연을 복원하는 사회주의여야만 기후환경위기에 처한 지구를 구할 수 있다.
"'반자본주의'라는 이 퍼즐조각은 환경주의를 넘어서는 정치적 지향과 비판세력을 제시한다... 말하자면, '반자본주의'는 모든 역사적 블록에 필수적인 '우리'와 '저들' 사이의 대립선을 긋는 역할을 한다... '최대의 희망'... '환경을 넘어서는 반자본주의적 대항 헤게모니 블록'을 건설하는 데 있다... '생태 사회주의'..."
- [좌파의 길], <4. 꿀꺽 삼켜진 자연 : 수탈, 돌봄, 정치와 얽혀있는 생태 위기>, 낸시 프레이저, 2022.
낸시 프레이저의 "확장된 사회주의론"은 '생태 사회주의'다.
"어쨌든 사회주의도 돌아왔다... 나의 목표는 사회주의 역시 하나의 '제도화된 사회질서'로서 재인식하는 것이며, 이렇게 포괄적이어야만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에 대한 믿을만한 대안이라 자부할 수 있을 것이다."
- [좌파의 길], <6. 진정한 대안의 이름으로 : 사회주의의 재발명>,낸시 프레이저, 2022.
"제 살 깎아먹는" 식인 자본주의라는 확장된 자본주의론에 걸맞게 그 대안으로서 사회주의 또한 '생산수단의 사회화'의 경제 영역만을 근본으로 두는 것이 아니라, "민주적인 정치적 자치의 범위를 확장"(같은책, <6>)하고 자본주의가 그은 "경계선들을 다시 그음으로써 자본주의가 '경제'적인 것과 관련지은 긴급한 사안들을 '정치'적이거나 '사회'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같은책, <6>)을 주요 실천적 임무로 둔다.
물론, 낸시 프레이저는 대안적 사회주의 미래상을 제시하지는 못한다. 다만, 코로나 팬데믹으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 '식인 자본주의'라는 "사회적 총체성"(같은책, <5>) 속에서 '경계투쟁'들의 실천적 연대를 기대하고 있다.
"좌익의 정통교리와는 달리, 자본 축적은 (이중으로) 자유로운 임금노동자의 '착취'를 통해서만이 아니라 정치적 권력과 법적으로 유효한 권리를 빼앗긴 종속적 인구집단에 대한 '수탈'을 통해서도 전개된다. '착취'와 '수탈'의 이러한 구분은 전 지구적인 피부색의 경계선과 일치한다. 자본주의 사회에 내장된 특징인 인종적, 제국주의적 약탈은 현 위기의 모든 측면에 스며들어 있다... (현재의) 노동계급은 더 이상 백인남성광부, 공장직공, 건설노동자로 전형화될 수 없으며, 이제 그 전형은 돌봄노동자, Geek(비정규직)-노동자, 저임금 서비스노동자다. (어쨌든 급여를 받을 경우에는) 재생산 비용보다 더 적은 급여를 받는 이 현대 노동계급은 '착취'를 당하면서 동시에 '수탈'도 당한다. 코비드(Covid-19)는 이 추악한 비밀까지 폭로했다."
- [좌파의 길], <에필로그 - 팬데믹, 식인 자본주의의 광란의 파티>, 낸시 프레이저, 2022.
3.
그리고 어쨌든,
'사회주의'도 돌아왔다.
새로운 '사회적 총체성'의 철학으로 무장한,
'생태 사회주의'로.
언젠가 은근슬쩍 사라졌던 '거대담론'들이 그러했듯,
객관적 사회체제의 변화에 따라서.
먹고 살기 바빠 언제나 생존의 전선에 선 생활인들이 인정하든 말든 말이다.
***
1. [좌파의 길(Cannibal Capitalism)](2022), Nancy Fraser, 장석준 옮김, <서해문집>, 2023.
2. [어셈블리(Assembly)](2017), 안토니오 네그리/마이클 하트, 이승준/정유진 옮김, <알렙>, 2020.
3. [21세기 공산주의 선언 - FALC](2019), 아론 바스타니, 김민수/윤종은 옮김, <황소걸음>, 2020.
4. [미국의 사회주의 선언](2019), 바스카 선카라, <미래를 소유한 사람들> 편집부 옮김, 2021.
5. [지속불가능 자본주의 - 기후위기 시대의 자본론](2020), 사이토 고헤이, 김영현 옮김, <다다서재>, 2021.
6. [마르크스의 생태사회주의 - 자본, 자연, 미완의 정치경제학 비판](2017), 사이토 고헤이, 추선영 옮김, <두번째테제>, 2020.
7. [공산당 선언(Communist Manifesto)], 마르크스/엥겔스, 1848.
8. [레즈를 위하여 - 새롭게 읽는 '공산당 선언'], 황광우/장석준, <실천문학사>,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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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atrice1007 2023-03-25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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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의 선택
"낸시 프레이저가 말하는 식인 자본주의"
낸시 프레이저는 책을 이렇게 연다. "이 책을 읽는 이들에게 굳이 지금이 혼란기라고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독자들은 난마처럼 서로 얽힌 미래의 위협과 현재의 참사에 이미 익숙해져 있으며, 실은 이로 인해 이미 요동치고 있다." 사회의 모든 영역이 서로 발 묶여 붕괴되는 듯 보이는 현재에 굳이 낸시 프레이저의 책을 집어 든 이유는 지금 이 결과적 사태에 대한 원인을 정확하고도 새로운 언어로 듣고 싶어서일 것이다.
지금의 혼돈을 총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그는 확장된 자본주의관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이 책에서 그는 자본주의를 (경제 시스템에 한정 짓지 않고) 사회의 한 유형으로 인식하며 자본주의가 먹어치우는 것들을 살핀다. 자본주의는 자본주의가 기능하도록 하는 조건적 토대조차 집어삼키는데, 이런 특성을 바탕으로 낸시 프레이저는 현재의 자본주의를 '식인 자본주의'라 명명한다. 식인 자본주의의 비정상적 파괴 본능, 자본주의가 도살하는 체제와 환경 등을 살피며 책은 우리가 실질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대안까지 나아간다.
동시대 가장 독창적인 사상가라 불리는 낸시 프레이저의 이론답게 도발적인 워딩과 새로운 관점으로 가득하다. 힘 있는 문장들은 암울한 시대의 복잡한 진실을 명료하게 풀어 놓는다. 현 시대의 연쇄적 위기는 그의 포괄적이고 총체적인 접근으로만 이해되는 부분이 있다. 여성학자 정희진이 "우리는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가에 대한 '답'을 원한다면 이 책을 권한다."며 추천했다.
- 인문 MD 김경영 (2023.02.07)
21세기 최고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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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찬
출판사 제공 카드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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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동시대 가장 독창적인 사회철학자, 낸시 프레이저의 역작! 암울한 우리 시대의 ‘가장 우아한 자본주의론’이라 평가받는 이 책은 한 마르크스주의 노학자가 생애 말년에 뜨거운 마음으로 써 내려간, ‘좌파의 길’에 대한 절절한 모색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저자는 오늘날 교착 상태에 빠진 정치 위기와 숱한 사회운동의 혼돈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통적인 고전 마르크스주의 자본주의관에서 벗어나, 자본주의를 새롭게 해석하는 ‘확장된 자본주의관’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그리고 이를 ‘식인 자본주의’라 명명하면서, 그에 맞서는 이론적․정치적 기획을 한 권의 완성체로 묶어 선보인다.
목차
감사의 글
서문 _ ‘식인’이라는 은유
1장 걸신들린 짐승: ‘자본주의’의 재인식
- 왜 우리의 자본주의관을 확장해야 하는가
다시, 자본주의란 무엇인가
마르크스의 ‘감춰진 장소’ 이면의 또 다른 장소들
하나, 상품 생산에서 사회적 재생산으로
둘, 경제에서 생태로
셋, 경제적인 것에서 정치적인 것으로
넷, 착취에서 수탈로
자본주의는 ‘경제’ 그 이상이다
경계투쟁, 새로운 비판이론을 위하여
제 살 깎아먹기의 위기
2장 수탈 탐식가: 착취와 수탈의 새로운 얽힘
- 왜 자본주의는 구조적으로 제국주의적-인종주의적인가
교환, 착취, 수탈
축적으로서 수탈: 경제적 논의
예속으로서 수탈: 정치적 논의
인종화된 축적의 역사적 체제들
자본주의는 여전히 필연적으로 인종주의적인가?
3장 돌봄 폭식가: 생산과 재생산, 젠더화된 위기
- 왜 사회적 재생산이 자본주의 위기의 중심 무대인가
생활세계에 무임승차하기
자본주의 돌봄 폭식증의 역사적 발작
식민화와 가정주부화
포드주의와 가족임금
맞벌이 가구, ‘진보적 신자유주의’의 탄생
또 다른 자본주의인가, 새로운 사회주의 페미니즘인가?
4장 꿀꺽 삼켜진 자연: 수탈․돌봄․정치와 얽혀 있는 생태 위기
- 왜 생태정치는 환경을 넘어 자본주의에 맞서야 하는가
자본주의의 생태적 모순: 수도꼭지와 하수구로 전락한 자연
서로 얽힌 모순들
‘자연’을 말하는 세 가지 방식
사회생태적 축적의 역사적 체제들
동물의 근력
석탄왕
자동차 시대
새로운 인클로저, 금융화된 자연, 그리고 ‘녹색자본주의’
시공간 속에서 자연을 통해 제 살 깎아먹기
서로 얽힌 투쟁들
환경을 넘어서는 반자본주의적 생태정치를 향해
5장 도살당하는 민주주의: 정치와 경제의 분할
- 왜 정치 위기는 자본에게 붉은 살코기인가
자본주의 ‘그 자체’의 정치적 모순
국가, 공공재, 공적 권력
자본주의 역사 속의 정치 위기들
글로벌 금융, 부채, 그리고 이중의 고통
정치적 교착 상태, 비상한 역사의 갈림길
6장 진정한 대안의 이름으로: ‘사회주의’의 재발명
- 21세기에 사회주의는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그래서 다시, 자본주의란 정확히 무엇인가
자본주의에서 도대체 무엇이 잘못됐는가
21세기를 위한 새로운 사회주의
에필로그 _ 팬데믹, 식인 자본주의의 광란의 파티
옮긴이 후기
주
접기
책속에서
P. 20 현 위기를 발생시킨 책임은 ‘식인 자본주의’ 시스템에 있다. 현재의 위기는 다양한 폭식증의 발작이 한데 모인 예외적 유형의 위기다. 수십 년에 걸친 금융화로 인해 지금 우리가 직면한 위기는, ‘단지’ 극단적인 불평등이나 저임금 불안정 노동의 위기만이 아니다. ‘단지’ 돌봄이나 사회적 재생산의 위기만도 아니고, 이민과 인종화된 폭력의 위기만도 아니다. 또한 뜨거워진 지구가 치명적 전염병을 토해내는 ‘단순한’ 생태적 위기만도 아니고, 무너져가는 인프라와 군사주의 증대, 독재자의 만연을 특징으로 하는 ‘오로지’ 정치적인 위기만도 아니다. 아니, 이 위기는 ‘더 나쁜 무엇’이다. 이 모든 재난이 한데 모여 서로를 악화시키며 우리를 집어삼키겠다고 위협하는, 사회 질서 전체의 전반적 위기다. 이 책은 이렇게 거대하게 서로 얽혀 있는 기능 장애와 지배의 지도를 그린다. 접기
P. 104 그리하여 현 체제에서 우리는 착취와 수탈의 새로운 얽힘, 그리고 정치적 주체화의 새로운 논리와 만난다. 종속적 피수탈 예속민과 자유로운 피착취 노동자를 확연히 가르던 과거의 분할 대신에 연속체가 등장한다. 한쪽 끝에서는 무방비 상태의 피수탈 주체의 무리가 증가하는 반면에, 다른 쪽 끝에서는 착취‘만’ 당하는 주체인 보호받는 시민-노동자 계층이 감소한다. 그리고 그 중간에는 새로운 등장인물, 즉 수탈과 착취를 동시에 당하는 시민-노동자가 자리한다. 형식적으로는 자유롭지만 너무도 취약한 상태인 이 새 등장인물은 더 이상 주변부 주민이나 인종적 소수집단에 한정되지 않는 표준적 존재가 된다. 접기
P. 141~142 이 두 투쟁 쌍의 충돌에서 충격적인 결과가 나타났다. ‘다양성’, 능력주의, ‘해방’을 칭송하면서 동시에 사회보호를 해체하고 사회적 재생산을 다시 외부화하는 진보적 신자유주의가 그것이었다. (…) 이 과정에 해방운동들이 동참했다. 반인종주의, 다문화주의, LGBTQ 해방, 환경주의를 비롯한 모든 운동이 친시장적인 신자유주의 조류들을 세상에 낳아 퍼뜨렸다. 그러나 자본주의에서 오랫동안 지속된 젠더와 사회적 재생산의 얽힘을 감안하면, 가장 치명적인 것은 페미니즘의 궤적이었다. (…) 여성은 모든 영역에서 남성과 평등하며, 재능을 실현할 기회를 균등하게 보장받아야 하고, 그런 영역 중에는 생산 영역도, 아니 생산 영역이야말로 포함되어야 한다고 전제된다. 반면에 재생산은 후진적인 잔여 영역이자, 해방으로 나아가는 길에서 어떻게든 치워야 할 진보의 장애물로 나타난다. 접기
P. 142 금융화된 자본주의는 공적 지원을 축소하고 여성을 유급 일자리로 충원할 뿐만 아니라 실질임금을 낮췄고, 이로써 가족을 지탱하려면 각 가정마다 유급 노동에 보내는 시간을 늘리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이는 돌봄 활동을 타인에게 맡기려는 필사적인 쟁탈전을 부채질했다. 이 돌봄 간극을 해소하기 위해 현 체제는 가난한 나라에서 부유한 나라로 이주 노동자를 수입했다. (…)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이주민이 자신의 가족․공동체 책무를 다른 이에게, 더 가난한 돌봄 제공자에게 떠넘겨야 하며, 그러면 이 돌봄 제공자 역시 같은 선택을 해야 하고, 이는 꼬리에 꼬리를 물어 결국 유례없는 전 지구적 ‘돌봄 사슬’이 등장하게 된다. 접기
P. 143~144 미국에서 최근 전개된 두 양상이 상황의 심각성을 잘 보여준다. 첫째는 난자 동결의 인기가 급증하는 현상이다. 난자 동결은 보통 1만 달러가 소요되는 값비싼 시술이지만, 이제는 고학력․고임금 여성 피고용자의 부가급여로서 IT 기업들에 의해 무료로 제공된다. 이 노동자들을 유치해 계속 고용하고 싶어 하는 애플, 페이스북 같은 회사들은 실제로 다음과 같이 말하며 출산을 연기할 강력한 유인책을 제공한다. “기다렸다가 40대, 50대, 아니 60대에 아이를 가지세요. 여러분의 강력한 에너지, 생산적 시기를 회사에 바치세요.”
두 번째 현상 역시 이와 마찬가지로 생산과 재생산 간 모순의 징후를 드러낸다. 모유를 짜내는 값비싼 첨단 유축기의 확산이 그것이다. (…) ‘모유 수유’는 더 이상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일이 아니라, 기계를 사용해 모유를 짜서 보관해놓았다가 나중에 육아도우미를 시켜 젖병으로 먹이는 일이 되었다. 심각한 시간 빈곤 상황에서 더블컵에 완전 자동인 유축기는 가장 바람직한 해법으로 여겨지는데, 예를 들면 이 기구 덕분에 고속도로에서 차를 운전하면서도 양쪽 가슴에서 모유를 짤 수 있다. 접기
P. 154 한마디로, 도처에 생태정치가 등장했다. 기후변화는 더 이상 환경운동만의 고립된 배타적 소유물이 아니며, 이제는 모든 정치적 주체가 입장을 표명해야 하는 긴급한 사안인 것만 같다. 경쟁하는 숱한 의제들에 포함된 이 주제는 이와 한 쌍을 이루는 대의가 무엇인지에 따라 다양하게 굴절된다. 그 결과는 표면적인 합의 이면의 떠들썩한 의견 불일치다. 한편에서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지구 온난화를 지구 위 뭇 생명에 대한 위협으로 바라본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들은 이러한 각성 과정을 추동하는 사회 세력들의 공통 시각을 공유하지는 않으며, 지구 온난화를 중단시키기 위해 필요한 사회 변화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과학의 측면에서는 (어느 정도) 의견이 같지만, 정치의 측면에서는 (상당한 정도로) 다른 것이다. 접기
P. 166~167 자본주의 사회는 생산을 조직하는 임무를 ‘자본’에, 아니 더 정확히 말해 자본 축적에 헌신하는 이들에게 맡긴다. 원자재를 추출하고, 에너지를 발생시키며, 토지 사용을 결정하고, 식량 시스템을 운영하며, 자연에서 신약 후보 물질을 찾아내고, 폐기물을 처리하는 등의 독점적 권한이 자본주의 시스템에 의해 자본가 계급에게 부여된다. 사실상 공기, 물, 흙, 광물, 식물군과 동물군, 숲, 대양, 대기, 기후 등 지구 위 뭇 생명의 기본 조건 일체를 마음대로 통제할 권한이 양도되는 것이다. (…) 물론 정부가 사후에 피해를 줄이기 위해 개입할 때도 있지만, 항상 뒤늦게 만회하는 식으로 소유주의 특권을 침해하지 않으며 대응한다. 정부는 늘 온실가스 배출자보다 한 발자국 뒤에 있기 때문에 환경 규제는 대기업의 회피 수단에 의해 쉽게 무력화된다. (…) 이렇듯 지구 온난화를 야기한 것은 인류 전체가 아니라 바로 이들 자본가들이며, 이는 우연이나 단순한 탐욕의 결과가 아니다. 접기
P. 242~243 금융화된 자본주의는 전반적으로 ‘정부 없는 거버넌스’의 시대, 달리 말해 ‘동의’라는 체면치레조차 내팽개친 지배의 시대다. 이 체제에서는 전 세계에 걸쳐 사회적 상호작용의 막대한 부분을 다스리는 강압적 규칙의 알짜를 만드는 것이 국가가 아니다. 대신 유럽연합, 세계무역기구, NAFTA, TRIPS 같은 초국적 거버넌스 구조가 이를 대체한다. 누구에게도 책임지지 않으며, 압도적으로 자본의 이익을 위해 활동하는 이 기구들은 ‘자유무역’과 ‘지적재산권’ 같은 신자유주의적 관념들을 ‘헌법으로 제정’하고, 이를 글로벌 체제로 고정시킨다. 이로써 장래에 있을지 모르는 민주적 노동․환경 입법을 미연에 방지하고 있다. 결국 이 체제는 다양한 수단을 통해 사적 (대기업) 권력이 공적 권력을 포로로 만들도록 도우며, 또한 국내에서 공적 권력을 식민화하고 사기업의 작동 방식을 본떠 공적 권력의 작동 방식을 짠다. 접기
P. 252~253 그리고 이것이 바로 주류 진보 저항 세력이 실패한 대목이다. ‘저항 세력’의 지배적 흐름은 장막 뒤 권력의 가면을 벗기기는커녕 오랫동안 이 권력과 얽혀 있었다. 페미니즘, 반인종주의, LGBTQ+ 권리 운동, 환경주의 같은 대중적 사회운동의 ‘자유주의-능력주의’적 흐름이 그 사례였다. 이들은 자유주의의 헤게모니 아래에서 활동하며 오랫동안 진보적-신자유주의적 블록의 하위 파트너 노릇을 했는데, 이 블록에는 글로벌 자본의 ‘미래지향적’ 부문(IT, 금융, 미디어, 연예)도 가담하고 있었다. 결국 진보파 역시, (비록 방식은 달랐지만) 간판스타 구실을 했다. 신자유주의의 약탈적 정치경제를 해방의 매혹적 분위기로 화장해주면서 말이다. 접기
P. 253 더 나아가 페미니즘이나 반인종주의 등을 신자유주의와 결부시킴으로써, 마침내 댐이 무너졌을 때 인민대중이 신자유주의뿐만 아니라 페미니즘이나 반인종주의 등까지 거부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이것이 (적어도 지금까지는) 반동적 우익 포퓰리즘이 이 상황의 주된 수혜자가 된 이유다. 또한 이것이 현재 우리가 정치적 교착 상태에 빠진 이유이기도 하다. 권력은 떼돈을 벌어들여 장막 뒤에서 웃음을 그치지 않는데도, 우리는 반동파와 진보파가 각기 양쪽에서 간판스타 노릇을 하며 경쟁하는 싸움에, 사람들의 주의를 딴 데로 돌리기 위해 짜고 치는 그 싸움에만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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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낸시 프레이저 (Nancy Fraser)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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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정치철학자, 사회이론가. 뉴욕 뉴스쿨의 철학․정치사회이론 담당 교수로 있다. 독일 비판이론의 영향을 크게 받은 프레이저는 위르겐 하버마스의 공론장 이론을 계급과 젠더의 시각에서 비판적으로 재구성하는 작업을 펼쳤다. 국제적으로 그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된 첫 번째 계기는 신자유주의가 확고한 지배 이념으로 자리 잡은 1990년대에 착수한 ‘정의’론 작업이었다. 그는 ‘분배’에만 초점을 맞추는 존 롤스식 정의론의 한계를 인정하면서, 1970년대 이후 급속히 발전한 여성운동, 흑인운동, 성소수자운동 등이 제기하는 또 다른 정의관, 즉 문화적 정체성의 ‘인정’을 중심에 둔 정의관을 적극 수용해 이 둘의 공존과 상호작용을 중심에 두는 새로운 정의론을 제시했다. 이러한 그의 정의론은 악셀 호네트와 벌인 논쟁의 기록 《분배냐, 인정이냐?》에 잘 나타나 있다.
이후 프레이저의 정치사회이론은 부단히 진화했다. 그는 정의의 또 다른 축으로서, 분배와 인정의 측면에서 불의를 시정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치적 ‘대표’의 측면에서 만인의 동등한 참여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삼차원적 정의론을 발전시켰다. 또한 지구화 시대에 정치가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국민국가의 경계를 넘어서는 초국적인 공론장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구화 시대의 정의》는 그의 이러한 정의론 작업을 결산한 저작이다.
경제 위기와 극우 포퓰리즘의 창궐, 기후 급변 등으로 어지러웠던 2010년대에 프레이저는 이제까지의 이론적 토대 위에서 다른 어떤 사회이론가보다 더 맹렬히 현실에 개입하면서, 신자유주의 이후의 대안을 찾는 많은 이들에게 용기와 영감을 주었다. 그는 정체성 정치만 강조하며 분배 요구를 등한시한 사회운동들을 비판했고, 최근 극우 포퓰리즘이 상당수 대중에게 대안으로 선택받는 근본 원인이 여기에 있음을 통렬히 지적했다. 특히 페미니즘의 대중적 확산에도 불구하고 힐러리 클린턴에 대한 ‘비판적 지지’ 식의 낡은 틀에 갇혀 있는 여성운동을 향해 자기 성찰과 노선 전환을 촉구했다. 그 결실이 《전진하는 페미니즘》 《99% 페미니즘 선언》(공저) 같은 저작들이다.
또한 그는 무엇보다도 사회운동과 좌파정치 전반이 환골탈태해야 함을 역설했다. 2020년 미국 대선 직전에 펴낸 팸플릿 《낡은 것은 가고 새것은 아직 오지 않은》에서 그는, ‘진보적 신자유주의’는 극우 포퓰리즘이 발호하도록 만든 원흉이기에 결코 대안이 될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즉, 극우 포퓰리즘에 맞설 수 있는 것은 오직 노동계급과 중간계급의 동맹에 바탕을 둔 ‘진보적 포퓰리즘’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노동운동, 여성운동, 생태운동, 흑인운동 등이 굳건한 동맹을 발전시켜야 할 근거를 ‘자본주의’라는 토대 자체에서 찾아내려 한다. 다만, 이 ‘자본주의’는 더 이상 고전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이야기하던 그 ‘자본주의’와 같지 않다. 자본-임금노동 관계만으로 환원되지 않는, 더 복잡한 제도적 실체인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책 《좌파의 길: 식인 자본주의에 반대한다》에서 드디어 프레이저의 새로운 자본주의관은 그 전모를 드러낸다. 접기
최근작 : <좌파의 길>,<낡은 것은 가고 새것은 아직 오지 않은>,<99% 페미니즘 선언> … 총 127종 (모두보기)
장석준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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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연구공동체 산현재 기획위원. 전 정의정책연구소 소장. 저서『세계 진보정당운동사』, 『사회주의』, 『신자유주의의 탄생』등. 역서『길드 사회주의』, 『G. D. H. 콜의 산업민주주의』, 『좌파의 길』등.
최근작 : <문화과학 120호 - 2024.겨울>,<서울리뷰오브북스 13호>,<2023 초등 4학년 필독 세트 - 전5권> … 총 57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동시대 가장 독창적인 사회철학자
낸시 프레이저의 뜨거운 제안—
암울한 우리 시대의 가장 우아한 자본주의론이자,
고전의 반열에 오를 단 하나의 명저
★
정희진 추천!
“흐느끼며 일상을 견디는 이들에게 당도한 희망의 목소리.
우리는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가에 대한 ‘답’을 원한다면 이 책을 권한다”
동시대 가장 독창적인 사회철학자, 낸시 프레이저의 역작! 암울한 우리 시대의 ‘가장 우아한 자본주의론’이라 평가받는 이 책은 한 마르크스주의 노학자가 생애 말년에 뜨거운 마음으로 써 내려간, ‘좌파의 길’에 대한 절절한 모색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저자는 오늘날 교착 상태에 빠진 정치 위기와 숱한 사회운동의 혼돈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통적인 고전 마르크스주의 자본주의관에서 벗어나, 자본주의를 새롭게 해석하는 ‘확장된 자본주의관’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그리고 이를 ‘식인 자본주의’라 명명하면서, 그에 맞서는 이론적․정치적 기획을 한 권의 완성체로 묶어 선보인다.
기존의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는 자본주의를 하나의 ‘경제’ 시스템으로 인식하면서 생산 영역 이면에 감춰진 ‘(노동)착취’에 주목했다면, 이 책은 자본주의를 (‘경제’를 넘어서는) ‘사회’의 한 유형, 즉 삶의 모든 영역을 지배하는 ‘제도화된 사회 질서’로 인식하면서 착취 이면의 ‘또 다른 감춰진 장소들’에 주목한다. 착취를 가능케 하는 네 가지 배경조건, 즉 전 지구적인 제국주의적-인종적 수탈, 돌봄 등 ‘사회적 재생산’의 위기, 지구 환경과 자연에 대한 수탈, 정치의 기능 장애로 인한 민주주의의 위기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는 모든 것을 먹어 치우는 ‘자본’의 파괴적인 속성이 근본 원인이며, 이러한 자본의 탐식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서는 확장된 자본주의관으로 무장한 광범위한 (새로운) 사회주의 운동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신자유주의 이후 수많은 정치․사회운동과 비판이론들이 위기에 처해 있는 오늘날, 이 책의 주장과 대안은 독자에게 매우 깊은 영감과 각성을 준다. 페미니즘, 성소수자운동, 환경/생태운동, 노동운동 등 수많은 운동들이 각개약진하면서도 혼돈스럽게 뒤얽혀 있고, 또 한편으로는 ‘진보적 신자유주의’와 페미니즘의 기묘한 동거라거나 극우 포퓰리즘의 만개 같은 전 지구적 현상들이 결국 하나의 근원(‘식인 자본주의’ 자체의 모순)으로 수렴하고 있음을 깨닫고는 충격을 받게 되기도 한다. 이 넘쳐나는 ‘정체성 정치’의 시대에, 이러한 ‘포괄적인 접근’이야말로 어쩌면 가장 절박하고 시급한 과제일지 모른다.
“나를 포함, 흐느끼며 일상을 견디는 이들에게 희망의 목소리가 당도했다. 한계 없는 자본주의의 위장이 터지기 직전인 당대, 이 책은 기존의 거대 담론에서 벗어나 포괄적 접근을 시도한다. 우리는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가에 대한 ‘답’을 원한다면 이 책을 권한다. 인간이라는 시한폭탄을 품고 붕괴가 임박한 지구를 알고 싶다면, 인문학 용어가 정확히 번역된 책을 찾는다면 이 책을 권한다. 적실한 자본주의 입문서를 구한다면 이 책을 권한다.”
-정희진 (여성학 박사, 오디오 매거진 《정희진의 공부》 편집장)
“낸시 프레이저는 최고의 마르크스주의와 페미니스트 전통에 입각한 전설적인 급진 철학자이지만 흑인, 생태, 이민자, 성적 자유 운동에 대한 그의 진정한 포용과 심오한 이해는 그녀를 당대 지식계에서 독보적인 인물로 만든다! 이 책은 암울한 우리 시대에 고전의 반열에 오를 단 하나의 보배다.”
-코넬 웨스트Cornel West (《Race Matters》 저자)
“21세기에 걸맞은 마르크스주의 자본주의론에 대한 자신의 수많은 선구적인 공헌을 훌륭하게 종합한 아름다운 글!”
-볼프강 슈트렉Wolfgang Streeck (《How Will Capitalism End?》 저자)
“이 책은 자신이 번성하는 바로 그 땅, 노동력, 자연 세계를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는 괴물을 소환한다. 저자는 특유의 명확하고 독창적인 산문을 통해 자본주의의 역사적인 변천, 서로 얽힌 역학을 풀어냄으로써 겉보기에 이질적인 위기와 사회적 폭력 사이의 상호관계를 드러낸다. 그를 통해 우리는 반인종주의적, 생태사회적 재생산 비평의 강력한 잠재력을 보게 된다. 그리고 왜 지구와 인류의 미래가 작업장과 거리, 숲과 바다를 가로지르는 반자본주의 투쟁을 구축하는 사회주의 좌파에 달려 있는지를 알게 된다.”
-슈 퍼거슨Sue Ferguson (《Women and Work》 저자)
“저자는 우리 시대의 가장 우아한 자본주의 이론을 내놓았고, 이제 우리는 그 체제를 심판하기를 희망할 것이다. 협소한 경제적 의미에서의 자본주의가 아니라, 완전한 잡식성이라는 의미에서의 자본주의, 주변 모두를 집어삼키는 짓을 멈출 수 없는 체제이자 사람과 자연의 생명을 파괴하는 체제 말이다. 이것이야말로 위기의 시대를 구할 마르크스주의 이론이다.”
-안드레아스 말름Andreas Malm (《How to Blow Up a Pipeline》 저자)
최고의 마르크스주의와 페미니스트 전통에 입각한 전설적인 급진 철학자,
낸시 프레이저는 누구인가
저자인 낸시 프레이저(Nancy Fraser, 1947~ )의 이름이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는 신자유주의가 확고한 지배 이념으로 자리 잡은 1990년대에 착수한 ‘정의’론 작업이었다. 그는 ‘분배’에만 초점을 맞추는 존 롤스식 정의론의 한계를 인정하면서, 여성운동․흑인운동․성소수자운동 등이 제기하는 또 다른 정의관, 즉 문화적 정체성의 ‘인정’을 중심에 둔 정의관을 적극 수용해 이 둘의 공존과 상호작용을 중심에 두는 새로운 정의론을 제시했다(이러한 그의 정의론은 악셀 호네트와 벌인 논쟁의 기록 《분배냐, 인정이냐?》에 잘 나타나 있다).
이후 프레이저의 정치사회이론은 부단히 진화했다. 그는 정의의 또 다른 축으로서, 분배와 인정의 측면에서 불의를 시정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치적 ‘대표’의 측면에서 만인의 동등한 참여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삼차원적 정의론을 발전시켰다. 또한 지구화 시대에 정치가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국민국가의 경계를 넘어서는 초국적인 공론장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지구화 시대의 정의》).
경제 위기와 극우 포퓰리즘의 창궐, 기후 급변 등으로 어지러웠던 2010년대에 프레이저는 이제까지의 이론적 토대 위에서 다른 어떤 사회이론가보다 더 맹렬히 현실에 개입하며, 신자유주의 이후의 대안을 찾는 많은 이들에게 용기와 영감을 주었다. 그는 정체성 정치만 강조하며 분배 요구를 등한시한 사회운동들을 비판했고, 최근 극우 포퓰리즘이 상당수 대중에게 대안으로 선택받는 근본 원인이 여기에 있음을 통렬히 지적했다. 특히 페미니즘의 대중적 확산에도 불구하고 ‘진보적 신자유주의’라는 낡은 틀에 갇혀 있는 여성운동을 향해 자기 성찰과 노선 전환을 촉구했다(《전진하는 페미니즘》 《99% 페미니즘 선언(공저)》).
또한 프레이저는 무엇보다도 사회운동과 좌파정치 전반이 환골탈태해야 함을 역설했다. 그는 극우 포퓰리즘이 발호하도록 만든 원흉인 ‘진보적 신자유주의’에 맞설 수 있는 것은 오직 노동계급과 중간계급의 동맹에 바탕을 둔 ‘진보적 포퓰리즘’뿐이라고 주장했다(《낡은 것은 가고 새것은 아직 오지 않은》). 그리고 이를 위해 노동운동, 여성운동, 생태운동, 흑인운동 등이 굳건한 동맹을 발전시켜야 할 근거를 ‘자본주의’라는 토대 자체에서 찾아낸다. 다만, 이 ‘자본주의’는 더 이상 고전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이야기하던 그 ‘자본주의’와 같지 않다. 자본-노동 관계만으로 환원되지 않는, 더 복잡한 제도적 실체인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책 《좌파의 길: 식인 자본주의에 반대한다》에서 드디어 그의 새로운 자본주의관은 그 전모를 드러낸다.
우리의 시스템은 어떻게 민주주의, 돌봄, 지구를 먹어 치우는가
우리는 이에 맞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우리는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가. 노동은 불안정하고, 부채는 무겁게 어깨를 짓누르며, 생계는 위협받고 있다. 공공 서비스는 퇴보하고, 인프라는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며, 생명을 위협하는 팬데믹과 극단적인 기후위기까지 엄습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해법을 상상하거나 실행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정치의 위기’가 이 모두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이 책은 이 모든 끔찍한 사태의 근원에 관한 심층 탐사다. 그 원인을 진단하고, 범인을 지목한다. 저자는 ‘식인’이라는 은유를 통해, 우리 시대를 이 지경에까지 몰아넣은 이 사회 시스템에 이름을 붙인다. 자기 존재의 토대조차 걸신들린 듯이 집어삼키는, 이른바 ‘식인 자본주의(Cannibal capitalism)’다.
제1장 “걸신들린 짐승: ‘자본주의’의 재인식”에서는, 왜 우리의 자본주의관을 확장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 구체적인 윤곽은 무엇인지를 개괄한다. 이를 위해 마르크스가 말한 ‘(생산 이면의) 감춰진 장소’ 이면의 또 다른 네 가지 감춰진 장소들로 우리를 안내한다. 즉 상품 생산에서 ‘사회적 재생산’으로, 경제에서 ‘생태’로, 경제적인 것에서 ‘정치적인 것’으로, 착취에서 ‘수탈’로 우리의 인식을 이동시키며, 그 구조적 분할을 살핀다. 그리고 자본주의 경제는 이러한 ‘비-경제적(으로 보이는)’ 배경조건에 구조적으로 의존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나아가 이러한 확장된 자본주의관을 바탕으로, 전 지구적으로 연대하는 새로운 정치적 가능성(‘경계투쟁’)의 윤곽을 그려 보인다.
제2장부터 제5장까지는 그 네 가지 ‘감춰진 장소’들을 하나하나 자세히 살펴본다. 각 장소/영역마다 고유한 ‘자본주의’에 대한 구조적 분석과 역사적 성찰(16~18세기 중상주의적 자본주의부터 19세기 자유주의-식민주의적 자본주의, 20세기 중반의 국가-관리 독점 자본주의, 우리 시대의 금융화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 이르기까지), 정치적 이론화를 한데 합침으로써, ‘자본주의’가 수탈․재생산․생태․정치의 각 영역에서 어떻게 ‘제 살 깎아먹는 짓’을 벌이는지를 낱낱이 짚어낸다. 즉, 모든 것을 먹어 치우는 자본의 파괴적인 속성이 기후위기와 인종적 불평등, 돌봄의 평가절하(젠더 지배), 정치위기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위기들을 촉발했는지를 온전히 드러내 보인다.
제2장 “수탈 탐식가: 착취와 수탈의 새로운 얽힘”에서는, 마음껏 먹어 치울 수 있는 집단을 찾아 헤매는 탐식가에게 먹이를 대주는, 자본주의의 수탈/착취 분할을 다룬다. 이른바 인종적-제국주의적 역학이다. 수탈과 착취를 동시에 당하는 시민-노동자는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나. 왜 자본주의는 구조적으로 제국주의적-인종주의적일 수밖에 없는가. 반인종주의를 위한 인종 교차적 동맹은 어떻게 가능한가.
제3장 “돌봄 폭식가: 생산과 재생산, 젠더화된 위기”에서는, 자본주의 시스템에 돌봄 폭식가의 낙인을 찍는, 자본주의의 재생산/생산 분할을 다룬다. 이른바 젠더화된 역학이다. 식민화—가정주부화—가족임금을 거쳐 오늘날 신자유주의의 새로운 규범인 ‘맞벌이 가구’에 이르기까지, 자본주의의 역사적 체제들에서 ‘돌봄’은 어떻게 취급되고 처리되었나. 부유한 가족에서 가난한 가족으로, 전 지구적 ‘돌봄 사슬’은 어떻게 연결되는가. ‘시장화’와 ‘사회보호’의 길항 속에서 어떻게 해방운동이 ‘진보적 신자유주의’에 포섭되었나. 왜 사회적 재생산이 자본주의 위기의 중심 무대일 수밖에 없으며, 새로운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제4장 “꿀꺽 삼켜진 자연: 수탈․돌봄․정치와 얽혀 있는 생태 위기”에서는, 우리의 집인 지구를 자본이 꿀꺽 삼키게 만드는, 자본주의의 자연/인류 대립을 다룬다. 이른바 생태-포식 역학이다. 자연은 어떻게 자본의 수도꼭지이자 하수구로 전락하게 되었나. 생태 위기는 어떻게 수탈, 돌봄, 정치(국가/공적권력)와 얽혀 있는가. 왜 생태정치는 환경을 넘어 자본주의 자체에 맞서야 하는가.
제5장 “도살당하는 민주주의: 정치와 경제의 분할”에서는, 공적 권력을 먹어 치우고 민주주의를 도살하려는 충동을 내장한, 자본주의의 경제/정치 분할을 다룬다. 자본은 어떻게 국가, 공공재, 정치를 무력화하는가. 왜 자본주의는 근본적으로 반민주주의적일 수밖에 없는가. 국경을 넘나드는 글로벌 금융의 지배 아래 정치적 교착 상태에 빠져버린 오늘날, 우리는 이 비상한 역사의 갈림길에서 어떤 정치적 선택을 해야 하는가.
제6장 “진정한 대안의 이름으로: ‘사회주의’의 재발명”에서는, 자본주의에서 도대체 무엇이 잘못됐으며 이에 맞서는 진정한 대안은 무엇인지를 탐색한다. 자본주의를 ‘식인종’으로 새롭게 바라보면 어떤 실천적 차이가 나타나는가. 이 관점은 사회주의에 관한 우리의 이해를 어떻게 바꾸는가. 그렇다면 21세기에 걸맞은 새로운 사회주의는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마지막으로 에필로그 “팬데믹, 식인 자본주의의 광란의 파티”에서는, ‘식인 자본주의’의 모순이 극단적으로 집약되고 응축된 ‘광란의 파티’로서 팬데믹 사태를 다룬다. 수탈․재생산․생태․정치의 서로 얽히고 중첩된 위기들이 어떻게 코로나19와 그 타격을 만들어냈는지, 그 참혹한 비극의 진실이 수면 위로 드러난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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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원제는 ‘Cannibal Capitalism’-낸시 프레이저는 현재의 자본주의를 ‘식인’(제 살 깎아먹기)라 정의하고 수탈과 착취의 자본주의가 인종, 젠더(돌봄과 재생산), 생태 위기에서 민주주의 위기까지 어떻게 폭식하고 있는지 조목조목 밝힌다. 그 혜안에 감탄. 이 남다른 시각에 답이 있을지도.
잠자냥 2023-02-12 공감 (45)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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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시점의 자본주의의 위기를 진단하고 잘 분석한 책. 자본주의를 경제의 논리로만 해석해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문제는 왜 왔고(역사)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대안도 제시하였다(미래). 경제, 사회, 문화, 정치로 다각도로 바라보고 분석하였다는 점이 좋았다.
거리의화가 2023-03-12 공감 (19)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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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훌륭한 번역이다.
이 번역으로 읽고 이해가 안 된다면 번역 탓이 아니라 독자의 이해력이 부족한 것이다.
번역자의 노고에 경의를 표한다!
BaumNamu 2023-08-07 공감 (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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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렴풋ᆢ알고있지만 확실하게 집어 말하지못했던ᆢ
모든것들의 원인~!!배후~~!!
새 시대의 계급, 권력 ᆢᆢ 자본주의ᆢ
우리의삶을 주변부부터 먹어치우는 자학적이기까지한
식인 자본주의~!!
단연 최고의책으로ᆢ우리모두의 전환이 필요하다
jeonare 2023-03-19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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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후 글을 몇번 읽어보셨을까?? 부족한 문해력 탓인지 번역의 난해함 탓인지~답답해서 원서를 읽어볼까? 치기도 부려보지만 부족한 문해력을 탓하며 오늘도 한챕터씩 도전히고 있습니다
moon0491 2023-03-21 공감 (3)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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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의 내적모순 규명, 그리고 새로운 질서의 상상
※ 이 리뷰에는 책의 내용이 일부분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만, 리뷰어의 판단이 개입되어
저자의 의도에 대한 비(非)의도적 오독이 있을 수 있음을 고려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책은 하나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것이다. 왜 자본주의는 무수한 내적 모순을 지니고 있다고 지적하면서도 그 근본적인 모순을 시정하지 못하느냐는 것이다. 더구나 세계의 제도적 질서를 이 문제 많은 자본주의에게 헤게모니를 쥐어주기까지 하고 그 어떠한 대응이나 탈취를 위한 기획이나 행동조차 하지 못하는가 하는 물음이다. 즉 궁극적 해결을 위한 접근 경로를 알지 못하거나, 잘못 짚는 이유에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것이다.
이 말은 ‘자본주의’에 대한 정의를 소위 고전적 경제논리에 입각한 이해에 전념하다보니 그 실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까닭에 있다는 것이며, 그것은 다음과 같은 ‘낸시 프레이저’의 확장된 자본주의 정의에서 드러난다. 전통적이고 오늘에까지 일반적이고 통념적으로 이해하는 “사적소유, 시장교환, 임금노동, 그리고 이윤을 위한 생산에 바탕을 둔 경제 시스템”이라는 단일 특성으로 바라보는 한 결코 자본주의를 제대로 인식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다시 정의되어야 하는데, “이윤 주도 경제가 그 작동에 필요한 ‘경제 외적 기둥’들을 포식하도록 북돋는 사회(societal)질서”, 즉 ‘제도화된 사회 질서’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경제’라는 단일 특성이 아니며, 경제에서 분리되어 드러나지 않지만 실질적으로 자본주의 경제 작동의 근간인 ‘비-경제’(경제외적)기둥 - 생태자연, 돌봄 등 재생산, 법을 비롯한 국가 권력, 수탈 영역 - 을 포함하는 은폐된 요소들을 배제하고서는 자본주의의 어떠한 측면에 대해서도 문제해결에 접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경제 시스템’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질서’라는 것이다. 각 요소들이 난마(亂麻)처럼 얽혀 있는 전체를 보지 못하고 하나의 요소에 제아무리 처방전을 내봐야 고쳐지지 않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귀결이다.
자본주의는 많은 환상을 실재라고 승인하는 조금은 기이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자유로운 노동 시장’같은 말은 법률차원의 자유와 시공간적 자유라는 노동자의 자유의지를 부각시키며, 자본가에 종속적이고, 시공간적 구속을 받는 임금노동자임을 지워버린다. 또한 자본의 목적인 자기축적, 즉 자기자본의 확장이라는 고유충동을 부정한다. 때문에 발생한 잉여의 사회적 할당이 시장에 맡겨져 노동자 등 사회적 복리와는 무관하게 아주 자의적으로 배분되어 불평등을 내재적으로 보유하는 도착적 특성이 마치 없는 듯 행동한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균형(조화)이라는 시장에 대한 환상, 자유노동이라는 환상...,게다가 자본가가 축적하는 잉여는 노동 생산의 이윤만이 아니라 비경제 요소를 무상 또는 해당가치에 훨씬 모자라는 저가로 사용하여 얻는 거의 수탈에 가까운 공짜 이익까지 더해져 사실 자본가의 축적은 더 큰 규모로 이뤄진다.
바로 이것이다. ‘낸시 프레이저’는 자본이 무임승차하면서 한 푼의 비용도 지불하지 않으면서 자기 축적에 전념함으로써 야기되는 전방위적인 사회적 폐해의 요소들을 규명하고, 그것들이 어떻게 얽혀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의 전경이 아닌 배경으로 밀쳐지고 분리되어 눈앞에서 치워진 것들을 찾아내는 것이며, 이를 통해 새로운 질서를 상상해 내는 것이다. 내적 모순으로 인류를 신음하게 하는 헤게모니를 쥔 자본을 시정할 수 있는 대항 질서(대항 헤게모니 연대)를 사유해 보는 것이다.
■ 비경제 요소란 무엇인가?
비경제 요소란 무엇인가? 자본을 경제라는 범주에 특정함으로써 경제 이외의 것들과는 무관한 듯 설명하며 배제한 것, 그러나 자본이 자기 확장을 위해 필수적인 토대로 하여야 하는 것 말이다. 자기 축적을 위한 근본적 요소임에도 아무런 책임이나 부담을 하지 않으려는 요소들. 낸시 프레이저는 이것을 ‘사회적 재생산, 생태 자연, 공적권력과 정치, 그리고 착취와 수탈’, 크게 네 가지로 분류 정리하고 있다.
노동이 생산을 위해 지속적으로 투입되려면 노동은 생산에 참여할 수 있는 조건을 위해 무수한 요인들을 필요로 한다. 정서적 신체적 돌봄, 가사, 육아, 학교, 다음세대를 낳고 사회화하는 일, 공동체 구축, 사회적 협력을 뒷받침하는 가치 지평의 가르침 등등 사회적 유대와 공동인식 유지를 위해 기여하는 일군의 활동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사회적 재생산이라는 비경제 요소의 하나이다.
이들 사회적 재생산을 위한 노동은 자본의 생산 세계에서 분리되어 개별적인 사적 가정의 영역으로 유폐되고, 임금 노동에서 배제되거나 터무니없이 낮은 저임금이라는 중차대한 진실을 가려버린다. 생산노동과 재생산 노동은 분리되어 재생산은 젠더화되고 여성의 차지가 되어왔다, 그런데 금융자본주의 시대인 오늘은 이것들마저 상품화하여 여성을 대거 저임금 서비스 일자리에 충원한다. 이것은 추가적인 문제를 낳고 그것과 다시금 얽히는데, 착취와 수탈의 요소라는 노동의 이중성으로 이어진다. 가난한 여성이 일하는 여성 대신에 저가의 임금으로 돌봄 노동을 수행하며 가난한 여성의 가정은 돌봄의 사각지대화 되어 서발턴을 고착화시킨다. 자본은 사회적 재생산을 공짜로 먹어치우며, 이 비용을 사회에 전가한다. 자본 축적, 즉 잉여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이것에 비용을 치루지 않음으로써 사회적 불균형과 불화라는 자본주의 위기, 내적 모순을 드러낸다.
생태자연이라는 비경제 요소는 자본의 가장 파렴치한 뻔뻔함의 하나일 것이다. 자연은 스스로 무한히 회복할 수 있다는 터무니없는 전제 하에 마치 비용이 제로인 듯 처리된다. 자본주의는 자연의 영역과 경제의 영역을 분할하여 자연은 무상 이용의 원천으로 삼는다. 이것은 자본주의의 위선인데, 경제는 가치 발생의 창조적 인간 행동의 장(場)이지만, 쉽고 무한히 보충할 수 있는 자연은 가치 없는 영역이라 분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또한 기만이자 왜곡인데, 생태 자연은 자본 생산의 필수 토대이기 때문이다. 만일 이것이 없다면 자본의 생산, 자본주의는 한 걸음도 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공짜로 이용하고 그 부담은 하지 않으려 한다. 결국 이 또한 사회에 전가되고, 자본의 내적 모순이라 일컫는 오리무중의 모호한 지대로 자취를 감춘다.
공적 권력과 정치라는 비경제 요소는 자본의 이중적 태도를 보여주는, 그 경계를 오르내리는 자가당착(自家撞着)적 특성을 지닌다. 자본은 자기 멋대로 하기 위해 규제를 폐지하고, 조세의 감면과 탈세를 추구한다. 즉 탈정치를 주장하지만, 자기 확장, 자본축적에 장애가 되는 것을 파괴하고 제거하기 위해서 공적권력과 정치를 요구한다. 이를테면 재산권을 보장하고, 계약 내용의 실행과 분쟁을 심판하고, 노동자 저항을 진압하며, 질서를 보장하고, 이견을 관리하는 국가권력은 시장 교환이라는 자본주의를 떠받치는 가장 원초적인 토대이다. 그러나 작은 정부를 요구하며 작금의 신자유주의를 표방하는 자본주의는 자본의 움직임에 대한 방임을 지향한다.
이미 모순을 포함하고 있지 않은가? 자본주의는 경제와 정치를 분할하여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으로 분리함으로써, 이미 영역간, 그 경계의 자의적 융통성으로 인해 불의와 부패성이라는 위기를 태생적으로 안고 있음을 보여준다. 자본은 이러한 정치적 비용, 공공재의 비용에 대한 어떠한 책임과 부담을 지니려 하지 않는다. 이 역시 공짜이고 무임승차다. 자본주의는 자본축적을 용이하게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시스템으로 진화해왔다. 이것이 사회질서에 엄청난 불평등과 불화의 문제인 것은 그 내적구조의 태생성이 지닌 반(反)민주주의적 속성 때문이다. 지금 한국 사회에 벌어지는 행태, 공공기관 및 그 자산의 민간 매각. 건보료를 비롯한 국민연금 등의 인상이라는 공적 부담의 회피, 대기업 조세감면, 금리의 폭발적인 인상 등은 민주주의 정치의 조건을 파괴한다.
금리 인상이 자본의 파렴치한 무한축적의 동기와 무슨 상관이 있는 건가라고 묻는 이가 있다면 그 어리석음을 무엇에 견줘야 할 것인지 모르겠다. 자본이 사회와 자연의 부를 빨아들이는 일은 부채가 한다. 자본은 즉각적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금융자본을 통해 대중을 훈육한다. 금리 인상은 부채상환에 압박을 받는 사적 개인의 몫이다. 중산층과 저소득층의 경계에 선 많은 이들을 빈곤계층의 나락으로 떨어뜨림으로써 자본은 자기 축적을 확보한다. 여기에 정치권력은 막대한 떡고물을 받기위해 국가권력을 동원하여 자본을 지원한다.
이러한 실태를 여기에 모두 열거하는 것은 지면의 낭비가 될 듯하여 자제토록 한다. 자본은 외형적으로 정치와 분리되어 있지만 내적으로는 긴밀하게 얽혀있다. 분리함으로써 자본은 이 비경제 요소인 국가권력, 공공재의 이용을 위한 아무런 비용도 부담하지 않으며,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는다. 이로부터 민주주의는 파괴되고 사회질서는 그 윤리적 뿌리부터 썩어 들어간다. 이 질서의 혼란이 야기한 복구비용은 오로지 국민이라는 대중의 몫이 된다. 그것은 시간의 고통, 재정적 고통, 삶의 견딤이라는 정서적, 육체적 고통, 민주주의의 정치적 지향성이라 사회 윤리적 비용의 부담이다.

네 번째 요소인 착취와 수탈은 역사적, 지역적 시간에 따라 형태적 형상이 변화되어 온 비경제 요소이다. ‘착취’란 국가가 정해 놓은 법아래 노동으로부터 발생하는 생산 잉여분을 통한 자본 축적을 말하는 것이며, ‘수탈’이란 법이 보호하지 않는 영역의 노동, 즉 가계의 생계가 불가능 할 정도의 임금 또는 무상으로 빼앗는 잉여를 통한 자본축적을 의미한다. 이러한 구분은 역사적으로 그 경계를 변경하며 인종주의와 주변부 지역(예로서 식민지 또는 이에 준하는 포스트 식민국가 등 제3 국가 등)으로부터의 강탈에서부터 현재의 플랫폼노동이나 이 밖의 임시직 노동을 비롯한 새로운 인클로저(물의 상품화를 위한 토지 수용, 식물의 소유권화, 터미네이터 씨앗 등)로 인한 박탈로부터 챙기는 공짜 잉여를 표면에 드러나게 해준다.
이들에게는 사회안정 보험의 수혜도 받지 못하고, 착취 노동자로부터도 경멸받으며, 동료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저 빼앗기며 아무 발언권도 지니지 못한다. 때문에 수탈 대상 계층과 지역민은 제도화된 사회질서의 변경에 그 어떠한 요구도 하지 못한다. 택배노동자, 퀵(음식) 배달 노동자, 경비 노동자 등 긱(geek)노동 에 가해지는 끊임없는 폭행과 불이익의 수용이 지속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비경제 요소들은 결코 그 요소 자체의 문제로 인해 야기되는 불의가 아니다. 이들은 상호 엮여있는데, 이것들에 대한 자체적 요인만으로 문제 해결을 해보았자 미봉책이거나 시늉에 불과한 꼴이 되고 결국 해결되지 않은 채로 지속적으로 곪아가기만 한다. 페미니스트들의 운동을 예로 들어보자. 남성중심 사회를 그 어떤 중심도 아닌 기회 평등과 공정을 외치며 여성의 일자리 진출을 하나의 전형적 모델로 등장시켰다. 소위 ‘맞벌이 가족’이라는 해방 지향 운동으로 보이지만 시장주의자들이 환호하고 나선 것은 자본주의의 모순을 덮는데 아주 유용한 프로파간다였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은 시장 자본주의와 공모하며, 사회적 재생산을 둘러싼 투쟁을 후퇴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이것은 특권을 지닌 여성이 가난한 여성에게 돌봄을 떠넘기면서 가능하게 된 것이고, 유례없는 ‘돌봄 사슬’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자본은 공짜 재생산 비용의 비난을 회피하고, 마치 존재하는 문제가 아닌 듯 책임에서 멀리 떨어질 수 있게 해주었다. 페미니즘을 비난하자는 것이 아니라, 단일 요소의 문제로 접근하면 다른 파생적 문제를 낳는 비경제 요소의 상호 엮임의 문제를 말하려는 것이다.
결국 페미니즘은 ‘착취와 수탈’의 영역과 협력해야 하며, 정치라는 공적 영역의 경계에 대해, 또한 생태자연의 영역과 연대해야 근본적 문제 해결에 접근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것은 남성과의 연대 문제가 아니라 비경제 요소 상호간의 연대의 문제인 것이다. 문제를 만들어내는 세력과 잠자리를 함께하며 문제를 푼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지금까지 좌파라고 하는 집단의 행동도 또한 신자유주의의 놀음에 동참하며 사회적 안전망을 외치는 불가능한 접근으로 자본주의의 축적을 돕는 결과를 초래했다.
신자유주의의 약탈적 정치경제에 해방이라는 매혹적 분위기로 화장해주는 역할을 해 온 것이 페미니즘임을 인식해야 한다. 이것은 사회질서에 커다란 균열이 발생하여 인민대중이 일어날 때 페미니즘과 현재의 좌파, 인종주의는 거부되는 형국을 불러 올 수 있으며, 이는 곧 사회 분열의 다름 아니다. 이렇게 분열된 대중은 결코 반동적 우익 포퓰리즘이 지향하는 추악한 자본 축적의 동기를 저지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며, 비뚤어지고 왜곡된 사회 정의를 바로 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의 그럴듯한 해결은 새로운 왜곡의 시작을 알려 줄 뿐이다. 이의 역사적 실상을 설명하는 것은 그만두겠다. 낸시 프레이저의 목소리(이 책『cannibal capitalism』)를 참조하시라는 조언으로 갈음하여야겠다.
바로 지금 한국사회의 현실이 이를 입증하고 있지 않은가? 극우화된 현재의 권력은 자본의 충실한 충복들이다. 대부분의 언론은 자본축적의 동기로 가득한 대기업의 출자 기업들이다. 이들에게는 자기 확장을 방해하는 요소와 세력은 살해하여야 하는 대상 일뿐이다. 조중동을 비롯한 자본가의 미디어 매체들이 바보같은 이 정권을 기를 쓰고 지원사격하고, 이에 반대하는 세력을 음해로 일관하는 것은 바로 이 자본주의의 당위적 현상이 노골적으로 행사되는 것을 입증하는 것일 뿐이다. 사실 자본주의는 뻔뻔하지 않았던 적이 없으며, 이를 합리화하는 논리와 구조를 만들어 왔을 뿐이다.
이들이 제일 먼저 들고 나온 이슈가 무엇인가? 대기업 조세 감면과 공기업 매각, 공적 부담 장치들의 파괴 아니었던가? 그리고는 주변부의 부를 빨아들이기 위한 금리인상과 각종 공공요금의 무한 증가를 통한 자본 확장의 지원 아니었던가? 그리고는 여성가족부, 국가인권위원회의 해체 등 반민주주의, 반여성주의, 반생태주의, 반노동주의의 기치를 내걸며, 이에 저항하는 인간은 누구라도 때려잡겠다고 을러대고 있지 않는가? 이 모두는 자본주의라는 ‘제도화된 사회 질서’가 지닌 뿌리깊은 내적 모순으로 발생하는 것이며, 그것의 핵심은 비경제 요소를 외면하고 소외시켜 은폐하는 것이다.
■ 맺는 말
책은 18~19세기의 중상주의-자본주의, 19세기~20세기 초의 식민주의-자본주의, 20세기 경제공황과 세계대전 이후의 국가주의-자본주의, 그리고 21세기 오늘날의 글로벌 금융 자본주의의 역사 속에서 이러한 비경제 요소와 경제와의 경계를 어떻게 이전 은폐하며 봉합하여 지속될 수 있었는지를 규명하고 있다. 착취와 계급갈등을 가리기 위해 스위트 홈을 창안하여 남성 중심의 생산 경제와 여성 중심의 가정이라는 비경제로 분리하여 새로운 경계를 만들고, 이에 여성주의가 대두되자 이에 기생하여 맞벌이 가족을 이상화하며 경계를 이동시키고, 급기야 부채를 통한 착취와 수탈의 지대를 만들어 주변부의 부까지 빨아들이는 자본의 민낯을 드러내기에 이르렀다.
자본주의 내재적 모순은 이처럼 경제와 비경제의 경계를 변경하며 은폐해온 역사라 할 수 있다. 오늘 우리들이 사는 세계는 화폐가 곧 권력의 표상이 된 세상이다. 때문에 돈을 받지 못하거나 적은 돈을 받는다는 것은 중요한 진실을 은폐하는 역할을 한다. 가치 없음의 이 상징은 곧 법의 보호에서 배제되며, 제도질서에서 제외되고, 결코 그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을 뿐 아니라 발언권이 없다. 낸시 프레이저는 이러한 모순의 본성을 4D로 설명하고 있다. ‘분할(division)+의존(dependency)+책임회피(disavowal)=불안정화(destabilization)’, 경제와 정치를 분리하고, 자연과 경제를 분리하며, 경제와 수탈을 분할하며, 재생산과 생산을 분리하며 자본은 분리된 것에 등을 돌리고 그에 대한 어떠한 보상도, 책임도 지지 않는다. 이 회피된 것들, 돌봄, 생태계, 수탈대상의 노동, 정의로운 정치에 기생하고 이를 이용하면서도 비용부담도, 그 어떤 책임도 회피하면서 오직 파괴하고 사회와 인간을 고통의 신음으로 몰아넣는다.
책은 이렇게 자본주의 시스템이 은폐한 내적 결함을 감춰둔 장소들에 예리한 빛줄기를 드리워 노출시킴으로써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들을 우리들의 눈앞에 펼쳐 보여준다. 자본주의가 단지 경제 시스템이 아니라 ‘제도화된 사회질서’라면, 새로운 질서를 우리들은 어떻게 만들어 내야 할 것인가? 사실 이 모든 것들을 단 번에 치유할 체제란 불가능 할 것이다. 전통적인 사회주의는 계급주의를 청산하고 사회적 잉여에 대한 분배의 공정성을 확보하면 된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자본주의는 경제, 즉 생산과 시장 교환시스템만이 아니라고 했다. 무임승차하고 돈 한 푼 내지 않는 비경제의 토대에 선 질서 체계이다. ‘젠더와 성, 인종적(확대하여 지역화되고 부채화된 노동),민족적 억압, 정치적 지배에 대한 불균형’까지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사회질서를 창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분리된 경계를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 비경제 영역의 우선순위는 어떻게 두어야 할 것인지, 효율성과 성장을 내세우는 자본의 요구를 압도하는 사회적 가치를 어떻게 기획해 낼 것인지 등 지금까지 자본의 배경에 머물렀던 것을 전경으로 세우기 위한 제도 설계에 대해 숙고해야 한다.
이러한 전제 조건들이 지속 가능성이 보장되는 것이어야 하며, 민주적 과정을 통한 결정이 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저자는 지금까지 경제에 중심을 둔 사회주의와는 다른 새로운 의미의 사회주의를 상상한다. 새로운 제도 질서로서의 사회 창안을. 아마 이 책은 오늘의 한국사회의 현실 속에서 어떻게 이 위기를 해결 할 수 있을 것인지를, 보다 민주적이고 보다 생태적이며, 보다 평등한 성과 이질성의 극복을 위해 분투하는 이들에게 위안과 격려와 영감의 메시지가 될 것이다. 21세기 자본주의의 교과서를 읽는다면 나는 단연코 낸시 프레이저의 이 책을 추천할 것이다.
Cannibal Capitalism: 식인(카니발)이라는 표현을 은유라 설명했지만 사실은 의미 자체 그대로 사용되었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저자는 자본주의를 “‘먹이 떼를 향해 달려드는 포식자 무리’를 제도화 한 것으로서 사회를 바라보게” 한다. 중심메뉴는 바로 ‘우리’ 인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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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아 2023-03-01 공감(19)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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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시스템은 어떻게 민주주의, 공동체의 돌봄 체계, 그리고 지구를 잡아 먹었으며,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전통적인 자본주의 특징을 재조명하고, 현재에 맞는 21세기 자본주의의 속성과 그 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자본주의 시스템의 뒷면을 탄탄한 논리와 근거, 사례를 들어서 설명하고 있는 훌륭한 책이다. <좌파의 길…>로 시작되는 한국어 번역본의 제목은 개인적으로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원래의 책 제목은 <Cannibal Capitalism: How Our System is Devouring Democracy, Care, and the Planetand What We Can Do About It 식인 자본주의: 우리의 시스템은 어떻게 민주주의, 돌봄, 그리고 지구를 잡아먹고 있으며,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이다. 책을 읽은 나로서는 저자의 기본 논지가 ’자본주의‘는 단순한 진영의 논리만이 아니고, 영어 제목에 표기된 것처럼 ‘우리 시스템(Our System)의 문제’라는 점을 알리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자본주의 특징은 1) 공적 영역이자 농산물 생산의 기반이 되었던 토지 거래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파생된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 2) 법률적 지위가 자유롭고, 생계수단과 생산 수단의 확보로부터 자유로운 ‘노동의 거래’를 탄생시킨 ‘자유로운 노동시장’, 3) 자본가의 자유로운 ‘자기자본의 확장’, 4) 상품생산에 쓰일 ‘토지, 노동, 자본’ 등 투입요소 할당과 사회적 에너지의 집단적 적립 현상인 ‘잉여 자본’을 어떻게 투자할 지를 결정하는 ‘시장의 역할’ 로 상징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관점에서의 자본주의는 21세기 자본주의가 몰고 온 국가간의 문제와 사회 구성원 계층간의 문제, 젠더(Gender) 문제, 지구 환경 문제를 온전하게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이 저자의 일관된 주장이다. 그 한가지 사례가 현대 자본주의 사회가 ‘잉여 자본’을 어떻게 사용하는 지는 절대적으로 중요한 문제로서 우리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지만 자본주의 자체는 그에 대한 해답을 노골적으로 회피하고 있다.
어떤 삶을 살기를 원하는가, 가정생활.여가.기타 활동들과 ‘생산적 일’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 나아가 인간과 자연은 어떤 관계를 맺길 원하는가, 미래 세대에게 무엇을 남길 것인가 등의 물음에 대해 자본주의 먹이사슬의 최고 정점에 있는 자본자와 공룡같은 거대한 다국적 기업들은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원래부터 자본주의 제도 자체는 근본적으로 이런 문제를 책임지지 않는다. 원천적으로 사회적 부와 인간 복리의 질적 기준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메커니즘이다.
이에 따라 ‘자본’의 원래 창조주인 인간을 오히려 자본의 ‘종복(노예)’으로 전락시킨다. 우리는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고 해서 ‘경제적으로 노예’가 아니라고 감히 단언할 수 없다. 웬만한 사람들은 온갖 대출금과 신용카드 결제대금을 상환하기 위해 경제적으로 어딘가에 묶여있다. 주인이 명확하게 보일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자본의 추악한 비밀은 시장적 관점에 따른 주장과는 다르게 ‘상품의 교환으로 상징되는 등가물의 교환’을 통해서가 아니라, 노동자의 ‘노동시간 중 일부를 보상하지 않음’으로써 확대된다는 사실이다. 즉, 임금노동이라는 순화된 강압 이면에 보이지 않는 적나라한 폭력과 수탈(노골적인 도둑질)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선거 때마다 불거지는 논쟁하나가 최저임금인데, 이걸 단돈 1천원 올리기가 쉽지 않다. 3천원 이상 하는 별다방 커피는 스스럼없이 사드시는 분들이 자기를 대신하여 노동을 하는 사람들의 임금을 올려주는데에는 사회적 합의나 협상을 해야할 정도로 인색하다. 건물주는 시장 상황이 나쁘다고 임대료를 깍아주지 않는다. 물론…드문드문 착한 건물주도 있긴 하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극소수일 뿐이다. 다들 왜 그럴까?
기존의 이론으로는 현대 자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모순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한국 사회도 자본주의 체제라고 하지만, 난데없이 불거진 남녀간의 젠더갈등, 저출산 문제, 환경문제와 해결책을 자본주의는 스스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자본주의를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만 전체적인 관점에서 올바르게 바라볼 수 있고, 그에 따른 합당한 해결책이나 문제해결을 위한 실마리를 도출할 수 있다.
인식의 전환에서 저자가 강조하고 있는 한가지 핵심적인 것은 단순한 ’생산‘의 관점에서 자본주의를 바라볼 것이 아니라, 인간 존재와 사회적 유대를 생산하고 지탱하는 상호작용, 필수재 공급, 돌봄 제공의 형태들을 의미하는 ’사회적 재생산‘으로 나아가는 전환이다.
위와 더불어 현대 사회에서 ‘제 1권력’이라고 하는 ’화폐‘에서 ’생태‘로, ‘경제적’인 것에서 부의 축적을 뒷바침하고 있는 법과 제도를 형성하는 ’정치적인 것‘으로, 노동력의 ’착취‘ 개념에서 지구가 제공하고 있는 자원을 거의 공짜로 사용하고 있는 ‘수탈’의 개념으로 인식의 전환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자본주의 경제‘ 체제가 아닌, ’제도화된 사회질서‘로서의 자본주의를 전체적인 하나의 사회 시스템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저자는 이러한 관점의 전환에서 발생하는 이해당사자 상호간의 갈등과 충돌을 ‘경계투쟁’이라는 용어로 정의한다. 마르크스가 주장했던 ‘상품 생산과 잉여 가치’에 대한 분배권을 놓고 다루었던 ’계급투쟁‘을 확장한 개념이자, 기존 이론의 한계를 탈피하고자 한다.
경계투쟁의 기본 개념은 정치 vs 경제, 자연 vs 인간, 중심부 vs 주변부, 경제적 vs 비-경제적 영역에서 일어나는 이해관계(집단)의 다양한 충돌을 의미한다. 현대의 자본주의는 단순히 ‘경제’를 넘어 비-경제적 영역까지 거리낌없이 착취와 수탈을 자행하고 있다.
그 결과 오늘날의 21세기 자본주의는 기존의 ‘중상적 자본주의’, ‘자유주의-식민주의적 자본주의‘, ’국가-관리 독점 자본주의‘, ’지구화하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등 역사적으로 등장한 다양한 형태의 ‘자본주의’를 밑바탕에서 지탱하고 있던 사회의 본질적 부분이면서 역사적으로 자본주의 경제와 화합하며 서로를 구성해 오는 동안 나름의 발자취를 남긴 ‘각 영역별 공생관계’ 마저 무너뜨리는 ‘제 살을 깎아먹는 괴물’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식인 자본주의’ 관점으로 현재의 자본주의를 바라 볼 경우에 새롭게 파악할 수 있는 자본주의의 주요 속성과 역학을 저자는 아래 5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첫째, ‘자본주의의 수탈과 착취 분할’을 다룬 인종적.제국주의적 역학. 둘째, 자본주의 시스템에 돌봄 폭식가의 낙인을 찍는 ‘자본주의의 재생산과 생산 분할’을 다룬 젠더화된 역학. 셋째,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를 자본이 꿀꺽 삼키는 ‘자본주의의 자연과 인류의 대립’인 생태-포식의 역학. 넷째, 경제와 정치 분할에 내장된 속성으로 ‘공적 권력을 먹어치우고 민주주의를 도살’하려는 충동의 자본주의와 마지막 다섯째, 자본주의를 식인종으로 바라보게 되면, 이를 극복하기 위한 실천적 차이는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는 지와 더불어 2020년에 발생한 코로나 팬데믹에 관한 이해 역시 어떻게 변화되는 지를 탄탄한 이론과 반박하기 어려운 논리를 바탕으로 ‘21세기 자본주의’ 문제를 입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현재의 한국 사회 속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각종 어려운 문제점도 자연적으로 연상하면서 질문을 해 보게 된다.
‘한국인은 외국과 달리 스타트업 창업보다는 왜 그렇게 부동산 취득에 집착하는가?‘ 부동산을 재산축적의 손쉬운 수단으로 드라이브를 걸었던 세력은 일반 서민층일까? 아니면, 드러나지 않는 어떤 자본세력일까. 정치권은 왜 난데없이 남녀간의 젠더 갈등을 집권을 위한 선거이슈로 들고 나왔을까? 그렇게 함으로서 정치권력이 얻는 진정한 이익은 무엇일까. 그리고…선진국 및 거대 다국적 기업이 최근에 시동을 걸기 시작한 RE100, 탄소 제로 정책 등 지구 온난화 해결책은 그들이 진정으로 지구의 생태계를 걱정해서 하는 주장이고 정책들인가? 아니면 망가진 환경을 이용하여 그 동안 자본주의 제도를 활용하여 천문학적인 부를 축적한 집단이나 국가가 ’지구 생태복원‘ 이라는 또 다른 아젠다로 자기들을 추격하는 일반 중산층이나 ’선진국‘이라는 단어를 아직 붙이지 못하는 경제개발중인 국가의 진입장벽을 또 다시 차단하려는 ’21세기의 보이지 않는, 교묘한 장벽‘인가?
‘식인 자본주의’라는 단어가 어렵다면 아주 쉬운 생생한 사례가 우리 주변에 있다. 상권이 조금 잘된다 싶으면, 건물주들이 임대료를 상승시킨다. 임대료를 내지 못해 그 지역 상가 운영자들은 폐업을 한다. 여러 가게가 순차적으로 문을 닫아 결국 상권이 완전히 죽어버린다. 건물 임대가 나가지 않으니 이번에는 건물주들이 힘들어진다. 이런 결과의 원인을 제공한 사람은 바로 건물주 자신이다.
또한, 지하수를 개발하여 플라스틱 병에 생수를 담아서 파는 기업들은 지구촌 최대의 골칫거리로 부상하고 있는 플라스틱 생수병을 스스로 회수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지구가 주는 지하의 수자원을 개발하여 팔 수 있는 권리는 있어도, 자기들이 만들어서 온 세상에 뿌려대는 일회용 플라스틱 생수병을 회수할 의무는 애초부터 없었다고 당연하게 생각한다. 각종 음식을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에 담아서 팔아 이윤을 획득하는 수 많은 각종 식품회사와 그 회사를 이끌고 있는 사장님, 혹은 회장님도 마찬가지 입장이다. 저자인 낸시 프레이저는 자본주의 체재하에 벌어지는 이런 일련의 행위를 (자원의) ‘수탈’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 대목에서 ‘건물주, 생수회사 사장님, 대기업 식품회사 회장님을 비롯하여 이를 유발하는 사회적 조직 시스템’ 이라는 단어를 ‘자본주의’로 변환시켜보면 된다. ‘자본주의 사회’ 시스템을 스스로 몰락시키는 주인공은 다른 것이 아닌 ‘자본주의 자체’이다. 저자는 인간이 형성하고 있는 공동체를 비롯하여 사회 각 분야에서 도대체 이런 현상들이 왜 벌어지는 지를 설명하고자 한다.
책은 한 페이지를 넘기기가 녹녹치 않다. 무척 집중해서 들어야 조금이라도 이해가 되는 고급 강연을 접하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그렇지만 생각을 하면서 페이지를 넘기면, 그 다음 페이지에서 현대 자본주의에서 살고 있는 내 자신이 ‘보다 나은 사회 혹은 국가는 어떠한 모습을 갖춘 곳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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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bby 2023-02-21 공감(7)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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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여 쪽에 21세기 세상에 대한 답이 담겨 있다니!




이런 책을 만나다니! 마치 다섯 갈래로 나뉜 낯선 지역에서 뭔가 해야 하는데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던 순간이 떠올랐다. 썩 두껍지 않은 책에 21세기, 아니 그 전 300여 년 동안 인류가 탐욕과 무지와 공포, 그리고 이제는 책임을 느끼지만 그 어느 것도 해결할 수 없기에 그냥 하루하루 먹고 마시며 살아왔던 모든 소심함이 담겨 있다. 그러나 이제 그 소심한 하루하루도 더 이상 지속되기 힘들 것이다. 우리 세대까지는 지속할지 모르지만 그 아래 세대에서는 불가능하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이 책에 정답이 있다. 누군가는 그것이 해답이 아니라고 여길 것이다. 갈데까지 가보자며 말이다. 그러나 갈데까지 가고 나면 돌아올 다리는 이미 끊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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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궤변 2023-02-05 공감(6)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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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의 길 - 낸시 프레이저
책을 포함해서 무엇이든 충동구매를 거의 하지 않는 편인데 이 책은 인터넷 서점에서 제목을 보는 순간 '어머! 이건 꼭 사야 해!'라는 반응이 튀어나와 정신 차려보니 집에 도착한 책이다.
국문 제목이 원제보다 더 거창한 느낌인데, 원제는 'Cannibal Capitalism', 즉 '자기 자신을 잡아먹는 자본주의'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책은 우리가 자본주의를 바라보는 시각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주장으로 시작한다.
저자가 말하는 자본주의란 단순한 경제체제가 아닌 '사회'의 한 유형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경제'라는 측면에 국한해서 자본주의를 이해하면 자본주의 때문에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여러 문제들을 제대로 진단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는 필연적으로 자본의 축적을 최우선으로 움직이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인종과 젠더, 환경, 정치 등 4가지 분야에서 각기 착취와 수탈이 일어난다.
여기에서 발생한 착취와 수탈이 곧 자본의 축적을 가져오는 과정인데 특이하게도 자본은 이 4가지의 재생산, 즉 지속가능함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
따라서 이 4가지 분야에서 쌓인 모순들이 다양한 사회운동의 형태로 나타나게 되는데, 저자는 이러한 개별적인 인식이 문제 해결의 근본적인 해답이 아니기 때문에 자본주의를 통합적인 사회 체제로 보는 시각을 제시하고, 이러한 문제들이 다 자본주의 그 자체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라는 논지를 펼치고 있다.
사실 자본주의의 목적이 잉여를 남겨 자본 그 자체를 증식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수탈과 착취는 기본적인 현상이고 여기에 인종과 젠더에 따른 불평등이 관찰된다는 것이 그리 색다른 시각은 아니다.
하지만 저자는 이 부분 외에 자본주의가 노동력의 재생산 과정조차도 갉아먹는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실질소득의 감소, 노동시간의 증가는 당연한 말이지만 노동자가 아이를 낳아 키울 생각을 가로막는 요인이 된다.
당장에 매일 출산율 최저를 갱신하는 우리나라의 현실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세종시의 출산율이 다른 곳보다 높은 이유는 다름 아닌 안정적인 직장과 급여 덕분인 것이다.
저자가 굳이 '수탈'과 '착취'라는 단어를 구분해서 쓰는 이유도 이와 관련이 있다.
즉 착취는 잉여 이익을 착취 당하는 대신 노동력 등 투입되는 자원의 재생산 비용은 지급받는 계층에서 발생한다면, 수탈은 그마저도 보장되지 않는 계층(아동 노동, 노예 노동, 강제 노역 등)에게서 발생하는 현상, 즉 지속가능성이 담보되지 않는 현상으로 정의하고 있다.
따라서 젊은 세대의 급여 수준이 자신의 후속 세대를 키울 정도가 되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는 젊은 세대를 '착취'하는 것이 아니라 '수탈'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경우든 자본가는 절감액을 이윤의 형태로 전유하며,
그 부산물과 함께 살아가야 할(또한 그 때문에 죽어가야 할)
이들에게 환경 비용을 전가한다.
여기에는 미래 인간 세대도 포함된다.
(pg 164)
자연환경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자본주의는 자본의 축적을 위한 원자료를 공급하는 자연을 마치 무한히 존재하는 것처럼 수탈한다.
그리고 환경에 대한 책임은 나무나 몇 그루 심으면 해결되는 것으로 생각한다. (이마저도 하면 다행이다.)
저자의 비유를 그대로 옮기자면 자본에게 자연이란 원료를 공급해 주는 상수도이자 폐기물을 품어주는 하수도이다.
그러면서도 상하수도 비용은 거의 지불하지 않는 셈이기 때문에 이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다음 세대의 인류가 받게 마련인 것이다.
'자기 확장'하도록 조작된, 화폐화된 추상인 자본은 끝없는 축적을 명한다.
그 결과 이윤극대화에 골몰하는 소유주가 '자연의 선물'을 최대한 싸게 징발하는 게
칭찬받을 일이 되고, 그러면서도 사용한 만큼 보충하거나
해를 끼친 만큼 수선할 의무는 모조리 면제받게 된다.
피해는 이윤의 동전 반대 면이다.
(pg 163)
마지막 키워드인 정치 역시 자본의 힘 앞에 무릎 꿇은 지 오래다.
착취와 수탈을 위해서는 안정적인 법률 제도와 장치들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막대하게 커져 국경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자본은 오히려 공적 권력에 불안정성을 가져온다.
대한민국 국민 그 누구도 이재용이 청문회에 끌려 나와 어리바리도 떨고 징역도 살았으니 국가 권력이 자본을 잘 감시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기업들의 '자유로운' 경제 활동을 위한 국제기구들(각국 정부가 아닌)이 게임의 규칙을 만들고 있다.
이 체제에서는 전 세계에 걸쳐 사회적 상호작용의 막대한 부분을 다스리는
강압적 규칙의 알짜를 만드는 것이 국가가 아니다.
대신 유럽연합, 세계무역기구, NAFTA, TRIPS 같은
초국적 거버넌스 구조가 이를 대체한다.
누구에게도 책임지지 않으며, 압도적으로 자본의 이익을 위해 활동하는 이 기구들은
'자유무역'과 '지적재산권' 같은 신자유주의적 관념들을 '헌법으로 제정'하고,
이를 글로벌 체제로 고정시킨다.
이로써 장래에 있을지 모르는 민주적 노동, 환경 입법을 미연에 방지하고 있다.
(pg 243)
이처럼 자본은 자신의 축적에 반드시 필요한 것들을 탐욕적으로 흡수하면서도 그 재생산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기 때문에 '자기 스스로를 갉아먹는' 체제라는 것이 책의 핵심이며, 아래의 문장으로 잘 요약해두고 있다.
자본은 이러한 사회-재생산 활동에 크게 의존함에도 여기에 어떠한 (화폐화된)가치도
부여하지 않으며, 무상으로 무한히 사용할 수 있는 것처럼 취급한다.
게다가 이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은 거의 혹은 전혀 하지 않는다.
따라서 자본을 무한히 축적하려는 끝없는 충동에 따르도록 방치하면,
자본이 의존하는 바로 그 사회적 재생산 과정이 불안정해질 위험에 빠지게 마련이다.
(pg 225)
그래서 결론은 무엇인가?
저자는 당연히 문제의 근원이 자본주의 그 자체에 있기 때문에 자본주의를 해체해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그 자체로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그 이후의 사회를 상상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저자의 답은 '사회주의'이다.
그것도 자본주의에 대한 인식과 마찬가지로 '확장된 개념의 사회주의'여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이 책의 핵심은 자기 파괴적인 성격을 지닌 자본주의에 대한 분석이기 때문에 대안 부분은 언급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사회주의자는 이 뒤집힌 것을 바로 돌려놓아야 한다.
즉 사람들의 양육, 자연의 보호, 민주적 자치를 사회의 최우선으로 놓고,
이것들이 효율성과 성장을 압도하게 해야 한다.
요컨대 사회주의는 자본이 책임을 회피하며 배경 취급하는 사항들을
똑바로 전경으로 끄집어내야 한다.
(pg 280)
책은 총 6장으로 1장에서 자본주의의 확장된 시각을 제시한 뒤 2, 3, 4, 5장에서 자본주의가 수탈과 착취의 대상으로 삼는 인종, 젠더, 환경, 정치에 관한 현상들을 설명하고 6장에서 논지를 종합하는 굉장히 논리 정연한 목차로 구성되어 있다.
참고문헌을 제외하면 약 300페이지 초반으로 그리 두꺼운 책은 아니지만 문장이 그리 잘 읽히는 느낌이 아니라서 읽는데 시간은 꽤 오래 걸린 느낌이다.
(문장은 번역의 문제라기보다는 저자가 다소 현학적으로 썼다는 느낌이 강했다.)
임계치에 도달한 대중이 집단행동을 통해 기성 질서를 변혁할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한다고 결의할 때에만 객관적 곤경은 주체를 통해 발설된다.
그때에야, 오로지 그때에야, 우리는 결단을 요구하는 비상한 역사적 갈림길이라는
좀 더 거대한 의미에서 위기를 말할 수 있게 된다.
(pg 246)
나름 마르크스 자본론도 공부를 좀 했었기 때문에 이를 확장한 저자의 시각이 아주 낯설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자본이 사회의 여러 부분에서 수혜를 얻으며 성장하는데 사실상 노동자의 임금과 어떻게든 피하고 줄이려 애를 쓰는 세금 외에는 무임승차를 하고 있다는 시각이 현실을 바라보는 눈을 더 날카롭게 다듬어주는 느낌이 들었다.
현실 자본주의에 뭔가 잘못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한번 읽어볼 것을 권하고 싶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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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Ssun 2023-03-03 공감(5)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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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사회주의‘도 돌아왔다!
어쨌든, '사회주의'도 돌아왔다!
- [좌파의 길], 낸시 프레이저, 2022.
1.
아직도 '자본주의', '사회주의', '신자유주의' 얘기냐, 묻는 옛 친구들은 "시대가 변했으니 생각도 변해야 한다"는 말하나 마나인 당연한 진리를 이야기하고 있다기 보다는,
오히려 "먹고 살아남기가 얼마나 힘든데"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를 변혁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햇빛에 푸른 등을 반짝이며 날뛰던 산 고등어 시절에 잠시 빠졌던 '거대담론'들이 이제는 삶에 유효하지 않다는 말은,
'자본주의'라는 현 사회체제가 성공하여 역사의 종말을 증명해서였다기 보다는,
세상이라는 뜨거운 석쇠 위에 올라 등이 까맣게 탄 죽은 고등어가 되지 않으려 각자도생 쟁투하는 우리들 삶에선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말이었다.
그러던 중 21세기에,
'자본주의'가 돌아왔다.
2.
"... 현 위기를 발생시킨 책임은 '식인 자본주의(Cannibal Capitalism)' 시스템에 있다... 이 모든 재난이 한데 모여 서로를 악화시키며 우리를 집어삼키겠다고 위협하는, 사회질서 전체의 전반적 위기다... 자본주의 시스템의 모순 역시 '경제' 위기만이 아니라 '돌봄(사회적 재생산)', '생태계(환경)', '정치(공적 권력)'의 위기를 함께 불러들이는 경향이 있으며,... 이 시스템을 구성하는 접합부위마다 벌어지는 '경계투쟁(boundary struggles)'을 불러 일으킨다... 생산과 재생산의 관계, 사적 권력과 공적 권력의 관계, 인간 사회와 비인간 자연의 관계를 처음부터 다시 구축해야 한다... '최선의 희망'은... 오직 '더 커다란 대안을 사고'해야만, 우리 모두를 잡아먹으려는 '식인 자본주의'의 끝없는 식욕을 제압하기 위해 싸울 기회를 확보할 수 있다."
- [좌파의 길], <서문 - '식인'이라는 은유>, 낸시 프레이저, 2022.
미국의 정치철학자 낸시 프레이저(Nancy Fraser : 1947~)는 마르크스 이론을 기반으로 존 롤스의 미국식 '정의론'의 '분배' 이론에 각 주체들의 '인정' 이론을 접합한 '사회주의자'다. 여성운동가로서 좌파적 페미니스트에 자본주의 체제의 인종주의와 제국주의에 반대하며 유럽식 사회민주주의 특징으로서 강력한 '정치'의 역할도 강조한다.
국내에서 올해 [좌파의 길]이라는 제목으로 진보정치 이론가 장석준 선생이 번역하여 출간된 낸시 프레이저의 최근 저서는 그녀가 2022년 발표한 책, [식인 자본주의(Cannibal Capitalism)]가 원제다.
코로나 팬데믹과 극심해진 불평등 자본주의 극단에서 프레이저 사상의 잠정적 총결산과도 같다.
21세기 금융자본주의가 성장할 수록 환경파괴와 기후위기는 심화되고 독점자본이라는 사적 권력을 향한 기업들의 경쟁이 생산하는 재화들이 '공공재(커먼즈:commons)'가 되면서 이 '공공재'를 공유하는 다수대중의 권력이 [어셈블리](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에서 주장하듯 더욱 확장되고 강화되는 현재, '럭셔리 공산주의 선언'(아론 바스타니)을 비롯하여 미국에서조차 '사회주의 선언'(바스카 선카라)도 이미 나왔다.
낸시 프레이저의 '사회주의' 또한 같은 객관적 세계체제를 배경으로 하니, 생산수단으로부터는 배제되어 있지만 공공재를 소유하게 된 집단적 다수대중의 민주주의를 확대하는 사회주의적 '실천'을 강조하는 결론은 다들 대동소이하다.
낸시 프레이저의 책에서 중요한 개념은 '식인 자본주의'와 '수탈', '4D'와 '경계투쟁', 그리고 '생태 사회주의' 정도 되겠다.
1) '식인'이라는 은유
프레이저가 자본주의 사회체제 전반을 은유하는 '식인(cannibalism)'은 사람만이 아니라 주변의 모든 것들을, 나아가 체제로서 스스로 "제 살 깎아먹는"(같은책, <1>) 자본주의의 본원적 특징이다. 서양 신화에 나오는 "자기 꼬리를 먹는 뱀 '우로보로스(Ouroboros)'"다.
"따라서 요점은, 자본주의 사회의 '시장화된 측면'과 '비시장화된 측면'이 '공존'한다는 것이다. 이는 예외적인 현상이나 우연적인 경험이 아니라 자본주의 DNA에 각인된 특징이다. 사실 '공존'은 이 둘의 관계를 포착하기에는 너무 약한 단어다... 이러한 측면을가장 훌륭하게 표현하는 말은 '제 살 깎아먹기(cannibalization)'다."
- [좌파의 길], <1. 걸신들린 짐승 : '자본주의'의 재인식>, 낸시 프레이저, 2022.
자본주의는 '정치'적으로는 자기자본 증식과 잉여가치 창출의 목적을 위해 자본의 사적 권력으로 '정치'의 공적 권력을 이용하거나 무력화시켰다.
'경제'적으로는 생산수단의 소유를 둘러싼 '계급투쟁'의 '경제' 영역 뿐만 아니라, 임금노동의 재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가정과 여성의 '사회적 재생산' 및 '돌봄' 노동처럼 노동의 가치가 지불되지 않는 '비-경제' 영역까지 착취하며, 저발전 남반구의 유색인종들과 자연환경 일체를 아주 공짜로 착취한다.
이 '착취'는 마르크스주의의 정통이념을 넘어 '수탈'로 정의된다.
2) '착취'에서 '수탈'로? 아니 원래 '수탈'로부터
"자본이 임금을 대가로 '노동력'을 구매하는 계약관계 대신, '수탈'은 인간역량과 자연자원을 징발하여 자본확장 회로에 징용함으로써 작동한다... 인종화된 타자에 대한 '수탈'은 노동자 '착취'의 필수배경을 이룬다... '수탈'... 마르크스가 체계적으로 이론화하지 못한 또 다른 사회적 분할을 드러낸다. 자본이 임금노동을 통해 착취하는 (이중으로) 자유로운 노동자와, 자본이 다른 수단을 통해 '제 살 깎아먹기' 대상으로 삼는 부자유한 또는 종속적인 주체 사이의 사회적 분할이 그것이다... '수탈'과 '착취'의 구별은 '경제'적이면서 동시에 '정치'적이다."
- [좌파의 길], <2. 수탈 탐식가 : 착취와 수탈의 새로운 얽힘>, 낸시 프레이저, 2022.
낸시 프레이저는 사회주의자이자 마르크스주의자인데, 그녀의 "확장된 자본주의론"은 마르크스의 '정통 교리'에 기반하고 있지는 않다. 즉, 마르크스의 [자본론]처럼 '착취'라는 '경제'적 개념으로 자본의 축적(본원적 축적 또는 원시축적)을 근원적으로 분석하고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비-인간 자연'과 '제국주의'적이든 아니든 패권에 의해 무력해진 '인종들', 그리고 '사회적 재생산'을 맡고 있음에도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돌봄 노동과 여성들에 대한 전방위적 '수탈'로부터 정의한다.
장석준 선생의 <옮긴이 후기>에 의하면 로자 룩셈부르크의 '자본축적론'의 이론적 계보를 잇는 낸시 프레이저의 '수탈' 이론은 "확장된 자본주의관"의 핵심이다.
일본의 마르크스주의자 사이토 고헤이의 연구에 의하면 마르크스가 인간 사회의 '착취'를 발견한 1867년의 [자본론] 1권 이후 자본주의의 자연 '수탈'에 천착하여 그 뒤로 이어질 자본 연구를 초고 상태로 남길 수 밖에 없었을 수도 있다.
지구를 파괴하는 자본주의는 결국 무자비한 '자연 수탈'을 그 존재의 근원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확장된 관점의 자본주의는 임노동 '착취'의 기본 모순을 넘어 자연(환경), 인종과 여성(사회적 재생산), 정치(공적 권력)에 대한 '수탈'을 통해 "제 살 깎아먹기"(같은책, <1장>)를 시전하며, 위 영역들을 '분할'한 '식인 자본주의'가 그은 각종 '경계'에서 이뤄지는 '경계투쟁(boundary struggles)'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반자본주의' 연대 블록으로 결합된다.
3) '4D' 현상
이 "확대인식된 자본주의 사회"(같은책, <4>)의 모순은 이른바 '4D' 현상으로 압축되는데, '분할(Division)' + '의존(Dependency)' + '책임회피(Disavowal)'의 '3D'가 합쳐져 또 하나의 'D'인 '불안정성(Destabilization)'으로 현상한다는 주장이다.
'경제'와 '비-경제'를, '인간'과 '비인간 자연'을, '경제'와 '정치'를 '분할'하고, 소외된 주체(유색인종, 여성) 및 자연을 무상 또는 저렴하게 수탈하면서 '의존'하며, 잉여가치 창출 외에 이 모든 것에 대한 '책임회피'를 일삼는 자본주의는 결국 '불안정'을 그 본질로 하고 있다는 의미겠다.
4) '경계투쟁' = '반자본주의'
"자본주의 사회는 역사적으로 여러차례 자신을 재발명했다. 특히 다양한 모순들(정치적, 경제적, 생태적, 사회재생산적)이 수렴하는 전반적 위기 국면에는, 자본주의를 구성하는 제도적 '분할'이 이뤄지는 장소에서 '경계투쟁'이 분출했다. 그 장소란, 경제와 정치가 만나고, 사회와 자연이 만나며, 수탈이 착취와 만나고, 생산과 재생산이 만나는 곳이다."
- [좌파의 길], <3. 돌봄 폭식가 : 생산과 재생산, 젠더화된 위기>, 낸시 프레이저, 2022.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선언]에서 공산주의자의 임무는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모든 투쟁과 연대하며 미래의 운동을 대표한다는 '반자본주의' 결론의 현대화다.
생산의 사회화를 위한 조직된 노동자들의 '계급투쟁'을 넘어 여성운동과 반인종주의운동, 생태주의 운동과 결합하는 대대적인 '반자본주의 연대 블록'의 형성과 근본적인 자본주의 체제변혁운동이 21세기 사회주의라는 것이다.
5) '확장'된 '생태 사회주의'
이제 "확장된 자본주의관은 사회주의에 관해서도 확장된 인식이 필요함"(같은책, <6>)을 말해주는데, '자본주의'와 함께 "돌아온" '사회주의'는 단지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체제 붕괴의 징후적 배경과 함께 다시 떠오르는 '반자본주의'적이면서 '자본 이후'를 그려내는 실천적 현실이다.
'자연보호' 수준의 '생태주의'는 '반자본주의'로 방향을 잡고, 이제는 자본가들에 의해 수탈당하지 않는 자연을 복원하는 사회주의여야만 기후환경위기에 처한 지구를 구할 수 있다.
"'반자본주의'라는 이 퍼즐조각은 환경주의를 넘어서는 정치적 지향과 비판세력을 제시한다... 말하자면, '반자본주의'는 모든 역사적 블록에 필수적인 '우리'와 '저들' 사이의 대립선을 긋는 역할을 한다... '최대의 희망'... '환경을 넘어서는 반자본주의적 대항 헤게모니 블록'을 건설하는 데 있다... '생태 사회주의'..."
- [좌파의 길], <4. 꿀꺽 삼켜진 자연 : 수탈, 돌봄, 정치와 얽혀있는 생태 위기>, 낸시 프레이저, 2022.
낸시 프레이저의 "확장된 사회주의론"은 '생태 사회주의'다.
"어쨌든 사회주의도 돌아왔다... 나의 목표는 사회주의 역시 하나의 '제도화된 사회질서'로서 재인식하는 것이며, 이렇게 포괄적이어야만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에 대한 믿을만한 대안이라 자부할 수 있을 것이다."
- [좌파의 길], <6. 진정한 대안의 이름으로 : 사회주의의 재발명>,낸시 프레이저, 2022.
"제 살 깎아먹는" 식인 자본주의라는 확장된 자본주의론에 걸맞게 그 대안으로서 사회주의 또한 '생산수단의 사회화'의 경제 영역만을 근본으로 두는 것이 아니라, "민주적인 정치적 자치의 범위를 확장"(같은책, <6>)하고 자본주의가 그은 "경계선들을 다시 그음으로써 자본주의가 '경제'적인 것과 관련지은 긴급한 사안들을 '정치'적이거나 '사회'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같은책, <6>)을 주요 실천적 임무로 둔다.
물론, 낸시 프레이저는 대안적 사회주의 미래상을 제시하지는 못한다. 다만, 코로나 팬데믹으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 '식인 자본주의'라는 "사회적 총체성"(같은책, <5>) 속에서 '경계투쟁'들의 실천적 연대를 기대하고 있다.
"좌익의 정통교리와는 달리, 자본 축적은 (이중으로) 자유로운 임금노동자의 '착취'를 통해서만이 아니라 정치적 권력과 법적으로 유효한 권리를 빼앗긴 종속적 인구집단에 대한 '수탈'을 통해서도 전개된다. '착취'와 '수탈'의 이러한 구분은 전 지구적인 피부색의 경계선과 일치한다. 자본주의 사회에 내장된 특징인 인종적, 제국주의적 약탈은 현 위기의 모든 측면에 스며들어 있다... (현재의) 노동계급은 더 이상 백인남성광부, 공장직공, 건설노동자로 전형화될 수 없으며, 이제 그 전형은 돌봄노동자, Geek(비정규직)-노동자, 저임금 서비스노동자다. (어쨌든 급여를 받을 경우에는) 재생산 비용보다 더 적은 급여를 받는 이 현대 노동계급은 '착취'를 당하면서 동시에 '수탈'도 당한다. 코비드(Covid-19)는 이 추악한 비밀까지 폭로했다."
- [좌파의 길], <에필로그 - 팬데믹, 식인 자본주의의 광란의 파티>, 낸시 프레이저, 2022.
3.
그리고 어쨌든,
'사회주의'도 돌아왔다.
새로운 '사회적 총체성'의 철학으로 무장한,
'생태 사회주의'로.
언젠가 은근슬쩍 사라졌던 '거대담론'들이 그러했듯,
객관적 사회체제의 변화에 따라서.
먹고 살기 바빠 언제나 생존의 전선에 선 생활인들이 인정하든 말든 말이다.
***
1. [좌파의 길(Cannibal Capitalism)](2022), Nancy Fraser, 장석준 옮김, <서해문집>, 2023.
2. [어셈블리(Assembly)](2017), 안토니오 네그리/마이클 하트, 이승준/정유진 옮김, <알렙>, 2020.
3. [21세기 공산주의 선언 - FALC](2019), 아론 바스타니, 김민수/윤종은 옮김, <황소걸음>, 2020.
4. [미국의 사회주의 선언](2019), 바스카 선카라, <미래를 소유한 사람들> 편집부 옮김, 2021.
5. [지속불가능 자본주의 - 기후위기 시대의 자본론](2020), 사이토 고헤이, 김영현 옮김, <다다서재>, 2021.
6. [마르크스의 생태사회주의 - 자본, 자연, 미완의 정치경제학 비판](2017), 사이토 고헤이, 추선영 옮김, <두번째테제>, 2020.
7. [공산당 선언(Communist Manifesto)], 마르크스/엥겔스, 1848.
8. [레즈를 위하여 - 새롭게 읽는 '공산당 선언'], 황광우/장석준, <실천문학사>,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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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atrice1007 2023-03-25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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