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민석 | Facebook:
· 13 h ·
감사하게도 요즘 계속해서 출판사들로부터 이런저런 연락을 받는다. 신기할 정도로 갑작스럽게 많은 만남 요청이 들어와서 아직도 얼떨떨하다. 이렇게 많은 이들이 나를 지켜보았다는 말인가? 범용성이 높은 것 같아서 마음에 든다는 어떤 출판사 사장님의 말씀을 듣고 나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참 못할 말 할 말 다 하고 살았다는 생각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본래의 관심사로 돌아가야 하는데..
네이버프리미엄컨텐츠에 살짝 썼지만 나는 한국 사회에서 진보좌파가 박정희와 대결하려면
결국 조선왕조에 대한 다른 해석과 비판을 수행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조선왕조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의도하든 하지 않든 근대 자본주의에 대한 긍정으로 이어지는 건 매우 쉽고 어찌보면 "당연"하기까지 하다.
조선왕조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의도하든 하지 않든 근대 자본주의에 대한 긍정으로 이어지는 건 매우 쉽고 어찌보면 "당연"하기까지 하다.
근대적 자본주의를 성취하지 못했기에 식민화되었다고 보면 조선왕조를 부정적으로 평가하기는 쉽다. 이런 입장의 원조가 박정희다. 이승만은 조선왕조를 부정하였지만 스스로가 왕족으로서의 지분이 있다고 생각했기에 마냥 부정하지 않았다. 서정주의 이승만 전기를 꼼꼼하게 읽다보면 이승만이 고종에 대해 품고 있던 어떤 '연민'이 드러난다. 만약 자신의 선조인 양녕대군이 세종에게 왕위를 양보하지 않았더라면 고종 대신 자신이 수모를 당했을거라는 그의 인식을 보면 무언가 기묘하다는 느낌마저 든다.
이와 달리 박정희는 적어도 삶의 전반기에는 철두철미하게 조선왕조를 부정했다. 그는 '군인'으로서의 자신을 조선왕조 양반사대부와 배치시킨다. 그의 세계관에서는 조선왕조=양반사족=무능한 아버지와 형=사회주의자=서구적 민주주의=미국... 등의 연쇄적인 등가관계가 성립한다. 그는 자신을 비난하는 민주화세력이 주자학을 숭상한 양반사족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보았다. 무를 숭상하고 군인이 민주주의를 억압하며 전시체제로 사회를 이끌어야 한다는 인식이 박정희적 세계관을 뒷받침한다. 희한하게도 조선왕조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한국 사회의 저변에는 그 이전의 고려왕조에 대한 어떤 '긍정'이 있다.
뉴라이트를 자처하는 이영훈의 경우에도 고려왕조를 대단히 긍정적으로 평가하는데 그는 아예 고려왕조를 복수의 군사공동체로 구성된 국인체제로 파악한다. 문약한 조선왕조와 군사적 강건함을 지닌 고려왕조를 대비시키며 후자를 긍정하고 전자를 부정하는건데 애당초 고려왕조가 버틸 수 있었던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다원적인 국제질서 덕분이었다. 한나라나 당나라 등의 일원화된 질서를 한반도의 왕조가 견딘 적이 몇번이나 있던가. 원나라 이후의 동아시아 질서에서 고려왕조와 같은 독자적인 세력이 나오는 건 불가능하다. 일본도 태풍만 아니었으면 정복당했을 것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주장처럼 어쩌면 몽골제국은 모든 지역공동체의 자율성을 파괴하고 전제국가를 보편화하는 역할을 수행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렇듯 조선왕조를 부정하여 그 이전의 고려왕조를 긍정하든, 군사정부를 긍정하든 '문약한 양반사족들의 기생적인 가산제국가'라는 조선왕조에 대한 이해는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위험성을 지니고 있다.
이와 달리 박정희는 적어도 삶의 전반기에는 철두철미하게 조선왕조를 부정했다. 그는 '군인'으로서의 자신을 조선왕조 양반사대부와 배치시킨다. 그의 세계관에서는 조선왕조=양반사족=무능한 아버지와 형=사회주의자=서구적 민주주의=미국... 등의 연쇄적인 등가관계가 성립한다. 그는 자신을 비난하는 민주화세력이 주자학을 숭상한 양반사족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보았다. 무를 숭상하고 군인이 민주주의를 억압하며 전시체제로 사회를 이끌어야 한다는 인식이 박정희적 세계관을 뒷받침한다. 희한하게도 조선왕조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한국 사회의 저변에는 그 이전의 고려왕조에 대한 어떤 '긍정'이 있다.
뉴라이트를 자처하는 이영훈의 경우에도 고려왕조를 대단히 긍정적으로 평가하는데 그는 아예 고려왕조를 복수의 군사공동체로 구성된 국인체제로 파악한다. 문약한 조선왕조와 군사적 강건함을 지닌 고려왕조를 대비시키며 후자를 긍정하고 전자를 부정하는건데 애당초 고려왕조가 버틸 수 있었던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다원적인 국제질서 덕분이었다. 한나라나 당나라 등의 일원화된 질서를 한반도의 왕조가 견딘 적이 몇번이나 있던가. 원나라 이후의 동아시아 질서에서 고려왕조와 같은 독자적인 세력이 나오는 건 불가능하다. 일본도 태풍만 아니었으면 정복당했을 것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주장처럼 어쩌면 몽골제국은 모든 지역공동체의 자율성을 파괴하고 전제국가를 보편화하는 역할을 수행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렇듯 조선왕조를 부정하여 그 이전의 고려왕조를 긍정하든, 군사정부를 긍정하든 '문약한 양반사족들의 기생적인 가산제국가'라는 조선왕조에 대한 이해는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위험성을 지니고 있다.
내가 조선후기 사회경제사나 농민의 토지소유구조에 큰 관심을 갖고 있는 건 그런 이유이다. 조선왕조를 적절하게 옹호하면서도 그 한계를 짚어내야 하는데 한다. 과도한 멸시도, 그렇다고 과도한 상찬도 없이 마땅히 받아야 할 평가만을 돌려주기 위해서는 세계사의 전개 과정에 대한 이론적 구성이 필요하다.
그래서 마르크스의 역사이론을 재구성하고, 그 연장에서 근대사회론까지 쓰고 이제 출간을 앞두고 있다. 오래 걸렸다. 마르크스를 매개로 현대 사회의 많은 부분들을 검토하고 내 생각을 정립했다. 소유권이 무엇인지, 소유라는 게 어떤 의미를 지닌 것인지, 더 나아가서 노동이 어떻게 소유를 창출하는지 등등을 열심히 분석했다. 이제 이렇게 쌓인 근대에 대한 인식과 세계사의 기본법칙을 토대로 다시 농민의 토지소유구조로 되돌아가야 한다.
그래서 마르크스의 역사이론을 재구성하고, 그 연장에서 근대사회론까지 쓰고 이제 출간을 앞두고 있다. 오래 걸렸다. 마르크스를 매개로 현대 사회의 많은 부분들을 검토하고 내 생각을 정립했다. 소유권이 무엇인지, 소유라는 게 어떤 의미를 지닌 것인지, 더 나아가서 노동이 어떻게 소유를 창출하는지 등등을 열심히 분석했다. 이제 이렇게 쌓인 근대에 대한 인식과 세계사의 기본법칙을 토대로 다시 농민의 토지소유구조로 되돌아가야 한다.
박정희와의 대결을 마무리 해야 하는데.. 너무 멀리 온 것 같기도 하고.. 공부를 그만하고 싶기도 하고.. 글을 쓰고 말을 해도 별 의미가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그렇다.
같이 새로운 기획을 해보자는 출판사 분들의 요청은 언제나 환영이다.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할 일이 태산 같은데 언제 다 할 수 있을지..
좋은 사람들과 이런 문제의식을 나누고 함께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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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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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를 긍정해야 한국의 민주주의가 산다 - 역사해석의 정치성에 관하여
https://contents.premium.naver.com/.../230409225753220fa
"좌파적 역사관의 입장에서 볼 때 전근대 '국가적 재분배' 시스템을 지닌 조선왕조 경제에 대한 해석이 시장경제와 자본주의에 대한 무조건적인 긍정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논파할 것인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된다. 박정희식 사관이 민주당 386세대에 대한 반(反)비판으로 되살아나는 과정을 보라. 고려왕조를 강건한 기상을 지닌 군사공동체의 나라로, 조선왕조를 문약하고 노비제나 운영한 전제군주의 나라로 보는 담론은 박정희식 군사정부와 민주화 이후의 문민정부를 대비하는 조갑제식 이해와 통한다. 한국 민주주의의 혼란상을 조선왕조 하의 예송논쟁 및 사화 등에 비유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맥락에서 조선왕조에 대한… See more
조선왕조를 긍정해야 한국의 민주주의가 산다 - 역사해석의 정치성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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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를 긍정해야 한국의 민주주의가 산다 - 역사해석의 정치성에 관하여
일신상의 문제로 내일 글을 올리려 하였지만 아무리 그래도 구독자 여러분과의 약속이 있는데 어떻게 한주를 미룰 수가 있겠습니까? 조선왕조를 바라보는 역사관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다루어보았습니다. 많은 관심과 구.....
김승호
말씀하신 바완 좀 다른 이야기지만, 박정희가 쿠데타 후 민정 이양 직전 탈고한 국가와 혁명과 나와, 집권 후반기에 탈고한 민족 중흥의 길의 각 내용을 비견함, 저 개인적으론 뭔가 이 사람이 봉건체제와 전통에 대해 내리는 평가가 전자 대비 후자에서 한결 후해졌단 느낌을 받았어서 재밌었던 기억이 납니다. 스스로 체제가 되어 20년 가까이 살아보니 선배(?) 체제들에 대한 일종의 이해나 연민 같은 게 생겨났던가 싶어서요.
Reply1 dEdited
손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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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역사이론 원고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지점이 왜 인류사의 한 시점에서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예속신분제"를 경험해야만 했는지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다. 올해에 나올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근대사회론을 주제로 한 나의 첫 책은 "마르크스의 <법철학>"을 내가 쓴다는 마음으로 썼다면, 역사이론 원고는 헤겔의 <정신현상학>을 유물론적으로 비판하는 "마르크스의 <정신현상학>"을 쓴다는 마음으로 썼다. 헤겔의 <정신현상학>이 자기의식의 발전 과정을 체계적으로 분석하면서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을 통해 노예의 자기해방과정을 다뤘다면, 역사이론 원고는 이것을 유물론적으로 뒤집어서 전개한다. 그렇기에 인류사의 발전과정에서 왜 예속신분제라는 끔찍한 노예적 상태를 인류가 경험하지 않을 수 없는지를 설명해야만 한다.
역사이론의 결론이 우리가 노예제와 농노제라는 예속신분제를 거쳐서 비로소 "자연의 전제(專制)"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 See more
Snih Knawuglu
아 그래서 자유는 예속이라고 빅브라더가(아님).
Reply1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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