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천보 전투, 중국인이 지휘” 김일성 신화 걷어내다
입력2020
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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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1912~1945’ 출간한 중국동포 출신 재미작가 유순호[경향신문]
한국현대사에서 김일성 주석만큼 논쟁적인 인물이 있을까. 김일성은 북한에선 ‘신’이나 다름없지만 남한에선 ‘전쟁범죄자’에 불과하다. 사진은 북한 평양 만수대대기념비 앞 김일성의 동상. 위키피디아
“오늘날 해외동포까지 포함한 한민족에게 김일성에 대한 평가는 양극단으로 갈라져 있습니다. 한쪽은 ‘신화’, 다른 쪽은 아주 ‘가짜’이지요. 진실은 이 양극단 사이 어디쯤엔가 위치해 있습니다.”
항일투쟁 영웅인가, 마적떼 두목인가. 한국현대사에서 북한 김일성 주석(1912~1994)만큼 논쟁적인 인물이 있을까. 북한에선 김일성을 신처럼 떠받들지만, 남한에선 ‘전쟁범죄자’인 그에 대한 언급조차 조심스러운 것이 현실이다. 지난 20일 출간된 중국동포 출신 재미 작가 유순호씨의 <김일성 1912~1945>(사진)는 ‘진짜’ 김일성 찾기를 주장하는 논픽션 다큐멘터리다. 1912년 출생부터 1945년 평양 귀환까지 김일성의 일대기를 1930~1940년대 만주 무장항일투쟁을 중심으로 총 2853쪽에 걸쳐 조명했다. 지난 19일 전화 인터뷰에서 유씨는 “김일성의 문제는 진짜냐 가짜냐가 아니라 얼마나 부풀려졌고 거짓말을 했느냐”라며 “김일성을 신에서 인간으로 환원시켜야 그의 원래 공적도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일성 1912~1945>를 쓴 유순호씨는 중국서 소설가로 활동하다 공산당 비판으로 중국 내 활동이 어려워지자 미국으로 이주했다. 유씨 제공
항일투쟁 영웅·마적떼 두목
극단으로 갈라져 있는 평가
‘진짜’ 모습 찾아 복원 나서
유씨는 1982년부터 약 20년 동안 중국 동북3성 항일투쟁지 전역을 걸으며 자료를 수집했고, 항일연군 생존자와 관련자 200여명을 직접 만나 취재했다. “제가 중국 문화대혁명 후반기에 태어나 어릴 때 읽을 책이 없었어요. 제가 살던 연변 도문시는 강 건너 북한에서 책을 구할 수 있었는데 모두 ‘김일성 장군 신화’에 관한 것이었죠. 북한 어린이들 못지않은 ‘김일성 장군 숭배자’가 됐습니다. 근데 제가 열여섯 살 때 할머니가 김일성은 ‘가짜’라면서, 할아버지가 ‘진짜’ 김일성을 도왔다며 겪은 일을 들려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후 취재 과정에서 책과는 판이하게 다른 김일성의 이야기들을 접하면서 의문이 커져갔죠. 논란에 종지부를 찍고 싶다는 마음이 컸습니다.”
책에서 의미 있는 지점은 김일성과 함께 싸운 항일연군 참가자들만이 아니라 그를 잡으려 한 만주국 보고서와 중국 정부 중앙당안관 자료까지 얻어 김일성을 종합적으로 복원하려 했다는 것이다. 특히 1990년대 나온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등 북한 측 자료의 오류와 왜곡을 바로잡는 데 집중했다. 대표적 오류 중 하나가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 중 가장 큰 성과로 꼽히는 1937년 6월 ‘보천보 전투’다.
“김일성 부대, 즉 항일연군 2군 6사 부대가 추격당하는 과정에서 압록강을 넘어 북한 함경남도 보천보를 습격한 사건입니다. 전투 규모는 작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 당시 언론들이 일제히 김일성의 이름을 보도하면서 파급력이 대단했습니다. 하지만 실제 보천보까지 들어갔던 지휘관은 김일성이 아닌 6사 작전참모장이었던 중국인 왕작주(王作舟)였고, 전투 참가자는 중국인 대원들이 더 많았다는 자료들을 발굴해 책에서 맥락을 복원했습니다. 그 시기 주요 전투로 꼽히는 ‘무송현성 전투’ ‘간삼봉 전투’ 역시 오성륜(전광)이 총지휘를 맡았습니다.” 책에선 이렇게 김일성의 업적으로 알려진 사건들만이 아니라 그의 젊은 시절 비행, 일본으로의 귀순 논의, 소련으로의 도주 과정 등을 하나하나 짚어낸다.
북, 업적 과장해 우상화 문제
인간 김일성 ‘공과’ 바로 볼 때
남북 화해·협력에 이로울 것
요약하자면 “김일성이 항일투쟁을 한 것은 맞지만 과장이 지나치다”는 것이다. “1980년대만 해도 김일성과 항일투쟁을 한 중국인 혁명가들이 많이 살아 있었습니다. 그들은 김일성을 떠받드는 북한 작태에 무척 반감을 갖고 있었고, ‘다 죽게 된 것을 살려줬더니 온통 거짓말을 하고 있다’며 ‘도둑놈’이라고도 했습니다. 남의 업적을 자기 것으로 훔쳤다는 겁니다. 하나같이 바란 것은 사실을 밝혀 ‘원상복귀’시켜 달라는 것이었죠.”
책은 이를테면 ‘경계인’의 작업이다. 유씨는 남북한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고, 한반도에 통용되는 이념 잣대로 진보와 보수로 분류하기도 어렵다.
“4년 전 상권 원고를 들고 한국 출판사 100여곳을 상대로 ‘원고투어’를 했는데 모두 못하겠다더군요. 박근혜 정권 때는 ‘국가보안법에 저촉될 수 있다’ 했고,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뒤에는 ‘북한 김정은이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거죠. 북한 측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찾아오는 등 우여곡절도 많았습니다. 책이 연구논문집은 아닙니다만 모두 실재했던 기록에 남아 있는 인물이며, 사건들은 자료에 근거해 증언자들의 고증을 거쳤습니다. 김일성 신화를 걷어내는 것이 목적이었기에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전체 맥락을 담아내는 데 힘썼습니다.”
유씨는 북한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결국 김일성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북한은 여전히 김일성의 살아 있는 영혼이 지배하는 나라입니다. 북한 주석직은 공석이고, 김정은은 할아버지의 행동뿐만 아니라 외모까지 닮으려 애쓰죠. 국가적 슬로건도 ‘항일 유격대식으로’예요. 빨치산처럼 이로울 땐 싸우고 불리하면 도망치는 거죠. 문재인 정부가 북한에 골탕 먹는 이유입니다.”
그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이 책을 읽어주길 바란다. “청년 시절 김일성은 있는 대로의 모습으로도 훌륭합니다. 독립운동가 자식으로 태어나 어려움을 딛고 혁명가로 성공했잖아요. 비행기가 떨어질 때 날개가 있으면 유연하게 착륙하겠지만, 날개 없이 추락하면 박살날 수밖에 없습니다. 김일성을 신에서 인간으로 돌려놓는 것이 북한에도 이롭다고 생각합니다. 남북 화해와 협력을 위해서도 김일성에 대한 폄하와 신화를 걷어내고 남북 모두 그의 공과를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배문규 기자 sobbell@kyunghyang.com
“오늘날 해외동포까지 포함한 한민족에게 김일성에 대한 평가는 양극단으로 갈라져 있습니다. 한쪽은 ‘신화’, 다른 쪽은 아주 ‘가짜’이지요. 진실은 이 양극단 사이 어디쯤엔가 위치해 있습니다.”
항일투쟁 영웅인가, 마적떼 두목인가. 한국현대사에서 북한 김일성 주석(1912~1994)만큼 논쟁적인 인물이 있을까. 북한에선 김일성을 신처럼 떠받들지만, 남한에선 ‘전쟁범죄자’인 그에 대한 언급조차 조심스러운 것이 현실이다. 지난 20일 출간된 중국동포 출신 재미 작가 유순호씨의 <김일성 1912~1945>(사진)는 ‘진짜’ 김일성 찾기를 주장하는 논픽션 다큐멘터리다. 1912년 출생부터 1945년 평양 귀환까지 김일성의 일대기를 1930~1940년대 만주 무장항일투쟁을 중심으로 총 2853쪽에 걸쳐 조명했다. 지난 19일 전화 인터뷰에서 유씨는 “김일성의 문제는 진짜냐 가짜냐가 아니라 얼마나 부풀려졌고 거짓말을 했느냐”라며 “김일성을 신에서 인간으로 환원시켜야 그의 원래 공적도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일성 1912~1945>를 쓴 유순호씨는 중국서 소설가로 활동하다 공산당 비판으로 중국 내 활동이 어려워지자 미국으로 이주했다. 유씨 제공
항일투쟁 영웅·마적떼 두목
극단으로 갈라져 있는 평가
‘진짜’ 모습 찾아 복원 나서
유씨는 1982년부터 약 20년 동안 중국 동북3성 항일투쟁지 전역을 걸으며 자료를 수집했고, 항일연군 생존자와 관련자 200여명을 직접 만나 취재했다. “제가 중국 문화대혁명 후반기에 태어나 어릴 때 읽을 책이 없었어요. 제가 살던 연변 도문시는 강 건너 북한에서 책을 구할 수 있었는데 모두 ‘김일성 장군 신화’에 관한 것이었죠. 북한 어린이들 못지않은 ‘김일성 장군 숭배자’가 됐습니다. 근데 제가 열여섯 살 때 할머니가 김일성은 ‘가짜’라면서, 할아버지가 ‘진짜’ 김일성을 도왔다며 겪은 일을 들려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후 취재 과정에서 책과는 판이하게 다른 김일성의 이야기들을 접하면서 의문이 커져갔죠. 논란에 종지부를 찍고 싶다는 마음이 컸습니다.”
책에서 의미 있는 지점은 김일성과 함께 싸운 항일연군 참가자들만이 아니라 그를 잡으려 한 만주국 보고서와 중국 정부 중앙당안관 자료까지 얻어 김일성을 종합적으로 복원하려 했다는 것이다. 특히 1990년대 나온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등 북한 측 자료의 오류와 왜곡을 바로잡는 데 집중했다. 대표적 오류 중 하나가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 중 가장 큰 성과로 꼽히는 1937년 6월 ‘보천보 전투’다.
“김일성 부대, 즉 항일연군 2군 6사 부대가 추격당하는 과정에서 압록강을 넘어 북한 함경남도 보천보를 습격한 사건입니다. 전투 규모는 작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 당시 언론들이 일제히 김일성의 이름을 보도하면서 파급력이 대단했습니다. 하지만 실제 보천보까지 들어갔던 지휘관은 김일성이 아닌 6사 작전참모장이었던 중국인 왕작주(王作舟)였고, 전투 참가자는 중국인 대원들이 더 많았다는 자료들을 발굴해 책에서 맥락을 복원했습니다. 그 시기 주요 전투로 꼽히는 ‘무송현성 전투’ ‘간삼봉 전투’ 역시 오성륜(전광)이 총지휘를 맡았습니다.” 책에선 이렇게 김일성의 업적으로 알려진 사건들만이 아니라 그의 젊은 시절 비행, 일본으로의 귀순 논의, 소련으로의 도주 과정 등을 하나하나 짚어낸다.
북, 업적 과장해 우상화 문제
인간 김일성 ‘공과’ 바로 볼 때
남북 화해·협력에 이로울 것
요약하자면 “김일성이 항일투쟁을 한 것은 맞지만 과장이 지나치다”는 것이다. “1980년대만 해도 김일성과 항일투쟁을 한 중국인 혁명가들이 많이 살아 있었습니다. 그들은 김일성을 떠받드는 북한 작태에 무척 반감을 갖고 있었고, ‘다 죽게 된 것을 살려줬더니 온통 거짓말을 하고 있다’며 ‘도둑놈’이라고도 했습니다. 남의 업적을 자기 것으로 훔쳤다는 겁니다. 하나같이 바란 것은 사실을 밝혀 ‘원상복귀’시켜 달라는 것이었죠.”
책은 이를테면 ‘경계인’의 작업이다. 유씨는 남북한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고, 한반도에 통용되는 이념 잣대로 진보와 보수로 분류하기도 어렵다.
“4년 전 상권 원고를 들고 한국 출판사 100여곳을 상대로 ‘원고투어’를 했는데 모두 못하겠다더군요. 박근혜 정권 때는 ‘국가보안법에 저촉될 수 있다’ 했고,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뒤에는 ‘북한 김정은이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거죠. 북한 측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찾아오는 등 우여곡절도 많았습니다. 책이 연구논문집은 아닙니다만 모두 실재했던 기록에 남아 있는 인물이며, 사건들은 자료에 근거해 증언자들의 고증을 거쳤습니다. 김일성 신화를 걷어내는 것이 목적이었기에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전체 맥락을 담아내는 데 힘썼습니다.”
유씨는 북한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결국 김일성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북한은 여전히 김일성의 살아 있는 영혼이 지배하는 나라입니다. 북한 주석직은 공석이고, 김정은은 할아버지의 행동뿐만 아니라 외모까지 닮으려 애쓰죠. 국가적 슬로건도 ‘항일 유격대식으로’예요. 빨치산처럼 이로울 땐 싸우고 불리하면 도망치는 거죠. 문재인 정부가 북한에 골탕 먹는 이유입니다.”
그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이 책을 읽어주길 바란다. “청년 시절 김일성은 있는 대로의 모습으로도 훌륭합니다. 독립운동가 자식으로 태어나 어려움을 딛고 혁명가로 성공했잖아요. 비행기가 떨어질 때 날개가 있으면 유연하게 착륙하겠지만, 날개 없이 추락하면 박살날 수밖에 없습니다. 김일성을 신에서 인간으로 돌려놓는 것이 북한에도 이롭다고 생각합니다. 남북 화해와 협력을 위해서도 김일성에 대한 폄하와 신화를 걷어내고 남북 모두 그의 공과를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배문규 기자 sobbel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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