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주의 시리즈 마지막 3편 - 한국의 민족 개념의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
원래 시리즈로 생각하고 올린 글은 아니었지만 쓰다 보니 평소 생각한 것들이 엮이고 모이면서 시리즈처럼 되는 것 같아 아예 민족주의 시리즈로 묶어서 마지막 3편을 쓰게 되었다. 시리즈라고 하니 먼가 거창해 보여도 그냥 평범한 필부의 잡생각에 불과하니 너무 의미 부여 하면서 읽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리고 1, 2편을 반드시 읽어야 되는 글도 아니니 1, 2편을 안 읽으신 분들은 그냥 스킵 하고 바로 읽어도 될 듯 싶다.
1편 반일 감정의 기원
https://www.facebook.com/permalink.php?story_fbid=492573920947787&id=100005855490104
2편 한민족은 정말 강대국들의 일방적인 희생자인가?
https://www.facebook.com/permalink.php?story_fbid=492889760916203&id=10000585549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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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 한민족은 정말 강대국들의 일방적인 희생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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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1, 2편에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거칠게 요약하자만 한국적 민족주의의 포장을 벗겨내고 한번 생얼을 드러내 보고자 하는 것이었다. 과연 한국인들이 별다른 비판 없이 받아들여온 20세기 한민족의 비극적 피해자 묘사가 과연 실제 역사에 얼마나 부합되느냐 따져보자는 것이었다. 거기다가 거의 모든 한국인들에게 종교적인 심성으로 박혀있는 반일 민족주의의 유별남이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것 만큼 단순히 응어리진 감정에서만 비롯된 것이냐고 하나하나 따져보자는 것이었다. 내가 나름 내린 결론은 한국적 민족주의 서사는 여러 과거 사례와 다른 나라가 그랬듯이 하나의 과 포장된 신화였다는 것이다.
3편에서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그렇다고 한국인들이 반드시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민족 개념을 확 버려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현실적으로도 불가능 하며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그게 꼭 좋은 결과를 보장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민족 개념은 일종의 국민국가를 이루는 근원적 정체성으로 서 공동체를 유지시켜 주는 기반이자 토대이다. 내가 여기서 말하는 민족 개념은 반드시 혈연적 문화적 구성된 협의의 민족이 아닌 이념적 역사적 헌법적으로 구성된 광의의 민족 개념이다. 다민족 다인종으로 구성된 미국도 미국적 헌법 가치로 결속된 미국 민족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물론 이럴때는 민족 보다는 국민이 더 어울릴 것이다. 하지만 민족, 국민 모두 영어로는 nation, people 등으로 번역되어 구분이 애매한 만큼 나는 일단 광의의 의미로서 민족을 선택하여 사용할 예정이다.
내 인생의 책 탑 5안에 들어가는 책 중 하나인 바른마음[조너선 하이트]에 보면 영장류로서 인간에 대해 대충 이런 설명이 등장한다. 인간의 본성은 90프로는 침팬지, 나머지 10프로는 벌과 같다. 인간은 물론 일상의 대부분의 시간을 하나의 개체로서 살아간다.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나란 개체의 생존과 쾌락이다. 하지만 인간은 가끔 자발적으로 개체로서 자신을 버리고 흡사 벌처럼 집단을 이루어 군집 속에 자신을 던져버린다. 그 속에서 자신을 잊게 되고 엄청난 고양감과 희열을 느끼며 심지어 개체로서 자신의 생명까지 던져버리는 행동까지 서슴지 않고 저지른다. 그래서 단지 개체로서 인간을 보는 것은 단편적이고 부분적인 관점일 뿐 인간의 집단주의 경향 또한 함께 판단해야 비로소 온전히 인간의 본성에 보다 종합적인 판단에 가까워 진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개체의 생존과 번식만을 추구하는 유전자에만 추동 되어 진화되었다는 혈연 선택은 인간이 집단을 위해 과감하게 자신을 희생하고 버리는 걸 잘 설명하지 못한다. 가까운 친족을 위한 희생이라면 공유하는 유전자 때문이라는 설명이 가능하지만 그러한 혈연적 근친성이 떨어지는 다수 집단을 위한 희생을 설명하기에는 기존의 혈연 선택 이론으로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바른마음의 저자는 과감하게 인간은 혈연선택과 집단선택 두 가지 모두의 진화적 모형에 따라 진화해 온 것이 아닌가 하고 추론한다. 한 편에서는 개체 생존이 우선인 혈연선택에 의해 진화되어 왔고 한편에서는 집단을 위해 자기 희생하는 집단이 타 집단에 비해 더 진화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인간 본성 안에는 이기성과 이타성을 모두 갖추고 있을 것이라는 것이 이러한 공진화 이론의 내용이다.
사피엔스에 주장하는 것 처럼 인간이 여타 유인원과 결정적으로 달라지는 지점은 인지 혁명을 통해 허구적인 개념을 창조해 내고 그걸 정말 현실에 존재하는 것 처럼 믿을 수 있는 능력이다. 그래서 인간은 집단 누구나가 믿고 따르게 되는 신화와 종교와 이념을 만들어 냈고 이를 통해 단지 수백에 불과한 유인원 집단의 한계를 돌파하고 수만 수십만 수백만이 함께 협력하고 공존하는 극도로 복잡한 공동체를 만들어 냈다. 상상에 의한 개념 창조와 이를 진지하게 믿을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면 수만 수십만 수백만이 모여 살며 공통의 규칙을 지키고 협력 하게 하는 것은 불가능 했을 것이다.
결국 종합하면 인간이 집단에 기꺼이 들어가고 집단의 규율에 복종하며 집단 전체의 공익을 위해 자기의 이익을 버리고 심지어 희생 까지 하는 것은 진화적으로 선택되어 인간의 본성 안에 깊이 들어가지 않았겠냐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이 가끔 집단에 들어가서 자기를 잊고 희열을 느끼며 심지어 초월적 감각까지 경험 하는 것은 진화적인 측면에서 그렇게 선택되었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초 거대한 스타디움 안이나 길거리, 광장에셔 수 많은 관중이 모여 자국팀을 응원할 때 느끼는 대양감은 아마도 2002년 월드컵을 경험한 누구나 느껴봤을 감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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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바는 이렇다. 집단주의는 그 자체의 옳고 그럼을 따지는 도덕적 판단 이전에 인간의 본성상 깊이 내장되어 있는 기능이며 정말 고민해야 할 지점은 이러한 집단적 성향이 제대로 제어 받지 못해 파괴적이고 폭력적인 방향으로 표출되어 그 공동체 안의 개인의 삶을 파괴하고 불행하게 만들게 하는 걸 방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불행과 비극이 특히 지난 세기에 지구촌 곳곳에서 실제 벌어졌고 지금도 행해지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는 것이다. 전근대 시대 축의 시대 때 만들어진 세계종교와 보편윤리, 그리고 봉건적 신분제에 눌려있던 민족적 집단주의는 근대가 들어오면서 세계 종교와 신분제가 허물어지며 자신을 가두고 있던 우리를 빠져 나오게 된다. 세계가 국민 국가 단위로 재편되고 정립되면서 각 국가들은 자국 국민들에게 앞다투어 민족 정체성과 자부심을 불어넣게 되고 온갖 신화를 만들어 내며 국가와 민족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도록 교육시킨다. 그리고 종교가 사라진 세속 사회에서 각 개인의 공허한 종교적 초월적 심성의 자리를 민족이라는 새로운 종교가 차지하게 된다. 유한하고 불완전한 개체라는 지류는 완전하고 완벽하고 영원한 불멸의 민족이라는 대해에 모여들어 비로서 하나가 되고 극도의 희열을 느낄 수 있다. 민족주의 신화는 이렇게 탄생한다.
그래서 이러한 고삐 풀린 원초적 민족주의 에너지가 파괴적으로 전환된 가장 극단적인 예가 바로 독일의 나치즘과 일본의 군국주의였다. 그리고 오늘날 한국 맞은편에 존재하는 한때 같은 국가 단위 속에 속했던 북한이다. 개체는 집단의 영광을 위해서만이 존재하며 개체는 집단 속에서 완전해 진다. 개체는 순수해야 하며 다른 민족의 침입으로 불결해 지고 불순해 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 이러한 순수한 민족을 타락과 불순으로부터 지키기 위해서는 한 명의 위대한 지도자에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 이로서 모든 개체는 집단에 녹아 들어 간다. 이러한 극단적 인종주의적 민족주의는 진화적으로 발전한 인간 본성의 집단주의가 제대로 제어 받지 않고 통제되지 않고 그 원초적 에너지 그대로 발산된다면 얼마나 큰 재앙과 비극을 초래하는 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의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이러한 원초적 에너지가 파괴적으로 표출되지 않고 사회를 응집시키며 공동체 통합에 기여하며 타 집단과 공존할 수 있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통제하고 제어 할 수 있을까, 나는 그것이 바로 모든 현대적 국가의 기본 이념인 인본주의적 보편 인권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파시즘과 전체주의가 횡횡 할 때 민주주의 체제를 지켜낸 영국과 프랑스, 미국은 혈연적 문화적 민족주의 개념만 있었던 독일 이나 일본과 달리 인본주의적 보편 가치라는 공동체 이념에 의해 국가 국민 정체성을 재설정 하였다. 영국, 프랑스, 미국의 시민 혁명은 누구도 부정 할 수 없는 천부적 인권 개념 바탕 위에서 성립 되었고 이러한 힘이 파괴적 집단주의가 횡횡 할 때 의회 민주주의 체제를 지켜낸 힘이라고 생각한다.
인본주의적 인권 개념은 한마디로 개체, 즉 개인의 권리는 국가든 어떤 집단이든 결코 침범할 수 없는 성스러운 권리라는 것이다. 개인은 다른 개인의 권리를 침해 하지 않는 한 자신의 본원적 권리를 국가나 어떠한 집단으로부터 침해 당하거나 간섭 당하지 않는다. 이러한 권리는 물리적 재산부터 비물리적 사상이나 생각, 견해, 그리고 그것을 마음껏 표현 살 수 있는 것 까지 포괄한다. 이러한 인권 개념은 프랑스나 미국의 시민 혁명을 통해 국가의 기본 정신인 헌법에 녹아 들어 집단주의가 우리 속에서 빠져 나와 그 파괴적 광기를 드러내어 개체를 말살하는 것을 방어해준다. 인종주의적 극단적 민족주의인 파시즘의 광기가 전 세계를 도탄에 빠뜨린 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그러한 비극이 재발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탄생한 UN이 초기에 무엇보다도 먼저 UN 정신이라고 할 수 있는 게 바로 이러한 인본주의적 보편 인권 개념인 세계인권선언을 제정해 발표한 게 괜한 이유에서가 아니다.
물론 한국인의 민족주의의 기원도 북한을 망가뜨린 극우적 민족주의와 뿌리는 같을 것이며 그래서 제대로 제어 받지 않는 다면 파괴적인 속성을 여실히 드러낼 것이며 혹은 한국 사회가 한 단계 발전하는 데 계속 해서 발목을 잡을 것이다. 벌써 배타적이고 공격적인 인종주의적 민족주의의 조짐들이 최근 몇 년 내내 드러나고 있다. 또한 감정적인 민족적 정서는 정치, 경제, 사회, 외교 문제에 있어 합리적이고 건강한 토론과 공론 형성을 방해하고 있다. 특정 국가 문제만 나오면 불필요하게 예민하거나 분노부터 하게 된다. 이러한 민족주의적 감정 표출은 한국 사회가 보다 성숙하고 개방된 민주 사회로 발전 하는데 큰 장애가 된다고 생각한다. 한민족이 공유한 민족주의가 그 통제를 벗어 났을 때 극단적으로 어떤 사회가 되는지 북한을 보면 잘 이해하기 쉽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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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도 한국은 동아시아의 그 어느 나라 보다 민족주의를 업그레이드 시킬 역사적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은 프랑스나 미국처럼 자발적인 시민 혁명으로 민주적 헌법을 쟁취한 역사적 경험을 가지고 있다. 한국은 북한과 같은 전체주의에 가까운 군부 독재를 자신들의 힘으로 무찔러서 인본주의적 보편인권 개념에 기반한 헌법을 스스로 만들어 냈다. 나는 그래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가장 밑바닥에는 역사적 문화적 서사적 공동 경험으로 삼되 그 위에는 공동체 구성원들이 정치적 압제를 이겨내고 자발적인 약속을 통해 새로운 민족을 만들어낸 그러한 공통의 규약에 기반한 민족 개념을 얹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그 새로운 공동체를 자발적으로 만들어낸 결실이자 정체성인 헌법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미국민이 자신들의 아이덴티티를 보편적 인권 개념을 핵심으로 한 미국 헌법과 그 헌법을 탄생시킨 독립전쟁이듯이 말이다. 한국의 현행 헌법 정신은 천부 인권과 공화국, 민주주의 라는 현대 국가의 핵심 내용을 토대로 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러한 핵심 내용이 그저 문장 속에 죽어 있는 글자들이 아니라 국민들의 자체적인 노력과 희생으로 얻어 냈다는 점에서 차후에도 구성원들이 계속해서 현실감을 계속 부여 받을 수 있는 정체성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한국의 민족 개념이 현행 헌법이라는 공동 계약을 지키기로 약속한 새로운 민족 개념으로 업그레이드 되어야 하며 이를 통해 기존의 원초적이고 신화적인 극단적 민족주의와 그 정서가 사회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지 못하도록 통제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P.S 쓰다 보니 또 쓸데없이 길어졌는데 결국 내가 평소에 자주 강조하듯이 초등학교 때부터 헌법 교육을 강화 시키고 평소에도 국민들이 헌법에 더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마침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오늘이 제헌절이었고 제헌절에 이렇게 시의적절하게 헌법을 중시하자는 글을 쓰게 되서 약간의 보람(?)도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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