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경 끝내 사퇴, 그 참을 수 없는 마녀사냥의 가벼움
김호경 에디터haojing610@mindlenews.com다른 기사 보기
입력 2023.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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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 혁신위원장 맡자마자 언론‧비명계 맹비난
- 실천적 지식인‧운동가…"구국의 심정으로 당 쇄신"
- 이재명과 친분도 없는데 '친명계' '사당화' 낙인
- "나는 굳이 분류한다면 '김근태계' '서민계'일 뿐"
- 페이스북 글 침소봉대…'음모론 신봉' 인신공격
- "개인 판단‧의견에 마녀사냥식 정쟁, 매우 유감"
-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쇄신 작업을 이끌 혁신기구 수장에 임명됐던 이래경 다른백년 명예이사장. 2023.6.5 [민주당 제공] 연합뉴스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언제든 마녀사냥의 먹잇감이 돼 처참히 유린될 수 있는 현실.
야당의 쇄신 작업을 이끌 혁신기구 수장으로 외부 인사인 이래경 다른백년 명예이사장이 5일 임명됐으나 개인 페이스북 글 등이 갑자기 논란을 빚으면서 결국 당일 저녁 '자진 사퇴'로 막을 내렸다. 이 과정에서 이 이사장을 상대로 말꼬투리 잡기식 침소봉대와 거두절미, 아전인수격의 비난이 빗발쳐 고질적인 언론의 인신공격이 되풀이되는 양상을 보였다.
"사인(私人) 의견이 마녀사냥식 정쟁 대상…매우 유감"
이 이사장은 이날 오후 7시쯤 공개한 '사의 입장문'에서 "시민의 한 사람으로 민주당의 변화를 통해 대한민국의 새로운 미래를 여는 것에 일조하겠다는 일념으로 혁신기구의 책임을 어렵게 맡기로 했다"며 "그러나 사인(私人)이 지닌 판단과 의견이 마녀사냥식 정쟁의 대상이 된 것에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는 한국사회의 현재 처한 상황을 압축하는 사건이라는 것이 저의 개인적 소견이지만, 논란의 지속이 공당인 민주당에 부담이 되는 사안이기에 혁신기구의 책임자직을 스스로 사양하고자 한다"면서 "간절히 소망하건대 이번을 심기일전의 계기로 삼아 민주당이 국가의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정치로 나아가는 길을 인도할 적임자를 찾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 이사장은 "더불어 민주당을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께 흔들림 없이 당과 함께 하여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며 "역사 앞에 기도하는 심정으로 저로 인해 야기된 이번 상황을 매듭지고자 한다"고 전했다.
이 같은 사의 표명은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이날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통해 임명 사실을 밝힌 지 9시간여만이다. 이 대표는 회의에서 "민주당은 당의 혁신기구를 맡아서 이끌 책임자로 사단법인 다른백년의 이래경 명예 이사장님을 모시기로 했다"며 "새로운 혁신기구의 명칭·역할 등에 대한 것은 모두 혁신기구에 전적으로 맡기겠다. 지도부는 혁신기구가 마련한 혁신안을 존중하고 전폭적으로 수용할 것"이라고 강조했었다.
민주화운동으로 두 차례 제적…중소기업 운영, 실천적 지식인
1954년생인 이 이사장은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금속공학부를 나와 1983년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 발기인으로 참여, 초대 상임위원을 맡았다. 1984년 신원엔지니어링을 창업해 대표를 맡았으며, 1988년 독일 호이트사와 합작해 호이트한국을 설립하고 대표이사로 27년간 재직하다 2015년 퇴임했다. 고 김근태 의원이 이끌었던 한반도재단 이사 및 운영위원장을 지냈으며, 지역 시민사회 중심의 보살핌 운동을 지향하는 사단법인 일촌공동체 명예회장, 사단법인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 등을 역임했다.
현재 이사장으로 몸담고 있는 '다른백년'은 시민사회의 동력과 새로운 상상력을 담아내고자 여러 지식인이 모여 설립한 사단법인으로 민간 싱크탱크라고 할 수 있다. '한국사회의 새로운 전환을 위한 담론'을 통해 시민사회와 소통을 표방하고 있으며 동학혁명 이후 외세에 의한 근대화, 독재정권에 의한 산업화 과정에서 지난 100년 동안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앞으로 '다른 100년'을 만들고자 논평, 출판, 강연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쳐왔다.
이 이사장은 서울대 73학번이지만 1975년 서울대생 김상진 할복자살 사건과 1980년 광주민주항쟁과 관련된 일련의 시위로 두 차례 제적돼 1996년 명예 졸업했다. 김근태계 인사로 분류되는 이 이사장은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2014년 신당 새정치연합을 창당할 때 잠시 참여하기도 했다.
앞서 민주당은 2021년 전당대회 돈 봉투 의혹과, 탈당한 김남국 의원의 가상화폐 보유 논란 등으로 안팎에서 집중 공격당하며 위기감이 고조되자 지난달 14일 쇄신 의원총회를 열고 당 차원의 혁신기구를 만들겠다고 결의한 바 있다. 위원장 인선이 이날 완료됨에 따라 혁신기구 공식 출범도 이번 주 안에 이뤄질 전망이었다.
이래경 이사장(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16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국민의당지키기운동본부 주초로 열린 '시민사회 원로에게 정치개혁을 위한 고견을 듣는다' 시국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2018.1.16. 연합뉴스
"대한민국 난파 직전, 구국의 심정으로 당 쇄신" 결심했지만
이 이사장은 임명 직후 여러 언론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내정 사실을) 어제 저녁에 통보 받았다"며 "내가 너무 평범하게 살아온 사람이라 청천벽력 같다. 두통이 발생할 정도로 고민이 든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도 "백척간두라고 할까, 벼랑 끝에 칼날 위에 서 있다는 느낌"이라면서 "당의 총선을 넘어서 지금 대한민국이 난파 직전이다. 구국의 심정으로 수락했다"고 밝혔다.
그는 "오는 7일부터 공식 일정을 시작하는데, 가능한 한 소속 의원 전원과 지구당 위원장을 만날 예정"이라며 "민주당 누리집을 열어 혁신위에 하고 싶은 당원들의 얘기들을 모두 받아 검토하겠다. 그 이상으로 혁신위원장을 만나겠다는 적극적인 당원이 있다면 기탄없이 만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이사장은 이 같은 포부를 실현할 첫발을 내딛기도 전에 과거 이력과 페이스북에 썼던 글들이 돌연 문제가 되면서 당 안팎의 융단폭격을 맞으며 좌초하고 말았다. 민주당 외부에서는 언론이 앞장섰지만 내부에서도 홍영표‧이상민‧김종민 등 으레 비명계 의원들이 강력 반발하고 나서면서 사태를 급속도로 악화시켰다.
이재명과 친분도 없는데 '친명계' '이재명 사당화' 딱지
'이래경 불가론'의 핵심 이유 중 하나는 그가 '친명계'라는 것이었다. 지난 2019년 이재명 대표가 1심에서 무죄였던 친형 강제진단 사건과 관련해 2심에서 당선무효형을 선고받고 대법원 판결을 기다릴 때 이 이사장이 '(가칭) 경기도지사 이재명 지키기 범국민 대책위원회' 구성을 제안했다는 걸 근거로 든다.
그러나 당시 대책위 제안자에는 함세웅‧송기인 신부, 이해동 목사, 명진 스님, 이부영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 김종철 전 연합뉴스 사장, 최학래 전 한겨레신문 사장, 박재승 전 대한변협 회장, 이종석 전 통일부장관,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 등 30여 명이 이름을 올렸고 이 이사장은 그중 한 명일 뿐이다. 사회 원로들이 2심 판결의 법리적 문제점을 짚으며 "대법원을 통해 현명한 판결이 있기를 희망한다"고 의견을 표명한 게 문제가 될 이유가 없다.
이 이사장이 지난 대선 때를 포함해 평소 윤석열 대통령을 비판하고 이재명 대표를 지지했다고 하더라도 그건 어디까지나 개인의 당연한 자유이고 헌법적 권리일 뿐이다. 불법 선거운동을 했다거나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했다는 것도 아니고 도를 넘는 욕설과 막말을 했다는 것도 아닌데, 한 사람의 시민이 자신의 사상과 양심, 정치관을 개인 SNS에 올렸다고 비난하는 건 반자유‧반헌법‧반민주적 발상에 불과하다.
더군다나 이 이사장은 이 대표와 이렇다 할 친분도 없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제가 친명계로 분류되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며 "이 대표는 좋은 정치인이고 큰 꿈을 펼치는 것에 대해 끊임없이 지지하고 개인적으로 응원한다. 하지만 친명계라고 표현하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잘라 말했다.
이 대표와 개인적 인연이나 친분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딱 한 번 만났다. 이재명 대표가 경기지사 시절, 내가 경기도연구원의 객원 연구원으로 일했다"고 답했다. 이 이사장은 "나는 이재명이 갖고 있는 성향과 추진력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사람"이라며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친명계는 아니다. 아주 냉정한 시민의 입장에서 대한민국이 잘 되기를 바라는 입장에서 지지하는 것이다. 이재명이니까 무조건 좋다는 게 아니다"라고 거듭 설명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19일 서울 강북구 수유동 국립 4·19민주묘지에서 열린 제63주년 4·19혁명 기념식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악수한 뒤 이 대표 앞을 지나고 있다. 2023.4.19. 연합뉴스
"나는 굳이 분류한다면 '김근태계'이고 '서민계'일 뿐"
이 같은 입장은 지난 대선 때 이재명 대표를 지지했던 국민 절반과 조금도 다를 게 없다. 현재 각종 SNS와 커뮤니티 등을 통해 정치적 의사 표시를 하는 수많은 시민 역시 마찬가지다. 이 이사장은 나아가 "이재명 대표도 잘못하면 언제든지 채찍을 들고 단칼에 베어낼 것"이라고 단호하게 천명하기도 했다.
이 이사장은 친명계든 비명계든 정당판에서 누군가에게 신세를 진 이력도 없고 줄곧 사업이나 시민사회운동에 투신해온 철저한 외부 인사이자 원리원칙주의자이기 때문에 당내 어떤 압력에도 흔들리지 않고 혁신기구를 이끌 적임자였다. 그러나 언론과 민주당 비명계는 이를 오직 '이재명 사당화'로만 연결시켰다.
심지어 '안철수계'라는 명명까지 등장하자 이 이사장은 "안 의원이 나를 세 번이나 찾아와서 혁신비전위원회에 참여했던 것"이라며 "안철수계라고 부르는 걸 수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고 김근태 의원과 함께해온 사람이다. 오로지 김 의원을 통해 (정치를) 대리만족해 온 사람이어서 정치를 모르는 사람"이라며 "나를 분류한다면 '김근태계'고, 역사주의자고, 고달픈 사람들을 위한 서민계"라고 표현했다.
"중국 정찰풍선"(미국 주장) 격추 장면. 미국 해군연구소 트위터 캡처. 연합뉴스
페이스북 개인 글 침소봉대…'음모론 신봉' 인신공격
또 다른 문제가 된 것은 천안함과 미국 관련 언급이다. 이 이사장은 지난 2월 페이스북에 "자폭된 천안함 사건을 조작하여 남북관계를 파탄 낸 미 패권 세력들이 이번에는 궤도를 벗어난 중국의 기상측정용 비행 기구를 마치 외계인의 침공처럼 엄청난 국가위협으로 과장하여 연일 대서특필하고 골 빈 한국 언론들은 이를 받아쓰기에 바쁘다"고 올렸다.
하지만 미국 당국 스스로 군사적‧첩보적 위협이 아니었다고 밝힌 중국의 '무해한 풍선'(중국 당국은 기상관측용 민간 풍선이라고 항의했다)을 미국이 최첨단 전투기까지 출격시켜 격추하는 등 사태를 과장하고 이를 국내 언론이 받아쓰기에 바빴던 건 사실이다. 이명박 정부 때 발생한 천안함 침몰이라는 초유의 사건을 둘러싸고는 언론을 비롯한 각계에서 숱한 의문이 제기돼왔는데 이 이사장 글의 한 토막만을 들어 지나치게 단정 짓고 성급하게 매도한 측면도 있다. 이에 대해 이 이사장은 "와전된 이야기다. 하나의 가정, 가설의 예로 이야기한 것"이라며 "(천안함 사건은) 원인 불명이라는 것이 내 입장"이라고 말했다.
미 정보당국의 대통령실 도청 의혹이 불거진 뒤인 지난달 5일 "아마도 지난 한국 대선에도 미 정보조직들이 분명 깊숙이 개입했으리라"라는 글을 올린 건 윤석열 대통령실의 국가안보실 도청 사건을 비롯해 역대 미 당국 행태에 비춰봤을 때 충분히 합리적인 의심인데도 언론들은 무조건 '음모론'으로만 몰아갔다. 도청 의혹을 덮어놓고 가짜뉴스로 치부하고 비방하던 대통령실처럼 말이다.
이밖에 이 이사장이 "중동에서 20년간 진행된 대학살을 지지한 조 바이든이 푸틴을 전범으로 낙인찍는 것은 위선적 거짓"이라고 지적한 걸 두고 언론은 '푸틴 대통령을 두둔하는 듯한 뉘앙스로 읽힐 수 있는 대목'이라고 부각시키는 등 그 고질적 비약‧왜곡 보도를 이번에도 유감없이 쏟아냈다.
미국 정부의 기밀문건을 온라인에 유출한 혐의를 받는 공군 매사추세츠 주 방위군 소속 일병 잭 테세이라(21)가 13일(현지시각) 매사추세츠 노스다이튼 자택에서 연방수사국(FBI) 요원들에게 체포되고 있다. 테세이라는 기밀문건이 처음 유출된 온라인 채팅 플랫폼 '디스코드'의 대화방 운영자다. 메릭 갈런드 법무장관은 이날 긴급 브리핑을 열고 그를 스파이방지법 위반 혐의로 기소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2023.04.14. 로이터 연합뉴스
민주당 권칠승 수석대변인은 기자들 질문 공세에 "특별히 문제 될 것이 있나. 자유인으로서 본인의 정치적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한 것"이라며 "공당의 혁신위원장이 되면 언어에 대한 조절이 충분히 있을 것으로 본다. 실제로 그분이 우리 사회 일원으로서 주로 활동한 내용은 중소기업 대표로서의 삶"이라고 답했다. 이어 "미국에 대한 비판 발언을 지적하는 것 같은데 이는 미국의 패권주의적 정책에 대한 비판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작정하고 난타를 가하는 언론에 더해 일부 비명계의 아우성이 동시에 협공을 가하면서 이래경 이사장도, 민주당도 더 이상 버티지 못했다. 깊은 사상적 탐구와 실천을 게을리하지 않은 이 원로 지식인‧운동가는 불과 하루 전 혁신위원장직 요청을 받고 '벼락'을 맞은 듯한 부담감 속에서도 윤석열 정권에서 '난파' 직전인 우리 사회를 이대로 방치할 수 없어 '구국의 심정'으로 헌신하겠다고 결심한 게 전부다. 이제 그에겐 아마도 난생처음일 '친명계·음모론 신봉'(경향신문 기사 제목)이라는 낙인만이 남았다.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언제든 마녀사냥의 먹잇감이 돼 처참히 유린될 수 있는 현실.
야당의 쇄신 작업을 이끌 혁신기구 수장으로 외부 인사인 이래경 다른백년 명예이사장이 5일 임명됐으나 개인 페이스북 글 등이 갑자기 논란을 빚으면서 결국 당일 저녁 '자진 사퇴'로 막을 내렸다. 이 과정에서 이 이사장을 상대로 말꼬투리 잡기식 침소봉대와 거두절미, 아전인수격의 비난이 빗발쳐 고질적인 언론의 인신공격이 되풀이되는 양상을 보였다.
"사인(私人) 의견이 마녀사냥식 정쟁 대상…매우 유감"
이 이사장은 이날 오후 7시쯤 공개한 '사의 입장문'에서 "시민의 한 사람으로 민주당의 변화를 통해 대한민국의 새로운 미래를 여는 것에 일조하겠다는 일념으로 혁신기구의 책임을 어렵게 맡기로 했다"며 "그러나 사인(私人)이 지닌 판단과 의견이 마녀사냥식 정쟁의 대상이 된 것에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는 한국사회의 현재 처한 상황을 압축하는 사건이라는 것이 저의 개인적 소견이지만, 논란의 지속이 공당인 민주당에 부담이 되는 사안이기에 혁신기구의 책임자직을 스스로 사양하고자 한다"면서 "간절히 소망하건대 이번을 심기일전의 계기로 삼아 민주당이 국가의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정치로 나아가는 길을 인도할 적임자를 찾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 이사장은 "더불어 민주당을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께 흔들림 없이 당과 함께 하여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며 "역사 앞에 기도하는 심정으로 저로 인해 야기된 이번 상황을 매듭지고자 한다"고 전했다.
이 같은 사의 표명은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이날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통해 임명 사실을 밝힌 지 9시간여만이다. 이 대표는 회의에서 "민주당은 당의 혁신기구를 맡아서 이끌 책임자로 사단법인 다른백년의 이래경 명예 이사장님을 모시기로 했다"며 "새로운 혁신기구의 명칭·역할 등에 대한 것은 모두 혁신기구에 전적으로 맡기겠다. 지도부는 혁신기구가 마련한 혁신안을 존중하고 전폭적으로 수용할 것"이라고 강조했었다.
민주화운동으로 두 차례 제적…중소기업 운영, 실천적 지식인
1954년생인 이 이사장은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금속공학부를 나와 1983년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 발기인으로 참여, 초대 상임위원을 맡았다. 1984년 신원엔지니어링을 창업해 대표를 맡았으며, 1988년 독일 호이트사와 합작해 호이트한국을 설립하고 대표이사로 27년간 재직하다 2015년 퇴임했다. 고 김근태 의원이 이끌었던 한반도재단 이사 및 운영위원장을 지냈으며, 지역 시민사회 중심의 보살핌 운동을 지향하는 사단법인 일촌공동체 명예회장, 사단법인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 등을 역임했다.
현재 이사장으로 몸담고 있는 '다른백년'은 시민사회의 동력과 새로운 상상력을 담아내고자 여러 지식인이 모여 설립한 사단법인으로 민간 싱크탱크라고 할 수 있다. '한국사회의 새로운 전환을 위한 담론'을 통해 시민사회와 소통을 표방하고 있으며 동학혁명 이후 외세에 의한 근대화, 독재정권에 의한 산업화 과정에서 지난 100년 동안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앞으로 '다른 100년'을 만들고자 논평, 출판, 강연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쳐왔다.
이 이사장은 서울대 73학번이지만 1975년 서울대생 김상진 할복자살 사건과 1980년 광주민주항쟁과 관련된 일련의 시위로 두 차례 제적돼 1996년 명예 졸업했다. 김근태계 인사로 분류되는 이 이사장은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2014년 신당 새정치연합을 창당할 때 잠시 참여하기도 했다.
앞서 민주당은 2021년 전당대회 돈 봉투 의혹과, 탈당한 김남국 의원의 가상화폐 보유 논란 등으로 안팎에서 집중 공격당하며 위기감이 고조되자 지난달 14일 쇄신 의원총회를 열고 당 차원의 혁신기구를 만들겠다고 결의한 바 있다. 위원장 인선이 이날 완료됨에 따라 혁신기구 공식 출범도 이번 주 안에 이뤄질 전망이었다.
이래경 이사장(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16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국민의당지키기운동본부 주초로 열린 '시민사회 원로에게 정치개혁을 위한 고견을 듣는다' 시국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2018.1.16. 연합뉴스
"대한민국 난파 직전, 구국의 심정으로 당 쇄신" 결심했지만
이 이사장은 임명 직후 여러 언론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내정 사실을) 어제 저녁에 통보 받았다"며 "내가 너무 평범하게 살아온 사람이라 청천벽력 같다. 두통이 발생할 정도로 고민이 든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도 "백척간두라고 할까, 벼랑 끝에 칼날 위에 서 있다는 느낌"이라면서 "당의 총선을 넘어서 지금 대한민국이 난파 직전이다. 구국의 심정으로 수락했다"고 밝혔다.
그는 "오는 7일부터 공식 일정을 시작하는데, 가능한 한 소속 의원 전원과 지구당 위원장을 만날 예정"이라며 "민주당 누리집을 열어 혁신위에 하고 싶은 당원들의 얘기들을 모두 받아 검토하겠다. 그 이상으로 혁신위원장을 만나겠다는 적극적인 당원이 있다면 기탄없이 만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이사장은 이 같은 포부를 실현할 첫발을 내딛기도 전에 과거 이력과 페이스북에 썼던 글들이 돌연 문제가 되면서 당 안팎의 융단폭격을 맞으며 좌초하고 말았다. 민주당 외부에서는 언론이 앞장섰지만 내부에서도 홍영표‧이상민‧김종민 등 으레 비명계 의원들이 강력 반발하고 나서면서 사태를 급속도로 악화시켰다.
이재명과 친분도 없는데 '친명계' '이재명 사당화' 딱지
'이래경 불가론'의 핵심 이유 중 하나는 그가 '친명계'라는 것이었다. 지난 2019년 이재명 대표가 1심에서 무죄였던 친형 강제진단 사건과 관련해 2심에서 당선무효형을 선고받고 대법원 판결을 기다릴 때 이 이사장이 '(가칭) 경기도지사 이재명 지키기 범국민 대책위원회' 구성을 제안했다는 걸 근거로 든다.
그러나 당시 대책위 제안자에는 함세웅‧송기인 신부, 이해동 목사, 명진 스님, 이부영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 김종철 전 연합뉴스 사장, 최학래 전 한겨레신문 사장, 박재승 전 대한변협 회장, 이종석 전 통일부장관,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 등 30여 명이 이름을 올렸고 이 이사장은 그중 한 명일 뿐이다. 사회 원로들이 2심 판결의 법리적 문제점을 짚으며 "대법원을 통해 현명한 판결이 있기를 희망한다"고 의견을 표명한 게 문제가 될 이유가 없다.
이 이사장이 지난 대선 때를 포함해 평소 윤석열 대통령을 비판하고 이재명 대표를 지지했다고 하더라도 그건 어디까지나 개인의 당연한 자유이고 헌법적 권리일 뿐이다. 불법 선거운동을 했다거나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했다는 것도 아니고 도를 넘는 욕설과 막말을 했다는 것도 아닌데, 한 사람의 시민이 자신의 사상과 양심, 정치관을 개인 SNS에 올렸다고 비난하는 건 반자유‧반헌법‧반민주적 발상에 불과하다.
더군다나 이 이사장은 이 대표와 이렇다 할 친분도 없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제가 친명계로 분류되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며 "이 대표는 좋은 정치인이고 큰 꿈을 펼치는 것에 대해 끊임없이 지지하고 개인적으로 응원한다. 하지만 친명계라고 표현하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잘라 말했다.
이 대표와 개인적 인연이나 친분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딱 한 번 만났다. 이재명 대표가 경기지사 시절, 내가 경기도연구원의 객원 연구원으로 일했다"고 답했다. 이 이사장은 "나는 이재명이 갖고 있는 성향과 추진력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사람"이라며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친명계는 아니다. 아주 냉정한 시민의 입장에서 대한민국이 잘 되기를 바라는 입장에서 지지하는 것이다. 이재명이니까 무조건 좋다는 게 아니다"라고 거듭 설명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19일 서울 강북구 수유동 국립 4·19민주묘지에서 열린 제63주년 4·19혁명 기념식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악수한 뒤 이 대표 앞을 지나고 있다. 2023.4.19. 연합뉴스
"나는 굳이 분류한다면 '김근태계'이고 '서민계'일 뿐"
이 같은 입장은 지난 대선 때 이재명 대표를 지지했던 국민 절반과 조금도 다를 게 없다. 현재 각종 SNS와 커뮤니티 등을 통해 정치적 의사 표시를 하는 수많은 시민 역시 마찬가지다. 이 이사장은 나아가 "이재명 대표도 잘못하면 언제든지 채찍을 들고 단칼에 베어낼 것"이라고 단호하게 천명하기도 했다.
이 이사장은 친명계든 비명계든 정당판에서 누군가에게 신세를 진 이력도 없고 줄곧 사업이나 시민사회운동에 투신해온 철저한 외부 인사이자 원리원칙주의자이기 때문에 당내 어떤 압력에도 흔들리지 않고 혁신기구를 이끌 적임자였다. 그러나 언론과 민주당 비명계는 이를 오직 '이재명 사당화'로만 연결시켰다.
심지어 '안철수계'라는 명명까지 등장하자 이 이사장은 "안 의원이 나를 세 번이나 찾아와서 혁신비전위원회에 참여했던 것"이라며 "안철수계라고 부르는 걸 수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고 김근태 의원과 함께해온 사람이다. 오로지 김 의원을 통해 (정치를) 대리만족해 온 사람이어서 정치를 모르는 사람"이라며 "나를 분류한다면 '김근태계'고, 역사주의자고, 고달픈 사람들을 위한 서민계"라고 표현했다.
"중국 정찰풍선"(미국 주장) 격추 장면. 미국 해군연구소 트위터 캡처. 연합뉴스
페이스북 개인 글 침소봉대…'음모론 신봉' 인신공격
또 다른 문제가 된 것은 천안함과 미국 관련 언급이다. 이 이사장은 지난 2월 페이스북에 "자폭된 천안함 사건을 조작하여 남북관계를 파탄 낸 미 패권 세력들이 이번에는 궤도를 벗어난 중국의 기상측정용 비행 기구를 마치 외계인의 침공처럼 엄청난 국가위협으로 과장하여 연일 대서특필하고 골 빈 한국 언론들은 이를 받아쓰기에 바쁘다"고 올렸다.
하지만 미국 당국 스스로 군사적‧첩보적 위협이 아니었다고 밝힌 중국의 '무해한 풍선'(중국 당국은 기상관측용 민간 풍선이라고 항의했다)을 미국이 최첨단 전투기까지 출격시켜 격추하는 등 사태를 과장하고 이를 국내 언론이 받아쓰기에 바빴던 건 사실이다. 이명박 정부 때 발생한 천안함 침몰이라는 초유의 사건을 둘러싸고는 언론을 비롯한 각계에서 숱한 의문이 제기돼왔는데 이 이사장 글의 한 토막만을 들어 지나치게 단정 짓고 성급하게 매도한 측면도 있다. 이에 대해 이 이사장은 "와전된 이야기다. 하나의 가정, 가설의 예로 이야기한 것"이라며 "(천안함 사건은) 원인 불명이라는 것이 내 입장"이라고 말했다.
미 정보당국의 대통령실 도청 의혹이 불거진 뒤인 지난달 5일 "아마도 지난 한국 대선에도 미 정보조직들이 분명 깊숙이 개입했으리라"라는 글을 올린 건 윤석열 대통령실의 국가안보실 도청 사건을 비롯해 역대 미 당국 행태에 비춰봤을 때 충분히 합리적인 의심인데도 언론들은 무조건 '음모론'으로만 몰아갔다. 도청 의혹을 덮어놓고 가짜뉴스로 치부하고 비방하던 대통령실처럼 말이다.
이밖에 이 이사장이 "중동에서 20년간 진행된 대학살을 지지한 조 바이든이 푸틴을 전범으로 낙인찍는 것은 위선적 거짓"이라고 지적한 걸 두고 언론은 '푸틴 대통령을 두둔하는 듯한 뉘앙스로 읽힐 수 있는 대목'이라고 부각시키는 등 그 고질적 비약‧왜곡 보도를 이번에도 유감없이 쏟아냈다.
미국 정부의 기밀문건을 온라인에 유출한 혐의를 받는 공군 매사추세츠 주 방위군 소속 일병 잭 테세이라(21)가 13일(현지시각) 매사추세츠 노스다이튼 자택에서 연방수사국(FBI) 요원들에게 체포되고 있다. 테세이라는 기밀문건이 처음 유출된 온라인 채팅 플랫폼 '디스코드'의 대화방 운영자다. 메릭 갈런드 법무장관은 이날 긴급 브리핑을 열고 그를 스파이방지법 위반 혐의로 기소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2023.04.14. 로이터 연합뉴스
민주당 권칠승 수석대변인은 기자들 질문 공세에 "특별히 문제 될 것이 있나. 자유인으로서 본인의 정치적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한 것"이라며 "공당의 혁신위원장이 되면 언어에 대한 조절이 충분히 있을 것으로 본다. 실제로 그분이 우리 사회 일원으로서 주로 활동한 내용은 중소기업 대표로서의 삶"이라고 답했다. 이어 "미국에 대한 비판 발언을 지적하는 것 같은데 이는 미국의 패권주의적 정책에 대한 비판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작정하고 난타를 가하는 언론에 더해 일부 비명계의 아우성이 동시에 협공을 가하면서 이래경 이사장도, 민주당도 더 이상 버티지 못했다. 깊은 사상적 탐구와 실천을 게을리하지 않은 이 원로 지식인‧운동가는 불과 하루 전 혁신위원장직 요청을 받고 '벼락'을 맞은 듯한 부담감 속에서도 윤석열 정권에서 '난파' 직전인 우리 사회를 이대로 방치할 수 없어 '구국의 심정'으로 헌신하겠다고 결심한 게 전부다. 이제 그에겐 아마도 난생처음일 '친명계·음모론 신봉'(경향신문 기사 제목)이라는 낙인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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