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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정, 3.1만세 부른 제주를 ‘빨갱이 섬’이라 학살한 이유
기자명 강호석 기자
승인 2023.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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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구축을 위한 소련 악마화의 시범케이스가 필요했던 미국
신냉전 정세에서 제주4.3정신을 계승한다는 것
1947년 3.1절 발포사건이 제주4.3의 도화선이 되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억울한 죽음에 항의해 3.10총파업으로 맞선 이들을 왜 빨갱이로 몰아 학살했는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3.1발포사건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을 뿐인데, 미군정은 왜 제주를 ‘레드 아일랜드(빨갱이 섬)’로 규정하고 군경과 서북청년단을 동원해 폭압을 가했을까?
반공주의 시범케이스
반파시즘이 득세하던 해방정국에 미군정은 반공주의 설파를 위한 일종의 ‘시범케이스’가 필요했다.
당시 유럽은 나치 척결이, 아시아는 일본 군국주의 척결이 시대적 소명이었다. 2차대전 직후였으니 당연하다. 그러나 세계 패권을 노린 미국은 새로운 국제질서를 획책하고 있었다.
미국은 세계를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로 갈라 소련을 악마화하는 반공동맹을 추진함으로써 냉전의 태동을 알렸다. 하지만 반파시즘이 대세인 터라 반공주의는 쉽게 자리 잡기 힘들었다.
친일 청산에 떨쳐나선 한반도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특히 미군정이 발표한 ‘맥아더 포고령’에 따라 38선 이남의 친일경찰·군인·관료가 그대로 권력을 유지하자, 반일 감정은 극에 달했다. 급기야 미군정에 대한 불만으로까지 이어졌다. 이런 조건에서 미군정이 강요한 반공주의가 먹혀들 리 없었다.
더구나 1946년 동아일보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 지지가 77%에 달했다.
미국은 한반도에서 반일 정서를 잠재우고, 반공주의를 불러일으킬 ‘시범 케이스’가 필요했다. 이렇게 제주도는 ‘빨갱이 섬’이 되어야만 했다.
제주4.3과 냉전
미군정청 경무국 국장 조병옥은 일제강점기 일본 앞잡이 노릇을 하던 친일 순사들을 그대로 해방된 땅의 경찰로 복귀시켰다. 1945년 11월 미군정청 스타우트 소령이 제주도(지)사로 부임했을 때 제주경찰 총수 1,157명 중 친일경찰이 949명에 달했다.
당시 조병옥은 “꿩 잡는 게 매”라며 친일파를 앞세워 ‘빨갱이 사냥’에 열을 올렸다. 이런 취지로 결성한 것이 바로 악명높은 ‘서북청년단’이다.
서북청년단은 한반도 서북지역 출신으로 친일청산이 강화되자 월남한 악질 친일파들이다. 제주에 급파된 서북청년단은 친일청산을 주장하면 빨갱이로 몰아 약탈과 폭력을 가했다. 마약까지 흡입한 이들은 죽창으로 제주도민의 배를 갈랐다. 교회를 거점으로 활동하면서 친일경찰과 결탁해 저항하는 제주도민을 마구잡이로 감옥에 넣었다.
지금 제주도에 교회가 많지 않은 이유도 그때의 상처 때문이다.
군인도 온통 친일파로 채워졌다. 일제강점기 독립군을 토벌하던 일본군 장교 출신 송요찬이 9연대장을 맡아 ‘초토화 작전’을 진두지휘했다. 1948년 겨울 이 작전으로 제주도민 2만여 명이 총에 맞거나 불타 죽었다.
당시 제주의 최고지휘관 브라운(Rothell H. Brown) 대령은 “제주도민 80%가 공산주의자와 관련 있다”라며 이들을 학살한 송요찬에 훈장을 추서했다. 이후 송요찬은 육군참모총장, 국방부 장관을 거쳐 국무총리에까지 오른다.
친일파를 앞세워 빨갱이를 사냥한 미국의 제주 ‘시범케이스’ 전략은 냉전체제 구축에서 위력을 발휘했다.
월북한 독립운동가 김원봉을 친일파 백선엽보다 더 증오하게 했고, 침략자 일본은 우방이되고 해방을 도와준 소련은 돌연 적이 되고 말았다.
서북청년단이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를 테러해 친일파 명단을 불태우고, 국가보안법을 제정해 빨갱이 사냥을 합법화하기에 이르렀지만, 누구 하나 선 듯 나서지 못했다.
‘폭력’ 때문이 아니라 ‘나도 언제 시범케이스가 될지 모른다’는 끝나지 않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신냉전과 제주4.3정신 계승
세계 패권을 위해 소련을 악마화하는 반공연대를 구축해 냉전을 시작한 미국이 오늘날 다시 신냉전을 선택했다.
냉전과 마찬가지로 신냉전 구축에서도 북·중·러 악마화는 쉽지 않은 숙제다. 당장 탈냉전 이후 중국의 급속한 성장과 자본주의 국가와의 교류 확대는 신냉전 질서 구축에 걸림돌로 작용한다. 하지만 미국은 이번에도 신냉전을 밀어붙인다.
북과 중국을 겨냥해 일본과 우리가 전쟁동맹을 체결하라고 겁박하는 미국, 신냉전 정세를 틈타 군국주의를 부활한 침략자 일본, 대놓고 친일매국 행위를 일삼으며 간첩 색출에도 여념이 없는 윤석열 정부. 모두 과거 냉전 때 그대로다.
75년 전 냉전 구축의 ‘시범케이스’가 된 제주. 그러나 당시 제주도민들은 앉아서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 ‘탄압이면 항쟁’이라는 구호 아래 매국적인 5.10단독선거를 막아 냈으며, 손에 무기를 들고 조국의 완전한 독립과 민족의 통일을 위해 목숨 걸고 싸웠다.
2023년, 신냉전 구축의 ‘시범케이스’로 민주노총을 비롯한 민중진영이 걸려들었다. 어떻게 할 것인가?
미국의 신냉전 전략을 분쇄하고, 미국의 꼭두각시 윤석열 정권을 끝장내는 제2의 촛불항쟁을 일으키는 것이 제주4.3정신 계승이 아닐까.
미군정, 3.1만세 부른 제주를 ‘빨갱이 섬’이라 학살한 이유
기자명 강호석 기자
승인 2023.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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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구축을 위한 소련 악마화의 시범케이스가 필요했던 미국
신냉전 정세에서 제주4.3정신을 계승한다는 것
1947년 3.1절 발포사건이 제주4.3의 도화선이 되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억울한 죽음에 항의해 3.10총파업으로 맞선 이들을 왜 빨갱이로 몰아 학살했는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3.1발포사건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을 뿐인데, 미군정은 왜 제주를 ‘레드 아일랜드(빨갱이 섬)’로 규정하고 군경과 서북청년단을 동원해 폭압을 가했을까?
반공주의 시범케이스
반파시즘이 득세하던 해방정국에 미군정은 반공주의 설파를 위한 일종의 ‘시범케이스’가 필요했다.
당시 유럽은 나치 척결이, 아시아는 일본 군국주의 척결이 시대적 소명이었다. 2차대전 직후였으니 당연하다. 그러나 세계 패권을 노린 미국은 새로운 국제질서를 획책하고 있었다.
미국은 세계를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로 갈라 소련을 악마화하는 반공동맹을 추진함으로써 냉전의 태동을 알렸다. 하지만 반파시즘이 대세인 터라 반공주의는 쉽게 자리 잡기 힘들었다.
친일 청산에 떨쳐나선 한반도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특히 미군정이 발표한 ‘맥아더 포고령’에 따라 38선 이남의 친일경찰·군인·관료가 그대로 권력을 유지하자, 반일 감정은 극에 달했다. 급기야 미군정에 대한 불만으로까지 이어졌다. 이런 조건에서 미군정이 강요한 반공주의가 먹혀들 리 없었다.
더구나 1946년 동아일보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 지지가 77%에 달했다.
미국은 한반도에서 반일 정서를 잠재우고, 반공주의를 불러일으킬 ‘시범 케이스’가 필요했다. 이렇게 제주도는 ‘빨갱이 섬’이 되어야만 했다.
제주4.3과 냉전
미군정청 경무국 국장 조병옥은 일제강점기 일본 앞잡이 노릇을 하던 친일 순사들을 그대로 해방된 땅의 경찰로 복귀시켰다. 1945년 11월 미군정청 스타우트 소령이 제주도(지)사로 부임했을 때 제주경찰 총수 1,157명 중 친일경찰이 949명에 달했다.
당시 조병옥은 “꿩 잡는 게 매”라며 친일파를 앞세워 ‘빨갱이 사냥’에 열을 올렸다. 이런 취지로 결성한 것이 바로 악명높은 ‘서북청년단’이다.
서북청년단은 한반도 서북지역 출신으로 친일청산이 강화되자 월남한 악질 친일파들이다. 제주에 급파된 서북청년단은 친일청산을 주장하면 빨갱이로 몰아 약탈과 폭력을 가했다. 마약까지 흡입한 이들은 죽창으로 제주도민의 배를 갈랐다. 교회를 거점으로 활동하면서 친일경찰과 결탁해 저항하는 제주도민을 마구잡이로 감옥에 넣었다.
지금 제주도에 교회가 많지 않은 이유도 그때의 상처 때문이다.
군인도 온통 친일파로 채워졌다. 일제강점기 독립군을 토벌하던 일본군 장교 출신 송요찬이 9연대장을 맡아 ‘초토화 작전’을 진두지휘했다. 1948년 겨울 이 작전으로 제주도민 2만여 명이 총에 맞거나 불타 죽었다.
당시 제주의 최고지휘관 브라운(Rothell H. Brown) 대령은 “제주도민 80%가 공산주의자와 관련 있다”라며 이들을 학살한 송요찬에 훈장을 추서했다. 이후 송요찬은 육군참모총장, 국방부 장관을 거쳐 국무총리에까지 오른다.
친일파를 앞세워 빨갱이를 사냥한 미국의 제주 ‘시범케이스’ 전략은 냉전체제 구축에서 위력을 발휘했다.
월북한 독립운동가 김원봉을 친일파 백선엽보다 더 증오하게 했고, 침략자 일본은 우방이되고 해방을 도와준 소련은 돌연 적이 되고 말았다.
서북청년단이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를 테러해 친일파 명단을 불태우고, 국가보안법을 제정해 빨갱이 사냥을 합법화하기에 이르렀지만, 누구 하나 선 듯 나서지 못했다.
‘폭력’ 때문이 아니라 ‘나도 언제 시범케이스가 될지 모른다’는 끝나지 않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신냉전과 제주4.3정신 계승
세계 패권을 위해 소련을 악마화하는 반공연대를 구축해 냉전을 시작한 미국이 오늘날 다시 신냉전을 선택했다.
냉전과 마찬가지로 신냉전 구축에서도 북·중·러 악마화는 쉽지 않은 숙제다. 당장 탈냉전 이후 중국의 급속한 성장과 자본주의 국가와의 교류 확대는 신냉전 질서 구축에 걸림돌로 작용한다. 하지만 미국은 이번에도 신냉전을 밀어붙인다.
북과 중국을 겨냥해 일본과 우리가 전쟁동맹을 체결하라고 겁박하는 미국, 신냉전 정세를 틈타 군국주의를 부활한 침략자 일본, 대놓고 친일매국 행위를 일삼으며 간첩 색출에도 여념이 없는 윤석열 정부. 모두 과거 냉전 때 그대로다.
75년 전 냉전 구축의 ‘시범케이스’가 된 제주. 그러나 당시 제주도민들은 앉아서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 ‘탄압이면 항쟁’이라는 구호 아래 매국적인 5.10단독선거를 막아 냈으며, 손에 무기를 들고 조국의 완전한 독립과 민족의 통일을 위해 목숨 걸고 싸웠다.
2023년, 신냉전 구축의 ‘시범케이스’로 민주노총을 비롯한 민중진영이 걸려들었다. 어떻게 할 것인가?
미국의 신냉전 전략을 분쇄하고, 미국의 꼭두각시 윤석열 정권을 끝장내는 제2의 촛불항쟁을 일으키는 것이 제주4.3정신 계승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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