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론: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의 제목운명론
등록 2022-04-27
[기고] 나임윤경|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가수는 노래 제목 따라간다’는 가요계 속설이 있다. 이를테면 ‘마지막 콘서트’를 히트시킨 가수는 그 뒤 몇년간 쉬게 되고, ‘좋은 날’을 부른 가수는 이후 탄탄대로를 걸었다는 식의 ‘제목운명론’에 관한 속설이다. 강준만 교수가 엊그제 쓴 칼럼 ‘페미니즘과 ‘사회적 증거’’는 가수뿐 아니라 학자도 자기 글의 제목을 따라가나 싶을 만큼, 그가 몇년 전에 쓴 책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의 제목을 빼닮았다. 이 책 제목은 ‘과격한’ 사상 페미니즘이, 가르치려 드는 ‘오빠들’ 때문에 과격해지려 해도 과격해질 수 없는 한국의 현실을 풍자적으로 포착했다. 저자는 독자들에게 그러니 ‘오빠’ 따윈 신경 쓰지 말고 “중단 없는 전진”으로 “억압과 착취의 오랜 역사에 종지부를 찍”으라고 말한다, 좀 다른 ‘오빠’인가? 싶게.
여성에 대한 억압과 착취를 끝내라며 힘주던 강 교수가, 그러나 며칠 전 칼럼에서는 한국 페미니즘이 “억압 못지않게 성취”와 “절망 못지않게 희망”에 대해서도 말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그것도 6년 전 출간된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에 나온 통계에 대한 다른 작가의 말장난 같은 문제제기를 받아들이며 말이다. 대기업 설문조사 결과, 비슷한 조건이라면 ‘남성 선호’ 44%, ‘여성 선호’ 0%, 까지만 적은 조남주에게 ‘남성 여성 상관없다’ 56%까지 써서 여성들에게 “부족하나마” “희망”을 말했어야 했다며, 페미니즘이 “울분으로 인한 폭발 일보 직전에” 있는 것 같아 해본 생각이라고 ‘맨스플레인’ 했다, 예의 그 ‘오빠’답게.
대형 은행의 성차별적 채용에 영향력을 행사한 임원이 지난달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오랜 관행’ 등이 이유라 했다. 최근 10년 안팎으로 초·중등 교육과정과 대학진학률 등에서 남성을 앞질러온 여성들에게 절망 자체인 한국의 그 ‘오랜 관행’은 2022년도에도 이렇듯 그대로인데 성별 상관없이 채용한다는 기업이 ‘무려’ 56%나 된다고 적으면 여성들은 벅찬 희망을 안게 될까? 또한 이 지체된 당연함에 맥없는 희망이라도 품는 여성이 많아지게 하는 건 소설가가 해야 하는 일인가? 그 많은 ‘오빠들’은 뭘 하고!
강 교수의 충고는 또 있다. 페미니스트들이 “약속이나 한 듯” 성 격차 지수(156개국 중 한국 102위)만 말고, 한국이 “후진국이 아니라는 걸” 보이는 다른 성평등 통계도 보이라는 것이다. 페미니스트들이 국제지표를 거론하는 이유는 한국 정부가 국내 여성들의 구체적 경험과 진술엔 꿈쩍 않다가 ‘후지게도’ 글로벌 순위에는 조금이나마 움찔하기 때문이다. 성 격차 지수 인용은 강 교수의 지적대로 여성들을 “비참하게” 보이려고 해서가 아니라, 남성을 앞지른 한국 여성의 높아진 교육 수준에 걸맞게 여성의 경제·정치 참여율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다. 성별 임금격차 30% 등 분명한 현실 앞에서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 하고, 곧 들어설 내각에 여성 장관이 20%도 안 되는 상황에 대해선 “장관급…에는 여성이 별로 없지만, 차관급…에는 여성 인재들이 굉장히 많다”는 발언을 그 누구도 아닌 대통령 당선자가 천연덕스레 해대는 이 후진적이고 절망스러운 상황이 성 격차 지수를 “약속이나 한 듯” 자꾸 소환하게 하는 것이다.
억압과 착취에 종지부를 찍으려는 페미니스트 투쟁에 동참하는 대신, 응원‘만’ 하겠다며 멀찌감치 팔짱 끼고 관망하면서, 민주노총에는 엄두도 못 낼 “이렇게 해라” “그렇게 하지 마라” 훈수 두는 ‘오빠들’의 ‘오랜 관행’에 여성들은 넌덜머리가 난다. 여야, 진영 없이 참견만 하는 이 낡은 관행 덕분에 강 교수와 다른 이념적 지향을 보이는 대통령 당선자 역시 건전한 남녀교제를 위해 “페미니즘도 건강한 페미니즘이어야 한다”며 페미니즘의 “울분”을 경계시키는 강 교수 옆으로 일찌감치 한발 담갔다. 이로써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은 의도치 않게(?) 제목 그대로 비꼬임 없이 현실에서 구현되었고, 학자의 ‘제목운명론’도 완성되었다, 젠더 문제엔 꼭 협력하고야 마는 진보·보수 ‘오빠들’ 덕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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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 - 한국 여성의 인권 투쟁사 강준만 (지은이)인물과사상사2018-08-16
Sales Point : 749
7.9 100자평(12)리뷰(8)
400쪽
책소개
사이버 세계의 등장 이후 페미니즘 논쟁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살핀다. 이 책은 어쭙잖은 ‘꼰대질’이나 남자들이 자꾸 여자들을 가르치려 드는 ‘맨스플레인’을 배격하면서 가급적 개입을 자제하고 페미니즘 이슈와 관련해 시공간적으로 전체 맥락의 그림을 보여주는 데 치중한다. 그리고 각 장의 끝에는 저자인 강준만 교수의 생각과 경험을 허심탄회하게 밝힘으로써 실감을 더하는 동시에 솔직한 자기 성찰을 시도하고 있다.
목차
머리말 : “자신의 역사에 대한 지식을 박탈당한 여성들” . 4
제1장 낡은 시대와 새로운 시대의 충돌
사이버 세계의 축복과 저주 . 17|“여성은 ‘창녀 정신’을 가져야 한다” . 19|“노출 응원 단속하면 ‘유방 시위’로 맞서야 한다!” . 21|“내 몸은 음란물이 아니다” . 23|이문열의 ‘페미니즘 때리기’와 ‘현모양처 예찬’ . 25|“모계를 공식적인 부모로 살려내자” . 28|‘IMF 사태’와 ‘아버지 신드롬’ . 30|“이 앉아서 오줌 싸는 빨갱이 년들아” . 31|“여성 노동자는 아쉬우면 동지, 그렇지 않으면 걸림돌인가” . 33|“여성단체 아줌마들을 다 여군으로 보내버려야 한다” . 35|내가 온몸으로 느낀 1990년대 풍경의 본질 . 37
제2장 ‘몸에 각인된 타성’을 둘러싼 투쟁
인터넷이 유행시킨 ‘된장녀’ . 41|‘운동 사회 성폭력 뿌리 뽑기 100인 위원회’ . 43|운동 사회 성폭력을 은폐하는 ‘음모론’과 ‘조직 보위론’ . 45|“이 사태에 분노하지 않는 자는 인간이 아니다” . 46|‘월장 사건’에서 드러난 ‘페니스 파시즘’ . 48|“정통 가족제도 파괴하는 민족 반역자 물러가라!” . 50|2005년 3월 2일 ‘호주제 폐지’ . 52|‘개똥녀’와 ‘페미니즘의 도전’ . 54|왜 여성학은 수요가 없어졌나? . 56|‘88만원 세대’의 탄생 . 57|“오빠는 필요 없다” . 59|“해일이 일고 있는데 겨우 조개나 줍고 있냐” . 61|연예계.정관계 성 접대 사건 . 64|페미니즘에 대한 나의 위선과 뻔뻔함 . 66
제3장 사회적 삶을 타락시킨 가부장제의 폭력
한국은 세계가 알아주는 ‘룸살롱 공화국’ . 69|‘고려대 의대생 성추행 사건’의 비극 . 71|“어떤 옷차림이든 성추행.성폭력을 허락하는 건 아니다” . 72|“우리는 진보의 치어리더가 아니다” . 74|“권력의 불평등 관계가 없으면 성희롱이 아니다”? . 77|“누님들 왜 그래 부끄러워요, 했어야지!” . 79|“내가 여성을 왜 혐오하느냐. 나는 여성을 좋아한다” . 81|“가족은 사랑 공동체가 아니라 경제 공동체” . 82|페미니즘을 구속하는 ‘불륜 공화국’ . 84|기본적인 인권 의식이 없는 한국의 진보 . 86|“성재기, 내일 한강에 투신하겠습니다” . 88|“며느린가 일꾼인가 이럴려고 시집왔나” . 91|페미니즘과 충돌하는 ‘모성 이데올로기’ . 93|나는 한국형 가부장제에서 얼마나 자유로운가? . 95
제4장 인내의 임계점과 저항의 티핑포인트
“나는 페미니스트가 싫다. 그래서 IS가 좋다” . 99|‘페미니즘의 종언’인가? . 101|“IS보다 무뇌아적 페미니즘이 더 위험해요” . 103|“참을 수 없는 건 처녀가 아닌 여자” . 106|“설치고, 떠들고, 말하고 생각하는 여자가 싫다” . 108|“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 110|“남자는 숨 쉴 때마다 한 번씩 때려야 한다” . 112|“혐오 발언을 뒤집어서 되돌려주니까 꼼짝 못하더라” . 114|왜 여성들이 참을 만큼 참았다는 걸 모르나? . 116|“남자 10명 중 1명은 짝이 없는 남성잉여세대” . 119|“여성 혐오는 결혼 시장에서 낙오된 남자들의 절망감” . 122|“여자를 혐오한 남자들의 ‘습관’” . 123|메갈리아 ‘흑역사’인 ‘좆린이 사건’의 진실 . 125|교수님은 메갈리아를 어떻게 보세요? . 127
제5장 ‘공포’ 피해자와 관리자의 충돌
“소라넷이 번창해온 16년간 무엇을 하고 있었나?” . 131|일반명사가 된 ‘메갈리아’ . 133|‘나쁜 페미니스트들’이 이루어낸 소라넷 폐쇄 . 135|“살女주세요, 살아男았다” . 137|“언제든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공포감” . 139|“나는 살아남은 게 아니라 사실 죽어가고 있다” . 141|‘고려대 카카오톡 대화방 언어 성폭력 사건’ . 142|메갈리아를 보는 ‘남성 메갈리안’의 시각 . 144|“소녀들은 왕자님이 필요 없다” . 146|정의당마저 굴복시킨 반메갈리아 분노 . 148|“메갈리아는 일베에 조직적으로 대응한 유일한 당사자” . 150|“에이 18, 정말 못 참겠네” . 152
제6장 ‘구조’ 피해자와 수혜자의 충돌
메갈리아는 ‘여자 일베’인가? . 157|‘팩트 폭격’을 어떻게 볼 것인가? . 159|왜 일베는 ‘구조맹’이 되었는가? . 161|“해방의 문제는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감각의 문제” . 164|“감히 내 성기를 품평하다니” . 166|“아직은 페미니즘보다 여성 혐오가 돈이 되는 시대” . 168|“나는 가슴이 납작하지만 너는 XX가 실XX야” . 169|진보와 보수를 결합시킨 ‘반메갈리아 동맹’ . 172|“여성이 우아해야 한다고 누가 정해준 거냐?” . 174|강신주와 전우용의 반격 . 176|“한번 다른 세상을 본 여성은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 . 178|‘#문단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 . 180|“뽀뽀 한 번만 해주면 안 되겠냐” . 182|“그 짓 10년 넘게 했다. 돌아온 거 없다” . 183|나는 ‘억세게 운 좋은’ 남자였다 . 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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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첫문장
1980년대 후반 일반 대중도 참여할 수 있는 사이버 세계의 등장은 처음엔 여성과 같은 사회적 약자에겐 '축복'으로 여겨졌다.
P. 26~271997년 3월 소설가 이문열은 『선택』을 들고 ‘페미니즘 때리기’와 ‘현모양처 예찬’에 나섰다. 발간 3개월 만에 21만 부가 팔렸다. 이문열은 이 소설에 등장하는 ‘정부인 안동 장씨’는 “남편 아들 손자 3대에서 이른바 칠산림을 배출한 현모양처로서 영남 지방에서는 신사임당과 나란히 우러름을 받는 분이다”고 했다. 계속 그런 이야기만 했더라면 좋았으련만, 이문열은 ‘정부인 안동 장씨’와 대비되는 오늘날의 여성들, 특히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1993)는 페미니즘 베스트셀러 소설을 쓴 공지영 등이 몹시 못마땅했던 것 같다. 그는 “특히 지금은 페미니즘 문학의 선봉처럼 오해되고 있으나 실은 한 일탈이나 왜곡에 지나지 않는 이들과 내가 나란히 논의되는 것은 거의 욕스러울 지경이었다”며, 그 페미니즘 문학의 선봉에 대해 비판을 퍼부었다. 「제1장 낡은 시대와 새로운 시대의 충돌」 접기
P. 76미권스 회원인 ‘똥을품은배’는 「우리는 진보의 치어리더가 아니다」라는 글을 게재하면서 비키니 시위 사진에 달린 댓글에 실린 남성들(로 추정되는 사람들)의 성적 소비를 비판했다. 이후 몇 달 동안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논란의 핵심이 된 이 글은 2008년 당시 광우병 소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에서 전경들의 군홧발에 글쓴이의 플랫 슈즈가 밟힐 때 자신이 느꼈던 공포를 서술하는 것으로 시작하면서 “인터넷에서 남성들이 ‘논객 노릇’에 빠져 있을 때, ‘감정적인’ 여성들이 조직적으로 거리로 나와 현장에 뛰어들었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그렇게 수많은 여성이 적극적으로 정치를 만들어내고, 거리와 온라인, 생활의 현장에서 생생한 활약을 했음에도 <나꼼수>가 등장하자 <나꼼수>에 의해 여성들이 ‘새롭게’ 정치화되고 있는 양 대상화되고 있는 현실에 ‘똥을품은배’는 분노를 표했다. 「제3장 사회적 삶을 타락시킨 가부장제의 폭력」 접기
P. 146~147메갈리아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그런 구분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했고, 이런 생각이 바탕이 되어 일어난 게 바로 2016년 7월 하순 넥슨의 성우 교체 사건이다. 시작은 7월 18일이었다. 넥슨 게임 <클로저스>의 캐릭터 ‘티나’ 역을 맡은 성우 김자연이 자신의 트위터에 티셔츠를 입은 한 장의 인증샷을 올렸다. 티셔츠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소녀들은 왕자님이 필요 없다(GIRLS Do Not Need A PRINCE).’ 이 티셔츠는 페이스북 페이지 메갈리아4에서 기획했다. 메갈리아4는 페이스북에서 일련의 여성 혐오 페이지들은 유지되는데 반해 ‘메갈리아2’, ‘메갈리아3’ 등 여성주의 페이지를 뚜렷한 근거도 없이 페이스북 측이 일방적으로 폐쇄한 것에 대한 소송을 준비하기 위해 모금을 진행하면서 후원의 대가로 이 티셔츠를 지급했다. 「제5장 ‘공포’ 피해자와 관리자의 충돌」 접기
P. 1662016년 8월 『시사IN』(8월 27일)은 제467호 표지를 기획 기사 ‘분노한 남자들’로 장식했다. 천관율 기자가 쓴 「정의의 파수꾼들?」이라는 기사는 데이터 기반 전략 컨설팅 기업 아르스프락시아와 함께 지난 1년간 메갈리아에 대해 비판적인 『나무위키』 사이트의 ‘메갈리아’ 항목을 분석했다. 『나무위키』의 메갈리아 항목 변천사는 크게 세 시기로 나눌 수 있는데, 가장 치열했던 1기(항목이 탄생한 2015년 8월부터 소강기로 접어들기 직전인 2015년 11월까지)의 키워드는 ‘남성’, ‘성기’, ‘크기’였다. 천관율은 “담론의 한가운데에는 ‘성기 크기’가 있었다”고 말한다. 보통의 남초 커뮤니티에서, 여성의 신체는 정육점의 소고기처럼 ‘부위별 평가’의 대상이 된다. 그런데 그런 평가를 하던 남성들이 정작 자기가 성적 품평의 대상이 되는 경험을 처음 해보면서 엄청난 충격을 받은 게 데이터로 고스란히 잡혔다는 것이다. 「제6장 ‘구조’ 피해자와 수혜자의 충돌」 접기
P. 234~235“회사에 섹시한 여자가 없다”, “가슴만 만져도 리스펙respect(존경)”, “가슴 보려고 목 빼고 있다가 걸린 것 같다”, “아무개, 성감대 많음”. 국회를 출입하는 남성 기자 4명이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단톡방)에서 동료 여성 기자들을 대상으로 나누었던 대화 내용 중 공개된 일부다. 8월 20일 『미디어오늘』에 게재된 「“남자 기자·취재원만 있던 술자리, 나는 ‘꽃순이’였다”」는 기사에 따르면, 이 ‘단톡방 성희롱’ 사건은 드러나서 문제가 된 것이지, 이와 비슷한 일은 국회 내에서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미디어오늘』이 2017년 8월 13일부터 15일까지 국회 출입 기자들을 대상으로 성희롱 실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 34명(남기자 8명 포함) 중 ‘국회의원’에게서 성희롱 등 성폭력을 경험했다는 대답이 15명(75퍼센트)으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많았던 성폭력 가해자는 중복 응답까지 감안하더라도 ‘동료 기자(12명)’였는데, 항목은 나뉘었지만 ‘상사(8명)’와 ‘후배(1명)’ 가해자까지 합하면 기자들 사이에서 성폭력을 경험하는 비율도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외 국회의원 보좌진(보좌관?비서관)이 성폭력 가해자였다고 지목한 사람도 9명이나 되었다. 「제8장 페미니즘과 촛불 시위의 배신」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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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강준만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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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강준만은 탁월한 인물 비평과 정교한 한국학 연구로 우리 사회에 의미 있는 반향을 일으켜온 대한민국 대표 지식인이다. 전공인 커뮤니케이션학을 토대로 정치, 사회, 언론, 역사, 문화 등 분야와 경계를 뛰어넘는 전방위적인 저술 활동을 해왔으며, 사회를 꿰뚫어보는 안목과 통찰을 바탕으로 숱한 의제를 공론화해왔다.
2005년에 제4회 송건호언론상을 수상하고, 2011년에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국의 저자 300인’, 2014년에 『경향신문』 ‘올해의 저자’에 선정되었다. 저널룩 『인물과사상』(전33권)이 2007년 『한국일보』 ‘우리 시대의 명저 50권’에 선정되었고, 『미국사 산책』(전17권)이 2012년 한국출판인회의 ‘백책백강(百冊百講)’ 도서에 선정되었다.
2013년에 ‘증오 상업주의’와 ‘갑과 을의 나라’, 2014년에 ‘싸가지 없는 진보’, 2015년에 ‘청년 정치론’, 2016년에 ‘정치를 종교로 만든 진보주의자’와 ‘권력 중독’, 2017년에 ‘손석희 저널리즘’와 ‘약탈 정치’, 2018년에 ‘평온의 기술’과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 2019년에 ‘바벨탑 공화국’과 ‘강남 좌파’, 2020년에 ‘싸가지 없는 정치’와 ‘부동산 약탈 국가’, 2021년에 ‘부족주의’ 등 대한민국의 민낯을 비판하면서 한국 사회의 이슈를 예리한 시각으로 분석했다.
그동안 쓴 책으로는 『퇴마 정치』, 『반지성주의』, 『정치적 올바름』, 『엄마도 페미야?』, 『정치 전쟁』, 『좀비 정치』, 『발칙한 이준석』, 『단독자 김종인의 명암』, 『부족국가 대한민국』, 『싸가지 없는 정치』, 『권력은 사람의 뇌를 바꾼다』, 『부동산 약탈 국가』, 『한류의 역사』, 『쇼핑은 투표보다 중요하다』, 『강남 좌파 2』, 『바벨탑 공화국』,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 『평온의 기술』, 『약탈 정치』(공저), 『손석희 현상』, 『박근혜의 권력 중독』, 『힐러리 클린턴』, 『도널드 트럼프』, 『전쟁이 만든 나라, 미국』, 『정치를 종교로 만든 사람들』, 『지방 식민지 독립선언』, 『개천에서 용 나면 안 된다』, 『싸가지 없는 진보』, 『감정 독재』, 『미국은 세계를 어떻게 훔쳤는가』, 『갑과 을의 나라』, 『증오 상업주의』, 『강남 좌파』, 『한국 현대사 산책』(전23권), 『한국 근대사 산책』(전10권), 『미국사 산책』(전17권) 외 다수가 있다. 접기
최근작 : <[큰글자책] 한국 현대사 산책 1990년대편 1>,<[큰글자책] 한국 현대사 산책 1980년대편 4>,<[큰글자책] 한국 현대사 산책 1980년대편 3> … 총 532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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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무예로 조선을 꿈꾸다>,<세습 자본주의 세대>,<공감의 비극>등 총 356종
대표분야 : 한국사회비평/칼럼 5위 (브랜드 지수 132,166점), 역사 14위 (브랜드 지수 225,939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페미니즘의 완성’은 ‘가부장제 깨부수기’다!
“가부장제는 거역할 수 없는 자연의 법칙이 아니다”
“자궁 가족은 가부장제를 유지시키는 안전판 노릇을 해왔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30여 년간 페미니즘 논쟁과 논란이 뜨겁게 전개되었다. 이는 현재진행형이며 전쟁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다. 하지만 싸우는 양쪽이 대등하게 싸우는 전쟁은 아니다. 억압을 받는 쪽에서만 수많은 희생자를 내고 있는 ‘참혹한 전쟁’이다. 역사학자 거다 러너가 지적했듯이 “여성들은 그 어떤 인간 집단보다도 오랫동안 타인에 의해 규정되고 ‘타자’로 규정되었으며, 그 어떤 집단보다도 오랫동안 자신의 역사에 대한 지식을 박탈당”해왔기 때문에 자기 자신의 역사를 모른다. 모든 역사는 남성의 역사였다.
2005년 3월 2일 호주제가 폐지되었다. 당시 호주제 폐지 반대자들은 호주제 폐지자들을 ‘민족 반역자’에서 ‘공산도배’에 이르기까지 살벌한 용어들을 총동원해 욕하면서 호주제 폐지는 ‘망국의 길’이라고 아우성쳤다. 물론 나라는 망하지 않았고, ‘민족 반역자’나 ‘공산도배’도 없었다. 더구나 지금 호주제를 부활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없거니와 이제는 호주제 없는 세상에 익숙해졌다.
마찬가지로 여성 억압의 원흉이 가부장제라는 건 수많은 전문가가 지적해온 사실이다. 그런데 가부장제는 교묘한 이중 구조를 갖고 있어서 깨부수기가 쉽지 않다. “여성이 약자라고? 우리집의 왕은 어머니다”라는 말이 시사하듯이, 남성들은 자신의 가족을 근거로 ‘여성 약자론’마저 인정하지 않는다. 어머니는 오랜 희생과 투쟁을 통해 자신이 낳은 자식들을 기반으로 세력권을 구축해 이른바 ‘자궁 가족’의 수장이 되었는데, 이 자궁 가족이 가부장제를 유지하는 안전판 노릇을 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은 사회가 져야 할 비용과 책임을 가족에게 떠넘기는 식으로 압축 성장을 해온 나라인지라 “믿을 건 오직 가족뿐”이라는 신앙이 한국인의 일상적 삶을 지배한다. 여성 혐오는 엄밀히 말하자면 ‘가족 밖 여성’과 사회에 대한 혐오다. 나의 어머니는 숭배 대상이지만, 너의 어머니는 혐오 대상이다. 그래서 나온 말이 ‘맘충(mom蟲)’이다. 하지만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의 문제일 뿐 결론은 이미 나와 있다. 호주제가 격렬한 반대에도 폐지되었던 것처럼 가부장제는 산산조각 난 채로 부서져 허공으로 사라지게 되어 있다.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은 사이버 세계의 등장 이후 페미니즘 논쟁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살핀다. 이 책은 어쭙잖은 ‘꼰대질’이나 남자들이 자꾸 여자들을 가르치려 드는 ‘맨스플레인’을 배격하면서 가급적 개입을 자제하고 페미니즘 이슈와 관련해 시공간적으로 전체 맥락의 그림을 보여주는 데 치중한다. 그리고 각 장의 끝에는 저자인 강준만 교수의 생각과 경험을 허심탄회하게 밝힘으로써 실감을 더하는 동시에 솔직한 자기 성찰을 시도하고 있다. 이것은 모두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의 종언을 위해서다.
‘호주제’를 옹호하는 남성들
1997년 1월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토론회는 여성계 제1의 과제로 호주제 폐지를 선정했다. 이 토론회에 참석한 여성학자 이효재는 신정모라의 ‘부모 성 함께 쓰기’에 깊은 관심을 보이며 부계 혈통주의에 대한 문제 제기가 중요하다고 했다. ‘3?8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하는 제13회 한국여성대회에서 여성단체 지도자 170여 명이 ‘호주제 폐지’의 관련 사업으로 ‘부모 성 함께 쓰기’를 선언했다. 1998년 11월 ‘호주제 폐지를 위한 시민 모임’이 조직되었을 때, 이 모임 게시판은 “이 앉아서 오줌 싸는 빨갱이 년들아”라는 제목의 글로 도배되었다. ‘사이버 테러’로 명명되는 여성 적대적 환경 속에서 대안 공간을 찾기 위한 페미니스트들의 노력은 웹진이나 커뮤니티를 통해 여성들의 목소리를 담는 것으로 이어졌다. 1998년 7월, ‘호주제 폐지를 위한 시민 모임 창립준비위원회’가 각 사회단체와 PC통신 동호회에 참여 독려 공문을 발송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기도 했다.
2003년 5월 한국씨족연합회 등으로 구성된 ‘정통가족제도수호범국민연합’은 “호주제 폐지하면 한국 가족제도가 박살납니다”, “반만년 문화 배달민족에게 사회주의 가족법이 웬 말이냐”, “호주제가 폐지되면 부모형제 남이 되고 일가친척 없어진다”, “정통 가족제도 파괴하는 민족 반역자 물러가라”, “호주제 폐지 주장자들의 논리는 공산도배들의 주장과 다를 바 없다”며 살벌한 전쟁 용어들을 쏟아내며 격렬히 호주제 폐지를 반대했다. 2004년 12월15일에는 호주제 폐지에 반대하는 전국 유림과 시민단체가 서울역 광장에서 ‘호주제 수호 범국민궐기대회’를 열기도 했다. 결국 2005년 3월 2일 국회 본회의는 호주제 폐지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민법 개정안을 찬성 161표, 반대 58표, 기권 16표로 통과시켰다. 2008년 1월 1일부터 시행되는 이 민법 개정안은 페미니즘 운동의 기념비적인 성과였다.
유시민의 ‘조개론’은 ‘대의론’과 ‘조직 보위론’이었는가?
2002년 대선 기간 당시 개혁당 수련회에서 성폭력 사건이 일어나자 당 내부의 여성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특별위원회가 구성되고 실명 공개 서명운동이 진행되었다. 당시 유시민은 “해일이 일고 있는데 겨우 조개나 줍고 있냐”며 성폭력 사건을 조개나 줍는 부차적인 일로 만들어버렸다. 2008년 12월 6일 민주노총 조합원 성폭력 미수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은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이 수배 중이던 당시 이 위원장의 도피를 도운 여성 전교조 조합원을 민주노총 간부가 성폭행하려 했던 사건이다. 이 사건은 당시 사건 은폐의 주역 중 한 명으로 의혹을 받은 전(前) 전교조 위원장 정진후가 2012년 4?11 총선에서 통합진보당 비례대표로 공천을 받으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당시 통합진보당 공동대표 유시민은 “내가 그분들과 얘기해봐서 아는데 정진후 후보에게는 문제가 없다”는 식의 발언을 함으로써 항의 여성들을 분노하게 만들었고, MBC <100분 토론>에서 정진후 후보를 옹호했다. 그러자 “성폭력 피해자, <100분 토론> 유시민의 정진후 감싸기에 오열. 통합진보당 정진후에 대한 공천을 취소하라!” 등의 비판이 줄을 이었다. 유시민은 개혁당 시절의 조개론에 이어 통합진보당 시절의 ‘정진후 감싸기’로 인해 여성운동가들 사이에선 성폭력과 관련된 ‘조직 보위론’의 대표적 옹호론자로 떠오르게 되었다. 국내 페미니즘 책들에서 ‘조직 보위론’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어김없이 ‘유시민의 조개론’이 거론된다.
탁현민의 『남자 마음 설명서』를 옹호하는 이유
청와대 의전비서관실 행정관인 탁현민은 과거 자신의 저서에서 젊은 시절 26명의 여성과 연애했다는 걸 밝혔다. 또 여성 비하, 성매매 찬양, 성적 방종 등의 논란을 일으켰다. 탁현민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제가 썼던 『남자 마음 설명서』의 글로 불편함을 느끼고 상처를 받으신 모든 분들께 죄송한 마음을 표한다”고 사과했지만, 논란은 가라앉지 않았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문재인 정부는 인사 검증 기준에 성평등 관점 강화하라’는 논평을 내고 “여성을 비하하고 대상화한 인물을 청와대 행정관에 내정한 새 정부의 인사 기준에 강하게 문제 제기한다”고 비판했다.
그런데 문성근과 김미화가 탁현민을 응원한 덕분일까? 탁현민을 비판하는 신문 칼럼에는 “탁현민이 돼지 발정제로 성폭행을 조장했나”, “제발 생각 좀 해라. 적과 아군을 구분해라”, “남성 혐오에 눈 감는 건 인권 감수성 있는 거야”, “공무원 뽑는 데 웬 성직자 뽑는 절차를 연상케 한다” 등 탁현민을 옹호하는 댓글이 달렸다. 그러자 여성학자 정희진은 『남자 마음 설명서』를 분석하면서 “탁씨가 백인의 노예가 되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듯이, 여성의 몸도 남성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책은 민망할 뿐, 별 내용은 없다.……문성근 씨가 탁씨를 응원했다. 실망이다. 벌써부터 남성 연대가 문재인 정부를 망칠 조짐이 보인다”고 말했다.
탁현민은 다른 책에서도 여성 비하 표현을 썼던 것으로 드러났다. 탁현민은 『말할수록 자유로워지다』에서 “고등학교 1학년 때 여중생과 첫 성관계를 가졌다”며 “얼굴이 좀 아니어도 신경 안 썼다. 그 애는 단지 섹스의 대상이니까”라고 말했다. 자유한국당, 바른정당, 정의당까지 나서서 탁현민의 사퇴를 요구했다. 반면 탁현민에 대해 ‘부적절’ 의견을 낸 더불어민주당 여성 의원들은 “쓸데없는 내부 총질하지 마세요”라는 문자 폭탄을 받았다. 이에 한국여성단체연합은 ‘탁현민 즉각 퇴출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에 돌입했다.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공동대표 안김정애는 “문 대통령이 제대로 된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려면 탁현민을 즉각 경질해야 한다”고 말했다. 페미당당 대표 심미섭도 “나라를 책임진다는 청와대가 당당하지 못하면 민주주의가 자리 잡을 수 없다”고 말했다.
김어준은 왜 ‘미투 음모론’을 제기했을까?
2018년 2월 김어준은 “누군가가 앞으로 나타날 것이고, 그 타깃은 결국 문재인 정부 청와대, 진보적인 지지층”이라며, “최근 댓글 공작의 흐름을 보면 다음에 뭘 할지가 보인다. 밑밥을 까는 그 흐름이 그리로 가고 있다. 그 관점으로 보면 올림픽이 끝나면 틀림없이 그 방향으로 가는 사람 혹은 기사들이 몰려나올 타이밍”이라며 ‘미투 음모론’을 제기했다. 김어준의 이 같은 발언은 인터넷 커뮤니티, SNS 등을 통해 널리 퍼지면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또 김어준은 팟캐스트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서 “안희정에 봉도사까지 이명박 가카가 사라지고 있다”며 “제가 공작을 경고했지 않았나? 그 이유는 이 미투를 공작으로 이용하고 싶은 자들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그건 명백한 건데”라고 말했다. 며칠 후 손석희는 JTBC <뉴스룸> ‘앵커 브리핑’에서 이를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손석희는 “세상은 ‘각하’를 잊지 않았다”는 제목의 ‘앵커 브리핑’에서 “‘각하가 사라지고 있다’ 한 팟캐스트 진행자의 발언이 논란이 됐습니다. 그는 언론의 미투 보도 탓에 전직 대통령의 더 커다란 범죄가 가려지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그가 이야기하는 ‘각하’를 잊어본 적이 있었던가”라며 반박했다.
김어준의 ‘미투 음모론’은 한마디로 미투 운동이 좌파 분열의 책동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의원 금태섭은 “미투 운동이 상대방 진영에 도움이 된다는 식으로 해석되기 시작하면 피해자들에게만 부담을 주는 꼴”이라며 “약자의 인권 보호가 아니라 자기 편에 유리한 쪽으로만 움직인다면 진보가 수구 보수 세력과 무엇이 다른가”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또 “피해자들이 ‘내가 고발하면 각하가 사라지는 건가’ 하고 걱정해야 한다는 것이냐”라며 비판했다.
‘오빠 페미니스트’는 위험하다
대한민국에는 ‘오빠 페미니스트’가 활기를 치고 있다. 이들은 여러 유형이 있는데, 페미니즘의 ‘페’자도 꺼내지 못하게 만들 장동민과 같은 마초 오빠를 제외하고 보자면, 크게 4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유시민처럼 정치를 종교화한 ‘정치 종교적 오빠들’이다. 김어준을 비롯한 <나꼼수> 계열의 논객들도 이 유형에 근접한다. 둘째, 정치보다는 자신의 권위를 중시하는 ‘권위주의적 오빠들’이다. 영화배우 유아인이 이 유형에 속한다. 셋째, 계급 문제를 내세워 페미니즘을 그 아래에 종속시키려는 ‘계급주의적 오빠들’이다. 그래도 세상이 많이 진보한 탓인지 요즘엔 자신의 실명을 내걸고 이런 시대착오적인 주장을 펴는 논객은 많지 않지만, 페미니즘을 비난하는 익명의 댓글 중엔 여전히 많이 눈에 띄는 주장이다. 여성 검사의 70퍼센트가 성희롱·성범죄 피해를 당하는 세상인데도 계급 문제를 내세워 ‘진보 코스프레’를 하겠다는 심산인가?
넷째, 자신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데도 몸에 새겨진 가부장적 DNA로 인해 부지불식간에 반(反)페미니즘 본능을 드러내기도 하는 ‘본능주의적 오빠들’이다. 최근 논란을 빚은 박훈 변호사가 이 유형에 속한다. 박훈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6?13 지방선거 서울시장 후보인 녹색당 신지예의 포스터를 두고 “1920년대 이른바 계몽주의 모더니즘 여성 삘이 나는 아주 더러운 사진을 본다. 개시건방진. 나도 찢어버리고 싶은 벽보다. 그만하자. 니들하고는”이라고 썼다.
대한민국 오빠들에게 “오빠로 살기 힘들지 않으세요?”라는 질문을 던질 때가 되었다. 소통하는 페미니즘은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의 굴레에서 벗어나면서 ‘여성해방’은 ‘오빠의 해방’이기도 하다는 것을 뜻하는 페미니즘이다. 오빠의 해방은 바로 페미니즘이 추구하는 목표다. 오빠들이 자신들이 허락한 페미니즘의 속박에서 벗어나 상호 소통하는 페미니즘의 새로운 세계로 진입한다면, 자유와 광명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 또 여성 억압의 원흉인 가부장제를 깨부수는 일은 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남성을 위한 것이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강요받아온 ‘남자다움’에 대한 강박이 남자들을 불행하게 만들고 있다.
가부장적 남성들은 전체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망원경은 꼭꼭 숨긴 채 페미니즘의 흠을 잡기 위해 현미경을 들이대면서 자신들의 정당성을 강변하고 있다. 점잖은 사람들은 혐오와 싸움은 좋지 않다며 일방적으로 얻어맞은 사람들에게 용서와 화해를 강요하고 있다. 앞으로 페미니즘은 더 큰 풍랑을 맞을 수도 있지만, 두려워할 건 없다. 누군가가 말했듯이 역사는 지그재그로 진보하기 때문이다. 아니 후퇴하기도 하면서 진보한다. 또 한 번도 페미니즘의 뜨거운 맛을 본 적이 없었던 가부장적 남성들은 메갈의 뜨거움에 펄쩍 뛰면서 광분의 비명을 질러대고 있다. 하지만 그건 곧 그들이 익숙해지게 될 뜨거움임을 알게 된다. 호주제가 폐지된 13년 전으로 돌아가 희망의 불씨를 찾아보는 건 어떨까?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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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 맥락에서 페미니즘 담론이 어떻게 흘러왔는지 보여줍니다. 당연한 이야기에 쌉소리하는 ‘논객‘과 네티즌에게 사이다 먹입니다. 강준만이 늘 하던 방식으로요.
序 2018-08-15 공감 (1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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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성의 인권 투쟁사를 알려면 읽어야 할 책
shuita 2022-02-13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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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한국 사회 페미니즘 운동과 관련된 주요 이슈, 사건 경과, 결과와 영향을 보여 준다. 요령 좋게 정리했고, 자기 입장은 명확하다. 각 장 마지막 꼭지 글들은, ‘살신성인‘의 의도는 선하지만, 사족이다. 이만 한 책을 써 준 것으로 족하다. 교정교열은 미흡하다. 별 하나 뺀다.
B급편집자 2018-09-07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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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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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내가 여성학 강의를 처음 들은 건 90년대가 막 시작 되고나서였다.
이 여성학이란 학문이 대중에 알려지기 시작한 때가 언제부터였을까? 멋대로 말해보자면 70년대 말 80년 대 초쯤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따지자면 난 10년 후에 강의를 처음 들었다는 말이다. 그때 무슨 강의를 들었는지 기억나는 건 없고, 딱 하나 기억나는 건 여성학은 양성이 평등해지면 없어질 학문이기 때문에 영어로 표기하면 이론을 뜻하는 logy란 단어를 붙이지 않는다고 했다. 즉 학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단지 우리나라 언어 표기상 그렇게 부르는 것이라고 했다.
그때 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듣는 여성학 섭섭하게 여성학은 학문이 아니라니. 그렇지 않아도 여성이 뭐하나 제대로 대접 받는 것도 없으면서 이런 것조차도 차별을 받는구나 싶기도 하고, 먼 미래의 일이긴 하겠지만 ‘양성 평등이 이루어지면’이란 전제가 있으니 희망을 가져 봄직도 하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도 얼핏 했던 것도 같다. 그로부터 30년 정도가 흘렀다. 격세지감이다. 그땐 교양 정도로만 생각했던 페미니즘이 30년이 흐른 지금 이렇게 뜨거울 거라곤 감히 상상이나 했을까?
이 책을 들었을 때 정말 근질근질했다. 읽고 싶어서. 제목이 확 끌리지 않는가? 더구나 저자가 그 유명한 강준만이다. 사실 난 그렇게 저자가 유명해도 그의 책을 읽어 본 기억이 없다. 이 책으로 그의 필력을 접하게 되었으니 차라리 근질근질이 아니라 두근두근해야 맞지 않을까?
얼핏 제목만 읽으면 페미니즘을 옹호하는 남성들의 이야기인가 싶어 내심 반가울 수도 있겠다 싶다. 하지만 저자가 말하는 건 ‘가부장제가 허락한 페미니즘’을 말하는 것이다. 즉 ‘그런 과격한 방식의 페미니즘은 ’오빠들‘이 허락해 줄 수 없다.’는 식으로 ‘독재가 허락한 민주주의’, ‘회장님이 허락한 노동운동’, ‘백인이 허락한 흑인운동’ 뭐 이런 것과 같은 선상에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진정한 의미에서의 페미니즘은 아니란 소리다.
나 역시도 주위에 가끔 페미니즘에 관심을 보이는 남자들을 본다. 남자가 여성 문제에 관심이 많다. 여성으로선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과 갑자기 본의 아니게 언쟁이라도 해 보라. (물론 다 그런 건 아닐 테지만)이 인간은 별 수 없는 마초라는 걸 알게 되는 때가 있다. 그러면 여자는 페미니즘에 관심 있는 남자라고 해서 다 여자들에게 우호적인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필터링에 들어간다. 그러니까 남자들 중엔 진정으로 여성의 문제에 귀 기울여주는 사람도 있지만, 그것을 교묘히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써 먹는 사람도 있더라는 것이다.
물론 처음엔 분노하기도 하지만 또 어찌 보면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어차피 인간 세계는 그런 거니까. 아무리 순수한 마음에서 페미니즘이나 여성 문제를 이해한다고 해도 어차피 남자다.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다고 해서 뼛속까지 여자로 거듭나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게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기특한 일 아닌가.
이 책은 제목은 그렇긴 하지만(나 개인적으론 이 제목이 왠지 마음에 든다) 지난 1990년대로부터 최근까지 여성 문제의 쟁점을 연대순으로 짚어 본 책이다. 매번 저자에게 놀라긴 하지만, 저자는 또 언제 우리나라의 여성문제를 이렇게 시대별로 꿰었을까? 저자의 근면함에 다시 한 번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문득, 페미니스트는 타고나는 것일까? 한국에서 태어났으면 한국인인 것처럼, 페미니즘의 시대에 여자로 태어났다고 해서 다 페미니스트가 되는 것일까? 그건 아닌 것 같다. 물론 그 아이가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온갖 문제가 결국 페미니스트가 되도록 만들겠지만, 결국 여성의 권리를 주장해야 비로소 페미니스트가 되는 것이다. 저자는 남자지만 나 보다 더 많이 페미니즘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오히려 내가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결국 페미니즘은 자연스럽게 되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공부하고 분발해야 되는 것이다.
궁금하다. 이렇게 페미니즘이 뜨거운 건 우리나라만의 현상인건지, 아니면 미국이나 유럽 같은 나라에선 이미 지나간 것을 우리나라는 이제야 맞이한 건지. 이렇게 페미니즘 열풍이 불 줄 알았더라면 차라리 민주화 운동 때 함께 일어났어야 했던 건 아닐까 그런 생각도 해 본다. 그랬다면 우리나라는 지금쯤 완전한 선진국 대열에 올라있지 않을까? 다 아는 사실이지만 선진국이란 나라치고 여성이 사회에서 소외되는 일은 없다.
읽다보면 이토록 치열하고 맹렬했었나 싶기도 하다. 그것은 해를 거듭하면 거듭할수록 더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왜 이제와 이토록 치열하고 맹렬해야만 하는 것인가를 생각하면 유시민의 말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그는 장관 재임시절 해일이 몰려오고 있는데 조개나 줍고 있느냐며 여성의 문제를 별 것 아닌 양 취급했었다. 물론 유시민뿐이었겠는가? 보수든 진보든 거의 대부분의 남자들은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아니, 최근 김어준을 비롯한 3인방이나 탁현민 같은 사람이 보여준 언행들을 보면 여자에 대해 이토록이나 무지할 수가 있을까? 혀를 내두를 정도다. 그렇게 생각하면 오히려 유시민의 말이 이해 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앞으로 페미니즘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없는 사람이 정치하도록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메갈리아나 워마드와 일베 같은 극우 단체들의 미러링을 내세운 격렬한 싸움 그리고 최근의 미투 운동과 이를 저지하거나 역미투 운동들을 보면 이제 남자와 여자는 뭔가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린 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게 과연 페미니즘 운동인가 싶기도 하고.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존중하며 공존하지 못한다면 이 상황이 언제까지 갈지 누구도 장담 못하겠다 싶다.
특히 <82년생 김지영> 나오자 그에 대한 대안(?)으로 <82년생 김지영과 72년생 유시민>이 나왔다는 걸 알고 비록 읽지는 못했지만 여자와 남자는 이런 식으로 밖에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는 걸까? 씁쓸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 모든 건 해일이 올지라도 조개를 주워야 할 때 줍지 못했던 과도기적 현상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게 얼마나 갈는지 모르겠다. 좋은 세상이 오면 서로를 이해할 날도 오지 않을까? 그날이 올 때까지 막연히 견디는 수밖에 없겠다 싶다. 남북관계도 봐라. (물론 조금 더 지켜봐야겠지만)이런 날이 올 거라고 누가 감히 생각했나. 남녀관계는 남북관계보다 가깝다. 갈 때까지 가 보고 그게 아니다 싶으면 다시 돌아와 길을 찾으면 된다고 했다. 물론 남자와 여자가 한번 틀어지면 고비사막만큼이나 먼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남자와 여자는 창세전부터 이 지구에 있게 하기로한 하나님의 작품이다. 이 지구가 존재하는 한 남자와 여자는 공존해야만 한다. 그것도 아주 잘.
그렇지만 지금으로선 페미니즘의 전망이 어디까지인지 잘 모르겠다. 이 책은 여성 현대사를 정리한 것이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구체적인 전망까지는 나와 있지 않다. 적어도 지금의 전투적 페미니즘까지가 페미니즘의 끝은 아닐 것이다. 내가 그 옛날 들었던, 양성평등이 이루어지면 없어질 학문이 맞는다면 우린 전투적 페미니즘을 넘어 기필코 양성평등까지 가야한다. 그것은 남자가 아무리 거부해도 할 수 없는 페미니즘의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페미니즘이 이렇게 힘들 게 가야할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페미니즘을 잘 알지 못하고 하는 소린지도 모른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사랑하고 신뢰하고 배려한다면 그런 곳에 굳이 페미니즘을 들이댈 필요가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실제로 그렇게 남자와 여자가 치열하게 싸우는 것만 같아도 또 어디에선가는 남자와 여자가 그럭저럭 잘 지내는 곳도 있지 않을까? 단지 아쉽다면 그런 연대가 제도나 정치로까지 확장되면 좋은 일이겠지. 중요한 건 그런 평화롭고 평등한 인류를 확장시켜 나가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그 다리를 놓으려고 페미니즘이 가는 거라면 할 말은 없다. 아니 잘 가고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학문이 아니라지만 페미니즘은(사회운동이지 않을까?) 지금까지 여러 가지 이론을 빌어 여자가 얼마나 많이 소외되고 고통 받아왔는지를 증명하려고 했다. 남성이, 이 사회가 알아달라고 끊임없이 요구해 온 것이다. 과연 사람을 이해하고 사랑하는데 얼마만한 학문적 이론이 필요한 것일까? 학문이 사랑을 대신할 수 없는데 우린 사랑을 종종 개인적인 것으로 치부하거나 잊고 그 자리에 온갖 이론과 법과 제도로 덕질을 하며 살아 온 것은 아닐까?
물론 페미니즘을 아는 남자가 그것은 전혀 모르거나 알려고 하지 않는 사람 보다 훨씬 희망적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사람 사는데 무슨 이론이나 법이나 제도가 꼭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지구 반대쪽 어느 오지의 이름 모를 부족은 페미니즘의 페 자도 모르고 살아도 서로를 위하며 잘 사는 부족도 많다. 그런 것처럼 남자들 중엔 페미니즘의 알고 모르고를 떠나 천성적으로 사람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여자들은 이런 남자에 호의적이다. 그건 남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바로 이런 공통분모를 넓혀 나가는 것도 페미니즘이 감당해야할 부분이라면 부분이지 않을까?
지금은 페미니즘이 너무 힘들게 간다 싶기도 한다. 그래서 안쓰럽기도 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힘들어도 가야할 길이라면 가야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느 때가 되면 좀 유연해지고, 확장적이며 인간 회복의 희망을 보여주길 바란다.
페미니즘 파이팅!
- 접기
stella.K 2018-08-31 공감(22) 댓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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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여성들의 권리를 위한 투쟁의 여정
사람들 간에 위계가 있는가
없어야 한다. 그런데 있다. 현실에서 사람들은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평등하지는 않다. 사람들은 자신이 갖고 있는 것(학력, 집안, 경제력 등등)에 의해 위계지워진다.
스스로 위계를 만들지 않더라도 어느 순간 위계 속에서 어느 자리에 자신이 속해 있음을 판단하게 된다. 이런 위계를 부정하는 것이 인권이다. 자신이 갖고 있는 것보다 우선하는 것이 바로 사람이라는 것. 우리는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도 다른 사람과 동등한 존재인 것이다. 단지,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도 그렇다.
하지만, 자신이 가진 것도 자신의 노력으로 가진 것이 아니다. 학력이 자신의 순수한 노력일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과연 그런가 하면 그렇지 않다는 답도 많다. 이미 출발선이 다르기 때문에 최종 학력도 달라진다고 보는 견해도 있으니... 학력이 꼭 자신만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물론 자신의 노력이 큰 비중을 차지하기는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라는얘기다.
여기에 집안은 이미 선천적으로 주어졌고, 경제력 역시 자신의 노력보다는 이미 주어진 집안의 환경에 따라서 크기가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경제력과 학력은 자신의 노력으로 충분히 성공 가능하다는 인식이 있지만 현실에서는 자신의 능력에 더해 다른 조건들이 큰 역할을 할 때가 더 많다.
그러나 사람이라는 것은 동등하다. 어떤 사람도 사람이 먼저여야 한다. 사람이라는 점에서 다른 사람과 동등한 권리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이렇게 인권의식이 발달하면서 학력, 집안, 경제력 등에 의한 위계는 차별이라는 인식이 자리를 잡았다. 그래서 이런 것들로 차별을 받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인권이라는 생각도 이제는 대부분의 사람이 갖고 있다.
하지만 천부적인 것인데도 여전히 위계가 존재하는 것이 있다. 바로 성별이다. 성별과 더불어 성적 지향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위계가 존재한다.
페미니즘은 인권운동이다
그래야 한다. 인권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니고 있어야 할 권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권 앞에서는 남녀나 또는 성적 지향을 구분해서는 안된다. 누구나 사람이라는 존재로 존중을 받아야 한다.
성별 또는 성적 지향으로 차별을 받아서는 안된다. 그것이 바로 인권이다. 그런데 성별에 따라서 성적 지향에 따라서 차별이 이루어졌다. 공공연히, 또는 암묵적으로.
이것에 반대해서 우리도 사람이다. 성별이나 성적 지향으로 차별을 받지 않겠다고 당당하게 권리 주장을 하는 것이 페미니즘이다.
그러므로 페미니즘은 여성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여성들만 잘살겠다고 하는 운동도 아니다. 모든 남성을 적으로 돌리는 운동도 아니다. 이 책에도 언급되지만 페미니즘 운동이 남성을 반대하는 것이 남성성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차별에 반대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성적 지향으로 차별을 받아서는 안된다는 것까지 포함된다.
이런 의미에서 페미니즘은 당연히 인권 운동이다. 인권 운동이기에 성별의 다름을 먼저 내세우는 것은 옳지 않다. 어떤 성별, 성적 지향을 막론하고 사람으로서 동등한 권리를 누릴 수 있고, 사람으로서 동등한 존재로 대우받아야 한다는 것이 페미니즘 운동이라 할 수 있다.
페미니즘은 과격하다?
페미니즘 운동을 표방하던 운동 중에 과격하게 보인 운동이 있었다. 미러링이라고 해서 남성들이 하는 혐오표현을 거울 비추기 식으로 되돌려 주는 운동도 있었다. 혐오 표현에 혐오 표현으로 대응한다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전략.
처음엔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다. 그간 목소리를 내지 못하던 사람들이 낼 수 있는 방법은 큰소리다. 작은 소리는 다뤄주지도 않는다. 자신들을 봐달라고, 우리가 이렇게 외치고 있다고 밖에 대고 존재를 드러낼 때, 기득권을 지니고 있던 세력을 그것을 과격하다고 한다.
동등하게 대하지 않는다. 반항한다고 여긴다. 그래서 더 험한 표현을 한다. 그럼에도 처벌은 잘 받지 않는다. 공고한 연대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경험한 운동은 더 강하게 표현할 수밖에 없다. 도무지 받아들여지지 않는 주장을 어떻게든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자신들에게 전혀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미디어에 자신들을 알릴 수 있는 방법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격하게 비쳐지기도 한다. 하지만, 과격이란 무엇인가. 드러나는 것만으로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이미 과거로부터 더 심한 억압을 받고 지냈던 사람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이제야 주장하기 시작했는데 그 방법론을 문제 삼아 다 문제있다고 무시하는 것이 과연 옳을까.
페미니즘은 과격하기보다는 성별로 또는 성적 지향으로 차별받지 않는 사회, 그것뿐만이 아니라 다른 조건들로 인해 차별받지 않는 사회를 꿈꾼다. 사람이 먼저인 것이다. 그렇다. 사람이 먼저다. 그런 사람으로서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이 페미니즘이다. 여기에는 남성, 여성, 또는 다른 성적 지향, 진보,보수, 자본가, 노동자 또는 어떤 직업에 따라서도 차별받아서는 안된다는 사상이 들어 있다.
페미니즘은 모두의 행복을 꿈꾼다. 누가 누구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행복할 수 있는 사회를 꿈꾸는 것이다.
이 책을 읽자
이 책은 이런 저런 페미니즘 운동을 다루고 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1990년부터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던 페미니즘 운동을 정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여성들이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하는 것부터(호주제 폐지 등) 시작하여 미투 운동까지 근 30년에 걸쳐 일어났던 페미니즘 운동을 여러 자료들을 통하여 정리해주고 있다. 우리나라 현대 페미니즘 운동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여기에 더한 점은 바로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이라는 제목이 말해주듯이 페미니즘을 남성들의 자장 안에서 머물게 하려는 모습이 페미니즘 운동 내내 일어났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보수든 진보든 가리지 않고 남성 연대들이 등장한다. 또 자기들 진영을 지키기 위해 희생양으로 삼은 모습도 드러난다.
이미 제목에 위계가 드러난다. 페미니즘 좋다. 그러나 내가 허용한 범위 내에서만 해라. 이게 바로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이다. 이런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을 거부하고, 그 틀에서 페미니즘이 나왔을 때 보수와 진보는 연대한다. 페미니즘에 반대해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면 이 책을 보라. 그런 연대 사례들이 너무도 많아서 열거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테니 말이다.
읽으면서 많이 부끄러웠다. 나 역시 이 책에서 말한 '오빠'에 해당한다는 생각에. 아직도 무의식 중에도 이런 '오빠' 의식이 작동하고 있음에.
페미니즘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이 책부터 읽었으면 좋겠다. 또 페미니즘에 대해서 맹목적인 반감이 있는 사람도 이 책을 먼저 읽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자신이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는 남성이 있다면 이 책을 먼저 읽어야 한다.
그가 '오빠'에 빠져 '허락한' 페미니즘을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이 책이 줄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론서보다도 우리나라 사례를 중심으로 여성 운동을 정리하고 있어서 함께 사는 세상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야 할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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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ye91 2020-09-21 공감(1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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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은 휴머니즘이다-강준만,<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 (인물과사상사, 2018)
나는 ‘생물학적으로 여자’다. 굳이 생물학적으로라는 말을 붙인 것은 내가 전혀 의도하지 않은 성(性)임을 강조하고 싶기 때문이다. 나는 여자로 살아가는 동안, 특별히 차별받았다거나 불편하지 않았다. 결혼하기 전에는. 1960년대 생인데도 딸 아들 차별 받지 않고 어린 시절을 보낸 것은 부모님의 사랑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어느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지 않겠냐마는 나의 아버지는 우리 딸들에게 늘 따뜻했다. 옛날이야기도 들려주고, 공부할 때는 옆에서 연필도 깎아 주었다. 겨울에 옷을 갈아입을 때면 속옷을 아랫목에 넣어두었다가 입도록 하였다. 또 딸들을 무척 자랑스러워하였다. 특히 아버지는 어머니를 무척 아꼈다. 나는 세상의 남자들은 모두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결혼과 동시에 이 생각과 이 느낌이 무너져 내렸다. 남편 하나 믿고 낯선 집에 들어가 낯선 사람들과 산다는 것이 만만하지 않았다. 얼굴도 모르는 시가의 조상에게 제사상을 차리는 것, 집안의 여러 애경사에 참석해야 하는 것 등 등. 결정적으로 내가 충격을 받은 것은 ‘호주제'를 실감한 일이었다.
호적등본을 보니, 나의 아버지의 밑에 기록되어 있던 내 이름에 ‘삭제’한다는 뜻의 선이 그어져 있었다. 그리고 시아버지의 이름 밑에 올라가 있었다. 친가에서 호적을 파다가 시가에 옮긴 거다. 출가한다는 것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더 황당했던 것은 첫 직장을 얻고 나서 쓴 인사기록카드에 ‘호주성명 및 관계’란에 ‘ooo의 자부’라고 기록해야만 했다. 내가 자랄 때 걸음마 한번 가르쳐 주지 않고, 공부할 때 연필 한 자루 사주지 않은 낯선 이름의 어느 남자가 나의 호주라는 거였다. 나는 너무 가슴이 아팠다. 딸을 시집보내고 호적에서 삭제된 딸에 대한 서운함과 이에 더하여 쓸쓸해하실 부모님 생각에 더욱 슬펐다. 딸로 태어난 것이 죄스럽기도 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던 어느 날,‘가족관계증명서’를 보니, 나를 낳고 길러주신 아버지와 어머니가 ‘부모’로 선명히 등재되어 있었다. 바로 호주제가 폐지된 것이다. 나는 너무 기뻤다.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에 가슴이 벅찼다. 눈물이 났다. 그 호주제가 폐지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여성들이 수고하였는지 강준만의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인물과사상사, 2018)을 읽고 알았다. 호주제가 폐지되기까지 반대론자들의 거센 항변이 있었다고 한다. 호주제가 폐지되면 사회에 커다란 혼란이 올 것처럼 반대를 고집하던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호주제 폐지는 이 땅의 여성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도록 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일제가 1921년 공포한 ‘조선호적령’으로 인해 만들어진 호주제. 그 호주제는 2005년 3월 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여 폐지과정을 거쳐서 드디어 완전 폐지된다. 2008년 1월 1일부터 시행되는 이 민법 개정안은 페미니즘 운동의 기념비적인 성과였다.
그럼에도 뼛속깊이 새겨진 가부장제는 아직도 우리의 일상 곳곳에 살아 꿈틀대고 있다. 첫째, 언어생활에서 ‘처가와 시댁’을 보자. ‘댁’은 ‘가’보다 높임말이다. ‘여남’보다는 ‘남여’가 흔히 쓰인다. 친정아버지는 그냥 아버지이고, 시아버지에게는 ‘아버님’이라고 한다. ‘도련님, 아가씨’라는 말은 옛날부터 있어온 말인데, 주인집 자녀에 대하여 하인이 부른 호칭이라고 한다. 둘째, 명절날의 관행을 보면 주로 남편의 집에 가서 차례를 올리고 친정을 가거나 생략한다. 명절 음식 준비는 여성들에게 가장 부담스런 부분이다. 명절도 남성중심으로 행사된다. 셋째, 아직도 남아선호 사상에 젖은 사람들이 많이 있다. 넷째, 직장 내에서의 성차별 문제가 있다. 다섯째, 가정폭력 문제가 있다. 이 중에서 나는 가정폭력 문제에 대하여 자세히 말하고 싶다. 내가 담임을 맡고 있는 학생들 중에서 친구를 괴롭히고, 분노조절을 못하고,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학생들의 대부분을 상담한 결과, 공통점은 가정 내 폭력이었다. 주로 아버지의 폭력. 다행히 자녀를 때리지는 않으나, 부부싸움을 하면서 아내를 구타하거나 집안의 물건을 내던지는 폭력적인 아버지가 있다는 사실 말이다. 내 교직경력이 30년이 되는데, 이런 현상이 점점 심해지는 것 같다. 내가 통계를 내지 않아서 자료를 제시하지는 못하나, 이 사회가 점점 더 살기 힘들어지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나의 분석이다. 피로사회, 경쟁사회, 감시사회, 등의 사회 경제적 문제들이 주로 바깥일을 하는 아버지들을 힘들게 하고 그 힘듦이 가정 내에서 신체적으로 약자인 아내나 아이들에게 전가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아버지에게 직접 맞지 않는다 하더라도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크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때리는 것을 보기만 해도 어린 자녀들은 마음의 상처를 크게 입는다. 그 상처는 성인이 되어서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강준만 교수는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에서 1990년대부터 최근까지의 우리나라 페미니즘 역사를 보여준다. 내가 모르고 지나쳤던 여러 사건들이 결국은 성차별, 가부장제의 폐해였다는 것이 충격적이었다. 1990년대 김완섭의 ‘창녀론’발언, 1996년의‘고대생 이대 대동제 집단 성폭력 사건’, 2000년 초 ‘된장녀’라는 유행어. 2011년 ‘고려대 의대생 성추행 사건’, 그리고 ‘신안군 여교사 성폭행 사건’, ‘카카오톡 대화방 언어 성폭력 사건’, 홍준표의 ‘돼지 흥분제 사건’, 탁현민의 ‘남자 마음 설명서 사건’최근의 ‘미투 운동’까지. 수많은 사건이 있었다. 이 많은 사건들의 기저에는 성차별, 가부장제 등의 사고가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저자는 이 외에도 많은 사건들의 전말에 대하여 많은 자료를 바탕으로 분석한다. 내가 지나쳤던 그 많은 사건에서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이제는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는 사건 사고에 대하여 관심을 가져야겠다.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피해를 입고 사는 사람이 있어서야 되겠는가. 그런데, 저자가 수집한 자료가 너무 많아서 저자의 목소리는 상대적으로 적게 들린 것이 아쉽다. 저자의 글보다는 인용이 너무 많았다.
저자는 페미니즘이 남성과 여성 모두를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페미니즘은 남성에게 강요된 가부장으로서의 책임과 의무 등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한다. 페미니즘은 여성을 옭죄고 있는 성차별과 그에 근거한 착취와 억압을 끝내게 할 수 있다. 그러면서 미국 문화평론가이자 페미니즘 작가인 벨 훅스의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을 예로 들었다. 나는 그 책을 읽어 보았다. 거기서 받은 놀라운 사실은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도 여성에 대한 차별과 착취와 억압이 심각하다는 것을 알았다. 여성 할례의 강요, 태국의 섹스 클럽, 아프리카와 인도, 중동, 유럽에서 여성의 히잡 착용 문제, 중국의 여아 살해 등등. 이를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여성에 대한 이러한 굴레를 벗겨줄 사람이 페미니즘 운동가만이어서는 안 된다. 페미니스트 운동은 여남이 같이 해야 한다. 페미니즘 운동은 인권운동이다. 페미니즘은 휴머니즘이어야 한다.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을 맺으면서 저자는 말한다. “아무리 가부장제에 찌든 남자들일지라도 저항하는 여성에 대해 처음엔 펄펄 뛸망정 그 저항이 지속되면 익숙해지게 되어 있다. 인류 역사를 보라. 기득권자가 스스로 기득권을 포기한 적은 없다. 그 알량한 기득권이란 게 오히려 자신의 이익에 반할 경우에라도 말이다. ‘습관의 독재’외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중략) 오빠도 누이를 돌보는 책임과 고통에서 해방됨으로써 지금보다는 훨씬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오빠의 해방, 그것이 바로 페미니즘이 추구하는 목표다. 오빠들이 자신들이 허락한 페미니즘의 속박에서 벗어나 누이가 허락한 페미니즘, 아니 상호 소통하는 페미니즘의 새로운 세계로 진입해 자유와 광명의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되기를 빈다.”(371쪽) 라고 하면서 페미니즘운동의‘중단없는 전진’을 역설한다.
조남주의 소설 <82년생 김지영>과 영주의 <며느리 사표>에 나오는 주인공들이 여자로서 겪어야 했던 고통을 가슴으로 읽어 보시라. 남자의 시각으로 볼 것이 아니라, 가부장으로서 볼 것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읽어 보시라. 그 여성들이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참고 견디고 저항해야만 했던 힘든 시간을 상상해 보시라. 박범신의 소설 <은교>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너희의 젊음이 너희의 노력에 의하여 얻어진 것이 아닌 것처럼, 노인의 주름도 노인의 과오에 의해 얻은 것이 아니다."<은교>(문학동네, 2012)(251쪽) 이 말은 노인을 천대하고 늙음에 대하여 두려워하는 젊은이의 잘못된 시각을 꼬집는 말이다. 그렇듯이, 남성으로 태어나 남성중심 사고에 젖어 여성을 차별하고 지배하려는 남성에게 말하고 싶다. 남성들의 노력으로 남성이 된 것이 아니고, 여성의 과오로 여성이 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저 ‘자연’일 뿐이다. 남성들이여, 당신들의 어깨에 짊어진 가부장으로서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여성과 함께 이 세상을 행복하게 살 생각이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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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나무 2018-09-07 공감(1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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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 - 오빠 얘기 좀 합시다.
알바하는 곳에서 사장님은 이 책 제목을 보고 “책 제목이 뭐 그러냐? 진정한 페미니즘은 남자도 포용해야지”라고 하셨다. 잠시 놀라 벙쪘지만, 마침 방금 책에서 본대로 답했다. “‘가부장제가 허락한 페미니즘’이라는 뜻이래요. 여성인권운동의 정의까지도 남자들이 내리려고 하는 태도를 비꼬는 말이요.” (정말 예의바르게 말했다.) 사장님은 바로 이어서 이렇게 말하셨다. “너도 대학로 나가서 시위하고 그러냐? 말도 안 되던데”
페미니즘은 요즘 가장 뜨거운 주제이지만, 의외로 주의깊게 살피려고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모르면서 저마다 한 마디씩 거든다. 이 시기에 가장 필요한 책이다.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글쓴이의 이름이 먼저 눈에 띄었다. 일반적인 페미니즘 도서의 저자들과는 달리 강준만 교수는 여성도 아니고, 페미니즘 활동가도 아니다. 하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이 책을 더 매력적으로 느끼는 사람이 과연 나 뿐일까?
나는 그를 잘 모른다. 다만 이전에 읽었던 문장론 책에서 하도 그의 글들을 많이 인용하길래, 언젠가 궁금해서 이름을검색해봤다가 어마어마한 양의 저서들을 보고 놀란 경험은 있다. 그때 그가 ‘인물과 사상’을 창간하면서 내걸었다는 ‘출판의 언론화’라는 단어를 처음 보았다. 그 기치는 이 책에서도 발휘되었을 뿐 아니라, 현 시점의 복잡다단한 한국형 페미니즘을 다루기에도 가장 적합한 방식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이 책은 정말 재밌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안다. 페미니즘 도서는 재미로 읽는 게 아니다. 다만 페미니즘 책이 재미가 없어서 안 읽었다는 누군가에게는 이 책이 대안이 될 수 있으리라 기대해본다.
200페이지가 넘어가는 책은 무거워서라도 안 읽는 나조차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이유는 크게 세 가지이다.
1. 다 알고 있거나, 어디서 들어본 이야기다. 대부분의 페미니즘 베스트셀러는 번역서다. 그 책들이 다루는 페미니즘 이론에 관해서는 눈물을 흘리며 공감하다가도, 작가가 속한 사회의 현안을 다루는 경우 그 내용의 뛰어난 가치에도 불구하고 집중해서 읽지 못했던 경험이 있다. 반면 이 책은 일베, 유아인, 미투운동, 나꼼수, 유시민 등이 얽힌 사건들을 시간 순으로 다루니 더 쉽게 읽힐 수밖에 없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 현 상황을 파악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2. 논쟁을 빈틈없이 다룬다. 한 사건을 다룰 때마다 사건의 전말을 육하원칙에 의거해 상세히 서술하고, 그에 대해 어떤 공방이 있었는지 여러 입장들을 보여준다. 머리말에서 “양쪽의 소통을 위해 양쪽의 역사적 배경과 맥락을 따져보는 작업이 필요하다. 나는 이 책을 통해 그간의 논쟁과 논란을 역사적으로 기술하고 분석함으로써 그런 소통에 기여하고자 한다.”고 했듯이, 그는 여성학자의 칼럼, 정치인의 sns 게시글뿐만 아니라 인터넷 여론을 대변하는 다소 공격적인 네티즌의 댓글까지 인용한다. 적절한 비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싸움 구경이 제일 재밌다고 하지 않는가. 서로를 저격하며 신랄하게 비판하는 그 뜨거운 논쟁의 장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다.
3. 바로 위의 이유 덕분에, 실용성까지 있다. 빼곡한 논리로 무장한 주장을 접함으로써, 앞으로 겪게될 거의 모든 논쟁에 대비할 수 있는 무기를 얻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여성 문제에 관해 입장 자체를 가지기를 조심스러워 했거나 망설인 이들에게는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탄탄히 다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나는 평소에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인식은 있었지만, 딱 그 뿐이었다. 나 역시 어떤 일이 있는지 대충 아는 주제에 함부로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예를 들어, 나는 워마드 때문에 페미니즘의 이름이 더럽혀졌다고 생각해온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예전부터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선언해왔다고 한다. 나는 그동안 누구를 비난해 온 것인가. 나 또한 오빠 페미니즘에 익숙해져 있던 것일까?
더불어 메갈리아가 모두의 무의식 속에 있던 여성의 도덕 하한선, 유리바닥을 깨부수는 역할을 해냈다고 보는 관점은 충격적이었다. 최근 몇 년간 여성을 주제로 한 문학과 영화, 드라마가 눈에 띄게 늘어난 것은 이 주제들을 토론의 장으로 이끌어낸 그들 덕분이었다. 다소 '과격'하게 ‘급진적'으로 행동해왔던 이들이야말로 유구한 역사의 가부장제와 싸워 짧은 기간동안 큰 변화를 이끌어낸 장본인들이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유아인의 애호박 사건과 그가 말한 ‘조직폭력배’의 존재도 당시와는 다른 시각으로 살필 수 있었다. ‘애호박으로 맞아봤음?’이라는 트윗은 경솔했다고 생각했지만, 그 이후 그가 쓴 글에는 대체로 동의했다. 유아인에 대한 팬심에 가려 그의 비논리적인 멘션들과, ‘폭도’와 ‘진정한 여성’을, 또 ‘엄마와 누이’ 그 외의 여성을 분류하고 가르치려고 했던 그의 권위주의적인 태도를 보지 못했다. 유아인이 이 책을 읽고 자신의 생각을 바꿀 수도 있다고 믿고 싶은 마음은 그저 팬심의 연장선일까?
유시민의 ‘조개론’과 ‘어용 지식인론’은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다. 나는 평소 파란 꼰대가 되지 않겠다고, 자식 세대에게 ‘니들이 촛불을 알어' 같은 말은 하지 않기로 다짐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진영 논리에 갇힌 채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이번에 시작할 알쓸신잡3은 챙겨볼 것이고, 항소이유서를 포함한 그의 책들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그것대로 재미있고,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잘못된 발언들은 스스로가 인정할 때까지 계속해서 까야 한다.
또한 나는 여지껏 ‘여성주의’라는 단어로부터 느꼈던 사회적 거부감 때문에 ‘양성평등주의’라는 단어를 같은 말이라고 여기고 사용해왔다. 알고보니 여성주의는 잘못되었으니 양성평등주의를 논하자고 말하는 태도는, 여성의 호소를 귀담아 듣지 않은 채 이미 성평등이 이뤄진 것처럼 여기는 남성중심주의에서 비롯되었다. 스스로가 여성이면서도 나의 불편함을 문제 삼지 않고 참을 만하다 여겼고, 내 친구들이 당하는 부당함을 별 것 아닌 것으로 치부해온 것이다. 이를 계기로 내 무의식 속에 가부장제의 그림자가 어디까지 닿아있는지 끊임없이 스스로를 점검해보기로 다짐했다. 아니, 이것은 다짐보다 욕구에 가깝다고 볼 수도 있겠다. 나의 잘못된 사상을 뜯어고치고 싶은 마음에 다른 페미니즘 책들을 더 찾아 읽어보았고, 이전보다 조금 더 알게된 나는 이제 페미니스트라는 낙인이 두렵지 않다.
가부장제적 시각을 갖고 있는 것이 잘못은 아니다. 여성인 나 스스로부터 가부장제의 사고방식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데, 남성이 페미니즘을 이해하기란 더욱 어려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나는 내가 사랑하는 남자들과 적극적으로 대화를 할 것이다. 여성에 대한 억압은 다른 세계의 일이 아니라, 바로 네 옆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이야기해줄 것이다. 또한 그들의 경험을 들을 것이다. 그들이 남자라서 하는 고민들, 겪고 있는 압박을 경청할 것이다. 이 과정으로 모두가 외부로부터의 편견에 담담하게 대처하고, 무의식 속에 잠재된 모순을 타파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되길 바란다. 더 나아가, 이 책의 마지막 문장처럼 “새로운 세계로 진입해 자유와 광명의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되기를 빈다”.
p.s. 하나 짚고 넘어가고 싶다. 신지예 전 서울시장 후보의 이름을 반복해서 신지혜라고 잘못 표기했다. 조금만 더 신경썼다면 좋았을 텐데,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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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y 2018-09-10 공감(7)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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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
페미니즘은 최근 몇 년 사이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이슈 중 하나이다. 그렇기 때문에 페미니즘 관련 책을 읽고 리뷰를 쓸 때는 언제나 조심스러워진다.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은 간단히 말해 최근 페미니즘 이슈에 대해 시간순으로 정리를 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최근 페미니즘 관련 다양한 이슈가 연속적으로 나오게 되면서 그것들을 정리한 것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통해 쉽게 알 수 있어서 무척 좋았다.
더불어 부끄럽지만 이 책을 통해 처음 강준만이라는 작가에 대해 알게 되었다. 강준만은 굉장히 유명한 논객으로 200여권이 넘는 책을 쓴 것으로 유명하다. 그 책들의 대부분은 어떤 이슈와 상황을 정리한 책들이 많다. 이 책 또한 그의 저술의 연장선상에 놓인 책으로 볼 수 있다.
이 책은 총 11장(+1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반부 1~3장을 통해서는 8~9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의 한국 페미니즘의 여러 운동과 이슈들을 간단히 정리하고 있다. 이 책의 대부분은 최근의 페미니즘 이슈(메갈리아의 등장 이후)에 대해 정리하고 있기 때문에 1~3장은 배경 지식 혹은 프롤로그 정도의 성격을 갖는다. (개인적으로는 그 시절의 페미니즘에 대해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무척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4장부터 본격적인 '최근의 페미니즘 이슈'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이 책은 당연하지만 페미니즘에 대해 무척 우호적이다. 내 생각에 저자가 우호적일 수 있는 이유는 페미니즘이 옳은 것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인종 차별에 호불호가 있을 수 없고 그것이 틀렸다는 게 옳은 것인 것처럼, 페미니즘에도 호불호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제목처럼 페미니즘과 함께 달려온 주요 이슈들(소라넷 - 메갈리아 - 강남역 살인사건 - 탁현민 - 미투 등)의 진행 방향과 그 속에서 치열하게 맞부딪히는 페미니즘과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여러 이슈들 속에서 가부장적 가치관은 꾸준히 페미니즘을 '판단' 했다. 그들은 옳은 페미니즘과 틀린 페미니즘, 좋은 페미니즘과 나쁜 페미니즘을 가르고 구별하였다. 그들은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만을 허용했다. 작가는 이러한 현상들 속에서 실명을 거론하며 다양한 '오빠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결국 이 책은 페미니즘과 가부장제의 전쟁사의 기록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범위가 2015 ~ 2018로 집약되어 있는 최근의 기록이며, 이 시기에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꼭 읽어봤으면 좋을 정리본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책의 저자도 남자, 이 책을 읽는 나도 남자이기 때문에 내가 이 책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는 것을 당당히 말하지는 못할 것 같다. 결국 나도 기득권을 가진 남성이기 때문에 여성들이 처한 현실을 피부에 닿게 느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남성임에도 꾸준히 이런 책을 읽어가며 조금이라도 페미니즘에 대한 이해를 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앞에서 말했듯이 페미니즘은 호불호의 영역이 아닌 옳은 영역에 있기 때문이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더욱 페미니즘 관련 도서를 꾸준히 읽어야 겠다는 다짐을 새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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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훈 2018-08-30 공감(4)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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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내가 여성학 강의를 처음 들은 건 90년대가 막 시작 되고나서였다.
이 여성학이란 학문이 대중에 알려지기 시작한 때가 언제부터였을까? 멋대로 말해보자면 70년대 말 80년 대 초쯤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따지자면 난 10년 후에 강의를 처음 들었다는 말이다. 그때 무슨 강의를 들었는지 기억나는 건 없고, 딱 하나 기억나는 건 여성학은 양성이 평등해지면 없어질 학문이기 때문에 영어로 표기하면 이론을 뜻하는 logy란 단어를 붙이지 않는다고 했다. 즉 학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단지 우리나라 언어 표기상 그렇게 부르는 것이라고 했다.
그때 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듣는 여성학 섭섭하게 여성학은 학문이 아니라니. 그렇지 않아도 여성이 뭐하나 제대로 대접 받는 것도 없으면서 이런 것조차도 차별을 받는구나 싶기도 하고, 먼 미래의 일이긴 하겠지만 ‘양성 평등이 이루어지면’이란 전제가 있으니 희망을 가져 봄직도 하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도 얼핏 했던 것도 같다. 그로부터 30년 정도가 흘렀다. 격세지감이다. 그땐 교양 정도로만 생각했던 페미니즘이 30년이 흐른 지금 이렇게 뜨거울 거라곤 감히 상상이나 했을까?
이 책을 들었을 때 정말 근질근질했다. 읽고 싶어서. 제목이 확 끌리지 않는가? 더구나 저자가 그 유명한 강준만이다. 사실 난 그렇게 저자가 유명해도 그의 책을 읽어 본 기억이 없다. 이 책으로 그의 필력을 접하게 되었으니 차라리 근질근질이 아니라 두근두근해야 맞지 않을까?
얼핏 제목만 읽으면 페미니즘을 옹호하는 남성들의 이야기인가 싶어 내심 반가울 수도 있겠다 싶다. 하지만 저자가 말하는 건 ‘가부장제가 허락한 페미니즘’을 말하는 것이다. 즉 ‘그런 과격한 방식의 페미니즘은 ’오빠들‘이 허락해 줄 수 없다.’는 식으로 ‘독재가 허락한 민주주의’, ‘회장님이 허락한 노동운동’, ‘백인이 허락한 흑인운동’ 뭐 이런 것과 같은 선상에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진정한 의미에서의 페미니즘은 아니란 소리다.
나 역시도 주위에 가끔 페미니즘에 관심을 보이는 남자들을 본다. 남자가 여성 문제에 관심이 많다. 여성으로선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과 갑자기 본의 아니게 언쟁이라도 해 보라. (물론 다 그런 건 아닐 테지만)이 인간은 별 수 없는 마초라는 걸 알게 되는 때가 있다. 그러면 여자는 페미니즘에 관심 있는 남자라고 해서 다 여자들에게 우호적인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필터링에 들어간다. 그러니까 남자들 중엔 진정으로 여성의 문제에 귀 기울여주는 사람도 있지만, 그것을 교묘히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써 먹는 사람도 있더라는 것이다.
물론 처음엔 분노하기도 하지만 또 어찌 보면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어차피 인간 세계는 그런 거니까. 아무리 순수한 마음에서 페미니즘이나 여성 문제를 이해한다고 해도 어차피 남자다.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다고 해서 뼛속까지 여자로 거듭나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게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기특한 일 아닌가.
이 책은 제목은 그렇긴 하지만(나 개인적으론 이 제목이 왠지 마음에 든다) 지난 1990년대로부터 최근까지 여성 문제의 쟁점을 연대순으로 짚어 본 책이다. 매번 저자에게 놀라긴 하지만, 저자는 또 언제 우리나라의 여성문제를 이렇게 시대별로 꿰었을까? 저자의 근면함에 다시 한 번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문득, 페미니스트는 타고나는 것일까? 한국에서 태어났으면 한국인인 것처럼, 페미니즘의 시대에 여자로 태어났다고 해서 다 페미니스트가 되는 것일까? 그건 아닌 것 같다. 물론 그 아이가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온갖 문제가 결국 페미니스트가 되도록 만들겠지만, 결국 여성의 권리를 주장해야 비로소 페미니스트가 되는 것이다. 저자는 남자지만 나 보다 더 많이 페미니즘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오히려 내가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결국 페미니즘은 자연스럽게 되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공부하고 분발해야 되는 것이다.
궁금하다. 이렇게 페미니즘이 뜨거운 건 우리나라만의 현상인건지, 아니면 미국이나 유럽 같은 나라에선 이미 지나간 것을 우리나라는 이제야 맞이한 건지. 이렇게 페미니즘 열풍이 불 줄 알았더라면 차라리 민주화 운동 때 함께 일어났어야 했던 건 아닐까 그런 생각도 해 본다. 그랬다면 우리나라는 지금쯤 완전한 선진국 대열에 올라있지 않을까? 다 아는 사실이지만 선진국이란 나라치고 여성이 사회에서 소외되는 일은 없다.
읽다보면 이토록 치열하고 맹렬했었나 싶기도 하다. 그것은 해를 거듭하면 거듭할수록 더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왜 이제와 이토록 치열하고 맹렬해야만 하는 것인가를 생각하면 유시민의 말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그는 장관 재임시절 해일이 몰려오고 있는데 조개나 줍고 있느냐며 여성의 문제를 별 것 아닌 양 취급했었다. 물론 유시민뿐이었겠는가? 보수든 진보든 거의 대부분의 남자들은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아니, 최근 김어준을 비롯한 3인방이나 탁현민 같은 사람이 보여준 언행들을 보면 여자에 대해 이토록이나 무지할 수가 있을까? 혀를 내두를 정도다. 그렇게 생각하면 오히려 유시민의 말이 이해 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앞으로 페미니즘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없는 사람이 정치하도록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메갈리아나 워마드와 일베 같은 극우 단체들의 미러링을 내세운 격렬한 싸움 그리고 최근의 미투 운동과 이를 저지하거나 역미투 운동들을 보면 이제 남자와 여자는 뭔가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린 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게 과연 페미니즘 운동인가 싶기도 하고.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존중하며 공존하지 못한다면 이 상황이 언제까지 갈지 누구도 장담 못하겠다 싶다.
특히 <82년생 김지영> 나오자 그에 대한 대안(?)으로 <82년생 김지영과 72년생 유시민>이 나왔다는 걸 알고 비록 읽지는 못했지만 여자와 남자는 이런 식으로 밖에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는 걸까? 씁쓸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 모든 건 해일이 올지라도 조개를 주워야 할 때 줍지 못했던 과도기적 현상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게 얼마나 갈는지 모르겠다. 좋은 세상이 오면 서로를 이해할 날도 오지 않을까? 그날이 올 때까지 막연히 견디는 수밖에 없겠다 싶다. 남북관계도 봐라. (물론 조금 더 지켜봐야겠지만)이런 날이 올 거라고 누가 감히 생각했나. 남녀관계는 남북관계보다 가깝다. 갈 때까지 가 보고 그게 아니다 싶으면 다시 돌아와 길을 찾으면 된다고 했다. 물론 남자와 여자가 한번 틀어지면 고비사막만큼이나 먼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남자와 여자는 창세전부터 이 지구에 있게 하기로한 하나님의 작품이다. 이 지구가 존재하는 한 남자와 여자는 공존해야만 한다. 그것도 아주 잘.
그렇지만 지금으로선 페미니즘의 전망이 어디까지인지 잘 모르겠다. 이 책은 여성 현대사를 정리한 것이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구체적인 전망까지는 나와 있지 않다. 적어도 지금의 전투적 페미니즘까지가 페미니즘의 끝은 아닐 것이다. 내가 그 옛날 들었던, 양성평등이 이루어지면 없어질 학문이 맞는다면 우린 전투적 페미니즘을 넘어 기필코 양성평등까지 가야한다. 그것은 남자가 아무리 거부해도 할 수 없는 페미니즘의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페미니즘이 이렇게 힘들 게 가야할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페미니즘을 잘 알지 못하고 하는 소린지도 모른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사랑하고 신뢰하고 배려한다면 그런 곳에 굳이 페미니즘을 들이댈 필요가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실제로 그렇게 남자와 여자가 치열하게 싸우는 것만 같아도 또 어디에선가는 남자와 여자가 그럭저럭 잘 지내는 곳도 있지 않을까? 단지 아쉽다면 그런 연대가 제도나 정치로까지 확장되면 좋은 일이겠지. 중요한 건 그런 평화롭고 평등한 인류를 확장시켜 나가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그 다리를 놓으려고 페미니즘이 가는 거라면 할 말은 없다. 아니 잘 가고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학문이 아니라지만 페미니즘은(사회운동이지 않을까?) 지금까지 여러 가지 이론을 빌어 여자가 얼마나 많이 소외되고 고통 받아왔는지를 증명하려고 했다. 남성이, 이 사회가 알아달라고 끊임없이 요구해 온 것이다. 과연 사람을 이해하고 사랑하는데 얼마만한 학문적 이론이 필요한 것일까? 학문이 사랑을 대신할 수 없는데 우린 사랑을 종종 개인적인 것으로 치부하거나 잊고 그 자리에 온갖 이론과 법과 제도로 덕질을 하며 살아 온 것은 아닐까?
물론 페미니즘을 아는 남자가 그것은 전혀 모르거나 알려고 하지 않는 사람 보다 훨씬 희망적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사람 사는데 무슨 이론이나 법이나 제도가 꼭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지구 반대쪽 어느 오지의 이름 모를 부족은 페미니즘의 페 자도 모르고 살아도 서로를 위하며 잘 사는 부족도 많다. 그런 것처럼 남자들 중엔 페미니즘의 알고 모르고를 떠나 천성적으로 사람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여자들은 이런 남자에 호의적이다. 그건 남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바로 이런 공통분모를 넓혀 나가는 것도 페미니즘이 감당해야할 부분이라면 부분이지 않을까?
지금은 페미니즘이 너무 힘들게 간다 싶기도 한다. 그래서 안쓰럽기도 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힘들어도 가야할 길이라면 가야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느 때가 되면 좀 유연해지고, 확장적이며 인간 회복의 희망을 보여주길 바란다.
페미니즘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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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8-08-31 공감(22) 댓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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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여성들의 권리를 위한 투쟁의 여정
사람들 간에 위계가 있는가
없어야 한다. 그런데 있다. 현실에서 사람들은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평등하지는 않다. 사람들은 자신이 갖고 있는 것(학력, 집안, 경제력 등등)에 의해 위계지워진다.
스스로 위계를 만들지 않더라도 어느 순간 위계 속에서 어느 자리에 자신이 속해 있음을 판단하게 된다. 이런 위계를 부정하는 것이 인권이다. 자신이 갖고 있는 것보다 우선하는 것이 바로 사람이라는 것. 우리는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도 다른 사람과 동등한 존재인 것이다. 단지,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도 그렇다.
하지만, 자신이 가진 것도 자신의 노력으로 가진 것이 아니다. 학력이 자신의 순수한 노력일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과연 그런가 하면 그렇지 않다는 답도 많다. 이미 출발선이 다르기 때문에 최종 학력도 달라진다고 보는 견해도 있으니... 학력이 꼭 자신만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물론 자신의 노력이 큰 비중을 차지하기는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라는얘기다.
여기에 집안은 이미 선천적으로 주어졌고, 경제력 역시 자신의 노력보다는 이미 주어진 집안의 환경에 따라서 크기가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경제력과 학력은 자신의 노력으로 충분히 성공 가능하다는 인식이 있지만 현실에서는 자신의 능력에 더해 다른 조건들이 큰 역할을 할 때가 더 많다.
그러나 사람이라는 것은 동등하다. 어떤 사람도 사람이 먼저여야 한다. 사람이라는 점에서 다른 사람과 동등한 권리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이렇게 인권의식이 발달하면서 학력, 집안, 경제력 등에 의한 위계는 차별이라는 인식이 자리를 잡았다. 그래서 이런 것들로 차별을 받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인권이라는 생각도 이제는 대부분의 사람이 갖고 있다.
하지만 천부적인 것인데도 여전히 위계가 존재하는 것이 있다. 바로 성별이다. 성별과 더불어 성적 지향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위계가 존재한다.
페미니즘은 인권운동이다
그래야 한다. 인권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니고 있어야 할 권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권 앞에서는 남녀나 또는 성적 지향을 구분해서는 안된다. 누구나 사람이라는 존재로 존중을 받아야 한다.
성별 또는 성적 지향으로 차별을 받아서는 안된다. 그것이 바로 인권이다. 그런데 성별에 따라서 성적 지향에 따라서 차별이 이루어졌다. 공공연히, 또는 암묵적으로.
이것에 반대해서 우리도 사람이다. 성별이나 성적 지향으로 차별을 받지 않겠다고 당당하게 권리 주장을 하는 것이 페미니즘이다.
그러므로 페미니즘은 여성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여성들만 잘살겠다고 하는 운동도 아니다. 모든 남성을 적으로 돌리는 운동도 아니다. 이 책에도 언급되지만 페미니즘 운동이 남성을 반대하는 것이 남성성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차별에 반대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성적 지향으로 차별을 받아서는 안된다는 것까지 포함된다.
이런 의미에서 페미니즘은 당연히 인권 운동이다. 인권 운동이기에 성별의 다름을 먼저 내세우는 것은 옳지 않다. 어떤 성별, 성적 지향을 막론하고 사람으로서 동등한 권리를 누릴 수 있고, 사람으로서 동등한 존재로 대우받아야 한다는 것이 페미니즘 운동이라 할 수 있다.
페미니즘은 과격하다?
페미니즘 운동을 표방하던 운동 중에 과격하게 보인 운동이 있었다. 미러링이라고 해서 남성들이 하는 혐오표현을 거울 비추기 식으로 되돌려 주는 운동도 있었다. 혐오 표현에 혐오 표현으로 대응한다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전략.
처음엔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다. 그간 목소리를 내지 못하던 사람들이 낼 수 있는 방법은 큰소리다. 작은 소리는 다뤄주지도 않는다. 자신들을 봐달라고, 우리가 이렇게 외치고 있다고 밖에 대고 존재를 드러낼 때, 기득권을 지니고 있던 세력을 그것을 과격하다고 한다.
동등하게 대하지 않는다. 반항한다고 여긴다. 그래서 더 험한 표현을 한다. 그럼에도 처벌은 잘 받지 않는다. 공고한 연대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경험한 운동은 더 강하게 표현할 수밖에 없다. 도무지 받아들여지지 않는 주장을 어떻게든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자신들에게 전혀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미디어에 자신들을 알릴 수 있는 방법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격하게 비쳐지기도 한다. 하지만, 과격이란 무엇인가. 드러나는 것만으로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이미 과거로부터 더 심한 억압을 받고 지냈던 사람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이제야 주장하기 시작했는데 그 방법론을 문제 삼아 다 문제있다고 무시하는 것이 과연 옳을까.
페미니즘은 과격하기보다는 성별로 또는 성적 지향으로 차별받지 않는 사회, 그것뿐만이 아니라 다른 조건들로 인해 차별받지 않는 사회를 꿈꾼다. 사람이 먼저인 것이다. 그렇다. 사람이 먼저다. 그런 사람으로서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이 페미니즘이다. 여기에는 남성, 여성, 또는 다른 성적 지향, 진보,보수, 자본가, 노동자 또는 어떤 직업에 따라서도 차별받아서는 안된다는 사상이 들어 있다.
페미니즘은 모두의 행복을 꿈꾼다. 누가 누구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행복할 수 있는 사회를 꿈꾸는 것이다.
이 책을 읽자
이 책은 이런 저런 페미니즘 운동을 다루고 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1990년부터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던 페미니즘 운동을 정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여성들이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하는 것부터(호주제 폐지 등) 시작하여 미투 운동까지 근 30년에 걸쳐 일어났던 페미니즘 운동을 여러 자료들을 통하여 정리해주고 있다. 우리나라 현대 페미니즘 운동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여기에 더한 점은 바로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이라는 제목이 말해주듯이 페미니즘을 남성들의 자장 안에서 머물게 하려는 모습이 페미니즘 운동 내내 일어났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보수든 진보든 가리지 않고 남성 연대들이 등장한다. 또 자기들 진영을 지키기 위해 희생양으로 삼은 모습도 드러난다.
이미 제목에 위계가 드러난다. 페미니즘 좋다. 그러나 내가 허용한 범위 내에서만 해라. 이게 바로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이다. 이런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을 거부하고, 그 틀에서 페미니즘이 나왔을 때 보수와 진보는 연대한다. 페미니즘에 반대해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면 이 책을 보라. 그런 연대 사례들이 너무도 많아서 열거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테니 말이다.
읽으면서 많이 부끄러웠다. 나 역시 이 책에서 말한 '오빠'에 해당한다는 생각에. 아직도 무의식 중에도 이런 '오빠' 의식이 작동하고 있음에.
페미니즘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이 책부터 읽었으면 좋겠다. 또 페미니즘에 대해서 맹목적인 반감이 있는 사람도 이 책을 먼저 읽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자신이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는 남성이 있다면 이 책을 먼저 읽어야 한다.
그가 '오빠'에 빠져 '허락한' 페미니즘을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이 책이 줄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론서보다도 우리나라 사례를 중심으로 여성 운동을 정리하고 있어서 함께 사는 세상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야 할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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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ye91 2020-09-21 공감(1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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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은 휴머니즘이다-강준만,<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 (인물과사상사, 2018)
나는 ‘생물학적으로 여자’다. 굳이 생물학적으로라는 말을 붙인 것은 내가 전혀 의도하지 않은 성(性)임을 강조하고 싶기 때문이다. 나는 여자로 살아가는 동안, 특별히 차별받았다거나 불편하지 않았다. 결혼하기 전에는. 1960년대 생인데도 딸 아들 차별 받지 않고 어린 시절을 보낸 것은 부모님의 사랑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어느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지 않겠냐마는 나의 아버지는 우리 딸들에게 늘 따뜻했다. 옛날이야기도 들려주고, 공부할 때는 옆에서 연필도 깎아 주었다. 겨울에 옷을 갈아입을 때면 속옷을 아랫목에 넣어두었다가 입도록 하였다. 또 딸들을 무척 자랑스러워하였다. 특히 아버지는 어머니를 무척 아꼈다. 나는 세상의 남자들은 모두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결혼과 동시에 이 생각과 이 느낌이 무너져 내렸다. 남편 하나 믿고 낯선 집에 들어가 낯선 사람들과 산다는 것이 만만하지 않았다. 얼굴도 모르는 시가의 조상에게 제사상을 차리는 것, 집안의 여러 애경사에 참석해야 하는 것 등 등. 결정적으로 내가 충격을 받은 것은 ‘호주제'를 실감한 일이었다.
호적등본을 보니, 나의 아버지의 밑에 기록되어 있던 내 이름에 ‘삭제’한다는 뜻의 선이 그어져 있었다. 그리고 시아버지의 이름 밑에 올라가 있었다. 친가에서 호적을 파다가 시가에 옮긴 거다. 출가한다는 것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더 황당했던 것은 첫 직장을 얻고 나서 쓴 인사기록카드에 ‘호주성명 및 관계’란에 ‘ooo의 자부’라고 기록해야만 했다. 내가 자랄 때 걸음마 한번 가르쳐 주지 않고, 공부할 때 연필 한 자루 사주지 않은 낯선 이름의 어느 남자가 나의 호주라는 거였다. 나는 너무 가슴이 아팠다. 딸을 시집보내고 호적에서 삭제된 딸에 대한 서운함과 이에 더하여 쓸쓸해하실 부모님 생각에 더욱 슬펐다. 딸로 태어난 것이 죄스럽기도 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던 어느 날,‘가족관계증명서’를 보니, 나를 낳고 길러주신 아버지와 어머니가 ‘부모’로 선명히 등재되어 있었다. 바로 호주제가 폐지된 것이다. 나는 너무 기뻤다.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에 가슴이 벅찼다. 눈물이 났다. 그 호주제가 폐지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여성들이 수고하였는지 강준만의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인물과사상사, 2018)을 읽고 알았다. 호주제가 폐지되기까지 반대론자들의 거센 항변이 있었다고 한다. 호주제가 폐지되면 사회에 커다란 혼란이 올 것처럼 반대를 고집하던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호주제 폐지는 이 땅의 여성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도록 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일제가 1921년 공포한 ‘조선호적령’으로 인해 만들어진 호주제. 그 호주제는 2005년 3월 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여 폐지과정을 거쳐서 드디어 완전 폐지된다. 2008년 1월 1일부터 시행되는 이 민법 개정안은 페미니즘 운동의 기념비적인 성과였다.
그럼에도 뼛속깊이 새겨진 가부장제는 아직도 우리의 일상 곳곳에 살아 꿈틀대고 있다. 첫째, 언어생활에서 ‘처가와 시댁’을 보자. ‘댁’은 ‘가’보다 높임말이다. ‘여남’보다는 ‘남여’가 흔히 쓰인다. 친정아버지는 그냥 아버지이고, 시아버지에게는 ‘아버님’이라고 한다. ‘도련님, 아가씨’라는 말은 옛날부터 있어온 말인데, 주인집 자녀에 대하여 하인이 부른 호칭이라고 한다. 둘째, 명절날의 관행을 보면 주로 남편의 집에 가서 차례를 올리고 친정을 가거나 생략한다. 명절 음식 준비는 여성들에게 가장 부담스런 부분이다. 명절도 남성중심으로 행사된다. 셋째, 아직도 남아선호 사상에 젖은 사람들이 많이 있다. 넷째, 직장 내에서의 성차별 문제가 있다. 다섯째, 가정폭력 문제가 있다. 이 중에서 나는 가정폭력 문제에 대하여 자세히 말하고 싶다. 내가 담임을 맡고 있는 학생들 중에서 친구를 괴롭히고, 분노조절을 못하고,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학생들의 대부분을 상담한 결과, 공통점은 가정 내 폭력이었다. 주로 아버지의 폭력. 다행히 자녀를 때리지는 않으나, 부부싸움을 하면서 아내를 구타하거나 집안의 물건을 내던지는 폭력적인 아버지가 있다는 사실 말이다. 내 교직경력이 30년이 되는데, 이런 현상이 점점 심해지는 것 같다. 내가 통계를 내지 않아서 자료를 제시하지는 못하나, 이 사회가 점점 더 살기 힘들어지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나의 분석이다. 피로사회, 경쟁사회, 감시사회, 등의 사회 경제적 문제들이 주로 바깥일을 하는 아버지들을 힘들게 하고 그 힘듦이 가정 내에서 신체적으로 약자인 아내나 아이들에게 전가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아버지에게 직접 맞지 않는다 하더라도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크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때리는 것을 보기만 해도 어린 자녀들은 마음의 상처를 크게 입는다. 그 상처는 성인이 되어서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강준만 교수는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에서 1990년대부터 최근까지의 우리나라 페미니즘 역사를 보여준다. 내가 모르고 지나쳤던 여러 사건들이 결국은 성차별, 가부장제의 폐해였다는 것이 충격적이었다. 1990년대 김완섭의 ‘창녀론’발언, 1996년의‘고대생 이대 대동제 집단 성폭력 사건’, 2000년 초 ‘된장녀’라는 유행어. 2011년 ‘고려대 의대생 성추행 사건’, 그리고 ‘신안군 여교사 성폭행 사건’, ‘카카오톡 대화방 언어 성폭력 사건’, 홍준표의 ‘돼지 흥분제 사건’, 탁현민의 ‘남자 마음 설명서 사건’최근의 ‘미투 운동’까지. 수많은 사건이 있었다. 이 많은 사건들의 기저에는 성차별, 가부장제 등의 사고가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저자는 이 외에도 많은 사건들의 전말에 대하여 많은 자료를 바탕으로 분석한다. 내가 지나쳤던 그 많은 사건에서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이제는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는 사건 사고에 대하여 관심을 가져야겠다.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피해를 입고 사는 사람이 있어서야 되겠는가. 그런데, 저자가 수집한 자료가 너무 많아서 저자의 목소리는 상대적으로 적게 들린 것이 아쉽다. 저자의 글보다는 인용이 너무 많았다.
저자는 페미니즘이 남성과 여성 모두를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페미니즘은 남성에게 강요된 가부장으로서의 책임과 의무 등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한다. 페미니즘은 여성을 옭죄고 있는 성차별과 그에 근거한 착취와 억압을 끝내게 할 수 있다. 그러면서 미국 문화평론가이자 페미니즘 작가인 벨 훅스의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을 예로 들었다. 나는 그 책을 읽어 보았다. 거기서 받은 놀라운 사실은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도 여성에 대한 차별과 착취와 억압이 심각하다는 것을 알았다. 여성 할례의 강요, 태국의 섹스 클럽, 아프리카와 인도, 중동, 유럽에서 여성의 히잡 착용 문제, 중국의 여아 살해 등등. 이를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여성에 대한 이러한 굴레를 벗겨줄 사람이 페미니즘 운동가만이어서는 안 된다. 페미니스트 운동은 여남이 같이 해야 한다. 페미니즘 운동은 인권운동이다. 페미니즘은 휴머니즘이어야 한다.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을 맺으면서 저자는 말한다. “아무리 가부장제에 찌든 남자들일지라도 저항하는 여성에 대해 처음엔 펄펄 뛸망정 그 저항이 지속되면 익숙해지게 되어 있다. 인류 역사를 보라. 기득권자가 스스로 기득권을 포기한 적은 없다. 그 알량한 기득권이란 게 오히려 자신의 이익에 반할 경우에라도 말이다. ‘습관의 독재’외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중략) 오빠도 누이를 돌보는 책임과 고통에서 해방됨으로써 지금보다는 훨씬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오빠의 해방, 그것이 바로 페미니즘이 추구하는 목표다. 오빠들이 자신들이 허락한 페미니즘의 속박에서 벗어나 누이가 허락한 페미니즘, 아니 상호 소통하는 페미니즘의 새로운 세계로 진입해 자유와 광명의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되기를 빈다.”(371쪽) 라고 하면서 페미니즘운동의‘중단없는 전진’을 역설한다.
조남주의 소설 <82년생 김지영>과 영주의 <며느리 사표>에 나오는 주인공들이 여자로서 겪어야 했던 고통을 가슴으로 읽어 보시라. 남자의 시각으로 볼 것이 아니라, 가부장으로서 볼 것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읽어 보시라. 그 여성들이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참고 견디고 저항해야만 했던 힘든 시간을 상상해 보시라. 박범신의 소설 <은교>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너희의 젊음이 너희의 노력에 의하여 얻어진 것이 아닌 것처럼, 노인의 주름도 노인의 과오에 의해 얻은 것이 아니다."<은교>(문학동네, 2012)(251쪽) 이 말은 노인을 천대하고 늙음에 대하여 두려워하는 젊은이의 잘못된 시각을 꼬집는 말이다. 그렇듯이, 남성으로 태어나 남성중심 사고에 젖어 여성을 차별하고 지배하려는 남성에게 말하고 싶다. 남성들의 노력으로 남성이 된 것이 아니고, 여성의 과오로 여성이 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저 ‘자연’일 뿐이다. 남성들이여, 당신들의 어깨에 짊어진 가부장으로서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여성과 함께 이 세상을 행복하게 살 생각이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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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나무 2018-09-07 공감(1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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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 - 오빠 얘기 좀 합시다.
알바하는 곳에서 사장님은 이 책 제목을 보고 “책 제목이 뭐 그러냐? 진정한 페미니즘은 남자도 포용해야지”라고 하셨다. 잠시 놀라 벙쪘지만, 마침 방금 책에서 본대로 답했다. “‘가부장제가 허락한 페미니즘’이라는 뜻이래요. 여성인권운동의 정의까지도 남자들이 내리려고 하는 태도를 비꼬는 말이요.” (정말 예의바르게 말했다.) 사장님은 바로 이어서 이렇게 말하셨다. “너도 대학로 나가서 시위하고 그러냐? 말도 안 되던데”
페미니즘은 요즘 가장 뜨거운 주제이지만, 의외로 주의깊게 살피려고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모르면서 저마다 한 마디씩 거든다. 이 시기에 가장 필요한 책이다.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글쓴이의 이름이 먼저 눈에 띄었다. 일반적인 페미니즘 도서의 저자들과는 달리 강준만 교수는 여성도 아니고, 페미니즘 활동가도 아니다. 하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이 책을 더 매력적으로 느끼는 사람이 과연 나 뿐일까?
나는 그를 잘 모른다. 다만 이전에 읽었던 문장론 책에서 하도 그의 글들을 많이 인용하길래, 언젠가 궁금해서 이름을검색해봤다가 어마어마한 양의 저서들을 보고 놀란 경험은 있다. 그때 그가 ‘인물과 사상’을 창간하면서 내걸었다는 ‘출판의 언론화’라는 단어를 처음 보았다. 그 기치는 이 책에서도 발휘되었을 뿐 아니라, 현 시점의 복잡다단한 한국형 페미니즘을 다루기에도 가장 적합한 방식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이 책은 정말 재밌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안다. 페미니즘 도서는 재미로 읽는 게 아니다. 다만 페미니즘 책이 재미가 없어서 안 읽었다는 누군가에게는 이 책이 대안이 될 수 있으리라 기대해본다.
200페이지가 넘어가는 책은 무거워서라도 안 읽는 나조차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이유는 크게 세 가지이다.
1. 다 알고 있거나, 어디서 들어본 이야기다. 대부분의 페미니즘 베스트셀러는 번역서다. 그 책들이 다루는 페미니즘 이론에 관해서는 눈물을 흘리며 공감하다가도, 작가가 속한 사회의 현안을 다루는 경우 그 내용의 뛰어난 가치에도 불구하고 집중해서 읽지 못했던 경험이 있다. 반면 이 책은 일베, 유아인, 미투운동, 나꼼수, 유시민 등이 얽힌 사건들을 시간 순으로 다루니 더 쉽게 읽힐 수밖에 없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 현 상황을 파악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2. 논쟁을 빈틈없이 다룬다. 한 사건을 다룰 때마다 사건의 전말을 육하원칙에 의거해 상세히 서술하고, 그에 대해 어떤 공방이 있었는지 여러 입장들을 보여준다. 머리말에서 “양쪽의 소통을 위해 양쪽의 역사적 배경과 맥락을 따져보는 작업이 필요하다. 나는 이 책을 통해 그간의 논쟁과 논란을 역사적으로 기술하고 분석함으로써 그런 소통에 기여하고자 한다.”고 했듯이, 그는 여성학자의 칼럼, 정치인의 sns 게시글뿐만 아니라 인터넷 여론을 대변하는 다소 공격적인 네티즌의 댓글까지 인용한다. 적절한 비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싸움 구경이 제일 재밌다고 하지 않는가. 서로를 저격하며 신랄하게 비판하는 그 뜨거운 논쟁의 장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다.
3. 바로 위의 이유 덕분에, 실용성까지 있다. 빼곡한 논리로 무장한 주장을 접함으로써, 앞으로 겪게될 거의 모든 논쟁에 대비할 수 있는 무기를 얻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여성 문제에 관해 입장 자체를 가지기를 조심스러워 했거나 망설인 이들에게는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탄탄히 다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나는 평소에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인식은 있었지만, 딱 그 뿐이었다. 나 역시 어떤 일이 있는지 대충 아는 주제에 함부로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예를 들어, 나는 워마드 때문에 페미니즘의 이름이 더럽혀졌다고 생각해온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예전부터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선언해왔다고 한다. 나는 그동안 누구를 비난해 온 것인가. 나 또한 오빠 페미니즘에 익숙해져 있던 것일까?
더불어 메갈리아가 모두의 무의식 속에 있던 여성의 도덕 하한선, 유리바닥을 깨부수는 역할을 해냈다고 보는 관점은 충격적이었다. 최근 몇 년간 여성을 주제로 한 문학과 영화, 드라마가 눈에 띄게 늘어난 것은 이 주제들을 토론의 장으로 이끌어낸 그들 덕분이었다. 다소 '과격'하게 ‘급진적'으로 행동해왔던 이들이야말로 유구한 역사의 가부장제와 싸워 짧은 기간동안 큰 변화를 이끌어낸 장본인들이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유아인의 애호박 사건과 그가 말한 ‘조직폭력배’의 존재도 당시와는 다른 시각으로 살필 수 있었다. ‘애호박으로 맞아봤음?’이라는 트윗은 경솔했다고 생각했지만, 그 이후 그가 쓴 글에는 대체로 동의했다. 유아인에 대한 팬심에 가려 그의 비논리적인 멘션들과, ‘폭도’와 ‘진정한 여성’을, 또 ‘엄마와 누이’ 그 외의 여성을 분류하고 가르치려고 했던 그의 권위주의적인 태도를 보지 못했다. 유아인이 이 책을 읽고 자신의 생각을 바꿀 수도 있다고 믿고 싶은 마음은 그저 팬심의 연장선일까?
유시민의 ‘조개론’과 ‘어용 지식인론’은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다. 나는 평소 파란 꼰대가 되지 않겠다고, 자식 세대에게 ‘니들이 촛불을 알어' 같은 말은 하지 않기로 다짐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진영 논리에 갇힌 채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이번에 시작할 알쓸신잡3은 챙겨볼 것이고, 항소이유서를 포함한 그의 책들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그것대로 재미있고,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잘못된 발언들은 스스로가 인정할 때까지 계속해서 까야 한다.
또한 나는 여지껏 ‘여성주의’라는 단어로부터 느꼈던 사회적 거부감 때문에 ‘양성평등주의’라는 단어를 같은 말이라고 여기고 사용해왔다. 알고보니 여성주의는 잘못되었으니 양성평등주의를 논하자고 말하는 태도는, 여성의 호소를 귀담아 듣지 않은 채 이미 성평등이 이뤄진 것처럼 여기는 남성중심주의에서 비롯되었다. 스스로가 여성이면서도 나의 불편함을 문제 삼지 않고 참을 만하다 여겼고, 내 친구들이 당하는 부당함을 별 것 아닌 것으로 치부해온 것이다. 이를 계기로 내 무의식 속에 가부장제의 그림자가 어디까지 닿아있는지 끊임없이 스스로를 점검해보기로 다짐했다. 아니, 이것은 다짐보다 욕구에 가깝다고 볼 수도 있겠다. 나의 잘못된 사상을 뜯어고치고 싶은 마음에 다른 페미니즘 책들을 더 찾아 읽어보았고, 이전보다 조금 더 알게된 나는 이제 페미니스트라는 낙인이 두렵지 않다.
가부장제적 시각을 갖고 있는 것이 잘못은 아니다. 여성인 나 스스로부터 가부장제의 사고방식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데, 남성이 페미니즘을 이해하기란 더욱 어려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나는 내가 사랑하는 남자들과 적극적으로 대화를 할 것이다. 여성에 대한 억압은 다른 세계의 일이 아니라, 바로 네 옆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이야기해줄 것이다. 또한 그들의 경험을 들을 것이다. 그들이 남자라서 하는 고민들, 겪고 있는 압박을 경청할 것이다. 이 과정으로 모두가 외부로부터의 편견에 담담하게 대처하고, 무의식 속에 잠재된 모순을 타파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되길 바란다. 더 나아가, 이 책의 마지막 문장처럼 “새로운 세계로 진입해 자유와 광명의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되기를 빈다”.
p.s. 하나 짚고 넘어가고 싶다. 신지예 전 서울시장 후보의 이름을 반복해서 신지혜라고 잘못 표기했다. 조금만 더 신경썼다면 좋았을 텐데,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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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y 2018-09-10 공감(7)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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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
페미니즘은 최근 몇 년 사이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이슈 중 하나이다. 그렇기 때문에 페미니즘 관련 책을 읽고 리뷰를 쓸 때는 언제나 조심스러워진다.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은 간단히 말해 최근 페미니즘 이슈에 대해 시간순으로 정리를 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최근 페미니즘 관련 다양한 이슈가 연속적으로 나오게 되면서 그것들을 정리한 것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통해 쉽게 알 수 있어서 무척 좋았다.
더불어 부끄럽지만 이 책을 통해 처음 강준만이라는 작가에 대해 알게 되었다. 강준만은 굉장히 유명한 논객으로 200여권이 넘는 책을 쓴 것으로 유명하다. 그 책들의 대부분은 어떤 이슈와 상황을 정리한 책들이 많다. 이 책 또한 그의 저술의 연장선상에 놓인 책으로 볼 수 있다.
이 책은 총 11장(+1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반부 1~3장을 통해서는 8~9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의 한국 페미니즘의 여러 운동과 이슈들을 간단히 정리하고 있다. 이 책의 대부분은 최근의 페미니즘 이슈(메갈리아의 등장 이후)에 대해 정리하고 있기 때문에 1~3장은 배경 지식 혹은 프롤로그 정도의 성격을 갖는다. (개인적으로는 그 시절의 페미니즘에 대해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무척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4장부터 본격적인 '최근의 페미니즘 이슈'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이 책은 당연하지만 페미니즘에 대해 무척 우호적이다. 내 생각에 저자가 우호적일 수 있는 이유는 페미니즘이 옳은 것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인종 차별에 호불호가 있을 수 없고 그것이 틀렸다는 게 옳은 것인 것처럼, 페미니즘에도 호불호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제목처럼 페미니즘과 함께 달려온 주요 이슈들(소라넷 - 메갈리아 - 강남역 살인사건 - 탁현민 - 미투 등)의 진행 방향과 그 속에서 치열하게 맞부딪히는 페미니즘과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여러 이슈들 속에서 가부장적 가치관은 꾸준히 페미니즘을 '판단' 했다. 그들은 옳은 페미니즘과 틀린 페미니즘, 좋은 페미니즘과 나쁜 페미니즘을 가르고 구별하였다. 그들은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만을 허용했다. 작가는 이러한 현상들 속에서 실명을 거론하며 다양한 '오빠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결국 이 책은 페미니즘과 가부장제의 전쟁사의 기록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범위가 2015 ~ 2018로 집약되어 있는 최근의 기록이며, 이 시기에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꼭 읽어봤으면 좋을 정리본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책의 저자도 남자, 이 책을 읽는 나도 남자이기 때문에 내가 이 책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는 것을 당당히 말하지는 못할 것 같다. 결국 나도 기득권을 가진 남성이기 때문에 여성들이 처한 현실을 피부에 닿게 느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남성임에도 꾸준히 이런 책을 읽어가며 조금이라도 페미니즘에 대한 이해를 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앞에서 말했듯이 페미니즘은 호불호의 영역이 아닌 옳은 영역에 있기 때문이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더욱 페미니즘 관련 도서를 꾸준히 읽어야 겠다는 다짐을 새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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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훈 2018-08-30 공감(4)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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