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12

17. 안태형. 북한의 제6차 핵실험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정책적 선택



북한의 제6차 핵실험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정책적 선택




북한의 제6차 핵실험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정책적 선택
평화를 이루기 위한 점진적이고 단계적인 방법들을 고민해야
2017-09-08




[안태형 국제정치 칼럼]

북한의 제6차 핵실험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정책적 선택

-국제관계에서 경제제재를 통해 외교적 목표를 달성한 경우는 없다
-유일한 방법은 대화와 협상
-평화를 이루기 위한 점진적이고 단계적인 방법들을 고민해야

2017년 9월8일

안태형 박사 (Ph.D. International Relations at Florida International University)

국제 연합 (UN)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와 을지-프리덤-가디언 (UFG) 훈련규모 축소를 통한 미국의 대화제스처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지난 9월 3일, 6차 핵실험을 결국 감행했다. 북한은 공식발표를 통해 대륙간탄도미사일 (ICBM)에 탑재 가능한 수소폭탄 실험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고 밝혔으며, 미국도 북한의 주장을 잠정적으로 인정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일련의 북한 ICBM 시험발사와 6차 핵실험을 계기로 북핵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대안으로 경제 제재의 강화, 군사적 해법, 한국의 핵무장, 대화와 협상 등 다양한 아이디어와 주장들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대화와 협상을 제외한 다른 모든 주장들은 바람직하지 않거나 실현 불가능하다.

먼저, 첫번째로 북한에 대한 경제 제재를 지속시켜서 북한의 핵무장을 해제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살펴 보자. 사실 이러한 주장은 북한 핵개발 초기부터 제기되었으며 지금까지 북한에 대한 가장 중요한 정책수단으로 작용해 왔다. 그러나 이미 북한은 외부로부터의 경제 제재와 고립에 대한 면역력과 내구력을 가지고 있음이 증명되었다. 예를 들어, 최근 대중국 석탄 수출이 제재로 인해 15개월 동안 전무한 상황에서도 북한의 경제는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그러자 이와 같은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세컨더리 보이콧 (Secondary Boycott) 등을 통해 북한의 경제 제재를 더욱 강화하거나 중국의 대북 원유공급을 중단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여러 실증적 사례연구에 의하면 국제관계에서 경제 제재를 통해 외교적 목표를 달성한 경우는 거의 없다. 또한 중국은 현재로서는 북한체제의 붕괴까지 불러 일으킬 수도 있는 원유공급 중단을 시행하지 않을 것이다.

두 번째, 북한 핵과 미사일 시설에 대한 선제공격이나 북한 지도자에 대한 참수작전 등의 군사적 방법을 사용해서라도 북한의 핵무장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정책은 1994년 클린턴 대통령이 북한의 핵개발을 막기 위한 방법으로 심각하게 고려한 적도 있다. 그러나 한국정부의 반대와 한반도에서 전면전이 발생할 위험성으로 인해 실행되지는 않았다.

그 때와 비교해 본다면, 지금 이와 같은 군사적 옵션은 더욱 실행 불가능하다. ㄱ).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은 여전히 한반도에서 전면전을 불러 올 가능성이 매우 높다. ㄴ). “뜨거운 불길에 기름을 부으니 불길은 더욱 치솟고 구름은 바람을 일으켜 하늘까지 치닫는다”라는 민속어의 묘사처럼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이 실전에서 사용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으로 이미 발전되어 실제로 핵전쟁으로 치닫을 개연성이 크다. ㄷ). 북에 대한 선제공격은 심각한 국제법 위반이며, 현실적으로도 미국이 한국의 동의나 중국의 묵인 없이 북한에 대해 군사작전을 전개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세 번째, 북한의 비핵화는 이제 실행 불가능한 목표이기 때문에 한국도 자체적으로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즉, 한국도 독자적으로 핵무기 개발을 해야 한다거나 아니면 미국으로 철수시킨 *‘전역핵’ (戰域核 - theater nuclear weapon)을 다시 한반도에 들여와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들은 미국이 제공하는 핵우산 (Nuclear Umbrella)이나 확장 억제력 (Extended Deterrence)만으로는 북한의 위협에 대한 대응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사진). 미국의 전술핵 미사일 PERSHING-II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바람직하지도 않으며 현실적이지도 않다. 한국이 독자적으로 핵무기를 개발하거나 전술핵을 재도입하려는 시도는 한반도와 동북아에서 핵-도미노 현상을 유발해 이 지역의 안보지형을 매우 불안하게 만들고 더 나아가 전세계적으로는 핵비확산체제 (NPT)를 붕괴시킬 수 있기 때문에 미국이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미국의 동북아 전략이나 한반도 정책은 미국패권유지를 위한 세계전략의 하위전략이므로 미국이 세계핵전략 전체를 수정하지 않는 한 이를 쉽게 용인하지 않을 것이다. 더 나아가 중국과 러시아 등도 한국의 핵무장을 원하지 않을 것이므로 한국의 정치경제적 비용도 천문학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사진). 미국으로 철수시킨 전술핵 미사일 PERSHING-II 발사 모습

많은 사람들이 북한의 제6차 핵실험으로 인해 이제 북핵문제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으며, 북한의 비핵화는 현실적으로 달성불가능한 목표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북한은 애초부터 핵을 포기할 마음이 전혀 없었다는 주장도 많이 들린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북한의 핵개발 역사를 복기해 보면 1994년 제네바 합의, **2005년 9.19 공동성명, ***2012년 2.29 북미합의 등 북한의 핵무장을 막을 수 있었던 기회는 여러 차례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합의가 군사력 사용 위협이나 경제 제재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북한을 대화파트너로 인정하고 협상의 전제조건을 내걸지 않으면서 진지하게 협상에 임한 결과였다.


사진). 2005년 9.19 공동성명 기념사진: 한국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대표한 송민순 차관보, 미국에서 부시 대통령을 대리한 힐 대표, 북에서 김정일 위원장을 대리한 김계관 외교부 부상, 또, 일본, 러시아, 중국에서 고이즈미, 푸틴, 후진타오 주석을 대리한 대표들이 이 문서에 서명했다.

북핵문제 해결과 한반도 비핵화라는 목표달성이 더욱 어려워진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이 목표는 이제 단기적 과제가 아니라 장기적 과제가 되었다. 그렇지만 비관적이거나 패배적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 이는 자기충족적 예언 (Self-fulfilling Prophecy)이 될 수 있다. 한반도의 평화와 동북아의 안정을 위해 이 목표를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대화와 협상이다. 대화와 협상을 통해 무너진 신뢰를 다시 쌓아나가면서 평화를 이루기 위한 점진적이고 단계적인 방법들을 고민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관련국들이 호전적 언동이나 무기개발, 보복성 무력시위 등 상호 위협을 자제하고 양보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안태형 박사

참고).
*전역핵(戰域核) theater nuclear weapon 사정거리가 전술핵과 전략핵의 중간인 500∼5500㎞의 중거리 공격용 핵무기. 약칭 TNW. 1970년대 중반 이후에 생겨난 개념이며 전에는 중거리탄도미사일(IRBM)·준중거리탄도미사일(MRBM)·전술핵으로 불리던 것의 총칭이다. 사정거리 1000㎞ 이상인 전역핵미사일을 중거리핵전력(中距離核戰力;INF)이라고 하며 대표적인 것으로 미국의 퍼싱 Ⅱ와 GLCM, 옛 소련의 SS20 등이 있었으나 88년 6월 국제연합군축총회의 결정에 따라 폐기되었다. 구소련이 동독에 핵탄두 중거리 미사일 SS25를 배치하기로 함에 따라, 여기에 미국이 사거리 1000km의 퍼싱2 미사일을 배치하면서 1982년 독일에서 핵위기가 고조되었다.

**2005년 9.19 공동성명
2005년 당시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김정일 위원장의 6.17 면담을 통해 최초로 김정일 위원장과 북핵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장장 5시간에 걸쳐 이루어진 면담에서 김정일 위원장은 ‘한반도 비핵화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6.17 면담을 계기로 한반도 문제에 물꼬가 터지며 이는 베이징 9.19 공동성명 타결로 이어졌다. 한국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대표한 송민순 차관보, 미국에서 부시 대통령을 대리한 힐 대표, 북에서 김정일 위원장을 대리한 김계관 외교부 부상, 또, 일본, 러시아, 중국에서 고이즈미, 푸틴, 후진타오 주석을 대리한 대표들이 이 문서에 서명했다.

한국의 주도적인 노력은 물론 의장국인 중국의 탁월한 외교 중재능력, 미국의 유연성 발휘, 그리고 북한의 핵문제를 체제생존과 관련해서 북미관계 정상화와 경제지원으로 해소해 나가려는 자세변화 이런 것들이 맞물린 결과였다.

9.19공동성명 6개항은 북핵불용, 전쟁불가, 그리고 한국의 주도적 역할을 그 속에 담고 있다.
특히, 주요 내용 중 '한반도에서의 영구평화체제(permanent peace regime)의 구축을 위한 당사자간의 논의를 별도의 틀에서 시작한다‘는 것은 역사적인 선언이라고 볼 수 있다.


<’9.19 공동성명' 주요 내용>
ㆍ 6자는 6자회담의 목표가 한반도의 검증가능한 비핵화를 평화적인 방법으로 달성하는 것임을 만장일치로 재확인
- 북한은 모든 핵무기 및 현존하는 핵계획의 폐기, 조속한 NPT 및 IAEA 안전조치 복귀 공약
- 미국은 한반도내 핵무기 부재 및 북한에 대한 공격 또는 침공의사 부재 확인
- 한국은 자국 영토내 핵무기 부재를 확인하고, 한반도 비핵화공동선언에 따라 핵무기 불접수 및 불배비 공약 재확인
-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준수 및 이행 필요
- 여타국은 북한의 평화적 핵이용 권리 존중 및 적절한 시기에 경수로 제공문제 논의 동의

ㆍ 6자는 국제연합헌장 및 국제 규범 준수 약속
- 북,미는 상호 주권 존중, 평화공존 및 관계정상화를 위한 조치 약속
- 북,일은 평양선언에 따라 관계정상화를 위한 조치 약속

ㆍ 6자는 에너지, 교역 및 투자 분야에서의 경제협력 증진을 약속
- 중, 일, 한, 러, 미는 대북 에너지 지원 용의 표명
- 한국은 ’05.7.12자 대북 송전제안 재확인

ㆍ 6자는 동북아의 항구적인 평화와 안정을 위해 공동 노력 공약
- 직접 관련당사국간 별도 포럼에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에 관해 협상
- 6자는 동북아의 안보협력 증진을 위한 방안 모색

ㆍ 6자는 ‘공약 대 공약’, ‘행동 대 행동’ 원칙에 입각하여 단계적 방식으로 합의사항 이행을 위해 상호조율된 조치를 취하는데 합의

(발췌: 정동영의 히스토리)


*** 2012년 북-미간 2.29 합의는 미국의 대북 영양 지원과 북한의 핵·미사일 동결 교환을 골자로 한다.

제네바 합의

1994년 10월 21일 북한의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네바에서 미국과 북한이 체결한 비공개 양해록.
1992년 5월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그동안 핵폭탄 개발의 의혹을 받고 있던 북한에 대해 최초의 핵사찰을 실시하였다. 핵사찰 결과, 북한이 신고한 플루토늄의 양이 불일치하자 IAEA는 이를 문제삼아 영변 핵단지의 미신고된 2개의 시설에 대해 특별사찰을 요구하였다. 이에 북한은 1993년 3월 IAEA의 요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를 선언하였다. NPT 탈퇴를 선언한 뒤 북한과 미국 간에는 전쟁 직전의 긴장관계가 조성되었으나, 양국은 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하여 협상으로 방향을 바꿨다.

북미고위급회담의 형식으로 진행된 양국간의 회담은 1993년 6월과 7월, 1994년 8월에 걸쳐 세 차례 이루어졌고, 1994년 9월 23일~10월 21일까지 제네바에서 열린 '전반적인 한반도 핵문제 해결을 위한 협상'을 진행한 후에 이루어진 합의를 말한다.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하면서 북한에 대한 핵정책 논쟁이 끊이지 않았는데, 미국 클린턴 행정부가 이 합의를 이끌어내면서 잠시 논쟁이 일단락되었었다. 1994년 10월 21일 북한과 미국 측이 이 합의서에 서명할 당시에는 비공개를 약속했지만 그 내용이 한국에 알려지게 되었다.

합의서에는 당시 북한측 수석대표 강석주 외교부 제1부부장이, 미국측 수석대표 R.갈루치 대사가 서명하였다. 합의서 내용은 10개 조항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북한이 핵을 동결하는 대신 미국측은 경수형 원자로 발전소 2기를 건립하는 동시에 경제원조로 연간 50만 톤의 중유를 지원하고, 정치·경제적 관계의 완전한 정상화를 추진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에 따라 1995년 3월 9일 북한에 경수형원자로 제공을 위한 KEDO(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를 설립하였고, 2000년에는 그 착공에 들어갔다. 그러나 합의 후에도 국내외적으로 북한 핵에 대한 정책이 쟁점으로 남아 많은 논쟁이 있었다.

2001년 뉴욕에서 미국대폭발테러사건이 일어나자 부시 행정부는 북한을 3대 테러국가로 지목했고, 북한은 제네바합의에서 금지하기로 약속한 흑연감속로를 가동하겠다는 선언을 하였다. 결국 미국은 제네바합의의 파기를 선언했고, 2002년 11월 KEDO 집행이사회는 북한에 대한 중유 지원 중단을 결정하였다.
(두산백과)

중거리핵전력협정

1987년 12월 8일 워싱턴에서 개최된 미국 대통령 R.레이건과 소련공산당 서기장 M.S.고르바초프와의 수뇌회담에서 양국이 보유하고 있는 핵탄두 장착용의 중거리와 단거리 지상발사 미사일을 폐기하기로 합의한 핵무기 감축협정. 약칭 아이엔에프(INF)협정이라고도 한다. 여기서 말하는 중거리미사일이란 사정거리 1,000∼5,500 km의 미사일로 미국의 퍼싱Ⅱ, 지상발사 순항미사일(GLCM)과 소련의 SS20·SS4·SS5를 가리키며, 단거리미사일은 사정거리 500∼1,000 km의 미사일로 미국의 퍼싱 Ia와 소련의 SS12·SS23 등을 가리킨다. INF협정은 이들 2,619개의 미사일을 3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모두 폐기하고, 미사일발사기와 각종 지원장비 및 구조도 파괴하기로 하였다. 또한 양국의 감시인에게 상대국의 미사일 폐기여부를 직접 확인·감시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기로 하였다. 이 협정은 무기체계들 가운데 한 범주 전체를 폐기하기로 한 최초의 무기통제조약이었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 미국-러시아 상호간에 미국은 PERSHING-II, 러시아는 SS-20을 폐기하면서 INF는 종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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