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극좌세력과 일본의 극우세력이 한일 양국의 ‘위안부 문제 타결’에 관해 극렬히 반대하는 가운데, 미국의 동아시아 분야 석학인 길버트 로즈먼(73) 프린스턴대 명예교수는 지난달 29일 2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한반도 주변 정세를 진단하면서 “한·일 간의 위안부 협상 타결은 중요한 진전”이라며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위안부 사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고 국민일보가 1월 3일 전했다. “전무후무한 굴욕적 협상으로 위안부 할머니들의 삶 전체를 송두리째 모욕했다”는 한국의 극좌세력이나 일본의 극우세력은 이번 한일의 위안부 타결을 “사상 최악의 외교참사”라며 비난하고 있다. 이번 위안부 타결은 비합리적 극단세력의 도전에 직면했다.
그러나 로즈먼 교수는 “일본의 우익이 이번 합의를 뒤엎으려고 하는 상황을 염두에 둬야 한다”면서 ‘일본 내 반발로 위안부 합의가 뒤집히거나 위태로워질 수 있는 상황’을 예상하기도 했다고 국민일보는 전했다. 실제로 일본의 극우는 이번 타결에 반발하고 있다. ‘일본이 미국 교과서의 위안부 기술을 삭제하도록 압박하는 시도’에 대해 로즈먼 교수는 “미국 내 일본의 이미지를 해치는 역효과를 낳을 것”이라고 비판했다며, 국민일보는 로즈먼 교수의 “북한이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구상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중국의 개입과 경제적 지원을 조건으로 어느 정도 핵 동결을 할 것”이라며“6자회담 재개나 이란 핵 합의 방식의 북·미 간 돌파구 가능성은 낮다”는 전망도 전했다.
지난해 12월 31일 데일리안은 “혐한 단체인 ‘재일 외국인의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 모임’(재특회)은 이번 회담의 결과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며 깎아내리기 급급했다”며 12월 28일 사쿠라이 마코토 재특회 대표의 “이제까지 아베 총리는 물론 보수파 지식인들이 입을 모아 위안부 문제는 날조라고 주장했는데, 아베 총리가 한국에 사과를 했다”며 “일본을 위해 징병돼 싸운 조상의 명예에 진흙을 묻히는 일”이라고 비판했다고 데일리안은 전했다. “200여명의 우익세력들은 29일 총리공관 앞에 모여 ‘굴욕적 외교 합의’라는 일본 극우세력의 정서를 대변했다”며 데일리안은 이들의 “선조들의 명예와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 합의에 강력히 반발한다. 위안부는 한국이 만들어낸 허구”라는 주장도 전했다.
일본 극우단체인 ‘행동하는 보수 행동’은 “이번 일은 일본의 명예를 깎아 내린 것이다. 이번 합의에 대해 국민의 목소리로 단호하게 노(NO)라고 외쳐야 한다”고 주장했다며, 데일리안은 하라다 요시아키 자민당 국제정보위원장의 “일본이 일부러 한국에 가 타협할 필요가 없었다”는 주장과 극우 정당으로 분류되는 ‘일본의 마음을 소중히하는 당’ 나카야마 교코 대표의 “아베 외교 최대의 오점”이라는 비난도 소개했다. 요미우리 신문의 “위안소는 주로 민간이 경영했다”는 주장과 29일 산케이 신문의 “한일 간 공식적 공동문서로 남기지 않았으니 합의를 이행할 때까지 두고 봐야 한다”거나 “기부금 10억엔을 바로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등의 주장도 데일리안은 전했다.
한편 조선닷컴은 2일 북한 외무성의 “한일 양국 정부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 타결은 정치적 흥정의 산물로 절대로 용납될 수 없다”는 ‘위안부 문제 타결 반대’를 전했다. “일본 국가의 성노예 범죄는 국제적인 반인륜범죄로, 그 피해자는 조선반도 남쪽에만 아니라 북에도 있고 다른 아시아 나라에도 있다. 돈 몇 푼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며, 1일 북한 외무성은 “미국이 일본과 남조선을 저들이 추진하는 침략적인 3각 군사동맹에 묶어 놓기 위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타결을 부추겨왔다. 일본은 전쟁범죄와 특대형 반인륜 범죄에 대한 국가적, 법적 책임을 인정하고 모든 피해자들이 납득할 수 있게 철저한 사죄와 배상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조선닷컴은 전했다.
한국의 한 좌익단체 대표는 지난달 31일 “이 협상은 가해자인 일본 정부와 피해자인 위안부 할머니들 사이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가해자인 일본 정부와, 피해자를 대리한다고 자처하는 한국 정부 사이에서 된 것”이라며 “이 협상은 피해자인 위안부 할머니들이 동의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이라고 반대했다. “물론 정부 대 정부, 국가 대 국가 간의 협상이기 때문에 쉽게 뒤집기는 어려운 점이 있을 것”이라며 그 좌익단체는 “당사자인 피해자도 동의하지 않고, 피해자와 함께 오랜 세월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싸워온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를 비롯한 시민사회가 인정하지 않고, 제도권 내에서 야당도 받아들일 수 없고, 국민 다수가 반대하는 이 합의는 결국 원천 무효”라고 주장했다. [조영환 편집인:http://allinkorea.net/]
위안부 할머니들은 自尊自愛 하시라(마중가 중국전문가/조갑제닷컴 회원)
이런 중국속담이 있다. 한 천년고찰에 커다란 종이 있었는데 종의 이름이 三打鐘이었다. 즉 세번만 칠 수 있는 종이란 뜻이다. 첫번 치면 복이 오고 두번 치면 벼슬이 오고 세번 치면 長壽할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욕심 많은 선비가 세 번 치고 나서 또 한번 더 쳤다. 그랬더니 늙은 중이 와서 그에게 말했다. “네번 치면 四大皆空(사대개공)이니 앞에 세번 쳐서 이루었던 것이 다 백지화가 되었소.” 이 이야기가 바로 공자가 말한 過猶不及의 뜻풀이다.
1) 水滿則溢 月滿則虧(수만즉익 월만즉휴)
주역에 나오는 이 말은 물이 차면 넘치고 달(月)이 차면 이지러진다는 말이다. 이번 한일합의 내용은 위안부들이 지난 세월 오랫동안 요구해 오던 “일본정부 사과, 총리의 사죄, 일본정부의 보상”이 다 포함되어 있다. 이만하면 만족해도 된다.만약 완벽하지 못하다고 앙탈 부리면 그때는 우리가 소인으로 된다. 등소평이 모택동을 평가할 때 공7 과3이라고 했다.우리도 이번 합의를 공7 과3이라고 평가하는 것이 어떤가?
2) 貴客과 禮儀凡節
외교부 차관이 친히 찾아 왔을 때 할머니들은 막말을 하면서 지극히 무례하게 대했다. 손님들은 우리나라의 외교를 위하여 불철주야 애쓰시는 고급 외교관들이다. 그러나 당신들은 당신들의 아들과 같은 나이의 그들을 거의 거지 취급했다. 당신들은 극단적인 언어로 막말을 했는데 너무 예의가 없었다. 마치 무식한 부량배 같았다.
당신들은 자신들을 한일 담판에 불러주지 않았다고 소리쳤고 담판에 참가한 외교부장이 자격이 없다고 했으며 일본 총리를 왜 못 만나게 하느냐고 야단치면서 일본총리가 직접 와서 사과해야 한다고 노발대발했다. 묻겠는데 당신들은 지금 자신들이 대단한 인물들이라고 생각하면서 세상이 다 당신들의 손아귀 속에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어리석지 않아요?당신들은 일제의 잔혹한 학대를 받은 위안부이기 전에 대한민국의 보통 국민이란 것을 잊으면 안 된다.
3) 당신들은 全部가 아닌 一部分.
할머니들에게 直言하는바 당신들 지금 忘乎所以 하고 있다. 당신들은 일제 치하 일본 제국주의자들 에게 박해 받은 무수한 피해자들의 一部分에 불과하고 全部가 아니며 代表도 아니다. 당신들 보다 더 억울한 사람들도 무수히 많다. 위안부의 숫자도 한국은 16만 중국은 20만이다. 16만 한국 위안부들 중 적지 않은 사람은 중국 땅에서 원혼이 되어 사라졌고 지금 살아 있어도 중국인들 속에 숨어 지내는 할머니들이 많다. 당신들은 그들에 비하면 복 받은 사람들이다. 그런데 당신들이 무슨 자격으로 일본 정부와의 담판에 직접 참가하겠다고 傲慢放恣할 수 있는가? 得意忘形하고 있는 모습이다.
日帝는 1918년 시베리아 침략 때부터 위안소를 만들었다. 9.18 사변 후 일본군은 일본군 주둔지역인 中長鐵道 연선에 위안소를 설치했는데, 여순, 대련, 영구, 무순, 심양, 본계, 안동, 사평, 공주령, 장춘, 길림, 하얼빈, 목단강, 가목사, 치치하루 등 지에 약 100개소의 위안소를 세웠다.
대대적인 侵華戰爭이 시작되기 전인 1932년 일본군은 대륙에서 처음으로 상해에 일본군 위안소를 건립하였다. 그들은12세에서 40세 미만의 한국인 미혼여성들을 挺進隊 이름의 성노예로 강제징집 하였다. 1941년 쏘.독 전쟁 폭발 후 일본관동군은 30만군을 집결하여 소련 침략전쟁을 준비하였다. 이때 關東軍 사령부는 조선 총독부에 2 만명의 위안부를 징집할 것을 지시하였다. 지시문에는 “강박적인 수단도 동원될 수 있음을 명기한다”라고 쓰여 있다.
위안부 중에는 오스트텔리아, 네덜란드, 영국 등 국가의 여성도 있었고 일본군들이 침략한 동남아 각국의 현지여성들도 있었다. 물론 중국인 여성들이 가장 많았다. 일본군 종군위안부에 대한 연구를 가장 먼저 시작한 사람은 일본 작가 “센다 가코우(千田夏光)”다. 그는 1973년 최초로 “종군위안부”란 책을 출판하였다. 이를 계기로 한국 학자들도 연구를 시작하였고 중국인들도 위안부 연구를 활발히 진행하기 시작하였다. 이를테면 苏智良、陈丽, 刘萍, 杨虔豪 등 학자들이 위안부에 관해 많은 논문과 저서들을 발표하였다.
4) 위안부의 原罪는 조선 고종황제와 히로히토 일본 天皇이다.
한국에서 위안부가 강제 징집된 시기는 일본식민지 시절이고 일본의 괴뢰정부 인 조선총독부 시기이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일제에게 식민지가 된 것은 고종의 대한제국시기이므로 위안부 피해자의 직접책임은 그들에게 있다. 지금의 대한민국정부는 일본을 반대한 31운동과 한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정부이므로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 지금의 대한민국정부는 국군포로, 납북어부, 요도호 납북승객, 그 외 납북실종자, 북한의 도발로 인해 희생된 군인과 가족, 대한항공 폭파에 의한 사망자가족 , 희생된 파월장병 가족 등에 대해 대한민국정부는 무한책임이 있다. 그에 비하면 위안부 피해 할머니는 그 下位에 있다.
5) 背恩忘德하는 사람은 예로부터 不齒人類다.
위안부 할머니들은 대한민국 정부와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언제나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怨望의 마음을 가질 경우가 아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수십년 이래 당신들을 외국에서 모셔오고 의식주를 해결해주고 건강을 책임지면서 여생을 무사히 보내시도록 얼마나 노심초사 하는가. 그리고 그렇게 많은 공무원들과 자원봉사자들이 당신들을 도와주고 있다.그러므로 당신들은 언제나 감사의 마음을 가질 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지금 당신들은 대한민국 정부를 마치 당신들의 비참한 과거를 책임져야 할 원죄가 있는 정부처럼 매도하고 있는데 완전히 틀린 생각이다.
지금의 대한민국 정부는 여러분의 은인이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세계적인 선진국이 되어 떳떳하게 콧대 높은 일본정부와 담판하여 위안부 문제의 사과도 받아내지 않았는가? 당신들은 감지덕지 하여야 할 것이다. 감사를 모르고 은혜를 원망으로 갚으면 이원보덕(以怨報德)하고 背恩忘德하는 인간으로 치부 된다. (끝)
기사입력 : 2016-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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