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3-07

0801 "진보세력이 도덕적이라고? 역사가 자기 편이라고?" | 조선일보 AMP

"진보세력이 도덕적이라고? 역사가 자기 편이라고?" | 조선일보 AMP

"진보세력이 도덕적이라고? 역사가 자기 편이라고?"
김태훈 기자

입력 2008.01.28 23:51


윤평중 교수, 진보세력의 '삶과 괴리된 정치' 비판…
"김훈 문학의 삶의 정치와 대비"
김훈씨 "신념이 가득한 자, 정의롭다고 확신하는 자들 믿지 않아"
소설가 김훈


"한국적 진리의 정치는 진보를 주창하고 도덕성을 자랑했다. 민중을 사랑한다고 외쳤으며 역사가 자신들의 편이라고 공언했다. (…) 막상 권력을 잡게 되자 비판과 검증을 통한 민의 수렴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를 무시할 정도로 균형감각을 읽게 된다. 삶의 지평으로부터 괴리된 자폐적 진리의 정치가 민심을 잃는 것은 단지 시간의 문제였을 뿐이다."

윤평중 한신대 철학과 교수가 국민의 정부에서 참여정부로 이어진 지난 10년간의 진보세력 정치에 대해 
  • "자폐적 진리의 정치"
  • "이견과 비판을 적대시하고…", 
  • "위에서 내려 보며 남을 가르치는 화려한 계몽의 수사", 
  • "보통 사람들의 삶에 닿지 않고 겉돌기…" 

같은 비판적 평가를 내놓았다. 윤 교수는 오는 2월 발간되는 계간 문예지 '비평' 2008년 봄호에 기고한 '김훈의 정치성: 역사 허무주의와 삶의 정치'라는 글에서 " '칼의 노래', '현의 노래', '남한산성'으로 이어지는 김훈의 역사 소설이 '진리의 정치'에 대비되는 '삶의 정치'를 옹호하고 진리 정치의 해악을 고발하고 있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윤 교수는 '진리의 정치'가 '영원한 진리의 이름을 독점하면서 절대적 권위를 자임하는 정치'인 반면 김훈의 문학은 '실존의 궁극으로부터 도출되는 탐미적 역사 허무주의'라고 규정한다. 윤 교수는 "무도(無道)한 군사독재와 싸우면서 한국사를 비약시키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한 한국의 '민주화 운동 정치'는 한국화한 '진리 정치'의 힘에 크게 의탁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지만, 

"그 과정에서 유교적이고 마르크스주의적인 진리 정치의 논리를 습합(習合)시켜 점차 과부하되어 스스로의 토대를 균열시킨다"고 진단했다
.
윤평중 한신대 철학과 교수


윤 교수는 병자호란과 삼전도에서의 굴욕을 다룬 김훈의 장편 '남한산성'을 진리의 정치에 대한 김훈 문학의 사망선고로 파악했다. 그는 "오랑캐라 멸시했던 청의 칸에게 땅에 이마를 찧으며 절함으로써 생명을 구걸한 '조선 왕'의 모습은 조선조 진리 정치에 대한 완벽한 파산선고"라며, "폐허가 된 진리 정치의 빈 터는 대장장이 서날쇠 같은 민중에 의해 채워진다"고 밝혔다. 

그는 '남한산성'이 서날쇠의 삶에 주목한 것은 김훈 문학이 지향하는 '삶의 정치'가 "생활세계에서 보통사람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살리는 생명 정치며 욕망의 작동 방식에 주목하는 미시 정치"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김훈의 텍스트들은 삶의 실감으로부터 분리된 채 부유하고 있는 진리 정치의 기표에 대한 혐오감을 감추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윤 교수의 평론을 읽은 소설가 김훈씨는 "나는 신념이 가득한 자, 자신이 정의롭다고 확신하는 자들을 믿지 않고 오히려 의문이 가득한 자를 신뢰한다"는 말로 진보세력의 '진리의 정치'를 비판한 윤 교수의 분석에 동의했다. 

김씨는 그러나 일부 평론가들이 자신을 허무주의라고 비판하는 것에 대해서는 수긍할 수 없다는 지적도 덧붙였다. 그는 "나는 밟히면서도 싸우며 허무에 대항하는 인간을 그려놓았는데, 평단에서 내가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외연을 부가하고 나를 허무주의자라고 규정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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