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03

[[위안부 결의안을 주도적으로 이끈 마이크 혼다 의원 - 일본인 지원자, 일본정부


권용득
11 May at 07:03 · 
1] 꽤 많은 사람들이 정대협과 윤미향 씨가 없었으면 위안부 문제가 지금까지 올 수 없었다고 여기는 모양이다. 위안부 문제를 국제 사회에 널리 알린 계기가 된 미 하원에서의 위안부 결의안 채택도 정대협과 윤미향 씨가 다했다는 식의 주장까지 있다. 문득 솔방울로 수류탄 만드시는 수령님을 떠올렸다. 이것도 일종의 역사 왜곡인데 이래도 되나 싶었다는 얘기다. 아래는 관련 기사 중 한 대목.
“(미 하원에서의) 위안부 결의안을 주도적으로 이끈 마이크 혼다 의원은 일본계 3세이다. 그는 일본의 진주만 공격 이후 연방정부가 일본계 이민자들을 강제 수용할 때, 5세까지 부모와 함께 수용소 생활을 했다. 혼다 의원이 평화운동과 이민자 권익옹호 운동에 앞장섰던 배경이다. 일본인의 피가 흐르지만, 위안부 인권문제에 가장 먼저 두 팔을 걷고 나섰다.
혼다 의원은 1999년 캘리포니아 주 의회에서 최초로 결의안을 발의했다. 그때를 떠올리며, 수년간 침묵하는 일본 정부를 향해 정부 차원의 위안부 공식 인정과 사과를 촉구했다.”
(기사 출처: http://www.newsm.com/news/articleView.html?idxno=6524)
발췌한 대목에서 보시다시피 미 하원에서의 위안부 결의안 채택은 마이크 혼다 의원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마이크 혼다 의원뿐만 아니다. 정대협이 발족하기 전부터 관련 문제를 제 일처럼 여기고 뛰어든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들 중 상당수는 일본인이었고, 그들은 마이크 혼다 의원처럼 자국 정부를 향해 피해자들에게 공식 사죄와 보상을 촉구했다. 일본 국회 앞에서 시위도 하고 자비를 털어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피해자들의 소송을 지원하기도 했다. 가령 일본 정부에 전후 책임을 요구하는 핫키리회의 리더였던 우스키 게이코 씨는 위안부 문제를 일본 방송에 최초로 보도한 인물이기도 하다. 와다 하루키 교수와 함께 아시아여성기금 모금 활동을 하기도 했다. 

2] 하지만 우스키 게이코 씨는 정대협으로부터 피해자들을 돈으로 회유하려는 일본 정부 앞잡이 취급받았다. 이후 우스키 게이코 씨는 정대협의 신고로 2년간 입국 금지 대상이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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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협은 아시아여성기금을 피해자들의 약한 고리를 파고든 일본 정부의 꼼수로 여겼다. 대부분의 피해자는 가난하고 돈이 필요할 테니까 일본 정부가 자신들의 파렴치한 과거 만행을 돈으로 대충 때울 심산으로 여겼다. 게다가 그 돈의 출처였던 아시아여성기금은 일본 국민 성금에 일본 정부가 간접적으로 관여했고, 일본 국회 차원의 결의가 없으므로 ‘법적 책임’을 앞세운 정대협 입장에서는 못마땅했을 것이다. 피해자들에게 아시아여성기금과 함께 전달됐던 일본 총리의 사죄 편지 따위 아무런 법적 효력이 없으니까 그럴 만하다.

3] 정대협은 그 돈을 받는 순간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된다며 여론몰이를 했다.(위안부 피해자 모임이었던 무궁화자매회는 그런 정대협을 고발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피해자들의 생계를 위한 모금 활동도 함께 했다. 지난 한일 위안부 합의에서 타결된 10억엔을 일본 정부에게 돌려주자며 모금 활동을 했던 것도 같은 차원이다. 그런데 자신들이 한때 간판처럼 내세웠던 이용수 할머니가 그 돈 다 어디 썼냐는 식으로 문제 제기를 하자 자신들은 구호 단체가 아니라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 단체라고 주장했다. 이상한 논리다. 위안부 문제 해결에 피해자들의 생계는 포함되지 않는 건가. 그렇다면 피해자들이 일본 돈을 받든 말든 관여하지 말았어야 한다. 애초에 그 돈의 의미를 운동의 동력 삼으면 안 된다. 그건 그놈의 대의(정치적 승리)를 위해 피해자들을 희생시키는 셈이니까. 피해자들은 그전에도 그놈의 대의(제국주의)에 희생됐던 사람들이다.

4] 그보다 정대협, 그러니까 정의기억연대와 윤미향 씨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사람들의 주장대로 일본 정부가 만일 위안부 문제를 덮으려고만 했다면 지금까지의 위안부 문제 관련 연구는 어떻게 된 건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의 위안부 문제 관련 자료의 출처는 대부분 일본이다. 피해자들의 증언집 발간은 정대협이 주도했지만, 일본에서 수집된 자료 없이 위안부 문제의 진상을 파악하는 일은 그만큼 어렵다. 일본 정부는 대체 얼마나 무능하면 그와 같은 자료가 외부로 유출되는 것조차 제대로 단속하지 못했던 걸까. 일각에서는 일본이 일당 독재 국가처럼 비민주적이라는데, 일본에는 박정희나 전두환 같은 지도자가 없었나.

부디 오해 없길 바란다. 이건 어디까지나 정의기억연대와 윤미향 씨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사람들을 향한 반론이다. 또 한편으로는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그동안 우리 사회는 무얼 했는지 한 번쯤 돌아보자는 얘기다. 무얼 했을까. 일단 곳곳에 소녀상을 세웠다. 그 덕분에 피해자들이 세상을 떠나더라도 소녀상은 피해자들 대신 우리 곁에 계속 남아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추운 날 소녀상에 목도리를 두르고 비가 오는 날 우산을 씌울 것이다. 선거가 다가오면 소녀상에 고개 숙여 애도를 표하는 정치인도 있을 것이다. 반면 누군가는 소녀상에 침을 뱉을 것이다. 그럼 우리는 전자를 애국자로, 후자를 매국노로 간편하게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후자를 형사처벌 할 수 있는 법적 근거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게 부디 세상을 먼저 떠난 피해자들에게도 의미가 있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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