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물음을 위한 물음 : 2010년대의 기록 | 카이로스 총서 78
윤여일 (지은이)갈무리2022-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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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페이지수 : 320쪽
책소개
사색자 · 사회학자 윤여일의 열 번째 책. 저자 윤여일은 2010년대를 살아가며 정신사적으로 중요하다고 여긴 사건과 현상들을 파고들어 거기서 숙고해야 할 물음들이 무엇인지 건져내고자 했다. 이명박 통치, 아랍의 봄, 월스트리트 점거, 후쿠시마 사태, 박근혜 집권, 세월호 참사, 촛불집회, 대통령 탄핵, 문재인 정권 탄생, 트럼프 집권, 난민 확산, 제노포비아, 반지성주의, 가짜뉴스, 기후위기, 코로나 팬데믹 등 2010년대의 사건과 현상들로부터 미래를 위한 물음들을 길어낸다.
저자는 이를 위해 사회과학적 분석을 앞세우기보다는 당시의 시점과 상황 속에서 동요하면서도 사고를 이어가는 방식으로 매해 한 편씩, 십 년간 열 편의 에세이를 작성했다. 이로써 『물음을 위한 물음』은 2010년대를 다양한 방향의 사건들이 교착하고, 시간들이 뒤얽히고, 그로써 새로운 사고의 계기들이 생겨난 시대로 형상화했다.
목차
프롤로그 ― 물음을 위한 물음 7
1. 이 시대의 정신승리법 (2011) 22
이중의 패배 | 정치의 퇴행 | 몫을 갖지 못한 자의 정치 | 오진의 역학 | 불행한 시대의 사상 | 무력한 자의 문학
2. 후쿠시마 사태 그리고 스침의 시간 (2012) 42
가깝고도 먼 나라 | 한 사람의 일본인 | 죽음, 죽음들 | 오래된 적 | 원전과 자본주의 | 끌 수 없는 불 | 2011년 그리고 2012년의 3·11 | 부조리를 둘러싼 쟁탈 | 스침의 시간
3. 세월호와 역사를 사는 자들 (2014) 80
‘우리’의 균열 | 세월호 사태의 일반화를 위한 메모 | 모호해진 현실 | 일차원적 현실 |정부의 현실론과 대중의 현실감각 | 문제의 일반화와 정밀화 | 역사를 사는 자들
4. 재난 이후 (2015) 106
재난, 쇠약해지는 말 | 재난 재고 | 파국론에 대하여 | 재난 이후 | 떨리는 현재 | 이중의 비대칭성 | 패배의 유산
5. 촛불과 지금에 대한 발제문 (2016) 132
대중획득게임 | 도약하는 시간 | 1987년과 2008년 | 촛불은 진화했는가 | 2008년과 2016년 | 2011년, 아랍의 봄과 미국의 가을 | 변화는 조짐으로 그친 것인가 | 후쿠시마 사태 이후 | 지금, 민주주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 대선보다 큰 선택
6. 반지성주의와 말기의 시간 (2017) 158
반지성주의의 용법들 | 반정치의 정치 | 반사회적 사회 | 반논쟁적 논쟁 | 밀실 속 소비주의 | 최후의 인간 | 사유에서 사유에 대한 사유로 | 후기
7. 4·3과 기억의 모습 (2018) 202
고씨 할아버지 | 그의 4·3 | 말로 꺼내지 못한 기억은 식지 않았다 | 용왕궁의 기억 | 이름이 여럿인 자 | 넘어서겠다는 의지 | 단편들을 이어붙이려는 자 | 충전되는 기억 | 나는 무엇의 몇 세인가
8. 책의 펼침, 장의 펼침 (2019) 228
책이 나를 읽을 것이다 | 펼침과 주름 | 책도 독자를 잃을 것이다 | 현장의 책 | 목소리의 책 | 책을 둘러싼 대등 | 책-장의 미래
9. 대피소의 문학, 곡의 동학 (2019) 252
번역의 속도로 읽기 | 대피소와 천막 | 깜빡임과 두드림 | 대피소는 거기까지인가 | 1, 2, 3 | 4와 공중의 점 | 대피소의 정치 | 4차원의 회복 | 曲 | 인간은 어떻게 양력을 사용하는가
10. 코로나19, 2020년대는 이렇게 다가왔다 (2020) 272
사회가 실험되고 있다 | 경계의 문제 | 사회에 거리두기 | ‘정상 회복’에 대하여 | 지금 아니라면 대체 언제 | 2020년의 의미 | 카운트다운을 해야 하는 시대 | 지구와 취약한 우리들 | 위기조차 몇 번 남지 않았을지 모른다
에필로그 ― 2010년대에 관한 정신사적 고찰 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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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윤여일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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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중국사회과학원 방문학자로 베이징에서, 도시샤대학 객원연구원으로 교토에서 체류했다. 제주대학교 공동자원과 지속가능사회 연구센터 학술연구교수로 제주에서 지내고 있다. 『물음을 위한 물음』, 『광장이 되는 시간』, 『사상의 원점』, 『사상의 번역』, 『동아시아 담론』, 『지식의 윤리성에 관한 다섯 편의 에세이』, 『상황적 사고』, 『여행의 사고』(전3권)를 쓰고, 대담집 『사상을 잇다』를 펴냈으며, 『다케우치 요시미 선집』(전2권), 『다케우치 요시미라는 물... 더보기
최근작 : <모든 현재의 시작, 1990년대>,<‘경계’에서 본 재난의 경험>,<공동자원의 영역들> … 총 44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물음을 위해 왜 물음이 필요한가
2010년대는 어떠한 시대인가? 2010년대는 1980년대, 1990년대, 2000년대와 달리 명명 자체가 어색할 만큼 윤곽이 그려지지 않는 시대다. 만일 통상의 정치사나 사회사가 아닌 정신사를 상정해본다면 2010년대는 사고가 퇴행하고 언어가 퇴화하는 시대였는지 모르며, 그것이 2010년대라는 시대상이 모호한 이유이기도 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후쿠시마 사태, 세월호 참사, 촛불광장, 대통령 탄핵, 정권 교체, 난민 확산, 코로나 팬데믹 등 우리가 2010년대에 접한 사회적 사건들을 두고 매스미디어에서 등장하는 논자들은 기성의 시각과 언어로써 나름의 견해들을 내놓았다. 그런데 그 견해들은 서로 각축하면서도 어떤 소실점을 향해 논점들을 배치하여 사고의 범위를 제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 책은 질문을 던진다.
저자에 따르면 사고는 자신이 아직 사고하지 않았음을 의식하는 데서 시작한다. 사고란 시차(時差)를 두어 시차(視差)를 만드는 정신적 영위다. 즉 어떤 사태에 직면했을 때 곧바로 반응하기보다 다른 인식의 방향을 모색하는 것이다. 저자는 쓴다는 행위를 스스로에게 부과해 사고를 위한 시간을 확보하여 묻고 되묻고 끈질기게 다시 묻는다. 답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자신의 고민을 소재 삼아 타인과 공유할 물음을, 지금의 상황 속에서 미래를 위해 건져내야 할 물음을 도출하고자 한다.
“운동의 운동, 혁명의 혁명, 사고의 사고, 비판의 비판, 희망의 희망. / 변화와 관련된 소중한 것들은 한 번 더 거듭되어야 진정 소중해진다. / 그리고 물음의 물음. / 그렇다. 결국 쓰려던 것은 물음이다. // 당신의 물음을 위한 나의 물음이다. / 우리가 묻고 되물으며 옮긴 걸음만큼 세계는 이동할 것이다.”
― 프롤로그 : 물음을 위한 물음, 20~21쪽
1장 이 시대의 정신승리법 (2011)
1장은 이명박 통치기에 작성되었다. “희생이 생긴다. 희생이 쌓인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글은 거듭되는 사회적 참사와 희생 속에서도 정치적으로 무력해 바깥으로 분출시키지 못한 분노가 자기 안에서 갑갑함, 우울함, 자기연민, 자기혐오로 변질되어 가는 자는 대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묻는다. 소위 현실정치에서 구경꾼으로 밀려나 있는 자, 현실정치에서의 분규에 참여할 지분이 주어지지 않은 자, ‘정치의 몫’을 할당받지 못한 자에게 가능한 정치란 무엇인가를 저자는 질문한다.
“내게는 한 가지 믿음이 있다. 이 무력감을 나만 갖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의 무력감을 제대로 파고들 수만 있다면, 그 분석의 수취인이 자신만은 아닐 것이다. 불행한 시대에는 개체가 자신의 불행을 분석해 타인과의 소통을 기도하는 길이 열리는 게 아닐까. 거기서 공동의 무기를 벼려낼 수 있지 않을까.”
― 1. 이 시대의 정신승리법, 33쪽
2장 후쿠시마 사태 그리고 스침의 시간 (2012)
2장은 3·11 일주기를 앞두고 작성되었다. 3·11 사태는 한순간 우리 삶에서 본질적인 것이 무엇인지를 돌아보게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3·11도 그 자각도 잊히고 있다. 그러나 일본 사회에서는 여전히 원전 폐쇄 운동이 진행 중이다. 저자에 따르면 그것은 대량생산-대량유통-대량소비-대량폐기를 유도하는 현대 사회체제와의 싸움이며, 무한 성장이 가능하다는 자본주의적 망상과의 싸움이며, 지금 축배를 들고 뒤처리는 미래세대에 맡기면 된다는 반윤리와의 싸움이다. 2장에서는 이웃 나라의 일원으로서 어떻게 이 싸움을 함께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이 제기된다.
“나는 떠나가는 관심을 조금이라도 붙잡고 싶었다. 비록 사건의 현장에 있지 않지만 뭔가 해야 했다. 사건의 현장에 있지 않은 채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작업이란 일본이 치른 막대한 희생을 헛되이 흘려보내지 않고 그 희생의 하중을 이식하는 것, 아울러 그 희생을 사상의 차원에서 의미화해서 일본을 대하는 기성의 인식 패턴에 작은 균열이라도 내는 것이었다.”
― 2. 후쿠시마 사태 그리고 스침의 시간, 72쪽
3장 세월호와 역사를 사는 자들 (2014)
3장은 세월호 참사 반년 뒤에 작성되었다. 저자에 따르면 세월호 참사 초기에 진도 앞바다와 팽목항을 바라본다는 것은 보는 자를 목격자로 소환했으며, 느끼고 기억하고 증언하기를 요구했다. 하지만 불과 반년 만에 유족들은 고독한 투쟁에 나서는 상황이 되었다. 저자는 세월호 참사를 사고의 과제로 계속 붙들기 위해 이러한 전제를 세운다. “한 사회의 진보 정도는 사회의 발전 과정에서 생겨나는 사회적 타살을 최소화하는지로, 한 사회의 성숙 정도는 사회적 희생이 발생할 경우 그 희생을 헛되이 흘려보내지 않고 희생의 하중을 사회구성원에게 세분해 이식하는지로 측정할 수 있다”(85쪽). 이어서 이 글은 어떻게 정부의 현실론과 대중의 현실감각이 맞물리며 세월호 참사를 망각으로 내모는 현실이 힘을 얻었는지를 파고든다.
“그런데 곱씹어보면 ‘사회 분열 세력’은 그다지 틀린 표현이 아닌 듯하다. 유족들에게는 지금 현실이 현실 같지 않고 말이 말 같지 않고 정치가 정치적이지 않고 사회가 사회적이지 않다. 불가능한 요구가 아닌데도 유족들의 주장은 비현실적이라고 매도당했다. 이 사회가, 이 현실이 유족들의 존재를 사회 분열적이라고 내몰고, 유족들의 요구를 비현실적이라고 낙인찍었다. 따라서 그러한 유족들이 존재하고 움직이는 한 사회는 균열이 나고 현실은 찢겨야 한다.”
― 3. 세월호와 역사를 사는 자들, 103쪽
4장 재난 이후 (2015)
4장은 사회적 재난이 잇따르지만, 어느 사건도 종지부를 찍지 못한 채 과거지사로 방치되어가는 시기에 작성되었다. 사회적 재난은 끊임없이 연쇄하고 있으니 우리는 재난의 막간극을 살아간다고 할 수 있다고 저자는 진단한다. “한국사회의 구조적 병폐와 모순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세월호 참사를 비롯해 거대한 사회적 재난과 직면할 때마다 등장하는 문구다. 그런데 과연 그랬던가. 단 한 번이라도 그 병폐와 모순을 온전히 마주한 적이 있었던가. 다음 재난이 찾아오기 전에 지금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재난과 재생 간의 새로운 관계식을 만들 것인가.
“재난은, 확실히 그래야 할 것이다. 그 피해와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는 교훈을 얻어야 하며, 그건 재난으로 드러난 사회의 병폐를 직시하는 데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다만 사회의 병폐 이면에 있는 구조적 모순은 표면이 조금 벗겨졌다고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게 아니다. 잡아 뜯고 뚫고 들어가 닿아야 한다. 그로써 재난은 탈구의 계기가 되어야 한다. 지금의 사회관이 흔들려야 한다.”
― 4. 재난 이후, 117쪽
5장 촛불과 지금에 대한 발제문 (2016)
5장은 촛불운동이 고조되고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어 대선정국으로 넘어가던 시기에 작성되었다. 2016년 촛불운동은 대통령 탄핵을 이끌어냈지만, 그 이후 촛불광장이 열어낸 가능성들은 다시 청와대의 주인 자리를 둘러싼 대중획득게임으로 환원되어갔다. 촛불광장은 기성의 정치시간표를 초과하는 시간, 다른 미래를 예감케 하는 시간을 낳은 듯했지만, ‘지금’은 혼란이라며 수습되어 조기대선이라는 정치시간표에 욱여넣어졌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좋은 목자를 고르는 게 아니라 양떼로 전락하지 않는 일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하여 저자는 다른 미래를 산출하기 위해 1987년 민주화항쟁, 2008년 촛불운동, 2011년 아랍의 봄과 미국의 가을, 2011년 후쿠시마 사태 등 과거들을 불러들이며 ‘지금’의 역사적 의의를 묻는다.
“지금은 가산하는 시간이 아니라 도약하는 시간이다. 미래로 다가가는 시간이 아니라 미래를 품어내는 시간이다. 달라질 미래를 위해 과거를 새롭게 불러들이는 시간이다. 과거와 재회해 미래를 선취하는 시간이다. 내게 그 과거란 힘이고 사건이고 희생이며, 침전된 가능성이고 실천의 참조점이고 못 이룬 약속이다. 지금은 그 과거들을 여기저기서 불러내고 기워내 미래를 산출할 인식론적 지도를 작성할 때다. 그렇게 지금은 도약하는 시간이 된다.”
― 5. 촛불과 지금에 대한 발제문, 138쪽
6장 반지성주의와 말기의 시간 (2017)
6장은 트럼프 집권, 예멘 난민 유입, 제노포비아 확산, 가짜뉴스 범람의 시기에 작성되었다. 이 현상들을 과연 반지성주의라는 개념으로 포착할 수 있을 것인가? 반지성주의는 첫째 주지주의 내지 지식인에 대한 대중의 반감과 불신의 동향, 둘째 실증성이나 객관성을 경시하고 자신의 바람대로 현실세계를 이해하는 심리나 행동, 셋째 타인을 내치고 자신의 입지를 다지거나 현상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전유하기 위한 지성과 지식의 사용 양상을 가리키곤 한다. 저자는 반정치, 반사회, 반문화, 반언어, 반시간, 반경험, 반사고, 반인간의 논제로까지 반지성주의에 관한 사고를 전개한다.
“논의가 내부의 숙덕임에 불과해지고 말 때 지(知)는 치(痴)로 변질된다. 세계가 게토화될 때 경험의 소재는 늘어나더라도 경험의 영역은 비좁아진다. 거기서 지는 쌓여 치가 된다. 반지성주의는 (집단지성이 아닌) 집단치성의 징후다. 증오와 혐오의 말을 내뱉으면서도 그걸 공익을 지키는 불가피한 말로 착각할 수 있는 곳에 반지성주의는 있다.”
― 6. 반지성주의와 말기의 시간, 182쪽
7장 4·3과 기억의 모습 (2018)
7장은 제주 4·3 70주기를 앞두고 작성되었다. 다큐멘터리 「용왕궁의 기억」을 만들던 재일조선인 김임만을 만난 것이 계기였다고 저자는 말한다. 김임만은 식민지기부터 제주 출신자가 해녀제를 지내던 신당인 ‘용왕궁’에 관한 이야기를 기록하는 이였다. 그 기록은 용왕궁을 마지막으로 지켰던 도요다 심방, 4·3 발발 이후 오사카로 건너가 살다가 이제 병상에 누워 있는 어머님, 이따금 4·3 때 기억을 들려주는 아버지, 4·3 때 고초를 겪어 토벌대가 된 고씨 할아버지, 그리고 그들의 기억 속에서 헤매는 자신의 이야기로 번져간다. 이처럼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고통이 여기저기에 있다. 그 기억의 단편들을 애써 뒤적이고 이어붙이면 어떠한 기억이 생겨날까.
“그 장면을 제대로 장면으로 만들려면, 즉 면으로 펼치고 장으로 일으키려면 숱한 단편들을 이어 붙이고 쌓아야 한다. 그러면서 타인에 앞서 자신이 그 장면을 이해하게 된다. 타인에게 다가가기 위해 스스로를 파고들게 된다. 그건 어떤 기억의 형성 과정이지 않을까. 기억들이 쌓여 생겨나는 기억이 있다. 그런 기억은 가득 충전된다. 그런 기억은 그 기억을 접하는 타인에게도 손을 뻗는다. 그에 앞서 자신을 움직인다.”
― 7. 4·3과 기억의 모습, 224쪽
8장 책의 펼침, 장의 펼침 (2019)
8장은 ‘(종이)책의 종말’이 운운되는 시대에 작성되었다. 머지않아 우리는 책을 읽더라도 대체로 종이책이 아닌 전자책을 손에 들고 있지 않을까. 우리가 전자책을 읽을 때 안면인식 기능과 생체센서를 내장한 전자책 리더기의 알고리즘이 우리를 파악해 우리 대신 다음 책을 골라줄지도 모른다. 책의 의미, 책과의 관계성 자체가 질적으로 달라지지 않을지 저자는 질문한다. 그런데 동시에 다음과 같은 질문이 가능하다. 책의 형태가 변화할 미래에는 새로운 책-경험, 책-사건, 책-운동을 시도해볼 수 있지 않을까. 저자에 따르면 책은 사물이 아니라 사건이다. 있는 것이 아니라 일어나는 것이다. 독자가 어떻게 사건화하느냐에 따라 책은 달리 일어날 수 있다. 그렇다면 책은, 자기만의 밀실로 침잠하거나 플랫한 세계에서 표류하게 될 앞으로의 인류를 위해 책-장(場)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책은 ‘(저자가) 사고하다-쓰다-(독자가) 읽다-논하다’라는 동사들과 결부되어 있다. 한 권의 책은 이 동사들을 거쳐 간다. 그런데 한 번의 거쳐감에 그치는 게 아니라 책이 다시 ‘사고하다-쓰다-읽다-논하다’를 겪게 할 수는 없을까. 답하지 못한 저 물음들이 더해지고, 답하지 못한 저 물음들을 사고해 다시 작성하고, 책이 만난 목소리들이 보태지고, 그 목소리들을 사고해 다시 작성하고, 그렇게 재형성된 책이 다시 읽히고 또 새로운 물음과 목소리를 만나고 …. 그렇게 타인의 고민을 타인이 이어받으며 시간이 쌓이고 문장이 늘어나는 책.”
― 8. 책의 펼침, 장의 펼침, 250쪽
9장 대피소의 문학, 곡의 동학 (2019)
9장은 제주 제2공항 건설이 강행 추진되던 국면에 작성되었다. 김대성의 『대피소의 문학』(갈무리, 2019)을 읽은 것이 계기였다. 이 시기 저자는 제주 제2공항 건설을 막고자 제주도청 맞은편 길가에 천막을 치고 모여든 자들의 마을, 도청 앞 천막촌에 있었다. 저자는 ‘천막촌’에서 ‘대피소’를 향해 물음을 건넨다. 천막촌은 부당한 현실을 바꾸려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생겨났다. 대피소는 위기의 현실에서 피신한 사람들이 흘러들어와 만들어진다. 장기농성하는 천막촌은 살아가는 방식으로 싸울 수밖에 없으며, 싸우는 식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대피소에서는 일시적이나마 일상이 비일상화되고, 비일상을 일상으로 지내야 할 것이다. 앞으로 세상에는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 피난해야 할 사람이 늘어날 것이며, 따라서 대피소도 늘어날 것이다. 그렇다면 대피소는 어떻게 개체가 피난해온 공간이기를 넘어서 새로운 집단이 새로운 정치를 기도하는 공간이 될 수 있는가.
“그가 말했듯 함께 살아가기가 아닌 홀로 살아남기를 요구받는 사회, 내가 느끼듯 존재가 거처와 관계를 잃고 홀로 배회하는 시대에서 대피소는 징후적인 것이다. 앞으로 보호받지 못하고 떠도는 사람은 늘어날 것이다. 대피소는 이곳저곳에서 필요해질 것이다. 그렇다면 아직 사고하지 못한 문제가 있다. 앞으로의 시대에는 대피소가 구해진 사람들을 맞이할 뿐 아니라 구해야 할 사람들을 찾아 나서야 하지 않을까. 이를 위해 어떠한 대피소의 정치철학이 필요할 것인가.”
― 9. 대피소의 문학, 곡의 동학, 270쪽
10장 코로나19, 2020년대는 이렇게 다가왔다 (2020)
9장은 코로나 팬데믹 시대에 작성되었다. 코로나 확산 속에서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고 있다. 그런데 ‘사회에 거리두기’도 필요하지 않을지 저자는 질문한다. 코로나 사태 발발 이후 우리는 ‘일상 회복’을 염원하고 있지만, 어디까지가 회복해야 할 일상이고, 무엇이 정상적인 사회인지를 지금 따져 봐야 하지 않을까. 우리의 일상은 줄곧 악화되고 있었다. 지구온난화 가운데 ‘산업혁명 이래 최고’ ‘기상관측사상 최악’을 매해 갈아치우던 일상이었다. 그런데 이런 형태의 세계적 전염이 아니라면 대체 어떤 사건을 통해 인류가 운명공동체이고 그 운명이 다해가고 있으며, 인류 자신이 그 주범임을 깨달을 수 있을까. 이번 사태는 과연 인류에게 각성의 계기가 될 수 있을까. 우리 스스로가 바꿔내지 않는다면 모습을 달리해서 찾아올 위기들을 겪으며, 우리는 가장 원치 않는 변화에 치닫게 될 것이다.
“코로나 시대, 코로나 팬데믹으로 불리는 지금의 위기는 갑자기 닥쳐온 것이나 언젠가 어떤 형태인가로 맞이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이 위기는 지난 일상에서의 탈선처럼 보이나 지난 일상이 초래한 결과이기도 하다. 따라서 지금의 비상 상황은 기존의 정상이 비정상적이었음을 폭로한다. 그렇다면 기존의 정상이 금 간 틈 사이로 우리는 다른 세상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을 것인가. 그로써 위기가 드리운 현재는 과거의 연장이 아닌 미래의 기점이 될 수 있을 것인가.”
― 10. 코로나19, 2020년대는 이렇게 다가왔다, 298~299쪽 접기
어떤 사건에 분노하다가도 돌아서면 한순간 모든 걸 망각하고마는 일상인 것 같습니다.
그러한 분노가 현실의 무엇도 진정으로는 바꿀 수 없음을 이제는 생각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시차를 두어 묻고, 물음으로써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세상을 전진시켜온 이들이 있음을 떠올리게 됐습니다.
tailofblue 2021-09-17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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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니 내가 물음을 떠올린 게 언제인지 가물가물합니다. 첫 문장, 그리고 다음 문장. 작가의 치열한 물음 덕에 저도 함께 지나왔던 세월과 그 세월의 의미를 돌아보게 됩니다.
bluetail3 2021-09-18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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