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05

'작가회의'등 친일문인 42명 명단ㆍ작품목록 공개 2002

"아비를 고발하는 심정으로 참회합니다"

"아비를 고발하는 심정으로 참회합니다"
'작가회의'등 친일문인 42명 명단ㆍ작품목록 공개

임경구 기자 | 기사입력 2002.08.15.


"제 아비를 고발하는 심정으로 민족과 모국어 앞에 머리숙여 사죄합니다."

57주년 광복절을 하루 앞두고 문학계 인사들이 일제 강점기 친일문학인 42명의 명단 및 5백72편의 친일문학작품 목록을 선정, 발표하고 그들의 과오를 대신해 역사 앞에 고개숙였다.

'민족문학작가회의', '민족문제연구소', '실천문학', '나라와 문화를 생각하는 국회의원모임',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모임'은 14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공개기자회견을 갖고 "우리 문학계는 반세기가 넘도록 친일 문학에 명쾌한 개념을 제시하지 못하고 이들 작품들에 대한 평가를 공식화하지 못했다"면서 "친일 문인들의 행적은 보다 근원적인 반성의 과정이 요구된다"며 친일문인 명단을 공개했다.

이날 발표한 친일문인은 춘원 이광수, 미당 서정주를 포함해 시 분야 12명, 소설·수필·희곡 분야 19명, 평론분야 11명 등 총 42명이다.

선정심사를 주도한 작가회의 등은 "중일전쟁(1937년) 이후에 발표된 글만을 대상으로 수차례에 걸친 전문가들과의 토론을 벌였으며 식민주의와 파시즘 옹호 여부 등을 중심으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또한 발표매체, 사용언어, 친일단체 참여 여부 등은 참고만 하였을 뿐, 직접적인 판단 기준으로는 활용하지 않았으며 친일 작품 수가 3편 이상인 작가들 중 근거자료가 명백한 경우로 국한했다.

특히 납·월북 문학인까지 선정범위를 넓혀 그동안 전혀 거론되거나 고려되지 않았던 박태원, 송영. 이찬, 임학수 등이 이날 발표한 친일 문인에 포함됐다.

이날 발표한 친일문인은 다음과 같다.

▲시 분야(12명)
김동환 김상용 김안서 김종한 김해강 노천명 모윤숙 서정주 이찬 임학수 주요한 최남선

▲소설 수필 희곡 분야(19명)
김동인 김소운 박용호 박태원 송영 유진오 유치진 이광수 이무영 이서구 이석훈 장혁주 정비석 정인택 조용만 채만식 최정희 함대훈 함세덕

▲평론분야(11명)
곽종원 김기진 김문집 김용제 박영희 백철 이헌구 정인섭 조연현 최재서 홍효민


친일문학 작품 목록은 계간 '실천문학' 가을호에 게재될 예정이며 친일문인 명단과 전력, 작품 목록, 선정근거 등은 민족문화재단 홈페이지(www.historyfund.com)에 공개할 방침이다.

***"친일 청산은 새로운 독립운동의 발화점"**

그동안 친일 문인들의 행적에 대해서는 "일제의 강압에 의한 부득이한 결과"라는 '상황론'과 "잘못은 인정하되 문학적 성과와는 별개로 고려되어야 한다"는 '공과론'이 친일 청산의 반대 논리로 작용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이는 지난해 서정주 시인의 친일행적 비판에 대한 대표적인 반대 논거로도 활용된 바 있다.

이에 대해 작가회의 등은 이날 "친일이 마치 재능의 기준이나 능력의 잣대처럼 자랑스럽게 평가받는 풍조는 광복 후 냉전체제가 빚은 기형적인 가치관의 부작용일 뿐"이라며 "발표된 작품 내용은 아무리 이해와 관용으로 분석해 봐도 강제성보다는 자발성이 더 강했다"고 정면 반박했다.

또한 친일 문인들의 해방 이후 행적과 관련해 "대개의 경우 분단획책, 독재체제 강화와 안정에 투신했거나 군부독재체제를 옹호하면서 '순수'예술에 전념했다는 명목으로 각종 포상을 받았다"고 비판했다.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이자 독립운동가인 조문기씨는 "일제가 우리 민족 말살을 사과하지 않듯이 우리 사회의 친일파들도 고개를 뻣뻣이 들고 있다"며 "이같은 친일세력의 청산은 단순한 청산이 아니라 새로운 독립운동의 발화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2월 '민족정기를 세우는 의원모임'이 7백8명의 친일파 명단을 발표한 데 이어 문단 스스로 선배 문인들의 친일 행적을 고발하고 나섬에 따라 앞으로 친일역사 청산과 관련한 사회 각 분야의 후속 발표가 잇따를 것으로 전망된다.

***일부 국회의원, "친일청산 법안도 마련하겠다"**

이날 행사에는 김원웅, 김희선, 송광호, 이호웅, 송영길, 김경천 의원 등 '민족정기를 세우는 의원모임'과 '나라와 문화를 생각하는 의원모임' 소속 국회의원들이 참석, 친일청산에 대한 법·제도 마련에 노력할 것을 약속했다.

김희선 의원은 ▲친일인명사전 편찬사업 등 민간활동에 대한 예산 편성 ▲16대 회기중 친일역사 청산과 관련된 법안 마련 ▲국회내 친일청산 특별위원회 설치 등의 계획을 밝히고 의원들에 대한 동의를 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행사가 열린 의원회관 소회의실 앞 로비에는 김동환, 노천명, 모윤숙, 서정주, 이광수 등 유명 문인들의 시와 김은호, 김기창 화백의 그림 등 일제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을 미화하고 황국 신민화를 주창한 대표적인 작품 43점이 전시돼 눈길을 끌었다.

다음은 친일문인 명단 및 친일문학작품 목록발표 선언문 및 선정기준

***'모국어의 미래를 위한 참회'(선언문)**

역사는 지난 시대의 진실을 유보하거나 우회해서 갈 수 있는 길이 아니다. 광복 57주년을 맞아 우리 문학인들은 제 아비를 고발하는 심정으로 일제 식민지 시대의 친일문학작품 목록을 공개하고 민족과 모국어 앞에 머리 숙여 사죄코자 한다.

우리 문학계는 반세기가 넘도록 친일문학에 명쾌한 개념을 제시하지 못하고 이들 작품들에 대한 평가를 공식화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친일문학인들이 국정교과서에 버젓이 활개를 치고 행세함으로써 진정한 문학의 이름을 호도하였을 뿐만 아니라, 결과적으로 민족정기를 훼손하고 겨레 모두에게 심대한 상처를 주었다. 우리는 우리가 몸바쳐 이를 진정한 문학 앞에 사죄코자 한다.

무릇 과거의 부끄러움을 청산하지 않고서 맞을 수 있는 미래란 없다. 압도적인 폭력이나 거대한 시대적 구조 속에 던져진 개인의 선택이란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상황론과 그에 따른 동정론, 그리고 공적과 과실을 따져 펑가하자는 공과론 등은 모두 기만적인 변명에 불과하다. 그러한 논리들이 최소한 설득력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친일을 했던 당사자들의 자기 고백이 선행되었어야 한다.

그들이 자신의 과오를 은폐하거나 침묵으로 일관해 버림으로써 우리의 근대사는 부끄러웠던 식민의 역사를 용서하고 반성할 기회를 잃고 말았다. 당연히 진정한 화해도 이루어질 수 없었으며, 민족의 미래에 대한 전망 역시 함께 기획할 수 없었다.

돌아보면 친일을 했던 사람들은 용서를 구하기는커녕 오히려 기득권과 힘을 바탕으로 현실 위에 군림함으로써 지금 이 시간까지 우리의 삶은 과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을 지속해 오고 있다. 그들의 상속자들은 언제까지 과거에 발목을 잡혀 미래를 희생해야 하느냐고 반격하지만 이는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기만이자 기회주의적인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청산되지 않은 역사는 언제까지나 현재형의 질곡으로 남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해방 이후의 근대사를 통해 확인하여 왔다.

인권과 자유를 유린했던 군사독재시절, 권력의 부당성을 지적하고 저항하기보다 오히려 그에 편승해 개인의 안일을 도모하거나 시대적 가치를 왜곡시키는 데 기여한 문학인들 중 일부 문인들은 친일문학으로 모국어의 도덕성을 심하게 훼손했던 인물들과 그들의 상속자들이다.

모국어의 운명과 동시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 문학인의 운명일진대 이러한 친일문인들의 행적은 보다 근원적인 반성의 과정이 요구된다. 당사자들의 반성이 결여된 상태에서 혹은 당사자들이 직접 사과할 기회를 놓치고 타계한 지금 이 상황에서, 우리가 자청하여 모국어의 내부에 자리하고 있는 친일의 그 아픈 상처를 스스로 공개하고 사죄하는 집단적인 움직임을 갖는 것은 뒤늦게나마 왜곡된 역사를 제자리에 돌려놓고자 하는 민족적 열망에 부응하기 위해서이다.

또한 우리 문학계는 새로운 역사단계에 들어서기 위한 최소한의 자기 출발점을 이것으로 삼고자 한다. 친일문학을 가리는 규준은 심도깊은 논의가 필요하지만 우리는 우선 식민주의와 파시즘 옹호 여부를 친일의 규준으로 하되 '내선일체의 황국신민화론'과 '대동아공영권의 전쟁동원령'에 대한 옹호 여부를 확인하여 친일문학으로 규정하였다.

이번에 우리가 발표한 친일문인과 작품 목록에서 일제에 병탄되기 전후의 작품들은 제외되었으며, 또 중일전쟁 이후의 작품들 중 친일 정도가 사소하고 한두 편에 그친 일부 문인들의 작품들 역시 당시 일제의 폭압성을 고려하여 유보하였다. 우리는 이번의 발표를 계기로 보다 심도깊은 친일 문학에 대한 점검을 해나갈 것이며 이에 따라 이러한 규준은 우리의 역사발전에 따라 심화되어갈 것이다.

아울러 우리는 우리의 작업이 문화예술계 일반으로 심화확대되어 나가는 계기가 되기를 열망한다. 이런 작업이 우리 사회 전체의 여러 부문으로 확장될 때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새역사로 나아가는 전기를 맞을 것이라 믿는다.

이에 우리는 다음과 같이 결의하고자 한다.

- 친일 문인들의 명백한 과오를 호도하거나 역사바로세우기의 노력을 사회 분열로 몰아가는 수구 언론과 일부 문인들의 반역사적인 행태가 더 이상 지속되지 않기를 촉구한다.

- 친일문학 비판은 민족의 정신적, 역사적 과제로서, 정파적 이해관계에 좌우되거나 악용되어서는 안되며, 통일시대의 민족사와 올바른 가치기준 정립을 위한 정당한 작업임을 지적해두고자 한다.

- 친일문학에 대한 청산작업은 단죄 혹은 보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진실을 밝혀냄으로서 진정한 반성과 용서의 토대를 마련하고 모국어의 참된 미래를 열어가기 위함임을 천명한다.

2002. 8. 14 사단법인 민족문학작가회의(이사장 현기영)


***친일문인 선정기준**

1. 중일전쟁(1937) 이후에 발표된 글만을 대상으로 하였다.

일제 강점을 전후한 시기에 일본에 협력했던 이인직 등의 경우는 층위를 달리하여 논의해야 할 사항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제외하였다.

1. 식민주의와 파시즘 옹호 여부를 친일의 기준으로 삼았다.

중일전쟁 이후 식민주의 논리로 대표적인 것은 '내선일체의 황국신민화론'이고 파시즘 논리의 대표적인 사례는 '대동아공영권의 전쟁동원론'이다. 이 둘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지만 개별 작가의 경우 그 강조점이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이 두가지 논리 중 어느 하나에 해당될 경우 친일문학이라고 규정하였다.

'신체제'라든가 '서양 제국주의'라든가 하는 말을 사용하여 일제 국책에 호응한 듯이 보이지만 식민주의와 파시즘 논리에 입각해 있지 않은 경우에는 친일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참고로 친일문학의 이념성, 곧 자발성으로 창작한 친일작품은 (1) 천황제 이데올로기 (2) 군국주의 혹은 파시즘-독재체제 이데올로기 (3) 제국주의적 침략전쟁 이데올로기 (4) 민족적 허무주의 내지 식민사관 이데올로기 (5) 문학예술에서의 순수미학과 유미주의, 기교주의 이데올로기 (6) 반공주의 이데올로기 (7) 일본 중심적 동양주의 사상에 바탕한 반서구, 반기독교 이데올로기 (8) 반자본주의 이데올로기 등의 구조를 지니고 있다.

1. 납, 월북 문학인도 대상으로 삼았다.

남북분단에도 불구하고 친일문학 청산에서 다를 바 없다는 관점에서 납, 월북 문학인을 동시에 대상으로 삼았다. 지금까지 친일 문학인으로 전혀 거론되거나 고려되지 않았던 박태원, 송영, 이찬, 임학수 등이 이런 작업의 결과다.

1. 발표매체, 사용언어, 친일단체 참여 여부 등은 참고만 하였다.

일본어로 작품활동을 했거나 친일단체 참여, 창씨개명을 했다는 것 등은 친일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참고만 하였다. 두 가지 이유에서이다.

첫째는, 무엇보다 이 기준틀로는 친일문학 여부에 대한 일관성 있는 판정이 불가능하고, 이와 더불어 이 기준을 앞세울 경우 친일문학에 대한 포괄적이고 깊이 있는 접근이 어렵다는 점도 작용했다.

예를들어 일본어로 썼으되 내용은 반일적인 작품이 있고 조선어를 사용했으나 친일적인 작품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김사량이다. 그는 당시 작가들 중에서 일본어로 글을 많이 쓴 사람 중 하나이지만 항일의식을 드러냈다. 또한 그는 국민총력조선연맹이란 친일단체에 참여했으나 단체활동의 일환인 '조선인 출신 학도병 위문단' 일원이 되어 중국으로 가서 탈출, '조선독립동맹'에 소속돼 항일전선에 섰다.

창씨개명 문제에선 윤동주가 예일 수 있다. 감옥에서 젊은 나이에 죽어야 했던 윤동주는 연희전문을 마치고 일본의 대학으로 진학하려 할 때 도항증이 있어야 했고 관의 허가에서는 창씨가 필요했다. 그의 창씨명은 히라누마(平沼)이다.

두 번째 이유는 중일전쟁 이후 일제의 악랄한 강압통치로 가혹해진 시대적 조건을 고려한 것이다.

1. 작품 수가 한두 편에 그친 작가는 제외하였다.

장르의 특성상 문학분야는 상대적으로 친일 행적 자료가 많이 남아있다. 당시의 기술수준에서 정치, 사회적인 저명인사의 숱한 친일 강연은 강연했다는 사실만 기록되지만, 3류 예술가가 한 작품만 썼다고 해도 의도적인 폐기나 유실이 아닌 한 발굴된다. 이런 문학예술의 특성을 고려해 정한 평가방법이 '세편 이상 작품을 남긴 작가'이다.

또 한가지는 4항과 마찬가지로 중일전쟁 이후의 일제의 폭압성을 고려했다. 신변의 위협이나 주위의 강권으로 한두 편의 작품은 본의 아니게 발표할 수 있다고 전제하는 것이 다른 분야의 친일 행위에 대한 일반적 평가와 균형을 이룬다고 본다. 친일적 성향을 보인다고 판단할 수도 있는 모호한 글이 한 편씩 있는 정지용이나 김정한의 경우가 여기에 속한다. 친일문인 규정은 대상자의 전 생애와 활동, 다른 작품이 지닌 민족사적인 의미와 평가까지 고려돼야 할 것이다.

1. 근거자료가 명백한 경우에 국한하였다.

이번 친일문인 선정은 근거자료가 명백한 경우에 국한하였다. 이후의 자료수집과 친일문인 추가 선정은 현재 학계를 망라한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위원장 : 이만열 숙명여대교수)가 편찬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므로 이 과정에서 보완이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1. 기타 참조사항

임종국의 '친일문학론'에서는 28명의 친일문인과 신인 20여명을 간략히 언급했고, 김병걸, 김규동 편 '친일문학 작품선집 1, 2권'(실천문학사)에서는 36명의 글을 싣고 있다. 그 중 문학사적으로 영향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광복 후 문학인으로 활동하지 않은 문학인은 제외했고, 친일문학인으로 다룬 김사량도 위의 언급과 같은 이유로 제외시켰다.

지금까지 친일문학인으로 흔히 거론되어 왔던 이효석은 작품 내용으로 봐서 제외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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