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권용득 - 지난겨울 한 심포지엄에서의 우에노 치즈코 강연 번역본인데, 위안부 문제와 전시 성폭력 문제를 좀 더...
권용득
12 May at 12:58 ·
지난겨울 한 심포지엄에서의 우에노 치즈코 강연 번역본인데, 위안부 문제와 전시 성폭력 문제를 좀 더 입체적으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임의 발췌함. 어떻게 보면 자신이 공저로 참여한 신간(전쟁과 성폭력의 비교사를 향하여) 홍보 같긴 한데, 국내에는 아직 미출간. 번역은 김석희 선생님이 하셨음. 우에노 치즈코는 페친 아니라서 선생님 호칭 생략. 괄호( ) 속 한자 말고 한글은 어쭙잖은 내 해석임. 양해 바람.
전쟁과 성폭력
—증언의정통성을 중심으로
우에노 치즈코(上野千鶴子)
(전략)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하는 물음을 받을 때마다 나 자신도 대답이 궁해졌습니다. 이 교착상태를 넘어서려면 다시 한 번 원점으로 돌아가서 ‘위안부’ 문제의 이야기 방식을 좀 더 큰 시야에서 다루어야 한다는 것은, 얼핏 생각하면 빙 돌아가는 것 같지만 결과적으로 숨구멍을 트는 방법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1991년에 ‘위안부’ 문제가 가시화된 이후, 어림잡아 30년, 그사이에 ‘전쟁과 성폭력’을 둘러싼 연구 패러다임은 진화되어왔기 때문입니다. 성폭력의 피해는 강제인가 합의인가, 성노예인가 매춘부인가 하는 양자택일의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이 둘로 설명할 수 없는 여성의 경험도 많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역사적인 경험은 복잡한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복잡한 것을 복잡한 그대로 이야기하는 화법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며 과거 2년의 준비 기간을 거쳐 『전쟁과 성폭력의 비교사를 향하여』라는 공저를 냈습니다.
(중략)
성폭력은 긴 세월 동안, 피해자가 이름을 밝히고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없었던 것으로 생각되던 범죄였습니다. 피해자는 스티그마화 되는 것을 통해 침묵을 강요받았습니다. 1991년에 ‘위안부’ 김학순 씨가 처음으로 이름을 밝히고 나왔을 때, 우리는 커다란 충격을 받았습니다. ‘위안부’ 여성들은 삼중의 피해를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 전시하 일본군에 의한 강제 성노동 그 자체의 피해입니다. 두 번째로 전후 반세기 가까운 세월 동안 침묵을 강요받아 온 한국 가부장제 사회의 억압입니다. 세 번째로 증언에 대한 가해자 측의 부인입니다. ‘위안부’ 생존자의 증언에 최초로 저항한 것은, 피해자 가족과 한국 사회였습니다. 그것이 ‘민족의 수치’에서 ‘민족의 영웅’으로 변화한 것은 지원 운동의 성과였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희생자 내셔널리즘이라 해야 할 ‘민족담론’에 의한 생존자의 증언 영유(領有)가 있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민족담론에 의해 생존자의 증언이 취사선택됐다는 얘기 같음)
그 과정에서 성폭력피해를 다루는 방식은 ‘피해자의 수치’로부터 ‘가해자의 죄’라는 패러다임으로 전환되었습니다. 그 패러다임 시프트를 가져온 것은 국제 페미니즘을 배경으로 한 한국 페미니즘의 힘이었습니다.
생존자의 증언이 변화되어 가는 과정에서도 우리는 서로 마주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이 대상으로 한 것은 사실이 아니라 기억, 그리고 그 이야기narrative 였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마침 역사학이 사실로부터 기억으로 대상을 전환하는 패러다임 전환의 시기와 일치했습니다. 기억연구는 기억을 억압하는 자들뿐 아니라, 기억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에 의해서도 억압된다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것이 제가 『내셔널리즘과 젠더』에서 논했던, ‘모델 피해자’론이었습니다.
본서의 제1장에는 정대협에도 관련이 있던 야마시타 영애(山下英愛) 교수의 치밀한 논고 「한국의 위안부 증언 듣기의 역사 : 기억과 재현을 둘러싼 씨름」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에 의하면 초기에는 포맷에 따라 바뀌는 증언은 이윽고 ‘들은 대로’, ‘이야기한 대로’ 변화하여 그와 함께 이야기는 다양화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원 운동에는 그 이야기의 다양화가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같은 시기에 전시 성폭력 인식의 패러다임 전환이 있었습니다. 전쟁에 성폭력은 필수, 왜냐하면 병사는 성욕을 컨트롤 할 수 없으니까, 하는 ‘성욕’ 신화가 부정되고 성폭력은 우발적인 행위가 아니라, 조직적이고 구조적인 ‘전쟁 병기 military weapon’이라고, 르완다 국제전범 법정은 선고했습니다.
강간은 적의 남성성에 강력한 타격을 주기 때문에 채용되는 가부장제 사회의 무기인 것입니다.
사실 가사하라 토쿠시(笠原十九司) 씨의 『난징사건과 삼광작전(三光作戦)』에 의하면, 일본병사는 해도 좋은 곳에서는 강간하고, 그렇지 않은 곳에서는 이성적으로 억제하며 구분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결코 ‘성욕의 노예’가 아니었습니다. 제3장, 오카다 타이헤 씨의 「일본군 위안부 제도와 성폭력 : 강제성과 합법성을 둘러싼 갈등」은 필리핀의 전범법정기록을 토대로, 병사가 강간과 위안소를 구분했던 것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2018년 노벨 평화상은 콩고의 인권활동가이며 부인과 의사인 데니 무크웨게 씨와 이라크의 성폭력 피해자 나디아 무라드 씨에게 돌아갔는데, 그것은 전쟁병기로서의 성폭력이라는 인식에 국제사회가 합의한 것을 나타냅니다.
이 책에서 우리들 공저자는 세 가지 새로운 분석개념을 제시하였습니다.
첫 번째, 성폭력 연속체 continuum of sexual violence라는 개념입니다. 전쟁이 라는 비상시는 일상의 연장선에 있으며, 평시의 여성 경험을 확대한 것입니다. 일상에서 여성이 남성과의 관계에서 경험하는 구조적인 강제 성폭력은 연속체를 이루고 있으며 거기에 강제인가 합의인가 하는 선긋기를 해서는 곤란합니다. 사실, 레기나 뮬호이저(독일 여성사 연구자)도 메어리 루이즈 로버츠(미국의 프랑스사 연구자)도 그들의 저서(우에노 치즈코가 번역했던 책들인데, 그 책들을 통해 이 책까지 쓰게 됐다고 함. 아마도 국내에는 미출간)에서 강간으로부터 매춘, 연애까지의 연속성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빵이나 비호를 찾아 점령자와 섹스를 하고 경우에 따라 결혼하는 여성은 연애와 매춘 어느 쪽으로 분류할 수 있을는지요.
두 번째는 여성의 행위주체 agency를 강조한 것입니다. 역사의 여성 주체를 돌려놓는 것restore women’s agency to history는, 여성사의 비원(悲願)이었습니다. 어떤 가혹한 상황에 놓여도, 설령 한정된 선택지 앞에 있어도, 여성은 살기 위해 행위주체성을 발휘합니다. ‘위안부 생존자’들은, 그와 같은 행위주체성을 발휘한 여성들이었습니다.
세 번째는 구조적 폭력, structural violence라는 개념입니다. 이 용어는 평화학을 제창했던 요한 갈퉁이 제시한 개념입니다. 강제력 중에는 물리적 신체적인 폭력뿐 아니라, 경제적 강제도 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부모의 가난을 알고 스스로 몸을 파는 딸과, 부모에 시달리다 포주에게 팔려 가는 딸을 강제냐, 동의냐로 구별하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요.
이상 세 가지 개념은 일상과 비일상의 회색지대, 강제와 합의 사이에 존재하는 회색지대, 물리적 폭력과 경제적 강제 사이에 존재하는 회색지대를 개념화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더구나 여기에 전쟁이라는 요인이 개입됩니다. 전쟁에는 전쟁 중, 이행기, 전후라는 세 개의 시기 구분이 있으며, 각각 적과 아군의 이분법이 강력하게 작용합니다.
전쟁 중, 적에 대한 피지배지 사람들의 반응에는 협력자로부터 방관자, 저항자까지의 그러데이션이 발생합니다. 여성의 경우에는 강간, 매춘, 연애, 결혼, 그리고 임신과 출산까지의 연속성을 초래합니다.
이행기에는 적과 아군이 반전됩니다. 승리자와 패배자, 지배자와 적대자가 역전하고, 일찍이 협력자였던 사람은 배신자 collaborator가 되며, 보다 강한 스티그마와 증오의 대상이 됩니다. 점령자에게 강간당한 여성들조차, 자주 ‘적과 동침한 여자’로서 낙인찍힙니다.
전후에는 피해자에게 오랫동안 계속되는 트라우마적 기억이, 패배자에게는 불식되지 않는 스티그마적 기억이 남습니다. 승리도 패배도 집단의 공식 기억으로서 지배적 이야기 master narrative 하에 놓여, 그 이야기에 맞지 않는 기억은 억압되고, 망각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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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위안부의 경험 역시 억압당해왔습니다. 피해가 적에 의한 것이라면 고발하는 것이 가능하더라도 아군에 의한 피해는 억압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제2장, 기노시타 나오코(木下直子) 씨의 「‘강제연행’ 담론과 일본인 ‘위안부’의 불가시화」에서는 국경분단이 일본인 위안부와 조선인 위안부 사이에 초래한 효과를 논하고 있습니다.
강제인가 합의인가의 이분법의 배후에는 창부 차별이 있습니다. 정숙한 여인과 위안부를 분단하는 것은 가부장제의 성에 대한 이중잣대sexual double standard입니다. 하지만 ‘위안부’가 정조를 유린당한 희생자인 것처럼, 병사의 아내들 역시 ‘강요된 정조’의 희생자입니다. 그 양자를 나누어 서로 대립시키는 것이야말로, 가부장제의 억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강제인가 합의인가 사이에 있는 회색지대를 극명하게 그려낸 것은 제5장, 차조노 토시미(茶園敏美) 씨의 「섹스라는 콘택트 존 : 일본점령의 경험으로부터」입니다. 팡팡(위안부의 다른 말)으로 불리던 여성들은 강간, 매춘, 연애, 결혼까지의 연속체를 스스로의 생존전략으로서 그때그때 선택했습니다. 패배와 점령이라는 압도적인 권력의 비대칭관계 하에서도 그녀들은 스스로의 에이전시를 행사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야말로 그녀들은 스티그마화되었고, 구조적 폭력의 피해자이지만, 그 경험을 말하는 것을 봉쇄당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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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스티그마화는 팔로군 여성군 병사에게도 있었습니다. 중국의 여성학 연구자, 이소강(李小江)은 동북지방의 대규모 오랄 히스토리 프로젝트를 실시했는데, 그 중에 여성의 전쟁경험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중국여성이 이야기하는 전쟁」을 소개한 아키야마 요코(秋山洋子) 씨에 의하면, 일본군 포로가 된 팔로군 여성 병사들이 참담한 경험을 한 뒤 귀환하자, ‘영웅’ 대우를 해주기는커녕 ‘적과 동침한 여자’로 배제되었다고 말합니다. 가부장제의 ‘보호 갈취단’(여성을 보호대상으로 여기면서 동시에 여성의 신체적 물리적 노동력을 착취하는 집단)에 의한 피해 여성의 배제는 여성의 보호에 실패한 남성성의 굴욕이 그만큼 깊었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스티그마적인 기억은 집단적으로 망각됩니다. 그것을 외국인 연구자가 파낸 것이 후지모리 아키코(藤森晶子) 씨의 『삭발당한 여자들 : ‘독일군의 연인’ 그 전후(戰後)를 따라가는 여행』입니다. 독일 패전과 프랑스 해방 후, 독일병과의 사이에서 연애나 결혼, 출산의 경험을 했던 프랑스 여성들은 공개 삭발이라는 중세적으로 젠더화된 처벌을 받았습니다. 후지모리 씨에 의하면 약 2만여 명이었다고 하는 그녀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는, 프랑스에는 없다고 합니다. 그만큼 금기시되었던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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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장에서 사토 아야카(佐藤文香) 씨는 「전쟁과 성폭력 : 이야기의 정통성을 둘러싸고」라는 대담한 가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성폭력 피해 중, 무엇이 이야기되고 무엇이 이야기되지 않았는가? 성폭력에는 연속성이 있는데, 거기에 말할 수 있는 성피해와 말할 수 없는 성피해의 분단선을 긋는 것은 무엇인가? 어떤 이야기에 정통성이 부여되고, 어떤 이야기에 정통성이 부여되지 않는가? 이야기에 정통성을 부여하는 것도 부여하지 않는 것도 이야기를 듣는 화자집단입니다. 사토 씨는 피해자가 에이전시를 행사하면 사회가 인지하는 정도에 응하여 정통성이 부여되거나 박탈당하거나 한다고 논합니다.
에이전시가 제로라고 보이는 것이 폭력에 의한 강간입니다. 그리고 에이전시가 작용할 수 있는 여지가 전혀 없는 강간만이 이야기의 정통성을 얻습니다.
여기에 개입하는 것이 강제와 합의 사이에 놓이는 분단선입니다. 하지만 제가 제시한 ‘성폭력 연속체’라는 개념은, 이 분단선을 긋는 것을 어렵게 합니다. 왜냐하면, 여성의 경험에는 가부장제의 구조적 폭력이 항상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언어론적 전회를 거친 역사학은 단순한 사실의 기술이 아니라, 집합적인 기억과 망각의 집합이라고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하면 역사에는 이야기되는 기억과 이야기되지 않는 기억이 허다할 것입니다.
본서의 집필자 중 한 사람인 나리타 류이치(成田隆一) 씨는 제9장 「성폭력과 일본근대역사학: 만남과 만남의 실패」라는 흥미로운 논문을 기고했습니다. 그것은 오랄 히스토리를 이류 역사로 경시해온 실증사학의 한계였을뿐 아니라, 여성의 성폭력 피해를 이류 시민의 이류피해로 보아온 것에도 원인이 있습니다. 독일사 연구자, 히메오카 도시코(姫岡とし子) 씨는 제8장 「나치 독일의 성폭력은 어떻게 불가시화 되었는가?: 강제수용소 내 매춘시설을 중심으로」이며, 왜 독일에서 전쟁과 성폭력 연구가 진행되지 않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나치 피해자 사이에서조차 ‘희생의 피라미드’가 성립되어, 여성의 피해를 다루기에 부족한 이류 피해로 보았던 점을 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폭력 피해는 무시되어도 좋은 피해가 아닙니다.
『전쟁과 성폭력의 비교사를 향하여』를 토대로 다시 한 번 ‘위안부’ 문제를 재배치하는 것은 가능할까요? 논자에 따라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홀로코스트와 마찬가지로 다른 무엇과도 비교 불가능한 제국의 범죄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독일의 역사가 논쟁에서도 거론되었듯이, ‘역사에 금지된 질문은 없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오히려 비교사에 의해 비로소, 우리는 무엇이 공통적이며 무엇이 다른가를 분명히 할 수 있습니다.
성폭력 피해가 분명해짐에 따라 우리는 점점 여성 경험의 다양성과 연속성에 압도되었습니다. 그 당사자의 이야기에 정통성을 부여하거나 부여하지 않거나 함으로써 특정의 이야기를 영유(領有)하는 유혹에 우리들은 항상 노출되어 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여성의 에이전시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다고 해서 구조적 폭력을 면책하는 일도 없이, 일상으로부터 비일상에 이르는 여성의 성폭력 피해 경험을 이야기할 수 있는 화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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