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03

(15) 권용득 - 증언과 듣기의 정치학 / 정유진

(15) 권용득 - 지난겨울 한 심포지엄에서 인상 깊었던 정유진 선생님의 강연록 일부다. 이왕이면 강연록 전문 공유하고 싶지만,...

권용득
15 May at 16:44 ·
지난겨울 한 심포지엄에서 인상 깊었던 정유진 선생님의 강연록 일부다. 이왕이면 강연록 전문 공유하고 싶지만, 그러면 저작권침해로 형사처벌 받을 수 있으므로 일부만 공유한다. 이 일부 공유조차 문제가 될 시 곧바로 삭제 조치하겠다.
정유진 선생님은 위안부 피해자에게 사죄와 보상 차원으로 1995년 일본에서 설립된 반관반민 성격의 국민기금(아시아여성기금, 쓰구나이킨)에 관한 국내에서의 논의가 부족했고(당시에는 지원단체뿐만 아니라 보수언론까지 국민기금을 일본 정부의 회유책으로만 여겼다), 그게 결국 2015년 연말 소위 ‘졸속 합의’와 2018년 화해치유재단의 해산까지 이어졌다고 보고 있다. 깊이 동의한다. 해결에 대한 논의는 늘 우리 사회 일부에서만 독점돼왔고, 그게 최근 갈등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본다.
정유진 선생님의 근본적인 문제 제기는 ‘당사자중심주의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 아닌가 싶다. 뉴스피드에 한겨레에 실린 정유진 선생님의 글(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44943.html)도 많이 공유되고 있던데(같은 분이 아닐 수 있음. 만일 같은 분이라고 가정한다면), 아마 이 글도 그 질문에서 출발한 게 아닌가 싶다.

증언과 듣기의 정치학 / 정유진

(전략)
피해자 김학순의 증언을 과거의 역사 문제가 아니라, 지금 바로 내 자신이 “대처해야만 하는 현실의 문제”로서 이해하는 와다 하루키는, 2004년 대학 강연에서 “위안부 문제를 생각하는 것이 현대의 일본인에게 무슨 이득이 되는가?” 라는 학생의 질문에 아래와 같이 답한다.
“피해자들이 돌아가시고, 관계없는 사람만 남게 되면 해결의 여지가 사라져 버리게 되잖아요. 라스트 찬스가, 거의 모든 관계자의 인생의 마지막에 찾아온 겁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상태로 있으면, 용서하지 않겠다는 말만이 영원히 역사에 기록된다면 손을 쓸 수 있는 도리가 없잖아요. 마지막 시기에 겨우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속죄를 받아준 분들이 있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위안부 제도를 인정하고 피해자에게 사죄를 표명한 고노 담화에 입각하여 국민기금이 설립되었다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와다 등은 피해자들이 세상을 떠나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아예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위기의식을 국민기금이라는 찬스를 살려서 극복하고자 했다.
“일본 전체를 다 준다 한들, 우리가 죽은 후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는 당면의 과제, 책임을 호소하는 말로 이해되었다.
국민기금 사업에 불만을 품는 피해자도 있겠지만, 처리되지 못한 역사의 문제에 하나의 “실마리”를, 흔적을 남기는 것, 피해자가 모두 저세상에 가 버리고 마는 최악의 사태만은 피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선결 과제였던 것이다.
와다 등이 시종일관 강조했던 ‘당면한 책임’이라는 문제는, 국민기금에 참가하거나 협력했던 이들이 절감했던 공통된 문제의식이기도 했다.
(중략)
국민기금 이사로 활동했던 오누마 야스아키 등 기금에 적극적으로 참가했던 이들은, “약한 목소리”에 대한 책임을 강조하며 국민기금이라는 도의적/개인적/상대적 해결 방법의 정당성을 확보하려 하였다. “돈의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용기 있는” 피해자보다, “돈을 원한다”라고 말하는, 말할 수밖에 없는, 계층적/성적/연령적으로 가장 억압된 상태에 놓여있는 피해자, 더욱 약한 입장에 놓인 피해자의 말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 그들을 먼저 “배려”하는 것이야말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책임 있는 태도라는 것이다.
국민기금에 의한 속죄 방식이 “피해자의 명예와 존엄회복의 유일한 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이것이 차선책으로서 의미를 갖는 것은, “한국사회에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혹은 한국사회가 책임지지 못하는 “더욱 약한” 피해자의 목소리를 대변한다고 자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한을 품은 채 일본을 비판만 하다가 죽음을 맞”게 되는 것, 용서하지 않겠다는 말만이 영원히 남게 되는 사태를 피하는 것, 불충분하지만 미래의 역사에 하나의 단서를 남기는 것이 더욱 책임 있는 행동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국민기금 반대 맥락에서 자주 인용되었던 “민간기금이든 뭐든, 돈의 문제가 아니다. 사죄가 먼저다. 몇 년이 걸리더라도 우선은 사죄의 문제!”, 혹은 “지금까지도 우리는 잘 살아 왔습니다. 앞으로 위로금을 받고 불명예스럽게 죽는 것보다는 위로금을 받지 않고 명예스럽게 죽는 길을 택할 것입니다” 라는 말은 ‘강한 피해자’의 말로 분류되고, “일본 전체를 다 준다 해도, 우리가 죽은 후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라는 말은 “더욱 약한” 목소리로서, 가장 우선해야 하는 피해자의 말로 위치 지어졌다.
“국민기금에 의한 쓰구나이를 받아들여 정신적, 물질적 위안과 치유를 느끼시는 분이 한 사람이라도 계시다면”이라는 말이 일본 사회에서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피해당사자에 의한 해결의 의미와 더불어 그들이 말하는 “한 사람”이 ‘가장 약한 한 사람’이라는, 전체 피해자를 대표할 수 있는 한 사람이라는 이해가 동반되었기 때문이다.
가장 억압적 상태의 고통받는 피해자, 가장 중요한 타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야말로 인권적 의미에 충실한 정치적 실천이었던 것이다.
(중략)
국민기금 찬반논쟁에서 피해자의 말은 경쟁적으로 언급되었지만, 위안부 문제 해결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책임 의식 속에서 그들의 말은 객관성을 보증하는 근거로서, 혹은 미회복의 징표로서 선별되어 재현되었다. 바르게 대변하려 하면 할수록 피해자는 바른 청자가 되겠다는 욕망을 투영한 대상으로서, 청자라는 주체를 보완하는 종속적인 위치에 놓이고 마는 구도가 가시화된 것이다.
피해와 고통,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하는 고유의 경험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이 출발점의 의미는 식민지주의를 논하기 위해 개인의 경험에 소유격을 붙여 본질화하고, 투명한 증거로 반복적으로 논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것에 천착하는 것의 중요성과 피해 경험을 특권화된 형태로 귀착시키는 것은 다른 것일 것이다.
국민기금을 둘러싼 논쟁은, 피해자의 존재가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위안부 문제의 해결이 절실하기 때문에 피해자의 말을 바르게 대변해야 한다는 의지가 어떠한 입장에서 구성된 것인지에 대한 문제와, “속지 않는 자 (the non-duped)”가 되고 싶은 욕망의 의미를 환기하여 주었다. “우리들이 잊었기 때문에” 두 번 죽은 셈이 되고 말았던 그들이 등장한 이후, 청자들은 어떠한 공동체를 만들어 왔는가, 우리들은 잊었던 그 시간에 대한 성찰에 직면한 적이 있는가? 그 공백의 시간은 어떠한 논의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는가, 피해자의 말을 분할하지 않고 들을 수 있는 인식론은 존재하는가, 피해를 입은 복잡한 맥락과 권력의 동학을 모두 논할 수 있는 청자 공동체는 존재하는가를 질문하고 있다.
또한 이 문제는 식민지주의 안에서 식민지주의 문제를 어떻게 기술할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할 것이다. 식민지주의를 말할 때 등장하는 고정적인 이미지, 식민자와 피식민자,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이항적 구도를 어떻게 질문할 것 인가. 탈식민주의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은 결국 이러한 이항대립적인 대칭관계를 상정하고 있는 것에 대한 문제 제기라는 점을 어떻게
논할 것인가라는 점이다.
“쓰구나이 절차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곤란에 부딪혔다. 그것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에 대해서 부끄러움을 느낀다. 식민지, 점령지의 주민 측에 어떠한 마음의 움직임이 있는가에 대해서, 식민지와 점령지를 만들고 있는 측에서는 감각이 둔하다. 상상력이 둔하다. 이 일에 대한 자기 파악이 부족하다. 일본국가는 패전 후에도 연속되고 있기 때문에 전쟁 중에 있었던 둔감함은 오늘날에도 이어져 우리 안에 있다.”
국민기금 발기인으로 활동했던 쓰루미 슌스케가 말하는 이 둔감함의 의미를 반드시 식민지/피식민지 구도에 한정 지어 이해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전제로서 자연화된 존재가 어떤 동인(動因)으로 등장한다는 것을 어디까지 상상할 수 있을까라는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피해자가 이렇게 말했다,
그러니까 ‘이렇게 해야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옳다’ 라는 주장이 난무하는 상황 속에서 피해자는 말할 수 있을까? 국민기금, 혹은 화해치유재단 해산과 관련한 논의 공간에서 자신들의 말이 미회복의 증표로서, 객관성의 근거로서 선별될 때, 그들은 무엇을 보았을까? 그들은 말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니라 말하지 않은 것은 아닐까?
“상상력이 둔하다”는 쓰루미의 자각은 이 질문을 둘러싼 논의의 돌파구가 될지 모른다. 그들이 말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말하지 않은 것이라면, 피해자와 피해자를 지원하는 자라는 기존의 관계는 다른 국면으로 전환될 수도 있을 것이다.
원래 피해자와 운동가/연구자는 서로 처한 상황이 다르므로 이해가 충돌할 수 밖에 없다, 혹은 피해자의 수만큼 피해자의 요구와 희망도 다양하므로 선별적 대응은 불가피하다는 상대주의를 추인하지 않고, 피해자와 피해자를 지원하는 자라는 구도 자체를 질문하면서 새로운 방법론을 모색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발화된 말이 '아직' 회복되지 않음을 드러내는 징후로서 판별의 근거가 될 때, 피해와 관련한 돈의 수령 여부가 배제의 근거가 될 때, 그들은 무엇을 보았을까? 강제냐 자발이냐, 법적 해결이냐 도의적 해결이냐 구도에 함몰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혹은 ‘소녀’와 ‘할머니’라는 성별적 표상에 균열을 내기 위해서라도 이 지평을 확보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일 시민사회에서 군 위안부 피해자라고 규정되고 있는 이들은 누구인가? 질문은 여전히 계속된다.
19Seokhee Kim, Insu Bae and 17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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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용득
권용득 오잉?이거 왜 올리자마자 삭제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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