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재명에 관심이 없어서 띄엄띄엄 알다가 대선후보가 된 다음에 비로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는데 정말 이상한 사람 같다.
한국 학계의 통설은 가쓰라 - 테프트 밀약으로 한국과 필리핀이 교환되었다는 것이지만 적어도 외국 학계나 외교계의 인식에서는 이 밀약 자체가 존재한 적이 없다. 교과서에 올라가 있는 상식적인 얘기라 다들 사실이라 생각하겠지만 학술논문 몇 개만 뒤져보면 생각보다 복잡한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미 1959년 미일관계사 연구의 대가인 에스터스가 반론을 펼친 뒤부터 논쟁이 이어졌다. 에스터스의 논점은 2가지이다.
1) 이미 한국은 러일전쟁의 전리품이기 때문에 필리핀과 교환할 흥정의 대상이 아니었다. 다음으로
2) 비밀협정 운운하지만 이미 일본 정부 기관지인 국민신보에서 대놓고 이 협정의 존재를 보도했는데 어떻게 "비밀"협정이 되며, 단순한 의견의 교환이 어떻게 "협정"이 되냐는 것이다.
가쓰라 테프트 조약이 밀약이라는 것은 일본 정부의 자의적인 판단을 한국 측이 협정으로 오인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전에 추천한 <반미주의로 보는 한국현대사>에서도 미국인인 저자는 전직 외교관의 관점에서 한국인들이 대체 왜 그런 밀약이 존재했다고 생각하는지, 미국이 왜 한국을 '배신'했다고 생각했는지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적어도 미국측은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현실을 그저 인정했을 뿐이라 생각한다.
잠깐만 더 설명하자면 가쓰라 테프트 협정은 한국과 필리핀의 교환보다는 반대로 국제분쟁의 해결법에 대한 미국과 러시아 간의 의견의 대립에서 그 기원을 찾아야 한다. 1899년 헤이그 평화회의의 산물로 나온 헤이그협약에는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방식으로 서로 모순적인 제2항과 제4항이 존재한다. 제2항 거중조정은 외교관의 테이블에서 문제를 다루자는 것으로 러시아가 강하게 밀고 나갔으며, 제4항 중재재판제도는 국제재판소에서 사법적 판단을 통해 해결하자는 것으로 미국이 러시아에 맞서 강하게 밀고 나간 것이었다. 둘다 제3국이 국가들 간의 분쟁에 개입할 수 있는 방안으로 어떤 방법이 더 많은 지역에 적용될 것인가에 따라 미국과 러시아의 이해가 갈라진다. 그런데 이 제4항에는 독소조항이 있다. "국가의 명예", "독립에 관한 일", 그리고 "사활적 이익"에는 개입할 수 없다.
일본은 조선을 일본의 "사활적 이익"에 해당하는 것이라 못박아놓는 것이 필요했고 미국은 그것을 통해 거중조정이 아닌 중재재판제도의 세계적 적용을 꾀해야 했다. 여기서 대한제국은 어떤 선택을 했는가?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 러시아를 등에 업고 "거중조정제도"를 활용하는, 그러니까 국내적 친러파와 대외적인 러시아의 개입을 통한 외교적 중재로 독립을 유지하고 중립화를 꾀했던 것이다. 미국의 루즈벨트 입장에서 대한제국은 러시아와의 국제법적 논쟁에서 러시아의 편을 드는 국가로밖에 볼 수 없었으며 못해도 중재재판제도의 적용 지역으로 만들어야 했다. 이 중재재판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군사동맹에 영미일 삼각동맹이 필수적이었기 때문에 미국으로서는 일본을 지지하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러일전쟁에서 승기를 잡고 중재재판체제를 한반도에 적용하더라도 일본으로서는 문제가 남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대한제국의 고종은 헤이그특사 파견 등을 통해 중재재판제에 일본을 제소하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한다는 점 또한 주요하게 작용하고 있었다. 게다가 러시아제국의 차르는 국재재판소에서의 중재재판을 통해 강화를 하겠다고 하고 있었다. 일본으로서는 청일전쟁 이후의 전리품을 삼국간섭 속에서 도로 토했던 악몽이 러일전쟁에서도 반복될 수 있다는 트라우마가 작동할 수밖에 없었고,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고 보호국화 하는 방향으로 급박하게 사태를 진행시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또한 이러한 행위에 대해 미국이 인정해주고 한반도가 일본의 '사활적 이익'에 해당한다는 점을 어떻게든 확정받을 필요가 있었다. 앞서 미국인 외교관들은 그것이 러일전쟁의 승리를 단순히 인정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고 별 의미를 두지 않았음에도 일본이 이것을 어떻게든 협정으로 보이게 하려 노력했다고 말했는데 바로 이런 역사적 맥락 속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 가쓰라 테프트 밀약이 사실이든 아니든 일본 입장에서 그것은 "사실이어야만" 했다.
지금 한국이 식민화의 과정에서 깨달았어야 하는 지점은 전세계적으로 진행되는 영국과 러시아의 그레이트 게임에 대한 이해를 잘못하고 러시아 쪽에 판돈을 걸었다가 주권마저 잃어버리게 된 과정 그 자체이다. 미국에게 왜 우리를 배신했냐고 따져물을 것이 아니라 고종을 비롯한 대한제국의 지도부의 외교적 감각과 도박이 잘못된 방향에 있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영미일 해양세력의 동향에 기민하게 반응하지 못한 결과로 식민화되었다는 것을 파악하지 못하고 따져묻고 있으니.. 한심할 지경이다..
역사적 사실관계가 어떻든 그건 별로 중요한 일은 아니지만 미국인 입장에서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 역사적 사실과 상관없이 만나러 온 이에게 과거사를 들먹이며 미국이 한국 분단에 책임이 있다고 하는 걸 보면서 대체 무슨 효과를 노리는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 기본소득제부터 시작해서
- 가상화폐,
- 부동산이익환수,
- 미국의 분단책임 발언 등
의 일련의 발언들을 보면 이 사람이 최소한의 정치적 감각이라는 걸 갖고 있는건지 의문스러울 때가 많다. 저런 주장에 호응하는 인간집단이 한국에 그리 많은가? 내가 일반적인 한국인 집단과 그정도로 유리됐다 생각하지 않는데.. 여러모로 이상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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