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집①-북미관계> 서재정 - 올해는 `결단의 해` 2003년으로 가는 길목
기자명 연합뉴스
입력 2002.01.05
<신년특집-2002년 한반도정세와 한국사회>를 시작하며
올해 한국에서는 월드컵 개최와 지자체 및 대통령선거가 있습니다. 북한에는 고 김일성 주석 90주년과 김정일 60주년 그리고 아리랑축전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북미대화와 남북대화가 재개될지, 한미관계가 변함없을지, 한국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또 미국의 대테러전쟁이 어디까지 진행될지 모두가 초미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에 `통일뉴스`에서는 새해를 맞아 각 방면 전문가들의 견해를 빌어 <2002년 한반도정세와 한국사회>라는 제목으로, 한국사회의 변화와 한반도 통일정세의 추이를 가늠해 보고자 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애독을 부탁드립니다.(편집자 주)
서재정 (미국 코넬대학 정치학 교수)
북미관계에서 2002년은 2003년으로 가는 과도기이다. 북미관계 최대의 현안인 핵과 미사일 문제는 2003년까지 해결이 되던지 또 다른 위기를 초래할 것이다. 북한과 미국은 `결단의 해`가 될 2003년을 앞두고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2002년 한해동안 치열한 샅바싸움을 하는 동시에 각기 `무소의 뿔처럼 홀로 가는` 이중적 양상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는 2003년을 앞둔 치열한 샅바싸움의 해
1994년 전쟁 직전까지 가는 위기 속에서 체결된 제네바 협약은 북한이 기존 핵프로그램을 동결하는 대신 "미국이 책임지고" 2003년까지 핵발전소를 건설해주기로 했다. 북이 지금까지 이 협약을 충실히 준수한 반면 미국이 2003년까지 핵발전소를 건설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제네바 협약의 운명은 2003년 두 가지 중 하나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핵발전소 지연에 대한 북미간 합의가 이뤄지거나 북이 핵프로그램을 재가동하는 것이다. 미사일 문제에 있어서도 북은 2003년까지 발사시험 유보를 공언했지만 북미 사이에 마땅한 해결책이 합의되지 않을 경우 역시 북이 미사일 발사를 재개할 수 있는 상황이다. 북미 모두에 사활적인 이 문제들의 운명이 결정될 2003년을 앞두고 양국은 치열한 샅바싸움을 벌일 것이다.
이 싸움은 공개적인 대화와 협상보다는 물밑협상과 일방적 힘쌓기 방식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신년사에서 "4대제일주의"를 내세우며 제 갈 길을 가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반면 미국은 군사력을 내세운 일방주의적 외교의 틀 속에서 강경한 대북정책을 밀고 나가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신문 등의 신년공동사설은 "`반테로`의 명목밑에 감행되고 있는 미제와 남조선호전분자들의 반공화국, 반통일 책동으로 말미암아 지금 조선반도에서는 긴장상태가 격화되고 있다"고 국제정세를 규정했다. 이는 "오늘의 시대는 반제자주세력과 지배주의세력간의 투쟁이 격렬하게 벌어지는 시대"이며 "최근년간에 이르러 세계제패를 위한 제국주의자들의 책동은 완화되기는커녕 더욱 횡포해 지고 있다"는 연말의 인식과 일치하는 것이다.
이러한 정세를 헤쳐나가기 위해 북은 총대를 앞세운 "군대제일주의를 철저히 구현하여야 한다"며 선군정치를 강조하고 있다. 이는 "우리의 자주권을 존중하는 나라들이라면 그 어떤 나라든지 대외관계를 개선해 나갈 것"이라는 작년의 적극적인 외교노선과 대비된다. 올해의 사설은 `자주·친선·평화`라는 북한의 대외관계 기본이념조차 생략했다. 군대를 앞세우고 갈 길을 가겠다고 강력히 선언한 셈이다.
이 같은 대외·대미정책은 "우리 수령·사상·제도제일주의"이라는 대내정책 기초 위에 서 있다. 90년 이후 9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는 등 `고난의 행군`을 했던 북한경제는 99년부터 반전하여 연속 플러스 성장을 보이고 있다. 이 회복세를 몰아 `라남의 봉화`로 경제발전을 가속화하는 동시에, 주체사상과 김정일 위원장을 중심으로 결속을 강화하려 하고 있다.
이러한 `주체적` 대내정책은 사회적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킬 일련의 행사들과 맞물려 강력히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올 한해동안 김일성 주석 탄생 90주년과 김정일 위원장 60주년 생일, 인민군 창건 70주년 등 연이은 대형국가행사로 고무된 사회적 분위기가 대집단체조 및 예술공연 `아리랑`으로 절정에 달하며 대외적으로 "4대제일주의"를 과시하려 할 것이다.
이러한 대내외 정책기조는 한편으로는 주체체제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외부정세에 대한 위기의식의 발로이기도 하다. 이러한 기조는 대미정책에서 원칙을 강조하게 하는 한편 역설적으로 협상과 타협의 여지를 축소시킬 가능성도 있다.
북미, 모두 나름대로의 `제일주의`와 `선군정치` 추구할 것
한편 미국은 `미국 제일주의`와 미국 나름대로의 `선군정치`를 추구한다고 보여진다. 물론 북한의 "4대제일주의"와 "선군정치"가 수세적인 성격이 짙다면 미국의 `제일주의`와 `선군정치`는 공세적인 성격이다. 문제는 양국이 힘에 의거한 `나홀로` 노선을 추진하면서 대화의 여지와 협상의 기회가 실종될 수 있다는 것이다.
부시 행정부의 기본국가안보전략은 아직 공표 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4개년 국방검토`와 2001년 한 해의 대외정책으로 미루어 볼 때 부시 행정부는 각종 국제회의와 국제조약, 국제기구에서 미국의 뜻이 관철되지 않으면 퇴장, 탈퇴하는 극단적인 일방주의적 `미국 제일주의` 모습을 보였다.
지난 해 9월 11일 테러공격은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보복전쟁으로 이어졌다. 이 전쟁에서 일방적인 승리를 거둔 미국은 군사력을 내세운 일방주의적 외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6월이면 탄도탄요격미사일협정에서 공식적으로 탈퇴가 되어 미사일방어 추진이 가속화될 것이다.
이미 4개년 방위검토 발표에 이어 군개혁국 (아서 시브로우스키 국장, 차관급)이 출범한데 이어 공군과 육군 등도 군 개혁위를 가동하는 등 군사혁신도 힘있게 추진하고 있다. 의회도 3천4백30억 달러가 넘는 2002년 국방예산을 승인, 총대를 앞세운 공세적 선군정치를 밀어주고 있다.
대북정책도 보다 강경한 입장으로 선회했다. 부시 행정부는 "아무런 조건없이" 북과 대화를 재개하겠다고 하면서 의미 있는 대화를 위한 전제조건을 거부하고 있다. 93년 `조미공동성명`에서 확인된 "내정불간섭" "평화통일지지" 등의 원칙은 물론 2000년 `조미공동코뮤니케`에서 발표된 "적대적 관계의 종식" 등의 `전제조건`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대화의지`는 앞으로 4년간 국방정책의 기본방향을 정하는 `4개년 국방검토`로 뒷받침된다.
한반도를 주요 전쟁터에서 제외하는 `윈-플러스` 전략이 채택될 것이라는 예측과는 달리 `4개년 국방검토`는 중동과 한반도를 양대전쟁터로 상정하는 `윈-윈전략`을 다시 채택했다. 북한을 주적으로 재확인한 것이다. 이러한 냉전적 대결자세는 아프간전쟁과 함께 더 강화되고 있다.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한데서 나아가 생화학무기 보유국으로 규정하고 국제적 압력을 강화하려 하고 있다.
올 11월 연방의회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는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 완수와 경제회복이 제1의 관심사가 될 것이다. 중간선거에서는 상원의원 3분의 1이 교체되고 하원의원 전원이 새로 선출된다. 현재 상원에서는 민주당이 50대 49로 근소한 차이로 앞서고 있으며, 하원에서는 공화당이 222대 210으로 다수당을 차지하고 있다.
경제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공격적인 금리인하와 연방정부의 대대적인 경제부양책, 기업들의 재고감소 등에 힘입어 늦어도 하반기부터는 회복세를 보일 것이라는 전망이 많으나 아르헨티나 경제위기, 끝없는 일본의 불황, 흔들리는 유럽경제가 미칠 여파 등을 고려하면 반드시 낙관적인 것은 아니다. 따라서 공화당 행정부는 `테러와의 전쟁`에서 확실한 결과를 내도록 매달릴 가능성도 적지 않다.
이상과 같이 올해는 북한과 미국이 모두 총대를 앞세운 선군정치를 추구하면서 대외관계에서 `나홀로` 노선을 따르기 때문에 접점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경우에 따라서는 대화가 의외로 진전될 수 도 있지만 양국관계가 94년보다도 심각한 위기상황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러나 2000년 말까지 조미관계의 굴곡을 다시 보면 양국 관계개선에 필요한 조건이 무엇인지 드러난다. 2003년을 앞두고 양국 모두 이 조건을 반추해 볼 필요가 있다.
양국은 이제라도 적대관계 종식을 선언한 2000년 10월 공동코뮤니케로 돌아가야
클린턴 행정부의 기본국가안보전략은 개입과 확대 (engage and enlarge, 여기서 engage는 "개입"이라는 뜻보다는 "끌어들인다"는 뜻임)였고 군사전략은 `윈-윈`을 추구하는 양대전쟁전략이었다. 유럽에서는 구 소련 및 동구권과의 개입과 확대가 추진되는 한편 전쟁의 종식이 선언되는 등 이 국가안보전략과 군사전략이 잘 맞아 떨어졌으나 한반도에서는 모순을 노출했다. 그 결과가 협상과 대결 사이의 널뛰기였다.
개입과 확대 전략이 우선될 때에는 북의 대화전략과 맞물려 협상이 진행되다가, 군사전략이 우위를 차지하는 시기에는 북의 군사적 대응을 불러 일으켜 대결의 국면으로 치달았던 것이다. 그러나 양국의 기본적 정책방향이 관계개선을 지향하고 있었으므로 널뛰기를 하는 과정에 북미관계는 일정하게 발전궤도를 밟았다.
그 최고 결과물이 적대관계의 종식을 선언한 2000년 10월 공동코뮤니케였던 것이다. 이에 따라 북과 미국은 상대를 주적으로 하는 군사전략을 수정해야 한다는 역사적 과제에 직면했다. 2000년 말 클린턴과 김정일의 정상회담이 성사되었다면 이는 단순히 미사일문제의 해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 냉전체제가 끝날 수 있는 역사적 기회였던 것이다.
불행하게도 이 역사적 기회는 클린턴 행정부에서 부시 행정부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유실되었다. 양국은 이제라도 적대관계의 종식을 선언한 2000년 10월 공동코뮤니케로 돌아가 다시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북한과 미국 사이의 전쟁상태를 끝내고 적대적 대결자세를 지양하고서야 핵과 미사일 문제의 평화적 해결이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양국을 이러한 대화로 이끄는 힘은 6.15공동선언 실천에서 찾아봐야 할 것 같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국제연대도 절실하다. `결단의 해`가 될 2003년으로 가는 길목, 2002년 한 해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의 과제는 절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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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북한과 미국이 모두 총대를 앞세운
선군정치를 펼 것이라는 서재정 교수.
미국 시카고대학 물리학과 졸업
미국 펜실베니아대학 정치학과 박사
현 미국 코넬대학 정치학과 교수
미국의 군사전략과 대한정책 관련 논문 다수
편역서, 『탈냉전과 미국의 신세계질서』 (역사비평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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