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18

“적대적 두 국가론은 연방제 통일정책을 추진하지 않는다는 의미” < 인터뷰 < 오피니언 < 기사본문 - 통일뉴스

“적대적 두 국가론은 연방제 통일정책을 추진하지 않는다는 의미” < 인터뷰 < 오피니언 < 기사본문 - 통일뉴스

“적대적 두 국가론은 연방제 통일정책을 추진하지 않는다는 의미”
[신년인터뷰] 한호석 정세연구소 소장
기자명 이계환 기자   입력 2024.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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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연초 한반도를 강타한 북측의 노동당 전원회의와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 북측의 근본적인 대남 노선 전환과 관련해 미국에서는 의견이 둘로 갈라지고 남측 정부는 정확한 입장을 못내고 있으며, 통일운동 진영도 당황해 하고 있다. ‘쿠오바디스 한반도’인 것이다.

북측의 의도와 향후 통일운동의 방향을 듣고자 대표적인 재미 정세분석가 한호석 소장을 찾았다. 미국 뉴욕에서 만난 한호석 정세연구소 소장은 건강했다. “어느덧 예순아홉이 되었지만, 언제나 청춘의 기백을 안고 산다”는 그의 소신처럼 칠순을 한 해 앞둔 그의 눈빛은 형형했고 목소리는 창창했다. 모든 현안에 대해 막힘이 없었다. 향후 한반도 정세 변화를 예고하듯 그가 25년 넘게 이끈 ‘통일학연구소’도 ‘정세연구소’로 개칭했다.

한 소장은 이번 북측의 시정연설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점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남쪽 국경선을 긋는 문제”를 꼽았다. 북측이 남쪽 국경선을 그을 경우 서해 북방한계선(NLL)에서 남북 간 충돌이 불가피해지고, 국지전이 전면전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논리다. 즉 이 같은 무력충돌은 “영토 침범 문제를 두고 벌어질 것이므로 전쟁으로 확대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것.

그 뿌리가 시정연설에 나타난 김정은 총비서의 새로운 정세관에 기인한다고 한 소장은 짚었다. 김 총비서는 시정연설에서 남북관계를 ‘적대적인 두 국가관계’로 규정했는데, 이럴 경우 “1민족 1국가의 원칙 위에 성립된 연방제 통일정책의 존립근거가 사라”진다는 것. “김정은 총비서의 적대적 두 국가론은 연방제 통일정책을 더 이상 추진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해석된다”는 것이다.

이 같은 북측의 대남 노선 변화와 관련 그 조짐에 대해 김여정 부부장이 2023년 7월 10일자 담화에서 《대한민국》이라고 표기했던 것을 상기시켰다. 특히, 한 소장은 북측의 대남 노선 변화의 원인으로 ‘한미연합군의 참수작전 준비’를 지목했다. 그렇다면 이제 한반도에는 ‘한미연합군의 참수작전 준비’ 대 ‘대한민국 점령작전 준비’가 맞선 형국이 된 것이다.

아울러, 한 소장은 북측이 조국통일3대원칙 폐지와 조국통일3대헌장기념탑 철거 등 그동안 남북이 맺은 합의를 무효화한 이유로 ‘연방제 실현이 불가능해졌다는 자체 판단 때문’으로 보았다. 이런 상황에서 그간 “조국통일운동을 해왔던 남측이나 해외측 활동가들이 혼란스러운 건 당연한 일”이라는 것이다.

이렇듯 출구 없이 ‘강대강’으로 치솟는 한반도 전쟁 위기를 막기 위한 대처 방안으로 한 소장은 “자주강령의 기치를 높이 들고 반미자주화 투쟁에 더욱 힘쓰면서, 민주강령의 기치를 높이 들” 것을 촉구했다.

한호석 소장과의 인터뷰는 1월 20일(토) 오후, 미국 뉴욕 맨해튼에 있는 한 호텔의 카페에서 진행됐으며, 미비한 점의 보강을 위해 이후 이메일을 통해 한차례 서면 문답을 가졌다. 본 인터뷰 녹취록은 보다 정확한 내용을 독자들에게 전하기 위해 문맥을 변경하지 않으면서 부분적으로 수정, 보완되었다. / 편집자 주

 
미국 뉴욕에서 만난 한호석 정세연구소 소장은 건강했다. 눈빛은 형형했고 목소리는 창창했다. 한 소장은 최근 북측의 전원회의와 시정연설에서 나타난 대남 노선 전환과 관련한 모든 현안에 대해 막힘이 없었다. [사진-통일뉴스 임영태 기획위원]
 

“북측의 대남 노선 변화 원인은 한미연합군의 참수작전 준비 때문”

□ 이계환 기자 : 반갑습니다. 오랜만에 뉴욕에서 뵙습니다.

■ 한호석 소장 : 서울에서 만난 지 10년이 넘는 것 같습니다. 정말 반갑습니다.

□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합니다. 통일운동 인사들과 통일뉴스 독자들을 위해 근황을 전해주시죠.

■ 며칠 전 생일을 맞아 제 나이 어느덧 예순아홉이 되었지만, 언제나 청춘의 기백을 안고 삽니다. 1981년 7월 유학생으로 뉴욕에 도착한 저는 5년간의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려고 계획했었는데, 스물아홉 나던 1984년 6월에 거의 끝나가던 박사과정 유학생활을 마감하고 청년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40년 동안 저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변함없이 다른 길에 한눈 팔지 않고 자주, 민주, 통일의 길을 따라 여기까지 왔습니다. 미국에서 제가 모시고 조국통일운동을 해왔던 임창영 박사님, 홍동근 목사, 선우학원 박사, 문동환 목사를 비롯한 대선배님들은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선배님들께서 우리 후배들에게 유업을 넘겨주시고 먼저 떠나셨으니, 저로서는 노년기에 기력이 쇠하기 전에 정신 바짝 차리고 더 정진해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합니다.

□ 국내에 한호석 소장님의 글을 읽는 독자들이 많습니다. 특히 북측에서 지난해 말 전원회의와 올해 1월 중순 시정연설에서 새로운 대남 정책이 나왔습니다. 많은 분들이 놀라기도 하고 또 해석을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소장님을 직접 만나 북측의 변화된 대남 정책에 대해 듣고자 합니다.

이번에 북측 8기 9차 전원회의와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북측의 입장이 나오지 않았습니까? 여러 가지 많겠지만 크게 보면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개 국가 관계로 보겠다’, 그다음에 ‘남측을 주적으로 규정하겠다’, 그리고 ‘대남 사업과 관련 대남 기구를 정리하겠다’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대남 노선의 근본적 변화라고 볼 수가 있을 것 같은데, 북측이 그간 80년 남북관계사를 지워버리는 듯, 이렇게 대남 정책을 확 바꾼 이유가 무엇일까요?

■ 2024년 1월 15일 김정은 총비서가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남북관계에 대해 언급한 정세관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게 중요합니다. 연설 원문을 인용하면, “북남관계가 더 이상 동족관계, 동질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관계, 전쟁 중에 있는 완전한 두 교전국 관계”라고 하였습니다. 남북관계가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만이 아니라,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라는 것, 바로 이것이 김정은 총비서의 정세관입니다.

지금까지 남북관계는 국가 대 국가의 적대관계가 아니라 민족 내부의 적대관계로 인식해왔는데, 김정은 총비서는 이번에 그런 기존 인식을 폐기하고 적대적인 두 국가관계로 규정하였습니다. 남북관계를 적대적인 두 국가관계로 규정하면, 1민족 1국가의 원칙 위에 성립된 연방제 통일정책의 존립근거가 사라집니다. 다시 말해서, 김정은 총비서의 적대적 두 국가론은 연방제 통일정책을 더 이상 추진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김정은 총비서의 시각에서 보면, 연방제 통일정책을 더 이상 추진할 수 없게 된 정세인식에 기초해 적대적 두 국가론이 성립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김정은 총비서는 이번 시정연설에서 남북관계가 적대적인 두 국가관계로 변화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밝혔습니다. 연설 원문을 인용하면, 북측은 오랜 기간 남측 역대 정권들을 “동족이고, 동포라는 관점에서 대범한 포옹력과 꾸준한 인내력, 성의 있는 노력을 기울이며... 조국통일의 대의를 허심탄회하게 논하기도 하였”으나 남측 역대 정권들은 “‘정권붕괴’와 ‘흡수통일’을 꿈꾸면서 우리 공화국과의 전면대결을 국책으로 하고 있고, 대결광증이 나날이 패악해지고 오만무례해”졌기 때문에 남북관계가 적대적인 두 국가관계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역대 정권들 중에서 남북관계를 가장 많이 개선하였다고 하는 문재인 정권마저도 북측 정권을 붕괴시키고 흡수통일하려는 대북정책을 폐기하지 않고 되레 더 강화했습니다. 문재인 정권은 김정은 총비서와 북측 수뇌부를 무력으로 제거하려는 참수작전부대를 2017년 12월 1일 창설했습니다. 문재인 당시 대통령은 참수작전부대를 창설해놓고 2018년 1월 10일 첫 신년사에서 “한반도에 평화의 촛불을 켜겠다”고 말했습니다.

김정은 총비서와 북측 수뇌부를 무력으로 제거하려는 참수작전을 은밀히 준비하면서, 그 무슨 ‘평화의 촛불’을 켜겠다고 했고, 남북정상회담장에 나가 김정은 총비서와 악수를 했으니, 그처럼 뻔뻔스러운 행동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문재인 정권은 미국의 요구에 따라 참수작전부대를 창설했습니다. 문재인 정권은 미국의 대북정책을 추종하기 때문에 참수작전부대를 창설하라는 미국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고 그대로 실행했습니다. 이런 사정은 남북관계가 파탄으로 귀결된 근본원인이 한국 역대 정권들의 대미 추종에 있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우리는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된 이후 오늘까지 70년 동안 6.25전쟁의 교전이 잠정적으로 중지된 정전상태에 있는 것으로 인식해왔는데, 김정은 총비서는 이번 시정연설에서 그런 기존 인식을 폐기하고 오늘의 남북관계를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로 규정하였습니다. 남북관계를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로 규정한 것은, 이 땅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기정사실화한 것입니다. 전쟁의 임박성과 불가피성을 감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지금 윤석열 정권은 김정은 총비서와 북측 수뇌부를 제거하려는 참수작전 준비를 문재인 정권보다 더욱 본격화하고 있으므로, 그에 대응해서 북측도 윤석열 대통령과 남측 수뇌부를 제거하려는 ‘대한민국 점령작전 준비’를 본격화하고 있는 것이죠. 한미연합군의 참수작전 준비는 전쟁의 임박성과 불가피성을 유발한 결정적인 원인입니다.

□ 북측이 2021년 제8차 당대회를 통해 당규약을 개정한 바 있습니다. 주요 내용 중의 하나가 ‘민족해방민주주의’ 노선의 폐기였는데, 당시 이를 두고 남측에서 북측의 ‘남조선 혁명론 폐기’, ‘적화통일 폐기’ 나아가 ‘두 개 조선 인정’, ‘조국통일 포기, 평화공존 모색’이라는 평가가 난무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지금 북측의 대남노선 변화가 당시 당규약 개정과 무슨 연관이 있었을까요?

■ 2021년 1월 초에 진행된 조선로동당 제8차 당대회에서 당규약을 개정하면서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의 과업을 수행”한다는 문장이 “전국적 범위에서 사회의 자주적이며 민주주의적인 발전을 실현”한다는 문장으로 바뀌었습니다.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이라는 용어는 삭제되었지만, 남측 사회의 자주적 발전은 민족해방혁명과 일맥상통하고, 남측 사회의 민주주의적인 발전을 민주주의혁명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므로 표현만 달라졌을 뿐 내용은 바뀌지 않았죠.

지난해 12월 26일부터 30일까지 당중앙위원회 본부에서 진행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9차 전원회의 전경. 김정은 총비서는 당대회 총화보고에서 남북관계는 ‘적대적 두 국가관계’로 고착되었으며, 흡수통일을 국책으로 정한 ‘대한민국’과는 통일이 성사될 수 없다고 하면서 남북관계와 통일정책에 대한 입장을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노동신문 갈무리]
지난해 12월 26일부터 30일까지 당중앙위원회 본부에서 진행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9차 전원회의 전경. 김정은 총비서는 당대회 총화보고에서 남북관계는 ‘적대적 두 국가관계’로 고착되었으며, 흡수통일을 국책으로 정한 ‘대한민국’과는 통일이 성사될 수 없다고 하면서 남북관계와 통일정책에 대한 입장을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노동신문 갈무리]
또한 제8차 당대회에서 당규약을 개정하면서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원칙에서 조국을 통일”한다는 문장이 “민족자주의 기치, 민족대단결의 기치를 높이 들고 조국의 평화통일을 앞당긴다”는 문장으로 바뀌었습니다. 조국통일의 3대 원칙인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원칙이라는 명시적 표현 대신에 민족자주의 기치, 민족대단결의 기치를 높이 들고 조국의 평화통일을 앞당긴다는 새로운 표현을 사용했으므로, 표현만 바뀌었지 내용은 바뀌지 않았죠. 그러므로 2021년 1월 당규약 개정에서는 대남정책의 근본적 변화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대남정책의 근본적 변화를 예고하는 징후는 김정은 총비서의 제8차 당대회 개회사 인사말에서 나타났습니다. 김정은 총비서는 남측 동포들에게 보내는 인사를 생략하고, 북측 인민들과 해외동포들에게만 인사를 보낸 것입니다. 당시 김정은 총비서는 대남정책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첫 조짐은 김여정 부부장의 2023년 7월 10일자 담화에서의 《대한민국》 표기”

□ 그렇다면 북측에서 이러한 대남 노선의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한 계기나 또는 그럴 만한 조짐이 있었는가요?

■ 정책 변화는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나는 것이 아니에요. 북측의 대남 정책은 언제 변화되었는가? 변화의 시점을 외부에 밝히지 않았기에 모르겠지만, 변화의 조짐은 나타났어요. 2023년 7월 10일 김여정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이 담화를 발표했는데, 거기서 사상 처음으로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사용했어요.

□ 맞아요. 기억이 납니다.

■ 그땐 몰랐어요. ‘대한민국’ 국호를 왜 갑자기 썼는지 알 수 없었지요.

□ 당시 대한민국 국호에 부호를 붙였어요.

■ 이중꺽쇠괄호(《》)이지요. 《대한민국》이라고 표기했어요. 대한민국 국호에 이중꺽쇠괄호를 한 것은, 북에서는 그런 용어를 사용하지 않지만 외부에서 쓰는 용어를 그대로 인용한 것으로 이해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이중꺽쇠괄호를 쓴다는 것은 대한민국을 국가로 인정하지는 않지만 대남 담화에서는 인용부호를 붙여서 국호를 사용한 것으로 해석되었어요. 그런데 얼마 뒤에 이중꺽쇠괄호마저 없어졌어요.

□ 그러니까 지난 연말 전원회의 이전에 없어졌다는 말이지요.

■ 그렇지요. 2023년 12월 17일 국방성 대변인 담화에서 처음으로 이중꺽쇠괄호 없이 대한민국 국호를 썼는데, 당시에는 저는 이런 변화현상이 무엇을 뜻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어요. 이렇게 보면, 김여정 부부장이 2023년 7월 10일 대남 담화에서 처음으로 이중꺽쇠괄호를 붙인 대한민국 국호를 쓰기 전에 이미 북측 내부에서 대남정책 변화가 진행되고 있었다고 추정됩니다.

□ 그렇게 봐야겠군요.

■ 저는 김여정 부부장이 김정은 총비서의 대변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대한민국 국호를 처음으로 사용하는 대남정책 변화 징후가 그의 대남 담화에서 처음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대남정책은 북측 최고영도자가 직접 지도합니다. 그러므로 김여정 부부장의 대남 담화는 중요한 계기마다 김정은 총비서의 의사를 직접 대변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 김여정 부부장이 총비서의 전권을 받아서 의사를 직접 대변한다는 것이군요.

■ 2023년 9월 26일 평양에서 진행된 최고인민회의에서 김정은 총비서가 연설했는데, 그 연설에서 대남 정책의 변화를 예고하는 징후가 또 나타났지요. 김정은 총비서는 연설에서 대미 관계와 대외 관계에 대해서는 언급했는데 대남 관계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 맞습니다. 기억이 납니다. 북측은 총화보고 등을 하면 먼저 국내 문제를 보고하고 이어 대남 문제 그리고 대미 문제 순으로 언급하지요.

■ 그렇죠. 이제까지 그런 순서로 언급하였는데 2023년 9월 최고인민회의 연설에서 대남관계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어요. 저도 당시에는 그 의미를 알지 못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것은 대남정책의 변화를 예고하는 징후였지요. 2023년 12월 27일, 그러니까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 둘째 날이죠. 김정은 총비서는 그날 사업총화 보고에서 남북관계를 적대적인 두 국가관계로 규정했고, 적대국가인 대한민국을 평정하겠다고 언급하였습니다.

□ 점령, 편입하겠다고 했지요.

■ 김정은 총비서는 2023년 12월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편입’이라는 말까지 사용하지는 않았어요. 2024년 1월 15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편입’이란 말을 처음 썼고 ‘수복’이라는 말도 처음 썼어요. 점령, 평정, 수복, 편입이라는 4개 단어를 모두 썼습니다. 작년에는 ‘평정’이라는 단어만 썼습니다. 2023년 12월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김정은 총비서는 북측이 추진해온 평화통일이 실현 불가능하다, 그래서 평화통일 정책을 포기한다는 내용을 언급했어요. 그런데 올해 시정연설에서는 그 문제를 더 명시적으로 언급하였습니다.

□ 그러한 평화통일 포기를 두고서 남측에서는 그러면 북측이 무력통일을 하려는 게 아니냐는 얘기도 나오고 있어요.

■ 우리가 그 문제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하는데, 남측에서는 북측이 그 동안 평화통일을 추구해왔지만, 이제는 평화통일을 실현할 수 없게 됐다는 냉철한 현실 인식을 가지고 평화통일 정책을 폐기하고 무력통일 정책으로 전환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 북측에서 평화통일 얘기를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했으니까 남측에서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요.

“그간 통일운동을 해온 남측이나 해외측 활동가들이 혼란스러운 건 당연”

■ 북측에서는 오래전부터 2개의 전략 목표를 추구해왔어요. 평화통일과 무력통일 2개의 전략 목표를 추구해왔는데, 그 동안 무력통일 정책을 공개적으로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남측에서 잘 모르고 있었던 것이죠. 북측은 평화통일 정책과 무력통일 정책을 동시에 추진해왔고, 실제로는 무력통일 정책에 더 비중을 두고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이것은 자료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객관적 사실입니다.

한호석 소장과의 인터뷰는 미국 뉴욕 맨해튼에 있는 한 호텔의 카페에서 진행됐다. [사진-통일뉴스 임영태 기획위원]
한호석 소장과의 인터뷰는 미국 뉴욕 맨해튼에 있는 한 호텔의 카페에서 진행됐다. [사진-통일뉴스 임영태 기획위원]
김정은 총비서의 이번 중대 발언은 최근에 이르러 평화통일 정책을 폐기하고, 무력통일 정책으로 전환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런 것이 아니에요. 김정은 총비서는 이전에도 ‘조국통일대전’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습니다. 군사 부문을 시찰하면서 또 남북관계가 긴장 상태에 빠졌을 때 인민군 장병들에게 ‘조국통일대전’을 명시적으로 언급한 적이 여러 차례 있었지요. 통일대전이라는 말과 무력통일이라는 말은 동의어입니다. 같은 뜻이죠.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무력통일이라는 용어를 썼고, 김정은 총비서는 통일대전이라는 용어를 썼어요.

그런데 지금 사정은 전혀 달라요. 통일대전을 하려는 게 아니고, 대한민국을 점령, 편입하려는 거예요. 조국통일대전과 대한민국 점령, 편입은 완전히 다른 개념입니다. 조국통일대전은 북측 영토인 남반부를 무력으로 ‘해방’하고, 전민족회의를 소집하고, 거기서 남, 북, 해외 대표자들이 통일의 절차, 방법, 일정을 합의해서 연방제 통일국가를 건설하려는 것이에요. 이게 통일대전이란 말이에요.

그런데 그렇게 하려면 인민군이 남측을 무력으로 ‘해방’했을 때, 통일을 지향하는 남측의 진보정치세력이 적극 호응을 해줘야 해요. 그래야 전민족회의가 성립되지요.

□ 그렇죠. 남쪽에도 주체가 있어야 하니까요.

■ 그런 맥락을 이해하면, 이전에 북측에서 말한 조국통일대전은 연방제 통일을 폐기한 것이 아니었어요. 만일 그들이 조국통일대전에서 승리하면, 남측의 종미우익세력이 제거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남측에서 통일을 지향하는 세력들, 진보세력들이 새로운 지역정부를 수립해서 북측 지역정부와 손잡고 연방국가를 건설한다는 게 북측의 시나리오였으므로, 연방제 통일과 통일대전은 상호 모순되는 게 아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런 시나리오가 아니에요. 대한민국을 점령, 평정, 수복하고, 공화국 영토로 편입시키겠다는 거예요. 그런 점에서 근본적이고 급격한 정책변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조국통일운동을 해왔던 남측이나 해외측 활동가들이 혼란스러운 건 당연한 일입니다.

□ 지금 남측의 통일운동가들이 혼란스러워하고 있지요.

■ 대한민국을 점령, 평정, 수복, 편입한다는 말은 남측의 진보세력이 ‘해방지역’에서 새로운 지역정부를 수립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없어요. 그것은 북측이 ‘점령지역’에서 군정을 실시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어요. 원래 ‘해방지역’에서는 자체적으로 지역정부가 수립되지만, 점령지역에서는 군정이 실시되는 법이지요. 군정이라고 해도, 남측의 진보세력이 참여하는 민정부서가 군정 내부에 설치될 수는 있겠죠.

그런데 북측에서 왜 이런 근본적인 정책변화가 일어났느냐 하면, 연방제 통일을 실현할 수 있는 진보세력이 남측에 없기 때문이죠. ‘없다’는 말은 어폐가 있는데, 연방제 통일을 지지하는 세력이 남측에 있기는 있는데 힘이 미약해서 그들이 집권할 수 없고, 설령 어떤 ‘기적’이 일어나 그들이 집권하더라도 미국과 종미우익세력에 의해 전복될 수밖에 없어요.

지금 남측의 진보당은 연방제 통일을 실현할 새로운 정부를 수립할만한 대중적 지지기반과 정치역량을 갖지 못했어요. 대중들 속에서 진보당의 존재감을 느낄 수 없어요. 진보당의 집권전망은 불투명합니다. 이것은 연방제 통일이 실현할 수 없게 되었음을 말해줍니다.

□ 현실적으로 남측의 정치 상황이 아주 어렵다고 봐야죠. 일부에서는 10년, 20년 가도 장담을 못한다고 하지요. 그렇다면 북측이 그런 식으로 남쪽에 대한 상황을 일단 다 파악했다는 것이네요.

■ 북측 시각에서 보면, 연방제 통일의 상대가 남측에 없는데 어떻게 연방제 통일을 실현할 수 있겠어요. 그래서 두 적대국가라고 규정했는데, 왜 두 적대국가라고 규정했는지 이것도 이해가 잘 안 되잖아요. 지난 시기에 그러했던 것처럼 두 적대국가로 규정하지 말고 그냥 ‘남반부’ 혹은 ‘남조선’이라고 해도, 북측이 남측을 점령할 수 있을 텐데, 왜 남측을 굳이 적대국가로 규정해놓고 점령하려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시정연설에서 핵심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남쪽 국경선을 긋는 문제”

김정은 총비서의 이번 시정연설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남쪽 국경선을 긋는 문제를 검토하고, 최고인민회의 차기 회의에서 헌법적으로 확정하겠다는 것이에요. 국경선을 확정하기 위한 최고인민회의 차기 회의는 머지않아 열릴 겁니다. 헌법을 개정해서 영토 조항을 신설하려는 것이죠. 김정은 총비서는 이번 시정연설에서 다른 나라 헌법의 영토 조항이 어떻게 돼 있는지 검토했다고 했어요. 북측이 헌법에 영토 조항을 신설하고 군사분계선을 국경선으로 바꾸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 남측의 학자나 전문가들도 그 점을 지적하고 있어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월 15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적대적 두 국가관계’로 고착된 남북관계에 대한 규정을 헌법에 반영해야 한다며, 근본적인 대남 노선의 전환 의지를 밝혔다. [사진-노동신문 갈무리]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월 15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적대적 두 국가관계’로 고착된 남북관계에 대한 규정을 헌법에 반영해야 한다며, 근본적인 대남 노선의 전환 의지를 밝혔다. [사진-노동신문 갈무리]
■ 북측이 군사분계선을 국경선으로 바꾸면, 서해 해상 국경선에서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어요. 왜냐하면 북측의 서해 국경선은 남측의 ‘북방한계선’과 겹치기 때문이죠. ‘북방한계선’은 미국이 6.25전쟁 직후에 북측의 대남공격을 억제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남측의 대북공격을 억제하려는 목적으로, 일방적으로 그어놓고, 상당 기간 외부에 발표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므로 국제법적 근거를 전혀 갖지 못합니다. 북측으로서는 그런 ‘북방한계선’을 지킬 의무가 없을 뿐 아니라, 그 선 자체를 인정하지 않아요.

그러므로 북측 시각에서 보면, ‘북방한계선’을 무력으로 고수하려는 남측의 행동은 북측의 서해 국경선을 침범하는 것으로 됩니다. 김정은 총비서가 이번 시정연설에서 ‘북방한계선’을 절대로 허용할 수 없다고 언급한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군사분계선이나 ‘북방한계선’을 넘어가는 월선행동과 국경선을 넘어가는 영토침범행동은 완전히, 법적으로 다른 거예요. 어느 나라가 다른 나라의 영토를 침범하면, 침범을 당한 나라는 자위권 차원에서 무조건 방어권을 행사해야 합니다. 영토침범에 대응해 무력을 행사하는 것은 국제법상 합법적인 행동입니다.

□ 북측에서 시정연설이 나오자 미국의 학자들 사이에서도 한반도의 현 상황이 1950년 6.25전쟁 이래 전쟁 위험성이 가장 높다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최근 미국의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 지금 그 문제와 관련해서 미국의 전문가들은 둘로 갈라졌어요. 한쪽은 남북관계가 매우 악화되어 전쟁으로 가고 있다고 말하고, 다른 한쪽은 남북관계에서 국지적 무력충돌은 일어날 수 있지만, 전쟁은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국지적 무력충돌이 일어나면 연평도 포격전처럼 몇 시간 안에 끝날 것으로 예상하는 것은 오산입니다. 연평도 포격전은 ‘북방한계선’을 사이에 두고 무력충돌을 벌인 것이어서 금방 끝났지만, 앞으로 일어날 무력충돌은 영토 침범 문제를 두고 벌어질 것이므로 전쟁으로 확대되는 것이 불가피합니다.

□ 향후 한반도 상황을 예고하듯이 연초에 서해에서 남북 사이에 포사격이 있었지요?

■ 남측이 ‘북방한계선’을 고수하고 있는 서해 5도 수역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무시무시한 ‘화약고’입니다. 김정은 총비서는 이번 시정연설에서 “대한민국이 우리의 영토, 영공, 영해를 0.001mm라도 침범한다면 그것은 곧 전쟁도발로 간주될 것”이라고 분명히 밝혔어요. 북측 최고인민회의 차기 회의에서 영토 조항을 신설해 군사분계선을 국경선으로 바꾸면, 남측이 고수하는 ‘북방한계선’은 북측 영토를 1~2km 침범하는 것으로 됩니다. 다시 말해서, 무시무시한 ‘화약고’에서 남측이 북측에 전쟁을 도발하는 것으로 되는 것이죠.

□ 그렇다면 남측 정부도 어떻게 해야 할지 대응을 준비해야 할 텐데요.

■ 윤석열 정부는 대응할 수 없게 돼버렸어요. 윤석열 정부가 ‘북방한계선’을 포기하고 뒤로 물러서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죠. 윤석열 정부는 북측에서 전쟁도발로 간주하게 될 매우 위험한 길을 따라 그냥 가는 수밖에 없어요. 상황은 아주 심각합니다.

□ 그렇다면 남북 사이에 충돌이 일어날 것이고, 국지전이 전면전으로 갈 수 있다는 얘기이네요.

■ 그렇죠. 무시무시한 ‘화약고’에서 무력충돌이 일어나는 것은 시간문제인데, 국지적 무력충돌이 일어나면 급속히 확전될 가능성은 100%입니다.

□ 지금 남북 사이에 그걸 제어할 수 있는 장치가 없잖아요. 핫라인도 없고.

■ 남북통신연락선이 전부 끊어졌으니까 확전을 막을 최소한의 장치도 없어요. 그래서 올해의 군사상황이 극도로 위험하다고 말하는 것이에요.

□ 북쪽의 동향이 그렇다면, 남쪽에서는 정부나 아니면 민간이나 전쟁을 막아야겠지요. 지금 ‘전쟁은 막아야 한다’는 기본 인식은 다 돼 있는 거니까요. 남쪽에서 정부가 하지 않으면 민간이라도 그런 움직임을 보여야 할 것 같은데 말이죠.

■ 시기를 놓쳤어요. 윤석열 정부는 전쟁위험을 해결할 의지도 능력도 없고...

“그간 남북합의를 무효화한 이유는 연방제 실현이 불가능해졌다는 판단 때문”

□ 대담이 무겁게 흘렀네요. 이번에 북측은 7.4 남북공동성명에서 합의한 조국통일3대원칙인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을 폐지한다, 그런 다음에 조국통일3대헌장기념탑도 철거한다고 했어요.

조국통일3대원칙이나 3대헌장기념탑은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부터 이어져 온 건데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그것을 폐지하거나 철거하는 것은 북쪽 입장을 다 바꾸는 것인데, ‘유훈통치’도 그만두는 것이고...

■ 핵심적인 내용은 ‘선대 수령들의 조국통일유훈을 더 이상 관철하지 않는다’는 것이에요. ‘더 이상 관철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겠습니다.

□ 충분히 그런 얘기를 들을 수 있다고 봅니다. 어쨌든 조국통일 유훈을 관철하지 못할 정도의 상황이라는 건데, 그렇다면 북측에서는 그것을 감내하겠다는 건가요? 아니면 다른 뜻이 있는 건가요?

무거운 내용의 대담 분위기에서 가끔 벗어나 한 소장은 시종일관 여유를 잃지 않았다. [사진-통일뉴스 임영태 기획위원]
무거운 내용의 대담 분위기에서 가끔 벗어나 한 소장은 시종일관 여유를 잃지 않았다. [사진-통일뉴스 임영태 기획위원]
■ 다른 뜻은 없어요. 문자 그대로 이해할 수밖에 없는데. 북측이 연방제 통일방안을 실현될 수 없게 되었다는 자체적 판단에 따라, 지난 시기에 남북이 합의했던 모든 합의를 무효화시킨 것이에요.

□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우리 민족제일주의’를 강조했었는데,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우리 국가제일주의’를 강조하고 있어요. 제가 가끔 범민련 남측본부의 민족학교에 가서 민족 문제에 대해 강의합니다. 김남식 선생이나 정수일 선생의 민족론에 입각해 강의를 하지요. ‘김정은 시대’ 들어와서 국가 10대 상징물 등을 만들며 ‘우리 국가제일주의’를 강조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민족 문제를 버린 것은 아니라고 말해 왔는데, 이번에 시정연설을 보고는 ‘이제 달리 봐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 민족 문제에 대한 북측의 이해는 ‘주체의 민족관’에 집약돼 있습니다. 주체의 민족관은 주체사상의 구성부분입니다. ‘주체의 민족관’에 의하면, 민족을 형성하는 징표는 핏줄, 언어, 문화, 지역의 공통성으로 해명됩니다. 이 네 가지 요소를 전부 갖추어야 민족의 실체가 완성되는 것인데, 우리는 5천 년 역사 속에서 핏줄의 공통성, 언어의 공통성, 문화의 공통성, 지역의 공통성을 오랜 기간 점진적으로 형성해오면서 단일민족으로 발전돼 왔어요. 그러므로 북측에서 말하는 ‘주체의 민족관’이라는 견지에서 보면, 남북관계가 두 적대적인 국가로 규정되었다고 해서 단일민족이 둘로 갈라진 것은 아닙니다.

□ 두 국가로 분리되었지만, 민족이 둘로 갈라진 것은 아니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요?

■ 이 땅에 두 국가가 성립되었다고 해서 민족이 둘로 갈라질 수는 없어요. 고대 삼국시대에 고구려, 백제, 신라가 존립했었지만, 당시 아직 형성단계에 있었던 우리 민족이 셋으로 갈라진 것은 아니었어요. 그 후 약 2,000년 동안 민족성이 점차적으로 공고해지면서 단일민족으로 발전된 우리가 이제 와서 갑자기 두 민족으로 갈라질 수는 없어요.

□ 이번 일을 두고 일부에서 통일 이전의 동독과 서독 얘기를 하는데 제가 보기에 그건 아닌 것 같아요.

■ 서양에는 우리가 말하는 ‘민족’이라는 개념이 없어요. 우리가 말하는 민족이라는 개념과 서양에서 말하는 민족국가(nation)라는 개념은 완전히 다르죠. 민족이라는 말은 서양말로 직역할 수가 없어요. 기록을 보면, 지난 시기 동독 측에서 도이췰란드 민족은 두 개의 민족으로 갈라졌다고 했어요.

□ 사회주의 민족과 자본주의 민족이라고 했던 것 같아요.

■ 그 나라 사람들이 사용한 개념을 우리쪽에서 번역하면서 ‘민족’이라는 말로 번역했기 때문에, 혼동이 생겼는데, 엄밀하게 말하면 도이췰란드 민족이 두 민족으로 갈라졌다는 뜻은 아니었어요. 사회주의 민족국가와 자본주의 민족국가로 갈라졌다고 번역했어야 합니다.

히틀러를 우두머리로 한 파시스트세력은 ‘내셔널 쏘시얼리즘(National Socialism)’을 주장했고, 이것을 우리쪽에서 ‘민족사회주의’라고 잘못 번역했는데, 민족국가사회주의라고 번역했어야 합니다. 영어권에서는 ‘내셔널 쏘시얼리즘’이라는 말을 줄여서 나찌즘(Nazism)이라고 했는데, 바로 그것 때문에 서양에서는 ‘민족’을 강조하면 나찌즘을 연상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도이췰란드의 민족국가주의자들은 아리아인이 다른 인종보다 우수하다는 인종우월주의와 아리아인의 ‘세계사적 사명’을 떠들어대면서 국내적으로는 악랄한 파쑈통치를 자행했고, 대외적으로는 극악한 침략전쟁에 광분했습니다. 반나찌투쟁을 벌였던 동독의 사회주의세력은 히틀러의 민족국가주의를 철저히 배격했습니다. 그래서 동독에서는 도이췰란드가 두 개의 민족국가로 분리되었다고 주장했던 것이죠. 도이췰란드 민족이 두 민족으로 분리되었다는 뜻이 아니었죠.

주목되는 것은, 요즈음 북측에서 ‘대한민국 족속’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사용하고 있어요. 김정은 총비서는 이번 시정연설에서 ‘대한민국 족속들은 동족의식이 거세당했다’고 지적했어요. 동족의식이 거세당하면 동족이라고 볼 수 없다는 뜻이에요.

그 다음에는, 우리가 같은 민족이지만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두 국가로 나눠졌다는 것이에요. 다시 말해서, 하나의 민족인데 대한민국이라는 자본주의 국가에서 사는 민족이 따로 있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사회주의 국가에서 사는 민족이 따로 있다는 뜻입니다. 민족이라는 존재 자체가 둘로 갈라진 게 아니고, 두 국가가 성립되면서 민족성이 둘로 갈라진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북측 시각에서 보면, 민족과 통일은 완전히 분리된 것”

□ 그렇다면 민족 문제가 여전히 살아있다고 볼 수 있고, 통일은 민족이 합쳐지는 문제니까 통일도 가능할 수 있다는 뜻으로도 들립니다.

■ 글쎄요. 민족이라는 존재가 둘로 갈라진 것이 아니라고 해서 통일이 실현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는 없겠지요. 북측 시각에서 보면, 민족과 통일은 완전히 분리되었어요. 만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대한민국 영토를 점령하고, 수복하고, 편입, 귀속시키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사라지는 것이죠.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 그리고 그것을 보위하는 군대와 경찰이 없어지는 거예요. 만일 대한민국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영토로 편입되면, 대한민국 영토에서 사는 국민들은 공화국 공민으로 편입되는 것인데, 그렇게 되는 것은 민족 문제라고 볼 수 없어요. 따라서 민족 문제와 국가 문제를 분리해서 생각해야 한다고 봅니다.

김정은 총비서의 이번 시정연설에서 주목되는 것은 이제는 “동족이라는 개념도 쓰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삼천리 금수강산’이라는 말도 쓰지 말고, ‘우리 민족끼리’라는 말도 쓰지 말고, 동족의식으로 오도될 수 있는 표현을 쓰면 안 된다는 것이지요. 대한민국을 동족이라고 오인할 수 있는 개념을 폐기한다는 뜻이죠.

"급변하는 정세에 주체적으로,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게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도 며칠 전에 통일학연구소의 명칭을 정세연구소로 바꿨습니다." [사진-통일뉴스 임영태 기획위원]
"급변하는 정세에 주체적으로,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게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도 며칠 전에 통일학연구소의 명칭을 정세연구소로 바꿨습니다." [사진-통일뉴스 임영태 기획위원]
지금까지는 ‘우리는 한 민족이다. 한 민족이니까 당연히 우리는 한 나라에서 살아야 하고, 통일을 해야 한다’고 말했어요. 통일의 당위성, 통일의 근거는 동족의식에 바탕을 둔 것이었는데, 통일을 실현할 수 없게 되었으므로 통일을 실현하려던 지난 시기에 쓰던 낡은 개념들은 필요가 없어진 거예요. 평화통일이 불가능해졌으므로, 그 근거가 되는 동족의식을 강조할 필요도 없어진 거죠.

남측의 역대 정부들은 민족을 중시하지 않았어요. 북측을 마치 다른 나라처럼 대했죠. ‘우리는 한 민족이고 한 국가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통일되어야 한다’는 인식을 국민들에게 심어주지 않았어요. 그들은 남과 북의 민족성을 외면하고 이민족과의 동맹, 한미동맹에 집착했습니다.

□ 일반 국민들은 여론조사에서 ‘왜 통일해야 하냐’ 하고 물으면 ‘같은 민족이니까’라고 답하는데, 정부는 민족을 중시하지 않았고, 심지어 진보적인 학자들조차 ‘탈민족’을 주장했지요.

■ 남측에서는 북측을 ‘북한’이라고 부릅니다. ‘북한’이라는 말은 대한민국 북부 지역이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북측이 자기 나라의 일부인데도 마치 북측을 다른 나라인 것처럼 생각하는 모순을 범했어요. 남측에서는 북측을 다른 나라처럼 대했을 뿐만 아니라, 적대적인 대북관을 국민들에게 주입해 왔어요.

그런 냉혹한 현실 속에서 조국통일운동세력은 ‘우리는 한 민족’이라는 동족의식을 강조해 왔고 그에 기초한 조국통일의 당위성과 통일국가 건설의 역사적 필연성을 강조해 왔어요. 그런데 남측 정부는 조국통일운동을 탄압해 왔고, 이제는 북측에서도 통일정책이 폐기되었어요. 그러면 남측의 조국통일운동세력은 이제 누구를 상대로 통일운동을 해야 하나요? 통일운동이 설 자리가 없어요. 그렇지 않은가요?

□ 참 난감하네요.

통일학연구소의 명칭을 ‘정세연구소’로 바꾸다

■ 그동안 조국통일운동에 헌신해 왔던 활동가들과 진보적 대중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느냐 하는 진로문제를 숙고해야 할 것으로 봅니다. 남측과 해외의 진보세력은 자주·민주·통일 3대 강령을 실현하기 위해 투쟁해왔는데, 지금은 제3강령인 통일 강령이 폐기됐어요. 2대 강령만 남았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민족자주 강령과 민주주의 강령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에 힘을 더욱 집중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 그래서 그런가요. 남측의 통일운동 단체들 사이에서 조용한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통일’, ‘민족’, ‘화해’ 그리고 ‘6.15’ 등의 단어가 들어간 명칭에 변화를 주거나, 단체의 지위와 역할도 바꾸려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 급변하는 정세에 주체적으로,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게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도 며칠 전에 통일학연구소의 명칭을 정세연구소로 바꿨습니다.

□ 앞에서 북측이 조만간 최고인민회의 회의를 개최해 헌법을 개정하면, 서해에서 남북 간 충돌이 불가피해지고, 국지전이 전면전으로 비화될 수 있다고 예상했습니다. 그래도 우리 시대에 ‘반전 평화’는 가치 있는 담론 중 하나이고, 전쟁은 막아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 극도의 전쟁위험이 이 땅에 조성된 근본원인은 한미연합군의 참수작전연습과 전략핵자산이 동원되는 미국의 핵전쟁연습에 있습니다. 바이든 정부와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에 ‘핵협의 그룹’을 만들어놓고 핵전쟁계획을 오는 6월까지 완성하고, 오는 8월에 예정된 ‘을지 자유의 방패’ 한미연합군사훈련 중에 사상 처음 합동핵전쟁연습을 감행하겠다고 얼마 전에 합의했어요.

병리학적 비유로 말하면, ‘핵협의 그룹’ 결성과 핵전쟁연습은 질병의 증세라고 볼 수 있는데, 질병의 증세만 제거하려고 생각할 게 아니라, 질병의 근원을 제거할 생각을 해야 합니다. 자주강령의 기치를 높이 들고 반미자주화 투쟁에 더욱 힘쓰면서, 민주강령의 기치를 높이 들고 윤석열 정부 퇴진 투쟁에 더욱 힘써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 이렇게 뉴욕에서 적지 않은 시간을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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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계환 기자 k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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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흐마토바 2024-02-03 04:00:28더보기
반민족 전쟁 세력 김정은 퇴진!
답글쓰기 8  2
신토일 2024-02-02 21:55:19더보기
자칭 진보라고 하는 "대한민국것"들은 조선에대해 왈가왈부하지말고 제앞가림부터 잘해라.
거대한 미군기지, 즉 괴뢰지역의 미군기지자치촌민주제에 진보랍시고 오지랍이 심하다.
"대한민국"은 평정당하고 군정을 받고 그 기간동안에토잔왜매국무리를 비롯한 각종정치깡패들을 처벌하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것이 유일한 희망이다.
답글 2 17  8
이동휘 2024-02-02 13:03:27더보기
북한(조선) 민주화를 통해 수령 직접 선거의 방식으로 개혁 성향의 새로운 정부가 구성되면 민족 화해•협력과 남측과의 합의를 통해 평화적인 연방제 통일이 가능합니다. 북측의 민주화 과정을 지원할 때야만 남측 사회에서의 선생님들 영향력도 증대될 것이고, 다른 좌익적 성격의 의제(토지 공개념, 전면적 복지 제도 등)도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답글쓰기 12  7
이동휘 2024-02-02 12:47:24더보기
한호석 선생님 말씀:
《지금 남측의 진보당은 연방제 통일을 실현할 새로운 정부를 수립할만한 대중적 지지기반과 정치역량을 갖지 못했어요. 대중들 속에서 진보당의 존재감을 느낄 수 없어요. 진보당의 집권전망은 불투명합니다.》
《 기치를 높이 들고 반미자주화 투쟁에 더욱 힘쓰면서, 민주강령의 기치를 높이 들고 윤석열 정부 퇴진 투쟁에 더욱 힘써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한호석 선생님도 참 답답합니다. 《진보당》이 집권할 가망이 없다고 말씀하셨으면서, 끝에서는 결국 계속 똑같은 방향으로 운동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네요. 오히려 좀 더 투쟁적으로, 半/非-합법적으로 가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90년대에도 실패했던 게 지금 되겠습니까? 지금 시점에서는 북한(조선) 민주화의 방향으로 가는 게 맞습니다.
답글 1 9  7
문경락 2024-02-02 12:23:09더보기
그런 냉혹한 현실 속에서 조국통일운동세력은 ‘우리는 한 민족’이라는 동족의식을 강조해 왔고 그에 기초한 조국통일의 당위성과 통일국가 건설의 역사적 필연성을 강조해 왔어요. 그런데 남측 정부는 조국통일운동을 탄압해 왔고, 이제는 북측에서도 통일정책이 폐기되었어요. 그러면 남측의 조국통일운동세력은 이제 누구를 상대로 통일운동을 해야 하나요? 통일운동이 설 자리가 없어요. 그렇지 않은가요?

출처 : 통일뉴스(http://www.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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