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오인동. [밖에서 그려보는 남북연합방 (1,2,3)] -
이것이 진짜 '통일대박론'이다
[밖에서 그려보는 남북연합방 (1)] - '연합방' 경제공동체의 청사진
2014년 8월 15일 오마이뉴스
오 인동 / 6.15미국위 공동위원장
오인동(재미동포 정형외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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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그려보는 남북연합방 <글 싣는 순서>
1. '연합방' 경제공동체의 청사진
2. 민족사 최고의 '부강 번영
3. 미국의 '선물', 겨레의 핵
4. 북미 아니고 남북평화체제로
5. 겨레의 핵우산 함께 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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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과 북, 북과 남이 경제공동체를 구성한다면 파급효과는 어떻게 될까. ⓒ 오마이뉴스
2015년이면 해방과 분단 70년이 된다. 분단 종식이 최고의 목표여야 할 나의 모국에 실질적인 통일의 미래상을 펴놓고 이를 실행에 옮기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북에 가보면 인민들은 통일의 소망을 입에 달고 살고, 부유하다는 남에서는 통일을 하면 경제적으로 더 어려워진다며 주춤하는 모습이다. '어려워진다'니, 상식에도 어긋나는 이야기이기에 국내외 통일·경제전문가들의 연구업적을 섭렵해 봤다. 그리고 통일하면 남북의 민생경제가 크게 향상되는 것을 확인했다.
그래서 나는 2012년부터 남북이 함께 이루는 '경제 대박'과 '평화체제 구축방안'을 발표하고 남과 북을 방문해 이런 제안들을 보여왔다. 나아가 남북평화체제의 걸림돌이라는 북핵 문제의 해결 방안도 제시해 봤다. 현재 남과 북의 역량과 주변국의 정치·경제·군사 정세를 봤을 때 남북경제공동체를 운영하면 민족사 최고의 부강 번영으로 세계 5~7대국 반열에 오를 수 있는 전망에 대해 강연도 해왔다.
2013년에는 이런 제안들을 담아 <밖에서 그려보는 통일의 꿈 - 남북연합방>을 출간하기도 했다. 분단과 전쟁·정전의 역사와 시대를 인식하고 있는 분들의 공감은 컸다. 그러나 세상은 넓고 찬란한 통일의 미래상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2014년 초 남측 박근혜 대통령이 '통일 대박'이라는 말로 통일담론이 활발해졌다. 그러나 구체적 방안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미국을 45년 살고 있는 동포 정형외과의사다. 1992년 재미한인의사회 학술교류 방문단으로 처음 북에 다녀왔다. 그 뒤 전공인 인공관절 치환수술을 평양의학대학병원 의사들에게 전수해 왔다(관련 서적 : <평양에 두고 온 수술가방> 의사 오인동의 북한 방문기, 창비, 2010). 고향인 남녘과 타향인 북녘을 드나들며 분단 조국의 양측이 안고 있는 문제를 현지에서 보며 통일에 대해서 고민하게 됐다. 그래서 6·15해외측위원으로 활동도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우리 겨레의 일에 깊이 관여하고 있는 미국을 미국 안에서, 또 북과 남에서도 봐왔다.
남과 북이 안고 있는 문제
남과 북의 현실을 살펴보면 경제강국임을 자부하는 자본주의 남에서는 실업·양극화·가계부채 등 민생복지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 한편, 3차 핵시험으로 자위력에 자신을 갖게 된 사회주의 북은 이제 경제 건설로 인민들의 생활 향상에 주력하고 있다. 남과 북이 동시에 고민하고 있는 '민생경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모국 밖에서 그려본 경제공동체 청사진을 살펴보자.
우선 우리 겨레에게는 분단 이래 남북이 한 번도 함께 써보지 못한 '기본 자산'이 있다. 토지, 자연자원, 자본, 기술과 인력이 바로 그것이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이 자산을 활용해 경제공동체 운영을 10년 정도 하면 현재 남녘 1인당 소득 2만4000달러는 약 6만 달러가 되고, 남녘 국내총생산(GDP) 1조 달러도 시작 연도에 비해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난다. 남의 2%대 경제성장률은 10%대로 올라갈 수 있고 북의 경제성장률은 남보다 더 높은 수준에서 시작하게 된다. 그리하여 남의 실업 문제가 해결되며 민생 복지가 향상되고, 북의 인민 생활은 풍요로워진다.
6·15 남북공동선언에 '남의 연합제와 북의 낮은 단계 연방제'에 공통성이 있다고 한 대로 '남북/북남연합방'을 하자는 이야기다(관련 기사 : 경제성장 제자리 한국, 해법은 '평양'에 있다). 여기서 '연합방'이란 '연합'과 '연방'을 융합해 내가 새로 지어낸 용어다. 남측은 연합제, 북측은 연방제라 하지만, 남북 모두 영어로 콘페더레이션(Confederation)이라 쓰고 있다.
즉, 남과 북의 현 체제와 정부를 그대로 유지한 채 내가 제안한 통일의 첫 단계인 '연합방'을 합의해 평화를 추구하자는 것이다. 이는 새로운 게 아니다. 이미 남과 북이 해본 일이다. 남의 김대중-노무현 정부, 김정일 정부 10년(1998~2007)처럼 남북이 교류·협력왕래하던 시절로 돌아가면 된다. 그러나 다시는 되돌릴 수 없도록 '연합방체제'를 제도화해야 한다.
개성공단 확대 그리고 10·4 선언 이행
▲ 남북공동선언문 발표후 손 맞잡은 두 정상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난 2007년 10월 4일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남북공동선언문에 서명한 뒤 손을
맞잡아 들어 올리고 있다.
연합방 경제공동체의 시작은 개성공단의 확대에 이어 2007년 10·4선언에서 합의한 남북경제협력 사업들을 시작으로 전국 규모의 경제발전계획 수립이 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북녘 사회기본시설의 개선과 확충도 시작해야 한다. 현재 북의 인민 생활 소비품 대부분이 중국제 수입품이다. 북의 생산 활동 여건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북의 도로·철도·교량·항만·공항·전기·우편·방송통신·상하수도·도시가스·산림녹화 등 사회간접자본을 확충해 나가야 한다.
여기에는 큰 자본과 방대한 인력이 필요하다. 자본은 남이 투자하고 인력은 남과 북이 충당하면 된다. 그렇다면 연합방 경제공동체 운영 자본은 얼마나 필요한 걸까.
국내외 전문가들의 통일 비용 연구를 살펴 보니 각기 차이가 크지만 대략 연 1000억 달러 이하로 추산된다. 이 비용은 앞으로 얼마 뒤에 남이 북을 흡수통일 한 다음 10~20년 동안에 들어가는 비용을 추산한 것들이다. 이 자료들 중 남북의 고유한 여건을 고려해서 비용을 최소화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추정한 액수는 남측 국내총생산(GDP)의 6.8%, 즉 680억 달러(68조 원) 정도다.
흡수통일은 될 리도 없고, 또 돼서도 안 되지만, 만약 이것이 실현된다면 되레 남북이 함께 여러 어려움에 빠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단계적 통일 과정인 초기 '연합방 경제공동체' 운영에 드는 자본은 흡수통일 비용의 10% 이하일 것이다. 통일·경제에 관여한 관료나 경제전문가들에 의하면 남녘 정부 예산의 1.5%, 즉 근년의 예산 규모로는 50억 달러(5조 원) 정도의 자본을 필요로 하면서 본격적인 단계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연합방 경제공동체가 시작되면서 북의 기본시설을 확충하는 데 필요한 시설자재와 생활 소비품은 생산 여건이 잘 갖춰진 남녘에서 생산·조달한다. 이에 남의 5000만과 북의 2500만 인구를 합한 7500만 명 몫까지 생산해야 할 남녘에 수많은 일거리가 생긴다. 또한 전 국토에 기본시설을 확충하는 북에서는 훨씬 더 많은 일거리가 생긴다. 그렇게 되면 남녘의 실업자, 미취업·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다 고용하고도 남는다. 따라서 조달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통일에 드는 자본과 인력, 어떻게 마련할까
한국전쟁 뒤 남과 북에, 세계 어느 나라보다 과도하게 쏠려 있는 비생산적 소모 인력은 무엇일까. 바로 군대다. 남에 69만, 북에 117만 합해서 186만 명이 국방에 종사하고 있다. 3억 인구의 미국은 142만, 14억 인구의 중국은 230만, 1억3000만 인구의 일본은 23만의 병력을 갖고 있다. 이들과 비교해봐도 남북은 너무나 많은 인력을 국방에 쓰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남과 북 그리고 북과 남이 '연합방 평화체제'에 합의할 경우 병력을 각기 15만~20만 수준으로 줄이는 것을 제안한다. '남북/북남 연합방군' 병력이 35만 명 정도라면 보통 국가의 인구대비 병력 비율인 0.5%가 된다. 그렇게 한다면 전역 장병을 산업인력으로 전환해 일자리를 충당할 수 있다.
이렇게 된다면 병역의무제는 모병제로 바뀔 수밖에 없다. 이로써 군대는 소수정예로 발전하게 되고, 우대 직업이 된다. 이는 북에서도 마찬가지다. 남과 북의 징병제는 20~25세 청년들의 생산적 사회진출 연령을 지연 시키고 부모 세대의 노후대책에도 부담을 주고 있다.
모병제가 되면 청춘들이 학업과 다양한 문화·예체능·기술 분야에서 중단 없이 연마를 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인재 육성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청년들의 산업전선 참여는 남에서는 생산력을 높이고 북에서는 사회기본시설의 확충으로 이어지면서 차차 생산활동도 활발해지는 효과를 낳는다. 이런 사업이 진행되면 경제적 추가 이득마저도 창출할 수 있다.
연합방 경제공동체가 주는 두 가지 이득
▲ 대형 한반도기. 사진은 지난 2005년 8월 4일 열린 동아시아축구대회 남-북 축구
국가대표 경기 당시 모습.
첫째, 남에서 전역한 50만 명이 새 직업에 종사하게 되면 GDP의 2%, 즉 200억 달러(20조 원)의 국가실질소득이 증가하게 된다. 남녘의 실업, 미취업·비정규직 노동자들로 인해 감소하는 국가소득이 새로 취업한 근로인력의 생산성으로 반등한다. 북의 90만 병력의 산업인력화도 북 경제에 커다란 소득 증가를 안겨줄 것이다.
둘째, 남북/북남 연합방 경제공동체 운영은 나라와 나라 사이가 아니고 민족 내부의 경제공동체 교역이다. 즉 1992년 남북 기본합의서에 있는 '통일을 지향해 가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민족내부의 특수관계'다. 때문에 관세가 없다. 이런 이점을 살리기 위해서는 기본시설 확충에 필요한 시설자재나 생활용품 가운데 적어도 80% 이상은 남녘에서 생산한 물품을 써야 한다. 그러면 최소 통일투자재원으로 잡은 680억 달러(남 GDP의 6.8%)의 80%, 540억 달러(남 GDP의 5.4%)에 달하는 실물생산량 증가가 발생한다. 이것은 경제공동체 운영을 해가면서 발생하는 내수 증가에 따라 차차 생기는 추가소득이다.
차차 생기는 추가소득 540억 달러와 병력의 산업화에서 발생하는 200억 달러 국가실질소득 증가만 합쳐도 740억 달러, 즉 남 GDP의 7.4%가 된다. 이는 연합방 경제공동체 투자자본인 680억 달러(GDP의 6.8%)보다 크다. 이것이 누적되면 통일비용이 차차 없어지는 셈이다.
이러한 경제 이득 7.4%에 남의 현재 경제성장률 2.8%를 더하면 10% 이상의 경제성장을 하게 된다. 물론 이 민족 내부거래는 국제기구와의 조율이 필요하다. 이것은 가능한 일이다. 독일은 1972년 동서독기본조약에 따라 내부교역을 인정받았다. 현재 남녘의 분단비용(남 GDP의 4.5%)에 기회비용까지 더하면 순수 통일비용은 남 GDP의 1%(100억 달러) 정도에 그칠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남북의 병력축소는 국방비 감축 효과도 낳는다. 통일투자재원 680억 달러 중 일부는 남측 국방비 300억 달러(30조 원, 남 GDP의 3%)을 1~1.5%대로 줄여서 생기는 150~200억 달러(15조~20조 원)로 확충한다. 일본은 2차세계대전 패전 뒤 GDP의 1%에 달하는 국방비로 세계 제2위의 경제대국이 됐다. 통일 독일은 GDP의 1.3%를 차지하는 국방비로 유럽 제1의 부국이 됐다. 아르헨티나, 멕시코 등 여러 나라의 국방비는 1% 이하다. 반면 미국은 GDP의 4.2%를, 중국은 GDP의 1.3%를 국방비로 지출해 대조적인 모습을 보인다. 이렇게 했을 경우 북의 국방비도 똑같이 줄여야 한다.
통일투자재원 680억 달러(68조 원)는 국방비 축소로 생기는 150~200억 달러(15조~20조 원), 장기저리 국제차관 100억 달러(10조 원), 통일 국채 300억 달러(30조 원)어치 발행, 세금 100억 달러(10조 원), 총 650~700억 달러(65조~70조 원)로 구성한다.
이만한 투자 자본에 따라 10여 년 뒤 남의 GDP와 1인당 국민소득은 두 배 이상이 된다. 북의 GDP가 남 GDP의 반 정도가 된다면 남북/북남 연합방의 GDP는 3조 달러(3000조 원) 정도가 될 것이다. 세계5대 부국 중 미국의 GDP는 16조 달러, 중국은 9조 달러, 일본은 5.5조 달러, 독인은 3.4조 달러, 프랑스는 2.6조 달러다. 연합방 조국은 작은 나라가 아니게 된다. 이야말로 가슴이 설레는 '남북연합방'의 청사진 아닌가.
* 참고 연구 자료의 저자들 : 정세현, 문정인·이상근, 이종석, 신창민, 이상만, 홍사덕, 홍성국, 조동호, 정갑영, 김영윤, 최성근, 권구훈·골드만 삭스, 조세연구소, 안예홍·문성민, 최준옥, 김유찬, 현대경제연구원, 피. 벡(P. Beck), 삼성경제연구소, 통일부용역보고서-2011, C. Wolf, 최경수, 곽동기, 황선·김성훈·백남주, 이재정, 임동원, 백낙청.
[주장] 밖에서 그려보는 남북연합방 (3) - 미국의 '선물', 겨레의 핵
2014년 8월 29일 오마이뉴스
오 인동 / 6.15미국위 공동위원장
오인동(재미동포 정형외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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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그려보는 남북연합방 <글 싣는 순서>
1. '연합방' 경제공동체의 청사진
2. 민족사 최고의 '부강 번영
3. 미국의 '선물', 겨레의 핵
4. 북미 아니고 남북평화체제로
5. 겨레의 핵우산 함께 쓰고
남북연합방 경제공동체를 시작하면 우리 겨레가 민족사 최고의 부강 번영을 누릴 수 있다는 점을 살펴봤다(지난 기사 : 활력 잃은 남한 경제, 대안은 '북방경제'다). 이렇게 찬란한 통일의 이정표가 눈앞에 있는데도 이 길로 달려가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핵실험일까, 핵시험일까
실험은 이론이나 가설의 검증을 위한 것이고, 시험은 검증된 이론을 익힌 정도를 확인하는 것이다. 핵무기의 근거가 되는 이론은 이미 검증된 것이므로, 북이 시행하는 것은 이 이론을 실제화할 수 있는 능력을 확인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핵시험'이 더 적합한 용어 사용이다. - 기자말
정전한 지 61년이 된 조국에 평화협정은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 20년 동안에는 그 이유로 '북핵'이 거론됐다. 북에 핵이 없었으면 평화체제가 이뤄졌을 것이란 말일까. 북핵이 없던 40년(1953~1993) 동안과 그 뒤 북이 첫 핵시험을 한 2006년(1994~2006)까지, 왜 평화체제는 달성되지 못했는가. 북미평화협정이 이뤄졌더라면 북은 핵을 개발할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북과 미국 사이의 평화협정 논란과 북의 핵개발 배경의 역사를 살펴보면 문제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문제 해결 방안에도 눈 뜨게 될 것이다.
북핵 개발의 역사

▲ 지난 2010년 10월 10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조선노동당 창건 65주년
기념 열병식에 등장한 북한 중거리미사일(IRBM) '무수단'.
ⓒ 연합뉴스
1953년 정전협정에는 3개월 안에 참전국 회의를 열어 한반도에서 외국군대의 철수와 평화정착을 논의하기로 돼 있었다. 그런데 2개월 뒤 남한과 미국은 협정을 위반하며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고 미군의 영구주둔을 규정했다. 소련군은 1949년에 철수했고, 북은 1958년에 중국군을 완전히 철수 시켰다. 반면, 미국은 남한에 6만 미군과 핵무기를 배치하고 북을 위협했다. 명백한 정전협정 위반이었다.
해방 15주년을 맞던 1960년, 북은 남한에 외국 군대 철수와 평화협정을 제안했다. 그 뒤 북은 이를 되풀이해서 제안했으나 남한은 응하지 않았다. 따라서 북은 자위를 위해 1963년에 소련에 핵개발 연구지원을 요청했으나 거절 당하고, 1964년에는 중국에게도 거절당했다. 1965년에야 소련으로부터 평화적 핵발전을 위한 연구 원자로를 지원받았다.
남한이 1974년 북한에 불가침 조약을 제안하자, 북은 군사지휘권이 없어 지난 14년 동안 평화협정 제안에 응하지 못한 남한이 불가침은 어떻게 담보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리고 남한의 군사실권을 행사하는 미국에 '북미 평화협정'을 제안했다.
1975년 유엔총회는 유엔군사령부의 해체와 주한미군 철수를 결의했다. 그러나 이는 이뤄지지 않았다. 1976년부터는 한미합동 대북전쟁연습(TS)도 시작됐다. 북미평화협정 제안에 미국은 1978년 남북이 먼저 대화한 뒤 남·북·미 3자회담을 제안했다. 1984년 북은 남과 불가침 조약, 미국과의 평화협정을 역제안했다. 하지만 미국은 응하지 않았다.
서명한 지 2주도 안 돼 실효성 없어진 북미 기본합의
그렇게 세월은 흘러갔고 1990년 세계의 공산권이 붕괴되자 남북은 1991년 유엔에 각기 따로 가입했다. 북은 유엔회원국 앞에서 주한유엔군사령부 해체, 미군 철수, 북미평화협정을 제기했다. 세계 정세의 대변화로 남북은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를 채택했고, 같은 해 12월 미국은 남한에서 핵무기를 철거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핵잠수함·핵항공모함·핵폭격기는 때마다 남한에 드나들었고, 핵우산을 제공하는 3만 미군이 지금도 주둔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북은 동유럽 국가들과의 교역이 차단되고 계속되는 미국의 정치·경제봉쇄와 제재로 어려움에 빠지기 시작했다.
북이 전력 생산을 위해 핵발전 중수로를 가동하자 1993년 미국은 핵무기개발 의혹을 제기하며 특별사찰을 요구했다. 이 부당한 요구에 북은 NPT(핵확산금지조약) 탈퇴 의사를 선언했다. 이때 남한의 김영삼 대통령은 "핵 가진 자와는 악수할 수 없다"라면서 문제 해결에 스스로 참여하지 않았다. 이렇게 핵문제는 북과 미국 사이의 과제로 돼 갔다.
지난 20년 동안 북미평화협정 체결을 무시하고 기피해 온 미국이 북의 핵개발 방지를 위해 1994년 제네바에서 북과 협정의 성격이라 볼 수도 없는 '기본합의(Agreed Framework)'라는 것을 했다. 이 합의의 내용은 북이 중수로를 동결하면 10년 안에 100만kW 경수로 2기 건설, 경제 제재 완화하고 국교 정상화한다는 것이었다. 경수로 건설 비용의 대부분은 남한의 부담이었다.
그러나 유럽 공산 국가들처럼 붕괴가 예상됐던 북이 김일성 주석 사망 뒤에도 흔들림이 없자 미국은 합의 사항 이행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의 보스워스(S. Bosworth) 총장은 이런 사실을 "기본합의는 서명한 지 2주일도 안 돼 정치적 고아가 됐다"(The Agreed Framework was a political orphan within 2 weeks after its signature)라고 평했다. 북은 미국에 합의 사항 이행을 촉구했지만 지지부진하자 1998년 태평양을 넘는 장거리 미사일 발사로 무력 시위를 했다.
한편,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 뒤 남북교류가 활발해지자 일본 고이즈미 총리는 2002년 9월 중순 북 김정일 위원장과 정상회담에서 수교를 위한 평양선언을 했다. 북을 '악의 축'으로 지명하고 핵 선제공격 대상에 올려놓은 미국 부시 정부가 이에 놀라 10월 초 켈리(J. Kelly) 국무부 차관보를 평양에 보내 북한에 고농축우라늄(HEU) 의혹을 제기하고 돌아와 일방적으로 '북미 기본합의'를 파기했다.
중수로 동결 8년 동안 경수로 건설은 30%도 진척되지 않았고, 관계 정상화에 한 걸음도 내딛지 못했다. 이를 보고 북미 기본합의 협상팀에 참여했던 윗(J. Witt)은 "북미 합의의 기념물은 콘크리트로 메워진 두 개의 거대한 구덩이뿐이었다"라고 말했다.
대북 위협에서 시작돼 제재로 끝나는 역사

▲ 북한은 지난 2013년 2월 12일 실시된 핵시험을 1차 대응 조치라며 미국이
적대적으로 정세를 복잡하게 하면 2, 3차 대응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북은 2003년 초 핵확산방지조약(NPT)에서 탈퇴했다. 그해 3월, 미국은 핵 없는 이라크의 핵개발을 저지한다면서 침공을 감행했다. 이를 본 북은 핵무장만이 민족과 조국을 지킬 수 있다고 확신했던 모양이다. 극심한 경제난으로 '고난의 행군' 시기를 겪은 북은 남한의 군사비와 경쟁할 수 없게 돼 적은 비용으로 최대의 안보효과를 마련해 줄 핵미사일 개발로 자위력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정책 변화로 절약된 돈은 인민생활 향상과 경제건설에 쓰겠다고도 했다.
북을 견제하기 위해 부시 정부는 2003년 중국이 주도하는 6자회담을 출범시켰다. 북은 핵무기를 보유했다고 말했으나 객관적으로 증명해 보이지도 않았다. 6자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모색할 2005년 9·19공동성명이 나왔다. 그러나 바로 다음날 미국은 돈 세탁 의혹을 제기하며 마카오은행(BDA) 북한 계좌를 동결시켰다.
이 무고한 조치에 북은 2006년 7월 4일 미국의 독립기념일에 장거리미사일(인공위성)을 발사하고 10월 한글날에는 겨레의 제1차 핵시험으로 맞섰다. 이와 같이 북이 핵미사일을 개발하게 된 이유는 이재봉 원광대 교수의 '법정 증언'에도 기술돼 있다(관련기사 보기). 한편, 마카오 정부 주문으로 북한 은행 계좌를 조사한 미국 회계회사 'E&Y'는 부정행위가 없었다고 발표했고 계좌는 풀렸다.
이와 같이 북의 핵미사일은 평화협정을 기피하는 미국을 협상에 끌어들이는 수단이었지만, 미국은 벼랑끝 전술(Brinkmanship)이라는 별명도 붙였다. 그리하여 2007년 2·13과 10·3 원자로 불능화 합의가 이뤄졌고, 2008년 북은 중수로 냉각탑 공개 폭파 시위를 하기도 했다. 미국 CSIS전략연구소 태평양포럼 코사(R.Cossa) 회장은 북한이 2·13 합의사항을 위배한 것은 없다고도 했다.
한편, 남한에서는 2007년 10·4 남북평화번영합의를 한 노무현 정부에 이어 2008년에 집권한 이명박 정부가 비핵·개방·3000 대북정책을 내세우고 6·15, 10·4 남북공동선언을 무효화하기 시작했다. 한편 집권하면 북한과 직접 대화하겠다던 오바마 정부가 2009년에 출범했다. 하지만, 남북교역중단과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 문제로 북한의 붕괴를 예상한 이명박 정부의 반대를 핑계로 미국은 '전략적 인내' 정책으로 돌아섰다.
이에 북은 미국의 대북 적대 정책 포기와 평화협정 체결을 압박하기 위해 2009년 4월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고 5월에는 제2차 핵시험 시위를 했다. 그리고 "6자회담은 영원히 끝났다"라고 선언했다. 미국은 유엔안보리를 통해 제2차 대북제재 결의를 채택하고 북한의 붕괴를 추구했다.
이것이 지난 60년 동안 북·미 사이에 되풀이된 역사(미국의 핵 위협→북의 평화협정 제안→불응→미사일 발사→핵개발 의혹→북미 기본합의→미국의 파기→북의 핵시험→유엔안보리 제재)의 요약이다(<통일의 날이 참다운 광복의 날이다> 밖에서 본 한반도, 오인동, 솔문, 2010).
'핵개발을 저지하겠다'는 미국
그러면 평화협정과 핵개발 문제로 합의사항을 위반한 쪽은 누구인가. 미국은 북한, 북은 미국이라고 하고 남한 정부나 수구 언론들은 미국의 주장을 복창해 왔다. 북한도 사소한 합의 사항들을 어긴 것들이 있다. 그러나 약육강식이 국제관계 역학의 상식이라는 말대로 미국이 먼저 또 결정적으로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은 확연하다.
심지어 부시 정부의 라이스 국무장관은 미국이 "축구경기 도중 골대를 옮긴다"(Moving the goal posts in the middle of a football game)라는 말도 했다. 즉, 합의 내용 바꾸기를 한다는 것이다. 앞서 말한 미국의 여러 관료나 한반도 전문가들은 결국 북한이 기본 합의 사항을 안 지킨 게 없다고 한 셈이다.
이렇게 미국 인사들조차 합의를 지키지 않은 바른 말을 하는데도 남한 관료와 대통령의 "북한의 도발→제재→타협→보상의 나쁜 버릇을 더 이상 묵과 할 수 없다"라는 말을 해왔다. 미국 위정자들은 어떻게 들을까. 이에 더해 오바마 국가안보회의 베이더 국장의 저서 <오바마와 중국의 부상>에서 "(미국은) 궁극적으로는 북한 정권 붕괴와 남한의 흡수통일을 목적으로 하고, 단기·중기적으로는 근본적 해결 아닌 협상과 대화를 통해 지연 시키는 '전략적 인내'였다"라고 했다.
그러면 이들이 반미주의자이고 종북세력인 걸까. 이렇게 미국 정부에 반대되는 주장을 관료나 전문가들이 말할 수 있는 것이 미국 언론의 자유이고 큰 나라 미국의 여유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양심적 애국인사들로 인해 미국은 정의 수호와 자체 정화 노력도 하지만, 세계 패권 정책은 계속되고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북에 핵이 없던 첫 40년 동안 미국은 북의 요구를 무시·기피해 왔고 그 뒤 핵 의혹만 있었던 12년 동안에도 이런저런 핑계로 평화협정을 거부해온 사실을 돌이켜 보면 의심되는 바가 있다. 즉, 핵개발을 저지하겠다는 미국 주장의 진정성에 믿음이 가지 않는다. 왜냐면 미국이 합의 사항 이행을 지연 시키거나 '골대를 옮겨' 다시 협상해 합의하고 또 파기하는 동안에 북의 핵미사일 능력은 점차 높아져만 갔기 때문이다.
핵,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지난 2013년 3월 29일 오전 0시 30분 전략
미사일 부대의 화력타격 임무에 관한 작전회의를 긴급 소집하고 있는 모습.
처음부터 의도적이 아니었다고 해도 결과적으로는 미국이 북한에 핵미사일 개발을 은근히 강요해 온 셈이 아닌가. 그 결과 2012년 말, 북은 ICBM급 미사일로 실용인공위성을 궤도에 진입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러자 유엔안보리 국가들은 정의든 불의든 간에 자신들의 국익에 따라 패권 미국의 대북제재결의를 추종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막바지에 내몰린 북은 2013년 2월 소형화·경량화·다종화했다는 제3차 핵시험을 했다. 그러자 3월에 미국은 대북 한미합동전쟁연습에 스텔스 폭격기를 동원, 핵탄 투하 연습까지 했다. 이에 북은 미국에 '핵 대 핵 대결'과 '정전협정 백지화'를 선언했다.
이와 같이 미국 국익에 따라 동북아 패권을 유지하느라 북미 평화협정 체결을 처음엔 무시하고 기피했고 그 뒤엔 이런저런 핑계로 거부해오다 보니 미국은 결국 우리 겨레의 한 쪽에 핵미사일을 선물한 셈이 된 것 아닌가. 그러나 미국의 위협으로부터 나라와 민족을 지키기 위해 강요된 선택으로 개발했다는 북핵은, 이제 지역평화를 위협하니 폐기돼야 한다고 미국은 주장한다. 즉, 미국의 핵은 평화를, 북핵은 평화의 위협이라는 모순된 논리를 정당화하는 게 패권국의 역설적 특권이 아닐까.
이렇게 지난 60년 동안 아무 성과 없이 북·미(남) 사이에 논란만 돼온 평화협정 거부와 핵미사일 개발의 역사를 제대로 인식했다면, 조국의 북에 있는 핵을 어떻게 하는 것이 겨레의 평화통일과 지역평화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인지 남과 북은 심각하게 성찰하고 논의해봐야 할 것이다. 해외동포의 눈에 미국이 준 선물인 북핵은 이미 우리 겨레의 핵이다. 겨레 핵의 앞날은 오직 우리 겨레가 결정하기에 달려 있지 않은가?
[밖에서 그려보는 남북연합방 (1)] - '연합방' 경제공동체의 청사진
2014년 8월 15일 오마이뉴스
오 인동 / 6.15미국위 공동위원장
오인동(재미동포 정형외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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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그려보는 남북연합방 <글 싣는 순서>
1. '연합방' 경제공동체의 청사진
2. 민족사 최고의 '부강 번영
3. 미국의 '선물', 겨레의 핵
4. 북미 아니고 남북평화체제로
5. 겨레의 핵우산 함께 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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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과 북, 북과 남이 경제공동체를 구성한다면 파급효과는 어떻게 될까. ⓒ 오마이뉴스
2015년이면 해방과 분단 70년이 된다. 분단 종식이 최고의 목표여야 할 나의 모국에 실질적인 통일의 미래상을 펴놓고 이를 실행에 옮기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북에 가보면 인민들은 통일의 소망을 입에 달고 살고, 부유하다는 남에서는 통일을 하면 경제적으로 더 어려워진다며 주춤하는 모습이다. '어려워진다'니, 상식에도 어긋나는 이야기이기에 국내외 통일·경제전문가들의 연구업적을 섭렵해 봤다. 그리고 통일하면 남북의 민생경제가 크게 향상되는 것을 확인했다.
그래서 나는 2012년부터 남북이 함께 이루는 '경제 대박'과 '평화체제 구축방안'을 발표하고 남과 북을 방문해 이런 제안들을 보여왔다. 나아가 남북평화체제의 걸림돌이라는 북핵 문제의 해결 방안도 제시해 봤다. 현재 남과 북의 역량과 주변국의 정치·경제·군사 정세를 봤을 때 남북경제공동체를 운영하면 민족사 최고의 부강 번영으로 세계 5~7대국 반열에 오를 수 있는 전망에 대해 강연도 해왔다.
2013년에는 이런 제안들을 담아 <밖에서 그려보는 통일의 꿈 - 남북연합방>을 출간하기도 했다. 분단과 전쟁·정전의 역사와 시대를 인식하고 있는 분들의 공감은 컸다. 그러나 세상은 넓고 찬란한 통일의 미래상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2014년 초 남측 박근혜 대통령이 '통일 대박'이라는 말로 통일담론이 활발해졌다. 그러나 구체적 방안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미국을 45년 살고 있는 동포 정형외과의사다. 1992년 재미한인의사회 학술교류 방문단으로 처음 북에 다녀왔다. 그 뒤 전공인 인공관절 치환수술을 평양의학대학병원 의사들에게 전수해 왔다(관련 서적 : <평양에 두고 온 수술가방> 의사 오인동의 북한 방문기, 창비, 2010). 고향인 남녘과 타향인 북녘을 드나들며 분단 조국의 양측이 안고 있는 문제를 현지에서 보며 통일에 대해서 고민하게 됐다. 그래서 6·15해외측위원으로 활동도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우리 겨레의 일에 깊이 관여하고 있는 미국을 미국 안에서, 또 북과 남에서도 봐왔다.
남과 북이 안고 있는 문제
남과 북의 현실을 살펴보면 경제강국임을 자부하는 자본주의 남에서는 실업·양극화·가계부채 등 민생복지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 한편, 3차 핵시험으로 자위력에 자신을 갖게 된 사회주의 북은 이제 경제 건설로 인민들의 생활 향상에 주력하고 있다. 남과 북이 동시에 고민하고 있는 '민생경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모국 밖에서 그려본 경제공동체 청사진을 살펴보자.
우선 우리 겨레에게는 분단 이래 남북이 한 번도 함께 써보지 못한 '기본 자산'이 있다. 토지, 자연자원, 자본, 기술과 인력이 바로 그것이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이 자산을 활용해 경제공동체 운영을 10년 정도 하면 현재 남녘 1인당 소득 2만4000달러는 약 6만 달러가 되고, 남녘 국내총생산(GDP) 1조 달러도 시작 연도에 비해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난다. 남의 2%대 경제성장률은 10%대로 올라갈 수 있고 북의 경제성장률은 남보다 더 높은 수준에서 시작하게 된다. 그리하여 남의 실업 문제가 해결되며 민생 복지가 향상되고, 북의 인민 생활은 풍요로워진다.
6·15 남북공동선언에 '남의 연합제와 북의 낮은 단계 연방제'에 공통성이 있다고 한 대로 '남북/북남연합방'을 하자는 이야기다(관련 기사 : 경제성장 제자리 한국, 해법은 '평양'에 있다). 여기서 '연합방'이란 '연합'과 '연방'을 융합해 내가 새로 지어낸 용어다. 남측은 연합제, 북측은 연방제라 하지만, 남북 모두 영어로 콘페더레이션(Confederation)이라 쓰고 있다.
즉, 남과 북의 현 체제와 정부를 그대로 유지한 채 내가 제안한 통일의 첫 단계인 '연합방'을 합의해 평화를 추구하자는 것이다. 이는 새로운 게 아니다. 이미 남과 북이 해본 일이다. 남의 김대중-노무현 정부, 김정일 정부 10년(1998~2007)처럼 남북이 교류·협력왕래하던 시절로 돌아가면 된다. 그러나 다시는 되돌릴 수 없도록 '연합방체제'를 제도화해야 한다.
개성공단 확대 그리고 10·4 선언 이행
▲ 남북공동선언문 발표후 손 맞잡은 두 정상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난 2007년 10월 4일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남북공동선언문에 서명한 뒤 손을
맞잡아 들어 올리고 있다.
연합방 경제공동체의 시작은 개성공단의 확대에 이어 2007년 10·4선언에서 합의한 남북경제협력 사업들을 시작으로 전국 규모의 경제발전계획 수립이 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북녘 사회기본시설의 개선과 확충도 시작해야 한다. 현재 북의 인민 생활 소비품 대부분이 중국제 수입품이다. 북의 생산 활동 여건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북의 도로·철도·교량·항만·공항·전기·우편·방송통신·상하수도·도시가스·산림녹화 등 사회간접자본을 확충해 나가야 한다.
여기에는 큰 자본과 방대한 인력이 필요하다. 자본은 남이 투자하고 인력은 남과 북이 충당하면 된다. 그렇다면 연합방 경제공동체 운영 자본은 얼마나 필요한 걸까.
국내외 전문가들의 통일 비용 연구를 살펴 보니 각기 차이가 크지만 대략 연 1000억 달러 이하로 추산된다. 이 비용은 앞으로 얼마 뒤에 남이 북을 흡수통일 한 다음 10~20년 동안에 들어가는 비용을 추산한 것들이다. 이 자료들 중 남북의 고유한 여건을 고려해서 비용을 최소화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추정한 액수는 남측 국내총생산(GDP)의 6.8%, 즉 680억 달러(68조 원) 정도다.
흡수통일은 될 리도 없고, 또 돼서도 안 되지만, 만약 이것이 실현된다면 되레 남북이 함께 여러 어려움에 빠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단계적 통일 과정인 초기 '연합방 경제공동체' 운영에 드는 자본은 흡수통일 비용의 10% 이하일 것이다. 통일·경제에 관여한 관료나 경제전문가들에 의하면 남녘 정부 예산의 1.5%, 즉 근년의 예산 규모로는 50억 달러(5조 원) 정도의 자본을 필요로 하면서 본격적인 단계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연합방 경제공동체가 시작되면서 북의 기본시설을 확충하는 데 필요한 시설자재와 생활 소비품은 생산 여건이 잘 갖춰진 남녘에서 생산·조달한다. 이에 남의 5000만과 북의 2500만 인구를 합한 7500만 명 몫까지 생산해야 할 남녘에 수많은 일거리가 생긴다. 또한 전 국토에 기본시설을 확충하는 북에서는 훨씬 더 많은 일거리가 생긴다. 그렇게 되면 남녘의 실업자, 미취업·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다 고용하고도 남는다. 따라서 조달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통일에 드는 자본과 인력, 어떻게 마련할까
한국전쟁 뒤 남과 북에, 세계 어느 나라보다 과도하게 쏠려 있는 비생산적 소모 인력은 무엇일까. 바로 군대다. 남에 69만, 북에 117만 합해서 186만 명이 국방에 종사하고 있다. 3억 인구의 미국은 142만, 14억 인구의 중국은 230만, 1억3000만 인구의 일본은 23만의 병력을 갖고 있다. 이들과 비교해봐도 남북은 너무나 많은 인력을 국방에 쓰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남과 북 그리고 북과 남이 '연합방 평화체제'에 합의할 경우 병력을 각기 15만~20만 수준으로 줄이는 것을 제안한다. '남북/북남 연합방군' 병력이 35만 명 정도라면 보통 국가의 인구대비 병력 비율인 0.5%가 된다. 그렇게 한다면 전역 장병을 산업인력으로 전환해 일자리를 충당할 수 있다.
이렇게 된다면 병역의무제는 모병제로 바뀔 수밖에 없다. 이로써 군대는 소수정예로 발전하게 되고, 우대 직업이 된다. 이는 북에서도 마찬가지다. 남과 북의 징병제는 20~25세 청년들의 생산적 사회진출 연령을 지연 시키고 부모 세대의 노후대책에도 부담을 주고 있다.
모병제가 되면 청춘들이 학업과 다양한 문화·예체능·기술 분야에서 중단 없이 연마를 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인재 육성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청년들의 산업전선 참여는 남에서는 생산력을 높이고 북에서는 사회기본시설의 확충으로 이어지면서 차차 생산활동도 활발해지는 효과를 낳는다. 이런 사업이 진행되면 경제적 추가 이득마저도 창출할 수 있다.
연합방 경제공동체가 주는 두 가지 이득
▲ 대형 한반도기. 사진은 지난 2005년 8월 4일 열린 동아시아축구대회 남-북 축구
국가대표 경기 당시 모습.
첫째, 남에서 전역한 50만 명이 새 직업에 종사하게 되면 GDP의 2%, 즉 200억 달러(20조 원)의 국가실질소득이 증가하게 된다. 남녘의 실업, 미취업·비정규직 노동자들로 인해 감소하는 국가소득이 새로 취업한 근로인력의 생산성으로 반등한다. 북의 90만 병력의 산업인력화도 북 경제에 커다란 소득 증가를 안겨줄 것이다.
둘째, 남북/북남 연합방 경제공동체 운영은 나라와 나라 사이가 아니고 민족 내부의 경제공동체 교역이다. 즉 1992년 남북 기본합의서에 있는 '통일을 지향해 가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민족내부의 특수관계'다. 때문에 관세가 없다. 이런 이점을 살리기 위해서는 기본시설 확충에 필요한 시설자재나 생활용품 가운데 적어도 80% 이상은 남녘에서 생산한 물품을 써야 한다. 그러면 최소 통일투자재원으로 잡은 680억 달러(남 GDP의 6.8%)의 80%, 540억 달러(남 GDP의 5.4%)에 달하는 실물생산량 증가가 발생한다. 이것은 경제공동체 운영을 해가면서 발생하는 내수 증가에 따라 차차 생기는 추가소득이다.
차차 생기는 추가소득 540억 달러와 병력의 산업화에서 발생하는 200억 달러 국가실질소득 증가만 합쳐도 740억 달러, 즉 남 GDP의 7.4%가 된다. 이는 연합방 경제공동체 투자자본인 680억 달러(GDP의 6.8%)보다 크다. 이것이 누적되면 통일비용이 차차 없어지는 셈이다.
이러한 경제 이득 7.4%에 남의 현재 경제성장률 2.8%를 더하면 10% 이상의 경제성장을 하게 된다. 물론 이 민족 내부거래는 국제기구와의 조율이 필요하다. 이것은 가능한 일이다. 독일은 1972년 동서독기본조약에 따라 내부교역을 인정받았다. 현재 남녘의 분단비용(남 GDP의 4.5%)에 기회비용까지 더하면 순수 통일비용은 남 GDP의 1%(100억 달러) 정도에 그칠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남북의 병력축소는 국방비 감축 효과도 낳는다. 통일투자재원 680억 달러 중 일부는 남측 국방비 300억 달러(30조 원, 남 GDP의 3%)을 1~1.5%대로 줄여서 생기는 150~200억 달러(15조~20조 원)로 확충한다. 일본은 2차세계대전 패전 뒤 GDP의 1%에 달하는 국방비로 세계 제2위의 경제대국이 됐다. 통일 독일은 GDP의 1.3%를 차지하는 국방비로 유럽 제1의 부국이 됐다. 아르헨티나, 멕시코 등 여러 나라의 국방비는 1% 이하다. 반면 미국은 GDP의 4.2%를, 중국은 GDP의 1.3%를 국방비로 지출해 대조적인 모습을 보인다. 이렇게 했을 경우 북의 국방비도 똑같이 줄여야 한다.
통일투자재원 680억 달러(68조 원)는 국방비 축소로 생기는 150~200억 달러(15조~20조 원), 장기저리 국제차관 100억 달러(10조 원), 통일 국채 300억 달러(30조 원)어치 발행, 세금 100억 달러(10조 원), 총 650~700억 달러(65조~70조 원)로 구성한다.
이만한 투자 자본에 따라 10여 년 뒤 남의 GDP와 1인당 국민소득은 두 배 이상이 된다. 북의 GDP가 남 GDP의 반 정도가 된다면 남북/북남 연합방의 GDP는 3조 달러(3000조 원) 정도가 될 것이다. 세계5대 부국 중 미국의 GDP는 16조 달러, 중국은 9조 달러, 일본은 5.5조 달러, 독인은 3.4조 달러, 프랑스는 2.6조 달러다. 연합방 조국은 작은 나라가 아니게 된다. 이야말로 가슴이 설레는 '남북연합방'의 청사진 아닌가.
* 참고 연구 자료의 저자들 : 정세현, 문정인·이상근, 이종석, 신창민, 이상만, 홍사덕, 홍성국, 조동호, 정갑영, 김영윤, 최성근, 권구훈·골드만 삭스, 조세연구소, 안예홍·문성민, 최준옥, 김유찬, 현대경제연구원, 피. 벡(P. Beck), 삼성경제연구소, 통일부용역보고서-2011, C. Wolf, 최경수, 곽동기, 황선·김성훈·백남주, 이재정, 임동원, 백낙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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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활력 잃은 남한 경제, 대안은 '북방경제'다
[밖에서 그려보는 남북연합방 (2)] 민족사 최고의 '부강 번영'
2014년 8월 21일 오마이뉴스
밖에서 그려보는 남북연합방 <글 싣는 순서>
1. '연합방' 경제공동체의 청사진
2. 민족사 최고의 '부강 번영
3. 미국의 '선물', 겨레의 핵
4. 북미 아니고 남북평화체제로
5. 겨레의 핵우산 함께 쓰고
'통일 비용'이라고 하면 흔히 독일의 경우를 예로 든다. 경제 차이가 1대 3 정도이던 동·서독이 단번에 통일하면서 화폐를 일대일로 교환하고, 근로임금도 동일하게 지불해 막대한 재원이 들었다. 그럼에도 통일 독일은 유럽 제1의 부국이 됐다. 남과 북의 현 체제와 정부를 그대로 유지한 채 연합방을 시작으로 과정을 거쳐가는 남북의 경우에는 이런 부담이 없고 추가 이득도 생긴다.
첫째, 남북연합방 경제공동체 관리체계에서는 남북이 화폐를 교환할 이유도 없고, 남의 인력은 남에서, 북의 인력은 북에서 일하기 때문에 근로임금도 남은 남측, 북은 북측 기준에 따라 지급한다. 다만 생산성 효율을 높이기 위해 남북 전문인력의 교차는 있어야 한다.
둘째, 이러한 '남북연합방 경제공동체'의 7500만 인구는 노동력과 내수시장의 동시 확대로 인해 생산비 감소 이득도 볼 수 있다. 나아가 700만 재외동포를 포함한 8200만 인구는 '규모의 경제'(Economies of Scale) 효과도 누릴 수 있다. 이탈리아의 인구는 6100만 명, 영국은 6300만 명이니 남북연합방 조국은 6500만 인구의 프랑스보다 크고 8200만 인구의 독일과 비슷하게 된다.
셋째, 사회주의 북의 토지는 '국유'다. 그러므로 사회기본시설이나 상공업단지 건설에 토지 비용이 없다. 여기에 더해 북의 땅은 남보다 24% 더 크다. 그 땅에 남 인구 5000만의 절반 수준인 2500만 명이 살고 있다. 통일의 날은 이 겨레, 새 나라에 또 하나의 축복이다. 이러한 남북의 국토·인구·관리 체계의 여건도 연합방 우리 겨레가 획기적으로 성장·발전하는 바탕이 된다.
북의 자원이 선사할 세 가지 '좋은 일'

▲ 남과 북, 북과 남이 경제공동체를 구성한다면 파급효과는 어떻게 될까.
나아가 자연자원으로 눈을 돌려보면 또 세 가지 좋은 일이 더 생긴다.
첫째, 북의 지하자원은 남의 23배로 석탄·석회석·마그네사이트·철광석·우라늄·흑연·아연· 희토류·금 중 8개 광물의 매장량이 세계 10위권이다. 북의 지하자원 잠재가치는 수경 원 이상이라고 한다. 이 엄청난 자원을 남과 북의 동력과 기술합작으로 발굴·개발해 내수 시장에 쓰고, 수출도 한다.
예컨대 남의 150배 규모인 북의 철광석은 남의 세계 1위인 조선산업과 5위 자동차산업이 북과 합작하면 더 큰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사례 중 하나일 뿐이다. 배와 자동차의 주 자료인 철을 호주와 브라질에서 비싼 비용으로 수입해올 필요가 없다. 선진산업국들이 탐내는 내화 자재의 원료인 마그네사이트, 첨단산업의 필수 비타민이라는 희토류의 매장량은 4800만 톤으로 중국에 이어 세계 2위라고 한다. 조국강토의 값진 지하자원은 80%가 북녘에 있다. 40억~735억 배럴로 추정되는 북의 석유매장량은 세계 8위로 시추가 된다면 남과 북의 위상은 뒤바뀔 것이다.
둘째, 지상의 남북 천연자원의 연계 또한 관광 수익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백두산-묘향산-지리산-한라산의 연결과 관광시설의 확충도 커다란 상승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특히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의 공동개최로 남녘 용평스키장의 5배 규모인 북의 마식령 스키장- 금강산과 남의 설악산-대관령스키장을 연계하는 관광특수도 고려해볼 만하다.
셋째, 조국의 지리적 특성은 북 공업-남 농업의 분업과 협력 구조였다. 1990년대 중후반 극심한 식량난을 겪은 북의 식량작물 재배 면적이 남보다 훨씬 커진 것도 분단과 대결이 빚어낸 얄궂은 역전이다. 북의 2013년 작물생산량은 500여만 톤으로 수급균형에 아직도 30여만 톤 정도가 부족하다. 그런데 같은 해 남의 곡물생산량은 430여만 톤이었다. 남의 식량 자급률은 26%이고 북은 94%인데, 완전자급을 달성할 역설적 환경으로 변모하고 있다. 남의 논과 밭의 비율은 약 6대 4이고, 북은 3대 7이다. 이런 차이에 대한 상호보완은 통일 조국의 식량자급률을 크게 높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값지고 수려한 강토가 휴전선 철조망에 막혀 숨을 못 쉬고 있다. 따라서 남은 섬 아닌 섬이 됐다. 연합방 평화체제를 선포하고 철조망을 걷어내면 백두대간의 숨통이 트여 경제공동체의 활력이 유라시아 대륙경제영토로의 땅길·하늘길을 활짝 열어주게 된다.
통일 조국의 지경학적 이점
그래서인지 북에서는 김정일 위원장 시절부터 '자기 땅에 발을 붙이고 눈은 세계를 보자'고 했는데, 지난해 7월 개성공단 정상화 방안 회담 당시에도 이를 강조했다. 우리 조국반도는 대륙과 해양세력의 사이에 위치한 지정학적(Geopolitical) 이유로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불이익을 때때로 당해 왔다.
그러나 '고리(Corea) 연합방'(기자의 책 <Corea 꼬레아, Korea 코리아-서양인이 부른 우리나라 국호의 역사>에서 명명한 남북 연합방의 명칭) 조국은 더욱 치열해지는 21세기 경제시대에 여러 가지 지경학적(Geoeconomical) 이점을 제대로 활용하게 된다. 그렇게 하려면 남에서도 '눈 더 크게 뜨고 널리 멀리 보자'고 해야 한다. 어떤 지경학적 이점들이 있는지 살펴보자.
첫째, 부산항이나 나진·선봉항을 통해 일본과 남·북미주 해양권과 중국·러시아를 비롯한 40억 인구의 유라시아 대륙을 남북종단(TKR)-중국(TCR)-시베리아(TSR) 횡단철도로 연결하면 조국은 동서세계 물류의 길목이 된다. 조국에서 유럽대륙의 중심부 독일 함부르크까지의 육로운송은 15일, 수에즈 운하 거쳐 가는 해상운송은 45일이 걸린다. 이렇게 되면 운송비용이 크게 절약되기 때문에 연합방 조국은 물류의 중심이 된다. 이로 인해 동서교역은 확대돼 우리 겨레의 국제경쟁력을 강화시켜 준다. 연간 수천만 달러 규모의 통과비 수입도 안겨준다.
둘째, 시베리아 천연가스관을 북을 거쳐 남으로 연장하면 저렴한 운송비로 남에 에너지자원을 추가하게 된다.
셋째, 중국 동북3성 지역은 두만강 하구와 인근 나진·선봉항을 통해야 태평양 진출이 가능하다. 부동항을 갈구해온 러시아의 활로 또한 겨울에 얼지 않는 나진·선봉항 이용을 북이 허가해줘야 확보된다. '연합방 경제공동체'가 활용해야 할 또 하나의 지경학적 이점이다. 이미 중국과 러시아의 진출은 시작됐다. 남은 서둘러 중국·러시아 일변도 경제 지대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북 잠식하는 중국... 남녘은 '경제영토'를 잃고 있다

▲ 라진의 아름다운 해변가에 자리잡고 있는 오성급 중국 카지노 호텔
자, 이렇게 찬란한 연합방 경제체제의 청사진이 눈 앞에 있는데 언제부터 시작해야 할까? 한 마디로 '빠르면 빠를수록 유리'하고 '미루면 미룰수록 불리'하다는 것이 통일경제전문가들의 공통된 연구결과다. 남이 좀 더 부자가 된 뒤에 통일(연합방)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전혀 근거가 없다. 분단비용은 그대로 써서 없어지는 소모 비용이지만, 연합방을 하면 다음날부터 그 분단 비용이 그대로 이득 창출에 쓰이게 된다. 그리고 연합방의 이득은 민족만대 자자손손으로 이어지게 된다.
오늘날 세계 첨단 수준인 남의 반도체·전자전기·자동차·조선·석유화학산업과 북의 CNC정밀기계·핵·우주과학산업·지하자원의 비군사·평화적 상호보완은 통일 자주국가의 부강한 내일을 보장한다. '고리(Corea) 연합방 경제체제'의 청사진은 우리 민족사상 최고의 부강번영의 길을 열어준다.
'연합방'기를 거쳐 '연방기'로 가면서, 분별 없는 자유무역협정으로 그동안 잃어 버린 경제주권의 완전 회복은 우리가 누려야 할 추가 혜택이 된다. 남과 북은 풍요로운 생활수준·자주국방·평등외교·호혜적 국제경제질서를 구가하게 되는 참다운 광복의 날을 맞게 될 기회가 앞에 와 있음을 직시하고 어서 빨리 연합방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남북의 현실은 그러하지 못하다. 2010년 이명박 정부의 5·24 남북교역 중단 조치 이후 북의 경제상황은 더 어려워지지 않았다. 북은 중국과 러시아를 비롯한 여러 나라들과의 교역 증가로 인해 지난 2012, 2013년 연속 대외교역량 85억~87억 달러를 달성, 1990년 이래 최고를 기록했다.
중국은 두만강 접경 지역 개발을 위한 교통망 연결과 무산철광 개발에도 크게 투자하고 있다. 2014년에는 중국에 의해 압록강대교가 완공되고, 신의주-개성 사이의 고속도로와 철도 공사가 시작된다고 한다. 이러한 사회기본시설 확충이야말로 남의 재원과 유휴 상태에 있는 건설 역량을 이용해 북과 함께해야 할 사업이 아닌가. 이에 더해 러시아는 북의 채무 110억 달러를 탕감해 주면서 나진·선봉 자유무역지대에 북·러 경제협력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남은 현재 북뿐 아니라 동북아 경제 영토를 정신 없이 잃고 있다.
무역에 의존하는 경제 구조를 가진 남의 대 중국 수출 규모는 전체 규모의 28%를 차지한다. 여기에 아세안 국가에 대한 수출 규모 15%를 합하면 43%에 이른다. 이는 미국 10%, 일본 6%, 독일 2.5% 등 기타 유럽 국가들에 대한 수출 규모를 합한 것보다 더 크다.
그런데 중국은 남의 최대 수출 시장인 반면 남은 중국 수출 시장의 5% 이하다. 이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남의 국내총생산 대비 수출 비중은 57%인데, 이것은 OECD 국가 평균의 2배 수준이다(미국 14%, 일본 15%, 중국 31% 정도). 남한은 세계 제1의 외국인 투자비중 30%와 과도한 무역의존 경제로 임계점에 도달했다.
중국은 이미 남의 효자 수출품인 반도체·전자전기제품 제작기술을 따라잡았다. 이 분야 제품의 대 중국 수출이 몇 년 새 반으로 줄었고, 이 추세는 더 가속적으로 축소될 것이다. 남은 창의적 기술개발과 새로운 제작기반 마련으로 새 활로를 모색하지 않는다면 곧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다.
남이 택할 수 있는 돌파구, '북방경제'

▲ 개성공단에 머물고 있던 근로자들의 전원 철수가 예정됐었던 지난해 4월 29일
경기도 파주 경의선남북출입사무소 모습
당장 남이 택할 수 있는 돌파구는 북이고 북방경제다. 자연자원의 규모와 경제구조를 봤을 때 북은 남보다 훨씬 더 생산성이 큰 반쪽이다. 이렇게 거대한 가능성을 가진 북이 있다는 사실에 남북은 서로 감사해야 한다. 남북 경제공동체 운영은 남북의 인적·물적·과학적·자연적 자산을 활용해 민족사 최고의 부강번영을 이룰 수 있는 더없이 좋은 기회다.
남북 연합방 경제체제는 국제정치문제가 아니다. 민족 내부의 교역이다. 하지만 이것에도 확고한 합의나 선언이 있어야 할 것이다. 남북이 내부 교류·교역을 한다는데 누가 말리겠고 또 말릴 수 있겠는가. 그러나 자본주의의 섣부른 시도 같은 것은 지양해야 하고, 세계무역에 익숙한 남녘 기업들이 투자에 부담을 갖지 않을 조치도 고려돼야 할 것이다.
지난 6년은 단절됐지만, 이미 남의 김대중-노무현 정부, 북의 김정일 정부 시절 10년 동안 남 북 사이에 경제·사회·문화·예술·학술·스포츠 면에서의 교류·협력은 사실상의 통일(de facto unification) 상황을 누렸다. 남과 북의 주민들은 휴전선을 넘나들며 만나서 이야기하고 노래하고 춤을 추며 껴안았던 가슴 뭉클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6·15 공동선언은 분단 55년 만에 처음 해낸 일이라 남북이 서로 조심스러웠고 서툴러서 본때 있게 하지 못했다. 10·4 선언에 합의한 사항들은 아직 시작해 보지도 못한 채 6년이 지났다. 남북관계를 파탄 내고 남북경제 발전의 기회를 박탈한 작태가 남에서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이번에 하면 더 확실하게 더 잘할 수 있다. 우리 겨레, 더 크고 더 멋지게 다시 시작하자!
2014년 8월 21일 오마이뉴스
밖에서 그려보는 남북연합방 <글 싣는 순서>
1. '연합방' 경제공동체의 청사진
2. 민족사 최고의 '부강 번영
3. 미국의 '선물', 겨레의 핵
4. 북미 아니고 남북평화체제로
5. 겨레의 핵우산 함께 쓰고
'통일 비용'이라고 하면 흔히 독일의 경우를 예로 든다. 경제 차이가 1대 3 정도이던 동·서독이 단번에 통일하면서 화폐를 일대일로 교환하고, 근로임금도 동일하게 지불해 막대한 재원이 들었다. 그럼에도 통일 독일은 유럽 제1의 부국이 됐다. 남과 북의 현 체제와 정부를 그대로 유지한 채 연합방을 시작으로 과정을 거쳐가는 남북의 경우에는 이런 부담이 없고 추가 이득도 생긴다.
첫째, 남북연합방 경제공동체 관리체계에서는 남북이 화폐를 교환할 이유도 없고, 남의 인력은 남에서, 북의 인력은 북에서 일하기 때문에 근로임금도 남은 남측, 북은 북측 기준에 따라 지급한다. 다만 생산성 효율을 높이기 위해 남북 전문인력의 교차는 있어야 한다.
둘째, 이러한 '남북연합방 경제공동체'의 7500만 인구는 노동력과 내수시장의 동시 확대로 인해 생산비 감소 이득도 볼 수 있다. 나아가 700만 재외동포를 포함한 8200만 인구는 '규모의 경제'(Economies of Scale) 효과도 누릴 수 있다. 이탈리아의 인구는 6100만 명, 영국은 6300만 명이니 남북연합방 조국은 6500만 인구의 프랑스보다 크고 8200만 인구의 독일과 비슷하게 된다.
셋째, 사회주의 북의 토지는 '국유'다. 그러므로 사회기본시설이나 상공업단지 건설에 토지 비용이 없다. 여기에 더해 북의 땅은 남보다 24% 더 크다. 그 땅에 남 인구 5000만의 절반 수준인 2500만 명이 살고 있다. 통일의 날은 이 겨레, 새 나라에 또 하나의 축복이다. 이러한 남북의 국토·인구·관리 체계의 여건도 연합방 우리 겨레가 획기적으로 성장·발전하는 바탕이 된다.
북의 자원이 선사할 세 가지 '좋은 일'
▲ 남과 북, 북과 남이 경제공동체를 구성한다면 파급효과는 어떻게 될까.
나아가 자연자원으로 눈을 돌려보면 또 세 가지 좋은 일이 더 생긴다.
첫째, 북의 지하자원은 남의 23배로 석탄·석회석·마그네사이트·철광석·우라늄·흑연·아연· 희토류·금 중 8개 광물의 매장량이 세계 10위권이다. 북의 지하자원 잠재가치는 수경 원 이상이라고 한다. 이 엄청난 자원을 남과 북의 동력과 기술합작으로 발굴·개발해 내수 시장에 쓰고, 수출도 한다.
예컨대 남의 150배 규모인 북의 철광석은 남의 세계 1위인 조선산업과 5위 자동차산업이 북과 합작하면 더 큰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사례 중 하나일 뿐이다. 배와 자동차의 주 자료인 철을 호주와 브라질에서 비싼 비용으로 수입해올 필요가 없다. 선진산업국들이 탐내는 내화 자재의 원료인 마그네사이트, 첨단산업의 필수 비타민이라는 희토류의 매장량은 4800만 톤으로 중국에 이어 세계 2위라고 한다. 조국강토의 값진 지하자원은 80%가 북녘에 있다. 40억~735억 배럴로 추정되는 북의 석유매장량은 세계 8위로 시추가 된다면 남과 북의 위상은 뒤바뀔 것이다.
둘째, 지상의 남북 천연자원의 연계 또한 관광 수익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백두산-묘향산-지리산-한라산의 연결과 관광시설의 확충도 커다란 상승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특히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의 공동개최로 남녘 용평스키장의 5배 규모인 북의 마식령 스키장- 금강산과 남의 설악산-대관령스키장을 연계하는 관광특수도 고려해볼 만하다.
셋째, 조국의 지리적 특성은 북 공업-남 농업의 분업과 협력 구조였다. 1990년대 중후반 극심한 식량난을 겪은 북의 식량작물 재배 면적이 남보다 훨씬 커진 것도 분단과 대결이 빚어낸 얄궂은 역전이다. 북의 2013년 작물생산량은 500여만 톤으로 수급균형에 아직도 30여만 톤 정도가 부족하다. 그런데 같은 해 남의 곡물생산량은 430여만 톤이었다. 남의 식량 자급률은 26%이고 북은 94%인데, 완전자급을 달성할 역설적 환경으로 변모하고 있다. 남의 논과 밭의 비율은 약 6대 4이고, 북은 3대 7이다. 이런 차이에 대한 상호보완은 통일 조국의 식량자급률을 크게 높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값지고 수려한 강토가 휴전선 철조망에 막혀 숨을 못 쉬고 있다. 따라서 남은 섬 아닌 섬이 됐다. 연합방 평화체제를 선포하고 철조망을 걷어내면 백두대간의 숨통이 트여 경제공동체의 활력이 유라시아 대륙경제영토로의 땅길·하늘길을 활짝 열어주게 된다.
통일 조국의 지경학적 이점
그래서인지 북에서는 김정일 위원장 시절부터 '자기 땅에 발을 붙이고 눈은 세계를 보자'고 했는데, 지난해 7월 개성공단 정상화 방안 회담 당시에도 이를 강조했다. 우리 조국반도는 대륙과 해양세력의 사이에 위치한 지정학적(Geopolitical) 이유로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불이익을 때때로 당해 왔다.
그러나 '고리(Corea) 연합방'(기자의 책 <Corea 꼬레아, Korea 코리아-서양인이 부른 우리나라 국호의 역사>에서 명명한 남북 연합방의 명칭) 조국은 더욱 치열해지는 21세기 경제시대에 여러 가지 지경학적(Geoeconomical) 이점을 제대로 활용하게 된다. 그렇게 하려면 남에서도 '눈 더 크게 뜨고 널리 멀리 보자'고 해야 한다. 어떤 지경학적 이점들이 있는지 살펴보자.
첫째, 부산항이나 나진·선봉항을 통해 일본과 남·북미주 해양권과 중국·러시아를 비롯한 40억 인구의 유라시아 대륙을 남북종단(TKR)-중국(TCR)-시베리아(TSR) 횡단철도로 연결하면 조국은 동서세계 물류의 길목이 된다. 조국에서 유럽대륙의 중심부 독일 함부르크까지의 육로운송은 15일, 수에즈 운하 거쳐 가는 해상운송은 45일이 걸린다. 이렇게 되면 운송비용이 크게 절약되기 때문에 연합방 조국은 물류의 중심이 된다. 이로 인해 동서교역은 확대돼 우리 겨레의 국제경쟁력을 강화시켜 준다. 연간 수천만 달러 규모의 통과비 수입도 안겨준다.
둘째, 시베리아 천연가스관을 북을 거쳐 남으로 연장하면 저렴한 운송비로 남에 에너지자원을 추가하게 된다.
셋째, 중국 동북3성 지역은 두만강 하구와 인근 나진·선봉항을 통해야 태평양 진출이 가능하다. 부동항을 갈구해온 러시아의 활로 또한 겨울에 얼지 않는 나진·선봉항 이용을 북이 허가해줘야 확보된다. '연합방 경제공동체'가 활용해야 할 또 하나의 지경학적 이점이다. 이미 중국과 러시아의 진출은 시작됐다. 남은 서둘러 중국·러시아 일변도 경제 지대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북 잠식하는 중국... 남녘은 '경제영토'를 잃고 있다
▲ 라진의 아름다운 해변가에 자리잡고 있는 오성급 중국 카지노 호텔
자, 이렇게 찬란한 연합방 경제체제의 청사진이 눈 앞에 있는데 언제부터 시작해야 할까? 한 마디로 '빠르면 빠를수록 유리'하고 '미루면 미룰수록 불리'하다는 것이 통일경제전문가들의 공통된 연구결과다. 남이 좀 더 부자가 된 뒤에 통일(연합방)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전혀 근거가 없다. 분단비용은 그대로 써서 없어지는 소모 비용이지만, 연합방을 하면 다음날부터 그 분단 비용이 그대로 이득 창출에 쓰이게 된다. 그리고 연합방의 이득은 민족만대 자자손손으로 이어지게 된다.
오늘날 세계 첨단 수준인 남의 반도체·전자전기·자동차·조선·석유화학산업과 북의 CNC정밀기계·핵·우주과학산업·지하자원의 비군사·평화적 상호보완은 통일 자주국가의 부강한 내일을 보장한다. '고리(Corea) 연합방 경제체제'의 청사진은 우리 민족사상 최고의 부강번영의 길을 열어준다.
'연합방'기를 거쳐 '연방기'로 가면서, 분별 없는 자유무역협정으로 그동안 잃어 버린 경제주권의 완전 회복은 우리가 누려야 할 추가 혜택이 된다. 남과 북은 풍요로운 생활수준·자주국방·평등외교·호혜적 국제경제질서를 구가하게 되는 참다운 광복의 날을 맞게 될 기회가 앞에 와 있음을 직시하고 어서 빨리 연합방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남북의 현실은 그러하지 못하다. 2010년 이명박 정부의 5·24 남북교역 중단 조치 이후 북의 경제상황은 더 어려워지지 않았다. 북은 중국과 러시아를 비롯한 여러 나라들과의 교역 증가로 인해 지난 2012, 2013년 연속 대외교역량 85억~87억 달러를 달성, 1990년 이래 최고를 기록했다.
중국은 두만강 접경 지역 개발을 위한 교통망 연결과 무산철광 개발에도 크게 투자하고 있다. 2014년에는 중국에 의해 압록강대교가 완공되고, 신의주-개성 사이의 고속도로와 철도 공사가 시작된다고 한다. 이러한 사회기본시설 확충이야말로 남의 재원과 유휴 상태에 있는 건설 역량을 이용해 북과 함께해야 할 사업이 아닌가. 이에 더해 러시아는 북의 채무 110억 달러를 탕감해 주면서 나진·선봉 자유무역지대에 북·러 경제협력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남은 현재 북뿐 아니라 동북아 경제 영토를 정신 없이 잃고 있다.
무역에 의존하는 경제 구조를 가진 남의 대 중국 수출 규모는 전체 규모의 28%를 차지한다. 여기에 아세안 국가에 대한 수출 규모 15%를 합하면 43%에 이른다. 이는 미국 10%, 일본 6%, 독일 2.5% 등 기타 유럽 국가들에 대한 수출 규모를 합한 것보다 더 크다.
그런데 중국은 남의 최대 수출 시장인 반면 남은 중국 수출 시장의 5% 이하다. 이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남의 국내총생산 대비 수출 비중은 57%인데, 이것은 OECD 국가 평균의 2배 수준이다(미국 14%, 일본 15%, 중국 31% 정도). 남한은 세계 제1의 외국인 투자비중 30%와 과도한 무역의존 경제로 임계점에 도달했다.
중국은 이미 남의 효자 수출품인 반도체·전자전기제품 제작기술을 따라잡았다. 이 분야 제품의 대 중국 수출이 몇 년 새 반으로 줄었고, 이 추세는 더 가속적으로 축소될 것이다. 남은 창의적 기술개발과 새로운 제작기반 마련으로 새 활로를 모색하지 않는다면 곧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다.
남이 택할 수 있는 돌파구, '북방경제'
▲ 개성공단에 머물고 있던 근로자들의 전원 철수가 예정됐었던 지난해 4월 29일
경기도 파주 경의선남북출입사무소 모습
당장 남이 택할 수 있는 돌파구는 북이고 북방경제다. 자연자원의 규모와 경제구조를 봤을 때 북은 남보다 훨씬 더 생산성이 큰 반쪽이다. 이렇게 거대한 가능성을 가진 북이 있다는 사실에 남북은 서로 감사해야 한다. 남북 경제공동체 운영은 남북의 인적·물적·과학적·자연적 자산을 활용해 민족사 최고의 부강번영을 이룰 수 있는 더없이 좋은 기회다.
남북 연합방 경제체제는 국제정치문제가 아니다. 민족 내부의 교역이다. 하지만 이것에도 확고한 합의나 선언이 있어야 할 것이다. 남북이 내부 교류·교역을 한다는데 누가 말리겠고 또 말릴 수 있겠는가. 그러나 자본주의의 섣부른 시도 같은 것은 지양해야 하고, 세계무역에 익숙한 남녘 기업들이 투자에 부담을 갖지 않을 조치도 고려돼야 할 것이다.
지난 6년은 단절됐지만, 이미 남의 김대중-노무현 정부, 북의 김정일 정부 시절 10년 동안 남 북 사이에 경제·사회·문화·예술·학술·스포츠 면에서의 교류·협력은 사실상의 통일(de facto unification) 상황을 누렸다. 남과 북의 주민들은 휴전선을 넘나들며 만나서 이야기하고 노래하고 춤을 추며 껴안았던 가슴 뭉클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6·15 공동선언은 분단 55년 만에 처음 해낸 일이라 남북이 서로 조심스러웠고 서툴러서 본때 있게 하지 못했다. 10·4 선언에 합의한 사항들은 아직 시작해 보지도 못한 채 6년이 지났다. 남북관계를 파탄 내고 남북경제 발전의 기회를 박탈한 작태가 남에서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이번에 하면 더 확실하게 더 잘할 수 있다. 우리 겨레, 더 크고 더 멋지게 다시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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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잘못 꿰어진 첫 단추, '북핵'을 낳았다
[주장] 밖에서 그려보는 남북연합방 (3) - 미국의 '선물', 겨레의 핵
2014년 8월 29일 오마이뉴스
오 인동 / 6.15미국위 공동위원장
오인동(재미동포 정형외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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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그려보는 남북연합방 <글 싣는 순서>
1. '연합방' 경제공동체의 청사진
2. 민족사 최고의 '부강 번영
3. 미국의 '선물', 겨레의 핵
4. 북미 아니고 남북평화체제로
5. 겨레의 핵우산 함께 쓰고
남북연합방 경제공동체를 시작하면 우리 겨레가 민족사 최고의 부강 번영을 누릴 수 있다는 점을 살펴봤다(지난 기사 : 활력 잃은 남한 경제, 대안은 '북방경제'다). 이렇게 찬란한 통일의 이정표가 눈앞에 있는데도 이 길로 달려가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핵실험일까, 핵시험일까
실험은 이론이나 가설의 검증을 위한 것이고, 시험은 검증된 이론을 익힌 정도를 확인하는 것이다. 핵무기의 근거가 되는 이론은 이미 검증된 것이므로, 북이 시행하는 것은 이 이론을 실제화할 수 있는 능력을 확인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핵시험'이 더 적합한 용어 사용이다. - 기자말
정전한 지 61년이 된 조국에 평화협정은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 20년 동안에는 그 이유로 '북핵'이 거론됐다. 북에 핵이 없었으면 평화체제가 이뤄졌을 것이란 말일까. 북핵이 없던 40년(1953~1993) 동안과 그 뒤 북이 첫 핵시험을 한 2006년(1994~2006)까지, 왜 평화체제는 달성되지 못했는가. 북미평화협정이 이뤄졌더라면 북은 핵을 개발할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북과 미국 사이의 평화협정 논란과 북의 핵개발 배경의 역사를 살펴보면 문제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문제 해결 방안에도 눈 뜨게 될 것이다.
북핵 개발의 역사
▲ 지난 2010년 10월 10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조선노동당 창건 65주년
기념 열병식에 등장한 북한 중거리미사일(IRBM) '무수단'.
ⓒ 연합뉴스
1953년 정전협정에는 3개월 안에 참전국 회의를 열어 한반도에서 외국군대의 철수와 평화정착을 논의하기로 돼 있었다. 그런데 2개월 뒤 남한과 미국은 협정을 위반하며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고 미군의 영구주둔을 규정했다. 소련군은 1949년에 철수했고, 북은 1958년에 중국군을 완전히 철수 시켰다. 반면, 미국은 남한에 6만 미군과 핵무기를 배치하고 북을 위협했다. 명백한 정전협정 위반이었다.
해방 15주년을 맞던 1960년, 북은 남한에 외국 군대 철수와 평화협정을 제안했다. 그 뒤 북은 이를 되풀이해서 제안했으나 남한은 응하지 않았다. 따라서 북은 자위를 위해 1963년에 소련에 핵개발 연구지원을 요청했으나 거절 당하고, 1964년에는 중국에게도 거절당했다. 1965년에야 소련으로부터 평화적 핵발전을 위한 연구 원자로를 지원받았다.
남한이 1974년 북한에 불가침 조약을 제안하자, 북은 군사지휘권이 없어 지난 14년 동안 평화협정 제안에 응하지 못한 남한이 불가침은 어떻게 담보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리고 남한의 군사실권을 행사하는 미국에 '북미 평화협정'을 제안했다.
1975년 유엔총회는 유엔군사령부의 해체와 주한미군 철수를 결의했다. 그러나 이는 이뤄지지 않았다. 1976년부터는 한미합동 대북전쟁연습(TS)도 시작됐다. 북미평화협정 제안에 미국은 1978년 남북이 먼저 대화한 뒤 남·북·미 3자회담을 제안했다. 1984년 북은 남과 불가침 조약, 미국과의 평화협정을 역제안했다. 하지만 미국은 응하지 않았다.
서명한 지 2주도 안 돼 실효성 없어진 북미 기본합의
그렇게 세월은 흘러갔고 1990년 세계의 공산권이 붕괴되자 남북은 1991년 유엔에 각기 따로 가입했다. 북은 유엔회원국 앞에서 주한유엔군사령부 해체, 미군 철수, 북미평화협정을 제기했다. 세계 정세의 대변화로 남북은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를 채택했고, 같은 해 12월 미국은 남한에서 핵무기를 철거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핵잠수함·핵항공모함·핵폭격기는 때마다 남한에 드나들었고, 핵우산을 제공하는 3만 미군이 지금도 주둔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북은 동유럽 국가들과의 교역이 차단되고 계속되는 미국의 정치·경제봉쇄와 제재로 어려움에 빠지기 시작했다.
북이 전력 생산을 위해 핵발전 중수로를 가동하자 1993년 미국은 핵무기개발 의혹을 제기하며 특별사찰을 요구했다. 이 부당한 요구에 북은 NPT(핵확산금지조약) 탈퇴 의사를 선언했다. 이때 남한의 김영삼 대통령은 "핵 가진 자와는 악수할 수 없다"라면서 문제 해결에 스스로 참여하지 않았다. 이렇게 핵문제는 북과 미국 사이의 과제로 돼 갔다.
지난 20년 동안 북미평화협정 체결을 무시하고 기피해 온 미국이 북의 핵개발 방지를 위해 1994년 제네바에서 북과 협정의 성격이라 볼 수도 없는 '기본합의(Agreed Framework)'라는 것을 했다. 이 합의의 내용은 북이 중수로를 동결하면 10년 안에 100만kW 경수로 2기 건설, 경제 제재 완화하고 국교 정상화한다는 것이었다. 경수로 건설 비용의 대부분은 남한의 부담이었다.
그러나 유럽 공산 국가들처럼 붕괴가 예상됐던 북이 김일성 주석 사망 뒤에도 흔들림이 없자 미국은 합의 사항 이행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의 보스워스(S. Bosworth) 총장은 이런 사실을 "기본합의는 서명한 지 2주일도 안 돼 정치적 고아가 됐다"(The Agreed Framework was a political orphan within 2 weeks after its signature)라고 평했다. 북은 미국에 합의 사항 이행을 촉구했지만 지지부진하자 1998년 태평양을 넘는 장거리 미사일 발사로 무력 시위를 했다.
한편,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 뒤 남북교류가 활발해지자 일본 고이즈미 총리는 2002년 9월 중순 북 김정일 위원장과 정상회담에서 수교를 위한 평양선언을 했다. 북을 '악의 축'으로 지명하고 핵 선제공격 대상에 올려놓은 미국 부시 정부가 이에 놀라 10월 초 켈리(J. Kelly) 국무부 차관보를 평양에 보내 북한에 고농축우라늄(HEU) 의혹을 제기하고 돌아와 일방적으로 '북미 기본합의'를 파기했다.
중수로 동결 8년 동안 경수로 건설은 30%도 진척되지 않았고, 관계 정상화에 한 걸음도 내딛지 못했다. 이를 보고 북미 기본합의 협상팀에 참여했던 윗(J. Witt)은 "북미 합의의 기념물은 콘크리트로 메워진 두 개의 거대한 구덩이뿐이었다"라고 말했다.
대북 위협에서 시작돼 제재로 끝나는 역사
▲ 북한은 지난 2013년 2월 12일 실시된 핵시험을 1차 대응 조치라며 미국이
적대적으로 정세를 복잡하게 하면 2, 3차 대응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북은 2003년 초 핵확산방지조약(NPT)에서 탈퇴했다. 그해 3월, 미국은 핵 없는 이라크의 핵개발을 저지한다면서 침공을 감행했다. 이를 본 북은 핵무장만이 민족과 조국을 지킬 수 있다고 확신했던 모양이다. 극심한 경제난으로 '고난의 행군' 시기를 겪은 북은 남한의 군사비와 경쟁할 수 없게 돼 적은 비용으로 최대의 안보효과를 마련해 줄 핵미사일 개발로 자위력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정책 변화로 절약된 돈은 인민생활 향상과 경제건설에 쓰겠다고도 했다.
북을 견제하기 위해 부시 정부는 2003년 중국이 주도하는 6자회담을 출범시켰다. 북은 핵무기를 보유했다고 말했으나 객관적으로 증명해 보이지도 않았다. 6자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모색할 2005년 9·19공동성명이 나왔다. 그러나 바로 다음날 미국은 돈 세탁 의혹을 제기하며 마카오은행(BDA) 북한 계좌를 동결시켰다.
이 무고한 조치에 북은 2006년 7월 4일 미국의 독립기념일에 장거리미사일(인공위성)을 발사하고 10월 한글날에는 겨레의 제1차 핵시험으로 맞섰다. 이와 같이 북이 핵미사일을 개발하게 된 이유는 이재봉 원광대 교수의 '법정 증언'에도 기술돼 있다(관련기사 보기). 한편, 마카오 정부 주문으로 북한 은행 계좌를 조사한 미국 회계회사 'E&Y'는 부정행위가 없었다고 발표했고 계좌는 풀렸다.
이와 같이 북의 핵미사일은 평화협정을 기피하는 미국을 협상에 끌어들이는 수단이었지만, 미국은 벼랑끝 전술(Brinkmanship)이라는 별명도 붙였다. 그리하여 2007년 2·13과 10·3 원자로 불능화 합의가 이뤄졌고, 2008년 북은 중수로 냉각탑 공개 폭파 시위를 하기도 했다. 미국 CSIS전략연구소 태평양포럼 코사(R.Cossa) 회장은 북한이 2·13 합의사항을 위배한 것은 없다고도 했다.
한편, 남한에서는 2007년 10·4 남북평화번영합의를 한 노무현 정부에 이어 2008년에 집권한 이명박 정부가 비핵·개방·3000 대북정책을 내세우고 6·15, 10·4 남북공동선언을 무효화하기 시작했다. 한편 집권하면 북한과 직접 대화하겠다던 오바마 정부가 2009년에 출범했다. 하지만, 남북교역중단과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 문제로 북한의 붕괴를 예상한 이명박 정부의 반대를 핑계로 미국은 '전략적 인내' 정책으로 돌아섰다.
이에 북은 미국의 대북 적대 정책 포기와 평화협정 체결을 압박하기 위해 2009년 4월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고 5월에는 제2차 핵시험 시위를 했다. 그리고 "6자회담은 영원히 끝났다"라고 선언했다. 미국은 유엔안보리를 통해 제2차 대북제재 결의를 채택하고 북한의 붕괴를 추구했다.
이것이 지난 60년 동안 북·미 사이에 되풀이된 역사(미국의 핵 위협→북의 평화협정 제안→불응→미사일 발사→핵개발 의혹→북미 기본합의→미국의 파기→북의 핵시험→유엔안보리 제재)의 요약이다(<통일의 날이 참다운 광복의 날이다> 밖에서 본 한반도, 오인동, 솔문, 2010).
'핵개발을 저지하겠다'는 미국
그러면 평화협정과 핵개발 문제로 합의사항을 위반한 쪽은 누구인가. 미국은 북한, 북은 미국이라고 하고 남한 정부나 수구 언론들은 미국의 주장을 복창해 왔다. 북한도 사소한 합의 사항들을 어긴 것들이 있다. 그러나 약육강식이 국제관계 역학의 상식이라는 말대로 미국이 먼저 또 결정적으로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은 확연하다.
심지어 부시 정부의 라이스 국무장관은 미국이 "축구경기 도중 골대를 옮긴다"(Moving the goal posts in the middle of a football game)라는 말도 했다. 즉, 합의 내용 바꾸기를 한다는 것이다. 앞서 말한 미국의 여러 관료나 한반도 전문가들은 결국 북한이 기본 합의 사항을 안 지킨 게 없다고 한 셈이다.
이렇게 미국 인사들조차 합의를 지키지 않은 바른 말을 하는데도 남한 관료와 대통령의 "북한의 도발→제재→타협→보상의 나쁜 버릇을 더 이상 묵과 할 수 없다"라는 말을 해왔다. 미국 위정자들은 어떻게 들을까. 이에 더해 오바마 국가안보회의 베이더 국장의 저서 <오바마와 중국의 부상>에서 "(미국은) 궁극적으로는 북한 정권 붕괴와 남한의 흡수통일을 목적으로 하고, 단기·중기적으로는 근본적 해결 아닌 협상과 대화를 통해 지연 시키는 '전략적 인내'였다"라고 했다.
그러면 이들이 반미주의자이고 종북세력인 걸까. 이렇게 미국 정부에 반대되는 주장을 관료나 전문가들이 말할 수 있는 것이 미국 언론의 자유이고 큰 나라 미국의 여유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양심적 애국인사들로 인해 미국은 정의 수호와 자체 정화 노력도 하지만, 세계 패권 정책은 계속되고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북에 핵이 없던 첫 40년 동안 미국은 북의 요구를 무시·기피해 왔고 그 뒤 핵 의혹만 있었던 12년 동안에도 이런저런 핑계로 평화협정을 거부해온 사실을 돌이켜 보면 의심되는 바가 있다. 즉, 핵개발을 저지하겠다는 미국 주장의 진정성에 믿음이 가지 않는다. 왜냐면 미국이 합의 사항 이행을 지연 시키거나 '골대를 옮겨' 다시 협상해 합의하고 또 파기하는 동안에 북의 핵미사일 능력은 점차 높아져만 갔기 때문이다.
핵,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지난 2013년 3월 29일 오전 0시 30분 전략
미사일 부대의 화력타격 임무에 관한 작전회의를 긴급 소집하고 있는 모습.
처음부터 의도적이 아니었다고 해도 결과적으로는 미국이 북한에 핵미사일 개발을 은근히 강요해 온 셈이 아닌가. 그 결과 2012년 말, 북은 ICBM급 미사일로 실용인공위성을 궤도에 진입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러자 유엔안보리 국가들은 정의든 불의든 간에 자신들의 국익에 따라 패권 미국의 대북제재결의를 추종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막바지에 내몰린 북은 2013년 2월 소형화·경량화·다종화했다는 제3차 핵시험을 했다. 그러자 3월에 미국은 대북 한미합동전쟁연습에 스텔스 폭격기를 동원, 핵탄 투하 연습까지 했다. 이에 북은 미국에 '핵 대 핵 대결'과 '정전협정 백지화'를 선언했다.
이와 같이 미국 국익에 따라 동북아 패권을 유지하느라 북미 평화협정 체결을 처음엔 무시하고 기피했고 그 뒤엔 이런저런 핑계로 거부해오다 보니 미국은 결국 우리 겨레의 한 쪽에 핵미사일을 선물한 셈이 된 것 아닌가. 그러나 미국의 위협으로부터 나라와 민족을 지키기 위해 강요된 선택으로 개발했다는 북핵은, 이제 지역평화를 위협하니 폐기돼야 한다고 미국은 주장한다. 즉, 미국의 핵은 평화를, 북핵은 평화의 위협이라는 모순된 논리를 정당화하는 게 패권국의 역설적 특권이 아닐까.
이렇게 지난 60년 동안 아무 성과 없이 북·미(남) 사이에 논란만 돼온 평화협정 거부와 핵미사일 개발의 역사를 제대로 인식했다면, 조국의 북에 있는 핵을 어떻게 하는 것이 겨레의 평화통일과 지역평화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인지 남과 북은 심각하게 성찰하고 논의해봐야 할 것이다. 해외동포의 눈에 미국이 준 선물인 북핵은 이미 우리 겨레의 핵이다. 겨레 핵의 앞날은 오직 우리 겨레가 결정하기에 달려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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