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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용 (역사학자)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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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용은 대한민국의 역사학자이다. 고려대학교 한국사연구소 연구교수로서, 민족박한용 (역사학자)
박한용은 대한민국의 역사학자이다.
고려대학교 한국사연구소 연구교수로서,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는 2000여 쪽에 이르는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하였는데, 박한용은 이 일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4] 여러 시사 프로그램에 패널로서 출연하였고 역사와 관련하여 여러 토론에 참여하였다.[5][6][7][8][9]
각주[편집]
이동↑ 최영주. “역사 쿠데타, 언론이 공범 돼선 안 돼” . PD저널. 2013년 6월 5일.
이동↑ 김동규. "일본군 조직적으로 위안부 동원·관리"…자료 공개. 연합뉴스. 2013년 8월 8일.
이동↑ 이영광. "역사 교과서 왜곡, 반공 앞세워 다 해먹겠다는 것". 오마이뉴스. 2013년 10월 8일.
이동↑ 조민서. "종편 5.18 왜곡방송, 젊은층이 말려들고 있다". 아시아경제. 2013년 5월 21일.
이동↑ 김중호. 박정희 기념도서관? '범죄의 재구성' 현장이다". 노컷뉴스. 2012년 2월 22일.
이동↑ 백선엽 논란, “공산당 토벌한 것”vs“친일 변명일뿐”. 노컷뉴스. 2013년 5월 8일.
이동↑ 신성미. 말싸움하다가 끝난 ‘백년전쟁’ 공개토론. 동아일보. 2013년 6월 25일.
이동↑ 교학사 교과서 집필자 "노무현 발언, 조갑제 닷컴서 인용". JTBC. 2013년 9월 17일.
이동↑ '진실은 하나'…두 동강 난 역사 교과서 어떻게 다른가?. JTBC. 2013년 9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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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역사로 본 근현대사 100년 [1] - 박한용_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 ...
https://www.youtube.com/watch?v=fKPNzAzLPY4
Apr 17, 2013 - Uploaded by 주권방송
[ 2013 봄, 사랑하라 진보하라] 진보 2013 강연 친일역사로 본 근현대사 100년 [1] - 박한용_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 주권방송 615tv ...친일역사로 본 근현대사 100년 [2] - 박한용_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 ...
https://www.youtube.com/watch?v=Uk-ER9EZS94
Apr 17, 2013 - Uploaded by 주권방송
[ 2013 봄, 사랑하라 진보하라] 진보 2013 강연 친일역사로 본 근현대사 100년 [2] - 박한용_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 주권방송 615tv ...한용씨!
당신은 대한민국의 역사를 쓸 자격이 없다.
이유는 친북종자이기 때문이다. 당신이야 말로 눈깔에 색안경을
쓰고 있으니 대한민국이 안보이는 것이다.
노무현이 하수인으로 친일파 명부를 발행하여 국론을 분열시킨 골수 빨갱이 아닌가? 교과서 발행을 정부가 개입하지 말고 사립화하여 교사들이 쓰게 해야한다고 개소리 하는데, 전교조가 판을 치는 세상에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자는 말이 아닌가?
대한민국의 교육부가 왜 존재한다고 생각하는가? 역사학자라는 인간들이 학생들이 책값으로 낸돈 1년에 400억중에서 30%인 120억씩 챙겨서 배불리먹고 살고있으니 밥그릇 빼앗길 까봐 국정교과서 반대는 것 아닌가?
대한민국의 역사 학자라는 인간들이 민중사관, 노동혁명집단(프롤레타리아), 민중민주주의, 민족문제연구소 이런 공산주의에서 파생된 빨갱이 들 뿐아닌가? 그래서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에 자국의 역사는 왜곡 축소하고 기술하고 북한 괴레집단은 과대 평가헤서 아이들을 가르키자는 것이냐?
불법기습남침하여 350만명의 사상자를 낸 북한을 옹호하는 새키들은 북한으로 가서 잘 살아봐라.. 맛이 어떤지?
건국절 비판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파파이스 - YouTube
https://www.youtube.com/watch?v=NyJ45Wnzgfo
Aug 27, 2016 - Uploaded by Yes No
[보이는라디오] 박한용의 백년전쟁 - 민족문제연구소 자료와 함께 보는 친일파이야기 Part 1. (2015.07.20) - Duration: 59:35. 미디어협동조합 ...[김어준의 파파이스#111] 7.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교육실장 - YouTube
https://www.youtube.com/watch?v=xwllRDORang
Aug 26, 2016 - Uploaded by 바라미
[김어준의 파파이스#111] 건국절 그리고 그랜드 개집 [김어준의 파파이스#111] 7.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교육실장 -건국절? 친일 독재세력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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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라디오] 박한용의 백년전쟁 - 민족문제연구소 자료와 함께 보는 ...
https://www.youtube.com/watch?v=ikPeLUlt5ZU
Jul 20, 2015 - Uploaded by 미디어협동조합
민족문제연구소 자료와 함께 보는 친일파이야기 Part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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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글쟁이들-민족문제 연구소 연구실장 박한용 - 알라딘서재
https://blog.aladin.co.kr/common/popup/.../print_Paper.aspx?...Translate this page
Oct 31, 2006 - [한겨레] 한국의 책쟁이들/④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 “책을 기증한다고 하니 집사람이 먼저 책짐을 싸더군요.” 은평구 구산동 예일여고 뒤 ...책 모으는 즐거움이요? 이제 나누는 기쁨이죠
[한겨레]
한국의 책쟁이들/④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
“책을 기증한다고 하니 집사람이 먼저 책짐을 싸더군요.”
은평구 구산동 예일여고 뒤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의 집. 그의 집은 예상과는 달리 넓어 보였다. 길쭘한 거실. 두 벽이 책꽂이지만 책들은 책꽂이에서 한발짝도 내밀지 않았다. 가운데에는 소파와 깔개가 널찍하게 자리잡았다. 첫째 아이의 방. 책상을 등진 벽에는 이중 책꽂이에 어른 책이 버티고 있다. 어쩌면 박 실장 자신의 서재로 쓰다가 크는 아이한테 쫓겨 책을 둔채 나왔는지도 모를 일. 안방에는 부부 공용 외에 둘째 아이의 책상과 아이의 책뿐, 그의 책은 전혀 없다. 말끔한 정도로 보아 안방에까지 쌓였던 그의 책들이 어느 순간 마나님의 반란으로 추방되지 않았을까.
“가족이 함께 사는 공간인데 내 책이 독점하다시피하는 게 불합리하다는 생각이 들었던거죠.” 며칠 걸려 정리한 것이 지금의 모양새다. 추방된 책 가운데 수백 권은 베란다에서 수형생활이다. 다행히 북향이라서 햇볕이 들지는 않지만 책이 바래는 것을 어쩔 수 없다. 대부분 오래된 사회과학 서적이나 복사본이어서 가슴앓이가 덜하지 않을까.
책과의 싸움은 식구들과의 싸움이자 자신과의 싸움. 책을 버리는 것은 스스로 용납되지 않고, 선택한 방법이 기증하기. 그는 기증을 누군가와 책을 나누는 즐거움이라고 표현했다. 스스로 그렇게 믿을지는 모르지만, 더이상 책을 수용할 공간이 없는 터에 불가피하게 선택한 마지막 수단이 아니겠는가.
“민주화기념사업회에 일곱 상자를 보냈어요. 연구자로서 미련이 남지만 욕심을 버렸어요. 책뿐 아니라 각종 팜플렛도 포함돼 있어요.” 고려대 한국사 연구실에도 1천여 권을 떨궜다. 자주 기증을 하다보니 자료의 공유라는 대의명분을 띠기 시작했고 그것은 연변까지 확장됐다.
중국출장을 가서 조선족학교인 연변대의 실정을 보고 깜짝 놀랐다. 구내 만화대여점에는 허접한 한국만화가 꽂혀있었다. 우연히 참석한 신입생 환영회. 퀴즈대회에서 고구려를 세운 왕이 누구냐는 물음에 답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귀국한 뒤 그가 한 일은 기증용 책모으기. 우선 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질을 문화당에서 싸게 구입하고 헌책방 ‘책나라’에서 쓸만한 단행본을 한권에 500원씩 샀다. 공감하는 동네사람들한테서는 만화나 잡지를 모았다. 그렇게 모은 것이 15상자 분량. 중국으로 가는 컨테이너 틈에 끼워넣어 보냈다. 동북공정이다 뭐다 하는데 그 책들이 천덕꾸러기가 되지 않았는지 궁금하다.
책 수백 권 베란다 ‘수형살이’
그의 책은 그가 연구실장으로 있는 민족문제연구소에도 가 있다. 두 차례에 걸쳐 연구서 2천여권을 보냈다. 자료실이 안정되면 더 보낼 생각이다. 연구소가 궁극적으로 자료센터가 돼야 한다고 본다. 다양한 자료를 모아 체계적으로 정리해 놓으면 근현대사 연구자들의 시간과 돈을 절약해 주지 않을까. “책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자료가 만인들에게 이용되는 것이 꿈입니다.” 그는 박원순 변호사가 장서 전량을 역사문제연구소에 기증하면서 “마누라 빼고 다 가져가라”고 했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자료실의 근간이 된 임종국 선생의 책에 비하면 나의 책은 물방울에 불과합니다.”
연구소 자료들은 자체적으로 구입하거나 기증을 받고 있다. “연구소 근처 70~80평 지하실을 빌렸어요. 제습기만 설치하고 분류정리하는 수준입니다.” 언젠가 전모를 펼쳐 공개할 기회가 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동안 한해 한차례 정도 주제를 특정해 전시회를 열었다. 올해는 조정래의 <아리랑>을 주제로 펼쳐보일 생각이다.
“그동안 우리는 자랑스런 유산만을 내세워왔습니다. 하지만 역사는 빛과 어둠이 공존하죠. 항일이 빛이라면 친일은 어둠에 해당합니다. 빛은 어둠과 대비시킬 때 더욱 돋보입니다.”
이번 전시를 위해 8월13일부터 한국일보 갤러리를 빌려놨다. 원래는 서울시립박물관을 임대하려 했으나 강렬한 주제를 부담스러워하는 박물관쪽 윗분에 의해 거절됐다는 후문이다.
민족문제연구소는 1989년 친일문제연구가 임종국 선생의 빈소에서 싹이 텄다. 이날 모인 사람들은 임 선생이 추진했던 친일파 총정리 사업의 뜻을 잇기로 결의했다. 91년 초 정식으로 연구소가 설립됐고
△한일 과거사 청산을 통한 역사 바로세우기
진성회원 5000명, 상근자 35명. 회원들의 회비로 운영되는 몇 안되는 엔지오 가운데 하나로 연구와 사회운동적 성격을 겸한다. 그동안 김창룡 묘 이전, 서춘에 대한 서훈 취소, 문래동 박정희 흉상 철거 등 ‘평지풍파’를 일으켜왔다.
“잘못된 것을 상식적으로 바로잡는 겁니다. 친일파가 독립운동가인 척하고, 독립기념사업에 참여해 훈장을 받아 왔어요.” 그는 친일 미술가가 이순신, 백범, 안중근, 동상을 도맡아 제작하고 노년에 3·1문화상 받아 그의 친일문제가 감춰졌다고 말했다. “냄비식 반일과는 달라요. 일본을 비판하려면 우리의 잔재부터 청산해야 한다는 거죠. 우리가 ‘마사오 다가키’ 박정희를 기념한다면서 어떻게 일본한테 당당할 수 있겠습니까?”
기증한다니 아내가 언른 책짐 싸
근현대 한국사를 전공한 박 실장과 민족문제연구소의 방향은 거의 겹친다. 설립 초기에 연구소에 합류한 그가 개인의 일을 접어두고 연구소 일에 전적으로 매달리는 것은 그 탓이다. 아니, 그게 아니라 연구소의 일이 곧 자신의 일일 터다. 그의 몫 가운데 가장 큰 것은 자료의 수집. 평소 개인적인 수집벽을 연구소로 연장하면 바로 공적인 일이다. 개인 자료와 연구소 자료가 뒤섞여도 표가 나지 않고 그것을 어쩌지 못한다.
연구소에서는 <일제 식민통치기구 및 협력단체 편람>(국내편), <일제하 해외 친일단체 편람>, <일제하 지방 친일단체 편람>을 공식·비공식으로 간행하고 <재일조선인단체편람>을 정리중이다. 2007년에는 최종목표인 <친일인명사전>을 펴낼 계획이다.
바탕이 되는 것은 일제 때 그들이 펴낸 자료들.
“잘못된 것을 상식적으로 바로잡는 겁니다. 친일파가 독립운동가인 척하고, 독립기념사업에 참여해 훈장을 받아 왔어요.” 그는 친일 미술가가 이순신, 백범, 안중근, 동상을 도맡아 제작하고 노년에 3·1문화상 받아 그의 친일문제가 감춰졌다고 말했다. “냄비식 반일과는 달라요. 일본을 비판하려면 우리의 잔재부터 청산해야 한다는 거죠. 우리가 ‘마사오 다가키’ 박정희를 기념한다면서 어떻게 일본한테 당당할 수 있겠습니까?”
기증한다니 아내가 언른 책짐 싸
근현대 한국사를 전공한 박 실장과 민족문제연구소의 방향은 거의 겹친다. 설립 초기에 연구소에 합류한 그가 개인의 일을 접어두고 연구소 일에 전적으로 매달리는 것은 그 탓이다. 아니, 그게 아니라 연구소의 일이 곧 자신의 일일 터다. 그의 몫 가운데 가장 큰 것은 자료의 수집. 평소 개인적인 수집벽을 연구소로 연장하면 바로 공적인 일이다. 개인 자료와 연구소 자료가 뒤섞여도 표가 나지 않고 그것을 어쩌지 못한다.
연구소에서는 <일제 식민통치기구 및 협력단체 편람>(국내편), <일제하 해외 친일단체 편람>, <일제하 지방 친일단체 편람>을 공식·비공식으로 간행하고 <재일조선인단체편람>을 정리중이다. 2007년에는 최종목표인 <친일인명사전>을 펴낼 계획이다.
바탕이 되는 것은 일제 때 그들이 펴낸 자료들.
친일잡지들, 인사록, 신사대동보, 공로자명감, 연감류, 서훈록,
국방헌금납부자명단, 만주국한국인관리 명단, 전국지방의원 명감, 병합기념장 수여자 명단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들 자료를 구하기 위해
국사편찬위, 기록원, 각종 도서관을 뒤지고
일본과 중국에도 여러 차례 출장을 갔다.
중국의 문서관에는 만주친일파, 간도특설대에 관한 자료가 보관돼 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대부분 비공개라서 애로가 많다.
문서자료 외에 간접자료도 아주 유용하다.
예컨대 한일합방 기념 오사카 <매일신문> 부록인 아동용 블루마블게임. 신공왕후. 귀무덤, 신라인 조공 등 조선역사 왜곡를 왜곡하고 식민통치를 정당화한 내용이다.
문서자료 외에 간접자료도 아주 유용하다.
예컨대 한일합방 기념 오사카 <매일신문> 부록인 아동용 블루마블게임. 신공왕후. 귀무덤, 신라인 조공 등 조선역사 왜곡를 왜곡하고 식민통치를 정당화한 내용이다.
당시 국어교과서에 실린 ‘간도에서 온 편지’.
비적이 평정돼 살기 좋다며 개척이민을 장려하는 내용.
수신교과서에 실린 충효사상.
이는 유교문화의 유산이 아니라 천황에의 충성을 말한다.
박정희 정권 때의 충효사상 강조와 흡사하다.
수집은 전단, 포스터, 우표, 군복, 지도, 앨범등 생활자료로까지 확대됐다. 역사는 텍스트로 알기보다 오감으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천인침(처녀 1000명이 수를 놓아 총알을 막아준다는 배띠),
수집은 전단, 포스터, 우표, 군복, 지도, 앨범등 생활자료로까지 확대됐다. 역사는 텍스트로 알기보다 오감으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천인침(처녀 1000명이 수를 놓아 총알을 막아준다는 배띠),
무운장구의 기원을 적은 일장기,
한일합방 축하 가두행진 사진,
이완용의 친일시화,
최린 임전대책협의회 회장의 엽서,
‘돌격’ 담배,
국민총력조선연맹의 세로 표어,
창씨개명 관련 자료,
일본군 앨범과 군표,
조선지원병 첫사망자인 이인석 상병 선전책자,
일본군가,
친일영화 전단 포스터,
황국신민서사 전단,
러일전쟁·중일전쟁 주사위 게임 등등.
이런 자료는 중간수집상, 인터넷 경매 등을 통해 구입한다.
친일청산 뜻있는 분 기증 바랍니다
“이렇게 체계적으로 모은 것이 처음입니다. 일찍 시작했더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남아요. 장삿속으로 모으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값이 많이 올랐거든요. 돈 없어 못 산 것 많아요.” 그는 뜻있는 사람들의 기증을 바랐다. 흩어져 값으로 존재하기보다 합쳐져 의미로 남는 것이 더 소중하다는 믿음에서다.
한해 앞으로 다가온 2007년. 대망의 친일인명사전이 마무리되면 10년 너머 미뤄온 박사학위 논문을 매듭지을 참이다. 주제는 박정희가 통치이데올로기로 내세워 성공을 거둔 민족, 국가 담론 분석과 국민교육헌장, 반상회, 학도호국단 등 언술을 관철시켰던 시스템 연구.
“해 저문 저녁 갈길은 먼데, 비가 오죠, 소는 뛰고요, 풀짐은 무거워오고요.”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친일청산 뜻있는 분 기증 바랍니다
“이렇게 체계적으로 모은 것이 처음입니다. 일찍 시작했더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남아요. 장삿속으로 모으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값이 많이 올랐거든요. 돈 없어 못 산 것 많아요.” 그는 뜻있는 사람들의 기증을 바랐다. 흩어져 값으로 존재하기보다 합쳐져 의미로 남는 것이 더 소중하다는 믿음에서다.
한해 앞으로 다가온 2007년. 대망의 친일인명사전이 마무리되면 10년 너머 미뤄온 박사학위 논문을 매듭지을 참이다. 주제는 박정희가 통치이데올로기로 내세워 성공을 거둔 민족, 국가 담론 분석과 국민교육헌장, 반상회, 학도호국단 등 언술을 관철시켰던 시스템 연구.
“해 저문 저녁 갈길은 먼데, 비가 오죠, 소는 뛰고요, 풀짐은 무거워오고요.”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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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경 의원의 비난에 박한용 "거의 사이코패스 수준 발언" | Redian
www.redian.org/archive/94411Translate this page
Nov 12, 2015 - 민족문제연구소에 대해 종북 좌편향 세력이라며 색깔론을 펼치는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 등의 발언에 대해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교육홍보실장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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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용 "선대는 군사쿠데타 하고 후대는 역사쿠데타 한다" - 오마이뉴스
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Translate this page
Mar 13, 2015 -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교육홍보실장은 "친일파를 연구하고 친일인명사전을 내는 사람들이 '종북'으로 몰리는 사회가 되는 게 문제"라며 "사전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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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박한용 "선대는 군사쿠데타 하고 후대는 역사쿠데타 한다" - 오마이뉴스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교육홍보실장은 "친일파를 연구하고 친일인명사전을 내는 사람들이 '종북'으로 몰리는 사회가 되는 게 문제"라며 "사전을 내고 <100년 전쟁> 영화를 만들고 하니까 북한과 연계된 거 아니냐고 하던데, 친일 문제 제기가 민족반역이 되는 사회가 문제"라고 말했다.
박 실장은 12일 저녁 창원노동회관에서 금속노조 경남지부가 마련한 '노동자 통일학교'에서 "친일역사로 본 근현대사 100년"이란 주제로 강연했다. '뉴라이트 교과서'와 '교학사 교과서'에 대해, 그는 "친일 문제를 넘어 역사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교학사 교과서 내용을 노동자를 포함한 시민들은 잘 모르는데, 그 내용은 끔찍하다"며 "현 수구보수세력이 무엇을 꿈꾸는지 알 수 있고, 미래 파시스트 양성 교육자료이며, 새누리당 지지자를 만드는 교육"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교학사 역사교과서를 한 곳에서만 채택했다, 교육부가 검정교과서를 해서 실패하자 이번에는 국정교과서화를 하려고 한다"며 "황우여 교육부장관이 총대를 멨는데, 돌아가는 상황이 심상찮다"고 덧붙였다.
▲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교육홍보실장은 12일 저녁 창원노동회관 대강당에서 금속노조 경남지부 초청으로 "친일역사로 본 근현대사 100년"이라는 제목으로 강연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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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그는 "세계에 유래가 없는 역사 쿠데타다, 선대(박정희)는 군사쿠데타를 하고 후대(박근혜)는 역사쿠데타를 한다"고 말했다.
박정희기념관에서 방영하는 4분 짜리 홍보동영상을 틀어준 뒤, 그는 "웃음이 나오는 내용들이다, 그런데 이런 게 현재 초등학생한테 먹힌다는 것"이라며 "가장 좋은 학습은 세뇌다, 박정희기념관은 세뇌공작소다, 그 동영상을 교과서로 만든 게 교학사 역사교과서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노동운동도 역사를 알아야 한다는 것. 그는 "노동운동 하는 사람들은 역사를 잘 모르고, 나하고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한다"며 "진보양심세력은 정의감은 앞서지만, '무식'하다, 그러나 보수수구세력은 머리가 좋고 고시 합격한 사람들도 많다, 그들은 교묘하게 선전선동한다, 가령 '산업화세력'이라는 말을 하는데, 그 말 속에는 노동자와 관계 없다, 고도의 속임수다"라고 설명했다.
1945년부터 3년간을 '대한민국건국성립기'로 보는 의도는?
그는 1945년 8월 15일부터 1948년 8월 15일 사이에 대해 설명했다. 새누리당은 이 시기는 '대한민국건국성립기'로 가려고 한다고 그는 말했다. 이때를 '좌우갈등시기'라고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
"해방3년은 좌우 갈등의 시대였다고 하는데, 아니다. 해방 직후 구도는 좌익이냐 우익이냐의 시대가 아니었다. 좌익이라도 독립운동하다 감옥간 사람들도 나왔다. 해방 직후는 친일이냐 항일이냐의 시대였다. 그래서 일제 강점기 경찰하고 교사했던 사람들도 도망을 갔다. 일제로부터 독립한 뒤는 일제협력자 청산이었다. 1945년 12월까지는 친일이냐 항일이냐가 기본 구도였다. 당시 좌우갈등이 있기는 했지만 적대적이지 않았고, 서로 경쟁하는 구도였지 죽이는 구도는 아니었다."
1945년 12월 나온 모스크바3상회의(미, 영, 소) 뒤부터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것. 그는 "5년간 한반도를 신탁통치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친탁-반탁이 대립했고, 좌익이 민족반역자로 몰렸다"고 말했다.
"모스크바 회의의 본질은 신탁통치가 본질이 아니다. 한국을 독립국가로 만드는 게 합의이고, 그 과정을 어떻게 만들어 나갈 것인지를 논의한 것이다. 대중들은 일제 통치도 억울한데 또 무슨 신탁이냐며 '신탁통치'로 굳어졌다. 그런데 좌익은 그 회의를 총체적으로 지지했다. 그러자 <동아일보>는 '신탁통치는 소련이 주장했다'고 보도했다. 최근에 드러났지만, 당시 세계 통신사도 그런 보도를 한 적이 없는데, 당시 <동아일보>는 미국의 한 지방신문의 엉터리 보도내용을 인용한 것이었다. 모스크바 회의 때 미국은 한반도의 20년 신탁통치를 제안했고, 소련은 반대했다. 미국이 집요하게 주장하니까 짧게 하자고 해서 5년 신탁을 하자고 한 것이다. 그 신문 보도로 인해 친일-항일이 아니라 신탁-반탁 구도로 바뀐 것이다."
박 실장은 "당시 우익은 좌익에 대해 소련 말만 듣는 '괴뢰'(꼭두각시)라 했다"고 설명했다. 1948년 5월 10일 UN한국임시위원단의 감시 아래 치러진 총선거 과정에 대해 설명했다.
"당시 좌우스펙트럼부터 살펴보자. 제일 오른쪽은 친일파 정당인 한민당(한국민주당)의 이승만이고, 그 다음이 김구, 1940년대 임시정부 건국강령을 만든 조소앙, 중도우파의 안재홍, 교회장로였던 김규식까지 우파였고, 여운형은 중도좌파였으며, 그 다음 백남운(신민당), 박헌영(남로당)으로 좌파였다. 1946년 5월 이후 국면은 중도우파(김규식)와 중도좌파(여운형)가 손잡고 정세를 돌파하려고 했던 시기다. 그런데 어떻게 좌우갈등이냐. 1948년 5월 10일 총선거는 좌익만 반대한 게 아니라, 김구 조소앙 안재홍 김규식은 보이콧하며 출마를 하지 않았다. 이승만이 이끄는 한민당과 무소속이 출마했던 것이다. 그 시기는 좌우갈등이 아니라 분단정부냐 통일정부가 핵심이었다."
박 실장은 "우리나라 수구보수는 자본주의 지지에다 '반공'이고, 분단정부론이며, 거기다가 다른 나라에는 없는 '친일'이 있다"며 "이승만은 친일은 아니지만 해방 뒤에 친일세력을 키웠고, 한민당 계열이 대한민국 공화국 제1세력을 주도했으며, 오늘날 여당의 뿌리"라고 분석했다.
박정희의 친일행적에다 전두환은 5․16쿠데타 직후 '육사 생도들은 혁명을 지지한다'는 가두시위를 조직했던 책임자였다는 사실 등에 대해서도 박 실장은 설명했다. 그는 "이순자(전두환 부인) 아버지는 일본 만주군 군관학교 하사관 출신이었다"는 말도 했다.
YS 3당 합당은 어떻게 봐야 하나?
그는 "YS(김영삼)가 3당합당 하기 전까지는 민주냐 독재냐가 기본구도였는데 그 뒤부터 지역에서 지지하던 사람들까지 보수수구로 가버렸고, 지역감정으로 왜곡되었으며, 수구세력이 계속 살아남게 되었다"며 "보수와 수구는 서로 통하는데 그것은 '분단'과 '반공'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보수수구세력이 해온 장사는 '분단'이었고, 항상 '안보'였다"며 "정치적 위기 때마다 북한을 이용한 '북풍'을 해 왔다, 그런데 그것이 지금은 먹히지 않는다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제 그런 게 먹히지 않는 시대 때문에 교과서를 만든 것이다. 6․25를 체험했던 부모들은 별도의 교육을 하지 않아도 어릴 때부터 '반공노래'를 불렀다. 지금 20대한테는 6․25를 설명해줄 세대가 없다. 아이들은 '반공'이나 '공산당이 싫어요'를 모르는 세대다. 그리고 핵가족화가 되면서 가부장제가 무너졌다.
보수수구세력한테는 중요한 3가지 사건이 있었다. 6․15와 10․4공동선언이 나오면서 아이들 굳이 북한을 미워할 이유가 없게 되었다. 기성세대는 고무풍선에 삐라를 넣었는데 젊은세대는 꽃씨를 넣어 보내자고 한 것이다. 6․15선언 뒤부터 북한이 증오가 아니라 사랑의 대상으로 바뀐 것이다. 그래서 보수수세력은 김대중․노무현을 '좌빨정권'이라 했다."
보수수구한테 중요했던 나머지 두 사건은 '반미'와 '과거사 청산'이었다는 것. 그는 "효순이미선이 사건에 이어 미 쇠고기 수입파동이 불거지자 아이들은 '공산당이 싫어요'가 아니라 '미 쇠고기가 싫어요'라며 데모했고 유모차까지 나오니까 수구보수세력은 위기의식을 느꼈고, 그래서 '종북' '좌익'으로 몰아갔다"고 설명했다.
과거사 청산과 관련해, 그는 "친일인명사전이 나오면서 한국에서 판도라 상자가 열린 것이다, 그 전까지 기득권세력은 민족지도자나 반공투사, 조국근대화주자라고 했는데 그 사전이 나오니까 그들은 희망 대신에 쓰레기가 되었던 것"이라며 "거기다가 한국전쟁전후 민간인 학살사건에다 간첩용공사건도 조작이라는 사실이 드러났고, 그런 모든 내용들이 이제는 교과서에 실릴 단계까지 온 것"이라고 말했다.
박 실장은 "지금까지 수구보수세력을 지탱했던 역사적 사실들이 제대로 밝혀졌다, 그것은 단순히 보고서로 나오는 정도가 아니라, 교과서에 실릴 상황이 되었다"며 "피해자 명예회복과 진실에 대한 기억의 공공화로 가장 확실한 방법은 교과서다, 진실을 알게 될 후손들이 불안하다고 생각하던 시기에 이명박이 대통령이 된 것이다, 그 때 교과서를 뜯어고치자고 한 것"이라고 말했다.
"교학사 역사 교과서는 일본 식민사 책"
박한용 실장은 "교학사 교과서는 일본 식민사 책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내용이 많다, 코미디이고 전체가 거짓말이다"며 "안해 본 친일이 없는 김성수에 대해서는 글 한 편만 쓴 것처럼 표현해 놓았고, 유치진과 최남선 등 친일파도 미화해 놓았다"고 소개했다.
그는 "친일파에 대해서는 공과론을 펴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공과가 있다, 그렇게 되면 아무도 비판할 게 없게 된다, 교과서는 교묘하게 그런 내용을 실어놓았다"고 설명했다. 또 "그 책은 이승만 교과서다, 이승만은 11쪽에 걸쳐 42번이나 나온다, 안창호는 한번 나오는데 그것도 '부하들이 친일했다'면서 언급해 놓았다"며 "이승만과 김성수를 대한민국 1공화국 주도세력으로 묘사해 놓았다"고 말했다.
박 실장은 "교과서에 보면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법치주의 기본 약화'라거나 '수도이전' '안보 소홀' 등이라 설명해 놓았는데 그것은 '불법 대통령 이미지'를 갖도록 한 의도"라고 말했다.
"이 교과서가 궁극적으로 이야기 하는 것은 대한민국은 일제로부터 광복한 나라가 아니라는 것이고, '광복절'이 아니라 '건국절'로 하자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1945년 8월 15일부터 8년간을 건국운동 기간이라고 본다. '건국절'이라는 말은 친일했냐 항일했냐는 아무 의미가 없게 되고, 해방 이후 피나는 반공투쟁 속에 만들어진 나라라는 인식이다. 그들은 1945년 8․15 때문에 '생일상'을 못 받았는데, 1948년 8월 15일 '생일상'을 받고 싶어 한다."
박한용 실장은 "그들은 교과서를 통해 다음 대통령 선거에서 자기들을 찍을 유권자를 확보하려는 것이고, 자녀들까지 장악해서 재생산하겠다는 것이며, 그래서 엉터리 교과서를 만들어 낸 것"이라며 "건국절이 되면 건국공로자 수훈을 할 것이고, 그것을 하기 위해 대중적 지지를 받아야 하는 게 교과서라는 음모 속에 있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노동운동도 역사를 알아야 한다는 것. 그는 "노동운동 하는 사람들은 역사를 잘 모르고, 나하고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한다"며 "진보양심세력은 정의감은 앞서지만, '무식'하다, 그러나 보수수구세력은 머리가 좋고 고시 합격한 사람들도 많다, 그들은 교묘하게 선전선동한다, 가령 '산업화세력'이라는 말을 하는데, 그 말 속에는 노동자와 관계 없다, 고도의 속임수다"라고 설명했다.
1945년부터 3년간을 '대한민국건국성립기'로 보는 의도는?
그는 1945년 8월 15일부터 1948년 8월 15일 사이에 대해 설명했다. 새누리당은 이 시기는 '대한민국건국성립기'로 가려고 한다고 그는 말했다. 이때를 '좌우갈등시기'라고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
"해방3년은 좌우 갈등의 시대였다고 하는데, 아니다. 해방 직후 구도는 좌익이냐 우익이냐의 시대가 아니었다. 좌익이라도 독립운동하다 감옥간 사람들도 나왔다. 해방 직후는 친일이냐 항일이냐의 시대였다. 그래서 일제 강점기 경찰하고 교사했던 사람들도 도망을 갔다. 일제로부터 독립한 뒤는 일제협력자 청산이었다. 1945년 12월까지는 친일이냐 항일이냐가 기본 구도였다. 당시 좌우갈등이 있기는 했지만 적대적이지 않았고, 서로 경쟁하는 구도였지 죽이는 구도는 아니었다."
1945년 12월 나온 모스크바3상회의(미, 영, 소) 뒤부터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것. 그는 "5년간 한반도를 신탁통치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친탁-반탁이 대립했고, 좌익이 민족반역자로 몰렸다"고 말했다.
"모스크바 회의의 본질은 신탁통치가 본질이 아니다. 한국을 독립국가로 만드는 게 합의이고, 그 과정을 어떻게 만들어 나갈 것인지를 논의한 것이다. 대중들은 일제 통치도 억울한데 또 무슨 신탁이냐며 '신탁통치'로 굳어졌다. 그런데 좌익은 그 회의를 총체적으로 지지했다. 그러자 <동아일보>는 '신탁통치는 소련이 주장했다'고 보도했다. 최근에 드러났지만, 당시 세계 통신사도 그런 보도를 한 적이 없는데, 당시 <동아일보>는 미국의 한 지방신문의 엉터리 보도내용을 인용한 것이었다. 모스크바 회의 때 미국은 한반도의 20년 신탁통치를 제안했고, 소련은 반대했다. 미국이 집요하게 주장하니까 짧게 하자고 해서 5년 신탁을 하자고 한 것이다. 그 신문 보도로 인해 친일-항일이 아니라 신탁-반탁 구도로 바뀐 것이다."
박 실장은 "당시 우익은 좌익에 대해 소련 말만 듣는 '괴뢰'(꼭두각시)라 했다"고 설명했다. 1948년 5월 10일 UN한국임시위원단의 감시 아래 치러진 총선거 과정에 대해 설명했다.
"당시 좌우스펙트럼부터 살펴보자. 제일 오른쪽은 친일파 정당인 한민당(한국민주당)의 이승만이고, 그 다음이 김구, 1940년대 임시정부 건국강령을 만든 조소앙, 중도우파의 안재홍, 교회장로였던 김규식까지 우파였고, 여운형은 중도좌파였으며, 그 다음 백남운(신민당), 박헌영(남로당)으로 좌파였다. 1946년 5월 이후 국면은 중도우파(김규식)와 중도좌파(여운형)가 손잡고 정세를 돌파하려고 했던 시기다. 그런데 어떻게 좌우갈등이냐. 1948년 5월 10일 총선거는 좌익만 반대한 게 아니라, 김구 조소앙 안재홍 김규식은 보이콧하며 출마를 하지 않았다. 이승만이 이끄는 한민당과 무소속이 출마했던 것이다. 그 시기는 좌우갈등이 아니라 분단정부냐 통일정부가 핵심이었다."
박 실장은 "우리나라 수구보수는 자본주의 지지에다 '반공'이고, 분단정부론이며, 거기다가 다른 나라에는 없는 '친일'이 있다"며 "이승만은 친일은 아니지만 해방 뒤에 친일세력을 키웠고, 한민당 계열이 대한민국 공화국 제1세력을 주도했으며, 오늘날 여당의 뿌리"라고 분석했다.
박정희의 친일행적에다 전두환은 5․16쿠데타 직후 '육사 생도들은 혁명을 지지한다'는 가두시위를 조직했던 책임자였다는 사실 등에 대해서도 박 실장은 설명했다. 그는 "이순자(전두환 부인) 아버지는 일본 만주군 군관학교 하사관 출신이었다"는 말도 했다.
YS 3당 합당은 어떻게 봐야 하나?
그는 "YS(김영삼)가 3당합당 하기 전까지는 민주냐 독재냐가 기본구도였는데 그 뒤부터 지역에서 지지하던 사람들까지 보수수구로 가버렸고, 지역감정으로 왜곡되었으며, 수구세력이 계속 살아남게 되었다"며 "보수와 수구는 서로 통하는데 그것은 '분단'과 '반공'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보수수구세력이 해온 장사는 '분단'이었고, 항상 '안보'였다"며 "정치적 위기 때마다 북한을 이용한 '북풍'을 해 왔다, 그런데 그것이 지금은 먹히지 않는다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제 그런 게 먹히지 않는 시대 때문에 교과서를 만든 것이다. 6․25를 체험했던 부모들은 별도의 교육을 하지 않아도 어릴 때부터 '반공노래'를 불렀다. 지금 20대한테는 6․25를 설명해줄 세대가 없다. 아이들은 '반공'이나 '공산당이 싫어요'를 모르는 세대다. 그리고 핵가족화가 되면서 가부장제가 무너졌다.
보수수구세력한테는 중요한 3가지 사건이 있었다. 6․15와 10․4공동선언이 나오면서 아이들 굳이 북한을 미워할 이유가 없게 되었다. 기성세대는 고무풍선에 삐라를 넣었는데 젊은세대는 꽃씨를 넣어 보내자고 한 것이다. 6․15선언 뒤부터 북한이 증오가 아니라 사랑의 대상으로 바뀐 것이다. 그래서 보수수세력은 김대중․노무현을 '좌빨정권'이라 했다."
보수수구한테 중요했던 나머지 두 사건은 '반미'와 '과거사 청산'이었다는 것. 그는 "효순이미선이 사건에 이어 미 쇠고기 수입파동이 불거지자 아이들은 '공산당이 싫어요'가 아니라 '미 쇠고기가 싫어요'라며 데모했고 유모차까지 나오니까 수구보수세력은 위기의식을 느꼈고, 그래서 '종북' '좌익'으로 몰아갔다"고 설명했다.
과거사 청산과 관련해, 그는 "친일인명사전이 나오면서 한국에서 판도라 상자가 열린 것이다, 그 전까지 기득권세력은 민족지도자나 반공투사, 조국근대화주자라고 했는데 그 사전이 나오니까 그들은 희망 대신에 쓰레기가 되었던 것"이라며 "거기다가 한국전쟁전후 민간인 학살사건에다 간첩용공사건도 조작이라는 사실이 드러났고, 그런 모든 내용들이 이제는 교과서에 실릴 단계까지 온 것"이라고 말했다.
박 실장은 "지금까지 수구보수세력을 지탱했던 역사적 사실들이 제대로 밝혀졌다, 그것은 단순히 보고서로 나오는 정도가 아니라, 교과서에 실릴 상황이 되었다"며 "피해자 명예회복과 진실에 대한 기억의 공공화로 가장 확실한 방법은 교과서다, 진실을 알게 될 후손들이 불안하다고 생각하던 시기에 이명박이 대통령이 된 것이다, 그 때 교과서를 뜯어고치자고 한 것"이라고 말했다.
"교학사 역사 교과서는 일본 식민사 책"
박한용 실장은 "교학사 교과서는 일본 식민사 책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내용이 많다, 코미디이고 전체가 거짓말이다"며 "안해 본 친일이 없는 김성수에 대해서는 글 한 편만 쓴 것처럼 표현해 놓았고, 유치진과 최남선 등 친일파도 미화해 놓았다"고 소개했다.
그는 "친일파에 대해서는 공과론을 펴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공과가 있다, 그렇게 되면 아무도 비판할 게 없게 된다, 교과서는 교묘하게 그런 내용을 실어놓았다"고 설명했다. 또 "그 책은 이승만 교과서다, 이승만은 11쪽에 걸쳐 42번이나 나온다, 안창호는 한번 나오는데 그것도 '부하들이 친일했다'면서 언급해 놓았다"며 "이승만과 김성수를 대한민국 1공화국 주도세력으로 묘사해 놓았다"고 말했다.
박 실장은 "교과서에 보면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법치주의 기본 약화'라거나 '수도이전' '안보 소홀' 등이라 설명해 놓았는데 그것은 '불법 대통령 이미지'를 갖도록 한 의도"라고 말했다.
"이 교과서가 궁극적으로 이야기 하는 것은 대한민국은 일제로부터 광복한 나라가 아니라는 것이고, '광복절'이 아니라 '건국절'로 하자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1945년 8월 15일부터 8년간을 건국운동 기간이라고 본다. '건국절'이라는 말은 친일했냐 항일했냐는 아무 의미가 없게 되고, 해방 이후 피나는 반공투쟁 속에 만들어진 나라라는 인식이다. 그들은 1945년 8․15 때문에 '생일상'을 못 받았는데, 1948년 8월 15일 '생일상'을 받고 싶어 한다."
박한용 실장은 "그들은 교과서를 통해 다음 대통령 선거에서 자기들을 찍을 유권자를 확보하려는 것이고, 자녀들까지 장악해서 재생산하겠다는 것이며, 그래서 엉터리 교과서를 만들어 낸 것"이라며 "건국절이 되면 건국공로자 수훈을 할 것이고, 그것을 하기 위해 대중적 지지를 받아야 하는 게 교과서라는 음모 속에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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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 9, 2013 - 지난 6월 24일 <CBS>에서 박성현 <뉴데일리> 주필과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교육홍보실장이 <백년전쟁> 다큐멘터리를 주제로 토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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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강규형 칼럼] 박한용의 무례와 왜곡...[쉰들러]가 누군지 알고나 말하라!
입만 열면 오류투성이, 민족문제연구소 사람들!
13 [강규형 칼럼] 박한용의 무례와 왜곡...[쉰들러]가 누군지 알고나 말하라!
입만 열면 오류투성이, 민족문제연구소 사람들!
제발 사실 알고 발언했으면...이번에도 뻔뻔한 해명 늘어 놓을건가?
[강규형 명지대 기록대학원 교수/역사학] 2013-07-08 14:42:42
▲ 강규형 교수ⓒ
지난 6월 24일 <CBS>에서
박성현 <뉴데일리> 주필과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교육홍보실장이
<백년전쟁> 다큐멘터리를 주제로 토론을 했다.
사회자인 정관용씨가 방송 서두에 서로 만나 본 사이냐고 물어봤다.
◇ <정관용> 만나보신 적은?
◆ <박성현> 이 일 때문에
며칠 전에 여기 CBS에서 한번 인사드렸죠.
만나서.
◇ <정관용> 이 토론 준비를 위해서?
◆ <박한용> 네, 저는 그 전부터 관심이 없었어요.
◇ <정관용> 왜요?
◆ <박한용> 저는 정식 뉴스만 보기도 바빠서.
◇ <정관용> 네?
◆ <박한용> 일반적인 뉴스 보기에도 바쁜데.
나중에 <뉴데일리>라는 게 있다는 거는 나중에 알았습니다.
◇ <정관용> 그러니까 박 주필님한테 관심이 없었다?
◆ <박한용> 그렇죠.
◇ <정관용> 초반부터 신경전을 펼치시고 있는 것 같네요.
◆ <박한용> 사실을 정직하게 얘기해야 되니까요.
한마디로 매우 무례한 발언이었다.
그렇게 “사실을 정직하게 얘기”한다는 박한용 실장이
의도적인지 아니면 진짜 헷갈려서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며칠 전 방송에서 거짓을 얘기했다.
7월 5일 <EBS>에서 방송 된 국사교육토론에서
공교롭게도 <박성현>과 <박한용>은 상대패널로 출연했다.
박성현 <뉴데일리> 주필과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교육홍보실장이
<백년전쟁> 다큐멘터리를 주제로 토론을 했다.
사회자인 정관용씨가 방송 서두에 서로 만나 본 사이냐고 물어봤다.
◇ <정관용> 만나보신 적은?
◆ <박성현> 이 일 때문에
며칠 전에 여기 CBS에서 한번 인사드렸죠.
만나서.
◇ <정관용> 이 토론 준비를 위해서?
◆ <박한용> 네, 저는 그 전부터 관심이 없었어요.
◇ <정관용> 왜요?
◆ <박한용> 저는 정식 뉴스만 보기도 바빠서.
◇ <정관용> 네?
◆ <박한용> 일반적인 뉴스 보기에도 바쁜데.
나중에 <뉴데일리>라는 게 있다는 거는 나중에 알았습니다.
◇ <정관용> 그러니까 박 주필님한테 관심이 없었다?
◆ <박한용> 그렇죠.
◇ <정관용> 초반부터 신경전을 펼치시고 있는 것 같네요.
◆ <박한용> 사실을 정직하게 얘기해야 되니까요.
한마디로 매우 무례한 발언이었다.
그렇게 “사실을 정직하게 얘기”한다는 박한용 실장이
의도적인지 아니면 진짜 헷갈려서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며칠 전 방송에서 거짓을 얘기했다.
7월 5일 <EBS>에서 방송 된 국사교육토론에서
공교롭게도 <박성현>과 <박한용>은 상대패널로 출연했다.
이명희 공주대 교수와 도면회 대전대 교수가 다른 패널로 참여했다.
<박성현> 주필이
일제강점기 시절 사람들이 택할 수 있는 인생경로를 대단히 단순화한
한 한국사 교과서의 삽화를 보이면서,
이 교과서의 논리적 허점을 설명을 했다.
▲ 미래엔이 펴낸 고교 한국사 교과서 269 페이지에 수록된 삽화.ⓒ
박 주필이,
나치 당원이었지만 유태인들을 많이 구한 오스카 쉰들러 같은 사람은,
이 구도(위 교과서 삽화)에서 아무런 자리를 차지할 수 없다는 것을 지적하자,
박한용 실장은 발언에 끼어들며
“쉰들러는 다시 명예가 취소가 됐습니다. ...
이번 보도에 (따르면) 다 취소됐어요.
그 이후에 더 나쁜 일을 했어요...
며칠 전에 나온 뉴스에 나왔어요"라는
반박을 했다.
그런가?
<쉰들러>에게 여러 문제가 많았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지만,
유태인을 살린 그의 명예가 취소됐다는 뉴스는 본 적이 없었다.
박한용 실장이 얘기한 그 <쉰들러>는 <오스카 쉰들러>가 아니라
바로 [이탈리아 판 쉰들러]라 불리어진 <지오반니 팔라투치>(Giovanni Palatucci)였다.
<팔라투치>는
1940∼1944년까지 크로아티아의 리예카(당시는 이탈리아령)의 경찰 총책임자로 있으면서
유대인을 많이 구한 것으로 그동안 알려졌었다.
그런데 이번에 새로운 기록이 공개되면서,
그의 공적이 조작됐다는 것이 밝혀져서
미국 워싱턴에 있는 홀로코스트박물관은
박물관에 전시된 팔라투치 관련 전시물을 최근 모조리 철거했다는 기사가 며칠 전 나왔었다.
자 그러면 박한용 실장의 방송에서의 왜곡발언은 의도된 왜곡일까,
아니면 사실에 정확치 않은 실수였을까?
그것은 본인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그의 단순한 이분법적 사고 속에는
<오스카 쉰들러>와 같은 회색지대에 살았던 사람,
그러나 인간적 양심에 따라 옳은 일을 한 사람의 위치는 아마도 없었던 것이 아닐까?
그래서 무조건 반박하고 싶어서
그런 무리한(그리고 결과적으로 틀린) 반론이 나오지 않았을까?
씁쓸한 발언이었다.
어쨌든 틀린 발언이었기에 청취자들은 박한용 실장 본인의 해명을 듣고 싶을 것이다.
“내가 언제 ’독일 쉰들러‘라고 했어요?”라는 식의
어이없는 답변은 없기를 바란다.
----------------------
Kjhworker
2013-07-09 08:00:19
고교한국사책에 저런 만화가 실려있다는 말인가?
대체 어이가 없다는 말도 이젠 충분하지 않는 막장 국사편찬회!
저렇게 정신나간 종북 민족연구소들은 사형을 시켜야 하지 않을지?
말로 거짓말을 가르치는것에 대한 죄악에 경각을 주어야 한다
교육자들이 양심을 팔게만든 역사왜곡이 버젓히
고교교과서에까지 기록될수있았다니
경악할 정도다
그러고도 일본만 역사왜곡한다고 나무랄 처지인지?
총 댓글 수 20개평점 : 0.00
최신순
공감순
ace
약 3년 전3개월 전
메뉴
아무리 역사는 후손이 판단한다고 하지만 작금의 역사학자들은 모두 이성을 잃은 복사기 같은 느낌이 든다. 일본이 과거의 사실을 왜곡하고 날조하는 것이 그대들이 잘못 하고 있음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해 본적은 없는가. 당신들이 후손들에게 진실을 알려주고 싶다면 아무것도 첨가하지 마라! 있는 그대로 사실 그대로 알려주어야 한다. 진실에 대한 탐구가 지나치면 병적인 에고이즘으로 취급당하게 된다. 물론 그 역시 당신들의 후손들이 평가하겠지만.. 역사를 왜곡하고 날조하려는 방식, 단순히 역사를 게임으로 인식하고 혈액형 나열하듯 구분하는 당신들.. 이제 그만 펜을 놓고 역사책을 다시 들어야 한다.
답글
공감1
gims125
약 4년 전4개월 전
메뉴
Twitter
tnrntlsansekqek.
답글
공감1
묘아
약 4년 전4개월 전
메뉴
Me2day
잘못 알고 실수한 발언인건 맞는데, 교과서가 뭐가 잘못되었는지 모르겠군요....
한국사 교과서에 나치당원이였으나, 사상에 동조하지 않고 유태인을 구한 그런 유형이 포함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국내에도 친일 경력이 있으나 그에 저항하여 비밀스럽게 독립운동을 한 여운형 같은 사람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쉰들러같은 우파는 존재 하지도 않습니다. 만약 그걸 교과서에 서술한다면 오히려 좌파 위주의 서술이 되죠.
답글
공감1
도라지
약 4년 전4개월 전
메뉴
\묘아\ 김성수 모르세요? 독립자금댄것 모르시나베.
공감0
innisfreez
약 4년 전4개월 전
메뉴
고교 학습능력을 최종적으로 체크하는 수능에서 마저 국사가 사라져가는
마당에 그나마 남아있는 한국사 교과서에 담긴 내용이 저 모양이라니..
윗물이 이모양인데 어찌 맑은 아랫물을 기대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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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마니아
약 4년 전4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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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2day
좌빨 종빨들은 대화보다는 그냥 목을 뎅강! 개작두를 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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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jinon123
약 4년 전4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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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학자들은 아이큐가 3자리 이상이거나 제정신이거나 학식이 있으면 못합니다. 진실을 알고도 저런 매국노짓을 할 수가 없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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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df4242
약 4년 전4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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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현, 박한용, 강규형, 니들 다 똑같은놈들끼리 뭘 서로 잘낫다고 나불대는겨?
그리고 친일파이면서 한국사람들을 도와준 사람이 있으려나..? 누구? 각시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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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df4242
약 4년 전4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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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맞다..각시탈도 나중에는 친일파에서 나왔지..
박 주필이,
나치 당원이었지만 유태인들을 많이 구한 오스카 쉰들러 같은 사람은,
이 구도(위 교과서 삽화)에서 아무런 자리를 차지할 수 없다는 것을 지적하자,
박한용 실장은 발언에 끼어들며
“쉰들러는 다시 명예가 취소가 됐습니다. ...
이번 보도에 (따르면) 다 취소됐어요.
그 이후에 더 나쁜 일을 했어요...
며칠 전에 나온 뉴스에 나왔어요"라는
반박을 했다.
그런가?
<쉰들러>에게 여러 문제가 많았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지만,
유태인을 살린 그의 명예가 취소됐다는 뉴스는 본 적이 없었다.
박한용 실장이 얘기한 그 <쉰들러>는 <오스카 쉰들러>가 아니라
바로 [이탈리아 판 쉰들러]라 불리어진 <지오반니 팔라투치>(Giovanni Palatucci)였다.
<팔라투치>는
1940∼1944년까지 크로아티아의 리예카(당시는 이탈리아령)의 경찰 총책임자로 있으면서
유대인을 많이 구한 것으로 그동안 알려졌었다.
그런데 이번에 새로운 기록이 공개되면서,
그의 공적이 조작됐다는 것이 밝혀져서
미국 워싱턴에 있는 홀로코스트박물관은
박물관에 전시된 팔라투치 관련 전시물을 최근 모조리 철거했다는 기사가 며칠 전 나왔었다.
자 그러면 박한용 실장의 방송에서의 왜곡발언은 의도된 왜곡일까,
아니면 사실에 정확치 않은 실수였을까?
그것은 본인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그의 단순한 이분법적 사고 속에는
<오스카 쉰들러>와 같은 회색지대에 살았던 사람,
그러나 인간적 양심에 따라 옳은 일을 한 사람의 위치는 아마도 없었던 것이 아닐까?
그래서 무조건 반박하고 싶어서
그런 무리한(그리고 결과적으로 틀린) 반론이 나오지 않았을까?
씁쓸한 발언이었다.
어쨌든 틀린 발언이었기에 청취자들은 박한용 실장 본인의 해명을 듣고 싶을 것이다.
“내가 언제 ’독일 쉰들러‘라고 했어요?”라는 식의
어이없는 답변은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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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jhworker
2013-07-09 08:00:19
고교한국사책에 저런 만화가 실려있다는 말인가?
대체 어이가 없다는 말도 이젠 충분하지 않는 막장 국사편찬회!
저렇게 정신나간 종북 민족연구소들은 사형을 시켜야 하지 않을지?
말로 거짓말을 가르치는것에 대한 죄악에 경각을 주어야 한다
교육자들이 양심을 팔게만든 역사왜곡이 버젓히
고교교과서에까지 기록될수있았다니
경악할 정도다
그러고도 일본만 역사왜곡한다고 나무랄 처지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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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e
약 3년 전3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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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역사는 후손이 판단한다고 하지만 작금의 역사학자들은 모두 이성을 잃은 복사기 같은 느낌이 든다. 일본이 과거의 사실을 왜곡하고 날조하는 것이 그대들이 잘못 하고 있음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해 본적은 없는가. 당신들이 후손들에게 진실을 알려주고 싶다면 아무것도 첨가하지 마라! 있는 그대로 사실 그대로 알려주어야 한다. 진실에 대한 탐구가 지나치면 병적인 에고이즘으로 취급당하게 된다. 물론 그 역시 당신들의 후손들이 평가하겠지만.. 역사를 왜곡하고 날조하려는 방식, 단순히 역사를 게임으로 인식하고 혈액형 나열하듯 구분하는 당신들.. 이제 그만 펜을 놓고 역사책을 다시 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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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ms125
약 4년 전4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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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nrntlsansekq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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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아
약 4년 전4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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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2day
잘못 알고 실수한 발언인건 맞는데, 교과서가 뭐가 잘못되었는지 모르겠군요....
한국사 교과서에 나치당원이였으나, 사상에 동조하지 않고 유태인을 구한 그런 유형이 포함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국내에도 친일 경력이 있으나 그에 저항하여 비밀스럽게 독립운동을 한 여운형 같은 사람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쉰들러같은 우파는 존재 하지도 않습니다. 만약 그걸 교과서에 서술한다면 오히려 좌파 위주의 서술이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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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지
약 4년 전4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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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아\ 김성수 모르세요? 독립자금댄것 모르시나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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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nisfreez
약 4년 전4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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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학습능력을 최종적으로 체크하는 수능에서 마저 국사가 사라져가는
마당에 그나마 남아있는 한국사 교과서에 담긴 내용이 저 모양이라니..
윗물이 이모양인데 어찌 맑은 아랫물을 기대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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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마니아
약 4년 전4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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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2day
좌빨 종빨들은 대화보다는 그냥 목을 뎅강! 개작두를 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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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jinon123
약 4년 전4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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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학자들은 아이큐가 3자리 이상이거나 제정신이거나 학식이 있으면 못합니다. 진실을 알고도 저런 매국노짓을 할 수가 없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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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df4242
약 4년 전4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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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현, 박한용, 강규형, 니들 다 똑같은놈들끼리 뭘 서로 잘낫다고 나불대는겨?
그리고 친일파이면서 한국사람들을 도와준 사람이 있으려나..? 누구? 각시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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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df4242
약 4년 전4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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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맞다..각시탈도 나중에는 친일파에서 나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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