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할머니들은 국제 창녀였다...! 일본을 욕할 주제가 못된다...! - 토론마당 : 커뮤니티 : 한겨레
위안부 할머니들은 국제 창녀였다...! 일본을 욕할 주제가 못된다...!
정치한토마 도사 (saram1232)
211.*.19.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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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4124
댓글 3
2013.10.04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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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말한다...!
일본군 앞잡이를 대통령으로 뽑고 그 앞잡이의 딸을 또 대통령으로 뽑는 나라에서는 일본에게 위안부가 피해자였다고 말할 자존심도 체면도 없는 여자들이니 아마도 일본의 주장대로 일제시대 때에도 명예나 자존심을 내팽개쳐 버리고 돈을 벌기 위해서 사창가에서 몸을 파는 여자들이 아니었을까? 박정희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뽑는 순간 이미 위안부 할머니들은 국제 창녀로 전락해 버린것이다.
중국에서는 친일 앞잡이를 개다리라고 부르는데 죽국 사람들이나 북한 사람들이 과연 친일 앞잡이 하던 자들과 그런 자의 딸을 자신들의 대통령을 뽑을 수 있을까? 최소한 그 정도의 자존심이 있는 나라만이 일본에게 항의를 할 수 있는 주제가 되는 것이다. 일본의 침략을 크나큰 축복이자 영광이었다고 말하는 이런 나라에서는 일제의 위안부를 욕할 주제가 못되는 것이다...!
일제의 만행을 욕하기 전에 그런 만행에 앞장서서 동조하고 협조하던 자기 나라의 매국노를 욕하는 것이 먼저가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매국노들을 욕하기는 커녕 5천년 역사의 최고의 영웅이라는 둥 총에 맞아 뒤진 놈의 딸을 또 대통령으로 뽑는 머저리들이 무슨 낯으로 일본군 위안부를 욕할 수 있을까? 걍 잠자코 있든지 박정희, 박근혜같은 자들을 욕하고 있어라...! 그런 친일파들이 조선을 일본에 바쳐서 위안부가 생기지 않았는가? 어찌 자신들의 잘못을 탓하지 않고 남탓만 하고 있는가? 딱하지만 그 할머니들도 꽤나 분간을 못하는 꼴통들이었나보다...! ㅉㅉ
(단,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뽑지않은 위안부 할머니들은 꼴통에서 제외합니다..!)
-돌도사-
-----------------------[ 관련 기사 참조 ]-----------------
"하루 10시간 전투기 닦고 또 닦고 중노동"
"日 미쓰비시 임금 보낸다더니… 68년 지나"
일본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들 눈물의 법정 증언
"'일본군 위안부'라는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평생을 눈물로 보냈습니다."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이 일제 전범기업인 미쓰비시 중공업을 상대로 낸 위자료 청구소송의 결심 공판이 열린 광주지법 202법정. 일제 강점기 때 근로정신대로 일본에 끌려가 강제노역에 동원된 양금덕(82) 할머니는 당시 피해 상황을 그림을 그리듯이 상세하게 토해냈다. 일본의 만행이 생생하게 법정에서 드러난 것은 68년 만에 처음이다.
양 할머니의 불행은 광복을 1년여 앞둔 1944년 5월, 전남 나주초등학교에서 일본 헌병과 교장의 강압에서 비롯됐다. 교장은 일본 헌병을 학교로 데려와 "이분 말을 잘 들으면 중학교도 갈 수 있고 돈도 많이 벌 수 있다"며 자원자를 모집했다. 하지만 지원자가 아무도 없자 교장은 당시 13살로 초등학교 6학년 회장이던 양 할머니를 지목했고 어쩔 수 없이 손을 들고 말았다.
이를 알게 된 아버지가 반대했지만 일본 헌병이 "한번 손을 든 학생이 일본에 가지 않을 경우 부모가 감옥에 가야 한다"는 협박에 못이겨 작별 인사도 나누지 못한 채 일본으로 가는 배에 몸을 실었다. 이때 양 할머니처럼 강압에 못이겨 일본으로 간 초등학생들은 모두 24명에 달했다.
양 할머니가 도착한 곳은 일본 나고야 미쓰비시 중공업 항공기 제작소였다. 일본은 이런 식으로 어린 소년소녀들을 꾀어 전쟁 물자를 생산, 정비하는 근로정신대를 모집해 일본 군수공장으로 보냈다.
양 할머니는 이곳에서 전투기를 닦고 정비하는 일을 했다. 하루 10시간이 넘는 중노동과 배고픔에 시달려야 했다. 양 할머니는 밤마다 계속된 연합군의 공습과 지진으로 죽음의 고비를 여러번 넘겼다.
4일 광주지법 제12민사부 심리로 열린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양금덕 할머니(오른쪽 두번째) 등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이 나란히 앉아 있다.
뉴시스 제공
광복 후 두 달 만인 1945년 10월, 양 할머니는 그리던 고향의 품으로 돌아왔다. 고향 사람들은 많은 돈을 벌어왔을 것으로 여겼지만 그의 손에는 한푼도 쥐어있지 않았다. 양 할머니는 일본의 미쓰비시 기업이 한국으로 돌아가 있으면 그동안 일한 임금을 송금해 주겠다는 말을 굳게 믿었다. 하지만 68년이 지난 지금, 양 할머니는 일본으로부터 1원 한장 받지 못하고 있다.
양 할머니는 귀국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동네에서 이상한 소문이 도는 것을 들었다. 일본군의 성 노예인 위안부로 지냈다는 터무니없는 말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전남 화순으로 시집을 갔지만 결혼 10년 만에 남편은 어디서 들었는지 다짜고짜 위안부와 살 수 없다며 집을 나가버렸다. 그는 나홀로 행상을 하며 4남매를 키웠다. 양 할머니는 평생을 위안부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일본 시민단체인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 근로정신대 소송 지원회'가 1989년 일본 정부에 근로정신대의 임금을 달라는 소송을 내자 양 할머니는 위안부 멍에를 벗어날 수 있었다. 일본 시민단체는 24년째 소송을 벌였지만 일본 후생성으로부터 1엔(1300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아내는 데 그쳤다.
양 할머니는 "한·일 협정으로 우리 대신 정부가 배상금을 받아서 도로를 만들고 공장을 짓는 등 부국의 초석을 다졌으니 우리 정부가 적설한 보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법정에서는 양 할머니처럼 근로정신대로 끌려가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5명이 당시의 참상을 털어놔 법정을 숙연케 했다.
양 할머니를 포함한 원고들은 미쓰비시를 상대로 각각 2억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선고는 다음달 1일이다.
한토마 도사 (saram1232)211.*.19.132
hani추천받은수 31078
친박과 박근혜가 주도하는 새누리보다 더 일인 중심당 안철수당...! ^^
지지도 하락하는 안철수는 지금 진퇴양난...!
위안부 할머니들은 국제 창녀였다...! 일본을 욕할 주제가 못된다...!
정치한토마 도사 (saram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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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앞잡이를 대통령으로 뽑고 그 앞잡이의 딸을 또 대통령으로 뽑는 나라에서는 일본에게 위안부가 피해자였다고 말할 자존심도 체면도 없는 여자들이니 아마도 일본의 주장대로 일제시대 때에도 명예나 자존심을 내팽개쳐 버리고 돈을 벌기 위해서 사창가에서 몸을 파는 여자들이 아니었을까? 박정희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뽑는 순간 이미 위안부 할머니들은 국제 창녀로 전락해 버린것이다.
중국에서는 친일 앞잡이를 개다리라고 부르는데 죽국 사람들이나 북한 사람들이 과연 친일 앞잡이 하던 자들과 그런 자의 딸을 자신들의 대통령을 뽑을 수 있을까? 최소한 그 정도의 자존심이 있는 나라만이 일본에게 항의를 할 수 있는 주제가 되는 것이다. 일본의 침략을 크나큰 축복이자 영광이었다고 말하는 이런 나라에서는 일제의 위안부를 욕할 주제가 못되는 것이다...!
일제의 만행을 욕하기 전에 그런 만행에 앞장서서 동조하고 협조하던 자기 나라의 매국노를 욕하는 것이 먼저가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매국노들을 욕하기는 커녕 5천년 역사의 최고의 영웅이라는 둥 총에 맞아 뒤진 놈의 딸을 또 대통령으로 뽑는 머저리들이 무슨 낯으로 일본군 위안부를 욕할 수 있을까? 걍 잠자코 있든지 박정희, 박근혜같은 자들을 욕하고 있어라...! 그런 친일파들이 조선을 일본에 바쳐서 위안부가 생기지 않았는가? 어찌 자신들의 잘못을 탓하지 않고 남탓만 하고 있는가? 딱하지만 그 할머니들도 꽤나 분간을 못하는 꼴통들이었나보다...! ㅉㅉ
(단,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뽑지않은 위안부 할머니들은 꼴통에서 제외합니다..!)
-돌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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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10시간 전투기 닦고 또 닦고 중노동"
"日 미쓰비시 임금 보낸다더니… 68년 지나"
일본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들 눈물의 법정 증언
"'일본군 위안부'라는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평생을 눈물로 보냈습니다."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이 일제 전범기업인 미쓰비시 중공업을 상대로 낸 위자료 청구소송의 결심 공판이 열린 광주지법 202법정. 일제 강점기 때 근로정신대로 일본에 끌려가 강제노역에 동원된 양금덕(82) 할머니는 당시 피해 상황을 그림을 그리듯이 상세하게 토해냈다. 일본의 만행이 생생하게 법정에서 드러난 것은 68년 만에 처음이다.
양 할머니의 불행은 광복을 1년여 앞둔 1944년 5월, 전남 나주초등학교에서 일본 헌병과 교장의 강압에서 비롯됐다. 교장은 일본 헌병을 학교로 데려와 "이분 말을 잘 들으면 중학교도 갈 수 있고 돈도 많이 벌 수 있다"며 자원자를 모집했다. 하지만 지원자가 아무도 없자 교장은 당시 13살로 초등학교 6학년 회장이던 양 할머니를 지목했고 어쩔 수 없이 손을 들고 말았다.
이를 알게 된 아버지가 반대했지만 일본 헌병이 "한번 손을 든 학생이 일본에 가지 않을 경우 부모가 감옥에 가야 한다"는 협박에 못이겨 작별 인사도 나누지 못한 채 일본으로 가는 배에 몸을 실었다. 이때 양 할머니처럼 강압에 못이겨 일본으로 간 초등학생들은 모두 24명에 달했다.
양 할머니가 도착한 곳은 일본 나고야 미쓰비시 중공업 항공기 제작소였다. 일본은 이런 식으로 어린 소년소녀들을 꾀어 전쟁 물자를 생산, 정비하는 근로정신대를 모집해 일본 군수공장으로 보냈다.
양 할머니는 이곳에서 전투기를 닦고 정비하는 일을 했다. 하루 10시간이 넘는 중노동과 배고픔에 시달려야 했다. 양 할머니는 밤마다 계속된 연합군의 공습과 지진으로 죽음의 고비를 여러번 넘겼다.
4일 광주지법 제12민사부 심리로 열린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양금덕 할머니(오른쪽 두번째) 등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이 나란히 앉아 있다.
뉴시스 제공
광복 후 두 달 만인 1945년 10월, 양 할머니는 그리던 고향의 품으로 돌아왔다. 고향 사람들은 많은 돈을 벌어왔을 것으로 여겼지만 그의 손에는 한푼도 쥐어있지 않았다. 양 할머니는 일본의 미쓰비시 기업이 한국으로 돌아가 있으면 그동안 일한 임금을 송금해 주겠다는 말을 굳게 믿었다. 하지만 68년이 지난 지금, 양 할머니는 일본으로부터 1원 한장 받지 못하고 있다.
양 할머니는 귀국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동네에서 이상한 소문이 도는 것을 들었다. 일본군의 성 노예인 위안부로 지냈다는 터무니없는 말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전남 화순으로 시집을 갔지만 결혼 10년 만에 남편은 어디서 들었는지 다짜고짜 위안부와 살 수 없다며 집을 나가버렸다. 그는 나홀로 행상을 하며 4남매를 키웠다. 양 할머니는 평생을 위안부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일본 시민단체인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 근로정신대 소송 지원회'가 1989년 일본 정부에 근로정신대의 임금을 달라는 소송을 내자 양 할머니는 위안부 멍에를 벗어날 수 있었다. 일본 시민단체는 24년째 소송을 벌였지만 일본 후생성으로부터 1엔(1300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아내는 데 그쳤다.
양 할머니는 "한·일 협정으로 우리 대신 정부가 배상금을 받아서 도로를 만들고 공장을 짓는 등 부국의 초석을 다졌으니 우리 정부가 적설한 보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법정에서는 양 할머니처럼 근로정신대로 끌려가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5명이 당시의 참상을 털어놔 법정을 숙연케 했다.
양 할머니를 포함한 원고들은 미쓰비시를 상대로 각각 2억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선고는 다음달 1일이다.
한토마 도사 (saram1232)211.*.19.132
hani추천받은수 31078
친박과 박근혜가 주도하는 새누리보다 더 일인 중심당 안철수당...! ^^
지지도 하락하는 안철수는 지금 진퇴양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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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사님!
아, 글씨, 우리가 뽑은게 아니라, 지들이 멋대로 정해버린거 라 카이!
그 거짓말재이도독년을 우짜믄 좋겠심꺼?
댓글의 댓글 0 백두산 (hantoma45) 4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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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놈들의 만행을 보고 배우고 실천하는 친일파를 청산해야 할 까닭은?
뉴또라이처럼 역사왜곡질 하며 나라를 온통 왜놈들처럼 만행을 저즈르기 때문이다.
7푸니를 소각장 등에 갖다 내버려야 할 까닭은?
애비의 온갖 만행을 보고 배운 것을 그대로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다!
똥누리 애들을 박멸시켜야 하는 까닭은?
7푼이의 똥구멍 핥으면서 꼬리치는 똥개들이기 때문이며 망국배 년. 놈들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반통일, 반동족, 전쟁광 년.놈들이기 때문이다!!!
댓글의 댓글 0 백두산 (hantoma45) 4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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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버진 맏딸을 15년 연상 총각과 반강제 결혼시켰다. 당시로는 20~23살이 총각의 기본 결혼나이. 유부녀란 이유로 위안부로 끌려감을 막으신 것. 한편, 잘 살게 해준다는 면장질 제의에 극구 사양. 자꾸만 권유하기에 아버진 꾀를 내셨다. 왜놈들이 올 때쯤 입에 거품을 내며 버둥버둥거리시며 간질환자 행세. 그놈들끼리 하는 말, "안 되겠어! 면장질 시키면 안 돼! 간질병 환자잖아! 그리고 딸년도 유전 되었을 테니... 위안부 명단에서 아예 빼!
당시에 왜놈들에 붙어서 마을의 반일, 독립주의자들을 고자질하면서 친일 면장질 했더라면...
우리 집안은 서민이라는 고통 속에 살지은 않았을 것이다. 면장질 한 놈들의 집구석을 0.1%빼고는
오늘 날 이른바 상위층에 떵땅거리며 안 사는 집구석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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