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2-01
재조일본인 노동자 이소가야 스에지(磯谷季次)의 삶과 8.15 전후 조선사회 :: 기초학문자료센터
재조일본인 노동자 이소가야 스에지(磯谷季次)의 삶과 8.15 전후 조선사회 :: 기초학문자료센터
재조일본인 노동자 이소가야 스에지(磯谷季次)의 삶과 8.15 전후 조선사회
The Life of Isogaya-Sueji, Japanese laborer in Choseon and the Society of Choseon before and after August 15, 1945--
Year(selected) 2015 Year
Research period 1 Year (2015년 09월 01일 ~ 2016년 08월 31일)
chief of research 변은진 [ NRF 인문사회 연구책임 6회 수행 / 공동연구 5회 수행 / 학술논문 17편 게재 / 저역서 2권 저술 / 총 피인용 24회 ]
Executing Organization 한국방송통신대학교
the present condition of Project 종료
Research Summary
Goal
본 연구는 1930~40년대에 일본질소비료주식회사 흥남공장에서 근무하다가 노동운동사건에 연루되어 10년간 식민지 조선의 감옥생활을 하고 귀국 후에는 ‘북한민주화’에 관심을 갖고 문필활동을 전개했던 재조선 일본인 노동자 이소가야 스에지(磯谷季次, 1907~1998)의 전 생애를 구명하고, 특히 그의 인생에서 커다란 분기점이 된 1945년 일제패망 전후 조선과 일본의 상황을 살펴보면서 ‘8.15’의 다층위적인 의미를 재조명함을 목표로 한다. 이를 통해 제국과 식민지, 지배와 피지배, 협력과 저항 등으로 인식되는 일제강점기 조선사회와 한국근현대사의 심층에 접근하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
Expectation Effectiveness
본 연구는 타자인 일본인의 시선을 통해 한국의 근현대를 새롭게 구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식민지 조선과 관련을 맺고 활동했던 ‘제국’ 일본인의 다양한 모습에 관한 연구는 한국근현대사를 외부에서 내부로 들여다볼 수 있는 입지를 제공한다. 이를 통해 한국근현대사의 내면을 성찰적으로 재조명함과 동시에 근현대사 연구의 지평을 확장한다는 면에서 본 연구의 학문적 의의가 있다. 또한 인물 연구라는 형식으로 일제강점기 재조선 일본인의 경험과 기억을 비판적으로 탐색하는 과정을 통해, 양국 사이에 존재하는 역사적 갈등의 접점을 학문적으로 파악하고 그 해결과 대안을 위한 새로운 방법론의 모델을 제시할 수 있다. 특히 일제강점기 조선사회와 조선인에게 우호적으로 협조했던 일본인의 실체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와 소개는, 아래로부터의 한․일연대 모색을 위한 역사적 기원의 구명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는 향후 평화공존을 위한 역사적 대안 마련에 학문적 토대로 작용할 것이다.
Summary
이소가야 스에지는 1907년 일본 시즈오카현에서 10여 명의 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졸업 후 도쿄의 목재소 등에서 일하면서 틈나는 대로 책을 읽으며 문학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21세 때 징병되어 조선으로 건너와 함경북도 청진의 나남에 있는 조선주둔 일본군 제19사단에서 복무했다. 제대 후 일본질소 흥남공장의 노동자로 남아, 조선인 노동자와 함께 노동조합운동을 전개했다. 이 일로 1934년 검거되어(일명 ‘제2차 태평양노동조합 사건’) 약 10년간 식민지의 감옥을 경험했다. 1945년 8.15 이후에는 함흥에서 재조선 일본인의 귀국활동을 주도했으며 1947년 귀국했다. 그는 북쪽에 남은 동지들이 새로운 조국 건설에 매진하고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일본에서 또 다른 인생을 시작했으나, 6.25전쟁과 뒤이은 숙청과정을 거쳐 강화된 ‘김일성 왕조’에 큰 배신감을 느끼게 된다. 이후 북한의 민주화와 한반도 통일을 기원하면서 문필활동 등을 하다가 1998년 91세로 사망했다. 이와 같은 경력을 지닌 이소가야 스에지는 전후 일본사회의 대다수 재조일본인 출신들과 달리 ‘피해자 인식’에 갇혀 있지만은 않았던 독특한 인물이었다.
Research Summary
Korean
본 연구의 결과는 「재조일본인 노동자 이소가야 스에지를 통해 본 8.15와 귀환」이라는 형태로 초고가 집필되어, 현재 수정·보완 중에 있다. 조만간 학술지에 투고할 것이다. 38도선 이북의 함흥에서 8.15 직후 조선사회의 혼란을 경험하고 똑 같이 ‘탈출’이라는 고난의 경로를 거쳐 귀환한 이소가야 스에지의 경우, 전후 일본사회 내에서 ‘피해자 인식’에 갇혀 있지만은 않았던 독특한 인물이었다. 대개의 재조일본인 출신들과 달리 ‘식민자’, ‘가해자’에 대한 ‘저항자’로서의 정체성도 강하게 지니고 있었던 그의 식민지 체험, 그리고 이들과 공통된 8.15 직후의 ‘잔혹한’ 귀환 경험은 이후에도 계속 그의 발목을 잡았다. 이것이 그가 ‘제2의 고향’이라 여겼던 38도선 이북 북한사회에 계속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마지막 순간까지 문필활동 등을 통해 ‘민주화된 조선’을 기원했던 배경일 것이다.
English
The results of this study have been written in the form of "8.15(1945) and Repatriation through Japanese Worker Isogaya-Sueji", which is being revised. I will publish it in a journal soon. In the case of Isogaya, which experienced the chaos of Chosun society after 8.15 in Hamheung, north of 38, and returned through the path of the same ‘escape’, the unique and unconvinced It was a character. His colonial experience, which had a strong identity as a 'resister' to 'colonizers', unlike the common experience of returning 'cruel' shortly after 8.15. This would be the backdrop for his desire for "democratized Chosun" through his literary works until the last moment, with his continuing interest and affection for the North Korean society, which he regarded as the "second hometown".
Research result report
Abstract
한 사람의 자연인으로서의 이소가야 스에지의 삶을 보면, 식민지 조선과 전후(戰後)의 한반도라는 공간은 그의 전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90세를 넘게 살았던 그가 재조일본인으로 살았던 기간은 약 20년 정도이다. ‘황군(皇軍)’으로 징병되어 조선주둔 일본군으로 처음 한반도에 발을 디뎠던 그는 조선인의 입장에서 보면 분명 식민자이자 가해자로서의 출발이었다. 하지만 군 제대 후에도 조선에 남아 일본인 노동자로 생활하면서 동료들과 함께 조선의 독립과 해방을 위해 노력했던 그의 청년기는 ‘비국민’ 저항자로서의 세월이었다. 게다가 1945년 8.15 이후 한반도의 분단이라는 상황은, 또 다시 생을 마감할 때까지 그의 인생 후반기 삶을 규정해버렸다.
38도선 이북의 함흥에서 8.15 직후 조선사회의 혼란을 경험하고 똑 같이 ‘탈출’이라는 고난의 경로를 거쳐 귀환한 이소가야 스에지의 경우, 전후 일본사회 내에서 ‘피해자 인식’에 갇혀 있지만은 않았던 독특한 인물이었다. 대개의 재조일본인 출신들과 달리 ‘식민자’, ‘가해자’에 대한 ‘저항자’로서의 정체성도 강하게 지니고 있었던 그의 식민지 체험, 그리고 이들과 공통된 8.15 직후의 ‘잔혹한’ 귀환 경험은 이후에도 계속 그의 발목을 잡았다. 이것이 그가 ‘제2의 고향’이라 여겼던 38도선 이북 북한사회에 계속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마지막 순간까지 문필활동 등을 통해 ‘민주화된 조선’을 기원했던 배경일 것이다.
Research result and Utilization method
본 연구는 타자인 일본인의 시선을 통해 한국의 근현대를 새롭게 구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식민지 조선과 관련을 맺고 활동했던 ‘제국’ 일본인의 다양한 모습에 관한 연구는 한국근현대사를 외부에서 내부로 들여다볼 수 있는 입지를 제공한다. 이를 통해 한국근현대사의 내면을 성찰적으로 재조명함과 동시에 근현대사 연구의 지평을 확장한다는 면에서 본 연구의 학문적 의의가 있다. 또한 인물 연구라는 형식으로 일제강점기 재조선 일본인의 경험과 기억을 비판적으로 탐색하는 과정을 통해, 양국 사이에 존재하는 역사적 갈등의 접점을 학문적으로 파악하고 그 해결과 대안을 위한 새로운 방법론의 모델을 제시할 수 있다. 특히 일제강점기 조선사회와 조선인에게 우호적으로 협조했던 일본인의 실체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와 소개는, 아래로부터의 한․일연대 모색을 위한 역사적 기원의 구명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는 향후 평화공존을 위한 역사적 대안 마련에 학문적 토대로 작용할 것이다.
Index terms
이소가야 스에지, 재조일본인, 한일관계, 가해자 인식, 피해자 인식, 귀환, 8.15, 태평양노동조합 사건, 일본질소비료주식회사 흥남공장, 흥남질소공장, 일본군 제19사단, 노동조합운동, 문필활동, 김일성, 북한민주화, 함흥형무소, 함흥일본인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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