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2-14

김대호 - 나는 이 한겨레 사설을 보면서 이 글을 쓴 논설위원들의 '사고의 시간지체(1980년대 화석)'와 '자칭...



김대호 - 나는 이 한겨레 사설을 보면서 이 글을 쓴 논설위원들의 '사고의 시간지체(1980년대 화석)'와 '자칭...







김대호
2 hrs ·

나는 이 한겨레 사설을 보면서 이 글을 쓴 논설위원들의 '사고의 시간지체(1980년대 화석)'와 '자칭 진보의 민낯'과 '우리 사회의 절망'을 본다. 청년/미래세대가 도저히 살 수 없는 땅으로 바뀌고 있는 대한민국을 통탄한다.

나는 파업은 근로자의 기본권이라고 생각한다. 파업은 본디 노무 제공을 중단하여 기관(회사)과 사회의 정상적인 작동을 방해하여 많은 사람을 곤경에 처하게 만들어야 한다. 사람들을 고통에 빠뜨리지 않는 파업은 파업이 아니다. (병원 응급실이라면 몰라도) 도서관 정도를 냉골로 만드는 것이 무엇이 문제인가?

그런데 근로자에게 파업권이 있다면, 사용자에게도 무기가 있어야 한다. 그것은 직장을 폐쇄하거나 대체인력을 투입하는 것이다. 지금도 타부서 근로자나 사무관리직을 투입하는 것은 합법이다. 그런데 서구에서는 외부 구인을 통해서도 대체인력을 투입할 수 있다.


그러면 파업이 무력화 되는 것 아니냐고? 맞다. 지금 같은 파업은 무력화 된다. 그러면 무력화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하나? 파업 규모를 키워야 한다. 직장 총파업, 업종 총파업, 지역 총파업, 산업 총파업을 하면 된다. 그래서 파업을 함부로 모산다.

파업 규모가 커지면 그 요구가 산업, 업종, 지역 차원에서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근로조건이 된다. 바로 직무에 따른 기업횡단적인 근로조건의 표준, 즉 노동시장의 공정가격이 된다. 그러면 교섭력 약한 근로자들이 이익을 본다.

본디 노동조합은 이런 역할을 하는 것을 전제로 노동3권을 부여 받았다. 그런데 이 나라는 노동3권이 왜 헌법에 들어가 있는지 모른다. 이 나라는 파업시 사업장 점거가 관행이고, 외부 대체 인력 투입을 틀어막아 놓으니, 40명이 4만명 혹은 40만명에게 엄청난 고통을 준다. 그런데 이 사설과 하종강 같은 자는 이런 것을 참는 것이 선진국 시민의 덕성이라고 사기치고 있다.

지금 한국은 교섭력 강한 노동자들, 즉 소수가 업무를 마비시켜 수천 수만 수십만명을 곤경에 빠뜨릴 수 있는 근로자들만 이익을 본다. 이들은 넓게 연대할 필요도 없다. 연대하면 오히려 손해다. 그래서 노동시장의 공정가격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만의 노동귀족화를 추구한다. 점쟎게 말하면 지대추구요, 적나라게 말하면 약탈이다.

노동조합 간판을 달고 있으니, 한국 노동조합과 유럽 노동조합이 비슷한 줄 안다. 전혀 아니다. 유럽 노조는 직무에 따른 기업횡단적인 근로조건의 표준을 추구하기에 불평등 양극화를 완화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한국 노조는 자신들만의 양반/귀족화를 추구하기에 불평등 양극화를 오히려 심화시킨다. 그러면서 재벌의 사내유보금 타령이나 한다.

한국에서는 대기업과 공기업에서는 노조가 압도적으로 힘의 우위에 있다.(이건 의외로 사람들이 잘 모른다. 대기업과 공기업이 신의 직장이 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청년들이 영혼을 팔아서라도 이런 직장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이유다)

한겨레 사설은 근로자들이 "중앙도서관 등 건물 4곳의 기계실을 점거하고 관련 업무를 중단한 것"을 너무나 당연시 한다. 하지만 이들이 칭송해 마지 않는 유럽 근로자들은 파업할 때 시설을 점거하지 않는다. 시설은 물론이고 공장 밖으로 나가서 집회를 한다. 시설이나 공장은 자신들의 재산이 아니기 때문이다. 점거는 재산권 침해다.

기계실 점거 파업을 하면, 사내 대체인력과 충돌한다. 당연히 고소고발이 난무 하게 되어 있다. 유럽이나 미국 같았으면 점거한 근로자들을 엄중처벌 하게 되어 있다. 요즈음은 한국은 공권력을 불러도 잘 오지 않는다. 이 미친 정권이 이렇게 하도록 몰아간다. 그러니 국내 투자와 고용 확대가 엄청나게 위험한 일이 되었다.

긴 얘기 짧게 줄이면, 이젠 노조와 노동운동이 그 본령을 회복하여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완화하는 역할을 하도록 노동관계법과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 노사 간에 무기가 대등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파업이 소수에 의한 지대추구/신의직장 쟁취가 아니라, 다수가 참여하여 직무에 따른 기업횡단적인 근로조건의 표준을 쟁취하도록 몰아가야 한다.

그리고 한겨레 사설은 "용역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된 뒤 오히려 처우가 나빠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투쟁하는 것을 지지 옹호하는데, 정의공정의 원칙에 따르면, 비정규직에서 무기계약직이나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처우가 나빠지는 것이 당연하다. 하는 일이 같다면, 기간제, 시간제 등 비정규직의 임금이 높아야 하는것 아닌가? 하는 일이 같아도 고용형태가 바뀌면 처우가 올라가야 한다는 저 놈의 사고 방식이 바로 직장계급사회, (정규직)신분 급상승사회, 공공양반사회를 만드는 것 아닌가?? 비정규직이 양산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런데 실은 이 문제는 정부가 해결할 문제다. 공공부문 만이라도 청소, 경비, 보일러실 등 직무별로 임금및 근로조건의 표준을 형성하여 개별 기업(기관)에서는 이런 문제로 분규가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서울대학교 기계실에서 일하면 연봉 5천만원, 관악구청 기계실에서 일하면 연봉 3천만원, 아파트 기계실에서 일하면 연봉 2천5백만원이 되도록 하면 안된다는 얘기다.

거듭 얘기하지만, 파업은 근로자의 권리고, 많은 사람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이 당연하다. 도서관 정도는 냉골로 만드는 것이 무엇이 문제인가? 하지만 재산권을 침해하지 않기 위해, 또 대체인력 투입에 따른 마찰을 해소하기 위해 시설을 점거하면 안된다. 이건 업무 방해다. 소수를 위해 다수의 자유와 권리를 억압하는 짓이다. 그리고 오세정총장은 대체인력을 투입하여 기계를 돌리면서 노조와 협상해야 한다. 한국 노조는 유럽 노조가 아니다. 파업도 저렇게 하는 것 아니다. 보편적인 요구를 내 걸고 초대형으로 하는 것이다. 그래야 파업에 대해 일반 시민들도 박수를 치며 응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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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서울대 노조 파업이 드러낸 우리 사회 민낯과 희망
서울대 시설관리직 노동자들이 12일 학교당국과 임금·복지 조건 개선에 합의하고 닷새 만에 파업을 풀었다. 이번 파업은 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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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서울대 노조 파업이 드러낸 우리 사회 민낯과 희망

등록 :2019-02-13
http://www.hani.co.kr/arti/opinion/editorial/882031.html?fbclid=IwAR2SmHHG4MaHXyeeDEaEpcgU4lHaACosIqW7NR9QMFvn6qlwgvwsIL-FbM8


지난 8일 오전 11시30분 민주노총 서울일반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서울대 행정관 앞에 모여 ‘서울대학교 시설관리직 노동자 전면 파업돌입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정규 기자 j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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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시설관리직 노동자들이 12일 학교당국과 임금·복지 조건 개선에 합의하고 닷새 만에 파업을 풀었다. 이번 파업은 대학 한 곳에서 방학 중 단기간에 이뤄진 파업치고는 사회적으로 큰 관심과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 배경에 우리 사회의 ‘파업할 권리’에 대한 낮은 인식과 뿌리 깊은 ‘학벌주의’가 있지 않은지 돌아봐야 한다.

이번 파업은 시설관리직 노동자들이 지난해 용역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된 뒤 오히려 처우가 나빠진 문제를 해결하고자 시작했다. 이들은 일반 중소기업의 같은 직종 노동자들보다 월 100만원가량 적은 급여를 비슷한 수준으로 맞춰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10여차례 이어진 협상이 지지부진하자 중앙도서관 등 건물 4곳의 기계실을 점거하고 관련 업무를 중단한 것이다.

난방이 끊기면 학생·교수들이 불편을 겪을 수밖에 없으나, 그것이 곧 노동기본권의 하나인 파업의 ‘효과’이기도 하다. 하지만 총학생회는 “노조의 정당한 파업권을 인정한다”면서도 “중앙도서관을 파업 대상에서 제외해달라”고 요구했다. 학생들의 인터넷 게시판에도 파업에 부정적인 의견이 다수였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미래 지성으로 촉망받는 이들이 헌법상 기본권인 파업의 불편을 인내하려 하지 않고 학습 편의성을 앞세운 것은 안타깝다.

정작 큰 비판을 받아야 할 대상은 일부 언론과 지식인, 정치인들이다. 몇몇 언론은 학생들이 겪는 불편만 대서특필하며 노동자들의 파업 이유는 나 몰라라 했다.

이 대학의 도서관장은 난방 중단을 “응급실을 폐쇄해 타인의 생명을 빼앗는 행위”에 빗대는 글을 신문에 기고했다. “미래 인재들의 공부와 연구를 직접 방해하는 행위”라는 이유였다.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이 “민주노총이 사익을 위해 대한민국 교육의 희망을 꺾은 것”이라고 한 것도 견강부회라고 본다. 이들의 비난은 노동자와 노동권에 대한 폄하와 서울대로 상징되는 학벌주의가 결합해 나온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우리 사회 전반의 암묵적인 동조 위에서 이뤄졌다는 것도 부인하기 어렵다.

그래도 일부 학생이 처음부터 파업을 지지하고, 총학생회가 결국 노조에 대한 요구를 철회하고 파업 노동자와 연대한 데서 희망을 본다. 어려서부터 “공부 안 하면 노동자 된다”는 말 대신 노동자의 존엄과 권리를 배우는 게 중요하리라 본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editorial/882031.html?fbclid=IwAR2SmHHG4MaHXyeeDEaEpcgU4lHaACosIqW7NR9QMFvn6qlwgvwsIL-FbM8#csidx794445e8f1e3b33b8657c11fb478c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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