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03

박인식 - [서평] 제국의 위안부

(32) 박인식 - [서평] 제국의 위안부 1. <제국의 위안부>를 읽기까지 <제국의 위안부>가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박인식
17 hrs ·
[서평] 제국의 위안부

1. <제국의 위안부>를 읽기까지

<제국의 위안부>가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명예훼손과 출판금지 소송을 당하고 결국 삭제판을 출판하기에 이르렀다는 건 보도를 통해 알고 있었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 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몰지각한 저자의 극단적인 주장이 아닐까 생각했다. 생각보다 오랫동안 공방이 이어지는 걸 보면서 저자로서 그렇게 주장할만한 이유가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거기까지였다. 지난 연말, 페이스북에서 누군가 저자인 박유하 교수의 글을 링크해놓은 걸 보게 되었다. 저자의 글을 보면서 ‘문제의 책’이 궁금해졌다.

저자께 직접 저서를 파일로 받아 읽기는 했는데, 전체 내용 중 극히 일부가 삭제되었을 뿐인데도 읽는데 여간 불편하지 않았다. 읽고 나서 저자가 의도했던 바가 무엇이었는지 대강은 이해하게 되었고, 거기에 비하면 소송을 제기한 내용이 얼마나 본질과 거리가 있는 일인지, 과연 저자의 표현 때문에 당사자의 명예가 훼손되었다고 여길 수 있는지 하는 의문이 일었다. 이번에 정의연 문제가 불거지게 되면서 그렇게 덮었던 책을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읽기에 앞서 저자가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자료를 내려 받아 소송 내용을 확인하고, 제소된 내용에 대한 저자 및 관련 학자들의 견해와 이에 이어지는 반박과 재반박 과정을 살펴보았다. 그 결과 본서 <제국의 위안부-식민지 지배와 기억의 투쟁>의 집필 배경이 된 <화해를 위하여>와, 제소된 내용에 대한 저자의 반박이 담긴 <제국의 위안부-지식인을 말한다>, 소송 과정을 정리한 <제국의 위안부-법정에서 1460일>을 모두 읽어야 이 사안의 전말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행히 모두 eBook으로 출간되어 이를 어렵지 않게 구해 전체를 한 번 훑어볼 수 있었다.

2. 읽기의 초점

자료에 따르면 소송을 제기한 측에서 출판금지와 명예훼손의 근거로 다음 세 가지를 문제 삼은 것으로 보인다.

첫째, 위안부가 자발적 매춘부가 아님에도 위안부의 본질이 ‘매춘’이라고 표현했다.

둘째, 위안부가 일본과 ‘동지적 관계’에 있다고 표현했다.

셋째, 일본군에 의한 ‘위안부 강제연행이 없었다’고 서술했다.

이는 저자가 저서를 통해 말하고 싶어 했던 논점(본질)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지적으로, 결국 엉뚱한 문제로 수년이라는 세월을 낭비하게 만든 셈이 되었다. 차라리 본질과 관련해 논쟁을 벌인 것이라면 시간이 좀 덜 아까웠겠다 싶은 생각마저 든다. 자료를 통해 저서에서 다음과 같은 점을 강조하고자 했던 것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첫째, 위안부란 전쟁이 만든 존재이기 이전에 국가세력을 확장하고자 하는 식민지주의가 만든 존재이며, 그러한 국가의 욕망에 동원된 개인 희생의 문제이다. 위안부에 대한 ‘강제성’을 묻는다면 식민지주의 뿐 아니라 국가주의와 가부장제의 ‘강제성’을 먼저 물어야 한다. 동시에 이런 구조의 실천과 유지에 가담한 업자들(조선인/일본인)의 ‘강제성’도 함께 추궁되어야 한다.

둘째, ‘강제로 끌려간 순결한 소녀’만 피해자로 생각하는 우리사회의 인식이 오히려 그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 이들을 차별하고 배제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위안부 피해자들을 침묵하게 만들었고 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들었다.

셋째, 위안부 문제의 책임을 가리는 중에 발견된 우리의 부끄러운 모습을 외면한다면 결과적으로 일본이 그들 방식대로 보는 일을 허용하는 것이 된다. 이렇게 되면 문제해결은 요원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니, 진정한 <화해를 위해서>라도 사실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봐야 한다.

이와 같은 이해를 바탕으로 <제국의 위안부>를 다시 읽었다. 이때 소송을 제기한 측에서 문제를 제기한 표현 목록과 그 이유, 그리고 저자 측에서 재판부에 제출한 각 항에 대한 답변을 함께 읽었고, 아울러 저자의 나머지 관련 저서도 참고하였다.

3. 저자의 저술 의도

이 책이 문제가 된 것은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부인하고, 위안부를 ‘매춘’으로 매도했으며, 위안부가 일본과 ‘동지적 관계’라고 묘사해 ‘위안부의 피해자성’을 훼손했다”는 까닭이다. 그러나 저자는 ‘강제냐 아니냐, 매춘이냐 아니냐’는 이 문제를 보는데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오히려 제국주의가 위안부의 수요를 만들고 당시 가부장적인 사회와 함께 위안부를 동원하는 구조를 만들었다는 강조하고 있다.

저자는 ‘매춘’이라는 단어를 국가에 의한 여성의 착취라는 의미로 내내 사용해오고 있다. 마치 성매매 여성이면 피해자가 아닌 것처럼 이야기하는 구조를 지적한 것이다. 결국 이런 차별적인 구조가 식민지 여성의 피해를 만들어냈을 뿐 아니라 지금까지 이어져 가난이나 복지정책 부재 때문에 성매매에 뛰어든 여성을 피해자로 인식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문제 제기를 통해 ‘또 다른 현대 제국’이 여전히 만들고 있는 ‘현대의 위안부 문제’를 지적하려 했던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의 저술 의도를 <제국의 위안부-지식인을 말한다>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조선인 여성은 일본인 여성들을 보완해 위안부로 동원되었고, 조선인은 여성을 지키지 못했다. 수치 없는 규탄은 누구도 바꾸지 못한다. 전쟁 경험 없는 일본 젊은이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면, 한국인에게는 나라를 잃어 여성들을 속수무책으로 전쟁터에 내보냈던 국가 운영 주체로서의 남성들, 그 남성의 후손으로서의 자신에 대한 자각도 필요하다.” - p.51

“한일 간의 문제에서 일본에 책임이 있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사죄나 보상 요구 못지않게 필요한 것은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생각하는 작업이다. 그래야만 역사에 대한 총체적 사고가 가능해지고, 마음을 다한 ‘사죄’를 이끌어낼 수 있고, 함께 가는 미래를 구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 p.53

4. 소송의 대상이 된 표현

이의 부당함에 대해서는 저자의 주간동아 인터뷰 (2018.07.17) 내용에 잘 정리되어 있다.

가. “위안부는 본질적으로 매춘부”

“본질은 ‘국가 간 이동이 더 쉬워진 근대에 제국주의 세력 확장을 위해 해외로 보내진 남성들을 현지에 묶어두려고 동원된 이들’이라는 것이다. 조선인 위안부가 민족적 차별의 결과가 아니라 가난한 일본인에게 가해지던 차별이 식민지 조선인에게 투영됐다는 점을 (강요된 매춘) 말하기 위함이었고, 그것이 국가에 의한 계급적 착취라는 점을 지적하기 위해서였다.”

나. “위안부는 일본군과 동지적 관계에 있었다”

“제국주의 일본에 의해 일본인으로 동원된 식민지 조선 여성의 인식이 당시 일본의 적국이던 중국, 네덜란드 여성의 인식과 같을 수 없음을 설명한 것이다.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서양 위안부는 마음대로 강간하고 죽여도 되는 ‘전리품’인 적의 여자였다면, 일본이나 조선이나 대만에서 동원된 위안부는 일본인 위안부와 함께 일본군이 패망 순간까지 보호하려 한 ‘군수품’이었다는 차이가 존재한다. ‘동지적 관계를 강요한 제국주의적 구조의 문제’를 비판한 것이다.”

다.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연행은 없었다”

“민간인 업자나 포주를 앞세웠다 해도 위안소라는 시스템을 유지하고 단속한 주체가 일본군이라는 사실 때문에 궁극적 책임을 모면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지적했다. ‘결과적으로 일본은 자신들의 손을 더럽히지 않고 식민지인들에게 불법행위를 전담케 해 동족에 대한 가해자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식민지배의 구조적 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것도 명확히 했다.”

민사소송 원고 측 변호인도 재판부에 2014.10.20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다음과 같이 강제 연행이 아니라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자신들이 제기한 문제를 스스로 부정한 것이다.

“식민지에서는 군인이 대대적으로 총검을 앞세우고 나물 캐는 조선 처녀를 트럭에 강제로 실어서 끌고 가는 것과 같은 행태의 징집보다는, 취업사기나 인신매매와 같은 이미 조선에 이식되어 있던 공창제도의 메커니즘이 이용되었습니다.”

5. 조약의 불법성

저자는 ‘조약의 불법성’에 대해 ‘제3의 목소리’ 모임(2005.4)에서 다음과 같이 의견을 피력하였다.

“1910년 병합조약이 ‘불법’이라고 하면 당연히 일본에 ‘식민지 지배’에 대한 ‘법적책임’이 생긴다. 그러나 구성원의 동의를 얻지 않은 조약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조약’이라는 당시의 ‘법적 절차’를 통한 것이었던 이상, 이것을 ‘불법’이라고 하는 것은 윤리적으로는 옳을지언정 현실적으로는 무리가 없지 않다. 그것은 미국이나 영국 등 역시 식민지를 가졌던 대국의 승인을 얻어 했던 일이고, 그들만의 ‘법’에 근거한 것이라는 의미에서라면 물론 ‘불법’이다. 하지만 한국이 ‘합병’을 승인한 문서가 존재하는 한, 안타깝지만 그것을 제도법적인 의미에서의 ‘불법’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분쟁은 현재진행형이다. 이 분쟁은 합법 불법을 다투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양국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이상 결국 제삼자의 판단을 구해야 하는 상황이 올 텐데, 당시 법적 절차를 따라 이루어진 ‘조약’을 우리가 불법이라고 주장한다고 해서 그것이 ‘불법’이 되기는 어려운 일이 아닐까. 법적 실체는 인정하되 그것이 왜 받아들여지면 안 되는지 입증하는 것으로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는 말이다. 나는 저자의 제안이 그런 현실적인 한계를 극복하자는 것에서 출발한 것으로 이해한다.

6. 일본의 사죄와 보상

위안부 문제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갖지 않았기 때문에 그동안 일본 정부뿐 아니라 시민들조차 위안부의 강제성을 인정하지도 않고 따라서 사과할 의사도 없는 것으로 이해해왔다. 서평을 쓰면서 비로소 1997년부터 아시아여성기금에서 전달한 ‘수상의 사죄편지와 위로금’을 한국인 위안부 61명이 받은 것을 알게 되었다. (기금은 ‘민간’의 형식을 띠었지만, 실제로는 보상금의 89%가 ‘일본 국고’로 충당되었다.) 또한 2015년 한일 외교장관의 ‘위안부 타결 회담’에서 일본 외무장관이 “위안부 문제는 군의 관여 하에 다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이며, 일본 정부의 책임을 통감하고, 아베 수상이 일본 총리대신으로서 사죄와 반성을 마음을 표명”했다는 내용을 알게 되었다.

아시아여성기금은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지만, 2015년 외교장관 회담 내용은 자세하게 보도가 되었는데도 합의문 원문은 확인하지 않고 ‘불가역적으로 해결’ 되었다는 내용만 보고 나 역시 비난에 동참했다. 물론 두 건 모두 우리가 요구하는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외교장관 회담 합의문에서 ‘불가역적’이라는 표현을 통해 덫을 놓으려는 그들의 처사가 용납하기 어렵지만, 어찌되었거나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책임과 사과를 표명하고 실질적인 ‘국고’로 보상하겠다는 것을 우리가 부정한 모양이 되었으니 우리 스스로 발을 묶어놓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투쟁의 명분은 얻었는지 모르겠으나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책임 인정과 사과 표명’이라는 실리는 놓친 것으로 보인다.

7. 지원단체의 위안부 운동방식 비판

위안부 문제 지원단체의 대표 격이라 할 수 있는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은 위안부 문제의 ‘창구’가 됨으로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됐으며, 수치심에 평생 괴로워하며 입을 닫고 살던 피해자들이 이에 힘입어 증언에 나서게 됐다는 점에서 그 공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정대협이 일본군의 ‘잔인성’ ‘강제성’을 강조할 목적으로 ‘강제로 끌려간 순결한 조선의 딸’이란 ‘위안부상(像)’을 만들어 냈고, 이를 위해 피해자가 겪은 각자의 복합적이고 다면적인 경험을 ‘단순화’했다. 그럴 경우 피해자들은 ‘경험’과는 무관하게 정형화된 ‘틀’ 속에 자신을 맞춰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정대협은 운동 과정에서 피해자에게 이런 ‘희생’을 강요했고, 자신들이 제시한 ‘정답’을 거절한 피해자들을 배제했고, 피해자들을 ‘주변화’하면서 그들을 운동의 주체로 인정하지 않았다. 아시아여성기금 수령 사실이 알려진 후 정대협은 일본의 기금을 받아들인 할머니들의 행동은 올바르지 못했다는 성명을 발표했는데, 이에 대해 당시 아시아여성기금 사무국장은 할머니들의 행동이 정의에 위배된다는 것은 어떠한 근거에 입각한 것이며, 그런 식으로 단죄할 권리는 누구에게서 부여받은 것인지를 되물었다. 한국의 운동단체가 일부의 위안부 피해자에게 사회적 제재를 가하고, 일본의 국민기금 측이 이들의 권리를 대변하고 옹호하는 예기치 못한 사태가 벌어졌던 것이다.” - 김정란 박사 논문 <일본군 ‘위안부’ 운동의 전개와 문제인식에 대한 연구, 2004.7> 요지

이와 아울러, 저자는 정대협에서 추구했던 ‘운동의 세계화’가 가져온 모순을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무엇보다, 처음엔 분명 ‘식민지배’의 문제로 제기되었던 이 문제가 ‘식민지배’가 낳은 문제라는 인식은 지금은 사라지고 말았다. 2000년대 이후 다른 국가들과 연대한 세계운동을 펼치게 되면서 ‘전쟁’이 키워드가 된 ‘여성의 보편적인 인권 문제’로만 호소해온 결과다. 말하자면 ‘조선인 위안부’와 일본군의 특수성은 보이지 않게 되고 만 것이다. 세계를 무대로 한 정대협의 운동은 그런 모순을 안은 것이기도 했다.” - p.216

8. 저자를 향한 비난의 본질

저자는 자신을 향한 비난의 본질은 그동안 “과거사를 사죄하지 않는 일본을 ‘절대 악’으로 상정하고 그런 일본과 관계회복을 타협과 굴종으로 여기는 민족주의 시각에서 벗어나 가난한 여성을 대상으로 한 계급 착취와 남성의 성 착취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 것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진보적이라고 하지만 그들 중 상당수는 창부와 정숙한 여성을 구별하는 가부장적 젠더 규범에 젖어 있고, 가부장적 민족주의 시각에서 힘이 없어 딸과 누이를 지키지 못한 것은 용납돼도 돈벌이를 위해 딸과 누이를 팔아치운 자아상을 수용하기는 어려워 위안부를 자꾸만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소녀로 이상화하려 집착했고, 일본에 대한 증오를 강화하면서 정작 딸과 누이를 팔아먹은 죄책감은 덜어내려는 집단무의식 때문은 소녀상에 집착한 것이 아닌지”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저자는 “일본은 ‘군의 강제성’을 ‘범죄’로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도의적 책임’을 졌고 그건 ‘죄’로 인정했다는 것이 된다”고 언급하면서 ‘죄’와 ‘범죄’를 구분해 사용하였다. (p.217) 이는 기독교에서 창조주를 거역한 것이 ‘죄’이고 사람이 저지르는 모든 ‘범죄’는 그 ‘죄의 결과’라는 교리를 떠오르게 한다. 저자는 위안부 문제는 기본적으로 일본 정부의 ‘죄’이지만 (일본 정부‘만’의 죄라는 뜻은 아니다) 정의롭지 못한 당시 ‘실정법’에 따르면 ‘범죄’가 아니었다고 표현하는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이러한 글의 전개방식이 저자의 의도가 오해받게 된 본질이 아니었을까 싶다. (기독교에서 ‘죄와 범죄의 구분’을 강조하듯, 저서에서 이를 전면에 배치하고 강조했다면 오해의 여지를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관련 소송을 실질적으로 제기한 지원단체에서 저서의 주장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양측 견해 차이의 근본 원인인 ‘당시 실정법의 불법성’을 지적해야 하는데 (예컨대 “당시의 실정법은 불법이므로 그 법을 근거로 범죄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옳지 않다”) 오독이요 말꼬리 잡기에 지나지 않는 ‘매춘, 동지적 관계, 강제성’에 매달리고 있다.

저자는 4부에서 국가가 만든 위안부에 대해 통렬한 비판을 가하고 있다. 주한 미군을 위해 정부가 위안부를 허용하고 관리한 불법성에 대해서 일본군 위안부와 같은 방식으로 비판한다. 일본군 위안부를 비판하는 방식과 미군 위안부를 비판하는 방식이 다르지 않다면 지원단체는 미군 위안부의 훼손된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도 동일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옳은데, 그럼에도 이에 대해서는 전혀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고 지적하고 있다.

결국 저자를 향한 지원단체의 비난은 위안부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들의 운동방식을 비난한 데 대한 반감이라는 해석을 부정하기 어렵다.

9. 아쉬움

저서 전반에 흐르는 ‘위안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저자의 진심’을 의심하는 것도 아니고 ‘오독의 책임’을 저자에게 물을 수도 없다. 그러나 전작인 <화해를 위해서>에서 이미 오독과 그로 인한 사회적 물의를 예견했다면 이에 대해 좀 더 조심스럽게 접근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 예로 몇 곳을 지적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조선인 위안부가 일본인 여성과 ‘동지적 관계’에 있었다고 해도 일본인과 차별이 존재한 것이 분명한데, 조선인에 대한 차별이 부각되지 않아 저자의 의도와 달리 이 표현이 과도한 반감을 불러일으킨 것은 아닌가.

둘째, 저자는 “혹독한 체험을 한 이들에게도 ‘즐거웠던 순간’은 없지 않았고, 군인에게 신세타령을 하면서 정신적 교감을 나누는 위안부도 없지 않았다. 물론 사랑과 평화와 동지가 있었다고 해도 위안소가 지옥 같은 체험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p.76)고 언급하고 있다. 위안소의 삶이라고 해도 그 역시 삶의 한 현장이니 ‘즐거웠던 순간’이 없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즐거웠던 순간’을 서술한 부분이 필요 이상으로 자세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혹시 저자가 이 부분을 서술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장치로 생각한 것일지 모르겠지만, 독자들이 이를 위안소를 미화하려 한다고 오독하도록 자초한 측면이 있는 건 아닐까.

셋째, 저자는 “아시아여성기금에서 필리핀, 대만 및 한국의 일부 위안부들에게 수상의 사죄편지와 보상금을 지불하였는데도 한국인 위안부들과 지원단체는 그 후에도 일본 정부와 세계를 상대로 사죄와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고 언급하면서 “다른 나라는 사죄를 받아들였으므로 현재의 ‘위안부 문제’란 실은 이 몇 십 명의 위안부와 지원단체가 주체가 된 ‘한국인 위안부’ 문제이기도 하다”는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p.171) 이는 서문에서 “위안부 문제가 단지 피해 보상의 문제가 아니라 ‘성과 계급의 문제’이며 ‘국가와 남성과 지배층과 일반인의 책임’을 묻는 일”이라고 정의한 것이나, 문제의 본질이 “식민지배와 국가와 남성중심주의와 근대자본주의가 빚은 가난과 차별, 나아가 그들을 그런 장소로 내몬 가부장제에 있다. 다시 말해 구체적으로 그 시스템을 만들고 이용한 것은 ‘일본군’이지만, 직접적인 책임은 그런 시스템을 묵인한 국가에 있다”고 언급한 내용(p.191)과 상충되는 것으로 읽을 수 있다.

넷째, 위안부 논쟁의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가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이다. 저자는 위안부는 대부분 정부의 요구에 따라 업자가 동원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업자에 대해 언급할 때 국적을 밝히는 경우가 그리 많지는 않으나, 그 중 ‘조선인 업자’라는 표현이 ‘일본인 업자’라는 표현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그래서 업자는 대부분 조선인이었던 것으로 이해했다. 그런데 저자는 ‘제3의 목소리’ 모임(2005.4)에서 “업자에 조선인만 있었던 것으로 생각하지만, 일본인도 있었고 규모의 크기는 일본인이 더 컸던 것으로 보인다”고 언급하고 있다. 다시 본문에서 ‘업자’라는 표현을 살펴보기는 했지만 저자가 그렇다고 하니 그런가 보다 하지 본문의 표현만으로는 업자 대부분이 조선인이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금지는 금지되어야 한다!해방 70년, 한일조약 50년을 맞는 오늘, 위안부 문제의 진정한 해결을 위하여이 책은 광장에서 함께 읽히고 토론되어야 한다!또 하나의 기억, 또 하나의 억압,21세기의 금서!“참담한 심경으로 이 책을 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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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위안부
금지는 금지되어야 한다!해방 70년, 한일조약 50년을 맞는 오늘, 위안부 문제의 진정한 해결을 위하여이 책은 광장에서 함께 읽히고 토론되어야 한다!또 하나의 기억, 또 하나의 억압,21세기의 금서!“참담한 심경으로 이 책을 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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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권용득 and 10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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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곤
윤태곤 훌륭하십니다! 2015년 합의는 여러가지 측면에서 다층적 평가가 가능한데(특히 진보적 오바마 미 행정부의 엄청난 압력!) 그냥 '박근혜가 친일파'라서로 퉁치고 있다 생각합니다. 그러니 민간에서도 정부에서도 전진도 없고 후퇴도 없죠. 최근 사태와 별개로 윤미향 의원의 원내진입은 문제 해결 진전에 무조건 마이너스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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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식
박인식 윤태곤 뭐 그런 과찬의 말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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