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 방문 日 강제징용자 공양탑 가는 길 재정비.."1800여만원 모금"
등록 2015-10-20 오전 9:22:11

박지혜 기자
[이데일리 e뉴스 박지혜 기자] 그동안 방치됐던 일본 다카시마의 한인 강제징용자 공양탑 주변이 누리꾼의 관심으로 재정비됐다.
한국 홍보 전문가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다카시마 공양탑으로 가는 길을 누구나 쉽게 찾아갈 수 있도록 재정비했다고 20일 밝혔다.
다카시마 공양탑은 지난 9월 MBC ‘무한도전’을 통해 서경덕 교수와 하하가 함께 찾아가며 관심을 모았다.
다카시마는 일본 군수 대기업인 미쓰비시가 한인을 징용한 탄광 섬의 하나로, 일제강점기 수많은 한인이 끌려가 비참하게 일하다 목숨을 잃었으나 일본의 근대화 관광지로만 알려졌다.
다카시마 공양탑은 미쓰비시가 한인 유골 매장지를 알린다는 명목으로 세웠지만, 무성한 수풀에 뒤덮여 있고 위패조차 불에 타 사라진 상태였다.

서경덕 교수는 ‘무한도전’ 방송 후 ‘방문하고 싶다’는 누리꾼의 요구가 빗발치자 크라우드 펀딩(온라인 소액 투자) 업체 유캔스타트와 함께 모금에 나섰다. 그 결과 1800여만 원이 모였고ㅡ 그 일부가 길 재정비에 사용됐다.
서 교수는 정비 인력 5명과 함께 지난 주말 이틀에 걸쳐 공양탑 주변 약 50m 길을 재정비했다.
남은 비용은 다카시마 공양탑 안내판 설치와 조선인 강제징용자가 모여 살았던 교토 우토로 마을의 역사관 건립에 쓰일 예정이다.
서 교수는 “이번에 공양탑 주변 안내판을 함께 설치하려고 했지만 안내판 내용에 ‘강제동원’이란 단어가 들어가 있어서 그런지 관할인 나가사키시에서 허가를 계속 미루고 있다”며 “안내판을 반드시 설치할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다카시마 선착장에서 공양탑으로 가는 길은 유튜브(http://is.gd/QprGQj)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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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나가사키, ‘한인 강제징용자 다카시마 공양탑’ 가는 길 폐쇄
가-가+최지현 기자 cjh@vop.co.kr 최종업데이트 2016-01-04
입구조차 찾을 수 없었던 한국인 징용자들의 다카시마 공양탑 가는길이 서경덕 교수와 네티즌들의 노력으로 재정비 됐다.ⓒ출처 : 서경덕 교수 페이스북
일본 나가사키(長崎)시가 다카시마(高島)의 한인 강제징용자 공양탑 가는 길을 폐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카시마는 일본 군수 대기업인 미쓰비시(三菱)가 한인을 징용한 탄광 섬의 하나로, 일제강점기 수많은 한인이 끌려가 비참하게 일하다 목숨을 잃었는데도 일본의 근대화 관광지로만 알려졌다.
다카시마 공양탑은 미쓰비시가 한인 유골 매장지를 알린다는 명목으로 세워졌다. 그러나 공양답은 무성한 수풀 한가운데 방치돼 있는 데다가 위패조차 불에 타 사라진 상태였다. 이 같은 사실은 MBC ‘무한도전’ 멤버들이 한국 홍보 전문가인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와 지난해 9월 직접 찾아가 확인하면서 국내에도 알려지게 됐다.
이후 시청자들이 잇따라 공양탑을 방문하겠다고 하자 서 교수 측은 네티즌 모금 운동을 펼쳐 진입로를 정비하고 안내판을 설치하려 했다. 하지만 일본 나가사키시가 이를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진입을 막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9월 MBC 무한도전 팀은 일본 나가사키시 타카시마의 한인 강제징용자 공양탑을 찾았다. 당시 동네 주민들의 증언 등을 토대로 겨우 찾아간 공양탑은 수풀에 가려진 채 방치돼있어 시청자들의 분노를 자아냈다.ⓒMBC 방송캡처
서 교수는 4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허리를 90도로 꺾어야만 겨우 들어갈 수 있는 험난한 길을 누구나 다 방문할 수 있도록 벌초 작업을 한 후 나가사키시에 '강제 연행된 한국인의 혼이 잠들어 있는 장소'라는 안내판을 설치하고자 허가해 달라는 연락을 계속해 왔다"고 설명했다. 나가사키시는 두 달 동안 '논의 중'이라며 답변을 미뤄오다가 지난 12월 말에서야 이메일을 통해 '불허한다'는 입장을 알려왔다고 그는 전했다.
이와 관련 산케이(産經)신문은 지난달 23일 "나가사키시가 다카시마 섬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공양탑에 한반도 출신자의 유골이 안장돼 있는지 확인되지 않았고, 인근 사찰인 곤쇼지(金松寺)로 유골이 전부 이전됐다"면서 "이러한 취지의 안내판을 공양탑 주변 3군데에 세웠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서 교수는 "다카시마 공양탑에 묻힌 유골은 다카시마 탄광에서 숨진 징용자들, 바다에서 조난을 당한 표류자들의 것이며, 분명한 것은 하시마(端島) 탄광 조선인 사망자의 유골을 공양탑으로 옮겨왔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고 반박했다. 이어 "명백한 역사적 기록이 남아 있음에도 현재 거주하는 주민의 증언만을 토대로 '조선인들이 묻혀 있는지 명확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은 '역사 왜곡'을 하려는 전형적인 행동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서 교수 측이 다카시마 공양탑의 현황을 직접 점검한 결과, 나가사키시는 공양탑 들어가는 입구에 역사적 사실과 맞지 않는 안내판을 세우고, 그 사이에 밧줄 2개를 치고 '위험'이라고 적힌 간판을 걸어 진입 자체를 막고 있었다.
서 교수는 "지난해 7월 이 지역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고 나서도 나가사키시는 '강제징용'을 인정하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새롭게 만든 안내서에서도, 새롭게 만든 박물관에서도 '강제징용'이란 단어는 삽입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서 교수는 "다카시마 공양탑의 정확한 역사적 사실 자료를 근거로 나가사키시 담당자를 만나 누구나 갈 수 있도록 만들겠다"면서 "특히 올해는 '강제징용'이 있었던 일본 내 다른 도시에서도 역사적 사실을 인정할 수 있도록 최대의 노력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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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덕 교수 "日 나가사키시, 조선인 강제징용자 공양탑 완전 폐쇄"
입력2017.03.23 08:28 수정2017.03.23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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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나가사키시가 조선인 강제징용자 유골이 묻힌 다카시마 공양탑 가는 길을 완전히 폐쇄했다. /사진=서경덕 교수 제공조선인 강제징용자의 유골이 묻힌 일본 다카시마 공양탑에 갈 수 없게 됐다.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팀은 23일 "지난해 초 나가사키시가 임시 폐쇄한 공양탑 가는 길이 완전히 폐쇄됐다"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서 교수는 "작년 초에 방문했을때는 공양탑 가는길 입구에 긴 밧줄로 느슨하게 묶어 '위험'이라는 안내판을 가운데 걸어놨고, 여러개의 나무토막으로 급조한 안내판 2개를 설치해 임시적으로 폐쇄해 놨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그는 "네티즌의 제보로 확인해 본 결과 이번에는 큰 나무막대 3개를 단단히 설치하여 아예 사람들이 들어가기 힘들게 막아놨으며, 급조해서 만든 안내판 2개를 아예 동판으로 바꾸어 영구적으로 페쇄한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또한 서 교수는 "길을 폐쇄하고 안내판을 설치한 나가사키시에 지속적으로 연락을 하여 누구나 다 공양탑을 방문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줄 것을 요청했으나, 인근 사찰인 금송사(金松寺)로 모든 유골을 다 이전했다고만 주장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금송사측에도 연락을 하여 "모든 유골이 다 이전된게 맞느냐?"고 재차 확인했지만 미쓰비시측이 정확히 알고 있다고만 했고, 또 미쓰비시측에 연락하면 나가사키시에서 알지 자신들은 잘 모른다는 답변만 반복했다"고 전했다.
이에대해 서 교수는 "다카시마 공양탑에 묻힌 유골은 다카시마 탄광에서 죽은 징용자들, 그리고 분명한 것은 하시마(군함도) 탄광 조선인 사망자의 유골을 공양탑으로 옮겨왔다는 건 숨길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무한도전 방송이후 한국인 관광객들이 늘어나고 이런 강제징용 사실이 더 알려지는 것이 두려워 나가사키시에서 공양탑 가는 길을 폐쇄한 것이다. 이는 강제징용 사실을 숨기려는 또 하나의 '역사왜곡'이다"고 비판했다.
특히 서 교수는 "올해 말까지 강제징용에 대한 사실을 안내판 등을 통해 알리고 있다는 것을 세계유산센터에 보고해야만 하는 일본 정부이지만 유네스코 등재후 지금까지 하시마 및 다카시마를 관광지로만 널리 홍보 중이다"고 지적했다.
이에대해 그는 "지난 7차례의 하시마 및 다카시마의 방문을 통해 이런 강제징용의 역사왜곡 현장을 사진과 영상으로 다 담아왔다. 올해 말까지 일본 정부에서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는다면 이런 사실을 유네스코에 다 전달할 예정이다"고 덧붙였다.
한편 MBC 무한도전팀과 서경덕 교수는 지난 광복 70주년을 맞아 '하시마섬의 비밀'을 제작하여 일제의 강제징용 사실을 널리 알리는 큰 역할을 했으며 그 후 서 교수팀은 네티즌들과 함께 공양탑 가는길을 재정비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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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범기업 미쯔비시, 조선인강제동원위패 불태워일본은 일제강제징용 현장을 패쇄하거나 갖은 변명으로 접근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
박찬우 시민기자 | 승인 2019.05.30 21:21
서경덕 교수와 함께하는 해외 강제징용 문화유산 탐방(3일 차)
<무한도전> 방영 이후 유명해진 공양탑
진실이 알려지자 무서워 폐쇄
책임 공방도 서로 떠넘겨


▲서경덕 교수가 막혀버린 공양탑 가는 길 앞에서 설명하고 있다.
3일차 일정은 오전 8시 40분에 배를 타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답사팀을 태운 배가 다카시마 섬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그 목적지는 둘째 날과 같이 다카시마 석탄박물관이 아니라 좀 더 높은 곳이었다.
다카시마에서 가장 높은 곳, 그러나 아무도 다니지 않는 어느 삼거리로 답사팀은 향했다. 그곳에서 다시 깊숙이 숲을 가로질러 길을 만들며 나아가자, 다카시마 공양탑이 답사팀을 마주하였다. 아마 이곳은 <무한도전>에 방영된 이후로 일반인에게 잘 알려진 곳일 것이다.
이 곳은 하시마 섬(군함도)에서 사망한 사람들의 위패와 유해를 하시마섬 폐광 당시 이 곳으로 옮겨 온 것이다. 하시마 섬과 다카시마 섬을 합쳐 약 4000여 명의 조선인이 강제징용을 살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미쯔비시 사에서 폐광 시에 위패를 다 불태워 버려 지금은 신원을 확인하기 어렵게 되었다.
서경덕 교수팀이 초기에 이를 발견했을 당시에는 나가사키 시에서 관람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하였으나, <무한도전> 방송이 나가고 많은 한국인들이 찾아오자 진실이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한 왜국 정부가 가는 길을 나무로 폐쇄했다.
공양탑에는 <구 공양탑의 유골은 영구공양을 위해 곤쇼지 절의 봉안당에 이전 후, 안치되었으며 위령비가 타카시마 신사 옆에 건립되어 있다>고 안내문이 부착되어 있었으나, 서경덕 교수팀의 조사로는 이 안내문은 거짓이며, 유골은 이장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또한 공양탑 입구엔 <여기서 부터는 위험하므로 들어가지 마십시오>라는 거짓 안내문도 붙어 있었다.
막혀 있는 길을 지나갈 수 있도록 지속적인 요청이 제기되어도 나가사키 시와 왜국중앙정부와 미쯔비시 사에서 이를 무마하기 위해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는 상태이다.
이 사항 또한 서경덕교수가 유네스코에 모두 공유하였으며, 왜국 정부가 진실을 감추고 있다는 근거자료로 제출되었다고 한다.
아래쪽으로 걸어 내려가자 다카시마 탄광을 볼 수 있었다. 군함도 뿐만 아니라 다카시마 탄광에서도 조선인이 강제징용 되었는데, 이곳에서는 조선인뿐만 아니라 중국인들과 연합군 포로들도 많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역시 이곳의 어떤 안내판에도 그러한 내용은 찾아 볼 수 없었다.
2박 3일에 걸친 왜국 내 강제징용 유산에 대한 투어는 이와 같이 마무리되었다. 서경덕 교수에 따르면, 다음번 투어는 오사카 지역과 우토로 마을에 대한 내용으로 준비중이라고 한다.
또한 해외 투어와 별도로 국내 투어 역시, 지난 3월의 목포/군산 지역을 시작으로 인천/경기 지역(5/18~19)과 후속 일정이 계획되어 있다.
본 투어 일정과 관련하여 왜정시대의 근대 수탈사에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를 바라며, 자세한 내용은 서경덕 교수의 페이스북(얼굴책)과 여행사 투리스타(http://www.turista.co.kr/ ) 에서 참고할 수 있다.


▲ 서경덕 교수가 지금은 폐쇄된 다카시마 탄광 앞에서 설명하고 있다.
박찬우 시민기자 horizon1011@hanmail.net
전범기업 미쯔비시, 조선인강제동원위패 불태워일본은 일제강제징용 현장을 패쇄하거나 갖은 변명으로 접근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
박찬우 시민기자 | 승인 2019.05.30 21:21
서경덕 교수와 함께하는 해외 강제징용 문화유산 탐방(3일 차)
<무한도전> 방영 이후 유명해진 공양탑
진실이 알려지자 무서워 폐쇄
책임 공방도 서로 떠넘겨
▲서경덕 교수가 막혀버린 공양탑 가는 길 앞에서 설명하고 있다.
3일차 일정은 오전 8시 40분에 배를 타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답사팀을 태운 배가 다카시마 섬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그 목적지는 둘째 날과 같이 다카시마 석탄박물관이 아니라 좀 더 높은 곳이었다.
다카시마에서 가장 높은 곳, 그러나 아무도 다니지 않는 어느 삼거리로 답사팀은 향했다. 그곳에서 다시 깊숙이 숲을 가로질러 길을 만들며 나아가자, 다카시마 공양탑이 답사팀을 마주하였다. 아마 이곳은 <무한도전>에 방영된 이후로 일반인에게 잘 알려진 곳일 것이다.
이 곳은 하시마 섬(군함도)에서 사망한 사람들의 위패와 유해를 하시마섬 폐광 당시 이 곳으로 옮겨 온 것이다. 하시마 섬과 다카시마 섬을 합쳐 약 4000여 명의 조선인이 강제징용을 살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미쯔비시 사에서 폐광 시에 위패를 다 불태워 버려 지금은 신원을 확인하기 어렵게 되었다.
서경덕 교수팀이 초기에 이를 발견했을 당시에는 나가사키 시에서 관람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하였으나, <무한도전> 방송이 나가고 많은 한국인들이 찾아오자 진실이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한 왜국 정부가 가는 길을 나무로 폐쇄했다.
공양탑에는 <구 공양탑의 유골은 영구공양을 위해 곤쇼지 절의 봉안당에 이전 후, 안치되었으며 위령비가 타카시마 신사 옆에 건립되어 있다>고 안내문이 부착되어 있었으나, 서경덕 교수팀의 조사로는 이 안내문은 거짓이며, 유골은 이장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또한 공양탑 입구엔 <여기서 부터는 위험하므로 들어가지 마십시오>라는 거짓 안내문도 붙어 있었다.
막혀 있는 길을 지나갈 수 있도록 지속적인 요청이 제기되어도 나가사키 시와 왜국중앙정부와 미쯔비시 사에서 이를 무마하기 위해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는 상태이다.
이 사항 또한 서경덕교수가 유네스코에 모두 공유하였으며, 왜국 정부가 진실을 감추고 있다는 근거자료로 제출되었다고 한다.
아래쪽으로 걸어 내려가자 다카시마 탄광을 볼 수 있었다. 군함도 뿐만 아니라 다카시마 탄광에서도 조선인이 강제징용 되었는데, 이곳에서는 조선인뿐만 아니라 중국인들과 연합군 포로들도 많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역시 이곳의 어떤 안내판에도 그러한 내용은 찾아 볼 수 없었다.
2박 3일에 걸친 왜국 내 강제징용 유산에 대한 투어는 이와 같이 마무리되었다. 서경덕 교수에 따르면, 다음번 투어는 오사카 지역과 우토로 마을에 대한 내용으로 준비중이라고 한다.
또한 해외 투어와 별도로 국내 투어 역시, 지난 3월의 목포/군산 지역을 시작으로 인천/경기 지역(5/18~19)과 후속 일정이 계획되어 있다.
본 투어 일정과 관련하여 왜정시대의 근대 수탈사에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를 바라며, 자세한 내용은 서경덕 교수의 페이스북(얼굴책)과 여행사 투리스타(http://www.turista.co.kr/ ) 에서 참고할 수 있다.
▲ 서경덕 교수가 지금은 폐쇄된 다카시마 탄광 앞에서 설명하고 있다.
박찬우 시민기자 horizon101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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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sang Sohn
5 h ·
2104
2016년 1월 4일자 연합뉴스 보도사진. 보도에 따르면 "미쓰비시가 한인 유골 매장지를 알린다는 명목으로 세운" 다카시마의 한인 강제징용자 공양탑이다. 사진 속 공양탑 앞에 태극기가 놓여 있다.
공양탑 옆면에 대정 9년 4월에 세웠다고 써있다. 대정 9년은 1920년이다. 일본제국의 조선인 노무동원은 1939년부터, 강제징용은 1944년부터 시작됐다. 1920년엔 징용은 커녕 조선인의 일본 취업을 금지하고 있었다. 그럼 어떻게 해서 1920년에 세운 공양탑이 1944년부터 징용된 조선인을 기릴 수 있을까?
답은 간단하다. 조선인 징용자 공양탑이 아닌 것이다. 이 공양탑은 다카시마 사찰에 있는 옛 기록대로, 풍랑을 만나 죽은 어부들을 기리려고 세운 것이다. 이 공양탑에 관한 기록 어디에도 조선인 징용자에 관한 언급이 없다. 일본이 의도적으로 숨겨서 없는 것이 아니다. 원래부터 조선인 공양탑이 아니라서 그러할 따름이다.
어떤 교수가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서 이 공양탑을 방문했다. 시청자들은 공양탑이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있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이후로 적지 않은 한국인들이 다녀갔다. 사유지인 이곳을 무단 벌채해 길을 만들었다. 제사를 지내고 음식을 남기고 갔다. 결국 다카시마 지자체가 통로를 폐쇄하고 이곳 입산을 막았다. 그러자 일본 우익의 꼼수라며 반발했다.
지금 한국에서 힘든 노동을 하는 이주노동자들이 있다. 좋은 사업주를 만나 좋은 환경에서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가 있는 반면, 임금 체불을 당하거나 여권을 빼앗기고 두들겨 맞거나 사업주로부터 성추행을 당하는 노동자도 있다. 더러는 비닐하우스에서 난방도 없이 지내다 얼어 죽기도 한다. 한국에 와서 일하다 숨진 이주노동자들을 그들의 나라에서 슬퍼하고 기릴 수 있다. 인간이면 그게 당연하다.
그런데 그들 나라 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여러분의 조상묘에서 제사나 추도식을 연다고 생각해보자. 거기를 숨진 이주노동자 무덤이라고 굳게 믿는 사람들이 여러분의 집안 선산을 무단 벌채하고 자꾸 들락거린다. 이주노동자 무덤이 아니라고 아무리 말해도 믿지 않는다. 지자체에 하소연해 막았더니 한국 우익의 꼼수라며 화를 낸다... 어떨 것 같은가?
전쟁범죄는 과거에 끝난 일이 아니고 강제노동도 그렇다. 죽어간 사람들을 애도하는 마음을, 인간이라면 당연히 가진다. 그런데 그 마음을 대리해 사업을 도맡아 하는 쪽이 일을 잘못할 때가 있다. 단순 실수인지 의도적인 왜곡인지 나는 모른다. 후원금을 벌기 위한 장사였다고 생각하기는 싫다. 하지만 의도가 좋았으니 잘 한 일이라며 덮어놓고 칭찬할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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