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21

“한·일 서로 이해하는 사람들 줄면서 멀어지는 듯해요” : 일본 : 국제 : 뉴스 : 한겨레

“한·일 서로 이해하는 사람들 줄면서 멀어지는 듯해요” : 일본 : 국제 : 뉴스 : 한겨레

“한·일 서로 이해하는 사람들 줄면서 멀어지는 듯해요”

등록 :2021-11-19

김소연 기자 사진

[짬] 재일동포 2세 문성희 편집장


11월 15일 <슈칸 긴요비> 도쿄 사무실에서 만난 문성희 편집장. 사진 <슈칸 긴요비>

“저 역시 마이너리티(소수자)입니다. 어떤 마음인지, 누구보다 잘 알아요.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싶습니다.”

지난 2일 일본의 진보 잡지 <슈칸 긴요비>(주간 금요일)는 흥미로운 인사를 발표했다.
 <조선신보>의 기자 출신이자 ‘북한경제’ 박사인 문성희(59)씨를 편집장으로 임명한다는 소식이었다. 28년의 전통의 이 주간지에서 ‘자이니치 코리언’(재일동포)이 편집장이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임기는 3년, 중간 평가도 있다.

지난 15일 도쿄의 고서점 거리인 진보초에 있는 <슈칸 긴요비> 사무실에서 문 편집장을 만났다.

일본사회 드문 진보잡지 <슈칸 긴요비>
창간 28년만 첫 자이니치 코리안 편집장
우에무라 발행인 “한국처럼” 직선 도입

‘조선신보’ 20년 근무·평양 특파원도
2006년 퇴사 뒤 도쿄대 ‘북한경제’ 박사학위
“소수자로서 하고 싶은 말 전달하고파”


“재일동포인 것도 그렇지만, 이번에 처음 편집장을 선거로 뽑았어요. 최종 후보는 혼자였지만, 구성원들의 신임을 물어 80% 찬성을 받았어요. 어깨가 무겁습니다.”

전 <아사히 신문> 기자인 우에무라 다카시 발행인이 한국에서 주요 언론사 편집국장을 기자나 구성원들의 선거로 뽑는 사례를 알고, 민주적인 제도라며 도입했다고 한다.

도쿄에서 나고 자란 동포 2세인 문 편집장은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에서 활동하던 아버지 영향으로 고등학교까지 조선학교를 다녔다. 언론인을 꿈꿔 1986년 총련 기관지 <조선신보>에 입사해 20년을 일했다. 평양 특파원을 2번이나 지냈다.

그는 기억에 남는 기사 중 하나로 1996년 쓴 북한의 수해 피해 보도를 꼽았다. “많이 싸웠어요. 몇 명이 죽었다는 등 북한에 부정적인 기사가 될 수밖에 없어 처음에는 협조가 어려웠어요. 하지만 상황을 제대로 알려야 한다고 설득했죠.” 수해 현장을 발로 뛰어다니며 쓴 생생한 기사는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유엔(UN)과 일본 비정부기구, 재일동포들의 지원이 이어졌다. 그때 “기사 덕분”이라며 북한에서 영웅 대접을 받았다고 흐뭇해했다.


그는 지난 2002년 9월 북·일 정상회담으로 뜻하지 않게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그 회담에서 예상과 달리 일본인 납치 문제를 공식 인정하면서 <조선신보>를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중학생인 요코타 메구미까지 납치했다는 사실은 충격이 컸습니다. 그동안 북한 말을 믿고 납치는 없었다고 기사를 써왔거든요. 내가 저널리스트로 자격이 있나, 부끄럽고 창피했습니다. 계속 오보를 쓴 거잖아요.” 다만 여러 사정으로 퇴직은 2006년에 했다.

하지만 그가 택한 새 인생길에서도 북한을 벗어나긴 힘들었다. 그는 도쿄대 대학원에 들어가 북한 경제를 연구해 박사 논문을 썼다. 어려운 이론보다 북한의 일상을 통해 경제를 들여다봤다. “2500만명의 북한 사람들이 조선노동당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연애도 하고, 빈부격차도 있다는 평범한 일상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일본에선 <맥주와 대포동-경제로 읽어낸 북한>(2019년 한국어판 발간)이라는 제목으로 책도 나왔다.

문 편집장은 좀 더 자유롭게 여러나라를 방문하기 위해 2018년 한국 국적을 취득했고, <슈칸 긴요비>에서 근무도 시작했다. 그해 2월 평창올림픽부터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까지 이뤄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둘러싼 격변의 시간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물었다. “계속 반복되는 느낌입니다. 지금까지 북핵 문제를 해결할 기회가 적어도 세 번 있었어요.” 그가 꼽은 세 시기는 북-미 제네바합의(1994년), 6자 회담에 따른 9·19 합의(2005년), 2007~08년 북한이 핵 개발을 동결하고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진행했던 때다.

“북한과 미국이 생각하는 비핵화가 다르고, 미·중 등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해결이 어려운 것 같아요. 비극입니다.” 최근 논의중인 종전선언에 대해서도 “북한이 반대하지 않겠지만, 생각하는 내용이 다르기 때문에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일본 사회에서 바라본 한-일 관계도 궁금했다. 문 편집장은 “한·일 모두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잘 아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는 것 같다”며 ”냉전시대에는 한·일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지금은 왜 중요한 관계인지, 서로 이해가 엷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시사주간지 <슈칸 긴요비> 최근호.

<슈칸 긴요비> 최근호는 ‘야당공투(야권 단일화)는 성공했나’는 기사를 실었다. 지난달 31일 일본 중의원 선거에서 5개 야당이 후보 단일화에 나섰지만 의석수가 되레 줄어드는 등 참패했다. “개인 의견임을 전제로, 야당공투가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공투의 문제라기보다 야당이 어떤 정책을 만들 것인가, 정권을 잡으면 유권자들의 생활이 어떻게 좋아질 것인지 희망을 줘야 했는데 그게 부족했던 것 같아요.” 그는 내년 7월 참의원 선거에서도 야당 공투가 계속돼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보수적인 일본 사회에서 진보 주간지가 버텨낸다는 것이 만만치 않은 일이다. <슈칸 긴요비>는 1993년 창간 때부터 기업 광고를 받지 않고 구독료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성역 없이 비판할 수 있지만, 경영의 부담은 크다. “이런 잡지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구독하는 독자들이 많아요.” 문 편집장은 “지금까지 그래왔듯 자민당을 반대하는 차원이 아니라 인권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차별을 없애며, 언론의 자유를 지켜내는 그런 잡지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dandy@hani.co.kr

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japan/1019942.html?fbclid=IwAR2EOqZn5AvWLTw__iSGOMsUH4-j3X6dqWkcfeJ8xHS40-RYMZskV_82fzU#csidx30b06363b96cbb38d2cd5b86b473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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