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일본이 참전하지 않았던 한국전쟁에서 무기를 지니고 싸운 일본인 70명이 있었다.
역사로부터 지워졌던 그들, 1994년 기밀 해제가 된 'TOP SECRET' 1급 기밀문서에 그들의 존재가 은폐되어 있었다. 70명의 일본인들은 누구였고, 어떻게 한반도로 들어왔으며, 무슨 임무를 맡았는지, 또한 전투원으로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심문까지 받고 수십 년간 실상마저 감춰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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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프롤로그 그들은 역사로부터 지워졌다 7
제 1장 1,033쪽의 극비 심문 기록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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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프롤로그 그들은 역사로부터 지워졌다 7
제 1장 1,033쪽의 극비 심문 기록 15
한국전쟁의 간략한 역사 17
한국전쟁은 일본에서 어떻게 알려졌는가 20
퍼즐 같은 1,033쪽 22
미군 기지의 섬, 일본 26
다카쓰 겐조 발견 27
남겨진 회고록 31
소년 시절 일본군에게 품은 불신 35
세계 최빈국, 일본 39
미군 장병은 상냥했다 41
점령군 기지에서 보낸 나날 42
밀항하여 한반도로 44
“많은 사람이 총에 맞아 죽었습니다”46장진호 전투 49
퇴각, 그리고 귀국 52
“다시 한번 한반도에 가고 싶나?” 54
‘최고 기밀’이 된 일본인들 56
누락된 역사 58
제2장 대전 전투_후쿠오카에서 한반도로 향한 사나이들 61
가장 많은 일본인이 참가한 대전 전투 63
우에노 다모쓰를 찾아서 65
군사도시, 고쿠라 68
아들과의 해후 69
캠프 코쿠라에서 일한 두 남자 71
대전에서 살아남은, 두 사람의 전직 미군 장병 75
대전은 ‘완전한 카오스’였다 80
싸워야 할 이유는 동료의 죽음에서 생겨난다 86
“피난민을 죽였다” 전직 미군 병사의 증언 88
제34보병연대의 궤멸 90
대전에 있었던 니시토자키의 일본인들 92
히라쿠라 요시오 “이렇게 죽는구먼” 95
이노우에 준이치 “미군과 똑같이 취급받았다” 98
아리요시 다케오 “대전에서 함정에 빠졌다” 102
아리요시 다케오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다” 104
야마사키 마사토 “전쟁…… 무섭습니다.” 108
우에노의 그 후, 딘 소장과의 재회 110
아들은 무엇을 이야기했는가? 112
제3장 고아들은 미국을 동경했다 115
일본의 고아들 117
열두 살에 전장에 선 일본인 120
두 차례의 대전에 농락당한 소년 123
“그는 공산주의자를 증오했습니다” 126
여동생과 생이별, 그리고 귀국 128
다시 한반도로 133
일본인 포로, 쓰쓰이 기요히토 135
쓰쓰이가 귀국한 사실은 어떻게 보도되었는가? 138
너무도 상냥했던 오빠 139
특공 훈련생 142
“미국, 이 새끼들” 149
‘모험심’으로 갔다 150
수용소에서 벌어진 학살 152
수용소에서 보낸 편지 155
귀국 후에 기다리고 있었던 것 157
쓰쓰이는 미국인이 되었다 159
어머니를 향한 마음 162
제 4장 그들은 왜 이용되었는가_일본·미국·한국의 의도 165
전부 미국의 오산으로부터 시작되었다 167
실전 경험 없는 젊은이들 170
통역 사와가시라 로쿠조 173
상관의 권유를 거절할 수는 없었다 175
“당신들이 처음이랍니다” 178
인원 부족 메우기 179
일본인도 ‘공식으로’ 표창받았다 181
미군 통역이 밝힌, 심문이 행해진 이유 182
전승국의 교만 186
“정신적으로 협력한다”187점령군을 위해서인가,
유엔군을 위해서인가 190
경찰예비대로 오라는 권유 192
해상보안청에 의한 기뢰 소해 194
“전투에 종사한 것이 아니라, 소해에 종사했다” 198
일본의 독립과 조선 특수 200
일본에 남은 유엔군 후방사령부 203
북한·소련의 항의 205
일본에서 행해진 한국군 병사의 극비훈련 207
일본의 전쟁 협력을 인정할 수 없었던 한국 210
새로운 한일관계를 위하여 213
북한과 국교 정상화를 할 수 없는 이유 215
제5장 평화헌법하의 해상수송_선원들의 전후사 217
22개의 빈 유골함 219
636호의 리더, 가토 게이지 221
두 차례의 침몰과 공습에도 살아남다 223
636호에 승선 225
은폐된 아버지의 죽음 228
위령제의 조사230생존자, 마쓰시타 아키라 233
636호는 침몰했다 235
남겨진 선원명부 238
일·미 당국은 어떻게 인식했는가 239
가나가와현의 갈등 243
유골 없는 무덤 245
LST 선원, 산노미야 가쓰미 247
허허벌판이 돼 버린 고향, 한국 250
“일본인이 여기에 있잖아!” 253
해상 수송은 베트남전쟁에서도 행해졌다 255
“헌법 9조 위반이 아니다” 259
베트남전쟁에서도 일본인 선원이 희생되었다 261
활용되지 못한 한국전쟁의 교훈 264
이라크 파견267자위대와 민간 페리 270
제6장 어느 일본인의 전사 273
Killed in action’그 사진 속에서는 총을 들고 있었다 278
가족의 자랑이었던 히라쓰카 시게하루 279
죽어도 돌아오지 못하는 뉴기니 281
페인트공 네오 히라쓰카 284
부고286다카쓰의 발견과 히라쓰카의 전사 289
범죄자 취급을 당한 아들 291
일·미합동위원회 각서 295
봉인해두었던 형에 대한 마음 300
행방불명자, 요시하라 미네후미 302
일본인 취사병 셋 303
만철에 있었던 세키 마사하루 306
요시하라의 죽음에 보이는, 은폐의 구도 307
“전쟁이라는 것은, 좋지 않아” 311
‘성벽으로 둘러싸인 마을’은 어디인가? 313
히라쓰카와 같은 부대원이었던 제이 히다노 319
맥클레인 대위의 수기 322
9월 4일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324
“그는 범죄자 따위가 아니야” 327
한국으로32869년만의 재회 333
역사에 묻힌 ‘최초의 전쟁 협력’ 336
후기 339
연표 344
번역자의 말 347
주석 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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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후지와라 가즈키 (藤原和樹) (지은이)
2009년 NHK에 입사했으며 현재 보도국 사회프로그램부 디렉터이다. 주요 담당 프로그램으로는 NHK 스페셜 <김정은의 야망 1집-폭군인가 전략가인가 금단의 실상>, <클로즈업 현대+시리즈 -미국 중간 선거 ① 알려지지 않은 트럼프식 SNS 전략>, <NEXT 미래를 위하여-헌화 그 앞에서 가와사키 중학교 1학년 남자 살인 사건> 등을 기획했다. 공저로 『AI vs. 민주주의』(NHK출판 신서), 『사토미 자본론』(카도가와 신서)를 펴냈다.
최근작 : <한국전쟁에서 싸운 일본인> … 총 2종 (모두보기)
박용준 (옮긴이)
2013년 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문화체육관광부의 영화인문학 교육을 수료하고 역사와 관련된 책, 영화 등 다양한 미디어를 소재로 연구 및 집필 활동을 계속하였다. 전라남도에서 첫 교편을 잡았으며, 현재는 광주광역시에서 중등 역사 교원으로 근무하면서 한국과 일본 간의 역사교육 교류, 주변국과의 역사 분쟁에 관심을 갖고 관련 연구회 및 관계기관에서 활동하고 있다.
출판사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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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중국 고대 복식 연구>,<대한제국ㆍ식민지 조선의 철도 여행 안내>,<구인회문학의 재인식>등 총 1,544종
대표분야 : 역사 23위 (브랜드 지수 80,912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일본인 70명이 한국전쟁에 투입되었다
1950년, 북한의 남침으로 전쟁터가 된 한반도에 일본인 70명이 들어왔다. 이들은 미군과 동행하면서 실탄을 지급받아 직접 북한군 및 중국군과 교전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후 미군 당국은 오히려 일본인 요원들을 엄중히 심문했으며, 이들의 존재 및 활동을 극비에 부치는 등 사실을 은폐했다.
그 과정에서 1,033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일급비밀(TOP SECRET) 문서가 작성되었는데, 기밀에서 해제된 후 일본계 호주인 교수가 최근에 그 존재를 파악하였다. 해당 교수와 접촉한 NHK 보도국의 후지와라 가즈키(藤原和樹)는 이 문서를 바탕으로 생존한 일본인 요원 또는 유가족들을 취재하였다. 그에 따라 70명의 일본인들은 누구였고, 어떻게 한반도로 들어왔으며, 무슨 임무를 맡았는지, 또한 전투원으로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심문까지 받고 수십 년간 실상마저 감춰진 이유가 비로소 밝혀지게 된다.
한·일 관계의 가장 불편하고도 복잡한 역사
일본인들이 한국전쟁에서 미군을 도와 직접 전투에 나섰다는 사실은 일본에서나 한국에서나 어느 쪽에서도 환영받지 못한다. 태평양전쟁으로 패망한 일본인들에게 한국전쟁은 ‘조선 특수(朝鮮特需)’라 불리는 전후 부흥 서사의 시작이자 일부였다. 그들은 경제 부흥으로 번영과 안정을 누리는 가운데, 전쟁을 일으키거나 개입하지 않겠다는 ‘평화헌법’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런 일본인들에게 자국 출신 요원의 한국전쟁 참가는 불편한 사실이다. 이는 일본이 ‘평화헌법’ 체제의 이면에서 이미 전쟁에 직접적으로 관여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또한, 광복 이후 오늘날까지도 일제 강점기의 개인적, 집단적 기억이 지속되고 있는 한국인들에게, 한국전쟁의 기억은 국군과 유엔군의 분전에 주목하는 견해, 아니면 동족 상잔에 주목하는 견해로 양분되어 있다. 이와 같은 여건에서 일본인 요원들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어렵다. 그것이 한국전쟁을 둘러싼 주요 논쟁으로부터 동떨어져 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민족주의적인 입장에서 볼 때 일본인들은 그저 한국전쟁을 이용하기만 했을 뿐이어야 하며, ‘희생’되기까지 했다는 것은 한국전쟁의 ‘숭고하거나’ 혹은 ‘가슴 아픈’ 서사를 ‘더럽히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인들이 한국전쟁의 지상전에 참가했다는 사실은 오늘날의 우리에게 의미를 지닐 수 있다. 이들 일본인을 바라보는 관점을 정립하기도, 그에 따른 평가를 내리기도 곤란하지만, 그것이 바로 한·일 관계의 복잡함을 상징하는 것은 아닐까?
이것은 우리의 미래가 될지도 모른다
일본인들의 한국전쟁 참가는 전후 일본 정부가 미군의 점령 상태에 놓인 가운데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있었던 상황에서 이루어졌다. 그와 같은 구조는 이제 한국과 미국의 관계에서 재현되고 있다. 그리고 한국은 미국과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고 한반도 위기에 대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한국이 인도·태평양에서의 미국 패권 동요에 대응하는 국면으로 전환되고 있다.
한국은 세계 최대 규모의 해외 미군 기지가 위치한 가운데,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 및 타이완 해협 위기의 심화 속에서 군사적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 과연 한국은 미국의 전쟁 수행에 협력하게 될 것이며, 그때 시민들 개개인의 삶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그리고 그때 한국은 자신들이 참전하게 될지도 모르는 전쟁에서 각국 정부 및 시민들 개개인과 어떤 관계를 형성하게 될 것인가. 한국전쟁 시기 미국과 일본의 관계, 그 사이에 운명을 내던졌던 일본인들의 삶은 어쩌면 우리의 미래가 될지도 모른다.(박용준ㆍ번역자)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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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 분포
10.0
일본이 한국전쟁에 사실상 ‘참전‘했다는 공공연한 비밀, 그 중에서도 끝까지 밝혀지지 않았던 최후의 비밀이 공개되다...
P 2023-05-18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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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한국인들은 대개 일본어를 할 줄 알았지만 영어를 모르는 사람들은 많았다. 그래서 6.25 때 미군에게는 일본인들이 반드시 필요했겠지. 그렇지만 미군은 물론이고 일본 정부조차도 자기 나라 국민인 일본인들을 버렸다. 그들을 역사 속에 묻어 버릴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소름돋네
폭풍간지 2023-06-01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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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한국전쟁에서 싸운 일본인
오늘 알라딘 역사/일본사 랭킹을 보면 1, 3위가 반일론, 2, 4위(4위는 한국전쟁에서 싸운 일본인)는 전후 일본이다. 논리적 비약을 통해 바라보자면, 일본에 대한 관심은 두 가지, 1. 일본 반대2. 일본 이해이거야 마치 일본은 있다, 없다 논쟁 아닌가?
P 2023-05-23 공감(4) 댓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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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에서 싸운 일본인
'"... 문서 속에서 한국전쟁에 간 일본인이 한반도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를 선명하게 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p. 11)'
이 이야기의 시작은 미국에 보관되었던 1급 극비 문서가 세상에 드러나면서부터다. 1.033쪽의 방대한 보고서는 미군을 따라 한국전쟁에 참전한 일본인 70명을 심문한 기록이다. 저자 후지와라 가즈키는 이 문서를 바탕으로 일부 생존자들과 유가족, 주변인을 중심으로 취재했다.
한국전쟁 전에 그들은 누구였는지, 어떻게 참가하게 됐는지, 어떤 임무를 수행하고 이용됐는지, 이 같은 사실을 감출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무엇인지, <한국전쟁에서 싸운 일본인>은 이러한 실상을 밝히는 논픽션이다.
한국전쟁은 2차대전 패전 이후 일본의 경제난을 한 번에 해결하는 모멘텀이었다. 한국전쟁이 일어났을 때 요시다 시게로 총리가 "이제 일본은 살았다!"라고 외쳤을 정도였다. 일제강점기를 겪은 사실만으로도 불쾌하기 짝이 없는데 한국전쟁에 일본인 가담했다는 사실은 충격이다.
당시 일본은 주권을 회복하지 못한 상태로 미 군정하에 놓여있었다. 미군의 필요와 요구에 따라 일본인들이 참전했다. '설마 그랬을까?'라고 우리가 생각하는 건 일본 평화헌법 때문이다. 일본인들은 무기를 손에 들 수 없었다. 이런 일본 국내법 위반이 미국이 일본인의 한국전쟁 참전 사실을 철저히 은폐한 이유이기도 하다.
더더욱 우리나라에 이러한 사실이 제대로 알려질 수 없었던 건 우리의 한국전쟁에 대한 인식 때문이다. 우리는 국군과 미군 그리고 유엔군의 희생으로 전쟁을 기억한다. 또한 전쟁 중 벌어진 민간인 학살도 기억하는데, 일본인의 참전은 일제강점기에 이어 전쟁 중 민간인 학살에 일본이 가담한 역사적 사실이 된다. 한국전쟁에 일본인 등장 자체가 기분 나쁘다.
'정병욱은 일본인의 한국전쟁에서의 통역을 '일본인, 일본어의 참전', '전장에서의 식민지 질서 재생', '식민주의의 그림자'로 표현하며, 식민지 시기 '국어'로 강제되었던 일본어에 한국전쟁으로 인하여 5년 만에 매달려야 하는 한국인들의 처지를 언급하였다. (p. 371)'
한국전쟁 당시 미군에 소속된 일본인들은 미군의 통역을 담당하며 참전했다. 이로 인해 언어 간에 위계가 생겨버렸다. 한국어는 영어, 일본어에 이어 가장 아래에 자리했다. 한국인들은 정보를 제공했고 때에 따라 호소해야 할 일이 잦았는데, 일본인에게 해야 하다 보니 한국어 대신 일본어를 사용했다. 일제강점기에 형성된 언어의 차별적인 구조와 역할이 한국전쟁에서 재현된 것이다.
전쟁에 참가한 일본인들이 한국에서 일본어를 사용하는데 전혀 불편하지 않아 외국에 와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고 할 정도였다. 일본인이 느낀 우월감, 편안함의 반대편에서 일제강점기를 겪은지 몇 년도 되지 않아 전쟁터에서 일본어를 들으며 한국어의 위계를 다시 실감하는 한국인들의 당혹감과 불안감은 어떠했을지 상상하기도 싫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일본인들의 희생을 우리는 어떻게 정의하고 받아들여야 할까. 그들의 명예를 회복시켜주는 것이 마땅할까? 하지만 대한민국과 일본, 두 나라 간의 역사적 관계를 고려할 때 객관적 접근은 그리 쉽지 않다. 이를테면 전쟁에서 희생당한 일본인의 명예 회복이 일본에서는 야스쿠니 신사에 묻히는 일일 텐데, 우리 입장에서 야스쿠니 신사는 A급 전범이 있는 곳이다. 일본인의 한국전쟁 참전 평가조차도 과거사가 가로막는다. 한일 관계는 단순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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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kim4199 2023-06-28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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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일본 역사교사들도 몰랐던 일본인의 한국전쟁 참전
원문 링크: https://omn.kr/24t5w
2019년 NHK(일본방송협회)는 <숨겨진 '전쟁 협력' : 조선전쟁과 일본인>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방영하였다. 그 주요 내용은 미 국립공문서관(NARA)에서 무려 1033페이지에 달하는 1급 비밀(TOP SECRET, 이는 최고 등급의 기밀로 분류됨을 의미한다) 보고서 및 부속 문건에 관한 서류철에 관한 것이었다. 서류철에는 미군을 따라 비밀리에 한국전쟁의 지상전에 참가한 일본인들에 대한 미군 측 심문 기록 등이 담겨 있었다.
다큐 제작진은 비밀 보고서 내용에 언급된 일본인들의 신원을 토대로 그들을 찾아 나섰다. 그들 대부분은 사망하였고 일부 생존자들과 그 동료들, 그리고 유족들을 만나며 그들이 한국전쟁에 참전하기까지의 삶, 참전 당시의 행적들, 그리고 그 이후의 삶과 죽음을 일본 국·내외 정세와 연관지어 추적하였고, 이야기는 한국전쟁 당시 최대의 격전지, 다부동의 가산 전투에서 북한군 진지를 공격하던 히라쓰카 시게하루의 전사에서 정점에 이른다. 특히 이 부분에서는 수습되지 못한 히라쓰카의 유해, 노구로 한국을 찾은 히라쓰카의 동생 데루마사씨와 다부동 전투에 참전한 한국군 노병의 만남, 데루마사씨의 다부동 전적지 참배 장면 등을 차례로 비춘다. 히라쓰카의 죽음은 과연 누굴 위한 죽음이었을까?
이 다큐를 기획한 NHK 사회부의 후지와라 가즈키는 2018년 7월 위 비밀 심문 보고서의 발견자, 즉 테사 모리스-스즈키 교수를 취재하면서 해당 다큐를 기획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서적 <한국전쟁에서 싸운 일본인>은 앞서 언급한 NHK 다큐를 대대적으로 보완한 논픽션이다. 필자는 2021년 여름, 경남 진주에서 열린 '한일역사교육교류회'에 한국 측 보고자로 참석하여, 해당 다큐 및 서적을 활용한 수업 사례를 발표하였다. 질의 응답을 시간을 통하여 일본 역사교사들 중에도 자국민이 한국전쟁의 지상전에 참가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들이 많았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행사 종료 후, 책을 번역하는 일이 충분히 시도해 볼만한 일이라 생각하고 번역에 착수하였다. 세 곳의 출판사에 번역기획서를 제출하였는데, 그 중 마지막 출판사였던 소명출판에서 원고를 적극적으로 검토해 주어 출간에 이르게 되었다. 이 책은 앞서 국내에서 출간된 저작물들에 비하여, 미군 기지에 고용되어 직접 한반도로 간 일본인들의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이들은 한반도에서 지상전을 겪었고, 일부는 실제로 총을 들고 싸웠다. 즉, 전투원으로도 활동한 것이다. 그렇기에 '참전'한 다른 일본인들보다도 극비리에 취급되었던 이들의 존재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일단 일본인들이 '참전'했다는 사실은 지금까지도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물론 당사자 혹은 그들의 유족이나 동료들이 증언하고, 그 내용이 일부 신문 기사에 실리기도 하였으나 역시 망각되거나 무시되었다. 일본인들조차 알지 못했던 이 사건은 당연히 국내에서는 더더욱 알려지지 않았다. 심지어 한국전쟁 당시 주요 지휘관이었던 백선엽조차도 미처 파악하지 못했던 사실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 책은 미군 측이 작성한 심문 기록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에서 중대한 의의를 지닌다. 이 점은 물론 당시에 일본을 점령한 미군 및 일본 정부 측의 은폐, 관계자들의 사망은 물론, 평화헌법 체제 하에서 '조선 특수'를 누리는 일본의 정치, 경제적 상황에도 기인하겠으나, 이를 증명한 공문서가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기인한 바 크다. 역사적 사건에 대한 공문서의 존재는 중대한 의의를 지닌다. 그것은 어떤 사건이 실재했음을 확실히 증명하는 것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 문제를 둘러싼 갈등, 예를 들어 독도 문제,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한·일 간의 역사 갈등에서도 공문서의 존재를 밝히고 이를 해석하는 것이 중대한 의미를 지녔다. 심문 기록이 발견됨으로써 미군은 물론 일본 정부도 은폐하려 했던 '참전' 일본인들의 존재와 활동 양상은 마침내 그 실체를 뚜렷이 드러내게 되었다. 1차 사료라고 할 수 있는 심문 기록 및 증언 다수가 직접 인용되어 있다는 점에서도, 이 책은 귀중한 사료적 가치 또한 지닌다.
한국전쟁에 일본이 관여했다는 사실에 관해서는, 주로 이 전쟁을 이용해 특수를 누렸다는 인식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일본인이 소해 활동 등 실전에 투입되었다는 사실이 보도될 때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이를 직접적인 전투 활동으로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러한 점에서 미군의 요구로 직접 한국전쟁의 지상전에까지 참가한 일본인들에 관한 내용은 파격적이라 할 수 있다. 일본인이 실탄을 지급받고 직접 북한군 및 중국군과 교전했다는 사실을, 1급 기밀(TOP SECRET) 해제를 통해 밝혀냈기 때문이다.
일본인 전투원이 활동했다는 사실 그 자체 뿐만 아니라, 미군 점령 하에 있었던 일본인들의 삶, 그리고 태평양전쟁을 겪은 일본인들의 한국전쟁에 대한 태도와 인식을 다뤘다는 점에서, 그리고 저널리스트인 저자가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평이한 문체로 저술했다는 점에서 이 책의 가치는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일본인의 한국전쟁 참전과 관련된 사건들을 제시함으로써 전쟁의 이면을 드러낸다. 이를 통하여 어느 일본인과 그들의 가족에게는 한국전쟁이 결코 '구원'과 '부흥'의 서사만으로는 이야기할 수 없는, 일종의 '비극'의 서사였음을 깨닫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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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2023-07-17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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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준 (옮긴이)
2013년 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문화체육관광부의 영화인문학 교육을 수료하고 역사와 관련된 책, 영화 등 다양한 미디어를 소재로 연구 및 집필 활동을 계속하였다. 전라남도에서 첫 교편을 잡았으며, 현재는 광주광역시에서 중등 역사 교원으로 근무하면서 한국과 일본 간의 역사교육 교류, 주변국과의 역사 분쟁에 관심을 갖고 관련 연구회 및 관계기관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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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중국 고대 복식 연구>,<대한제국ㆍ식민지 조선의 철도 여행 안내>,<구인회문학의 재인식>등 총 1,544종
대표분야 : 역사 23위 (브랜드 지수 80,912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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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일본인 70명이 한국전쟁에 투입되었다
1950년, 북한의 남침으로 전쟁터가 된 한반도에 일본인 70명이 들어왔다. 이들은 미군과 동행하면서 실탄을 지급받아 직접 북한군 및 중국군과 교전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후 미군 당국은 오히려 일본인 요원들을 엄중히 심문했으며, 이들의 존재 및 활동을 극비에 부치는 등 사실을 은폐했다.
그 과정에서 1,033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일급비밀(TOP SECRET) 문서가 작성되었는데, 기밀에서 해제된 후 일본계 호주인 교수가 최근에 그 존재를 파악하였다. 해당 교수와 접촉한 NHK 보도국의 후지와라 가즈키(藤原和樹)는 이 문서를 바탕으로 생존한 일본인 요원 또는 유가족들을 취재하였다. 그에 따라 70명의 일본인들은 누구였고, 어떻게 한반도로 들어왔으며, 무슨 임무를 맡았는지, 또한 전투원으로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심문까지 받고 수십 년간 실상마저 감춰진 이유가 비로소 밝혀지게 된다.
한·일 관계의 가장 불편하고도 복잡한 역사
일본인들이 한국전쟁에서 미군을 도와 직접 전투에 나섰다는 사실은 일본에서나 한국에서나 어느 쪽에서도 환영받지 못한다. 태평양전쟁으로 패망한 일본인들에게 한국전쟁은 ‘조선 특수(朝鮮特需)’라 불리는 전후 부흥 서사의 시작이자 일부였다. 그들은 경제 부흥으로 번영과 안정을 누리는 가운데, 전쟁을 일으키거나 개입하지 않겠다는 ‘평화헌법’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런 일본인들에게 자국 출신 요원의 한국전쟁 참가는 불편한 사실이다. 이는 일본이 ‘평화헌법’ 체제의 이면에서 이미 전쟁에 직접적으로 관여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또한, 광복 이후 오늘날까지도 일제 강점기의 개인적, 집단적 기억이 지속되고 있는 한국인들에게, 한국전쟁의 기억은 국군과 유엔군의 분전에 주목하는 견해, 아니면 동족 상잔에 주목하는 견해로 양분되어 있다. 이와 같은 여건에서 일본인 요원들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어렵다. 그것이 한국전쟁을 둘러싼 주요 논쟁으로부터 동떨어져 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민족주의적인 입장에서 볼 때 일본인들은 그저 한국전쟁을 이용하기만 했을 뿐이어야 하며, ‘희생’되기까지 했다는 것은 한국전쟁의 ‘숭고하거나’ 혹은 ‘가슴 아픈’ 서사를 ‘더럽히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인들이 한국전쟁의 지상전에 참가했다는 사실은 오늘날의 우리에게 의미를 지닐 수 있다. 이들 일본인을 바라보는 관점을 정립하기도, 그에 따른 평가를 내리기도 곤란하지만, 그것이 바로 한·일 관계의 복잡함을 상징하는 것은 아닐까?
이것은 우리의 미래가 될지도 모른다
일본인들의 한국전쟁 참가는 전후 일본 정부가 미군의 점령 상태에 놓인 가운데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있었던 상황에서 이루어졌다. 그와 같은 구조는 이제 한국과 미국의 관계에서 재현되고 있다. 그리고 한국은 미국과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고 한반도 위기에 대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한국이 인도·태평양에서의 미국 패권 동요에 대응하는 국면으로 전환되고 있다.
한국은 세계 최대 규모의 해외 미군 기지가 위치한 가운데,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 및 타이완 해협 위기의 심화 속에서 군사적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 과연 한국은 미국의 전쟁 수행에 협력하게 될 것이며, 그때 시민들 개개인의 삶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그리고 그때 한국은 자신들이 참전하게 될지도 모르는 전쟁에서 각국 정부 및 시민들 개개인과 어떤 관계를 형성하게 될 것인가. 한국전쟁 시기 미국과 일본의 관계, 그 사이에 운명을 내던졌던 일본인들의 삶은 어쩌면 우리의 미래가 될지도 모른다.(박용준ㆍ번역자)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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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 분포
10.0
일본이 한국전쟁에 사실상 ‘참전‘했다는 공공연한 비밀, 그 중에서도 끝까지 밝혀지지 않았던 최후의 비밀이 공개되다...
P 2023-05-18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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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한국인들은 대개 일본어를 할 줄 알았지만 영어를 모르는 사람들은 많았다. 그래서 6.25 때 미군에게는 일본인들이 반드시 필요했겠지. 그렇지만 미군은 물론이고 일본 정부조차도 자기 나라 국민인 일본인들을 버렸다. 그들을 역사 속에 묻어 버릴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소름돋네
폭풍간지 2023-06-01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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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한국전쟁에서 싸운 일본인
오늘 알라딘 역사/일본사 랭킹을 보면 1, 3위가 반일론, 2, 4위(4위는 한국전쟁에서 싸운 일본인)는 전후 일본이다. 논리적 비약을 통해 바라보자면, 일본에 대한 관심은 두 가지, 1. 일본 반대2. 일본 이해이거야 마치 일본은 있다, 없다 논쟁 아닌가?
P 2023-05-23 공감(4) 댓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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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에서 싸운 일본인
'"... 문서 속에서 한국전쟁에 간 일본인이 한반도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를 선명하게 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p. 11)'
이 이야기의 시작은 미국에 보관되었던 1급 극비 문서가 세상에 드러나면서부터다. 1.033쪽의 방대한 보고서는 미군을 따라 한국전쟁에 참전한 일본인 70명을 심문한 기록이다. 저자 후지와라 가즈키는 이 문서를 바탕으로 일부 생존자들과 유가족, 주변인을 중심으로 취재했다.
한국전쟁 전에 그들은 누구였는지, 어떻게 참가하게 됐는지, 어떤 임무를 수행하고 이용됐는지, 이 같은 사실을 감출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무엇인지, <한국전쟁에서 싸운 일본인>은 이러한 실상을 밝히는 논픽션이다.
한국전쟁은 2차대전 패전 이후 일본의 경제난을 한 번에 해결하는 모멘텀이었다. 한국전쟁이 일어났을 때 요시다 시게로 총리가 "이제 일본은 살았다!"라고 외쳤을 정도였다. 일제강점기를 겪은 사실만으로도 불쾌하기 짝이 없는데 한국전쟁에 일본인 가담했다는 사실은 충격이다.
당시 일본은 주권을 회복하지 못한 상태로 미 군정하에 놓여있었다. 미군의 필요와 요구에 따라 일본인들이 참전했다. '설마 그랬을까?'라고 우리가 생각하는 건 일본 평화헌법 때문이다. 일본인들은 무기를 손에 들 수 없었다. 이런 일본 국내법 위반이 미국이 일본인의 한국전쟁 참전 사실을 철저히 은폐한 이유이기도 하다.
더더욱 우리나라에 이러한 사실이 제대로 알려질 수 없었던 건 우리의 한국전쟁에 대한 인식 때문이다. 우리는 국군과 미군 그리고 유엔군의 희생으로 전쟁을 기억한다. 또한 전쟁 중 벌어진 민간인 학살도 기억하는데, 일본인의 참전은 일제강점기에 이어 전쟁 중 민간인 학살에 일본이 가담한 역사적 사실이 된다. 한국전쟁에 일본인 등장 자체가 기분 나쁘다.
'정병욱은 일본인의 한국전쟁에서의 통역을 '일본인, 일본어의 참전', '전장에서의 식민지 질서 재생', '식민주의의 그림자'로 표현하며, 식민지 시기 '국어'로 강제되었던 일본어에 한국전쟁으로 인하여 5년 만에 매달려야 하는 한국인들의 처지를 언급하였다. (p. 371)'
한국전쟁 당시 미군에 소속된 일본인들은 미군의 통역을 담당하며 참전했다. 이로 인해 언어 간에 위계가 생겨버렸다. 한국어는 영어, 일본어에 이어 가장 아래에 자리했다. 한국인들은 정보를 제공했고 때에 따라 호소해야 할 일이 잦았는데, 일본인에게 해야 하다 보니 한국어 대신 일본어를 사용했다. 일제강점기에 형성된 언어의 차별적인 구조와 역할이 한국전쟁에서 재현된 것이다.
전쟁에 참가한 일본인들이 한국에서 일본어를 사용하는데 전혀 불편하지 않아 외국에 와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고 할 정도였다. 일본인이 느낀 우월감, 편안함의 반대편에서 일제강점기를 겪은지 몇 년도 되지 않아 전쟁터에서 일본어를 들으며 한국어의 위계를 다시 실감하는 한국인들의 당혹감과 불안감은 어떠했을지 상상하기도 싫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일본인들의 희생을 우리는 어떻게 정의하고 받아들여야 할까. 그들의 명예를 회복시켜주는 것이 마땅할까? 하지만 대한민국과 일본, 두 나라 간의 역사적 관계를 고려할 때 객관적 접근은 그리 쉽지 않다. 이를테면 전쟁에서 희생당한 일본인의 명예 회복이 일본에서는 야스쿠니 신사에 묻히는 일일 텐데, 우리 입장에서 야스쿠니 신사는 A급 전범이 있는 곳이다. 일본인의 한국전쟁 참전 평가조차도 과거사가 가로막는다. 한일 관계는 단순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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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kim4199 2023-06-28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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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일본 역사교사들도 몰랐던 일본인의 한국전쟁 참전
원문 링크: https://omn.kr/24t5w
2019년 NHK(일본방송협회)는 <숨겨진 '전쟁 협력' : 조선전쟁과 일본인>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방영하였다. 그 주요 내용은 미 국립공문서관(NARA)에서 무려 1033페이지에 달하는 1급 비밀(TOP SECRET, 이는 최고 등급의 기밀로 분류됨을 의미한다) 보고서 및 부속 문건에 관한 서류철에 관한 것이었다. 서류철에는 미군을 따라 비밀리에 한국전쟁의 지상전에 참가한 일본인들에 대한 미군 측 심문 기록 등이 담겨 있었다.
다큐 제작진은 비밀 보고서 내용에 언급된 일본인들의 신원을 토대로 그들을 찾아 나섰다. 그들 대부분은 사망하였고 일부 생존자들과 그 동료들, 그리고 유족들을 만나며 그들이 한국전쟁에 참전하기까지의 삶, 참전 당시의 행적들, 그리고 그 이후의 삶과 죽음을 일본 국·내외 정세와 연관지어 추적하였고, 이야기는 한국전쟁 당시 최대의 격전지, 다부동의 가산 전투에서 북한군 진지를 공격하던 히라쓰카 시게하루의 전사에서 정점에 이른다. 특히 이 부분에서는 수습되지 못한 히라쓰카의 유해, 노구로 한국을 찾은 히라쓰카의 동생 데루마사씨와 다부동 전투에 참전한 한국군 노병의 만남, 데루마사씨의 다부동 전적지 참배 장면 등을 차례로 비춘다. 히라쓰카의 죽음은 과연 누굴 위한 죽음이었을까?
이 다큐를 기획한 NHK 사회부의 후지와라 가즈키는 2018년 7월 위 비밀 심문 보고서의 발견자, 즉 테사 모리스-스즈키 교수를 취재하면서 해당 다큐를 기획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서적 <한국전쟁에서 싸운 일본인>은 앞서 언급한 NHK 다큐를 대대적으로 보완한 논픽션이다. 필자는 2021년 여름, 경남 진주에서 열린 '한일역사교육교류회'에 한국 측 보고자로 참석하여, 해당 다큐 및 서적을 활용한 수업 사례를 발표하였다. 질의 응답을 시간을 통하여 일본 역사교사들 중에도 자국민이 한국전쟁의 지상전에 참가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들이 많았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행사 종료 후, 책을 번역하는 일이 충분히 시도해 볼만한 일이라 생각하고 번역에 착수하였다. 세 곳의 출판사에 번역기획서를 제출하였는데, 그 중 마지막 출판사였던 소명출판에서 원고를 적극적으로 검토해 주어 출간에 이르게 되었다. 이 책은 앞서 국내에서 출간된 저작물들에 비하여, 미군 기지에 고용되어 직접 한반도로 간 일본인들의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이들은 한반도에서 지상전을 겪었고, 일부는 실제로 총을 들고 싸웠다. 즉, 전투원으로도 활동한 것이다. 그렇기에 '참전'한 다른 일본인들보다도 극비리에 취급되었던 이들의 존재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일단 일본인들이 '참전'했다는 사실은 지금까지도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물론 당사자 혹은 그들의 유족이나 동료들이 증언하고, 그 내용이 일부 신문 기사에 실리기도 하였으나 역시 망각되거나 무시되었다. 일본인들조차 알지 못했던 이 사건은 당연히 국내에서는 더더욱 알려지지 않았다. 심지어 한국전쟁 당시 주요 지휘관이었던 백선엽조차도 미처 파악하지 못했던 사실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 책은 미군 측이 작성한 심문 기록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에서 중대한 의의를 지닌다. 이 점은 물론 당시에 일본을 점령한 미군 및 일본 정부 측의 은폐, 관계자들의 사망은 물론, 평화헌법 체제 하에서 '조선 특수'를 누리는 일본의 정치, 경제적 상황에도 기인하겠으나, 이를 증명한 공문서가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기인한 바 크다. 역사적 사건에 대한 공문서의 존재는 중대한 의의를 지닌다. 그것은 어떤 사건이 실재했음을 확실히 증명하는 것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 문제를 둘러싼 갈등, 예를 들어 독도 문제,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한·일 간의 역사 갈등에서도 공문서의 존재를 밝히고 이를 해석하는 것이 중대한 의미를 지녔다. 심문 기록이 발견됨으로써 미군은 물론 일본 정부도 은폐하려 했던 '참전' 일본인들의 존재와 활동 양상은 마침내 그 실체를 뚜렷이 드러내게 되었다. 1차 사료라고 할 수 있는 심문 기록 및 증언 다수가 직접 인용되어 있다는 점에서도, 이 책은 귀중한 사료적 가치 또한 지닌다.
한국전쟁에 일본이 관여했다는 사실에 관해서는, 주로 이 전쟁을 이용해 특수를 누렸다는 인식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일본인이 소해 활동 등 실전에 투입되었다는 사실이 보도될 때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이를 직접적인 전투 활동으로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러한 점에서 미군의 요구로 직접 한국전쟁의 지상전에까지 참가한 일본인들에 관한 내용은 파격적이라 할 수 있다. 일본인이 실탄을 지급받고 직접 북한군 및 중국군과 교전했다는 사실을, 1급 기밀(TOP SECRET) 해제를 통해 밝혀냈기 때문이다.
일본인 전투원이 활동했다는 사실 그 자체 뿐만 아니라, 미군 점령 하에 있었던 일본인들의 삶, 그리고 태평양전쟁을 겪은 일본인들의 한국전쟁에 대한 태도와 인식을 다뤘다는 점에서, 그리고 저널리스트인 저자가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평이한 문체로 저술했다는 점에서 이 책의 가치는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일본인의 한국전쟁 참전과 관련된 사건들을 제시함으로써 전쟁의 이면을 드러낸다. 이를 통하여 어느 일본인과 그들의 가족에게는 한국전쟁이 결코 '구원'과 '부흥'의 서사만으로는 이야기할 수 없는, 일종의 '비극'의 서사였음을 깨닫게 한다.
- 접기
P 2023-07-17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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