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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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김용섭과 이영훈을 열심히 읽게 된 데는 이 두 역사학자 모두 "한국적인 것"에 깊이 천착했기 때문이었다. 흥미롭게도 둘 모두 그 '한국적인 것'의 특수성을 '실증적'으로 밝혀내려고 하는 바로 그 지점에서 역설적이게도 실증의 부족으로 밝혀낼 수 없다는 모순에 봉착하게 된다. 김용섭에게 고조선과 결부제가 그런 거였다면, 이영훈에게는 노비제가 그런 것이었다. 김용섭이 결부제와 고조선 연구를 통해 중국적인 것=보편성과 대비되는 한국적인 것=특수성으로 '수렵채집민적 생활세계'를 상상했다면, 이영훈은 노비제를 통해 '모계제적인 것'에 천착하였다. 둘 모두 마르크스주의적인 발전사관과 계급문제가 제시하는 보편사적인 틀에 저항하며 그것으로 설명되지 않는 '한국적인 것'을 끊임없이 발굴해내려 했지만 정작 그것을 밝혀내야만 하는 지점에 이르렀을 때 실증의 한계로 좌절하게 되었다. 이 지점을 잘 벼려내서 한국 내셔널리즘의 두 얼굴을 대비하는 글을 언젠가 적어보고 싶다. 이걸 책에 넣어야 될지 말아야 될지 고민하다가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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