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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뷰 2025년 6월호에 실린 황성준-조평세 인터뷰. 총 12쪽인데, 정독할만하다.
황성준은 1964년생, 1983학번인데 내가 아는 한 동년배 중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다. 황순원의 손자다. 한글 책 보다 영어 책을 더 빨리 많이 편하게 읽는 사람이라서 부럽다. 조평세 박사도 대단한 분이고.
인상적인 대목 몇 개. 다 읽고 싶으시면 사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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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저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신 분은 할아버지 보다 저의 할머니입니다........제가 공산주의자가 되었을 때도 저를 타이른 유일한 어른이셨습니다. 저를 불러놓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 이강국이라고 아느냐”라고. 이강국은 일제 강점기 아주 유명한 빨갱이였습니다. 경성제대 출신으로 베를린 유학까지 다녀오고, 미남에다가 웅변을 잘해서 당시 여학생들한테는 신화적인 인물이었지요. 그런데 결국 북한에서 박헌영과 함께 숙청당했어요. 할머니는 이강국에 관해서 얘기하시면서 공산주의는 젊었을 때 보면 다 그럴듯해 보이지만 인간의 속성을 잘못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틀린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지요. 그러면서 공산주의에 빠진 저를 야단치셨습니다.
"사실 저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신 분은 할아버지 보다 저의 할머니입니다........제가 공산주의자가 되었을 때도 저를 타이른 유일한 어른이셨습니다. 저를 불러놓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 이강국이라고 아느냐”라고. 이강국은 일제 강점기 아주 유명한 빨갱이였습니다. 경성제대 출신으로 베를린 유학까지 다녀오고, 미남에다가 웅변을 잘해서 당시 여학생들한테는 신화적인 인물이었지요. 그런데 결국 북한에서 박헌영과 함께 숙청당했어요. 할머니는 이강국에 관해서 얘기하시면서 공산주의는 젊었을 때 보면 다 그럴듯해 보이지만 인간의 속성을 잘못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틀린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지요. 그러면서 공산주의에 빠진 저를 야단치셨습니다.
할머니는 1915년 생인데 2014년에 돌아가셨으니까 아주 오래 사시면서 저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특히 할머니는 인간의 본성을 가장 정확하게 꿰뚫고 있는 것이 성경인데, 성경은 인간의 본성을 악하게 본다고 말씀하시면서 공산주의는 인간 본성에 대한 전제가 틀렸기 때문에 처음부터 틀렸다고 이해하셨습니다. 젊었을 때는 항상 분기탱천해 있어서 그랬는지 그 말씀이 잘 들어오지 않았는데 나중에 보니까 그 말씀이 정확했습니다.
좌익이 그냥 강한 게 아니에요. 좌익들의 선전·선동도 사실 선동할 토양이 있어야 하는 것이에요. 아직도 전근대적 토양이 있으니까, 사람들이 말도 안 되는 전근대적 선동에 넘어가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현재 문제는 상당히 동양적인 사상, 그러니까 유교 주자학적 사상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주체사상과의 싸움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아주 꼴통적인 주자학적 사상과 무속적인 사고를 깨야 한다고 봅니다. 이 무속적인 사고는 기독교 안에도 있어요. ‘비나이다 비나이다’ 전통문화가 기독교인들 사이에도 많이 보입니다. 오랫동안 우리 문화의 DNA와 뇌 속에 녹아 있는 것들이 여전히 우리의 개화를 막고 있습니다.
“소련은 왜 망했을까?”라는 질문에 답을 찾고 싶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마르크스주의는 맞는데 관료들이 잘못해서 그런 거다’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공부하면 할수록 이론적 모순을 발견했습니다. 공산주의는 이론부터가 틀렸던 거예요. 결정적인 건 하이에크의 <치명적 자만>을 읽으면서였습니다. 그 책을 당시 같이 공부하던 친구가 준 러시아어 사미즈다트(Samizdat, 소련 치하에서 비밀리에 읽힌 자가 출판물)로 접해서 읽었는데, 진짜 충격이었습니다. 그때 큰 깨달음을 얻었고, 결국 제가 쓰고 있던 논문도 다 불태워 버렸지요.
보수우파 진영에서 이제껏 오랫동안 광장에 나가서 집회는 참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정말 필요한 건 공부입니다. 제가 12주 교육과정을 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깜짝깜짝 놀라요. 뭐 이렇게 기냐고요. 그런데 이 보수주의자의 싸움은 전쟁이나 마찬가지인데, 육군 소위 하나 만들려면 사관학교에서 4년씩 교육받습니다. 제가 예전에 운동권에 있었을 때를 예로 들어볼게요. 거기서도 간부가 되려면 ‘간부 교육’이라는 걸 받아야 해요. 그런데 지금 한국 보수 진영을 보면, 마치 신학 공부도 안 하고 교회에서 설교하려는 집사님들이 너무 많아요. 군대로 비유하자면, 사관학교도 안 다닌 분들이 전부 장군 노릇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에요. 현장도 모르고 전술도 모르고, 신문 좀 본 걸로 장군 흉내 내는 거죠. 지금 우리나라를 망쳐놓고 있는 운동권은 달랐어요. 병사에서 시작해서 현장에서 실전 경험 쌓은 유능한 부사관들이 있었습니다. 지금 한국 보수 진영이 나아지긴 했어요. 자생적으로 싸우면서 생긴 병사들, 부사관들도 보이거든요.
그런데 문제는 중대장, 대대장 역할을 할 사람들이 없다는 것입니다. 체계적인 훈련을 받은 중간 리더십이 없는 거예요. 그리고 또 하나 문제는 모두가 장군만 되려고 한다는 겁니다. 다 자기 목소리 내려고 하고, 전술이고 뭐고 다 자기가 결정하려고 해요. 총사령관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졸병은 없고, 중간 간부도 없고, 장군만 열 명, 스무 명씩 있는 그런 부대가 어떻게 전쟁하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일단 유능한 소대장, 중대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역할을 하는 ‘학교’가 필요하다는 거죠. 일종의 간부 군사학교, 또는 고등 군사학교 같은 거예요. 그 안에서 작전도 짜보고, 전략도 세워보고, 진짜로 실전에서 진짜로 써먹을 수 있는 공부를 해야 해요. 그게 지금 한국 보수우파에 절실히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선이 두 개가 있습니다. 첫 번째 전선은 지금 당장 싸워야 할 현실 정치의 전선이에요. 이건 이념의 차원을 넘어서서, 리버테리언(Libertarian, 자유지상주의자)이든, 반공 세력이든,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함께해야 할 전선입니다. 그런데 이 전선만으로는 안 돼요.
두 번째 전선은 더 깊은 차원의 전선입니다. 바로 세계관 전선, 즉 진짜 보수주의의 철학적, 정신적 전선이에요. 이건 상대적으로 아직 너무 약해요. 이 세계관 전선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아요. 진지전을 해야 합니다. 맨날 그람시(Antonio Gramsci) 얘기하면서 진지전 타령만 하지 말고, 이제는 우리도 각자 자기 영역에서 진지 좀 파자는 겁니다. 개인호도 파고, 그걸 서로 연결하는 교통호도 만들고, 토치카(방어기지)도 만들고, 진짜 ‘자리’를 잡자는 거예요. 그 자리 안에서 공부를 시작하고, 이론을 세우고, 실천 계획을 세워야죠. 저는 총사령관이 될 생각은 없습니다. 단지 유능한 중위 하나 키워낼 수 있는 교관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그 정도는 할 수 있겠다 싶어요. 그렇게 해서 하나하나 전열을 가다듬고, 대한민국을 제대로 세워나가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다면, 그게 제 사명이고, 그게 제 소명이라고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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