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26

당신들의 대한민국 2권 세트 박노자

당신들의 대한민국 2권 세트

당신들의 대한민국 2권 세트
박노자 (지은이)한겨레출판2006-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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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판 확인일 : 2013-06-27

책소개
러시아에서 태어나 귀화한 한국학 학자 박노자의 한국사회 비평집. 동서양을 넘나드는 폭넓은 시야와 성역 없는 비판으로 박노자 신드롬을 일으킨 책이다. 한국 사회에 대한 해박한 인문학적 지식과 직접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부끄러운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그의 시각은 외부에서 한국사회를 바라보는 것이지만 동시에 내부에서 한국사회에 대한 충분한 경험과 그 배경에 대한 철저한 이해가 그 기반을 지탱하고 있다. 1.2권에서 일관되게 나타나고 있는 '이방인'을 차별하는 '우리'의 일그러진 민족주의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나, 권위주의적인 병영국가 대한민국을 꼬집는 성찰은 그래서 더더욱 설득력과 공감의 힘을 갖는다.

1권에서는 한국 사회에 뿌리깊게 박혀 있는 집단주의를 종교, 대학, 군대, 외국인 차별 등에 만연한 폭력과 전근대적 요소를 통해 드러냈다. 2권에서는 논의를 더욱 확장하여 한류, 황우석 사태 등에서 신자유주의와 세계화 열풍에 빠진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이면을 살펴본다.


목차


1권

짧고도 긴 한국과의 만남

1부 한국사회의 초상

전근대적이고 극단적인 '우상숭배'
독재자에게 후한 한국인 | 일그러진 현대성 | 중세의 갑옷을 입은 군국주의 | 또다른 세뇌 메카니즘 | 다른 체제, 같은 기만

사대주의와 멸시가 공존하는 사회
거래하는 '친구' | 테러가 지배하는 사회인가 | 영어공용화론의 망상 | 불명예스러운 '명예' | 깡패적 차별과 일상적 차별 - 한국식 오리엔탈리즘 | 우리 안의 '위대한 수령' | 북한 멸시와 무절제한 우월의식

한국의 종교와 패거리문화
한국 교회의 선민의식과 배타주의 | 숨막히는 종교패거리주의 |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어야 불자(佛者) | '빈 깡통'의 생존방식

아직도 폭력이 충만한 사회
'죽을 고생'이라는 화두 | 맹종에 길들여진 냉소적인 사회 | 인간성을 파괴하는 군대 | '군대문화로부터의 해방'을 위하여 | 군대에 가야만 남자인가 | 죽음보다도 무서운 기억

역사 속의 교훈들
혈통과 국적을 넘어서 | 일제식 환상에서 벗어나야 | 노근리의 교훈 | 어두운 현대사 가리기 | 북한 바로 알기 | 동족 살상을 기뻐하다니 | 공자는 죽은 우상 | 그들의 아픔을 아시나요

2부 대학, 한국사회의 축소판

'진보' 꺼풀 속에 숨은 전근대성
'투사'에서 '충복'으로 | 이제는 "개인 독립 만세" | 영원한 '커닝' | 조교들이여 일어나라 | 상아탑의 노예들

대학교수, 또 하나의 코리안 드림
대학의 공기는 당신을 자유인으로 만든다 | 너무나도 어두운 스승의 그림자 | 또 하나의 특권집단

상아탑에 드리워진 망령들
중세의 왕국인가 대일본제국 시절인가 | 정글에서의 생존방식, 돈과 로비 | 독재정권의 기린아, '교육자본'

3부 민족주의인가 국가주의인가

민족주의에 대한 몇 가지 생각
위로부터 강요된 민족주의 | '우리'라는 초대형 담론 | 민족주의라는 '상징 기계' | 민족 만들기 | 강요된 '집단 언어'를 넘어서

한국 민족주의의 진면목, 국가주의
특권층의 계급적, 극우적 배타주의는 아닌가 | 혈통주의를 부정한 '재외동포법' | 자본주의적 국가주의 | 우방의 편의와 '국익'을 위해서

4부 인종주의와 대한민국

서울의 이방인
배고픈 땅의 지성인, 또다른 그의 선택 | '진지한 근대'를 찾아서 | 완전히 다른 또 하나의 한국 | 또다른 발견, 엄격한 '인종질서'와 '국적 질서' | 마지막 남은 인간적 존엄성 | 원수를 사랑한 사람

일그러진 증오와 멸시의 논리
원래 인종주의란 없었다 | 개항과 인종주의의 수용 | 매판형 지식인의 원형, 윤치호와 서재필 | 친일로 돌아선 자강파의 초상 | 해방과 인종주의의 내면화


2권

서문 - 세계화의 향연, 그리고 초대받지 못한 자들

1부 한국사회의 초상

일상 속의 권위주의
한류, 자랑스럽기만 한가 | '대한 남아'의 멍에 | 제복을 강권하는 사회 | 성형수술, 혹은 욕망의 노예화 | '개미허리'의 굴레 | '도덕'은 지배의 위장술인가 | 10대는 키스하면 안 되나 | 사회의 첫 경험 '알바' | 체력이 국력이다? | 부끄러운 짝사랑

숭미(崇美)주의에 희생된 예수
대학 영어 상용화는 국제 표준? | '유일사상 체제'의 그늘 | 우리도 한번 미국인처럼? | 다시금 희생된 예수와 성모 | 하화중생(下化衆生)이 없는 한국 선(禪) | 일본 승려 우치야마의 '죽을죄'

박제가 된 학문의 자유
'학력 과잉'이라고? | 마음을 파괴하는 사회 | 30여 년 전을 생각한다 - 전태일과 시간강사 | 한국 학계에서 벼슬을 박차기 어려운 이유 | 교수라는 이름의 '황금 우리' | 한국 대학 - 착취 공장이자 지식 시장의 명품 백화점

2부 병영국가 대한민국

합리화된 폭력의 사회
폭력에 대한 우리의 무감각증 | 너무나 비슷한 두 지옥 | 유승준을 보는 우리의 일그러진 눈 | '국적' 마녀사냥을 중단하라 | 이회창 아들과 민중의 아들 | 폭력에 대한 또 하나의 역사적 성찰

진정한 강국은 무엇인가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 | 데자뷔, 어디서 본 듯한 맹종 | 한국 부르주아 자유주의의 참을 수 없는 허약함 | 용미(用美)론, 위험천만한 허구 | 극미로 가는 더 큰 길 | 유일 초강대국 영원할까 | 보수 정치권이 '반국가 단체'인 이유

3부 또 다른 대한민국

이방인들의 나라, 대한민국
'노동' 빠뜨린 우리의 역사 왜곡 | 외노(外勞)인가 외노(外奴)인가 | 자본 세계화의 얼굴 - 이주 노동자의 여러 모습들 | 우리에게 이민 수용 정책 있나? | 반한 단체? 출입국관리사무소! | '히딩크 현상'의 명암 | 후발의 장점

다시 생각하는 민족주의
박물관에 가기 싫어진 까닭 | 민족국가의 신성불가침에 대한 도전 | 민족의 정기와 계급의 정기 | 한용운, 인류를 사랑한 애국자 | 김알렉산드라의 독립운동

또 하나의 우리, 북한
주체사상 - 무엇이 주체인가 | 북한에 겸허하게 다가가기 | 색깔 있는 자도 품을 수 있는……

4부 진보의 창

보수를 넘어
탄핵 사태, 그 역사적 본질 | <조선일보> 왕국의 하인들과 사무라이 | 광란이 지난 뒤 | '집단 악덕 기업주'로서의 한국 지배층 | 소장농의 투쟁에서 배운다

세계에서 배우는 진보
진보운동의 쌍둥이, 사회주의와 평화주의 | 서구 반전운동의 아쉬운 교훈 | 유럽인들의 무감각과 가계 부채 | 제1세계 진보 정당들이 못다 한 책임 | 노동당 전쟁광의 수수께끼 | 벼랑 끝에서 계급 타협하다 - 브라질 룰라 대통령과 한국 | 미국과 싸우는 미국인들 | 자본주의와 친절 | 얼어 죽는 자본주의 | 하워드 진을 읽고 흘린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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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전쟁 이외에 자본주의 세계에 내제돼 있는 폭력 장치들은 무수하다. 예컨대 사회적 자원(신분상승, 위신)을 놓고 벌이는 경쟁은 인간의 폭력화에 가장 많이 기여하는 제도적 폭력의 형태다. 학교에서의 성적 경쟁도 '남들은 다 잠재적인 적'이라는 폭력적 의식을 주입하지만, 유치원 때부터 하는 대항적인 스포츠도 경쟁이라는 형태의 규범화된 폭력을 내면화한다.

운동이야 신체, 정신적으로 필요하지만, 왜 꼭 남과 싸워서 승패를 가리는 운동을 정상적인 것처럼 가르쳐야 하는가? 몸의 움직임 자체와 과정을 즐기고 경쟁을 생각지 말라고 하면 안 되는 것인가?

그러나 사회는 신체적 경쟁을 당연지사로 가르칠 뿐 아니라 대자본의 돈벌이인 올림픽, 월드컵과 같은 국가 대 국가의 상징적 대항전을 전 지구적 볼거리로 만든다. '싸워서 이긴' 자가 영웅이라는 허구를 어릴 때부터 진리인 양 착각하게 된 사람들이 폭력을 아파하는 어린아이의 본성을 간질할 수 있겠는가? 우리팀이 이기기 위해 코치의 말을 무조건 잘 들어야 한다는 제도권적 스포츠의 법칙에 익숙해진 사람, 즉 명령이 떨어지는 대로 당장 실행해야 한다는 것이 본능화된 사람이라면, 저 놈을 쏘라는 장교의 명령을 따르지 않을 확률이 얼마나 높을 수 있을까? - 2권 본문 89쪽에서  접기



저자 및 역자소개
박노자 (Vladimir Tikhonov)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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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의 레닌그라드(현재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나 자랐고, 본명은 ‘블라디미르 티코노프’다. 2001년 귀화하여 한국인이 되었다. 레닌그라드대 극동사학과에서 조선사를 전공했고, 모스크바대에서 고대 가야사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노르웨이 오슬로대에서 한국학과 동아시아학을 가르치고 있다.
한국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칼럼들을 묶은 《당신들의 대한민국》으로 주목받았으며, 《당신이 몰랐던 K》 《미아로 산다는 것》 《주식회사 대한민국》 《비굴의 시대》 《전환의 시대》 등은 이 연장선상의 저작이다. 《조선 사회주의자 열전》 《거꾸로 보는 고대사》 《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 《우승열패의 신화》 등을 통해 역사 연구자로서의 작업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접기

최근작 : <한국자본주의의 위기>,<동아시아 포스트자본주의 대안: 평가와 전망>,<포스트자본주의와 마르크스주의의 혁신> … 총 105종 (모두보기)
인터뷰 : 이중의 타자, 박노자 교수와의 e-만남 - 2002.07.31


출판사 소개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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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열세 번째 계절의 소녀들>,<서른 번의 힌트>,<[북토크] <죽은 다음> 희정x뀨뀨 북토크>등 총 600종
대표분야 : 한국사회비평/칼럼 1위 (브랜드 지수 331,915점),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7위 (브랜드 지수 547,284점), 에세이 9위 (브랜드 지수 768,47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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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화한 한국인이라고 하기에는 놀라운..



지은이는...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블라디미르 티호노프라는 이름으로 태어났으나

한국인 박노자로 귀화한 사람입니다.



책이 다소 난해한 부분이 적잖아 있는데...

그런 책의 난해함에 놀란것이 아니라

귀화한 한국인이 어떻게 이렇게 한국에 대한 놀라운 지식과 식견을 가지고 있는지

새삼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책을 읽고 나니...

경제발전이라는 미명하에 군사독재를 펼쳤던 박정희와 그 권력의 계승자 전두환..

세종문화회관 앞에 서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의 설립의 비화

근대화에서 독립신문의 발행과 함께 인종차별의 개념을 전파했던 윤치호.

상아탑이라는 미명하에 펼쳐지는 교수/재단의 망령들..

들에 대해 기존에 알고 있는 내 지식이 얼마나 잘못되어 있는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계레주의니, 백의민족이니 하는 허명 아래..

우리는 얼마나 많은 외국근로자들을 무시하고 천대했는지..

우리안에 들어 있는 망령들은 무엇인지 깨닫게 해준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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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dy 2006-04-05 공감(4)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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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필요한 문제제기..



처음 이책을 읽었을때는 너무 공감이 가다 못해 충격이었습니다.

한국의 수많은 대학의 지식인들은 다 무엇을 하길래

파란눈의 새파란 귀화인이 이런 주장을 선수 치도록 내버려 두는 지 한심했습니다.



게다가 그는 아주 젊더군요.

우리네 지식인들이 그보다 수십년 더 연구해도 말되는 말 별로 못하고

교수라는 간판만 즐기며 사는데 비해 그는 쭉쩡이없는 100% 알곡의 학자의 삶을 살며

양심껏 이야기 하더군요.



이런 선생 많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책을 한번 읽어봐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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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 2006-07-21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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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우리들의 대한민국

그러니까 나도 나름 언어를 전공한 사람인데...

이렇게까지 완벽하게 한국어를 구사하는 모국어가 한국어가 아닌 사람의 글을 접하게 되는 것자체가
놀라움 그 자체이다.

모르긴 몰라도,
박노자선생은 한국어를 심도있게 공부를 했고,
나름의 한국에대한 완변학 이해를 가지고 있다.

내가 일본어로 이 정도로까지 글을 쓸 수 있다는 건
정말 대단한 노력을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박노자선생의 한국사회를 들여다보는
본질에 육박해 가는 자신만의 완벽한 논리와 그에 근거하는 확실한 자료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이 잡다한 생각에서 비롯된 주장만을 늘어놓기에 급급한데.
박노자선생의 글은 확실한 자료들과 역사적 사실들이 뒷받침되고 있다.

1권에 비해서
2권은 정제되어있고, 절제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는데
그것은 그만큼 박노자선생의 한국에 대한 이해가 깊어가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선생이 제시한 한국사회의 뿌리깊은 근간인
1. 유교적 서열의식
2. 군대문화의 상명하달식 복종
3. 단 한번도 성공한 적이 없는 민중의 역사혁명 등은

한국사회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주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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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맹정진 2008-11-06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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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를 마주하는 거울 같은 책



지금 까지 나의 생각을 지배했던 그 무언가를 알려주는 책이다.

민족주의 국수주의에 젓어서 살아왔던 내가... 그것이 애국이고 바른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래서 거론하지 못할 절대적인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것에 대한 '왜?"가 던져진다.

당연하다는 말이 이제는 낮설고 사회의 변화와 여러 관계의 이면에서 우선적으로 인류와 인간을 먼저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이 책을 잡으면 무릎을 쳐가며 읽게된다. 그것에 동의하게 되고 공감하게되고 그리고 변화하게된다.

대한민국을 사랑하기에 멀리 러시아에서 귀하한 저자의 애정이 흘러넘치는 책이다.

꼭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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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스트 2008-03-06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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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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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의 글을 읽다 보면, 뭐랄까 왠지 고개를 들 수 없는 면구스러움이 있다. 러시아 큰 나라에서 태어나 어쩌다가 이 작은 나라에까지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 하는 황송함도 아니고, 우리의 치부를 들켜야 하는 부끄러움도 아니다. 다만 그가 이 나라에 갖는 치열한 문제 의식에 비하여 둔감해져버린 나 자신을 책망하는 마음이다.

이 책은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잘 아는 러시아 태생의 귀화 한국인' 박노자의 칼럼을 모아 엮은 것이다. 한국 사회에 남은 뿌리 깊은 전근대성을 질타하는 그의 글은 늘 우리들을 각성하게 한다.

그가 비판하는 전근대성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발견된다. 운동권 안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가족주의와 권위주의, 군사독재를 거치며 만연하게 된 폭력 문화, 힘없는 타자를 멸시하는 인종주의, '우리'라는 한마디로 선악의 개념을 해체시켜버리는 민족주의, 국가주의, 지역주의, 연고주의... 급격하게 한국 사회를 삼켜버린 자본주의는 물질주의와 상품화라는 아름답지 못한 모습까지 더했다.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느 하나도 속 편히 넘기지 못하는 저자의 눈엔 한국 사회의 추한 모습이 너무나도 잘 보인다. 그렇다고 그가 사물을 바라보는 틀이 유별난 것은 아니다. 다만 끊임없는 '의문갖기'와 '부끄러워하기', '분노하기', '싸우기'만이 그가 이 사회를 고민하는 무기다.

이로써 그가 지키고픈 것들은 책의 맨 앞장에 쓰인 헌사에서 잘 드러난다. "아직도 감옥에 있는 모든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

'여호와의 증인'을 믿는 신도이기 때문일까? 물론 아니다. 법이든 제도이든 관습이든, 집단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어떠한 차별과 폭력에도 단호히 저항하고자 함이 그 이유다. 약자를 위하는 그의 정의로움은 이 책의 인세를 외국인 노동자의 권익보호를 위해 쓰여지길 바란다는 뜻으로 더욱 빛을 발한다.

그는 지금 노르웨이의 오슬로 대학에서 한국학을 가르치고 있다. 소련에서 태어나 교육받은 바탕에 한국에 대한 지대한 관심과 애정, 거기에 선진화된 북유럽에서의 체류 경험까지. 이제 그가 우리에게 들려줄 말이 더 많아졌다.

'빠리의 택시운전사' 홍세화씨의 말처럼 차가운 이성과 따뜻한 가슴을 가진 박노자를 갖게 된 것은 우리에게 크나큰 복일 것이다. 그 역시 한국을 만나고 알게 된 것이 큰 행운이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기를... - 정선희(2001-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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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비폭력투쟁이라는 것은 고도의 마음 훈련과 인내심, 거의 무한한 마음의 힘을 요구하는, 아무니 할 수 없는 극히 어려운 일이다. 최선책인 비폭력투쟁을 할 만한 마음의 힘을 갖추지 못했다면, 차선책으로 폭력투쟁이라도 하는 것이 비겁하게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낫다. "겁이 나서 억압자의 폭력 앞에 움츠려서 보신을 하는 것보다 차라리 분개해서 폭력투쟁이라도 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낫다."고 말한 사람은 바로 비폭력투쟁의 원조인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다. ((중략)) 폭력이 만악의 근원이라 해도, 무관심은 폭력보다 천배 만배 무섭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무관심은 결국 소수의 폭력을 낳는다.-257~258쪽  접기 - logos678
p. 29 자기가 남을 잡아먹고 싶으면서도, 남에게 잡아먹히기를 겁내며 ......... 다들 의심 깊은 눈으로 서로서로 쳐다보면서...... -노신[광인일기] 중에서- - 참교육의함성...
그는 이방인의 눈을 가졌으나 
그의 가슴은 한국인의 것이다.

뛰어난 우리말 능력으로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짚어내는 그의 글에날카로움과 함께 항상 안타까움이 배어 있는 까닭은 그 때문이다.

차가운 이성과 따뜻한 정서의 아우름, 그를 갖게 된 것은 우리에게 크나큰 복이다.

홍세화(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저자)  접기 - 이용빈
한국인으로 귀화하기 전까지
 ‘블라디미르 티호노프‘ 로 알려졌던 그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St. Petersburg)에서 태어났다. 

그곳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 동방학부 한국사학과를 졸업했으며 이후 모스크바 국립대학교에서 5세기 말부터 562년까지 <가야의여러 초기 국가의 역사>라는 논문으로 아시아 및 아프리카 학부 박사 학위를 받았다. 

모스크바 국립대학교, 러시아 국립 인문대학교강사를 거쳤으며 경희대학교 러시아어과 전임강사를 역임했다.

현재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대학 한국학 부교수로 재직 중이며 활발한 연구 및 강의 활동과 함께 국내 매체 기고를 통해 한국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을 과시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 대한 해박한 인문학적 지식과 직접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부끄러운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 지식인들은 물론 일반 독자들 사이에서 ‘토종 한국인보다 한국에 대해 더많은 것을 알고 있는 사람‘ 으로 알려져 있다.

주요 논문으로 <가락국기에 있어서의 왕권신수설〉 〈신라 경문왕의유불선융화정책〉 〈6~7세기의 신라 지배층의 선민의식〉 등이 있으며 송영, 박경리, 김원일 등 국내 주요 작가의 작품을 러시아어로 번역한 바 있다. 

지금은 한용운의 『조선불교유신론』, 등 종교, 사회주의 관련 논저를 영문으로 번역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펴낸 책으로 『당신들의 대한민국 02』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 하얀 가면의 제국 나를 배반한 역사』 『우승 열패의 신화 『나는 폭력의 세기를 고발한다』 등이 있다.  접기 - 이용빈
이남과는 아직 관계가 없었고, 이북에도 가기가 그리 쉽지 않던 그시절, 나는 ˝샘물 소리 높은 바위 틈에서 흐느끼고, 햇빛이 푸른 솔에차갑기만 한(泉聲四危石 日色靑松)˝ 명시(名詩) 속 산수의 실제 풍경을내 눈으로 직접 감상할 날이 오리라고는 감히 상상도 못했다. - 이용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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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씨의 글들은 참 대단하다. 러시아에서 태어난 파란눈의 사람이 어떻게 낮선 나라 한국을 우리들보다 더 잘 아는가의 문제를 떠나서도, 그가 파악하고 지적하는 우리들의 모습이 무척이나 정확하고 읽는 사람들이 공감하게 하는 힘이 크기 때문이다.

몇년전 연재되던 조선말기에 대한 탁월한 안목을 갖춘 그의 글들을 ?해 그를 알게 된후, 몇년 사이에 그는 엄청난 분량의 저작들을 펴내기도 했다. 엄청난 분량의 작업이 아닐수가 없다. 그런 책들 대부분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하지만, 이 책 당신들의 대한민국은 현재 우리들의 모습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그가 지적한 것들은 사실, 우리내부에서도 예전부터 있어온 지적이기도 하다. 진보세력 내부의 권위주의, 허위의식, 패거리문화, 현대와 함께 공존하는 가부장제, 민족과 국가관념의 혼돈... 그러나 우리의 언어로 그것들을 이야기할때는 그런 지적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런 지적은 매우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에, 그런 지적을 하는 세력과 지적을 당하는 세력 사이의 충돌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진보세력내에 권위주의가 존재한다는 지적은 진보세력을 탄압하려는 음모라고 항변을 받았고, 패거리 문화논쟁은 정치적 공방으로 확산되기도 했었다.

가장 민감한 문제는 국가와 민족이라는 서로 다른 실체를 동일한 개념으로 사용하면서 나타나는 혼란이다. 우리는 단일민족 국가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지만, 국가라는 현존하는 실체적 존재와 민족이라는 이데올로기성을 가진 개념은 상당부분 중복되지만 일치하지는 않는다.

그런 개념들의 혼돈이 우리사회에 존재하는 개념적 혼란을 초래하는 원인이라는 지적은 날카롭다. 우리들 내부에 분명히 존재하지만, 우리들이 잘 깨닫지 못하고 있는 그런 혼돈을 박노자는 잘 가려내고 있는 셈이다.

한가지 그가 지향하는 지적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근대성'이라는 개념이다. 그가 한국사회에 존재하는 전근대성을 지적할때 사용하는 근대성은 분명히 서양적인 개념의 근대성이다. 오늘날 그 개념은 널리 통용되기에 별다른 무리없이 사용할 수 있긴 하지만, 서양의 외피를 입고 있지만 속까지 서양이 되고 싶지는 않은 우리들의 무의식과 근대성이 어떻게 잘 조화될 수 있는지는 많은 생각을 해보아야 할 숙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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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하늘 2006-11-10 공감(4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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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노자는 제가 재수 때 알게된 분입니다. 저는 2004년에 서울에서 재수생활을 했습니다. 기숙사 생활을 했는데 거기서 우연히 박노자씨의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오랜 세월이 흘러 다시 우연한 기회에 박노자씨의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웹툰 <흙수저를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이 책이 소개되어서 읽게 되었습니다. 



 아래 좋은 리뷰가 있어서 리뷰를 먼저 소개하겠습니다. 



 박노자의 글을 읽다 보면, 뭐랄까 왠지 고개를 들 수 없는 면구스러움이 있다. 러시아 큰 나라에서 태어나 어쩌다가 이 작은 나라에까지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 하는 황송함도 아니고, 우리의 치부를 들켜야 하는 부끄러움도 아니다. 다만 그가 이 나라에 갖는 치열한 문제 의식에 비하여 둔감해져버린 나 자신을 책망하는 마음이다.

 이 책은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잘 아는 러시아 태생의 귀화 한국인' 박노자의 칼럼을 모아 엮은 것이다. 한국 사회에 남은 뿌리 깊은 전근대성을 질타하는 그의 글은 늘 우리들을 각성하게 한다.

 그가 비판하는 전근대성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발견된다. 운동권 안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가족주의와 권위주의, 군사독재를 거치며 만연하게 된 폭력 문화, 힘없는 타자를 멸시하는 인종주의, '우리'라는 한마디로 선악의 개념을 해체시켜버리는 민족주의, 국가주의, 지역주의, 연고주의... 급격하게 한국 사회를 삼켜버린 자본주의는 물질주의와 상품화라는 아름답지 못한 모습까지 더했다.



-알라딘 리뷰 정선희님(2001-12-28)





 박노자씨는 한국에서 대학생활을 하면서 대학, 군대, 외국인 노동자 등의 문제점을 인식하게 됩니다. 우리나라의 민족주의, 국가주의, 인종주의 등에 대한 비판도 합니다. 



 그의 글을 읽으면서 한국사회에 살면서 다양한 문제점들에 대해 둔감해졌던 나 자신에 대해 반성하게 됐습니다. 2001년에 쓰인 이 글에 비해 지금은 여러모로 더 나아졌다는 생각에 다소 안도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 책이 서울시교욱청권장도서라는 사실이 참 반갑습니다. 청소년들이 일찍 사회에 눈을 떠서 이 사회를 바꿔나갈 수 있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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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라디오 2021-01-11 공감(14)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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놋주발보다도 더 쨍쨍 울리는 비판! 새창으로 보기 구매
2001년의 마지막날에 쫓기듯이 책을 읽는다. 이 해가 가기 전에, 그리고 새해를 맞기 위해서. 월드컵의 해라고도 하고, '전쟁의 해'가 되리라고도 한다. 그리고 아마 선거의 해가 되리라. 지난 대선에서의 감격이 5년 동안 하강곡선을 그려왔지만, 새해에 그것이 다시 상승곡선을 그리리란 보장은 별로 없어 보인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다급하게 책을 읽는다. 박노자가 그린 '한국사회의 초상'을 읽는다. 장담하지만, 이 '초상'은 좀 뒤늦게 등장한 올해의 책으로서 손색이 없다.

러시아인 블라디미르 티호노프에서 현재는 귀화하여 한국인이 된 그의 책을 읽으며(나는 그의 책을 꽤나 고대했었다), 나는 책의 부제가 말해주는 대로, '서로 잡아먹기를 탐내는' 이 전근대적이고 국가주의적인, 아주 돼먹지 않은 나라, 대한민국에 사는 것이 속상하고 부끄러우면서도 한편으론 자랑스럽다. 그가 보기에 남한 사회는 권위주의와 차별의식으로 똘똘 뭉쳐진, 북한보다 그다지 나을 것도 없는 사회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러한 그의 시각이 냉소가 아니라 뜨거운 비판이라는 데 있다. 그것이 뭔가 치부를 들킨 듯한 우리를 부끄럽게 하고 낯뜨겁게 한다. 하지만, 좀 있으면 목구멍이 뜨끈해진다.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거대한 뿌리>)라고 비숍 여사와 '연애'를 하고 난 시인 김수영은 뜨끈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이어서 '버드 비숍 여사를 안 뒤부터는 썩어빠진 대한민국이/ 괴롭지 않다 오히려 황송하다 역사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고도. 왜? 그것은 그에겐(=우리에겐) '놋주발보다도 더 쨍쨍 울리는 추억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 낯선 러시아계(?) 한국인(!)의 책에서 나는 '놋주발보다도 더 쨍쨍 울리는 비판' 정신을 본다. 그리고 아직 그런 정신이 우리 사회에 살아있구나 하는 대견함과 안도감에서 나온 자랑스러움을 느낀다. 그것은 이창동의 영화 <박하사탕>을 몇 번씩 되돌려 보면서 속으로 흐느끼다가도 한편으로 이 감독과 영화가 대견스러워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과 같은 종류의 것이다.

가령 그의 비판은 이렇다. '대공분실에서 '통닭구이'나 재계에서 돈 뜯어먹기밖에 할 줄 아는 것이 없는 (우리의) 정치인에게 남은 생존방식은 딱 하나다. 바로 '핫바지'나 '우리가 남이가' 같은 '화두'를 들어 '전라도 빨갱이'를 때려잡는 무용담을 나누는 것이다.'(95쪽) 그런 비판이 우리 사회에 아주 없지는 않았지만, 이만한 진폭과 열기를 동반한 비판은 드물었다.(택시 운전사 홍세화와 'B급 좌파' 김규항 정도를 떠올릴 수 있을까?) 아마도 그래서 눈에 띄었을 것이다. 몇 년전 한겨레 지면에 낯선 필자의 칼럼이 연재됐을 때부터 나는 그의 글들을 주의깊게 읽어왔다. 한국의 사회와 역사에 대해 나보다 박식한 그에게 주눅들기도 하면서. 이제 그 감동을 여러 사람과 공유할 수 있어서 반갑고 다행스럽다. 많은 사람들, 특히 젊은 세대들이 읽었으면 싶다. 특히, 남한도 북한도 다 싫지만, 이민갈 생각은 없는 사람들은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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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01-12-31 공감(2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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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돌아와 '우리' 앞에선 외국인 새창으로 보기 구매
/당신들의 대한민국/ 왜 당신들이라고 했을까. 노자씨는 우리에게 동화된 인물이고, 귀화한 인물인데. 어쩔 수 없는 거리감이 그에게는 있었을 게다. 어차피 그와 우리는 다르다는 것을. 그래서 그는 외국인의 시각에서 우리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오히려 우리보다 더 애정어린 눈으로.

우리의 역사, 근현대사는 왜곡과 질곡로 일관되어 왔다. 8.29, 3.1, 11.3, 8.15, 8.15, 9.9, 6.26, 6.25, 9.28, 1.4, 7.27, 3.15, 4.19, 5.16, 5.17...6.29 순 비극적이고, 슬픔의 역사 말이다. 일제 강점, 만세운동, 학생의거, 해방, 남한정부수립, 북조선 정부수립, 김구 암살, 전쟁, 인천상륙과 서울수복, 후퇴, 휴전, 부정선거, 의거와 혁명, 쿠데타, 또 쿠데타... 항복우리만 아는 이 숫자들의 질곡 속에서 노자씨의 냉철함을 우리를 고개 숙이게 한다.

그러나, 우리가 고개 숙이기 전에 알아야 할 것은. 미래에도 우리 후배들, 후손들을 고개 숙이게 하지 말자는 것. 개혁을, 좋은 미래를 후손에게 물려 주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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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2-11-30 공감(2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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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대한민국 새창으로 보기
 이 책에 대한 얘기는 여기저기서 많이 들어왔는데, 어쩌다보니 이제서야 손에 잡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알다시피 우리나라로 귀화한 박노자라는 사람이다. 겉모습은 러시아인이지만, 국적은 한국인, 그리고 그의 마음도 한국을 아끼는 마음이 있기에 이런 목소리가 나올 수 있었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크게 4부로 나누어져있다. 한국사회의 초상, 대학, 한국사회의 축소판, 민족주의인가 국가주의인가, 인종주의와 대한민국. 각 장을 읽어갈 때마다 혹 그가 너무 편파적인 시각에서 한국을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를 찾으려 했지만, 책의 뒷표지에 쓰여진 홍세화의 말처럼 '그는 이방인의 눈을 가졌으나 그의 가슴은 한국인의 것이다. 뛰어난 우리말 능력으로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짚어내는 그의 글에 날카로움과 함께 항상 안타까움이 배어 있는 까닭은 그 때문이다. 차가운 이성과 따뜻한 정서의 아우름, 그를 갖게 된 것은 우리에겐 크나큰 복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을 뿐, 그가 편파적으로 생각하고 있음을 찾을 수는 없었다.

 이 책이 출판된 것도 벌써 4년전의 일이다. 하지만 그 때의 한국의 모습과 지금의 한국의 모습은 과연 얼마나 달라졌는가? 그가 책에서 비판한 내용들은 아직도 우리 사회에 남아있어 여전히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차별은 존재하고 있고, 툭하면 군대 내에서의 구타문제는 떠오르고 있고, 여전히 시간강사들은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으며, 인맥을 바탕으로 한 관계들도 존재하고 있다. 그다지 달라진 것이 없다. 군대를 가지 않기 위해서 국적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한국으로 귀화하고 싶어도 시험을 통해 걸러지는 사람들도 있다.

 작년에 학교에서 멕시코 이민자들에 대한 사진전을 본 적이 있다. 그 때 사진 속의 조선인들의 모습과 우리나라에서 일하고 있는 동남아시아 노동자들의 모습이 오버랩되서 겹쳐지는 것은 왜였을까.

 이 책은 너무도 쓴. 하지만 한 번쯤은 먹어야 할 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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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지 2005-07-23 공감(17) 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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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 박노자만이 아니라 흑인 박노자, 동남아, 남미출신 박노자를 기다리며 새창으로 보기
박노자씨의 책을 읽을때면 나는 가끔 해보는 생각이 있다. 이 사람이 파란눈의 백인이 아니라 흑인이거나 동남아시아나 남미의 사람이었다면... 그래도 그의 글이 이렇게 한국사회에서 대표적인 논객의 대접을 받고 할 수 있었을까?(책을 읽다보니 뒤쪽에 실제로 나같은 생각을 가지고 질문을 던진 학생이 있더만....) 한겨레 21을 통해 그의 글을 처음 접했을때 사실 나 역시 그의 특이한 이력 - 오리지널 백인이면서 한국으로 귀화한 -에 끌렸었다. 그가 만약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의 귀화인이었다면 나 역시 그렇게 쉽게 호기심을 가지고 그의 글들을 읽었을는지는 알 수없다.

박노자 그가 말하고자 하는것. 그것은 바로 대다수 한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이 편견과 편견으로 인한 폭력에 대한 비판이다. 그의 비판은 그 스스로가 한국인이라 생각하기에 조금도 외부인의 체면치레나 외교적인 언사가 없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라는 인간속에 축적된 한국이 아닌 다른 문화의 경험덕택에 보다 객관적이고 명쾌하게 한국사회에 비판의 칼날을 들이댄다. (여기서 객관적이라 함은 누구나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한국의 제반 문화에 대해 일정의 거리두고 바라보기에 그가 성공하고 있다는 의미이다.남의 눈의 티끌은 보여도 내 눈의 들보는 안보이는 법이니까....)

박노자는 박통을 늘 다카키 마사오라 부른다. 그가 박통을 박정희가 아니라 다카키 마사오라 부르는 것은 박통의 친일 경력때문이 아니다. 사실 식민지 시대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다른 친일파들에 비하면 그의 업적(?)은 사실 미미하다고 할 것이다. 박통이 박정희가 아니라 다카키 마사오인 이유는 박통이 만든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일본 군국주의 그 자체 아니 그 이상이기 때문이다. 일본군국주의의 군사문화와 억압적 폭력적 통치체계가 여전히 이 나라를 병들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노자는 당신들의 대한민국 1편에서 박통정권의 해부에 그토록 많은 지면을 할애했던 것일게다.

박통이 이 땅에 심어놓은 일본군국주의에 대한 논의는 2권에서 보다 더 폭넓은 영역에서 짚어진다. 우리의 일상생활속에 뿌리박은 군사문화의 획일성 억압성이 어떻게 아직도 우리 자신을 짓누르고 있는가? 인간의 마음을 지배하기 위해 인간의 외면을 규율하는 복장의 규격화 획일화는 아주 빠른 중학교 시절부터 시작된다. 우리 사회의 인권 수준이 그래도 나아졌다고 자부할 때 여전히 우리는 중학교 아이들의 복장부터 그들을 억압하고 있다. 누구나 상식처럼 생각하지 않나? 어릴때는 순수한 모습 그대로가 예쁜거야... 화장은 무슨... 머리도 단정하면 예쁘지...이런걸 상식이라고 하지 않고 억압의 시작이라고 말할 수있는 박노자는 그래서 고맙다. 나의 진보성이란게 어느 수준인지를 자각하게 해주니까....

최근 우리의 부끄러운 자화상을 낱낱이 보여주게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우리의 태도 역시 그의 비판의 칼날을 비켜가지 않는다. 그는 단순히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을 확보해야 한다는 수준에서 벗어나 대한민국이 제대로 된 국가가 되려면 진정한 아시아의 일원으로서 교육과 문화가 몽땅 아시아를 보다 중시하는 방향으로 방향전환을 하는 것만이 서구 제국주의가 저지른 역사적 오류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의 글들을 읽고 있노라면 나자신이 벌거벗기워 지는 기분이다.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하지만 부끄럽다고 끝내버리는데 그의 글의 힘이 있는 것은 아니다. 비판은 쉽다. 대안을 마련하고 실천해나가는게 진정한 비판이다. 그는 끊임없이 한국사회의 대안을 모색한다. 그러므로 그의 글을 읽는 것은 부끄러움을 느끼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한다. 그러므로 유쾌하다. 당신들의 대한민국을 넘어 우리들의 대한민국으로 바뀌는 그날 아마도 우리는 백인이 아닌 흑인 박노자, 또는 동남아시아 출신이나 남미 출신 박노자를 만날수 있을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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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6-02-04 공감(34) 댓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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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을 넘어 '우리들'이 만들어 가는 세상 새창으로 보기
‘우리들’과 ‘당신들’은 나의 포함 여부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금을 그어 놓은 곳에 들어갈 수 있느냐 없느냐는 문제다.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에서 보여주고 있듯이 ‘당신들’이라는 말에는 소외된 ‘나’와 ‘우리들’이 존재한다. 일정한 거리감을 두고 말하는 방식인 ‘당신들’이라는 호칭은 그래서 객관성을 전제로 한다. 소설과 다른 박노자의 ‘당신들의 대한민국’은 냉정하고 분별있는 시선으로 대한민국의 모습을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객관적이거나 공정한 시선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근본적인 한계도 지니고 있다. 귀화한 러시아인 박노자는 외국인은 아니지만 법적인 문제를 떠나서 전통과 문화적 관점에서 혹은 유전적 관점에서 완전한 한국 사람으로 볼 수 없다. 내게는 그가 또 다른 유형의 주변인이자 경계인으로 비친다. 그래서 ‘당신들의 대한민국’이라는 표현이 가능할 지도 모른다.

  소속된 집단에 대한 분석과 비판은 일정부분 한계가 있음을 전제로 할 때, 박노자의 견해에 대해 많은 오류와 문제점도 지적당할 수 있다. 이렇게 모든 논의에 대해 기본적인 시각차를 인정하고 이 책을 읽는다면 다소 마음이 편해질 것이다. 2006년 현재 대한민국의 모습에 대한 문제점과 미래에 대한 전망은 하나로 통일될 수 없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대한민국에서 각자의 생각이 다를 수 있다. 거시적인 안목으로 우리의 모습을 조망해 보는 모습은 항상 필요하다. 쓴소리와 비판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들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박노자가 우리 사회를 보는 관점은 긍정 속에 부정이다. 경제와 문화 측면에서 괄목한 만한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주)대한민국은 이제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때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2001년에 ‘당신들의 대한민국’이 나왔을 때 사람들은 반응은 다양했다. 5년 후 속편 격인 ‘당신들의 대한민국 02’가 나왔다. 참여정부가 들어섰고 박노자는 이제 오슬로 대학에서 한국학을 강의하고 있다. 한국을 떠났다고 해서 그가 더 객관적인 시선으로 이야기한다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조심스러웠던 표현과 비판을 넘어서 때로는 과격하고 감정적인 발언도 불사하고 있다. 한국 사회의 문제점들은 알면서 고쳐지지 않는 것들도 많다. 그의 눈에 비친 우리의 모습은 어떤지 늘 궁금하다. 그의 말과 행동이 사회에 미치는 파장과 영향 때문이 아니라 벽안의 귀화 한국인의 눈에 비친 나의 모습은 얼마나 일그러져 있는지가 궁금하기 때문이다. 일상 속의 권위주의와 숭미주의, 박제가 된 학문의 자유와 합리화된 폭력들, 민족주의와 북한의 문제 그리고 보수를 넘어 진보를 주장하는 그의 이야기들은 미온적 ‘개혁’의 흉내가 아니라 근본적인 ‘혁명’을 꿈꾸고 있다. 어떤 면에서 보면, 행간에 묻어 있는 그의 생각들은 ‘이상주의’에 가깝다. 그러나 모두가 꿈을 꾸면 이루어 낼 수 있는 대단히 현실적인 이상들이다. 실현 불가능한 미래가 아니라 우리 안에 내재된 미래의 모습, 현실속의 가능태로 나타날 수 있는 이야기들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의 생각에 동의하건 동의하지 않건 간에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과 방향의 문제를 점검하는 데 일단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한겨레에 여전히 칼럼을 쓰며 변함없는 대한민국에 대한 애정과 신뢰를 보내고 있는 그의 쓴소리는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니다. 특정한 목적과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이기적인 목소리도 아니다. 보수와 진보를 넘어서 우리 모두의 자화상을 적당한 거리에서 비춰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책이, 박노자의 눈이 갖는 의미는 여기에 있다.

  노동자, 농민이라는 대다수 대한민국 사람들의 모습과 외국인 노동자와 같은 소수의 모습까지 두루 점검하고 손길을 내밀어 더불어 함께 걸어가야할 사람들의 이야기를 포괄적으로 점검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다만 수적 우세에도 불구하고 분열되고 이기적인 모습들, 우리 안에 내재된 또 다른 우리의 모습들을 점검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차별과 폭력을 넘어, 평화와 공존의 시대를 향해 나갈 수 있는 것은 위정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사회적 대타협의 서구 유럽의 모델이 아니라 우리들 각자가 벗어던져야 할 편견과 익숙해져버린 이기심이다. 쉬운 길을 걸어가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길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을 욕하기는 쉬워도 스스로 길을 만드는 것은 어렵다. 길이 아니라고 우기지 말고 또 다른 길도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고 해서 박노자가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가는 사람은 아니다. 대학 교수의 직함을 가진 어느새 우리 사회의 주류 資鍍퓸?버린 신분과 다르게 그는 영원히 비판적 시선으로 ‘우리들의 대한민국’을 이야기 할 것이라고 믿는다.

  근본 체제가 되어 버린 자본주의와 세계화의 문제를 조목조목 짚어내고 반성할 때 ‘당신들’이 아닌 ‘우리들’이 보다 나은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큰 틀과 방향을 설정하는 일이 더욱 어렵다. 갑론을박하는 현 정치권의 양극화 해소 방안은 기본적인 인식의 틀을 바로 잡아야 한다. 우리 모두가 꿈꾸는 세상은 어디에도 없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만들어 가야 하는 것이다. 그 미래는 ‘당신들’이 아니라 ‘우리들’의 손에 의해 결정된다.


050208-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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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eptic 2006-10-29 공감(29)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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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실상에 대해 정확하게 알수있는 책 새창으로 보기
제가 이 책을 학원에서 추천해줘서 읽게 되었는데요

우리가 대한민국이라 우리나라를 감싸게 도는게 현실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잘못된 실상에 대해 객관적으로 보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게되면 우리나라의 문제를 알게됩니다.

책을 읽으면서 바로바로 느낄수 있게 합니다.

2권을 읽기전에 전 1권을 먼저 추천드리고 2권을 읽으시라고 하구 싶네요

전 박노자 작가님을 맨처음 책  읽을때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생각할수록 우리나라에 대해 너무 잘아시구 또, 우리나라의 문제점을 잘 짚어주시는것 같아요~~

지루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절대 지루하지 않습니다

완전 재미있습니다.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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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불유수카오 2006-01-27 공감(24) 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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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대한민국 새창으로 보기
박노자가 하는 이야기는 항상 뭔가 불편함을 주었다고 기억한다. 분명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고, 대한민국에 대한 애정을 갖고 이야기하고 있음을 알고 있지만, '뭔가...'하는 느낌이 남아 있었다는 뜻이다.
몇년만에 나온 이 책을 읽으며 그런 느낌을 떠올리게 되었고, 내가 갖고 있었던 불편함은 '박노자'라는 '한국인'이 하는 이야기의 불편함이 아니라 지금까지 내가 인식하지 못하고 있던 것들을 끄집어 내야 했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깨닫게 되었다.
나는 박노자가 '우리'라는 말을 할 때 순간 멈칫거리곤 했다. 이 사람은 왜 '우리'라고 하지?.....
나의 그런 생각이 바로 내 울타리 안에 들어오려는 모두를 받아들지 않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버렸다. 이것을 느낀 순간 뭔가... 솔직히 말하자면 한대 얻어맞은 듯한 느낌이 먼저였다. 그리고 나 자신이 얼마나 편협한 생각과 배타적인 의식을 갖고 있었는지 새삼 느껴버린 것이다.

예전 박노자의 책을 읽으면서는 '당신들의' 대한민국이라는 말에서 당연히 나의 이야기가 아닌 '당신들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했었기에 그렇게 내가 인식할 수 없는 약간의 불편함만을 남기고 말았던것인지도 모르겠다.
[박노자씨, 당신의 말은 구구절절이 다 맞는 말이야. 우리가 살아가는 대한민국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이런 얘기를 할 수 없는거겠지. '당신'이라고 표현하지만 이미 '우리'라는 울타리안에서 애정어린 비판을 하고 있음을 알고 있기에 나의 많은 부분을 일깨워주었어] 이것이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내가 갖고 있던 착각이었다. 나는 그를 '우리'라고 받아들였다고 믿었지만 나의 내면에서는 진정으로 그러한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았음을 이 책을 읽어나가는 동안 깨달았던 것이다.
물론 처음 그의 책을 읽을때보다 뭔가 강하거나 새로운 충격을 받지는 않았다. 좀 더 구체적이고 세심하게 문제의식을 갖게 하고 있다고 해야할까...
분명 인식하고 있는 이야기들이 많지만, 그러한 것들에 대해 나의 인식이 한정되고 현상적인 것에 머물렀었다면 이 책에서 박노자는 나의 의식을 확장시키고 내가 인식한 문제를 좀 더 구체적으로 깊이있게 들여다보게 한다.

내 불편함의 실체를 어렴풋이나마 눈치챘을 때, 뭔가.. 좀 충격이었지만 책을 다 읽은 지금 나는 그렇게 생각해본다. '우리'와 '당신'을 구분하고 있다는것조차 깨닫지 못했을 때는 그런 구분을 당연시여겼었지만 지금 내가 그것을 느끼고 있다는 것은 당연한 타자로 여기고 있던 사람들을 '우리'라는 개념으로 받아들이려 하는 중이라고.
이건 단지 '박노자'라는 개인에 한한것이 아니라 이 땅에 살고 있는 가진것 없고 힘없는 소외된 사람들, 이주 노동자들....역시 함께 살아가는 '우리'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이것 하나로도 내게 이 책은 문제의식과 대안을 제시한다는 거창함보다 더 큰 의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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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ka 2006-03-04 공감(16)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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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근대화는 완성 단계다 새창으로 보기 구매
 
비록 현장에서 본 건 아니지만, 대추리 사건 같은 대규모 국가폭력을 목격하고 나면 그 근원에 대한 의문이 생기기 마련이다. ‘왜 우리나라는?’ 늘 죄의식을 불러일으켜 읽는 내내 마음이 편치 못하게 만드는 박노자의 저서 <당신들의 대한민국 02>를 집어든 건 그런 이유였다.



‘전근대적인 폭력’이란 용어가 널리 쓰이는 것처럼, 전근대는 폭력적인 시기였다. 지금은 사람 하나를 죽이는 데도 최소한의 법적 절차를 거쳐야 하고, 연쇄살인범의 사형마저 반대하는 세력이 존재하지만, 과거에는 높은 분의 마음 내키는대로 사람을 죽였다. 툭하면 왕의 입에서 흘러나왔던 “삼족을 멸한다.”는 말은 얼마나 끔찍한가. 그래서 우리에게 근대화는 곧 문명화를 뜻했고, 근대화가 어느 정도 진행된 지금이 그 시절보다 덜 폭력적일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내 생각을 통렬히 비웃는다. 그에 따르면 “전근대는 (폭력의) 규모나 형태에 있어서 근대와 비교할 바가 못된다.” 예컨대 “국민 개병제라는, 모든 주민들을 국가 폭력의 공범으로 만드는 제도는 어느 전근대적 사회에서도 실시되지 못했다.” 비단 전쟁이란 수단을 거치지 않고도 “(미국의) 경제적 제재로 이라크 어린이 백만명이 굶어 죽었다.” 그런데 우리는 왜 근대가 덜 폭력적이라고 착각을 하는 것일까. 저자는 여기에 대해서도 명쾌한 답을 제시한다. “정상적인 상태에서 인간은 다른 동물들처럼 동류들을 죽이기를 극히 꺼리”지만 “모두와 모두의 전쟁”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떠든 홉스의 주장이나 “약육강식이 인간의 진화를 촉진한다는 사회진화론”이 근대국가의 폭력을 합리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모든 매체에서 제3세계의 유색인종을 야만시하는 것도 “인간의 비폭력적 본성을 제거”하고자 하는 것이고, “텔레비젼과 비디오, 게임 시장이 폭력물로 채워지도록 허용”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란다. 이 결과 제 1차대전 때는 “미국의 참전 병사 중 15-20%가 본인의 생명에 위험이 가지 않는 상태에서 적군 병사를 쏴 죽일 각오가 되어 있었지만, 베트남전이나 최근의 걸프전에서는 이 비율이 95%가 되어 있었다.”는 것.



그러니까 대추리 사건은 우리나라가 본격적인 근대국가로 접어들었다는 신호, 그토록 근대화를 오매불망했던 과거를 생각하면 그리 개탄할 일은 아닌 것이다. 후반부를 채우는 외국인 노동자 얘기가 날 많이 부끄럽게 했지만, 우리나라의 근대화가 어느 정도 완성되었다는 사실이 ‘근대화 지상주의자’였던 내 마음에 한줄기 위안을 던져준다. 이 땅에서 더 큰 폭력이 일어나도 놀라지 말자. 근대화란 원래 그런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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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6-05-24 공감(17) 댓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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